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아시아 미래포럼 - 1, 한국은 어디로 가야하나 2, 한국의 불평등등 "모두를 위한 성장’하려면 국가가 시장 창조자로 나서야"

2020. 12. 4. 14:04지속가능발전/지속가능발전활동

 

 

 

팬데믹 이후의 세계: 연결에서 연대로

​ 아시아미래포럼 사무국전자우편

‘모두를 위한 성장’하려면 국가가 시장 창조자로 나서야

[아시아미래포럼]‘팬데믹 이후의 세계’ 주제로​ 2일 개막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팬데믹 이후의 세계: ‘연결’에서 ‘연대’로’를 주제로 열린 제11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특별강연 ‘지구적 위기, 지구적 협력: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삶을 위하여’를 발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아시아미래포럼이 2일 ‘팬데믹 이후의 세계: ‘연결’에서 ‘연대’로’를 주제로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이틀 일정으로 개막했다. 올해로 11번째 열리는 이번 행사에 참여한 기조연사와 토론자들은 코로나19 위기의 양상과 해법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특별강연에서 “위기 앞에서 세계가 각자도생을 하면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고 그 피해는 약자들에게 돌아간다”며 다자주의와 글로벌 파트너십의 회복을 촉구했다. 빈곤 퇴치 정책실험 연구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연구자들이 데이터만 들여다보지 말고,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협업하는 실험적 접근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시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쳐선 안 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지금은 경제 방향을 바꿀 좋은 시기”라며 “모두를 위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본소득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가이 스탠딩 런던대 교수는 ‘코로나, 기본소득, 그리고 이후’를 주제로 열린 원탁토론에 기조연사로 참여해 “기본소득은 우리 모두를 자유와 안정, 정의의 길로 이끄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개막식에선 김현대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의 개회사에 이어 박병석 국회의장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각각 축사를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 전 지구적인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관건은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번 포럼이 우리 모두 생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전환의 길에서 지혜를 공유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장 참석 인원을 최소화하고 외국 연사의 강연과 대담을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하는 등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모두를 위한 성장’하려면 국가가 시장 창조자로 나서야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위기의 시대마다 여성에 물리적·사회적 폭력 집중”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반다나 시바 세계국제화포럼 상임이사“지금 위기를 멈추지 않으면 다음 멸종 대상은 인간일 수 있다.” 2일 제11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팬데믹과 기후위기 시대의 젠더’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코로나19와 기후변화의 원인 중 하나가 남성중심의 사회·경제적 문화라는 진단이 나왔다. 강연자로 나선 반다나 시바 세계화국제포럼(IFG) 상임이사는 인도 현지 화상연결을 통해 “팬데믹과 산불, 홍수, 사막화 같은 기후변화는 자연을 죽은 존재로 치부하고, 인간이 자연보다 강하다는 오만에서 빚어진 것이다. 증상이 다를 뿐 원인은 같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들이 ‘자연을 지배하고, 모든 사회적 결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폭력적이고 무지한 사고방식으로 생태계를 파괴했다”고 덧붙였다. 반다나 시바 상임이사는 환경과 여성 해방을 위해 활동해온 사상가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전지구적 위기가 닥쳤을 때 희생을 요구받는 건 여성이라고 그는 말을 이었다. “위기의 시대에 늘 여성이 가족과 사회를 책임졌습니다. 그때마다 물리적, 사회적 폭력이 여성에게 집중됐어요.” 나아가 그는 여성과 자연을 중심으로 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을 중심에 놓고 생태와 문화, 민주주의 등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코로나19라는 전례없는 재난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고 여성 리더십의 활용을 요구하는 주장이 나왔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팬데믹 위기 속에서 심화하는 여성 불평등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폐허의 장에서 왜 여성들이 늘 남은 부담을 져야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개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이후 여성들은 돌봄 부담과 가정폭력 증가, 불안한 고용 등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김양희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돌봄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감염위기 와중에 목숨을 걸고 일하거나, 남성들보다 훨씬 많은 해고를 당하는 게 현실이다. 거대한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백영경 제주대 교수(사회학)도 “코로나19 이후 여성들은 자녀·부모 등 돌봄의 의무에 허덕이지만, 정작 자신은 돌봄 공백 속에 놓인 경우가 많다”며 “생명을 낳고, 기르고 돌보는 노동을 평가해 사회적 수당을 주는 등 다른 가치체계를 적용해 소득을 재분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위기의 시대마다 여성에 물리적·사회적 폭력 집중” : 산업·재계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금융위기 때보다 고용 충격 더 크고 오래갈 것”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팬데믹과 불평등’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이런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을 비롯해 홍콩 독감(1968년), 사스(2002년), 메르스(2012년), 에볼라(2013년) 등 1900년 이후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질병이 여럿 있었다. 이 이사장은 “팬데믹이 발생하면 불평등이 1.5% 상승했고 저학력자 취업은 5%까지 감소했다”며 “코로나19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코로나발 불평등’은 한국 사회에서 고용, 교육, 자영업, 젠더 등 여러 분야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 이 이사장은 “원격수업을 위한 컴퓨터, 노트북 등 온라인 수업 환경 조성 수준이 가정형편에 따라 차이가 나고, 수학 과목의 학력 격차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며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여성들에게 맡겨지면서 퇴직을 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음식, 숙박 등 대면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다 실직한 여성들도 발생하면서 한국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의 실업률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금융위기 때보다 고용 충격이 더 크고 오래갈 것으로 전망되고 특히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에게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본다”고 우려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동시간 감소폭이 1.2%였는데 코로나 첫 3개월 동안 감소폭이 12.2%나 됐다는 이유에서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폐업, 영업수지 악화 위험이 높은데, 한국은 오이시디 회원국 중 자영업 비중이 가장 높아서 이 위험이 특히 크다”는 점도 덧붙였다.mymy@hani.co.kr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2493.html#csidx379cd1d87388936bd3b5bac7b0653c5

‘빈곤퇴치를 위한 사회실험’이 진보 이끈다

기조강연마이클 크레이머 시카고대 교수 불행이 유독 가난한 이들을 더 괴롭히지 않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 홍석재 기자 한겨레에서 보기:‘빈곤퇴치를 위한 사회실험’이 진보 이끈다 : 산업·재계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국가, 문제 해결사 넘어 공공가치 창조할 수 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마추카토 교수는 <기업가형 국가>(2013)와 <가치의 모든 것>(2018) 등 대표적 저서를 통해 국가와 기업의 가치 창출과 분배 문제를 다룬 학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가격 이외에 가치를 정의하는 기준이 무엇이며, 누가 가치를 창출하고 누가 착취하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혁신에 의한 ‘창조적 파괴’를 강조하는 조지프 슘페터의 전통을 이어받은 학자답게, 그는 이날도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내는 주체로서의 국가’를 강조했다.마추카토 교수는 “기업이 주주 이익에만 봉사하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ism)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며 “정부도 불완전 경쟁이나 정보 비대칭, 환경 오염 등 시장의 여러 부작용을 정책으로 고치려 했지만 현실에서 실패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금융과 자산시장으로 각종 부가가치가 몰리고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투자 대신 주주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쓰며 △노동 생산성과 견줘 노동자 임금이 여전히 낮고 △환경 오염과 같은 외부 효과를 통제하지 못하며 △국가가 이를 해결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그는 국가의 역할이 단순한 시장 보조가 아닌 공공의 목적과 가치 창출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의 새 역할은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역량을 키우며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downy@hani.co.kr“국가, 문제 해결사 넘어 공공가치 창조할 수 있다”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경제도 교육도 양극화 심화…약자들에 더욱 가혹한 재난

2020 아시아미래포럼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팬데믹과 불평등’ 기조강연성장률 하락 고통 취약층 집중여성·청년 일자리 더 많이 줄어원격수업 뒤 학력 격차 커지고식당·상점은 재택 근무도 못해’팬데믹과 불평등’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맡은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재난은 약자들에게 더 가혹하며 고통은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의 숨은 영웅으로 칭송받던 택배 노동자들의 잇따른 과로사가 그 증례다. 간병인, 콜센터 직원 등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도 위태롭다. 제11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팬데믹과 불평등’을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재난이 심화시킨 불평등을 나라 안과 밖의 비교를 통해 심층적으로 짚어본다.지난 6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4.9%나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저 수준이다. 문제는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인한 고통이 저숙련 저학력의 취약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 감염병을 겪은 이후에는 어김없이 불평등이 깊어졌는데 코로나19는 훨씬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인 버니 샌더스의 말대로 “억만장자들에게 코로나 창궐은 남의 일이지만 결국 코로나의 직접 피해자는 서민들”인 셈이다.재난으로 인한 고통과 불평등은 경제적 측면에 그치지 않고 교육, 근무환경 등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지난 7월 실시한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코로나19와 교육’에 대한 연구조사 결과는 코로나19 이후 한국 공교육 현장의 암울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학교에서 대면수업이 원격수업으로 대체되면서 계층간 학력 격차도 악화되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취약계층에게 돌아갈 것이다.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있지만, 산업별, 직종별 편차는 상당히 크다. 정보산업, 금융분야는 재택근무가 활발해 노동자의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여가시간의 상승, 생산성 향상 등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반면, 음식숙박업, 도소매 분야 등은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출근을 해야 한다. 이 이사장은 “코로나19가 심각한 미국과 유럽의 경우 임금수준별로 상위 10%는 67.9%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반면, 하위 10%는 28.6%만이 재택근무를 하는 등 격차가 심각하다”며 재택근무의 양극화, 불평등을 짚었다.이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이 남성보다 여성, 그리고 청년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되는 대목이라고 말한다. 여성과 청년층 노동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모든 회원국에서 ‘위험’ 직업군에서 일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실제 2~4월 취업자 수 감소폭을 보면 여성 62만명, 남성 40만명으로 여성의 피해가 더 크다.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음식, 숙박, 도소매업 종사자등 주로 여성이 많은 분야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보육시설과 학교가 폐쇄되자 여성들의 육아 부담이 더 높아졌다.한국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큰 불평등에 직면해왔다. 이 이사장은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동시장의 불평등 해소, 교육 불평등 해소, 토지공개념 확립, 보유세 강화 등이 시급하다”며 이번 기회를 한국 자본주의를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경제도 교육도 양극화 심화…약자들에 더욱 가혹한 재난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코로나 이전 시스템은 잊어라…이젠 연대의 시대

2020 아시아미래포럼팬데믹 이후의 세계: 연결에서 연대로OECD “더 나은 재건”성장·효율 우선 경제, 큰 비용 초래삶의 질 높이는 ‘사람 중심 회복’을WEF “거대한 재설정”공정한 시장과 평등 증진 투자를공익 위해 4차 산업혁명 활용도국내 연구자들 “초회복”과거와 전혀 다른 사회 상상해야기본소득 도입하고 연대적 공존을“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이 ‘과거로의 회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재건’(Building Back Better)이 필요하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초 펴낸 ‘더 나은 재건’이라는 제목의 정책 보고서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이 보고서의 열쇳말은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이다. 보다 회복력 있는 경제는 지속가능한 관행으로의 전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오이시디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장기적인 회복력보다 단기적인 성장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글로벌 경제의 핵심 원칙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며 포용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사람 중심의 회복’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경제 회복 과정에서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넷제로)를 위한 장기적인 목표도 고려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슷한 시기, 세계경제포럼(WEF)도 비슷한 취지를 담은 어젠다를 내놓았다. ‘거대한 재설정’(Great Reset)이라 명명한 ‘포스트 코로나’ 회복 전략이다. 이 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코로나 팬데믹은 보다 건강하고 공평하며 번영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세상을 재설정할 드문 기회”라고 말했다. 코로나 위기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회로 삼자는 제안이다. 슈밥 회장은 △보다 공정한 결과를 보장하는 시장 △평등·지속가능성과 같은 공유된 목표를 증진시키는 투자 △건강과 사회 문제 해결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4차 산업혁명 혁신의 활용을 ‘거대한 재설정’의 세 가지 요소로 제시했다. ‘거대한 재설정’은 세계경제포럼의 2021년 연차총회(다보스포럼)의 주제이기도 하다. ‘더 나은 재건’과 ‘거대한 재설정’ 어젠다가 공통으로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는 ‘코로나 이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기존 사회·경제 시스템의 취약성이 드러났는데, 그 문제투성이 시스템으로 그냥 돌아가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인식이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전 지구적 위기의 가능성을 줄이고 재난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과거와는 다른 사회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내에서 진행중인 ‘더 나은 재건’ 캠페인을 소개하면서, “리서치 업체의 여론조사 결과 영국 국민 중 코로나 이전과 같은 경제 시스템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 캠페인은 보건과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 확대, 불평등 해소, 양질의 일자리 창출, 미래의 팬데믹과 기후위기의 위험 완화 등을 위한 ‘공정하고 친환경적인 경제 재건’을 요구하고 있으며, 노총과 상공회의소는 물론 종교계, 환경단체, 구호단체 등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 350명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혁신적인 정책 연구자들이 ‘초회복’ 전략을 제안하고 나섰다. ‘다음 세대 정책실험실’을 표방하는 민간 싱크탱크 ‘랩(LAB)2050’이 기획한 책 <코로나 0년 초회복의 시작>에서다. 집필에 참여한 19명의 연구자들은 “과거와 똑같은 형태로 회복해서는 절대로 좋은 삶을 구현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사회를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회복은 운동으로 손상된 근육을 충분한 휴식과 영양 공급을 통해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저자들은 초회복의 미래를 만드는 비전으로 △자유안정성과 기본소득 체제 △자아실현적 동기부여와 적극적 시민 △디지컬라이제이션(디지털화+지역화) △연대적 공존을 꼽는다. ‘더 나은 재건’과 ‘거대한 재설정’, ‘초회복’은 모두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세계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제안이다. 올해 11회째를 맞는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도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탐색해 보는 노력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 연결에서 연대로’를 주제로 12월2~3일 이틀간 국내외 석학들이 머리를 맞댄다.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서로 의존적이고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연결된 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길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에 있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아시아미래포럼은 공생을 위한 연대의 한 방식으로 기본소득을 담론의 장에 올린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경제적 안정성과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를 주는 대안적인 분배체계다. 현재 경기도에서 농촌지역 1곳의 모든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정책의 효과를 살펴보는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이 준비중이다.포럼에서는 빈곤 퇴치를 위한 현장실험 기법을 도입한 공로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기조강연(팬데믹 이후 빈곤 퇴치를 위한 사회실험)에 이어 ‘코로나, 재난기본소득, 그리고 이후’를 주제로 원탁토론이 진행된다. 원탁토론에서는 기본소득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교수가 기조발제를 한다.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가치 창조자로서의 공공의 역할과 혁신에 관한 통찰’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인도의 에코페미니즘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 과학·기술·생태학 연구재단 설립자는 팬데믹과 기후위기 시대의 젠더 문제에 대한 통찰을 들려준다.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코로나 이전 시스템은 잊어라…이젠 연대의 시대 : 헤리리뷰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전시 공산주의’처럼 경제의 부분적 사회화를

기조강연 | 슬라보이 지제크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새롭고 불길한 자연의 등장 초래세상 보존하려면 급진 변화 필요‘모르고자 하는 의지’가 방역 방해잘못된 개인주의 대가 치르는 중

정부, 기업 혁신의 보조 아닌 ‘가치 창조자’로 역할을

공공의 역할과 혁신에 관한 통찰공공자원·기술 수혜 입은 기업들과도한 이익 챙기고 세금은 회피‘가치 창조’ 가면 쓰고 ‘가치 착취’혁신 성과도 공유 가능한 정책을 마추카토는 그동안 공공 영역의 가치가 평가절하되어 왔다고 본다. 많은 혁신이 공공 영역의 수혜를 입고 이루어졌는데도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단적인 예다. 아이폰이 활용하는 인터넷과 시리 기술은 미 국방부, 지피에스 기술은 해군, 터치스크린 기술은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으로 개발됐다. 공공의 지원 덕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거의 대부분의 이익은 애플에 돌아간다. 심지어 애플은 세금을 덜 내려고 해외의 조세피난처로 수익을 빼돌리기도 한다. 정보기술 기업의 ‘가치 착취’ 사례 중 하나다. 가치 착취는 금융과 제약 분야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마추카토는 혁신을 “다양한 유형의 공공기관이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집합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혁신 과정에서 나오는 보상도 폭넓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 영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와 공공 영역이 기업을 보조하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가치 창조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공공재를 단순한 ‘교정’(외부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고치는 것)의 영역으로만 한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을 ‘목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려면 ‘정책’을 사회에 더 폭넓게 이득을 가져올 공공 가치의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구성’하고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보는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정부, 기업 혁신의 보조 아닌 ‘가치 창조자’로 역할을 : 헤리리뷰 : 경제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세계화 계속…자본에 기울어진 시장의 균형 잡아야”

2020 아시아미래포럼“코로나에 공급망 영향 받겠지만외려 신기술·아이디어 기업들 출현세계화·기술로 인한 불평등 주목토머스 프리드먼. 연합뉴스 토머스 프리드먼은 퓰리처상을 세번이나 수상한 미국 <뉴욕 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이다. 국제 문제를 주로 다룬 그의 칼럼은 깊이와 대중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1999), <세계는 평평하다>(2005) 등의 저서와 강연 활동을 통해 세계화 현상을 냉철하게 짚었다. 한때 지구촌을 휩쓴 세계화 물결은 코로나 사태로 큰 갈림길에 서 있다. 세계화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프리드먼은 다음달 2일 개막하는 제11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그는 지난 9일 오전(현지시각) 화상으로 진행한 사전 인터뷰에서 “인간의 필요와 기술 진전으로 세계화는 계속될 것이며, 자본에 기울어진 시장의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류는 감염병 대유행의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코로나 사태는 국제무역을 비롯해 세계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2005년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쓴 이후 나는 끊임없이 ‘세계화는 끝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2008년 금융위기처럼 세계에서 큰일이 일어날 때마다 누군가는 ‘세계화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일부 공급망이 축소되는 등 영향을 받겠지만 인간의 필요와 연결성, 기술 발전으로 국제무역을 비롯한 세계화는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이전과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나? “나는 코로나 이후 세계가 놀라운 ‘창조적 파괴’의 시기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팬데믹을 뚫고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갖춘 새로운 회사들이 출현할 것이고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신생기업)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있다. 국가와 시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더 깊어진 것은 분명하다. 세계화와 기술 때문에 한국도 큰 시장이 생겼다. 나는 자본과 노동 간의 불균형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에 더 기울어진 것을 바꾸기 위해선 의도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고 임금 보조금을 만들어야 한다. 한꺼번에 되지는 않겠지만 노동권을 더 강화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생존 전략으로 친환경 에너지 혁명을 뜻하는 ‘그린뉴딜’을 오래전 주창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한국형 그린뉴딜’을 추진 중인데? “2007년과 2008년에 그린뉴딜을 제안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진행된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시장은 정원과 같다. 내 관점에서 새로운 친환경 상품을 얻는 방법은 시장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를 ‘탄소 제로’로 한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장려하는 규칙을 설정하고 시장을 장려하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혁신할 수 있다.” ―각국이 한국의 코로나 방역에 주목하면서 향후 세계 가치사슬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지나친 기대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한국이 열심히 일하고 교육열이 높고 결함을 줄여온, 한발 앞선 나라라고 생각한다. 팬데믹 이후 앞으로 5년 동안 세상이 어디로 갈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처럼 인적 자본에 투자하고 인프라를 갖춘 나라와 협력하기를 원하는 나라들이 많다.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방역)모델’이 꽤 회복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코로나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면서 각국이 천문학적인 재정을 풀고 있다. 미국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효과를 보고 있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오늘(11월9일) 아침 화이자는 코로나 백신이 90%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백신 기술 개발에도 사람들의 의식주 해결에도 많은 돈이 들어간다. 새로운 기술과 인프라는 내가 생각하는 자극이다. 지금 세계는 정말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기가 쉽지 않다. 어렵지만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1조달러를 비효율적으로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대선 이후 미국은 외교·안보·경제·환경 분야 등에서 적잖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바이든 시대, 무엇이 달라질 것으로 보나? “정부와 대통령이 돌아올 것이고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은 전통적인 외교 정책 아래 다자동맹 관계를 회복할 것으로 본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hongds@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1726.html

‘기울어진 일자리’ ‘노동의 양극화’ 미래는 어떻게 풀까

‘2020 아시아미래포럼’ 세션 5비대면 시대의 노동재택근무 현황·특징 살펴보고데이터 기반 미래 노동환경 예측고용노동정책이 변화할 방향 제시‘비대면 노동’, ‘재택근무’, ‘줌 회의’… 코로나19로 낯선 단어들이 우리 일상에 자리잡았다. ‘쓰러져도 회사에 가서 쓰러지라’는 말 대신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아프면 집에서 일하라’는 말이 훨씬 더 실감나는 세상이 됐다. 당국의 방역 대응이 대폭 강화될 즈음 집과 회사를 연결하던 개미굴 같은 지하철은 한때 텅텅 비기도 했다. 정말 세상이 달라지는 듯했다. 엄밀히 말하면 ‘재택근무’나 ‘줌 회의’ 같은 새로운 세계는 일부에게만 열렸다. 나머지에게는 똑같은 출퇴근에 마스크와 함께 ‘필수노동자’라는 딱지가 하나 더해졌을 뿐이다. 코로나 위기는 일상에서 감춰져 있던 불평등을 수면 위로 드러낸 계기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심화시키고 있는 노동의 양극화, 어떻게 풀어야 할까?올해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인 12월3일 열리는 분과세션 ‘비대면 시대의 노동: 거리두기와 연결하기’에서는 코로나19가 불러온 새로운 노동의 미래를 모색한다. 첫 번째로 발표의 문을 여는 에릭 브리뇰프슨 미국 스탠퍼드대 이코노미랩 원장은 코로나19로 바뀐 미국의 노동에 대해 말한다. 브리뇰프슨 교수는 디지털 경제와 경영 전문가로 구글, 다보스 포럼 등에서 강연했고 테드(TED) 강연 연단에도 두 번 선 저명한 학자다. 그는 올해 4월, 5월, 7월 세 차례에 걸쳐 미국인을 대상으로 재택근무 관련 설문을 진행했다. 이번 세션에서 연령, 성별, 지역, 직종에 따라 재택근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다. 또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의 일자리와 노동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한다. 두 번째 발표에서는 국제노동기구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저닌 버그가 ‘재택근무: 보이지 않는 근무에서 양질의 일자리로’를 주제로 코로나19로 확대된 재택근무 현황과 특징에 관한 연구들을 종합해 소개한다. 성별, 직종, 소득에 따라 얼마나 많이 재택근무를 하는지 살펴보는 한편 재택근무가 영구적으로 지속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소득이 줄거나, 고용이 불안해지거나, 성장을 위한 훈련이나 교류의 기회가 사라지거나, 노동자의 사생활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는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비대면 시대의 고용노동정책’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다. 팬데믹 이후 사회적 화두가 된 전국민 고용보험, 유연근로시간제, 상병수당 제도를 다루면서 변화해야 할 고용노동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 세션은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국제협력실장이 사회를 맡고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인사말을 전한다. 발표에 이어 진행되는 2부에서는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좌장을 맡고 토론에는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용만 건국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나선다. ♣️H6s신은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unjae.shi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1492.html

자연·여성 착취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타파해야

페이스북트위터공유스크랩프린트크게 작게‘2020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팬데믹과 기후위기 시대의 젠더반다나 시바 세계화국제포럼 상임이사약탈적 자본이 가져온 폐해코로나 틈타 생물 다양성 위협여성에게 피해 집중 ‘젠더위기’지구 민주주의 확장해야 할 때코로나19로 회사와 학교의 문이 닫혔고, 여성들은 고용 불안과 돌봄을 오롯이 떠안게 되었다. 사진은 지난 5월18일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조합이 주관한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행사 모습. 서울여성노동자회 제공반다나 시바 ‘세계화국제포럼’ 상임이사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환경과 여성의 해방을 위해 오래도록 목소리를 높여 온 세계적인 사상가이자 활동가이다. 그는 12월2일 아시아미래포럼 첫 날 기조강연 세션에서 ‘팬데믹과 기후위기 시대의 젠더’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어쩌면 지금 인류에게 닥친 팬데믹 상황은 그가 가장 걱정하고 지적하던 약탈적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의 사회가 초래한 결과일지 모른다. 지난 10월 말 전자우편을 통해 팬데믹과 환경, 여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팬데믹은 인간 또한 ‘위험에 빠진 종(種)’이라는 것을 일깨웠다. 그만큼 글로벌 자본의 난개발은 심각한 생태계 파괴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본주의에 대한 경각과 반성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반다나 시바는 ’다른 가능성’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오히려 거대 자본가들은 “생태위기를 해결한다는 미명 하에”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확산시키고 하나의 작물이나 품종만을 기르는 단일 농업체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반다나 시바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농부 없는 농장”에서 유전자 변형 식품과 특허종자가 만들어지는 이러한 상황을 식량 독재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젠더 위기로 불릴 만큼 여성의 부담과 고통을 증가시켰다. 가사와 돌봄 노동의 급증, 가정폭력 증가, 보건 종사자 여성들의 감염 위험 노출, 취약한 일자리에 집중된 저소득층 여성의 해고와 강제 휴직 등의 사례가 전 세계에서 발생했다. 더욱이 여성들은 재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며, 전통적 성 역할이나 성 불평등을 감내하는 혹은 감내하라는 사회적 압박까지 받는다. 반다나 시바는 “여성은 재앙의 희생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코로나 위기의 심각성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성 불평등을 드러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킨다. 여성에 대한 지속적인 폭력을 막지 않으면, 사회와 경제는 붕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다나 시바는 인도 여성들이 해 왔던 생태 중심의 자립 농업이 코로나 위기 시 빛을 발하고 있는 사례를 들려줬다. 반다나 시바가 1991년에 세운 농민 조직인 ‘나브다냐’(9개의 씨앗이란 의미)의 여성 회원들은 땅을 회복하고 종자를 보존하는 토착적 농사를 통해 생물 다양성을 보장하는 순환경제모델을 구축해왔다. 인터뷰 중이던 지난 10월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인도의 봉쇄 수준이 꽤 높았지만, 나브다냐 회원들은 원격 시장의 공급망이 무너져도, 지역순환경제를 통해 경제적 · 생태적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에코페미니즘과 식량주권을 다루는 세계적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반다나 시바. 반다나 시바 제공 생태주의적 관점과 젠더 정의를 결합한 포스트-코로나의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반다나 시바는 무엇보다 “인간을 다른 종보다 우월하게 취급하는 인간 중심주의의 위계, 자연과 여성의 착취에 기초한 가부장적 자본주의 위계”를 타파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코로나19 위기를 이용해 국가와 거대 자본가들이 유엔 기후와 생물 다양성에 관한 협약을 붕괴시키고, 교묘하게 언택트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약탈과 침략을 강화해가는 상황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간디의 말을 인용해 “바닥을 부수면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살 수 없다. 전 세계가 다양성, 자기 결정권, 주권, 자유와 평등이라는 거대한 순환체제를 포용할 때까지 지속해서 지구 민주주의를 확장해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세션에서 반다나 시바는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김양희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소장과 백영경 제주대 교수(사회학)가 토론자로 참석한다. 김 소장은 팬데믹 위기에서 여성과 환경에 대한 글로벌과 지역 단위의 운동과 활동을 비교하며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다. 백 교수는 탈 자본주의, 탈 성장주의 관점에서 코로나 이후의 사회 기획에 관해 토론할 예정이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hmkim2@yonsei.ac.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1489.html

