이순신을 통해서 본 지도자의 길
고재경 / 비전여수인재육성 대표
이순신장군은 두뇌가 탁월하게 우수한 천재가 아니었다. 문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준 낮은 무과 시험을 보면서도 28세 때의 첫 응시에서는 실패했고, 32세 때 재수해서야 합격했다. 그것도 중하위의 성적으로 말이다.
그 후 22년 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그는 세 번 파면되고 두 번 백의종군하게 된다. 이 사실만으로도 당시 관료사회에서의 그의 적응능력은 대단히 미흡했다고 추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지 불과 1년 2개월 만에 발발한 임진년 전쟁에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23전 23승의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또 정유년 7월에 원균은 막대한 전력을 갖추고도 수군 전멸이란 참패를 당했는데, 같은 해 9월에 이순신은 도망갔던 배 12척을 긁어 모아가지고도 일본 수군 정예부대 대군과 싸워 이겨 조선수군을 재건해 낼 수가 있었던가? 그 비결은 도대체 뭘까?
사람들은 적당히 정성스럽고 적당히 바르게 살아간다.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타협하면서 원만히 살아가고, 또 적당히 애국하다가 자기의 이해와 나라의 이해가 충돌할 때는 슬며시 피해가기 좋은 편한 길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은 적당히 정성스럽고 적당히 바르고 적당히 애국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태어난 자신의 바탕과 치열한 자기 수행을 통해 목숨을 바쳐서 정성을 다했고, 오직 정의의 외길만을 걸었으며, 나라 사랑에 자신의 목숨까지 던졌다.
이순신장군이 걸어간 길은 정성(誠)과 바름(正)과 사랑(愛=忠)의 길이었다. 장군에게 있어서 誠 ∙ 正 ∙ 愛라는 가치는 확고부동한 절대의 가치였다. 다른 쪽에 눈을 팔지 않았고 어긋나는 다른 가치와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이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 속에서 합일이 되었다. 합일되면 또 다른 상승효과를 낸다. “誠과 正과 愛의 合一, 그 합일을 통한 상승” 이것이 장군을 초인으로 만든 리더십의 원천인 것이다.
지역사회가 선거 뒤끝으로 시끄럽다. 시민들의 귀감이 되어야할 공직자들의 옳지 못한 처신으로 시민들의 가슴 속엔 배신감과 허탈감이 가득하다. 게다가 2012세계박람회가 2년도 남지 않았는데 시민들의 눈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만 보인다. 이래저래 어디 가서 여수시민이라고 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런 판국에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내가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없다. 잘못이 들통 난 사람만 운이 없는 사람이고 시간이 지나가면 유야무야 되리라고 생각하는 시민들도 상당수 있는 것 같다. 잘못을 고치기보다는 구실을 만들어 덮으면서 실패를 거듭하는 사회야말로 참으로 개념 없는 사회다. 이런 풍토 속에서 시민들의 자발성을 유도하고 적극적인 동참을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엑스포도 좋고 지역발전도 중요하지만 그것 보다 더 앞세워야 할 것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신뢰와 배려가 안개처럼 피어나는 지역사회 건설이다.
지도자의 길은 외롭다고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만인의 사표가 되고 보통사람들의 귀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없는 자는 지도자 되기를 포기해야 한다.
최근세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사람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서산대사 휴정의 선시(禪詩)를 우리 모두 되뇌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눈밭 속을 가더라도 함부로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오늘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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