소득 보장, 고용 보장 …팬데믹 시대의 복지 체제 재정비

아시아미래포럼 세션 2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서 ‘일시 휴직자’는 160만7천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무려 126만명이 늘었다. 취업중이지만 일시로 휴직한 상태를 파악하는 해당 항목은 통계청에서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1백만명을 넘겼다고 한다. 당시 언론에서 이들이 무사히 복귀할 수 있는 ‘일시적 휴직자’인지, ‘잠재적 실업자’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다. 유례 없던 팬데믹에 누구도 쉽사리 경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잠재적 실업자’가 될 경우 이들을 얼마나 안전하게 사회안전망으로 포괄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이번 팬데믹은 우리의 사회안전망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각지대와 한계를 보여준 계기가 됐다. ey.yang@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1487.html

세계가 주목한 ‘K-방역’, 위기 극복 열쇠 된 ‘지역 공동체 연대’

페이스북트위터공유스크랩프린트크게 작게‘2020 아시아미래포럼’ 세션 4로컬의 진화: 코로나 시대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상상력 돋보이는 지자체 정책전 세계가 인정하는 방역 모델로골목상권 살리려는 시민들 노력자발적으로 착한 선결제 운동 앞장각국 협동조합 위기 대응 사례공동체 기금·사회연대 정책 소개

“전세계 안전 위해 국가협력·다자주의 회복해야”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지구적 위기, 지구적 협력코로나 겹쳐 기후·보건·경제 위기가난·식량부족 취약계층 지원도반 전 총장은 팬데믹 시기가 인류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했다. 보다 더 평화롭고, 지속가능하며, 포용적인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세대적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기후변화 상황에서 파리기후변화 협약에 기반한 공동 행동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 사태가 초래한 기후·공중보건·경제적 악영향으로 특히 취약 계층들이 더 심각한 가난과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반 전 총장은 ‘바이든 시대’를 맞아 미국이 기후변화협정과 유엔 인권이사회 등에 다시 들어가기로 한 것에 대해선 크게 반겼다.그는 지난 11월9일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낸 축하 서한에서 “기후변화 협약에의 신속한 복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이 국제 사회의 선도적 지도력을 회복해 유엔과 함께 지난 수년간 손상된 다자주의를 강화하고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한미 동맹은 피로 굳게 맺은 군사동맹에서 시작해 이제 포괄적 가치동맹으로 발전되었으며 바이든의 리더십 아래 앞으로 더 공고한 동맹으로 한 차원 높은 발전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바이든 당선인이 ‘팬데믹과의 전쟁’에 힘을 쏟겠다는 다짐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뒀다.반 전 총장은 이번 특강에서 지속가능한 세계의 번영을 위해 각국의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할 계획이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절 이뤄낸 성과 가운데 17개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설정한 것과 파리기후변화 협약을 채택한 것을 중요하게 꼽는다. 그는 “협약 목적이 세계를 승자와 패자로 구분하는데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후변화에 대처할 행동을 취할 골든타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자연재해는 훨씬 불안정하고 파괴적으로 변하고 있기에 이 협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패자가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창조적 파괴의 시대로…세계화 계속된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칼럼니스트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팬데믹 뚫고 폭발적으로 늘 것최저임금 올리고 노동권 강화를프리드먼은 “2005년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쓴 이후 2008년 금융위기처럼 세계에서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세계화는 끝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코로나로 일부 공급망이 축소되는 등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인간의 필요와 연결성, 기술 발전으로 세계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 바 있는 프리드먼은 “나는 코로나 이후 세계가 놀라운 ‘창조적 파괴’의 시기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팬데믹을 뚫고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갖춘 새로운 회사들이 출현할 것이고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신생기업)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그는 “세계화와 더불어 기술 발전으로 소득 불평등이 깊어진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세계화와 기술 때문에 한국도 큰 시장이 생겼다. 주목해야 할 점은 자본과 노동 간의 불균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에게 더 기울어진 것을 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고 임금 보조금을 만들어야 한다. 한꺼번에 되지는 않겠지만 노동권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2007년 세계 경제의 생존 전략으로 친환경 에너지 혁명을 뜻하는 ‘그린뉴딜’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진행된 정부 주도의 큰 프로젝트는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닌듯했다. 그는 “시장은 정원과 같다. 내 관점에서 새로운 친환경 상품을 얻는 방법은 시장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를 ‘탄소 제로’로 한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장려하는 규칙을 설정하고 시장을 장려하면 상상할 수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혁신할 수 있다”고 했다. ‘바이든 시대, 무엇이 달라질 것으로 보는가’란 물음엔 “정부와 대통령이 돌아올 것이고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은 전통적인 외교정책 아래 다자동맹 관계를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hongds@hani.co.kr연재 2020 아시아미래포럼

‘혁신 성장’ 이끄는 국가 역할 강조…주주자본주의 위험성 경고

2020 아시아미래포럼② 마리아나 마추카토정통 슘페터학파 경제학자많은 혁신이 공공-민간 합작 지적자사주 소각·조세피난처 이전 등‘누가 가치를 훔치나’ 문제제기단기 성과 추구 주주자본주의보다장기적 위험 감내 ‘인내자본’ 중시생산 재투자 통한 가치창출 설파

노벨경제학상 크레이머 “한국 지자체의 기본소득 정책실험 강력 지지”

2020 아시아미래포럼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같은 해 12월7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톡홀름/AP 연합뉴스 마이클 크레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미국의 발전경제학자이다. 저개발국의 빈곤 해소 및 교육 관련 정책실험을 통해 정책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로 주목을 받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타트업에서 상품을 개발할 때는 여러 시제품을 만들어 ‘에이비(A/B) 테스트’를 먼저 한 뒤, 반응이 좋은 쪽을 대량 생산하는 게 보통이다. 정책에도 이런 테스트가 필요하다. 과거처럼 정책을 결정한 뒤 모두에게 바로 시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규모로 시행하면서 과학적으로 평가한 뒤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확대하는 게 시대에 맞는 정책 개발 방식이다. 혁신적 정책은 일단 시행한 뒤 계속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가면서 나온다.”연재 2020 아시아미래포럼서울 폐업 음식점 반년간 ‘7687곳’ 골목 상인들 생존법은“세계화 계속…자본에 기울어진 시장의 균형 잡아야”‘기울어진 일자리’ ‘노동의 양극화’ 미래는 어떻게 풀까자연·여성 착취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타파해야소득 보장, 고용 보장 …팬데믹 시대의 복지 체제 재정비

서울 폐업 음식점 반년간 ‘7687곳’ 골목 상인들 생존법은

비대면 시대, 골목경제의 미래소기업·소상공인 경쟁력 강화하고디지털 플랫폼 상권 빅데이터 분석경제 회복 돕는 입법 과제 등 제시 제도·정책적 지원의 전환 외에도 비대면 시대 비즈니스 트렌드에 맞는 자영업·소상공인들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도

 

 

“자본주의가 낳은 ‘축출’ 현상…대도시 일부 계층이 혜택 차지”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⑤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진보 성향의 대표적 도시사회학자다. 그가 오래도록 매달려온 핵심 주제인 세계화와 불평등이라는 두 열쇳말을 잇는 연결고리는 도시다. 이런 학문적 배경엔 남다른 개인사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947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사센 교수는 가족을 따라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등지의 대도시를 두루 옮겨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도시 소외계층이 처한 생생한 현실을 지켜본 경험은 훗날 도시 빈곤, 이민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원초적 관심과 강렬한 탐구욕의 자양분이 됐다. 사센 교수는 1994년 초판이 나온 <세계경제와 도시>(국내 번역서는 2016년 출간)를 비롯해 내놓는 저서마다 커다란 화제를 몰고 왔다. 특히 2014년에 나온 <축출 자본주의>(국내 번역서는 2016년 출간)에서는 ‘축출’(expulsion)이란 독특한 개념을 사용해 21세기 세계화와 도시, 불평등을 하나의 논리구조로 엮어냈다. 그는 올해 아시아미래포럼 첫날(23일) 오후 ‘왜 지구적 불평등 해소에서 출발해야 하나’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전자우편을 이용해 그의 최근 관심사를 중심으로 사전 인터뷰를 했다. ―세계화가 연구 주제로서 당신에게 특별히 관심을 끌게 된 계기라도 있나? “한동안 세계화를 일종의 ‘신의 선물’인 양 말하는 경향이 강했다. ‘세계는 평평하다’거나 ‘국경 없는 세계’라거나 따위의 이야기가 난무했다. 개방된 지구촌에서 한 사회가 다른 사회와 연결되고 관계를 맺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거대 기업한테 가난하고 약한 나라를 착취할 자유를 허락하는 건 옳지 않다. 세계화의 두 얼굴, 착한 얼굴과 나쁜 얼굴을 서로 분리해보려는 게 최초의 관심사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세계화의 두 ‘양식’(mode)과 맞닥뜨리고 있다.” ―<축출 자본주의>에서 체계적 축출(systemic expulsion)이 글로벌 근대성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축출이라는 개념이 선뜻 와닿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광물자원과 수자원을 비롯해 식량산업을 장악한 다국적 기업을 봐라. 이들은 가능한 한 많은 나라에 진출해 소규모 가족 단위의 전통적 경제생활과 삶의 양식을 파괴한다. 자연과 환경, 이주 노동자 등을 체제 밖으로 배제하고 축출하는 동력이 세계경제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작동한다. 대신 혜택은 대도시의 일부 계층이 안락한 삶을 누리며 독차지한다. 이 모든 게 바로 현대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축출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이른바 ‘글로벌리즘’을 조롱하면서 애국주의를 세상의 ‘악’에 대한 치유제라고 치켜세웠다.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점차 약화되는 건가? “아주 오래전에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업체들이 있었다. 미국과 서구 나라들이 ‘세계화’(globalize)에 나선 1980년대 이후 나타난 차이점이라면 일종의 공격적이고 축출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우리가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해 구매하는 거의 모든 물건에까지 그 성격이 확대됐다. 이렇게 본다면 트럼프가 새로운 유형의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건 다소 미심쩍다. 어떤 나라도 외국 공급자들한테 의존하는 기본적 필수품에 접근할 수 없다면 살기 힘들지 않나.” ―한편으론 극단적 포퓰리즘이 세계 곳곳에서 발호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후위기 같은 현안에 대처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지구촌의 협력이 필요한 때다. 세계시민으로서 어떤 행동이 필요하다고 보나? “더 많은 젊은이가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과 달리, 기업들은 아직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장 사업에 어려움을 겪을 테니까.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현재의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정말 큰 도전이 될 거다. 하지만 난 우리가 앞으로 더 잘해내리라 믿는다. 다른 방식으로 건물을 세우고 돈을 버는 일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자.”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대도시가 기회와 다양성의 공간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대도시 안에서도 격차가 점차 확대된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어떤 해법이 가능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불평등은 모든 선진국이 예외 없이 겪는 상황이다. 경제발전은 주요 도시 인구의 대략 20~30% 손에 권력과 부를 집중시켰다. 불평등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특히 중요하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는 현상도 이 문제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가격을 계속 끌어올리는 건 일부 고소득 계층이다. 이들의 지출 능력은 나머지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크다. 도시의 전체 모습을 왜곡하는 주된 요인이다.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 △사스키아 사센 약력 1947년 네덜란드에서 출생.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성장노터데임대 사회학 석·박사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현 컬럼비아대 사회학 석좌교수 주요 저서: <노동과 자본의 모빌리티> <글로벌 시티: 뉴욕·런던·도쿄> <세계경제와 도시> <축출 자본주의> 등 다수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3704.html

툰베리의 한국 친구들 “당장 기후변화에 대응을”

[2019 아시아미래포럼] 김민 빅웨이브 대표특별발언기후변화 청년모임 이끌며9월21일 기후파업에 동참“미래 위협받는데 기다리라?지금 당장 행동해야” 목소리청소년기후소송단 등 청소년들이 5월2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524청소년기후행동’ 집회를 열어 기후변화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대적인 멸종의 시작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습니다.”9월 말 유엔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 마이크 앞에 선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의 표정은 어두웠다.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어른들을 질책한 툰베리의 삶은 그의 말만큼 단호했다. 육식을 포기했고, 엄청난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도 스웨덴에서 미국 뉴욕까지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배를 타고 이동했다. 2주가 넘게 걸린 여정이었다. 툰베리는 지난해 8월 어느 아침, 학교가 아닌 스웨덴 국회로 향했다. 의사당 앞에서 2주 뒤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기후위기를 핵심 의제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또 스웨덴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금요일마다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시작됐다. 툰베리의 파격적 행동과 발언의 울림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툰베리와 뜻을 같이하는 세계 130여개국의 미래세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 학교파업에 동참했다. 한국도 함께했다. 지난 9월21일 전국 시민사회단체 330여개로 구성된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기후파업’을 했다. 무려 5천여명이 파업에 참여해 길거리에 눕는 퍼포먼스도 했다. 이날 파업에 참여한 기후변화 청년모임 ‘빅웨이브’의 대표 김민씨는 “기후위기로 미래를 위협받는데 직장이나 학교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봐야 의미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미래에는 담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민 빅웨이브 대표툰베리가 일으킨 파도는 아시아미래포럼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미래세대를 대표해 기후변화 청년모임 ‘빅웨이브’의 김민 대표가 23일 특별발언 시간에 연단에 선다. 김씨는 정치인, 기업인, 학자의 옷을 입은 기성세대에게 ‘지속가능한 미래 위해 당장 행동하라’라는 주제로 연설한다. 신은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unjae.shi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34.html

“100% 재생전력으로 맥주 생산 목표…지속가능성이 우리 정체성”

[2019 아시아미래포럼] 지속가능경영 인터뷰/ 오비맥주 니콜라스 잉겔스 부사장오비 거느린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100 플러스’ 지속가능경영 목표 수립2025년 ‘100% 재생에너지’ 목표이천·청주·광주 공장에도 태양광 패널한국 풍력·태양광 등 잠재력 풍부기업이 전력구매계약 가능해져야니콜라스 잉겔스 오비맥주 부사장은 지속가능성이 기업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앤하이저-부시(AB) 인베브(이하 에이비인베브)는 세계 최대 맥주회사다. 세계에서 팔리는 맥주 3병 중 1병은 에이비인베브가 생산한다. 버드와이저, 호가든, 스텔라, 코로나 등 수백개의 맥주 브랜드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카스를 생산하는 오비맥주가 자회사이다.맥주는 제조 과정에서 많은 물과 곡물, 포장재, 에너지를 사용한다. 에이비인베브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환경 보전과 에너지 절감에 노력하는 맥주회사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에이비인베브는 2025년을 달성 연도로 한 ‘100 플러스’라는 지속가능 경영 목표를 세웠다. 수자원 관리, 재활용 패키지, 스마트 농업, 기후변화 대응 등 영역별로 달성할 목표와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회사는 목표 수립에 머물지 않고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기법을 적용했다. 바로 ‘100 플러스 액셀러레이터’라 이름 붙인, 환경을 보전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술적·시스템적 솔루션을 가진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프로그램이다. 물을 절약하거나 포장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 기업을 선정해 6개월 동안 최대 10만달러를 지원하고 전문가 조언을 해주는 식이다. 협력업체로 선정된 스타트업은 에이비인베브의 전세계 공장에서 기술적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고, 성공하면 에이비인베브의 투자도 받을 수 있다. 올해 상반기에 치러진 첫 공모에서 21개 스타트업이 협력업체로 선정됐다.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에이비인베브의 목표는 2025년까지 공장과 사무실에서 쓰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 전기로 조달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회사의 탄소 배출을 25%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에서 이미 버드와이저를 만드는 전력은 풍력, 태양광 에너지 같은 재생에너지로 조달된다. 이렇게 생산한 캔맥주와 병맥주에는 ‘100% 재생전력’이라는 문구가 붙는다. 한국에서도 이에 맞춰 친환경 설비를 갖춰가고 있다. 2021년까지 이천, 청주, 광주 등 3곳의 공장 지붕에 태양광 발전 패널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오비맥주 구매담당 중역인 니콜라스 잉겔스 부사장을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대로 아셈타워 본사에서 만났다. 벨기에 출신인 잉겔스 부사장은 외국인인데도 한국 기업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러 모임과 세미나에 참석해 화석연료 전기에서 태양광 또는 풍력발전 전기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해 11월 국내기업의 ‘RE 100’(RE 100: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하고 이행하는 국제적인 민간 캠페인)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꾸려진 ‘재생에너지 선택권 이니셔티브’에도 참여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가로막는 전력 구매 제도 개선을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하기도 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약속은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나? “에이비인베브는 ‘RE 100’에 2017년 가입했다. 가입 당시 글로벌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구매 비율이 7%였는데 올해 말에는 60%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공장 지붕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보통은 필요한 에너지의 7~15%밖에 조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소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이나 멕시코는 진행이 빨라 이미 재생에너지 100% 목표를 달성했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은 국가도 있다.” ―한국 사업장에서도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을 하고 있나?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데는 4가지 정도 방법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자체 발전설비를 갖추는 것 빼고는 불가능하다.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직접 장기계약을 맺는 기업전력구매계약(PPA)이 가능해져야 한다. 이를 통해 한 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빠르게 늘려갈 수 있다. 기업의 수요가 선순환을 가져와 시장을 크게 바꾸는 원리다. 이를 위해 전력 사업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가장 시급하다. 오비맥주는 한국에서 이런 틀을 갖춰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탄소공개프로젝트(CDP) 같은 엔지오(NGO), 다른 한국 기업과 협력해 정책 입안과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니콜라스 잉겔스 오비맥주 부사장 (오른쪽)―한국은 땅이 좁아서 재생에너지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한국이 재생에너지에 경쟁력이 없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은 반도여서 삼면이 바다다. (그만큼 해상풍력 잠재력도 있다.) 늘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있고 새로운 방식이 나오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이든 해결책은 확실히 나온다. 이는 도전을 끌어들일 때 발견할 수 있다. 기업이 큰 규모로 투자하고, 새로운 기술과 솔루션에 집중할 수 있게 하면 (재생에너지 발전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풍력발전만 해도 초기보다 비용이 거의 90% 떨어졌다.” ―기후변화와 에이비인베브의 사업은 어떤 연관이 있나? “맥주회사의 사업과 기후변화의 관계는 밀접하다. 물과 곡물은 맥주를 만드는 핵심 원료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생산할수록 맥주가 더 신선하다는 점에서 지역사회도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후변화에 충실히 대응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어느 기업이나 나름대로 자신을 더 견고하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기후변화를 그런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기후변화에 잘 대응하면 기업, 정부, 소비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상생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것은 소비재 생산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염두에 둔 것인가? “마케팅이나 브랜드 이미지는 우리의 출발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결과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지속해서 변화를 끌어내는 기업은 항상 핵심 비전과 목표의 주변에서 움직이며 핵심 역량을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에이비인베브는 지속가능성을 우리의 비즈니스라고 말한다. 우리가 ‘100 플러스’라 이름 지은 것도 100년 넘어 오래가는 회사의 기초를 세우자는 취지다. 이런 자세가 우리가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이자 우리의 정체성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31.html

‘지구를 생각하는 제품’이 기업 경쟁력 키운다

[2019 아시아미래포럼] 지속가능한 경영은 어떻게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가?기조강연: 노나카 도모요위기 빠진 ‘산요’ CEO 맡아‘싱크 가이아’ 비전 내걸고물 사용량 확 줄인 세탁기 개발매각 뒤에도 ‘대표상품’ 위력노나가 도모요 로마클럽 집행위원이자 일본 비영리법인 가이아이니셔티브 대표가 태양광 랜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도의 한 마을을 방문했다. 태양광 랜턴 프로젝트는 전기가 없는 곳에 태양광 패널과 랜턴 등을 설치해 자연 에너지 중심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가이아이니셔티브의 대표 프로젝트 중 하나다. 가이아이니셔티브 제공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마지막 기조강연을 맡은 노나카 도모요 로마클럽 집행위원이자 일본 비영리법인 가이아이니셔티브 대표 (사진 왼쪽 흰옷 입은 이)는 ‘지속가능한 경영은 어떻게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가?’를 주제로 청중 앞에 선다. 그는 지금 우리가 ‘기후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며, 이를 극복하려면 사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나카 위원은 일본 전자업체 산요의 최고경영자를 맡아 지속가능한 경영전략을 세워 추진했던 경험을 소개한다. 그는 2005년 산요의 경영을 맡은 뒤 ‘싱크 가이아’(지구를 생각하다)라는 비전을 수립하고, 크게 △환경 △에너지 △생활문화의 범주로 제품군과 생산라인을 정비했다. 이에 따라 산요는 최대 천 번을 충전할 수 있는 ‘에네루프’(에너지와 순환을 의미하는 루프의 합성어) 전지, 물 사용량을 200리터에서 8리터로 줄이는 세탁기 ‘아쿠아’ 등을 개발해 출시했다. 당시 산요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경영난으로 부채가 1조2천억엔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 니가타현을 강타한 6.6 규모의 주에쓰 지진은 산요의 최대 반도체공장에 큰 피해를 입혔다. 디지털카메라 등 디지털 제품의 수요가 위축되며 가격이 하락하고, 중국산 저가품과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게다가 2000~2003년 사이에 회계부정 의혹이 불거지며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침몰 위기에 빠진 산요를 구하기 위해 노나카 위원은 핵심 산업만 남기는 대대적 구조조정과 ‘지속가능성’을 새로운 근간으로 삼았다. 그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지속가능한 지구와 풍요로운 삶을 위해 산요가 가진 독자적 기술들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했다며 “이는 단순한 녹색 경영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속가능성을 통해 미래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미였다. 노나카 위원의 도전은 성공했을까. 그는 만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단기 수익이 확보되지 않아 성난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에 부닥친 것이다. 경영난을 겪던 산요는 2011년 가전 부문이 중국 기업 하이얼에 매각되었고, 결국 2013년에 해체되었다. 그러나 노나카 위원의 ‘싱크 가이아’ 전략 아래 탄생한 ‘아쿠아’ 가전 라인은 현재 하이얼의 대표 상품군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노나카 위원은 청중에게 ‘무엇을 위한 비즈니스인가?’를 질문한다. 그는 경영인은 물론 투자자, 정부,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생각과 관행의 변화를 촉구하며,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영의 미래를 논할 예정이다. △노나카 도모요 1954년 일본 도쿄도 출신 조치대 졸업 1980~90년대 엔에이치케이(NHK) 메인 앵커 2005~2007년 산요전기 최고경영자 현 일본 비영리법인 가이아이니셔티브 대표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y.yang@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30.html

주주 이익만 좇던 자본주의, ‘다양한 대안적 가치’에 눈돌리다

[2019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떠오르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주주자본주의 ‘석양’ 속으로기업들 ‘이윤 극대화’ 내달렸지만그 끝은 극심한 불평등· 기후위기사회·환경 중시하는 경영 부상아마존·애플 등 CEO들 “포용적 성장”영국 노동당 ‘양극화 해소 기금’ 추진공유가치창출·사회적경제 등 봇물미국 대기업 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멤버들. 앞줄 왼쪽부터 액센추어 노스아메리카의 줄리 스위트,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애플의 팀 쿡, 비스타 에퀴티 파트너스의 로버트 스미스, 뒷줄 왼쪽부터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제너럴모터스의 메리 배라, 블랙록의 래리 핑크. <뉴욕 타임스> 누리집영어로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는 12세기 프랑스어 ‘콩파니’(Compagnie)에서 나왔다. 사회·우정·친밀함·군대 등을 뜻하는 말이다. 어원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 ‘콤파니오’(Companio)에 닿는다.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식구’다. ‘기업가’(Entrepreneur) 역시 ‘사회와 더불어 주고받는 사람’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무역이나 상업을 뜻하는 ‘상거래’(commerce)도 ‘사회적 유대’와 동의어였다.이는 기업, 기업가, 상업 모두 그 출발은 공동체적인 존재와 활동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의미는 지금 보면 외계어를 대하는 듯 낯설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경영대학원(MBA) 강의실에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가르쳤다. ‘주주자본주의’라 이르는 이런 주장은 어설퍼 보여도 든든한 후원자들을 갖고 있다. 1970년대 과감히 이런 주장을 들고나온 시카고 경제학파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 그리고 현장에서 이런 원리를 가차 없이 적용해 경영자의 우상이 된 된 잭 웰치 전 지이(GE) 회장 등이 그들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한 프리드먼은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기업에 “사회적 책무”란 없으며, 오직 있다면 주주에 대한 책무만 있다고 주장했다. 1970년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썼다. 물론 프리드먼이 그리 단순하게만 말한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정부가 할 일을 고민하는 대신 이윤 창출에 집중하면 일단 망해서 사회에 폐 끼칠 일이 없고, 고용과 납세로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게 된다는 뜻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주주를 숭상하는 과감한 주장이 경제·사회적 행동양식을 바꾸어 나가면서 드러나는 결과는 프리드먼의 기대와 많이 달랐다. 분기마다 이뤄지는 실적 발표, 주가와 직접 연계된 경영자 보상 시스템은 회사의 중역과 이사가 특정한 인센티브, 즉 물불 안 가리는 이윤 증대를 선택하도록 했다. 과도한 감원, 비정규직 확대, 자산 매각, 입찰 담합, 협력업체 쥐어짜기,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탈세 등이 그런 것들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면서 유해성을 감췄고, 디젤차의 배출가스 검사 결과를 조작했으며, 포장재를 남용해 바다를 플라스틱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기업이 이익만을 위해 많은 것을 외면한 결과는 △주기적인 경제·금융 위기 △심화하는 불평등 △턱밑을 파고드는 기후위기였다. 기업의 수익 가운데 노동자 몫은 줄고 경영자 몫은 커졌다. 이런 주주자본주의는 이제 ‘석양’을 맞고 있다. 그 징표 중 하나가 유수한 경영자들이 오래된 ‘도그마’를 폐기하고 기업의 사명을 재정의한 것이다. 주요 미국 대기업을 대표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이하 비아르티)은 지난 8월 말 ‘포용적 번영’을 강조하는 ‘기업의 사명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서 경영자들은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의 번영을 극대화하는 게 사명이라고 재정의했다. 즉 고객에게 가치 있는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노동자에게 정당한 몫을 보상하고 교육에 투자하며, 납품·협력업체는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대우하며, 지역사회 구성원을 존중하고, 사업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한 행위를 함으로써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게 성명의 내용이었다. 성명서에는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 181명이 서명했는데, 제이피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지엠(GM)의 메리 배라, 보잉의 데니스 뮬런버그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환영한 것은 물론 아니다. 기관투자가협의회는 “모두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사회적 목적을 규정하고 대응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라 경고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주자인 버니 샌더스는 “그들이 진지하다면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인상하고, 부자가 제대로 된 세금을 내자고 말해야 한다”며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1970년대 이후 금융은 세계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이익을 찾아나섰다. 미국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2003년 외환은행 인수는 ‘헐값 매각’ ‘국부 유출’ 등 다양한 논란을 낳았다. 2012년 5월 참여연대 회원들이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부당이득 환수 추진을 위한 주주 모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그런데도 비아르티의 기업 사명 재정의는 어떤 것이 성공하는 기업인가에 관한 생각이 적잖게 변했음을 보여준다. 불평등과 기후변화라는 양대 위기 앞에서 기업이 경제적 책무와 사회적 책무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은 많은 공감을 받아왔다. 하버드대 기업사학자 낸시 케인은 “경영자들은 시대정신에 반응하는 것”이라며 “예전 그대로의 비즈니스가 더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압박과 법적 규제 움직임도 생각 변화의 촉진제가 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반세계화 정서가 번지고, 분노의 지향점이 어딘지 모를 포퓰리즘과 극적인 변화를 바라는 정서가 번지고 있다. 9월7일치 <파이낸셜 타임스>를 보면, 2017년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의 44%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밝혀 놀라움을 주었다. 이런 정서를 등에 업고 기업과 금융을 규제하려는 대표적 움직임이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 지난해 8월 발의한 ‘책임 있는 자본주의 법’이다. 이 법은 연간 매출이 1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이사들 가운데 40%를 노동자가 선출하고, 정치자금 기부와 같은 정치 지출 결정을 하려면 이사와 주주 4분의 3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경영진과 이사의 스톡옵션은 받은 뒤 5년 안에 매각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의 노동당은 지난해 9월 상장기업이 10년간 점진적으로 10%까지 주식을 출연해 기금을 만들고 여기서 나오는 배당금을 노동자에게 분배하거나 양극화 해소에 쓰는 ‘포괄적 소유기금’(Inclusive Ownership Fund)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비록 주주자본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라 해도 성명서 하나가 기업을 확 변화시키리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주주를 정점에 둔, 지난 50년 가까이 지속돼온 체제는 다양한 요소가 촘촘히 얽혀 돌아가는 경제·사회적 레짐(가치, 규범, 규칙의 총합)이었다. 이는 1970년대 초반, 전후 브레턴우즈체제가 무너지고 규제가 풀린 금융이 세계를 넘나들며 제조업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의 요구였다. 금융자본주의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한 신조이자 시스템이었다. 실물을 다루는 기업이 경제를 주도하고 은행 중심의 금융은 인내 자본 역할을 하던 앞 시기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새 체제도 여러 경영실험과 법적·규범적 뒷받침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책임 있는 자본주의를 강조해온 미국 변호사 마틴 립턴 등이 최근 내놓은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런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지속가능한 장기투자와 성장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파트너십’이란 이름의 제안은 기업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연기금 같은 금융투자의 새로운 행동모델을 제시하려 한다. 기업과 주식 투자자들이 단기 실적주의의 유혹을 끊어내고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도모하는 행동원칙을 정리했다. 여기에 더해 주주자본주의의 태양이 중천에 떠 있을 때부터 태동한 다양한 대안적 흐름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가 제시한 공유가치창출(CSV)처럼 사회문제 해결을 기업의 본업과 연계해 장기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시도, 영리성과 사회적 책무를 함께 중시하는 베니핏 코퍼레이션(비코프) 실험, 그리고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 흐름도 있다. 에스케이(SK)의 ‘더블버텀’ 라인처럼 기업이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움직임도 눈여겨볼 변화다. 경영 사상가 필립 코틀러는 ‘올바른 행동’은 이제 기업의 생존과 번영의 필수조건이 됐다고 말했다. 기업이 사회적 책무와 경제적 이익의 균형을 맞춰가면서, 생태계를 따뜻하고 건강하게 가꾸는 것은 위기의 시대에 대응하는 핵심 전략이 됐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8.html

‘금융의 포용성’ 어떻게 넓혀 나갈까

[2019 아시아미래포럼] 포용사회로 가는 길, 금융 다시보기둘째날 세션4경제 주체들의 미래 기회 열어갈포용적 금융의 중요성 재확인사회적 금융의 현주소 짚어보고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을 찾는다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모인 각국 정상들이 ‘금융 포용성’을 강조하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연합뉴스‘아무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No one left behind)2015년 유엔총회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핵심 의제이자 ‘포용적 금융’의 목표와 가치를 함축하는 말이다. 주요 20개국(G20)은 2017년 ‘금융 포용 액션플랜’을 마련한 데 이어 그해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의의 정상선언문을 통해 빈곤 해소, 일자리 창출, 양성평등을 위해 금융 포용성이 중요하다고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도 포용적 금융을 핵심 금융정책 기조로 삼아, 2018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일반 금융은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사회적 금융은 사회문제를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곳에 자금을 융통한다. 그럼 주류 금융도 수익성을 넘어 사회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도록 할 수 있을까? 사회적 금융이 잔여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일반 금융까지 포용적 금융으로 이행하는 데 마중물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아시아미래포럼 둘째날인 24일 오후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신용보증기금,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함께 ‘포용사회로 가는 길, 금융 다시보기’라는 주제로 금융의 이런 변화 가능성을 모색한다. 1부에선 사회적 금융의 신용평가 모형과 시스템이 어디쯤 와 있는지 살펴보고, 2부에선 기존 금융의 편견과 불평등 극복이란 근본적인 숙제에 도전한다. 문진수 서울신용보증재단 상임이사는 지속가능한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을 위해 평가모형뿐 아니라 자금 조성과 운용 및 회수 전략을 짚을 예정이다. 그는 “사회적 금융은 담보나 신용평가 중심의 ‘거래 금융’과 비재무적 정보에 근거한 ‘관계 금융’을 병행한다”고 말한다. 신용보증기금은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의 이행을 위해 한국사회혁신금융과 함께 올해 금융회사가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금융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조경식 신용보증기금 이사는 평가의 경험이 없는 일반 금융회사도 사회적 가치를 평가·관리할 수 있는 범용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킬지를 소개한다. 한국 최초의 민간 주도 사회적 금융 도매기금은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김정현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장은 사회적 금융의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매기금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향후 과제가 무엇인지 발표한다. 걸음마 단계이긴 해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둘러싼 환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부에서 김용기 포용금융연구회장은 주류 금융이 주택담보대출 위주에서 벗어나 중소기업, 협동조합, 지역사회 지원을 주요한 비즈니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생태계 조성방안을 제안한다. 그는 “지금의 금융시스템이 한국 경제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는 주류 금융이 제조업 등 산업 분야에서 하는 역할을 사회연대를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 방식으로 수행할 필요와 가능성을 따져본다. 김경화 블룸버그통신사 홍콩 특파원은 현재 아시아 이에스지(ESG) 투자의 현주소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탐색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이에스지 투자’란 기업의 재무 지표 외에도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투자방식을 뜻한다. 그는 “아시아 지역에서도 이에스지 투자 환경이 무르익고 있다”며 지속가능성이라는 떠오르는 투자 기회를 살펴볼 것을 강조한다. 전체 논의를 이끌어갈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미래의 기회를 성취할 수 있도록 금융의 포용성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7.html

도시의 공동체 경제 어떻게 만들까

[2019 아시아미래포럼]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공동체 경제둘째날 세션 3지역 주민 내쫓는 개발과 투자공동체 경제·문화로 상생 모색지속가능한 도시재생 사업과골목상권 활성화 방안 등 논의지역 공동체가 만드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어떻게 가꿀지가 여러 도시의 과제이다. 도시재생으로 만들어진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 텃밭. 은평구청 제공‘임대’라고 쓰인 전단이 길거리에 어지럽게 나뒹군다. 한때 젊은이들로 북적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던 경리단길, 가로수길은 이제 쓸쓸한 거리가 됐다. 비싼 임대료에 밀려난 세입자도, 가게를 비워두게 된 건물주도 함께 실패했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주민들도 떠나면서 도시는 쇠락했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은 이곳만의 문제라기보다 전국 도시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이다. 도시문제가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에 주목해 유엔도 2015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정하면서 열한번째로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를 포함했다. 아시아미래포럼 둘째날인 24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도시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세션이 마련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함께하는 이 세션은 개발과 투자라는 익숙한 해법보다는 지역 공동체가 만드는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이 주제이다. 지역 주민이 내쫓기지 않고 머무르면서 직접 도시 발전을 이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발제와 토론에서 강조될 예정이다.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도시계획학 석좌교수는 “성장하면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며 “지식과 기술의 발전은 평범한 사람들을 그들의 삶으로부터 내쫓았다”고 말한다. 사센은 저서 <축출 자본주의>에서 실업, 빈곤, 자살, 실향, 추방, 수감 등의 사례를 들며 “현상은 달라 보이지만 배제되고 궁핍해진다는 방향성은 모두 같다”며 “쫓겨난 것, 완전히 퇴출당한 상태”라고 표현한다.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도 이런 축출의 한 향상이란 것이다. 정건화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는 지역에서 공동체 경제를 만듦으로써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식량, 주택, 교통, 환경, 일자리 등이 도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조건”이라며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해 우리의 일상에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공유경제, 지역화폐 등 공동체 경제가 스며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한 ‘공공디벨로퍼의 역할’을 소개할 예정이다. 변 사장은 “도시재생 사업의 핵심은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기존의 마을 살리기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 내 일자리 창출까지 연결할 수 있는 도시재생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펼쳐 보인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알려진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도시재생을 위한 ‘골목상권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모종린 교수는 저서 <골목길 자본론>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통해 임대인도, 임차인도 협력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파트너로서 협력하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세션에서 ‘앵커 스토어’(Anchor Store: 자영업자 등 작은 상점들을 끌어들이는 데 중심역할을 하는 핵심 점포)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지역의 상생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토론자로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서철모 화성시장,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이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해 지역에서 실행한 정책 사례와 향후 방향을 소개한다. 양동수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는 현재 추진 중인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실험을 소개하며, 마을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대안을 공유한다. 좌장은 서울연구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내며 도시재생 뉴딜 정책에 관심을 가져온 김수현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가 맡아 논의를 끌어간다.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6.html

무한경쟁 ‘플랫폼 노동자’ 보호 어떻게

[2019 아시아미래포럼]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확산과 사회적 보호제도의 진화둘째날 세션 5전세계 1억명 이상 일하지만사회적 보호·복지 ‘사각지대’우버·배달 노동자들 대책 촉구“유럽은 운영자에 의무 부과 추진”노동절인 5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라이더유니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 경제’는 우리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음식을 배달시키고, 여행을 위해 숙소 예약을 하고, 택시를 탈 때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앱을 활용한 공유경제나 플랫폼 기업도 승차, 숙박, 가사, 배달, 간병, 이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있다. 인터넷으로 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산업은 접근성, 편리성, 저렴한 가격 등의 장점으로 전세계적 확대 추세에 있다. 한국만 봐도 성장에 가속이 붙은 상태다. 통계청의 ‘온라인쇼핑동향조사’를 보면, 배달 앱을 통한 거래액(모바일쇼핑, 음식서비스 항목)은 2017년 2조3543억원에서 지난해 4조7799억원으로 1년 사이 두 배로 증가했다.플랫폼 경제의 눈부신 성장 뒤에 기존 제도로 품을 수 없는 노동 형태가 생겨나면서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일자리가 아니라 일감으로 경쟁하고, 노동자는 어디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와 사회복지 혜택에서 벗어나 있다. 진입 장벽이 낮아 플랫폼 노동자 수는 계속 늘어나지만 무한경쟁으로 수입은 적고, 위험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 플랫폼 노동자는 최대 54만여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 수준으로 추정된다. 세계은행은 2020년에 전세계 플랫폼 노동자가 1억1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견디다 못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저항도 일어나고 있다. 세계 곳곳의 우버 기사들은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우버의 미국 증권거래소 상장일에 우버 앱, 또 다른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의 앱을 끄는 항의시위를 했다. 국내에서도 노동절인 올해 5월1일 앱으로 일감을 받는 배달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모여 노동조합(라이더유니온) 결성식을 열었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7일에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위험을 떠안고 일하는 라이더들의 문제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며 터무니없이 높은 보험료 인하 같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플랫폼 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인 24일 한국노동연구원이 함께하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확산과 사회적 보호제도의 진화’ 세션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와 사회보장제도 적용 방안이 논의된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랫폼 경제시대의 사회보장제도’라는 발제문에서 “임금·노동 조건의 하향화 압력, 고용 불안, 차별, 사회적 고립, 장시간 노동, 법적 지위의 모호성 등”이 빚어지고 있다며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의 경우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 교육훈련의 의무를 플랫폼 운영자에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단체협상과 단체행동의 권리 부여, 사회보험 적용을 위해 보험료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이 세션에서는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이 좌장을 맡고 스테인 브루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이코노미스트가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 사이 회색지대에 대한 노동시장 규제’에 대한 내용을, 엔초 베버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가 ‘디지털 사회보장’이란 주제로 발표한다. 토론자로는 이성종 플랫폼노동연대 대표,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나선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4.html

격차 해소 위한 ‘확장적 복지’ 방안 모색

[2019 아시아미래포럼] 격차사회와 포용국가둘째날 세션 2아직 뿌리 못 내린 포용국가 정책소득분배 악화·부문별 격차 여전세원 발굴· 재정확충 공론 모으고영국· 일본의 실태와 정책 살펴봐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인구 5천만명 이상-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이상)에 가입한 나라지만, 소득·교육·지역·노동 등 여러 분야에서 격차가 확대돼 국민의 행복 수준은 국가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과연 격차 문제 해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서울 포이동 구룡마을 뒤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한국은 2017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1734달러(한국은행 2019년 6월 기준연도 개편 통계)로 3만달러를 넘어섰다. 이로써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인구 5천만명 이상-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이상)에 들어선 국가가 됐다. 앞서 30-50클럽에 진입한 여섯 나라인 미국·독일·영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는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자, 주요7개국(G7) 멤버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가운데 선진국 진입 지표의 하나인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은, 한국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하지만 ‘삶의 질’을 보여주는 다른 지표들은 한국 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준다. 노인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최고이고, 양극화 심화와 청년실업 속에 사회적 위화감이 확대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공공부문 비정규직 축소 등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불평등이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 격차 또한 심해지고 있다.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24일 오전에 열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주관 ‘격차사회와 포용국가’ 세션에서는 이런 한국 사회 격차 문제의 현황과 해소 방안을 논의한다. 김태완 보사연 연구위원이 ‘한국의 격차실태와 포용복지’를 주제로 발제하고, 로버트 페이지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 교수와 김명중 일본 닛세이기초연구소 박사가 각각 영국의 사회 격차 현황과 국제적 추세, 일본의 사회 격차 해소 방안 등을 소개한다. 김 연구위원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표방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포용’이 얼마나 현실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짚는다. 안타깝지만, 큰 틀에서의 변화는 아직 없다. 올해 다소 둔화했다지만, 소득분배는 지난해 더욱 악화했고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사이 격차 또한 여전하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 소득분위별 사교육비 격차가 늘면서 계층사다리의 붕괴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국민 행복 수준은 여전히 국가 수준(경제력 기준 세계 11~12위)을 크게 밑돌고 있다. 해결책은 자명하다. 확장적 복지가 첫손에 꼽힌다. 국민연금 개혁과 기초보장제도 보장성 강화, 공공형 일자리 확대를 통한 노인빈곤 해소가 시급하고, 청년·여성·이주노동자 등 배제계층의 노동시장 접근성 개선도 주요하게 고려할 사항이다. 이와 함께 △지역 △노동시장 △교육 △남녀 등 부문별로 적극적인 격차 해소 정책도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김 연구위원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분권 강화와 더불어 수도권 주요 대학의 지방이전 독려와 재정지원이, 노동시장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와 더불어 기업별 복지에서 국가 복지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확장적 복지와 부문별 격차 해소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세원 발굴, 그리고 누진세 및 보유세 강화 등을 통한 재정 확충이 필수지만, 한국적 정치 현실에서 공론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과제다. 로버트 페이지 교수는 영국 재정연구소(IFS)의 ‘21세기의 불평등’ 보고서 등을 인용해 1970년대에 3%였던 상위 1% 가구의 소득 점유율이 8%까지 올라가고, 최고경영자 평균 급여는 20년 전보다 3배 늘어, 노동자 평균의 145배에 이르는 등 영국의 격차 확대 양상을 소개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에서는 소득재분배와 부유세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유권자들의 지지 확보는 생각보다 어려운 ‘숙제’임도 강조할 예정이다. 김명중 박사는 흔히 ‘20년 뒤 한국의 모습’으로 얘기되는 일본의 격차 문제를 소개한다. 2012년 아베노믹스가 본격화하며 일본의 실업률과 빈곤율이 낮아졌지만, 실질임금 상승률은 경제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고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에게도 건강보험과 복지연금보험 가입 문호를 확대하는 등 격차 축소에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재분배 정책도 세대 간 조정에 편향돼 있어 새로운 빈곤과 소득불균형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박사의 시각이다. 토론자로는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와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 김문길 보사연 연구위원 등이 나서며, 조흥식 보사연 원장이 좌장을 맡는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5.html

소소한 실험을 거대한 전환점으로

[2019 아시아미래포럼] 전환도시 서울, 시민의 실험둘째날 세션 6부동산 장벽 넘어선 ‘공유 공간’쓰레기 관찰기로 시작된 프로젝트작은 실천과 도전 정신이 만든198개 참신한 시민 발상 나누기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11곳에서는 ‘미래세대를 오늘의 시민으로’ 만드는 청소년의회가 구성돼 있다. 꿈지락네트워크 제공올해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인 24일엔 ‘전환도시 서울, 시민의 실험’이란 제목의 포럼이 열린다. 서울연구원이 주관하는 이 세션은 서울의 모습을 바꿔나가는 시민들의 도전과 실험의 기록을 널리 공유하는 자리다. 서울 시민이 직접 써내려간 ‘전환 리포트’라 할 만하다.‘전환’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범도시인 서울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 주제어이다. 지난해엔 시민이 앞장서는 대의를 강조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면, 올해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의 전환적 실험과 도전 현장의 사례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체인저 19인과 시민연구위원 6명이 힘을 합쳐 실험사례 발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전환이란 이름에 걸맞은 사례 198개가 모였다. 이들 현장 사례를 하나로 연결하는 다섯 개의 열쇳말은 △당사자성 △혁신성 △지역성 △협력 네트워크 △일상의 변화 등이다. 포럼 현장에선 대표적인 전환 사례 4개가 소개된다. 박영민 해빗투게더 협동조합 이사가 발표할 지역 자산화 실험은 관심을 끌 만하다. 서울 마포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삼십육쩜육도씨 의료생활협동조합, 홍우주 사회적협동조합 등 세 곳은 똑같은 문제에 맞닥뜨렸다. 끝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넘기 힘든 거대한 장벽으로 앞길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왔던 모든 활동과 실험, 실천과 도전은 부동산 앞에서 멈춰 섰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해법은 없는 걸까? 이들은 힘을 합쳐 공간을 마련하는 길을 찾았다. 복합예술 공간과 공동사무실, 코워킹 스페이스 등을 두루 갖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일에 뛰어든 것이다. 지역 자산화란 지역 주민이 공간을 공동 소유하면서 장기적이고 자율적인 사용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으로도 불리는 지역 자산화가 과연 지역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다. ‘청소년의회’ 활동의 의미를 전해줄 인권을찾았당 사례도 무척 흥미롭다. 현재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청소년의회가 구성된 곳은 11개에 이른다. 특히 금천구는 청소년의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지자체 최초로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직접 투표권을 행사해 의회를 꾸렸다. 역시 지자체 최초인 청소년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설치돼 구청의 청소년 관련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 지난 7월엔 20명으로 구성된 제4대 의회가 구성됐다. 금천구 청소년의회에서 활동 중인 인권을찾았당은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 인권이 왜 중요한지, 작은 실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일깨워준다. 양천구 목2동의 난장이마을은 흔히 ‘모기동’으로 불린다. 공식 행정 지명은 아니고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는 예술의 경계를 짓지 않고 지역 의제, 생활사, 사건, 대화, 수다 등을 고루 어루만지면서 예술로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벌인다. 삶과 장소에서 일과 놀이를 굳이 구분 짓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들은 자신의 활동에 도시의 유효기간 연장을 위한 실험적 실천이라는 그럴듯한 가치를 부여한다. 쓰레기덕후의 가상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도 눈길을 붙들어 매기에 충분하다. 서울 시민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쓰레기는 약 0.94㎏. 1년이면 어림잡아 350㎏에 육박한다. 평범한 청년들 몇명이 어느 날 재미있는 실험을 해봤다. 각자의 쓰레기 관찰기를 작성하기로 한 것.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른바 ‘쓱싹쓱싹!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상의 작은 실천은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매장 내 일회 용기를 규제하자는 ‘플라스틱 어택’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결국 온라인 쓰레기 덕질로 발전했다. 소소한 일상의 현장이 거대한 전환의 발화점이 될 수 있음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증명해줄 수 있을까.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2.html

‘기후 위협’ 눈총받는 한국 ‘그린 뉴딜’ 설계를

[2019 아시아미래포럼] 인류세 시대: 한국사회의 녹색 전환둘째날 세션1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량 OECD 1위유엔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 하위권인류세 논쟁이 된 기후 위기 원인과녹색 포용사회 위한 정치 과제 제안아시아미래포럼 분과 세션1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경제적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시하는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녹색 전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사진은 지난 9월2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민단체들의 기후위기 집회 모습.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이산화탄소 배출 세계 7위,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다른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기후위기를 얘기할 때 한국에 따라붙는 부끄러운 수식어들이다. 영국의 시민단체 기후행동추적(CAT)이 세계 국가 중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미흡한 나라로 지목한 4개 나라에도 한국은 그 이름을 올렸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가 발표한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지수(CCPI)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60개국 중 57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차지했다. 이렇듯 국제적으로 눈총받는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문제이지만 국내에서는 늘 고용, 투자 등 성장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의 과제에 밀린다. 지난달 21일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와 같이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인, 기업들의 대응은 아직도 미온적이기만 하다.이번 아시아미래포럼에서는 성장과 발전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끌어온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생태적 한계 안에서 경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녹색 전환에 대해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다소 생소한 녹색 전환의 개념과 이행 과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둘째 날 오전에 환경·정책영향평가연구원과 함께 여는 ‘인류세 시대, 한국 사회의 녹색 전환’ 세션은 최근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화두로 떠오르는 인류세 시대를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박범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은 국제적 화두인 인류세 담론의 의미와 배경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 미래상을 그려 보인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지층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은 지질학적 용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첸이 2000년에 언급한 이래로 기후위기와 함께 서구사회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다. 박 센터장은 인류세를 둘러싼 논쟁을 통해 기후위기를 불러온 원인이 무엇인지 반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의 원인이 인류에게 있다는 비판에서 나아가, 자연을 통제해왔던 지금까지의 문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로 삼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인간의 개입을 줄여 생태계 복원에 성공한 네덜란드 오스트파르더르스플라선(Oostvaardersplassen) 국립공원 사례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도 자연과 문명이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땅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은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사이의 균형 방안을 담은 새로운 경제학 모델을 소개한다.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경제학>에서 지구 생태계의 한계 안에서 사회적 최저선을 넘어서는 복리를 함께 누리는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홍 소장은 사회와 환경을 포용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도넛경제학>의 경제 모델이 가진 의미를 짚어보고,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제시한다. 슈테판 아우어 주한독일대사는 유럽 정치권에서 약진하는 녹색당 사례를 통해 녹색포용사회를 위한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과제를 발표한다. 녹색당은 지난해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유럽 정치권에서 많은 득표를 하며 주요 정당으로 약진하고 있다. 슈테판 아우어 대사는 생태주의 가치와 소수자·난민 포용 등 인권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녹색당의 활동을 소개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이를 뒷받침한 유럽의 정치제도가 한 역할을 통해 녹색포용사회와 정치제도의 연계성에 대해 논의한다.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녹색 전환의 개념과 전략을 설명하고, 세부 이행과제를 제시한다. 녹색 전환은 성장 중심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지구 환경을 교란한 현실을 인식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경제적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삶을 추구하자는 개념이다. 이 소장은 최근 불평등, 양극화 심화, 기후위기 대응 미흡 등 한국이 처한 현실의 해답은 녹색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며, 경제·사회·환경 분야별 이행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적 논의를 해나가자고 제안한다. 그는 아울러 미국 민주당 경선 주자들이 제안하는 그린뉴딜 정책을 예로 들어, 국내에서도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자 일자리 창출 대안으로서 한국형 그린뉴딜 모델을 설계하고 추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밖에도 사회 분야에서는 공유자원에서 발생한 이익을 기본소득과 같은 제도를 통해 전 사회가 공유하는 방안 등을 함께 제안할 예정이다. 토론자로는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문태훈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장, 김해창 경성대 교수(환경공학)가 나서며, 최병두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이 좌장을 맡는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33.html

지속가능한 미래를 밝히는 소수자의 하모니

[2019 아시아미래포럼] 한빛 예술단오후의 화음유엔, “지속가능한 비전 찾는데 장애인 참여 중요”음악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구실이아름 보컬, 15분간 눈 감아야 보이는 음악 선사한빛예술단 모던팝밴드 블루오션의 보컬 이아름씨. 한빛예술단 제공소리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시각장애로 앞을 볼 수 없지만 음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한빛예술단원들이 그들이다. 시각장애인 40여명으로 꾸려진 한빛예술단은 2003년 창단된 뒤 해마다 국내외에서 120여회의 공연을 해왔다.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개막식·폐막식 무대에도 오르는 등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예술단은 오케스트라를 넘어 앙상블, 중창단, 모던팝밴드 등 다양한 구성으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단원들은 악보를 볼 수 없어 연주를 위해 악보를 통째로 외운다고 한다. 엄청난 노력과 소통, 배려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하모니다. 한빛예술단의 연주는 어쩌면 기적의 연속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장애와 발전에 관한 유엔 대표 보고서’(2018)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비전을 찾는 데 장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한빛예술단의 구실이 중요한 이유다. 한빛예술단 모던팝밴드 블루오션의 보컬 이아름(29)씨가 23일 아시아미래포럼 오전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서 약 15분간 눈을 감아야 보이는 음악을 들려준다. 이씨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케이 시즌4>에 참가하고,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객원가수로도 활동했다. 신은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unjae.shi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1.html

‘세대비관론’ 번진 불평등 앓이 …정치로 균형 잡기

【2019 아시아미래포럼】 경제·사회·환경의 균형 안에서피어나는 삶을 위한 상상력특별세션노동자 소득·고용의 양극화 심화환경 파괴로 일자리 증발 위기기득권층에 포섭된 정부 신뢰도 하락국가 간 협력도 안돼 정책 전환 더뎌의사결정 민주화·참여 예산 증액과지대추구 방지·노동 환경 구축 시급스웨덴의 16살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는 최근 위기 신호들에도 오직 성장만을 추구하는 기성세대와 각 나라 정부 지도자를 향해 직설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새로운 경제·사회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가 동의하지만 실제 변화는 더딘 이유는 뭘까. 경제·사회·환경의 균형 속에서 ‘피어나는 삶’이 가능한 날은 과연 언제쯤 올까. <한겨레> 자료 이미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인구 증가와 환경 파괴, 도시화와 불평등의 확대…. 20세기 유산 속에서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시스템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지만 실제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세계 각국은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성장 경쟁과 ‘우상향하는 성장의 그래프’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의 확대와 기후변화의 심화, 변화하는 산업구조 속에서 많은 나라가 청년실업 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데도 사회·경제적 패러다임 전환은 왜 찾아보기 힘들까?포럼 첫날 오후의 특별 세션 ‘경제·사회·환경의 균형 안에서 피어나는 삶을 위한 상상력’에서는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레토릭(수사) 넘어: 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경제, 사회, 환경적 전환의 진전은 느려졌는가’라는 발제문을 통해 최근 더욱 심화한 구조적 문제들의 현황을 들여다보고, 그 원인과 탈출구를 조심스레 모색한다.우선 현실. 21세기는 또 다른 ‘자본의 시대’다. 글로벌 국내총생산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은 2004년 53.7%에서 2017년 51.4%로 줄어들었다. 노동 안에서 편중도 심화했다. 국제노동기구 추정자료(2019)를 보면, 전세계 노동자(급여소득자) 상위 10%는 전체 임금의 48.9%를 받아갔지만 하위 50%의 몫은 6.4%에 그쳤다. 선진국 클럽이랄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 고용률은 1990년 65%에서 2017년 70%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노동시장 양극화에 따라 ‘중간층’은 크게 줄었다. 또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비공식 고용이 크게 늘었다. 지속가능 분야는 어떤가. 유엔은 ‘일자리를 위한 기후행동’(2019.9) 보고서에서 녹색경제로의 전환이 일자리 수백만개를 창출하고, 열 스트레스(기후변화로 인한 온도상승) 증가로 일자리 8천만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를 반영하듯 북미와 유럽 등을 중심으로 ‘세대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의 아이들이 자라서 경제적으로 부모세대보다 어떨까’라는 질문에, 미국에서는 ‘나빠질 것’이란 답이 58%로 ‘나아질 것’(37%)이란 답을 압도했다. 캐나다에서는 그 차이가 69%-24%로 더 벌어졌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에서도 ‘나빠질 것’이란 답변은 70%를 오르내렸지만, ‘나아질 것’이란 답은 20%대에 턱걸이했다. 프랑스에서는 ‘나아질 것’이라는 답변 비율이 9%에 그쳤다. 위기는 고조되는데 정책 전환은 왜 지지부진한 것일까. 이상헌 국장은 두 가지를 지목한다. 먼저 불평등에 맞설 법적 개입이나 정치적 결정을 끌어낼 도시 저소득층의 정치적 영향력 축소, 그리고 문제 해결 주체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그것이다. 실제 세계 각국에서 기득권층에 포섭돼 지대 추구나 독점을 용인하는 정부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있다. 다자주의가 퇴조하면서 세계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 간 협력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최근 지적한,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인 ‘브라만 좌파’와 수입·재산이 많은 ‘상인 우파’ 사이 대결로 변질된 정치의 장에서 덜 가진 다수가 소외되는 ‘새로운 현실’도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그럼 어떻게 해답을 찾을까?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그 해결은 단순한 것일 수 있다. 우선 사회적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정치에서 ‘균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 능력과 목소리를 끌어내는 것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의사결정의 ‘민주화’ 및 ‘참여’ 예산을 대폭 늘리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금융·부동산 시장 등에서 지대 추구를 막기 위한 정교한 제도 설계,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노동환경 구축도 시급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좌장으로 세션을 이끌어가며, 세계적인 도시사회학자인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와 노나카 도모요 로마클럽 집행위원이 토론자로 참여해 전 지구적 불평등 해소 방안의 중요성, 지속가능한 경영과 기업 경쟁력 강화 등에 대해 논의한다. 서울 성수동에 소셜벤처를 위한 공동공간 헤이그라운드를 연 정경선 루트임팩트 최고상상책임자(CIO)와 정원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장(서울 성동구청장)도 각종 사회문제 해결을 끌어낸 사회혁신 사례, 도시 안 격차문제 해결 등에 관한 제언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20.html

기후위기로 비틀린 도시, ‘열린 시스템’이 더욱 절실한 이유

[2019 아시아미래포럼] 기후변화와 도시의 정치·사회적 영향기조강연: 리처드 세넷 런던정경대 명예교수기후변화가 부른 도시의 무질서적응과 개방적 자세 필요‘어떻게 협치를 끌어낼 것인가’도시가 직면한 사회·정치적 과제기후변화에 따라 날로 그 규모와 강도가 커지고 있는 풍수해는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해 갈 지 고민하게 한다. 사진은 지난 9월 허리케인 도리안이 엄습했을 때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의 프리포트에서 한 소녀가 강아지와 함께 구조되는 모습. AP/ 연합리처드 세넷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는 ‘석학’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르네상스형 학자이다. “하도 사통팔달해서 어떤 모임에서든 다른 참석자를 모두 합쳐도 그의 박식함을 따라가기 힘들다.” <제3의 길>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가 세넷을 평가한 말이다. 사회학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음악, 예술, 역사, 문학, 정치, 경제 등에 두루 조예가 깊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 <장인>, <투게더>,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등이 다루는 주제만 봐도 그의 생각의 폭과 깊이를 알 수 있다. <겁 없이 울어댄 개구리>를 포함해 소설책도 세 권 냈다. 세넷은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23일 오전 기조 연사로 무대에 올라 ‘기후변화와 도시의 정치·사회적 영향’을 주제로 강연한다. 76살 노학자가 한국 청중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다. 그는 <한겨레>에 보낸 이메일에서 “기후변화는 오늘날의 도시가 직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라며 “이런 환경적 도전이 도시 내부의 사회·정치적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얘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회학자로서 세넷은 도시를 건설하는 방법과 그 속에서 주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연결하는 연구를 좋아했다. 바둑판 모양의 도로, 수직으로 올라간 빌딩 등 직선의 도시에서 ‘굽은 나무’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넷은 ‘빌’(Ville)과 ‘시테’(Cit?)라는 개념 틀로 이를 분석하고 설명한다. ‘빌’은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이며, ‘시테’는 그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거주하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엉성하게 설계된 뉴욕의 어느 터널에서 빚어지는 차량 정체는 ‘빌’의 문제이지만, 수많은 뉴욕시민이 아침부터 일어나 터널을 지나 달려야 하는 무한경쟁은 ‘시테’의 문제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돼 출간될 예정인 그의 책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김영사)에서도 이런 틀로 도시를 들여다본다. 세넷이 보기에 ‘빌’과 ‘시테’는 비대칭이어서 고통스럽다. 예를 들어, 서울역 새 청사를 아무리 현대적으로 만들어도 노숙인은 저녁이면 여전히 골판지로 텐트를 친다. 그래서 세넷은 ‘열린 도시’(Open City)의 미덕을 강조한다. 이는 복잡성, 모호성 그리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칸트가 말한 “인간이란 ‘비틀린 재목’으로는 곧은 물건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는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시는 “수십개의 언어를 쓰는 다양한 성분의 이민자로 가득하기에” 또 “그 속의 불평등이 너무나 확연하기에” 비틀려 있다. 도시를 바라보는 세넷의 이런 접근법은 그가 1970년대에 쓴 <무질서의 효용>(다시.봄)에서부터 일관된 흐름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질서정연하지만 단조로운 삶을 살 것인가, 무질서하지만 생기있는 삶을 살 것인가”라고 물으며 “다양성과 창조적인 무질서를 구성원 스스로가 통합해 가는 도시,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시련과 도전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한다.리처드 세넷. <한겨레> 자료사진 세넷에게는 기후변화도 도시의 비틀림 가운데 하나이다. 그 격동과 불확실성은 어느 도시에서든 파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2014년 10월9일치)에 한 기고에서 세넷은 2012년 10월 말 자메이카와 쿠바,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해 해변은 물론 내륙에도 큰 타격을 준 대형 허리케인 샌디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샌디는 폭풍의 강도나 영향이 미친 범위에서 그 앞의 어떤 허리케인보다 무시무시했다. 언론은 기후변화가 몰고 온 재앙이라고 보도했다. 폭풍이 지난 뒤 바닷가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나기보다는 재건을 원했다. 지역사회도 이를 위해 벽을 세우고 둑을 쌓는 비용을 낼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디자인을 통한 재건’(Rebuild by Design)이란 프로그램이 내린 과학적 결론은 이런 대응책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일부 지역은 급속도로 해체되고, 주민은 흩어지며, 어떤 곳은 버려진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세넷은 이를 ‘완화’(mitigation)와 ‘적응’(adaptation)의 차이라 규정한다. 둑을 쌓아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재건이 도시를 계속 유지하려는 ‘완화’ 전략이라면, ‘적응’ 전략은 도시의 많은 것을 해체하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의 ‘적응’은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힘 때문에 도시 형태의 통일성이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후위기는 근대 이후 인간이 자연을 대한 방식인 ‘통제’(control)를 까다롭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함”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의 변덕은 우리에게 미래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열린 시스템”의 논리다. ‘적응’하기 위해 도시는 더는 정연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볼 때 ‘완화’와 ‘적응’의 차이는 한 도시가 토론과 투표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과, 자연의 힘에 순응해 정책을 정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다. 그는 “자연은 비민주적이다. 투표와 포용은 기후변화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며 “집단의지는 적응 전략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세넷은 기후변화가 불러온 도시의 무질서를 인정하고 적응해 가되 좀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삶이 가능하도록 ‘협치’(governance)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지가 도시가 직면한 사회적·정치적 과제이다. 세넷은 “일부 지역은 물을 제한 급수하는 법을 제정하고, 홍수에 노출된 일부 지역을 포기하는 전략을 세우며, 더는 석탄을 태워서 발전할 수 없으므로 전기를 제한 송전할 수도 있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오래된 습관을 고치는 걸 미룰수록 문제는 더 악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넷은 1943년 1월1일 미국 시카고에서 공산주의자 아버지와 노동운동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세넷은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태어나고 몇 달 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그곳에서 만난 여전사와 사랑에 빠져 모자를 두고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생활보장 대상자로 흑인 빈민, 전쟁 부상자들과 함께 공동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매카시즘이 극성을 부리던 당시, 좌파 아버지를 둔 그의 가족은 감시 대상이었다. 20대에는 미국 신좌파 운동에 참여했으나 이 운동이 반지성주의로 치닫는 데 실망해 한때 우파로 전향했다 돌아오기도 했다. 세넷은 13살에 첼로 연주회를 열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19살 무렵 첼리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다. 손목뼈에 난치병이 생겨 더는 활을 당길 수 없게 돼서였다.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세넷에게 하버드대 한 사회학 교수가 입학을 제안하면서 사회학도로서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1960년대에는 한나 아렌트에게 배우기도 했다. 첼리스트를 꿈꾸었던 사회학자 세넷은 활 대신 펜을 쥐고 <장인>(21세기 북스)이란 책을 써 내려간다. 인류 문명을 직조해왔으나 이제는 잊히고 있는 ‘생각하는 손’을 다룬 이 책은 헤겔상, 스피노자상을 수상한 세넷의 대표작이 됐다. 이후 세넷은 여러번 팔목 수술을 받은 덕에 다시 첼로를 켤 수 있게 됐고, 가끔 동호인들과 연주를 즐긴다고 한다. △리처드 세넷 1943년 미국 시카고에서 출생 하버드대 미국문명사 박사 뉴욕대 인문학 교수 현 런던정경대(LSE) 사회학 명예교수 현 유엔 도시와 기후변화 프로젝트 선임자문관 주요 저서: <무질서의 효용>, <살과 돌>,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불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뉴 캐피털리즘>, <장인>, <투게더>,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17.html

환경 위협에 더 취약한 빈곤층, 이대로 둘 건가

[2019 아시아미래포럼] 환경 위기와 건강 불평등기조강연: 마르코 마르투치 세계보건기구 아·태 환경보건센터장유럽 기후변화 요인 사망자 보니소득 상하위 위험률 격차 ‘5배’환경·건강 불평등 구조 파악 시급국가 아우른 세계적 조치 필요석탄화력발전소 등이 유발한 미세먼지가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진 날 서울 반포한강시민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뿌옇게 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화석연료는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환경 시민단체 활동가의 구호가 아니다. 지난해 8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유엔기후협약회의(COP24)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과 기후변화’ 특별보고서를 발표하며 서두에 올린 말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일찍이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관련된 연구와 국제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노력을 해왔다. 1991년 독일에 설립된 유럽 환경보건센터를 시작으로 대륙별로 연구센터를 설립해 구체적인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 나가고 있다. 올해 서울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세계보건기구 산하 아시아태평양 환경보건센터가 설립됐다. 아태 환경보건센터장을 맡은 마르코 마르투치 박사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이십년 넘게 환경문제와 건강의 관계를 연구해온 질병 역학 전문가다. 23일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연사로 나서 ‘기후변화가 인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강연한다. 그는 유럽 환경보건센터에서 유럽 전역의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건강과의 연계성을 분석하는 작업을 주도해왔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매립지, 해양오염 등 환경 분야별 데이터를 정량화하고 분석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매일 아침 확인하는 미세먼지 예보 기준도 이 프로젝트에서 처음 제시됐다. 마르투치 박사는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각국 정부는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얼마나, 어떤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며 “국가·지역별로 기후위기와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를 정량화하고 평가·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마르투치 센터장의 최근 연구 주제는 기후변화와 건강 불평등의 문제로 넓혀지고 있다. 그는 저소득 계층이 기후변화 등 환경 위협에 더 취약하다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공동연구에 참여해 올해 6월 나온 ‘유럽의 환경 건강 불평등’ 보고서의 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유럽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요인으로 숨진 사람들을 분석해보니 소득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보다 사망 위험이 5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마르투치 센터장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계층이 오히려 더 많은 건강 위협에 놓인 ‘환경 불평등’의 대표적 사례”라며 “기후변화에 취약한 집단을 찾아내는 등 환경 불평등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 불평등은 국가 안에서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로 생존의 위험에 처한 남태평양 제도 국가들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9월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에게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정지원 등 국제적 협력을 요청했다. 마르투치 센터장도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과 건강 불평등은 지역과 정부, 국가 등 전 지구적 단계에서 조치를 취해야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며 국내외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강조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13.html

‘축출의 현장’ 글로벌 대도시에서 연대와 재생 동력 찾아야

[2019 아시아미래포럼] 왜 지구적 불평등 해소에서 출말해야 하나기조강연: 사스키아 사센 컬럼비아대 석좌교수20%엔 달콤하나 80%엔 쓰디쓴대도시의 불평등 임계치 넘어서새계경제 연결망 갖춘 다양성은‘다른 얼굴의 도시’ 만들 자양분사스키아 사센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2014년에 나온 최근작 <축출 자본주의>에서 21세기 세계화와 도시, 불평등을 연결하는 분석틀을 발전시켰다. 사진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도시를 열쇳말 삼아 세계화와 불평등 문제에 오래도록 매달려온 진보 성향의 대표적인 도시사회학자다. 올해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오후 기조강연 세션에서 ‘왜 지구적 불평등 해소에서 출발해야 하나’를 주제로 연단에 선다. 그는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도시와 이민, 국가 등의 주제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련을 맺는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의 남다른 생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47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사센은 가족을 따라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등지를 옮겨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폭넓은 시야, 도시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 이민과 불평등에 대한 원초적 탐구열 등은 다양한 지역을 두루 경험한 독특한 성장 환경에서 싹텄다. 게다가 사센은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를 비롯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할뿐더러 러시아어와 일본어까지 습득했다. 여러모로 글로벌 도시 연구의 대가다운 풍모다. 1994년 초판이 나온 <세계경제와 도시>(국내 번역서는 2016년 출간)는 대표작으로 꼽힌다.글로벌 도시의 현실을 불평등과 연결지으려는 사센의 학문적 노력은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국경을 넘나드는 서구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세계화의 장밋빛 환상이 널리 퍼지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가 어려서부터 체험하고 지켜본 글로벌 대도시의 현실은 ‘국경 없는 세계’라거나 ‘세계는 평평하다’ 따위의 장밋빛 담론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지구적 차원에서 확대되는 불평등은 여러 나라의 주요 대도시 안에서도 계층 간 격차의 골을 더욱 깊게 패게 했다. 거대 기업과 금융부문 주도로 이뤄지는 세계화, 그리고 그와 연관된 도시개발이 아닌 대안적 도시 발전 모델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커졌다.이러한 사센의 문제의식은 특히 2014년에 나온 최근작 <축출 자본주의>(국내 번역서는 2016년 출간)에서 한 단계 발전된 형태로 드러나 있다. ‘축출’(expulsion)은 그가 21세기 세계화와 도시, 그리고 불평등을 연결하는 핵심 개념이다. 그는 ‘복잡한 세계경제가 낳은 잔혹한 현실’이란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지구적 차원의 근대성은 결국 모든 종류의 체계적 축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독특한 명제를 한층 발전시켰다. 거대 글로벌 기업 주도로 세계 곳곳의 광물자원과 수자원 등이 무한정 파헤쳐지지만, 그 혜택은 안락한 삶을 누리는 글로벌 대도시의 소수 계층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뿐이다. 이 과정에서 대도시 내부의 계층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은 물론, 멀리 떨어진 지구촌 곳곳의 전통적 삶의 방식이 파괴되어 간다. 축출은 자연과 환경을 넘어 대다수 도시민의 삶을 공격하는 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미래세대와 이주노동자 역시 축출의 광풍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사스키아 사센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사센 교수는 이번 포럼 기조강연을 통해 이런 세상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한국 독자들에게 전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우선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세대를 중심으로 지금 같은 삶에 대해 ‘아니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한편 대부분의 선진국 대도시 안에서도 불평등이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지구촌을 넘나드는 금융자본에 휘둘리는 부동산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눈여겨볼 것을 주문한다. 여러 나라의 대도시에서 삶의 거처인 집이 단지 투자와 자산 증식의 대상으로 탈바꿈하면서 고작 상위 20% 계층만이 달콤한 열매를 누리고 있다. 나머지 80%를 배제하는 이런 얼굴의 세계화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센의 관심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성하기’로 확대된다. 도시란 분명 축출의 현장이지만, 동시에 연대와 재생의 터전이다. 세계화에서 건져내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도 하다. 세계경제의 연결망에 깊숙이 포섭된 글로벌 대도시에서부터 외려 변화의 싹은 커나갈 수 있다. 세계적으로 몰아치는 경제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광풍에 맞서 ‘다른 얼굴의’ 도시를 만들어낼 동력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글로벌 대도시만의 다양성은 도시재생의 또다른 자양분이다. 이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그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할 메시지에 유독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사스키아 사센 1947년 네덜란드에서 출생.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성장 노터데임대 사회학 석·박사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 현 컬럼비아대 도시계획학 석좌교수 주요 저서: <노동과 자본의 모빌리티>, <글로벌 시티: 뉴욕·런던·도쿄>, <세계경제와 도시>, <축출 자본주의> 등 다수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12.html

패권각축 동아시아, 지속가능한 평화 찾자

[2019 아시아미래포럼]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기획세션신도 에이이치“세계 질서의 축, 아시아로 이동”사회·경제적 관계 ‘일대일로’ 중심빈곤 해소 등 ‘신뢰의 질서’ 강조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참여 요구왕후이“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새 기점”복합적 요소 작용 갈등 해법으로‘전면적 평화’ 추진 동력 한국 주목중국의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4월27일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하는 원탁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37개국과 국제기구 지도자 40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동아시아가 심상치 않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계속되고,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보복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중국과 홍콩 사이의 범죄인 인도 조례인 ‘송환법’에서 시작된 홍콩 시위는 복면금지법 철회,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등 동아시아 곳곳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70년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의 패권 경쟁의 장이었다. 과거사를 지우고 다시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는 일본, 일본과 역사 갈등을 겪고 미국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폭발적인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의 일인자로 우뚝 선 중국, 그리고 두 나라에 대한 전략을 수정해가며 동아시아를 영향력 아래 두려는 미국, 북한 핵폐기 등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국. 이렇듯 오랜 시간 갈등과 긴장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동아시아 나라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새로운 평화의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23일 오후 신도 에이이치 일본 쓰쿠바대 명예교수와 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인문학부)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라는 주제로 대담을 한다.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신도 교수는 미국 외교, 아시아지역 통합, 국제정치경제학 전문가로 현재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대표, ‘일대일로’ 일본연구센터 센터장도 맡고 있다. 신도 교수는 1979년 ‘미국이 일본 본토 점령을 끝낸 뒤에도 오키나와에 대한 군사점령을 계속해주기를 희망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히로히토 일왕의 메시지를 발굴한 논문 ‘분할된 영토’를 잡지 <세카이>에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논문이 ‘천황’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어, 성역 없이 연구하는 신도 교수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신도 교수는 최근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끝났고, 세계의 축이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일대일로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처음 제기한 구상으로 고대 실크로드처럼 내륙과 해양에 다양한 길을 만들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신도 교수는 ‘일대일로’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군사적 동맹이 아닌 사회·경제적 관계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 빈곤을 해소하고 테러 가능성을 낮추며,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한국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도 교수와 대담할 왕후이 교수는 중국 ‘신좌파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로, 시진핑 정부 국정철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신좌파는 낡은 형태의 사회주의에 반대하지만, 중국 정부가 충분히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왕 교수는 서구 세계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중국 및 동아시아의 경험과 독자성에 주목하고 있다. 왕 교수는 동아시아의 갈등이 냉전, 탈냉전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홍콩, 대만 문제에 대해 왕 교수는 최근 발표한 글에서 “중국 대륙 쪽에서 더 공평하고, 더 융합적이며 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람들에게 창조적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발전 경로를 개발하지 못한다면 무거운 역사의 부담을 뚫고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의 변화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왕 교수는 “지난해 한반도는 평화로 전환하는 하나의 계기를 얻었다. 이는 동아시아의 전면적 평화를 추진하는 새로운 기점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세계든, 지역이든 모두 순식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갖가지 힘을 동원해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일본, 한국, 북한, 러시아 등이 새로운 지역 협력을 시작해, 현재 미국 패권이 주도하는 질서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포럼은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지역학협동과정)가 좌장을 맡고, 문태훈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이 토론자로 참석한다. 문 위원장은 평화 유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연결고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펼칠 예정이다. △신도 에이이치 1939년 일본 홋카이도 출생 교토대 법학부 졸업 쓰쿠바대 교수, 와세다대 아시아연구기구 객원교수 현 쓰쿠바대 명예교수, 국제아시아공동체학회 대표, ‘일대일로’ 일본연구센터 센터장 미국 외교, 국제정치경제학, 아시아지역 통합 등 전문가 주요 저서: <현대미국 외교론―우드로 윌슨 국제질서> <분할된 영토, 또 하나의 전후사> <동아시아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까> <일대일로에서 유라시아 신세기의 길> △왕후이 1959년 중국 장쑤성 양저우 출생 베이징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 중국사화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 하버드대 방문교수 현 칭화대 교수 겸 인문사회고등연구소장 주요 저서: <근대 중국 사상의 흥기> <탈정치화의 정치: 짧은 20세기의 종결과 90년대> <절망에 반항하라> <상상하는 아시아의 정치>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10.html

대위기의 시대, 공존해야 생존한다

[2019 아시아미래포럼] 대전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합의기획 취지재난영화 방불케 하는 기후변화극단적으로 치닫는 불평등 사회이대로라면 ‘파국의 시대’ 불가피각국 정부·기업·시민사회 협력해난제 극복 ‘합의의 시대’ 써나가야디지털 기술이 바꿀 ‘삶의 질’부터녹색전환·포용금융·공동체 경제 등석학들과 ‘지속가능한 미래’ 설계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산업혁명 이후 근대 세계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의 3부작으로 정리한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노년에 현대사를 기술한 책을 추가하면서 <극단의 시대>라 이름 붙였다. 새 천년을 앞둔 시점에서 책을 마무리한 그는 “20세기는 아무도 해결책을 갖지 못한 문제를 남기는 것으로 끝났다”며 “과거나 현재를 연장함으로써 (…) 세번째 천년기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시 100년이 지나 2100년 언저리에서 홉스봄 같은 사학자가 새 밀레니얼의 첫 100년을 정리한다면 그 책 제목은 무엇일까? 첫째는 ‘파국의 시대’라 지을 가능성이다. 21세기는 불평등 같은 경제·사회 위기와 기후변화라는 생태·환경 위기를 안고 출발했으나, 인류는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으로 치달았다. 생산과 소비를 무한히 반복해야 돌아가는 ‘외발자전거 경제’는 그 앞 세기와 달라진 게 없었고,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만 갔다. 대기는 빠르게 더워졌다. 시베리아 동토가 녹으며 메탄가스가 치솟기 시작했고 기후변화는 손쓸 수 없이 가속됐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층, 알프스 등의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이 빠르게 올라가 뉴욕, 상하이, 도쿄 같은 바닷가 인구밀집 도시는 살기 어려운 곳이 됐다. 홍수와 가뭄, 식량부족, 대기오염, 창궐하는 전염병, ‘1 대 99’를 넘어 악화하는 불평등 등으로 사회계급, 계층 간 아귀다툼은 심해졌다. 기후변화로 뉴욕 한복판이 얼어붙는 영화 <투모로우>, 경제·사회·환경적 위기가 극단화한 상황을 묘사한 <설국열차>의 내용이 현실이 됐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사람들은 수만년 인류 역사를 400여년 만에 파국에 이르게 한 자신의 몽매함을 한탄한다.두번째는 ‘합의의 시대’라는 제목이 붙는 것이다. 이 책에서 21세기는 세계가 협력해서 난제를 극복한 시대로 규정될 것이다. 많은 것이 극단으로 치닫던 앞 세기와 달리 생명을 주는 지구의 한계 안에서 생산과 분배 방식을 재설계하면서 모두의 ‘피어나는 삶’이 가능해졌다. 2015년 유엔에서 환경과 경제, 사회 분야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며 193개국이 합의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출발점이었다. 이후 여러 나라는 실정에 맞는 실천 로드맵을 만들어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협력해 실천해갔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2015년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 및 권위 있는 기상학자들의 모임인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경고와 제안이 가이드라인이 됐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파리협약을 탈퇴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기후의 변화는 부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2019년 가을 유엔 무대에 서서 “대규모 멸종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의 절규는 큰 울림을 줬다. 이후 청소년 결석시위와 시민사회의 비상행동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어졌고, 기후변화 대응은 여러 나라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현대사회의 주요한 주체인 기업은 맹목적 이윤추구에서 벗어나 사회와 환경,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함께 고려하는 경영을 하겠다고 2019년 여름 선언했다. 환경과 사회 위기의 요인으로 지목되던 극단의 시장주의는 점점 발붙이기 어려워졌다.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 거대기업이 앞장서 석탄·가스와 같은 온실가스 전기를 버리고 태양광·풍력을 100% 쓰는 에너지전환을 이뤄갔다. 무엇보다 각국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에 이르겠다는 약속을 실천한 결과, 지구 기온은 과학자들이 경고한 수준인 산업화 이후 상승폭 1.5도 직전에서 겨우 멈췄다. 모든 사람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하는 경제와 사회 체제의 밑돌이 놓이며 불평등도 차츰 완화되어갔다. 인류를 점점 압박하는 위기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고 있다. ‘일의 미래’ ‘불평등 극복’ 등 한국 사회의 의제를 한발 앞서 제시해온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이 10회째를 맞는 올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한다. ‘대전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합의’를 주제로 세계가 직면한 경제·사회적 위기와 생태·환경 위기 앞에서 여러 사회 주체와 나라들이 어떤 합의를 해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특별 영상강연을 통해 디지털 및 자동화 기술 발달이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노동 및 도시 연구의 석학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기후변화가 도시의 삶에 어떤 정치·사회적 영향을 끼치는지 집중 조명한다. 도시사회학의 거장 사스키아 사센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세계화된 도시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의 문제를 다룬다. 첫날과 둘째 날의 다양한 세션을 통해 한국 사회의 녹색전환, 포용 금융, 도시의 공동체 경제 등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를 조망한다. 이와 함께 한반도 주변 정세가 구한말을 연상케 하는 격변의 시기라는 점에서 중국의 왕후이 칭화대 교수, 일본의 신도 에이이치 쓰쿠바대 명예교수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913509.html

“중국은 더 공평하고, 더 융합적인 발전 경로를 찾아야 한다”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④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 사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제공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확전을 멈추고 1단계 ‘스몰딜’(부분 합의)에 이르렀으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나 마찬가지다. 중국과 홍콩 사이의 범죄인 인도 조례인 ‘송환법’에서 시작된 홍콩 시위는 복면금지법 철회,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중국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갈등과 긴장을 완화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인문학부)는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이달 23일 오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라는 주제로 신도 에이이치 일본 쓰쿠바대 명예교수와 특별대담을 한다. 왕 교수는 한국에 여러번 방문해 강연을 하는 등 우리에겐 친숙한 학자다. 중국 ‘신좌파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로, 시진핑 정부 국정철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신좌파는 낡은 형태의 사회주의에 반대하지만, 중국 정부가 충분히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동아시아 갈등의 원인을 짚고 평화와 화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할 예정이다. 왕 교수는 동아시아의 갈등이 냉전, 탈냉전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눈앞에 닥친 홍콩, 대만 문제만 해도 식민주의, 냉전 등 역사의 유산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 왕 교수는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사이의 곤경은 역사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당대 신자유주의 조건하에서 불평등한 발전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더 공평하고, 더 융합적이고, 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생태보호에 더 유리하고, 사람들에게 창조적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발전 경로를 개발하지 못하면, 무거운 역사적 부담을 뚫고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 송환법, 복면금지법 등에 반발하며 저항하고 있는 홍콩의 경우 그 이면에 중국이 홍콩민의 민심을 존중하지 않고 점점 더 강압적으로 변한 데 대한 분노와 공포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1997년 홍콩 반환 협정에 따라 2047년까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로 홍콩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도 중국의 패권 전략이자, 사업에 참여한 개발도상국이 막대한 건설 비용으로 ‘부채의 덫’에 빠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대일로는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처음 제기한 구상으로 고대 실크로드처럼 내륙과 해양에 다양한 길을 만들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왕 교수는 “일대일로는 참가국의 주권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경제와 무역뿐 아니라 교육, 문화, 인도주의 측면을 중시하는 세계화 이니셔티브”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이상은 훌륭한데 아직은 경제가 지배적인 추진력이 되고 있다”고 우려 섞인 시선을 드러냈다. 왕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의 평화 체제에도 상당히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한반도는 극히 위험한 군사대치 상황에서 평화로 전환하는 하나의 계기를 얻었다. 이 계기는 아마 동북아의 전면적 평화를 추진하는 새로운 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세계든, 지역이든 모두 순식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갖가지 힘을 동원해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일본, 한국, 북한, 러시아 등이 새로운 지역 협력을 시작해, 현재 미국 패권이 주도하는 질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왕후이 약력 1959년 중국 장쑤성 양저우에서 출생 베이징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 중국사화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 하버드대 방문교수 현 칭화대 교수 겸 인문사회고등연구소장 주요 저서: <근대 중국 사상의 흥기> <탈정치화의 정치: 짧은 20세기의 종결과 90년대> <절망에 반항하라> <상상하는 아시아의 정치>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3508.html

“기후변화 대응위해 불확실성 포용하는 ‘열린 도시’로 가야”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② 리처드 세넷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리처드 세넷 <한겨레> 자료사진리처드 세넷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는 국내에 꽤 많은 저서가 번역됐고, 꾸준히 읽히는 학자다. 좀처럼 강연으로 만나기 힘들었던

 

 

 

조명래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 선언’ 이끌어내겠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인터뷰온실가스 목표치도 절대량으로 전환“녹색전환은 선진국으로의 이행 의미환경가치 근본 변화시킬 정책 펴겠다”“(관행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는 한 (온실가스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 전환 비용에 대한 국민의 부담과 수용이 따라야 하지만, 현재 우리 국민의 수용성은 상당히 약하다. 예로 탈원전 정책은 전형적인 패러다임 전환이지만 저항이 많았고, 최근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결정(환경부의 ‘부동의’)도 여러 반대에 직면하지 않았나. 관성화된 우리 사회의 개발주의하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온실가스 감축을 수용할 수 있겠나. 타협할 수밖에, 점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틈새를 찾아 전환과 변화의 실마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환경부 역할이라 생각한다.”조명래 환경부 장관. 환경부 제공 ―파리협약 체제가 출범하는 2021년 이후를 준비하는 올해와 내년이 중요 기점이다. 한국도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 일본 3분의 1”―우리 시민들은 아직 녹색전환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최근 제철소가 고로 정비 과정에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해 문제가 됐던 것도 같은 맥락의 사례 같다.“규범과 잣대가 없던 것인데 논란 이후 기준이 도입됐다. 이후론 더 정교하게, 환경적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다. 환경도 좋아지고 근본적으로는 생산자들이 외부 영향을 줄이는 방식으로 공정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대기오염 같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됐다. 서구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스웨덴의 경우 철강 생산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공정을 연구 중이더라. 그리되면 철강 제품의 질도 좋아지고 환경오염 물질도 배출하지 않고 종사자나 지역주민들 건강 문제도 없고 그만큼 경쟁력 있는 제품이 나온다. 국민소득이 많아지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린 그저 생산량만 따지지 제품의 질, 환경의 질에 대해선 기업들이 여전히 내부경제화(자신의 비용으로 떠안으려는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그러면 환경부는 녹색전환을 위해 어떤 정책 수단을 쓰고 있나?“대표적으론 통합허가제가 있다. 이전엔 수질, 대기 등을 다 나눠 각각 기준이 있고 그걸 맞추면 허가해왔는데 이걸 통합했다. 시스템적으로 갖춰야 달성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결국 생산 공정이나 제품, 경영의 친환경적 전환을 유도해내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이 제도에선 인허가 때 컨설팅도 해준다. 어떻게 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먼저 알려주고 유도한다. 통합허가제는 독일과 영국이 산업 녹색화의 주요 수단으로 쓴 제도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정부의 주요 공약인 ‘국토계획과 환경계획의 통합’도 환경을 존중하는 쪽으로 개발 행정을 바꾸는 수단이다. 전 정부에서 시작했으나, ‘배출권거래제’ 역시 산업 녹색화의 주요 수단이다.”조명래 환경부 장관. 환경부 제공“산업·국토부와 이견 줄어”―하지만 여전히 정부 전체적으로 녹색전환에 대한 의지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아직까진 환경가치가 정부 정책의 우선 가치가 아닌 게 사실인 것 같다. 개발 패러다임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 구체 정책으로 들어가면 환경정책은 여전히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와 협의해야 한다. 다만 정책의 지향 측면에선 분명 차이가 있다. 과거 정권보다 상대적으로 존중하고 있다. 산업부·국토부와의 ‘정책 미스매치(엇갈림)’나 이견도 과거에 견줘 상당히 줄었다 말할 수 있다.” 세종/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더 늦기 전에 GDP에서 삶의 질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제 10회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 ①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문명·경제·사회 근본변화 시점기존의 탄소 기반 시장경제디지털 네트워크 자본주의로”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지난 9월26일 미국 워싱턴 인근 베세즈다에서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특별강연 사전 녹화에 이어 이뤄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열정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양영웅 <뉴스데이> 기자지난 9월26일 오후 미국 워싱턴 인근의 도시, 베세즈다에서 만난 제러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이 뭐냐는 물음에 “나는 활동가”라고 답했다. 실제 그는 과학과 기술의 변화가 경제와 사회, 환경 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의 여러 현장에 적용하고 실험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 그는 이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문명, 경제,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역사상 이처럼 좁은 길은 없었지만 더는 지연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커뮤니케이션과 재생에너지, 그리고 운송 및 이동 등 디지털화한 세 기술의 융합에 따른 인프라 혁명이 절실하며, 이는 일자리 창출은 물론 한계비용이 낮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일으켜 궁극에는 공유경제와 협력적 공유사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주창해온 3차 산업혁명과 공유경제에 대한 비전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는 이런 움직임은 “인류를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로 (패러다임을) 이동”하게 하며 이 전환에 “한국이 리더가 될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오는 23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하는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영상 특별강연을 한다. 베세즈다 현지에서 이뤄진 이를 위한 사전 녹화 촬영에서 그는 인류가 겪고 있는 두 개의 핵심 위기인 생산성의 몰락과 불평등 증대 등 경제·사회적 위기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의 생태적 위협을 거듭 경고하는 한편, 구시대적인 탄소 문명과 성장지상주의 덫에 갇힌 시장 자본주의의 대전환을 다시금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소득 격차를 줄이고 글로벌 경제를 민주화하면서도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창출하는 탄소 후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경제비전으로의 대전환은 가능”하며, 이 전환은 “거래와 시장경제에 따른 기존의 시장 자본주의를 ‘디지털 네트워크 자본주의’로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 지금 인류는 불평등이란 경제·사회적 위기와 기후변화 같은 생태적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 두 위기는 어디서 오나? “인류가 구축해온 인프라를 보라. 그 특성을 보면 어떻게 힘이 (우리 사회에서) 분배되는지를 알 수 있다. 평등과 불평등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낼 수 있다. 1차와 2차에 걸쳐 이뤄진 산업혁명이 구축한 인프라는 비싼 화석연료 및 원자력의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기 위해 수직으로 통합해야 했다. 그리하여 결국 500개의 글로벌 회사들이 세계 6600만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이는 불평등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플랫폼, 이런 인프라는 정치적 권력이 분배되는 데서도 기회의 측면에서 제약을 준다.” 리프킨은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1~2차 산업혁명이 근대적 국민국가와 글로벌 시장을 낳았지만, 그 궤적을 보면 소수의 거대기업과 소수의 강대국이 화석연료를 확보하고 제품과 서비스 제공을 독점하는 등 모든 곳에서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이는 또한 각 나라의 무기화를 수반해 인류 사회를 대량파괴의 틀로 만들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탄소 문명이 오늘날 기후변화 등을 일으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를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탄소 후 시대’를 안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3차 산업혁명’이란 게 그동안 그의 핵심 주장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픽션이자 마케팅 도구일 뿐” “3차 산업혁명은 인프라가 분산되고 수평적으로 확장되도록 설계된다. 모든 사람이 블록체인 플랫폼 및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에너지 자원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서 태양과 바람으로 이동한다. 이는 평화로운 지구를 만든다. 태양은 어디에나 빛나고 바람은 어디에나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잉여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다. 이는 허구였던 ‘진보의 시대’에서 우리가 지구와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우는 ‘회복력과 적응의 시대’로 간다는 걸 의미한다.” ― 당신이 말하는 3차 산업혁명은 클라우스 슈바프가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4차 산업혁명과 어떻게 다른가? “4차 산업혁명은 없다. 이것은 픽션이다. 슈바프는 인프라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 펌프, 2차는 아날로그 전기, 3차는 디지털이다. 슈바프는 로봇공학, 인공지능 및 유전학이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고 보고 이를 혁명이라고 말했지만, 마케팅 도구였을 뿐이다. 세계경제포럼은 혼란을 일으켰다.” ― 당신은 기술변화의 미래가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낳고, 궁극엔 ‘협력적 공유사회’와 ‘공유경제’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너무 낙관적인 것 같다. “나는 낙관도 비관도 않는다. 희망적이다. 우리는 20만년 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에 있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기후변화를 가져오는) 탄소 기반 문명을 빠르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2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3차 산업혁명은 (기존) 경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운송 등의 (세가지) 디지털 기술이 사물인터넷 플랫폼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거래와 시장은 흐름(flow)과 네트워크로 움직이게 된다. 재산의 소유권에서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마침내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로 (패러다임이) 바뀐다. 이것이 공유경제다.” 리프킨은 이런 움직임을 ‘거래와 시장경제’에서 ‘디지털 네트워크 자본주의로의 이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이런 현상을 우리는 이미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수억명의 사람들이 음악을 공유하고, 유튜브로 비디오를 공유하고, 소셜 블로그를 통해 뉴스를 공유한다. 이 중 어느 것도 지디피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삶의 질을 높여준다.”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과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인터뷰를 마친 뒤 못다 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양영웅 <뉴스데이> 기자“한국이 변화를 이끄는 리더가 되기를 희망” 그는 특히 “공유경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 그것은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밀레니얼 세대와 제트(Z)세대가 향후 이 시스템을 사용할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무엇보다 “지금은 문명, 경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역사상 이처럼 좁은 길은 없었지만 더는 지연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야 한다”며 변화를 위한 청년의 직접 행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기후정상회의를 봤는가? 현실에서는 세계 지도자들이 그런 ‘좋은 선택’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다. 시민사회 및 종교단체, 학생(조직) 및 상공회의소, 노동조합 등은 재난 중에는 모인다. 기후변화 세계에서 모든 공동체는 항상 재난 모드에 있어야 한다. 커뮤니티 전체가 수행해야 한다.” ― 그래도 핵심은 정치가 작동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요즘 아이들은 지정학이 아닌 생물권 정치를 배운다. 그들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일상생활에서 하는 모든 일이 다른 인간, 다른 생물, 생태계 및 지구의 영역에 극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배운다. 이것이 희망이다. 우리는 앞으로 지구의 소리를 들어 미래 세대의 인간과 다른 생물들이 그들의 순간을 갖도록, 삶이 새로운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한국이 (이런 변화를 이끄는) 리더가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도 이제 생각을 빨리 바꾸어야 한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제러미 리프킨은 누구?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이자 경제사회 사상가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예측해온 미래학자이자 문명비평가. <엔트로피>(1980) 이래 논쟁적인 저서를 잇따라 펴내면서 탁월한 사상가이자 활동가로 추앙받지만 일부에선 선동가로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한다.1945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 출생. 1977년 비영리단체인 경제동향연구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1994년부터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지도자 및 기업들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단호함과 온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는 특히 비전과 서사(내러티브)를 강조한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 이후 저서를 내지 않았던 그는 최근인 지난 9월 미국 대선의 뜨거운 이슈인 ‘그린뉴딜’에 관한 책을 펴냈으며, 이 책의 국내판은 ‘글로벌 그린뉴딜’(민음사)이란 이름으로 내년 초 선보일 예정이다.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3030.html

‘은행 대신 지구를 구제하라’…“공공은행으로 ‘그린뉴딜’ 이끌어야”

2019 아시아미래포럼 - 지속가능한 미래를 말하다1부 ③ 금융패러다임 대전환 2008년 금융위기 뒤 양적완화미, 4조5천억달러 쏟아부었지만대부분 거대 민간은행 배만 불려사회 지속가능성 향상에 걸림돌미 대선 화두로 떠오른 ‘그린뉴딜’100% 재생에너지 사용 등 목표‘돈 전달경로 새판짜기’ 공감 커져정부 소유 공공은행 설립 힘 받아금융부문이 지속가능발전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려면 공공은행처럼 현행 방식과는 다른 ‘돈의 전달 경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화석연료 사용 금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화석 없는 캘리포니아’가 캘리포니아 공공은행 설립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화석 없는 캘리포니아’ 누리집 갈무리

“기후변화 비상상황 선포하라” 시민 5천명 대학로서 ‘기후위기’ 선언

그레타 툰베리 선언한 ‘글로벌 기후 파업’ 일환 자전거 타고 행진하고 사상 최초 ‘다이-인 퍼포먼스’도 21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혜화역 1번 출구. 경기도 화성에서 온 황혜진(13)양은 친구 4명과 태어나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했다. 황양은 한 달 전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의 영상을 봤다. 툰베리가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횡단한 뒤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기후 파업’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 연설을 담은 영상이었다. 황양은 “영상을 보고 툰베리도 내 또래인데 나도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구는 내가 살아가는 땅이고 지구가 없으면 내가 살 수 없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경민(18)양도 툰베리의 영상을 보고 장동규(18)군 등 48명의 성미산학교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나왔다. 이양은 툰베리의 영상을 보고 기후변화 문제는 개인의 행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양과 장군은 현장에서 향을 피우고 거울을 영정 사진 삼아 향 뒤에 둔 장례식 퍼포먼스를 했다. 장군은 “기후변화가 이어지면 우리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장례식 퍼포먼스를 준비했다”며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환경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당장도 당장이지만, 미래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 각계각층의 330개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이날 서울 대학로에서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를 열고 기후위기에 침묵하는 정부와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등을 비판하며 기후위기 진실 인정과 비상상황 선포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쪽 추산 5천명 정도 모였다. 참가자들은 ‘내일의 희망은 오늘 시작됩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등과 같은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기후 행동 집회는 부산과 대구, 경남 창원 등 전국 10개 지역에서 함께 열렸다. 이날 집회는 23일부터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두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들고일어난 ‘글로벌 기후 파업’의 일환이다. 툰베리의 설명을 보면, 지난 17일까지 전 세계 139개국에서 20~27일 기후 파업에 동참하기 위한 집회가 4638개 예정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전 세계적 집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규모 면에선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미국 <시엔엔>(CNN)이 보도했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도현(16)양은 단상에 올라 “우리나라가 공장을 짓고 석탄 화력발전소를 짓는 동안 남태평양의 섬나라는 물에 잠기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태풍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며 “저에게 편리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지구 반대편 어떤 이의 삶을 짓밟고 있다면, 저는 그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오연재(17)양도 “기후변화는 더 이상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라며 “모두가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어 청소년인 우리라도 방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청소년기후행동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금요일인 오는 27일 최대 5천명가량의 청소년이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서울 광화문에 모이는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가 한국에도 확산하는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4시30분께 혜화역 1번 출구에서 종각역으로 행진했는데, 행진 대열은 자전거 행렬이 앞장섰다. 자동차보다 친환경적인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의미다. 자전거 행렬 중에는 ‘불타는 지구를 지켜줘 출동! 지구특공대!’라고 적힌 망토를 두른 사람도 있었고, 기후위기 노래에 맞춰 각자 만들어 온 손팻말을 흔드는 이들도 있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행진하면서 “기후위기 이제그만”, “온실가스 이제그만”, “화력발전 이제그만” 등의 구호를 외쳤다.? 행진 대열은 오후 5시48분께 종각역에 도착해 여러 사람이 한 장소에서 죽은 듯이 드러누워 항의를 표현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했다. 기후위기로 모든 생명이 죽음에 처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다. 한국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다이-인 퍼포먼스는 처음이다. 글·사진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국형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 어디쯤 가고 있나

[더 나은 사회]정부, 시민사회와 지난해 ‘K-SDGs’ 수립기업 지속가능 글로벌 기준 인식 높여야이해관계자 상시적 공론장 마련 필요위원회 지위 격상 등 법체계 정비해야국제민간연구기관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19 지속가능발전보고서’를 보면,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중 우리나라는 성평등, 이행 수단 및 파트너십과 함께 기후변화대응 목표에서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9월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1천여명의 시민이 모여 정부와 기업의 진정성 있는 기후위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한국형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 9개월.정부가 지난해 12월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발표한 지 9개월이 흘렀다. 2015년 유엔이 전세계적으로 환경과 경제, 사회 분야별로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며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내놓았고, 이에 발맞춰 각국 정부도 저마다 나라별 실정에 맞춘 후속작업을 진행해 왔다. 한국의 경우, 국정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등 지속가능발전 논의 자체가 어려웠던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꽤 늦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성과를 판단하기엔 조금 이른 시기이다. 하지만 지속가능발전법에 따라 2년에 한차례씩 지속가능발전 이행 성과를 평가·보고해야 하기에 중간 점검 정도는 필요한 시점이라 할 만하다. 때마침 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소기업 디엠시(DMC)타워에서는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대토론회’가 열린다. 주최자인 환경부를 비롯해 외교부·교육부 등 주요 부처 관계자가 시민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담당하는 행정 부처들이 지금까지의 추진 현황을 발표하기로 해, 실질적인 중간 점검의 자리가 될 예정이다. “기업, 글로벌 소통 도구로 인식해야” 과연 현장 분위기는 어떨까. 무엇보다 국내 주요 기업이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업은 지속가능발전의 핵심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다. 기업은 경제성장, 산업혁신 및 기반시설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기후변화, 에너지 등 환경 분야, 건강 증진과 웰빙, 지속가능도시 등 사회 분야에 이르기까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유엔도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해선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일찍부터 강조해왔다. 실제로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유엔 고위급 정상회담에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기업 협회들을 파트너로 초대하는 등 각국 정부에 버금가는 핵심 이해관계자로 대우했다. 이에 화답하듯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도 상당히 적극적인 편이다. 구글과 알리바바는 지난달 유엔 및 세계은행과 협약을 맺어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에 필요한 데이터 취합과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글로벌 데이터 작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과 대조적으로 국내 산업계의 움직임은 아직 더딘 편이다. 지난해 환경부는 국책연구원을 비롯한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 민간 관계자들로 구성된 작업반 그룹, 그리고 유엔에서 지명한 여성·노조·기업·장애인 등 목표별 민간 이해관계자 그룹을 조직한 바 있다. 시민단체 90여곳, 민간 전문가 192명, 23개 행정부처가 참여한 이례적인 민관학 대국민 협력 프로젝트였으나, 기업 관계자들은 좀체 찾기 어려웠다. 124명의 민간 이해관계자 중 기업 협회로는 유엔 산하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와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가 참여했고, 기업 관계자로는 삼성과 포스코의 실무자가 참여했을 뿐이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데는 지난 정부 시절의 국정농단 사태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국내 대기업들이 연루된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전경련 사회공헌팀을 중심으로 주요 대기업 사회공헌팀, 사회책임경영팀들이 불법 자금을 대는 통로 구실을 한 사실이 드러난 것. 이후 관련 조직 대부분 규모가 줄어들거나 활동이 축소됐다. 기업의 지속가능활동 정보를 공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행 건수에도 이러한 추세가 반영돼 있다. 지속가능경영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66건이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행 건수는 2014년(117건) 정점을 찍은 후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매출액 100대 기업 중 보고서를 발행한 곳은 절반 정도다.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민간 작업반과 기업 부문 이해관계자 그룹 대표로 참석한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책임연구원은 “국내 이행 성과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난 기후변화나 생태계 보전, 이행 수단 및 파트너십 등의 목표는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라며 “지속가능발전목표는 글로벌 국가와 기업들의 국제적 합의로서, 국내 기업들도 규제 정책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새로운 사업 기회와 효율적인 글로벌 소통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이런 소극적인 자세는 시민단체들이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 작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것과 대조적이다. 여성, 장애인, 이민자 단체를 아울러 40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5개월의 의견 수렴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윤경효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사무국장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가치와 활동 목표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 기업 등 사회 각계 이해관계자들의 유용한 소통 도구로 활용되려면 유엔 지속가능보고서의 기본가치인 협력과 포용성의 가치가 담긴 목표와 추진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부, 8일 국민대토론회 열어지속가능발전목표가 한국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서둘러 보완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추진체계와 의견 수렴 과정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핵심 가치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No one left Behind)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전국 순회 토론회를 수차례 개최한 바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초안은 유엔에서 지명한 여성, 노조, 장애인, 기업 등 17개 민간 이해관계자 그룹에서 목표별 의견을 담은 입장 문서를 받아 수정 작업을 거쳤다. 그럼에도 이해관계자들이 목표별로 이행 현황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상시 운영되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경효 사무국장은 “지난해 이해관계자들이 입장 문서를 검토하고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며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별로 국제개발협력, 사회복지, 자활 등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의견이 고르게 수렴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내 효율적인 거버넌스 체계 정립을 위해 지속가능발전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목표별로 정부 부처의 담당 영역이 중첩되기 때문에 해당 정책과 이행 주체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기능을 담당해야 할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환경부 산하에 있다 보니 국무조정 기능이 전무한 상태다. 문태훈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로 지위를 격상하는 안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며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하고 추진하는 지방 정부의 역할과 의무도 개정안에 함께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문 위원장은 “8일 열리는 국민대토론회를 비롯해 이달 개최되는 분야별 이해관계자 집중 토론 자리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지속가능발전목표 내용과 데이터를 계속해서 수정,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유엔은 2015년 미래세대를 고려해 현세대의 요구를 충족하는 발전 방식으로 경제, 사회, 환경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는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발표했다. 지속가능발전포털 누리집 갈무리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2226.html

“‘멸종위기종’ 청소년들아, 27일 광화문으로 다 모여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오연재(왼쪽), 김서경(오른쪽)양이 지난달 9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횡단보도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인류 대재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과학자들의 경고다. 지구 기온이 산업화 시대(1850~1900년) 대비 섭씨 1.5도 이상 오르면 ‘기후재앙’이 오고, 2도 이상 상승하면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이들은 예고한다.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탄소는 약 10년어치에 불과하다. 급진적인 탄소 저감 없이 이대로 가면, 2030년이면 인류는 ‘기후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는 27일 청소년들이 학교 ‘결석’을 감행하며 거리로 나서는 것은 ‘생존’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만난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서경, 김유진, 오연재(18)양과 김보림(27)씨는 “2030년이 됐을 때의 우리 모습을 그릴 수 없다”며 “전 인류가 멸망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청소년기후행동에는 청소년·청년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김유진양은 ‘개도국’ 지위에 숨어 기후위기 책임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양은 “한국은 처음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에 참여할 당시(1992년) 개도국의 지위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온실가스 배출량과 국내총생산(GDP) 면에서 개도국 지위 뒤에 더는 숨을 수 없는 위치이지만, 우리는 기후위기에 기여한 만큼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말했다.지난 5월24일 300여명의 청소년들이 ‘기후악당국가 탈출을 위한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의 펼침막을 들고 서울 광화문에서 서울교육청 쪽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다. 이날 기후파업은 청소년기후행동이 주도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3월15일과 5월24일에도 기후악당국가 탈피를 위한 ‘기후파업’을 벌여 등교거부 운동을 주도했다. 결석시위 뒤에도 기후위기에 대한 언론과 정부, 시민들의 무관심은 계속됐다. 김서경양은 “(500여명이 참여한) 3월 기후파업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 뒤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게 될 거라 기대했으나, 큰 착각이었다. 여전히 무관심한 사람들과 바뀌지 않는 현실을 보며 우울감이 심해졌다. 만나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지난 8월부터 토요일마다 손팻말을 들고 ‘기후출몰행동 뿅’이라는 거리시위 행위극을 시작했다. 기후재앙을 앞둔 막막함과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행동’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청소년들의 ‘살려달라’는 몸부림이었다. 이들은 9월이 끝나기 전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란 이름의 또 하나의 대규모 기후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맞춰 지난 20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결석시위’의 연장선이다. 오연재양은 “오는 2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길 위의 기후위기 세미나, 가을운동회, 기후대응 성적표 발표, 모든 우리 세대 자유발언으로 집회를 할 예정”이라며 “많은 청소년과 청년,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청와대로도 향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담아 전달할 계획이다. 김보림씨는 25일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만들고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그동안 배출량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기만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가 파리협정을 충분히 잘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푸른 하늘의 날을 만들자’는 엉뚱한 이야기만 했다”며 “정부는 여전히 상황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무시한 채 계속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정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청소년기후행동이 지난 5월24일 서울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 전반을 개선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오는 27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리는 ‘927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 안내문. 안내문의 사진은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서경양이 지난달 31일 북촌 방향 돌담길 앞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하는 모습.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10972.html?

국가기후환경회의 “봄철 석탄발전 절반 가동 중단해야”

12~3월 고농도 때 ‘계절관리제’ 도입 뼈대5등급 차량 운행 제한·차량 2부제 병행국내 미세먼지 배출량 20% 감축 목표?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지난 4월29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첫 대국민 정책제안을 내놨다. 미세먼지가 심한 봄철 석탄발전소 절반가량을 중단시키고 생계용을 제외한 노후 경유차량 운행을 제한하자는 고강도 대책이다. 고농도 땐 차량 2부제를 병행하는 안도 포함됐다. 이번 방안은 130여명의 전문가와 500명의 국민정책참여단이 함께 마련했다. 30일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공개한 ‘1차 국민 정책제안’은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12월부터 3월을 ‘고농도 미세먼지 계절’로 지정하고 집중적인 저감 조치를 하는 것(계절관리제)이 뼈대다. 고농도 때 석탄발전소 최대 27기(전체 45%)의 가동을 중단하고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을 전면 제한하는 고강도 대책이다. 이를 통해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전년대비 20% 이상(2만3천여t) 줄인다는 것이다. ‘5년 동안 35.8% 감축’인 이전 목표보다 더 강해졌다. 구체 내용을 보면,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의 41%를 차지하는 산업계에선 1만1993t의 미세먼지를 줄이는 게 목표다. 전국 44개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사업장 밀집 지역에 1000명 이상의 민관합동점검단을 파견, 불법 배출행위를 감시하기로 했다. 자본과 기술력이 열악한 중소사업장은 미세먼지 방지시설을 설치하고 맞춤형 기술지원단을 파견한다. 대형 사업장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감축 계획을 수립하게 해 평가하고, 고농도 계절 때 평소보다 강화된 배출허용기준을 적용한다. 전국 625개 대형 사업장에 설치된 굴뚝자동측정망(TMS) 결과도 계획보다 당겨 올 연말부터 실시간 공개한다.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소의 경우 3491t을 줄이는 게 목표다. 겨울철인 12~2월에 9~14기를, 봄철인 3월에 22~27기의 가동을 중단한다는 계획이다. 가동 중단 발전소 외에 나머지 석탄발전소는 출력을 80%까지 낮춘다. 계절별, 시간별로 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계시별 요금제’를 강화하는 등 수요관리 정책도 편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은 이 경우 “10GW(기가와트)의 예비전력을 확보한 상태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전기요금은 4인 가구 기준 넉 달 동안 월 평균 1200원가량 인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의 29%를 차지하는 수송 분야에선 4087t 감축이 목표다. 수도권과 인구 50만명 이상 도시를 대상으로 생계용을 제외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하고 고농도 주간예보 때 차량 2부제를 병행한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100억원 이상 건설공사장에서 노후 건설기계 사용을 제한하고, 선박의 저황연료유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적절한 비용 보전방안 등을 마련하는 안도 포함됐다. 경유 승용차는 환경 피해를 고려해 자동차세 경감률도 차등 조정한다. 국내 미세먼지의 18%를 차지하는 도로나 건설공사장 등에선 3464t을 감축하려 한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도로는 청소 주기를 늘리고 속도도 제한한다. 주거 지역 인근 공사장은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해 실시간 공개하며, 농촌의 폐기물 불법 소각을 막기 위해 수거·처리를 지원하고 집중단속을 병행한다. 이밖에 중국과 고농도 미세먼지 예·경보 정보를 공유하고,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실증사업을 확대하는 ‘한·중 푸른 하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의 방안도 포함됐다. 중장기 대책의 경우 추가 공론화를 거쳐 내년까지 마련한단 계획이다. 이번 국민 정책제안은 지난 다섯달 동안 130여명의 전문가와 500명의 국민정책참여단이 토론과 숙의를 거쳐 마련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미세먼지로 인해 불편과 피해를 겪는 국민이 직접 참여해 정책을 수립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미세먼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 수준으로 마치 중병에 걸린 환자 같은 상황”이라며 “과거와는 차별화된 과감하고 담대한 처방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11405.html#csidx4f80ebbc152dd8bb384a891603457a0 ?

‘지역’과 ‘시민’,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두개의 열쇳말

[더 나은 사회]‘2019 지속가능발전대회’ 거제에서 열려정부, 지난해 12월 ‘K-SDGs’ 수립“중앙은 제도적·재정적 지원에 힘쓰고지방은 시민 참여 이끌어 실천 힘써야”25~27일 사흘간 경상남도 거제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개 분야를 상징하는 천으로 퍼포먼스를 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로 가는 길”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석문국가산업단지와 아산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선 충청남도 당진시. 수도권에서 채 100㎞ 떨어지지 않은 입지요건 덕에 제철소와 각종 공장이 잇따라 준공되면서 산업도시로 발돋움했다. 2012년엔 행정구역상 군에서 시로 승격됐다. 하지만 가파른 성장의 뒤편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산업구조가 철강산업에 지나치게 집중된데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기오염 문제도 심각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15년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 통계를 보면, 당진의 연간 배출량은 13만1752톤으로 충남 전체 배출량의 약 30%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다. 오늘의 성장에만 매달리다 다가올 내일을 맞이할 준비에 소홀했던 건 경상남도 거제시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도 비켜갈 만큼 경제적 풍요를 자랑했다는 이곳은 2014년 무렵 시작된 조선업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주축 기업들이 휘청이자 사람들은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도시를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지역경제의 뼈대 다시 세우기뼈아픈 반성은 도시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낳았다.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새로운 주춧돌 위에 지역경제의 뼈대를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당장의 성장과 성과만 좇아서는 나와 우리를 넘어 미래세대와 환경, 지역공동체 모두를 아우르는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을 만들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지역 현장에서 커지는 중이다. 경제와 사회, 환경의 세 가치를 통합한 지속가능발전이야말로 새로운 이정표로 삼을 만하다. 실제로 당진시는 2017년 지속가능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유엔이 제시한 17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지역 특성에 맞는 당진시만의 17개 목표로 손질했다. 이 가운데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에너지 정의 실현’이 특히 눈에 띈다. 과거 석탄화력발전에 밀려 관심조차 받지 못하던 태양광 발전은 지속가능발전 기본계획 수립 이후 탄력을 받는 중이다.지속가능발전대회에 맞춰 쓰레기 수거와 달리기를 결합한 플로깅 행사가 열려 시민들이 장승포항 수변공원 주변을 뛰며 쓰레기를 줍고 있다.돌이켜 보면, 지속가능발전과 관련한 지방정부의 움직임은 꽤 오랜 역사를 지닌 편이다. 사람들에게 지속가능발전이란 단어가 익숙해지기도 훨씬 전인 1999년, 각 지방정부들 사이엔 지속가능발전 실현을 위한 네트워크가 ‘지방의제21 전국대회’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 앞서 1992년 ‘환경 및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UNCED)에서 채택된 ‘리우 선언’의 이행 지침인 ‘의제21’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특히 의제21에서 지구환경 보존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각 지방정부는 자발적으로 관련 조직을 꾸렸다. 이런 가운데 국내 지속가능발전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25~27일 사흘간 경남 거제시 장승포구 일대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대회’가 주인공이다. 올해로 스물한번째 열리는 행사다. 환경부와 경상남도, 거제시가 공동주최하고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협의회가 공동주관한 이번 행사는 국내 지속가능발전을 앞장서 이끌어온 지역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 지역의 성과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공동과제를 논의하는 마당이었다. “지속가능발전법 개정 올해 완료할 것”올해 행사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의 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원들과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등 활동가 수백명이 참가했다. 자연스레 행사 현장엔 생동감이 넘쳤다. 거제시민들과 학생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쓰레기 수거와 달리기를 결합한 ‘플로깅’ 대회에 나온 시민들은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 오염의 위험성에 새로이 눈떴다. 한 중학생은 “우리는 ‘초록색’ 하면 자연보다 검색창이 먼저 생각나는 세대”라며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보호 인식이 강화돼야 한다”고 외쳐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특히 올해 행사가 관심을 모은 건, 지난해 12월 정부가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수립한 뒤 처음 마련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기조연설에서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정책형성 과정에 이제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지방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제도화하는 ‘지속가능발전법’ 개정이 올해 안에 완료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발전 성패를 좌우할 시민 참여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박정현 대전시 대덕구청장(마을만들기지방정부협의회 회장)은 “정치인이 바뀌어도 주민들이 지속가능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동진 서울시 도봉구청장(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협의회 회장)도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정권 기조가 흔들릴 때마다 흔들림 없이 실천해온 주체는 민간이었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접근을 통한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지속가능발전대회에 참가한 참석자들과 시민들이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개 분야가 적힌 깃발을 들고 거제시내를 걸으며 행진하는 모습.‘수립 계획 없다’는 응답도 34.2% 이처럼 지역 현장 곳곳에서 지속가능발전의 열기가 달아오르고는 있으나, 풀어야 할 과제도 여전히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지원과 지방정부의 노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지역 스스로의 힘으로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세우고 이행에 나서기란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지역에선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목표 수립과 선언에만 그칠 뿐 정작 실천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환경부가 지난 2월26일부터 3월8일까지 전국 지자체 243곳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속가능발전 인식 진단’ 설문조사를 보면,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한 지역’은 16.5%, ‘수립 계획이 있거나 준비 중인 지역’은 35.4%였고, ‘수립 계획이 없는 지역’도 34.2%나 됐다. 지역 간 편차가 큰 셈이다. 이어 추진 여건을 묻는 말에도 ‘추진 의지는 있으나 지속가능발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 50.6%나 돼, 관련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워줬다. 이 밖에 지속가능발전 추진을 위해 ‘재정적 지원’ ‘가이드라인 제공’ ‘컨설팅 지원’이 필요하다는 답변도 각각 31.7%, 25%, 22.2%로 나타났다. 중앙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수치다. 정부도 지속가능발전의 확산을 위해 지역 간 편차를 줄이는 데 우선 힘쓸 계획이다. 맹학균 환경부 지속가능전략담당관은 행사 2일차에 열린 ‘지방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체계 구축 지원사업 결과 보고회’에서 “국가 단위에서 지속가능발전 실천이 잘되기 위해선 지역에서의 활동이 선행돼야 한다”며 “내년에는 예산을 확보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고유한 특성 살린 ‘지역화’도 과제확산과 지원을 넘어 ‘지역화’도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지방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핵심은 ‘우리 지역에 걸맞은, 우리 지역만이 가진 독특한 성격을 목표에 반영하는 것’이다. 현실의 모습은 이와 다르다. 엄철용 충남 당진시 지속가능정책팀장은 “많은 지역이 유사한 목표와 지표를 가지고 있어 지역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역을 잘 아는 시민이 좀 더 고민하고 계획적인 추진을 위해 전문가가 한데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지역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지속가능발전. ‘조금은 돌아가는 길,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한 길’일 수도 있으나, 그 길에 동참하려는 발걸음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널리 퍼지는 중이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지속가능발전대회의 구호처럼, 국내 200여개 지방정부가 저마다 지속가능발전에 힘쓴다면 우리 사회도 200여개 색깔을 지닌 얼굴로 탈바꿈할 수 있지 않을까. 거제/글·사진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area/yeongnam/911394.html

기후 위기…최악 상황에 맞닥뜨려야 최선의 길을 찾는다

[조천호의 파란하늘]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 24번에도이산화탄소 농도는 되려 63% 증가성장이 행복을 준다는 우상 깨고세계 의기투합할 ‘새 허구’ 필요?2018년 12월 폴란드에서 제24차 유엔기후협약 당사국회의(COP24)가 열리는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이 ‘기후가 아닌 체제 변화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머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1990년 리우 정상회담 이후 2018년까지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COP)를 24번 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는 1990년 이후 배출을 전혀 줄이지 않는 시나리오를 따라 증가하여 2017년까지 무려 63%나 늘어났다. 기후재앙이 확실한데도 그 대응은 거의 자포자기한 상황이다. 물론 언젠가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것이다. 기후가 위험수위를 넘으면 강제로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우리는 지구가 인간에게 한량없이 베풀어주는 역량을 지녔다고 여겨왔다. 지구는 잘 살겠다는 욕망을 실현해 주기 위한 착취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유한한 지구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감당하지 못한다. 우리는 ‘큰 지구의 작은 세계’에서 ‘작은 지구의 큰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경제 규모는 성장했지만, 지구 안정성은 흔들린다. 소득은 늘었지만,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어려서는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나이가 들어서는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웃을 이기지 못하면 불행해진다는 불안이 우리 삶을 치열하게 만든다. 우리 삶의 원동력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 삶과 공동체는 피폐해지며 자연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 에너지와 자원을 착취하고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환경을 파괴하고 생물을 멸종시키고 이웃과 단절되면서도 현실적으로 중단할 수도 없는 곤혹스러운 최악의 상황이다. 로마클럽 50주년 기념으로 스톡홀름 회복력 센터에서 46번째 보고서인 ‘지구 위험한계(Planetary Boundaries) 안에서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 달성’을 2018년에 발간하였다. 안전한 지구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10년 안에 세계적으로 취해야 할 핵심적인 정책 5가지를 제시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 사람들이 전체 소득의 40%를 넘지 않도록 해서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기가 침체하고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나누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성장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우상을 부숴버려야 한다. 세계 최대 부자 100명이 가진 부가 하위 절반인 35억명이 가진 것보다 더 많다. 세계 상위 20% 사람이 전체 자원의 80%를 사용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정치가와 언론은 잘 살기 위해 성장해야 한다고 한다. 이미 과잉 생산 중이어서 온실가스, 오염가스와 쓰레기로 지구가 절딴날 지경인데도 말이다. 지속해서 성장해야만 하는 상태는 지속해서 팽창하는 풍선과 같은 행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행성은 언젠가는 풍선처럼 터져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현재 76억 명 인구가 사용하는 자원, 에너지, 식량을 위해 필요한 면적이 2018년 기준으로 지구 1.7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리가 은행가라면 이자로 사는 게 아니라 원금을 까먹으며 사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곧 파산이다. 성장이 빠를수록 파국의 한계에 부딪히는 시간도 그만큼 빠르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그만큼 크고 위험하다. 이처럼 성장 그 자체가 성장을 끝낼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그의 책 <위험 사회>에서 언급한, 심각한 재난과 같은 파국 상황에서 도리어 길을 찾는다는 뜻의 ‘해방적 파국’이 일어날 여건이 마련된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려야 최선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아는 게 힘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안다고 바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힘이 아니라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허구’를 발명했기 때문에 위대해졌다고 했다. 허구를 믿지 않았다면 국가도 화폐도 법도 없을 것이라 했다. 화폐는 종이이고 법은 글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그 허구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 순간 그 허구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한다. 허구의 힘은 믿음을 만들어 내는 능력, 다시 말해 사람들이 합의하고 협조하게 만드는 능력을 뜻한다. 원자탄을 제조하는 것은 물리 지식만으로는 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조직화된 노동이 필요하다. 대규모 협업은 공동의 허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집단에서만 가능하다.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해야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허구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모두가 그저 불행하지 않기 위해 꽉 쥐고 있는 삶을 놓아버리고 행복을 향한 새로운 삶으로 갈아탈 수 있는 다른 허구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모두 새로운 허구를 믿는 순간 그 허구보다 더욱더 멋진 진짜 세상을 실현할 수 있다.지구는 인간의 욕망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좌우된다고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안정한 상태에 머물도록 지구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제 지구 환경은 경제 성장을 위하여 자원과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부차적인’ 위치가 아니라 그 위험을 넘어서면 안 되는 ‘최우선적인’ 위치에 놓여야 한다. 이 상태에만 경제도 사회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경제를 다룬다는 것은 한정된 자원으로 소수가 아니라 모두가 가장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이 아니라 사회기반을 지원해야 한다. 사회 기반은 안정적인 기후와 풍요로운 생태계에서 살 수 있는 인류 보편의 권리, 그리고 좋은 삶을 보장해주는 공평성, 가치, 복원력, 교육, 건강 등의 수준으로 구성된다. 소비와 물질에 대한 욕망을 줄이고 공감, 공유, 연대하는 가치를 키워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자연과의 관계도 조화롭게 할 수 있다. 위험을 넘지 않는 지구 환경과 부족함이 없는 사회 기반 위에서만 인류는 지속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믿어야 한다. 우리가 한계에 맞닥뜨릴 때, 더 창조적이고, 더 과감하고, 더 멋진 세계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과학자 cch0704@gmail.com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04682.html#csidx42337fdcad8d29380750462413d00b1 ?

최근 4년 지구 기온 역대 1~4위…2019년은?

[이근영의 기상천외한 기후이야기]미국기상학회 2018년 4위 확인2016년>2015년>2017년>2018년 순2019년 1~7월 기간평균 역대 2위?2015~2018년 연평균기온은 역대 1~4위를 차지했다. 올해 1~7월까지 기온이 역대 2위권이어서 연평균기온 순위도 상위권에 들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해양대기청 제공 미국기상학회는 이번 달 발간하는 <기후연례보고서 2018>에서 지난해가 최근 3년에 이어 역사상 네 번째로 따뜻한 해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보고서 작성에는 60여개 국가 47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참여했으며, 조사·분석은 수십만개의 독립적인 관측 자료들에 기반을 둬 이뤄졌다.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의 주요 지표들에서 지구 온난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해수면이나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등 몇몇 지표들은 1년 전 세워진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무엇보다 2018년 전 지구 연평균 기온은 1981~2010년 평균보다 0.30~0.40도 높아, 1800년대 후반에 시작한 세계 연평균 기온 기록 가운데 4번째로 높은 값을 보였다. 지금까지 가장 따뜻한 해는 2016년, 2015년, 2017년 순으로 최근 4년간이 역대 가장 따뜻한 기간으로 기록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대 최악의 폭염을 겪었음에도 2018년 평균기온이 13.0도로 평년(12.5도)보다 0.5도 높아 1973년 이후 최고 10위를 기록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가장 강한 폭염이 휩쓴 올해 7월의 전 지구 월 평균기온이 140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기록되는 등 올해의 연 평균기온도 최근 몇 년과 마찬가지로 상위권에 들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1~7월 전 지구 평균기온은 14.8도로, 20세기 평균기온 13.8도보다 1도가 높아 이 기간 평균기온 순위가 2위인 2017년과 동률을 이뤘다. 지난해에는 온실가스 농도의 최고치가 또다시 경신됐다. 세계 연평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7.4ppm으로 기록돼 전년보다 2.4ppm이 높아졌다. 해수면 온도는 2016년 엘니뇨 이후 다소 내려갔음에도 1981~2010년 평균보다 0.33도±0.05도 높아졌다. 해수면 높이는 7년째 계속해서 높아져 2018년에는 인공위성으로 해수면을 측정하기 시작한 1993년에 비해 8.1㎝ 높은 기록이 세워졌다. 세계 해수면 높이는 10년마다 평균 3.1㎝씩 높아지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07971.html?

“우린 멸종위기 청소년”…한국서 27일 기후위기 학교 파업

환경단체들, 기후위기 맞서 대규모 연대체 구성‘유엔 정상회의’ 맞춰 집회·시위·등교거부 예고?4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계획발표 기자회견이 열려 참석자들이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포 및 대통령의 기후정상회담 참석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우리는 멸종위기 청소년입니다” 환경단체 등으로 꾸려진 ‘기후위기비상행동’이 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교 2년생 오연재(17)양은 자신을 ‘멸종위기종’이라 불렀다. 그는 “‘청소년인데도’ 거리로 나선 게 아니라, ‘청소년이라서’ 나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온실가스나 기후변화를 다룰 땐 멸종위기를 북극곰 같은 일부 포유류만의 문제로 얘기해요. 하지만 이제 그들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인류도 멸종할 수 있고, 지금 청소년 세대가 인류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오양을 비롯,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군의 청소년들은 지난해 8월 ‘청소년기후소송단’을 조직했다. 정부를 상대로 당장 기후변화를 막을 행동에 나서달라는 소송을 하잔 취지다. 올해 5월부터는 ‘청소년 기후행동’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을 확대했다. 지난달부터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 등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알리는 집회를 해오고 있다. 금요일인 오는 27일엔 최대 5천명가량의 청소년이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서울 광화문에 모이는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도 계획 중이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시작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가 한국으로도 확산하는 것이다. ‘청소년 기후행동’과 함께한다는 20대 청년 김보림(27)씨는 “청소년·청년들에겐 입시나 취업이 당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런 문제에만 신경 쓰기엔 우리 사회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여러 상황이 온실가스란 요인으로 촉발되는 것에 많은 청소년·청년들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연 기자회견은 오는 23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 세계정상회담’을 앞두고 기후위기 현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청소년들의 27일 ‘결석시위’에 앞서 주말인 21일 서울 대학로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각종 활동을 계획 중이다. 이 기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수백만명이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 거리로 나선다. 기후변화 정상회의엔 한국 청소년·청년 3~4명이 유엔이 따로 마련한 ‘유스 서밋’(청소년 정상회의) 등에 참가하기도 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참가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 이상 상승하게 되면 인류가 대처할 수 없는 파국에 이를 것이며, 1.5℃ 상승만으로도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상학자들의 모임이라 할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지난해 10월 인천 송도에서 연 총회에서 채택한 ‘1.5℃ 보고서’가 바로 그 내용이다.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1.5℃ 상승까진 12년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관건은 앞으로 1년 반 정도의 기간이다. 올해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25차 당사국 총회(COP25)에선 이산화탄소 감축 계획을 다룬다. 내년 말 영국에서 열리는 26차 당사국 총회가 1.5℃ 이내로 인류가 지구 기후를 안정시킬 마지막 기회의 국제 모임이다. 여기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이대로 탄소배출 양상이 지속한다면, 12년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은 1.5℃를 넘게 된다. 기후위기를 막을 시간이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량 5위, 증가율 1위(이상 2015년 기준)다.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한국은 (탄소 배출량 감축) 계획서만 화려하게 써놓고 아무것도 지키고 있지 않다. 하루빨리 우리 스스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강제적인 감축 할당량을 받아들여야 하는 더 고통스런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기용 최예린 이정규 기자 xeno@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08419.html#csidx1a3d92925cb12349865404cefda2b7d ?

[왜냐면] 지속가능한 물 관리로 세계를 이끈다 / 조명래

?조명래환경부 장관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 근교에는 세고비아라는 오래된 도시가 있다. 이곳의 명물인 수도교는 아치형 다리 위에 수로를 설치한 것인데, 그 형태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스페인의 대표 관광지로 손꼽힌다. 수로에 미세한 경사를 두어 가압펌프와 같은 별도의 시설 없이도 물이 끊임없이 흘러갈 수 있게 만든 점이 인상적이다. 세고비아 수도교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했던 로마인이 건설했다. 로마가 수세기 동안 대제국으로서 위용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물 관리 기술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로마는 물 관리를 잘한 나라였다. 로마인은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수원에서부터 수로를 설치하여 로마 시내 100만 인구가 충분히 쓸 만큼의 물을 끌어왔다. 끌어온 물은 상하수도를 비롯하여 급수탱크, 공중목욕탕 등 다양한 수리시설을 설치하여 다용도로 쓰였다. 이런 로마 시대 수리시설 유적은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로마의 물 관리 기술은 제국의 힘이 닿는 구석구석마다 전파되어 그 지역의 물을 적절히 다스리고 이용하는 데 활용됐다. 4일부터 4일간 대구에서 대한민국 국제물주간이 열린다. 이 행사는 2015년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세계 최대 물 행사인 제7차 세계물포럼의 성과를 이어나가기 위해 2016년 시작됐다. 제7차 세계물포럼은 역대 포럼 중 최다 인원이 참석한 행사로 세계 168개 나라, 4만7천여명이 모여 물 문제 해결책을 논의하는 대축제였다. 올해로 네번째 열리는 대한민국 국제물주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물 문제를 다룬다. 특히 이번 대한민국 국제물주간의 화두는 ‘인간과 자연을 위한 지속가능한 물 관리’다. 물은 효율적으로 이용되어 현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도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 이런 인간을 위한 물 관리는, 친환경적 하수 처리와 하천 관리로 수생태계에 부담을 주지 말자는 의미에서 자연을 위한 물 관리가 돼야 한다. 기후변화로 지구 곳곳에 유례없는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고 있는 지금, 안전한 물을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누리려면 물 관리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개발과 관리의 대상에 머물렀던 ‘물’이 인간과 공존하는 ‘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의 수량 관리 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하는 물 관리 일원화로, 수량과 수질, 생태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책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물 관리 경험과 이를 뒷받침해온 물 관리 기술을 전세계에 알려, 통합 물 관리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가는 데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올해 국제물주간의 주요 프로그램은 ‘지속가능한 물 관리’라는 점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물 분야 고위급 회의인 ‘워터 리더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각국 정부, 국제기구, 기업 등의 대표 물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물 관리의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을 논의한다. ‘워터 비즈니스 포럼’에서는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물 관리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는 한편, 국외 발주처와 국내 물 기업 간 면담을 통해 협력사업 발굴 등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번 대한민국 국제물주간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물 관리가 전세계 물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로마의 물 관리 기술이 이탈리아반도를 넘어 유럽 대륙과 그 주변 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우수한 물 관리 기술과 경험이 널리 전해져 세계 물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08457.html#csidxe0f92aba52c656ab16a51975135a45d ?

[우리가 잘 몰랐던 에너지 이야기] 기후위기에 응답하지 않는 나라 / 이헌석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국내에선 큰 반향이 없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큰 관심사는 ‘기후위기’ 문제다. 2015년 세계 각국은 파리 협정을 통해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로 제한하는 목표를 잡았다. 또한 이 목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1.5도까지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합의했다.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이 최대 1.2도 정도 올라간 상황에서 지구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을 잡은 것이다. 1.2도 상승이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날씨는 혼란에 빠졌다. 올해 서유럽은 전례 없는 폭염으로 프랑스 파리 최고 기온이 42.6도까지 올랐다. 알래스카에서는 이상 폭염으로 빙하가 녹아 홍수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제 기상이변 뉴스는 너무 많아 이를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영국 <가디언>은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용어를 기후 위기(crisis)나 붕괴(breakdown)로 바꾸기로 했다. 과학자들은 최근 상황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언론이 주로 쓰는 기후변화라는 말은 수동적이고 너무 공손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처한 상황은 한가하지 않다. 하지만 향후 전망은 더 어둡다. 파리 협정에 따라 각국 정부가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모아봤더니 이 계획을 100% 달성해도 ‘2도 이내 억제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법적 강제조항조차 없는 이 계획이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생각할 때 위기 상황은 파국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UN Climate Action Summit)를 제안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달 21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이 회의는 이제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회의다. 그간 정치인들의 사진촬영과 말잔치로 진행됐던 회의로는 지구 생태계를 살릴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영국 에너지부 장관은 탄소 중립화법에 서명했다. 탄소 중립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피치 못한 배출에 대해서는 탄소를 흡수하는 상쇄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탄소의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법에 따라 영국은 2035년까지 신차를 모두 전기차로 대체하고,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기준 80%까지 감축할 예정이다. 프랑스 역시 2050년 탄소 배출 제로 내용을 담은 법을 제정했다. 노르웨이(2030년)나 핀란드(2035년)처럼 빠르게 탄소 배출을 줄이는 나라도 있고, 일본처럼 21세기 후반으로 느슨하게 목표를 잡은 나라도 있지만 주요국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의 경우, 얼마 전 민주당 샌더스 후보가 무려 16조3천억달러 규모의 공적 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을 100%로 늘리고, 2050년까지 완전한 탈탄소화를 하겠다는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다양한 현안에 묻혀 기후문제가 정치 현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너도나도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을 선언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산업의 일자리는 여전히 내연기관에 맞춰져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탄소 배출 제로’란 단어는 언급조차 않고 있고 더 많은 에너지 사용을 ‘미덕’으로 보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경제와 산업에서 저탄소 전환 문제가 제기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기후문제는 우리나라에선 ‘남의 나라’나 ‘북극에 사는 곰’ 이야기에 불과하다. 더 끔찍한 것은 에너지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은 없고 몇몇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끝도 없는 가짜뉴스를 해명하기에 급급한 현실이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지구 생태계를 걱정하고 행동을 논의하는 자리에 우리나라 대통령은 참석 계획조차 없다. 누군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대한민국은 뭘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답할 말이 없다. ‘그건 다른 나라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 아닌가요?’라는 정치인들의 솔직한(!) 대답도 종종 듣는다.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가 아닌 걸까?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9368.html?

기상위기…온실가스 감축 서둘러야

기후위기 대전비상행동 기후위기시대 대응 촉구기후위기 대전비상행동 회원들이 19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에서 직접 만든 펼침막과 손팻말을 들고 나와 ‘전 세계가 생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실질적인 온실가스 배출 감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1.5도의 한계, 이제 0.5도 남았습니다.” ‘기후위기 대전비상행동’은 19일 오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마련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서둘러 기후위기시대에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대전지역 30개 시민·종교단체와 정당으로 꾸려졌다. 이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지난 100년간 산업 문명은 무분별한 화석연료를 사용해 지구 온도를 1도 높였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하면 지구의 평형은 회복될 수 없고 인류 문명을 지탱해온 조건이 붕괴한다’고 말한다”며 “이제 0.5도 남았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남은 기간은 10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단체는 “정부는 기후위기를 인정해 비상선언하고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제 목표를 수립할 것, 지방정부는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 수립 및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시행, 지방정부는 독립적인 거버넌스를 구성해 기후위기에 대응할 것” 등을 촉구했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910161.html?

[김종철 칼럼] 툰베리의 결기

칠십, 팔십이 넘은 노인이라면 모를까, 아직 10대인 소녀가 환경파괴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옷도 새로운 것을 사 입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 단호한 태도,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이 놀라운 집중력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소형 요트를 타고 2주 만에 뉴욕에 도착한 그레타 툰베리, 올해 16살인 이 스웨덴 소녀는 어느새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학교로 가는 대신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서 1인 시위를 시작한 이후 그는 “우리의 집(지구)에 불이 났는데, 어른들은 왜 딴짓만 하고, 불을 끌 생각을 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되풀이해왔다. 이 단순명료한 메시지는 그 자체로 강력한 호소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말과 행동 사이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그의 모습에서 지금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순수한 진정성을 느끼고, 그 절실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소녀가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신기할 것도, 별로 찬양할 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이 좋아서 요트 항행이지, 툰베리의 이번 여정은 화장실도, 샤워시설도 없는 것은 물론,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거의 바람의 힘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조그마한 요트를 타고 광대한 해양을 가로지르는 항행이었다. 결코 쉽고 편안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굳이 그런 여행수단을 택한 것은 오늘날 환경파괴의 주범 중 하나, 즉 비행기를 타지 않으려는 결심 때문이었다. 툰베리는 자신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환경운동가들조차도 끊임없이 항공여행을 하고 거리낌 없이 (공장식 축산물인) 육류를 먹는 행동이라고 어느 집회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자신은 절대로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단호한 자세를 이번의 대서양 횡단 항행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게다가 뉴욕에 도착한 직후 어떤 언론인과 나눈 대담에서 툰베리는 자신의 사적 생활에 관련해서 또 한번 경악할 만한 발언을 했다. 즉, 자기는 현재도 새로운 옷을 사 입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요컨대 지구를 이토록 망가뜨려온 소비주의문화에 자기만이라도 참가를 거부하겠다는 결의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칠십, 팔십이 넘은 노인이라면 모를까, 아직 10대인 소녀가 환경파괴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옷도 새로운 것을 사 입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 단호한 태도,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이 놀라운 집중력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리들 대부분은 지금 환경을 걱정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늘 생각(혹은 말)과 행동이 따로 도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른바 환경운동에 생애를 바치고 있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규모 환경단체들 중에는 회비나 일반시민들이 낸 후원금을 ‘굴려서’ 더 큰 돈으로 만들기 위해 주식투자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또 우리가 잘 아는 나라의 어떤 환경단체가 주관하는 주요 연례행사 중에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자동차 수백만대분의 대기오염물질을 뿜어내는) 크루즈선을 타고 연근해를 돌면서 몇날 며칠 동안 진행하는 선상 토론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애초 목적에 충실한 운동인지, 조직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비즈니스 활동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현상이 환경운동권에서도 흔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말한다면, 자연환경이 끊임없이 훼손·오염되고 무수한 생물종이 멸종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정신이라고 해서 온전한 상태로 있기는 극히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미나마타병’이라는 비극적인 산업재해의 문명사적 의미를 생애 마지막까지 캐물었던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지금은 “인간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말세 중의 말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목적을 위해 출발한 일이 도중에서 방향이 흐려지거나 변질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례인지도 모른다.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현상은 오늘날처럼 근본적으로 뒤틀린 세상에서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노출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환경운동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회운동 가운데서도 가장 큰 딜레마를 처음부터 내포하고 출발한 운동이다. 즉, 환경을 지키려는 운동을 하면 할수록 환경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는 역설적인 논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환경운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툰베리가 매우 이상하게 여기는 사태, 즉 고명한 과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이 밤낮없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캐나다의 원로 환경운동가 데이비드 스즈키는 몇해 전부터 항공여행을 해야 하는 강연은 중지하고, 그 대신 영상을 이용한 강연을 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착잡한 상황에서, 지금 서양에서는 무너지는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기후위기에 둔감한 동료 시민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기 위해서, 혹은 자기 한 사람이라도 사라지면 지구가 그만큼 건강을 되찾을 확률이 높아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렇게 결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아직은 극소수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언론 보도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미미한 듯 보여도 이것은 매우 불길한 미래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파국적인 기후변화로 멸망하기 전에 인류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맑고 민감한 영혼들이 사라지거나 병들어버린 결과로 속절없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음을 그것은 암시해주기 때문이다.(실제로 최근 만난 한 젊은 농부도 그런 의미의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실하게 노력하다가 가면 되는 것이지, 세상을 살리겠다고 뭔가 비상한 행동을 해야겠다고 작심하는 것도 ‘교만심’의 발로일 수 있다고 말했으나,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툰베리의 결기에 찬 말과 행동은 우리에게 큰 용기를 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툰베리는 오늘날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이 왜 이토록 어려운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봄 영국 하원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대중의 지지를 잃을까봐 ‘더 많은 성장’을 끊임없이 약속하고 있는” 정치가들의 위선과 거짓을 날카롭게 비판한 대목에서 그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장기적인 비전도,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저열한 정치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구원의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을 이 영민한 소녀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0196.html?

[사설] 국제사회 흐름과 거꾸로 가는 기후위기 대응

?지난 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기자회견이 열려 참석자들이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포와 대통령의 기후행동 정상회담 참석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1일 서울 대학로를 비롯해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행사가 열린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시민사회가 20~27일을 ‘기후위기 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엔 총회 기간인 23일 미국 뉴욕에서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열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소집한 이 회의는 세계기후회의 사상 처음으로 이름에 ‘행동’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 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전세계가 기후 문제로 전례 없는 동시 행동에 나서는 것은 국가와 시민사회 할 것 없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들어 국가 차원의 대응이 도드라진다.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18개 국가가 앞다퉈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내놨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목표를 법에 명문화하거나,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그동안 경고음은 쉼 없이 울려왔지만, 각국 정부는 ‘말 따로 행동 따로’ 식으로 일관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1.5도 보고서’가 큰 변곡점이 됐다. 과학자들이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의 1.5도 안쪽으로 유지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10년 이내에 45% 줄이고 2050년에는 0%를 달성해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보내자, 상황의 심각성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런 국제사회 흐름에 비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말로는 ‘에너지 전환’을 한다면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외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4년 빼고는 해마다 늘었다. 지난해에는 세계 7위였고, 올해는 6위가 될 거라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배출증가율은 2위다. 2020년까지 잡은 감축 목표는 폐기됐고, 2030년까지 목표는 아이피시시 권고의 18.5%에 그치고 있다.기후위기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더구나 현재의 위기는 사회적 약자들이, 가까운 미래의 재앙은 다음 세대가 오롯이 겪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는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안이한 대응은 다른 나라들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한국을 ‘기후 악당’이라고 부르는 국제사회 비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엔으로 향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당국자들은 깊이 새기길 바란다.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10346.html?

‘내일은 늦으리’ 툰베리 호소에…전세계 젊은이들 릴레이 ‘기후 파업’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맞춰…전세계 139개국 이상 집회“무능한 어른들 대신 젊은이들 도덕적 선명성 보여줘” 평가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사흘 앞둔 20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전세계 릴레이 ‘기후 파업’에 참석한 두 소녀가 ‘지구가 불타고 있어요’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이날 집회 시작 테이프를 끊은 호주에서는 최대 도시 시드니와 수도 캔버라는 물론 오지인 앨리스 스프링스 등 110개 도시에서 학생과 직장인이 학교나 회사에 가지 않고 거리로 나왔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행동에 나섰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정부를 향해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촉구했다. 호주 내 집회 주최 측은 이날 30만명이 집회에 참가해,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 이후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해수면 상승으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남태평양 국가 솔로몬 제도에서는 어린이들이 시위에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풀잎으로 짠 전통 치마에 나무 방패를 든 채 해안가에 도열해 해수면 상승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이 행동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또 타이에서 청년 200여명이 환경부 청사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척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펼친 것을 비롯해, 필리핀과 홍콩, 인도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소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유럽과 아프리카, 미국 등에서도 이날 900개의 관련 집회가 예정돼 있다. 특히 1년 내내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려왔던 독일에선 남서부 프라이브루크시에서 1만7000명(경찰 추산)이 참가하는 집회가 열리는 등 전국 500개 도시에서 집회가 열린다.스웨덴의 청소년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16살 소녀 툰베리는 지난해 8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며 전세계 학생 140만명의 동맹 파업을 이끌어낸 데 이어,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세계적 차원의 ‘기후 파업’을 이끌고 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누리집 갈무리 hongbyul@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10360.html?

[한겨레 프리즘] 우린 지속할 수 있나 / 박기용

?박기용 전국2팀 기자(환경 담당) 몰랐다. ‘최종 심급’, 아니 ‘끝판왕’이 기후일 줄은. “기후변화 주장은 거짓(hoax)”이라고 떠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이들의 선동이 솔직히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관련 자료나 책을 보면서 ‘온난화가 오히려 빙하기나 소빙하기를 막아주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근질거리듯 떠올랐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차한다고 하니 지금이 간빙기면 다시 빙하기가 될 텐데 그걸 막으면 좋은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미 전세계 가장 권위 있는 기후학자들이 모여(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작성한 과학적 합의(‘IPCC 1.5℃ 특별보고서’)가 있었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온다는 게 결론이다. 한데 이미 1도가 올랐다.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0.5도가 더 오르게 되는 시기는 2040년, 앞으로 21년 뒤다. 특히 극지방이 문제다. 얼어 있을 땐 거울처럼 햇볕을 반사해 온도 상승을 막는 구실을 하는 빙하가, 녹고 나면 오히려 태양의 열을 흡수하게 된다. 일정 시점을 넘어서면 그렇게 지구 스스로 기온을 끌어올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후론 인류의 힘만으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을 뿐, 결국 “미래의 유일한 상수는 기후변화”(조천호, <파란하늘 빨간지구>)였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만큼 앞날과 관련해 확실한 명제는 기후변화였다.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진다. 그것도 급격하게. 5억4천만년 전 고생대 이후 대부분의 기간은 지금보다 따뜻했다. 그러다 275만년 전부터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출현했고, 90만년 전부터 빙하기 주기가 10만년 단위로 바뀌었다. 현생인류가 출현한 건 20만년 전이다. 빙하기였던 7만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시작한 인류는 빙하기 말기인 2만년 전 아시아 대륙까지 진출했다. 바닷물이 온통 얼어 있어 육지가 모두 연결돼 있던 덕이다. 1만2천년 전부터 기온이 현재 수준으로, 일정하게 유지됐다. 7천년 전에야 비로소 해수면 상승이 멈췄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문명이 등장했다. 장구한 시계열에서 보면 문명의 등장은 오로지 기후 조건 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던 기온이 최근 100년 동안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500만년 동안 지구 기온이 이렇게 급격히 상승한 적이 없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시속 100㎞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이상해져서 시속 2천㎞ 이상으로 질주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했다. 극한 기온도 점점 잦아진다. 지구 평균기온이 가장 뜨거웠던 열여덟번의 해 가운데 열일곱번이 2001년에서 2018년 사이에 몰려 있다. 가장 뜨거웠던 다섯 해는 2016년, 2015년, 2017년, 2018년, 2014년 순서다.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지 않는 한, 한여름 최고 기온 경신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얘기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해 405ppm을 넘어섰다. 이 정도 농도는 인류가 존재하지 않던 300만~500만년 전에나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기온은 지금보다 1~2도 더 높았다. 인류는 이런 조건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 ‘드레이크 방정식’이란 게 있다. 서로 교신이 가능한 고등 문명권이 우주에 몇이나 될지를 추정한 것인데, 미국의 천체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은 자신이 쓴 책 <코스모스>에서 이 방정식을 적용해 “인류가 당장 몰락한다면 방정식이 얻는 값은 수백만에서 고작 10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인류가 지구라는 천혜의 공간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지적 생명체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의 75억명에서 2050년께 90억~100억명으로 불어난다. 올해 태어날 내 아이는 2040년에 22살, 2050년에 32살이 된다. 아이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지질 않는다. xeno@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0444.html?

“기후 위기는 정치·경제 위기”…유엔서 메아리친 ‘청년 함성’

젊은 기후활동가·기업인 500여명“다음세대보다 수익이 더 중요한가”화석연료 소극적 대응에 정면 비판20일 4백여만명 ‘기후파업’ 시위오늘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주목?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정면 가운데)이 전세계 500여명의 젊은 기후활동가와 기업가를 초청해 마련한 ‘청년 기후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16·오른쪽 둘째)가 발언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지난 20일 뉴욕·파리·베를린·서울 등 전세계에 걸쳐 ‘기후 파업’을 주도한 청소년 수백명이 이튿날 유엔에 모여 “기후와 생태계 위기는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적 위기”라며 긴급 행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23일에는 지구촌 각국 정상들이 모여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연다. 21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120여개국 젊은이 수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식 ‘청년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500여명의 젊은 기후활동가와 기업가를 초청해 처음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19)는 “기후와 생태계 위기는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문화적 위기”라고 말했다. 로드리게스는 전날 세계에 걸쳐 일어난 기후 파업에서 아르헨티나 파업을 주도한 청년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마치 ‘유엔 기조연설 청중’인 양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서 그는 “정치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문제를 우리 세대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우리는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리더가 돼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23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91개국 정상과 45명의 정부 수반 및 40명의 각국 장관에게 “청년의 분출하는 행동·분노·공포를 결코 무시하지 말라”고 요구한 셈이다. 이번 기후 파업을 주도한 그레타 툰베리(16·스웨덴)는 이날 회의에서 “우리는 연대했고, 아무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번 기후 시위·파업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밝혔다. 툰베리는 이번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지난 8월말 뉴욕항에 도착한 바 있다. 툰베리는 23일 유엔 공식 기후정상회의에서 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유엔본부 복도는 자국의 전통 의상,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젊은 활동가들로 넘쳐났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패널로 참석한 대기업을 향해 소극적인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캐슬린 마(23)는 마이크로소프트(MS) 쪽 참석자를 향해 최근 석유·석탄 화석연료기업과 사업계약을 한 사실을 문제삼으며 “우리 젊은 후세대보다 수익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남태평양 피지에서 온 코말 카리슈마 쿠마르는 “정치 지도자들이 기후변화 책임을 지지 않으면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겠다”고 외쳤다. 청년들과 회의를 한 뒤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운동을 시작한 여러분의 진취성과 용기로 변화의 모멘텀이 일어날 것”이라며, “우리는 (기후변화와의) 달리기에서 아직도 뒤처져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보다 빠르다”고 걱정했다. 20일에는 기후변화 긴급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청년 기후파업’이 남반구 끝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북반구 끝인 아이슬란드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벌어졌다. 하루 수업을 거부하고 기후변화 행동 최전선에 나선 청년 400여만명이 뉴욕·파리·베를린·서울 등 160여개국의 수천개 도심과 거리를 가득 메웠다. 지구 온난화 관련 사상 최대규모 집회로, 파리에서만 1만5천명이 기후변화 저항시위를 벌이면서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과의 회견에서 “기후변화 대응의 절박성을 놓고 세계가 시끄럽게 떠들도록 만드는 일이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유엔총회 참석에 앞서 스베냐 슐체 독일 환경장관은 21일 “기후변화 대응에서 핵심 축은 석탄 추방이다. 석탄발전소 건설·금융지원 금지 등을 약속한 ‘탈석탄동맹’(영국·캐나다 등 30여개 국가 및 주정부 참여)에 독일도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10466.html?

최근 5년 역사상 가장 덥고 CO₂ 농도 가장 높아

[이근영의 기상천외한 기후이야기]세계기상기구 ‘2015~2019 지구 기후보고서’ 지구기온 산업혁명 이전보다 1.1도 상승 2011~2015년보다 최근 5년간 0.2도 올라이산화탄소 증가 가팔라 연말 410ppm 초과 ?세계기상기구는 ‘2015-2019 전지구

 

세계기상기구 “최근 5년 역사상 가장 더워…대재앙 우려”

WMO, ‘2015~2019 전 지구 기후보고서’ 발표CO₂ 증가율, 2011~2015년보다 20%나 높아져 최근 5년 평균기온, 산업화 이전보다 1.1도 올라 탈라스 WMO 사무총장 “지금 같은 기후변화…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재앙 초래할 수 있어”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 등을 요구하며 ‘뜨거워진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뜻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최근 5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가장 높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상태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전 지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재앙이 초래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상청은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2015~2019 전 지구 기후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올해까지가 역사상 가장 더웠던 5년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보고서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2019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맞춰 발표된 것이다. ▶관련기사 2·13면 세계기상기구는 보고서를 통해 온실가스 농도가 해마다 올라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₂)의 증가율은 지난 5년(2011~2015년)보다 20%나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전 지구의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가 올해 말 410ppm에 도달하거나 초과해 역사상 가장 가파른 상승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멈추지 못한 온실가스 배출은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5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섭씨 1.1도 올랐고, 이전 5년보다 0.2도 상승했다. 이에 따라 남극과 북극, 그린란드의 빙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률은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5㎜로 나타났는데, 이는 1993년 이후 연평균 상승률이 3.2㎜를 유지했다는 점에 견주면 크게 오른 수치다. 특히 2017년과 지난해 남극의 여름(2월) 때 해빙(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의 넓이는 역사상 가장 최저치였고, 2017년 겨울(9월) 해빙의 넓이도 두번째로 좁은 수준이었다. 2009∼2017년 남극에서 해마다 없어지는 얼음의 양은 연평균 2520억t에 이르렀는데, 이는 1979년 손실된 400억t의 6배가 넘는 양이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 사무총장은 “지금 같은 기후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 명시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생산, 산업, 운송 등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기후변화 속도와 온실가스 증가 폭은 전 세계 수준보다 가파르다. 한국의 최근 5년(2015~2019년) 평균기온은 13.3도로, 이전 5년(2011~2015년)보다 0.3도 높아졌다. 지구 전체 평균기온보다 0.1도 더 오른 것이다. 지난해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소에서 측정한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15.2ppm으로 2017년 연평균보다 3ppm 늘어났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연평균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량도 연간 2.4ppm으로 전 지구 평균(2.3ppm)보다 높다. 기록적인 폭염도 기후변화의 속도를 실감케 한다. 지난해 19일 동안 이어진 폭염으로 산간 지역인 강원도 홍천의 일 최고기온이 41도까지 치솟았다. 환경부는 지난 8월 온실가스를 계획대로 줄이지 못하면 2021년 이후 전국 시·군의 63%가 ‘높음’ 수준의 폭염 위험에 노출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전 지구적인 위험 앞에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단체 등 330개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로 꾸려진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지난 21일 서울 대학로와 부산, 대구 등 전국 10개 도시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우리 모두가 멸종위기종이고 난민이다. 뜨거워지는 온도 속으로 지구라는 섬이 잠길 때, 이곳을 떠나 우리가 도망칠 곳은 없다. 인류의 생존과 지구의 안전 따위는 아랑곳없이, 화석연료를 펑펑 써대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한 “정부는 기후위기의 진실을 인정하고 비상상황을 선포하라”며 “이미 전 세계 10여개 국가와 1000여개 ?도시가 비상선포를 내렸다. 지금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23일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각 나라에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일 수 있는 계획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논의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10477.html?

성매매집결지 여성친화 마을로…도시재생 ‘젠더’를 입히다

1부 ② 진화하는 도시재생‘성매매’ 아산 장미마을의 변신양성평등거리·여성커뮤니티센터 추진 “지난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 느껴”성공 열쇠는 ‘주민과 소통’사업 내용부터 원주민 정착방안까지 도시재생 흐름 ‘통합·포용’으로 위기를 넘어 지속가능한 마을로군산, 근대 역사문화 자산 거점으로순천, 마을방송국·도서관 만들어 ?사진 : 아산시청, 한겨레 그래픽 지난달 17일 오후 찾은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 관광지 ‘장미마을’. 한때 충남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던 과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술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음침하던 골목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널따란 길이 생겼다. 아산시청이 유흥업소를 매입한 뒤 건물을 허물고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80여곳에 이르던 업소는 지금 5~6곳만 남았다. 이미 동네 분위기가 바뀌어 나머지 업소도 매입 문제를 놓고 시와 논의 중이다.여성 인권 유린의 상징이던 장미마을은 더 큰 변신을 계획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아산시가 추진하는 여성친화형 도시재생사업 계획을 승인했다. 낙후된 마을을 재생하면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산시가 처음이다. 장치원 아산시 도시재생과장은 “장미마을은 여성의 인권침해와 아픔이 존재하는 장소”라며 “완전히 지우는 방식의 도시재생이 아니라 지난 과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장미마을을 여성 친화적인 곳으로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성 인권을 외면했던 기억을 남기고, 성매매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책임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하자는 얘기다. 온양 원도심 여성친화 도시재생사업엔 온천동 16만225㎡(4만8천평) 면적에 국비 100억원, 지방비 67억원, 엘에이치(LH) 행복주택 1000억원 등 총 1167억원의 재정이 들어간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고 2022년 완공이 목표다. ?아산이 구상하는 ‘여성친화 도시재생’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장미마을 터에 양성평등거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거리에 여성커뮤니티센터를 세워 여성의 창업과 취업을 돕는 등 여성들이 언제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한다는 생각이다. 성매매 집결지였다는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한 공간도 검토하고 있다. 또 여성·청년·협동조합 등의 주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특화상점을 만드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장미마을과 좀 떨어져 있는 또 다른 터에는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폭력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쉼터와 고령자 돌봄·부업 등 공동체 활동이 가능한 곳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5개 분과 주민협의체 만들어 논의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주민과의 소통이다. 아산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상인, 사회적 경제, 청년,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된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지속해서 논의 중이다. 이들은 도시재생사업 내용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 등에 이르기까지 상시로 만나 머리를 맞댄다.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도시재생대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도 하고 있다. 이현정 주민협의체 여성분과 분과장은 “10년 이상 전업주부로 있다가 일이 너무 하고 싶어 지금 교육 강사를 하고 있다. 처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며 “양성평등거리나 여성커뮤니티센터가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만나 고민을 나누는 등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대만큼 걱정도 크다는 그는 “여성친화라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이고, 도시재생에는 처음 접목되는 것이어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주민들이 내는 의견을 실제 사업으로 어떻게 반영할지 여성 전문인력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아산처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도시재생사업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경제·사회·물리·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 부수고 새로 짓는 대규모 토목사업인 재개발·재건축과는 성격이 다르다. 도시재생의 다양한 실험은 세계적 흐름이다. 유엔은 20년 단위로 도시 및 인간 정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회의를 진행해왔는데, 지난 40년 동안 의제는 주로 주거권과 기초서비스 분야에 맞춰졌다.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유엔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합의로 불평등 완화, 지속가능 도시 등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채택되고, 2030년까지 도시 거주 인구가 세계 인구의 7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고민의 방향이 달라졌다. 유엔은 앞으로 20년 동안의 도시 의제로 사회융합, 환경, 지역경제, 사람 중심 공간계획, 도시 거버넌스 등을 포괄하는 ‘신 도시의제’를 채택했다. ‘신 도시의제’가 목표로 삼는 것은 사회적 통합과 포용력 있는 도시, 일자리 창출, 생태적이고 회복력 있는 도시를 추구하는 것이다.?아산시는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여성뿐만 아니라 상인, 사회적 경제, 청년,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된 주민협의체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 아산시는 “주민소통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산시청 제공 ■ 도시 노후화에 마을도 소멸, 도시재생 절실우리나라도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3월 쇠퇴하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청년창업, 혁신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토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인구 감소, 고령화 등으로 인해 30년 안에 84개 시·군·구(전체 37%), 1383개 읍·면·동(전체 40%)이 소멸될 우려가 있다. 대도시도 건축물 노후화가 확산되고 있어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이미 진행된 도시재생사업 중에선 전북 군산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등 근대 역사문화 자산을 문화거점시설로 만들면서 관광객이 늘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2014년엔 군산 월명·해신·중앙동 일대 도심의 상가 공실이 100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전남 순천도 2년 연속 도시재생 최고 등급을 받는 등 평가가 좋다. 마을방송국, 도서관 만들기 등 꾸준히 진행된 도시재생으로 2014년 187채에 달했던 빈집은 지난해 7채로 줄었고, 주민 만족도도 90%를 넘는다. 도시재생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곳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은 역시 ‘주민 참여’다. 주민이 참여해서 주민이 만족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열쇠란 얘기다.물론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도시재생에 뛰어들면서 천편일률적인 양상도 보인다. 한옥마을과 벽화는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기념관 설립도 도시재생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도시재생을 추진하고 있는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사업기간이 3~5년인데, 생각보다 촉박하다. 주민들이 도시재생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하고, 사업 방향에 땅·건물 매입 등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이라 논의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시간에 쫓기다 보면 기존에 다른 지역에서 하던 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사업기간에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여성의 목소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유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정책확산전략실장은 “도시재생은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요구와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핵심”이라며 “양성평등, 사회적 약자의 배려 등이 충분히 이뤄지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이 주체적으로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최 실장은 “아산시가 여성친화를 전면에 걸고 도시재생에 나선 것은 굉장히 진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도시재생사업은 일본,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활발하다. 나라마다 도시가 처한 상황이나 주택 문제가 달라 재생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정부와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일본에선 빈집을 허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빈집을 허물면 비용도 많이 들지만, 이산화탄소 배출 등 환경에도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도쿄의 세타가야구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 빈집, 빈방, 정원 등을 커뮤니티 시설로 만든다. 지역에서 필요한 공익시설이나 주민 교류 활성화를 위한 마을 카페, 커뮤니티센터, 놀이방 등 다양한 시설로 바꿔 지역 활성화에 이용한다. 일본은 정부가 빈집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해 매매·임대를 지원하는 ‘빈집 뱅크’를 만든 데 이어 빈집 조례(2014년), 빈집 대책 추진에 관한 특별조치법(2015년) 등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0년 이후 도시재생에서 ‘지역사회공헌협약’(Community Benefits Agreement, CBA)이 주목받고 있다. 김지은 서울주택도시공사 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이 쓴 ‘지역사회는 경제기반형 재생사업에 어떻게 참여하는가’라는 보고서를 보면, 공헌협약은 공공지원을 받는 대규모 민간개발사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협약에는 지역주민 우선채용 비율, 생활임금 보장, 부담 가능한 주택 확보, 공공시설 확충 등에 대한 목표치와 실행계획이 포함된다. 이 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이며, 지역 비영리단체는 이행 과정과 결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김 연구원은 “(도시재생 과정에서) 공헌협약은 공청회나 설문조사 등 소극적 주민 참여의 한계를 넘어 지역사회가 협상의 주체로 직접 참여하는 가장 진화된 형태의 주민 참여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불안한 미래’ 우리사회 지속가능성, 국민 22%만 “낙관”

1000명에게 물었다 ‘우리 사회 지속가능할까?’저출산·고령화·양극화·환경변화 공포“비관한다” 42% 달해 갑절 20대, 환경 빼곤 낙관지수 가장 낮아 미세먼지 등 환경 두려움도 증폭 “경제성장 중심 극복하는 것도 과제”“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 미세먼지 등 주변에서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할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비싼 아파트, 답이 나오지 않는 교육, 불안한 일자리 등을 생각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다니다 휴학 중인 김수미(가명·22)씨는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열심히 노력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도 있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중간층 정도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혼자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삶의 질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산다면 더 나은 삶을 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미래를 암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정치·경제·사회·환경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국민 10명 중 2명가량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와 60대에서 비율이 가장 낮았다. 대다수 국민이 다가올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데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갈 미래세대와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노년세대가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어 상당한 위기의 징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맡겨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패널을 이용한 온라인 방식으로 9월25~27일 실시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를 보면, ‘정치·경제·사회·환경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대해 21.7%만이 ‘낙관한다’고 응답했다. ‘비관한다’는 응답은 2배쯤 많은 42.1%, ‘보통’은 36.1%로 조사됐다. 미래를 바라보는 인식 차이는 세대와 계층에 따라 뚜렷했다. 20대(19%)와 60대(14.8%)에서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을 낙관한다고 선택한 사람이 가장 적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치·경제·사회보장·환경·외교 등 5개 분야별로 지속가능성에 대해 평가를 했다. 이 중 미래세대인 20대만 따로 살펴보면, 다른 연령과 견줬을 때 환경분야만 낙관한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고, 나머지 분야에선 대체로 낮아 20대의 미래 불안감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향후 귀하의 삶의 질은 어떨 것이라고 보느냐’는 물음에 20대의 30.4%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대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사회 구조에 대한 암담함을 느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제적 상황에 따라 격차가 상당히 컸다. 부유한 20대(중간층 이상)는 57.6%가 사회구조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봤지만, 가난한 20대(중하층 이하)는 23.1%에 그쳐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전체 계층별 분석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간층 이하에서 우리 사회 지속 가능성에 대해 19.3%만 낙관한다고 응답해 가장 낮았다. 중간층 이상과 중간층은 각각 24.5%, 24%로 조사됐다. 분야별로는 대기오염, 에너지 등 환경적 측면의 지표가 가장 나빴다. 지속가능성을 낙관한다는 응답이 12.4%로 경제 등 5개 분야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연령별로는 40대(7.9%)와 50대(9.7%), 성별로는 여성의 낙관 비율이 한자릿수로 낮았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박미영(44)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둘 있는데,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가 심하다. 최근 조금 좋아졌지만 미세먼지 심한 날은 무서울 정도”라며 “당장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 없고, 중국 등 외부 변수도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문제는 내 삶에서 조금 떨어진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서 피부로 생생히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을 사회관계망(SNS)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는데다, 최근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 등 환경운동가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기후변화의 위험성이 알려진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반면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등 정치적 측면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선 응답자의 32.6%가 낙관한다고 답해 가장 높았다. 2016년 촛불혁명 등 시민의 힘으로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하야시킨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미래와 관련해 가장 불안한 점을 묻는 질문에는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25.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우선 저출산·고령화는 정부도 심각성을 알고 재정을 전폭적으로 투입하고 있지만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1명대가 무너지면서 세계 유일의 ‘0명대’ 국가가 됐다. 고령화도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 노인빈곤율도 45.7%에 이른다. ‘자산·소득·교육 양극화 등 사회계층 간 갈등 심화’(25.2%)도 고질적인 불안요소다. 특히 20~30대가 저출산·고령화보다 사회계층 간 갈등 심화가 더 불안하다고 선택했다는 점이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금수저’ ‘흙수저’ 등 사회적 논란이 거세진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갈등을 묻는 질문에 43.9%가 ‘계층 간 갈등’을 꼽아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념(29%), 지역(6.4%), 세대(6.1%), 성별(6%), 남북(5.6%) 등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64.4%가 ‘경제성장, 좋은 일자리 등 경제분야’라고 응답했다. 성별, 연령, 계층에 상관없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등 정치분야가 13.7%, 환경분야 9.7%, 남북관계 등 외교 6.4%, 취약계층 보호 등 사회보장분야는 5.7%로 조사됐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경제와 성장,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없이는 우리의 미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뿌리 깊게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좀 더 지속가능해지기 위해 극복해야 할 점도 바로 이 성장 중심의 경제관”이라며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 사회가 당면한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같은 생태위기와 불평등이라는 사회경제적 위기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성장만을 숭배하고 승자가 모든 것을 챙기는 극단적 시장주의가 두 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2015년 지구촌 193개 나라가 유엔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합의했다. 기후변화 대응, 불평등 감소 등 17개 목표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달성해 나가면서 경제·사회·환경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한겨레신문사는 오는 23~24일 ‘대전환 :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주제로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을 연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관하는 이번 포럼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자리다. 서울 용산 서울드레곤시티호텔에서 열리는 포럼에선 세계적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특별강연을 하고, 도시 및 노동연구의 석학 리처드 세넷 영국 런던정경대학교 사회학 교수가 기조강연을 한다. 포럼에 앞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기업, 도시, 금융 등 3개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도전이나 문제의식을 담은 1부 기획기사를 3차례에 걸쳐 싣는다. 국민 여론 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분석한다. 이어 2부는 제러미 리프킨, 리처드 세넷 등 주요 연사의 사전 인터뷰 기사를 마련한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1701.html

‘고위공직자, 도덕성 보다 능력’…국민 69%는 동의 안했다

1000명에게 물었다 ‘사회적 쟁점’ 어떻게 생각하나?인사청문회 도입 검증 강화에도사회·경제 기득권에 부정적 인식72% “그 자리 차지할 자격 없다”한일관계 회복과 역사 청산 놓고‘과거사 선해결’ 3배 이상 많아‘자사고 필요’ 부정답변 15%포인트 많아 한국 사회는 갈등이 많은 곳이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위(2016년 기준)로 멕시코, 터키 다음으로 높다. 물론 갈등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낸다면 우리 사회 민주주의는 한층 성숙할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갈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켜 국가 경제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수많은 갈등을 피해갈 수 없다. 환경위기와 불평등, 복지 등 대부분 입장 차이가 나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주요 쟁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여론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맡겨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패널을 이용한 온라인 방식으로 9월25~27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갈등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우선 최근 한달 이상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을 꼽으라면 단연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문제다. 보수·진보의 갈등을 넘어 진보 세력 안에서도 입장 차이가 커 사회적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태다. 검찰개혁을 위해 조국 장관만큼 능력 있는 고위공직자가 없다는 의견부터 사모펀드 투자, 자녀 대학 입시 과정의 불공정 행위 의혹, 횡령·배임한 태광그룹 회장 탄원서 등 법 위반 여부 이전에 도덕성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느 정권이든 고위공직자 임명 과정에서 도덕성과 업무능력 문제는 늘 쟁점이 돼왔다.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 도덕성이 다소 약하더라도 능력이 받쳐주면 괜찮다’는 항목에 69.5%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즉, 국민 10명 중 7명은 도덕성을 고위공직자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여러 논란에도 고위공직자 도덕성의 기준으로 높여왔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 기득권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이다. ‘사회·경제적 상위 계층은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에 72.1%가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한-일 관계 회복’ 대 ‘역사 청산’, 무엇이 우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한일 갈등과 남북관계 개선도 우리에겐 큰 과제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 보복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까지 최근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심에는 언제나 역사문제가 있다. 한일 관계와 관련 응답자의 75.6%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역사 문제 해결이 선행 돼야 한다’고 답했다. 24.4%만 ‘일단 한일 관계 개선 뒤 역사 문제 해결’을 선택했다. ‘과거사 선해결’이 3배 이상 많은 셈이다. 과거사 해결을 원하지만, 앞으로 한일간 역사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고 보냐는 질문에 75.9%가 비관적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총리 등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자민당이 장기집권 하면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핵심인 통일을 두고는 입장이 팽팽했다. ‘남북한 격차가 크고, 비용이 들지만 통일이 필요하다’는 항목에 57.8%가 긍정적, 42.2%는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긍정 의견이 많았지만, 20대만 절반이 넘는 52.9%가 부정적이라고 했다. 통일이란 의제가 청년 세대에겐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는 아닌 셈이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뤄지지 등 어느 때보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가 높은데도 남북관계 전망을 묻는 질문에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앞으로 10년 뒤 남북한 관계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높았고, 좋아질 것 43.3%,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0.7%에 그쳤다. 기울어진 운동장, 특목고·자사고는 어떻게? 사회분야는 복지와 증세, 특수목적고·자산고 등 찬반이 가장 뜨거운 분야다. 먼저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는 항목에 절반 이상인 58.3%가 동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부정적 답변은 20대(60%)와 50대(66.9%)와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중산층 이상(63.2%)이 높았다. 복지가 확대되면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복지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어 우세했는데, 조금 주춤한 분위기다. 교육 문제와 관련해 ‘여러 논란에도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가 필요하다’에는 동감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답변이 57.4%로 동감한다(42.6%)보다 14.8%포인트 높았다. 특목고에 대한 부정적 답변은 20대(59.5%), 50대(63.4%), 계층별로는 중하층 이하(64.5%)에서 많았다. 특목고, 자사고는 일반고에 견줘 비싼 등록금에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 ‘기울러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환경 분야에서는 최저임금, 분양가 상한제, 친환경 에너지 등의 쟁점을 살폈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다소 힘들어도 최저임금은 지금보다 더 많이 올라야 한다’는 항목에 ‘동감하지 않는다’가 52.4%로 동감한다(47.6%)보다 4.8%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인 최저임금이 문재인 정부 들어 16.4%, 10.9% 등 두 자릿수 인상이 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졌다.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 격차 축소라는 긍정적인 영향과 함께 고용 불안이라는 과제도 남긴 탓이다. 가뜩이나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영세·중소업체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등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상한제는 다소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집값 안정화를 위해 필요하다’에는 66.5%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과열 분위기를 억제한다며 충분한 검토를 거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판단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분양가 상한제 찬성은 주택 실구매 연령인 30대(70.7%), 40대(71.8%)에서 찬성이 높았다. 국민 대토론회까지 열었던 원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기요금이 다소 올라가더라도 원전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에 긍정이 65.2%로 부정적 의견(34.8%)을 큰 폭으로 앞섰다.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오른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찬성이 많았다. ‘국민의 대표성 확대 등을 위해 국회의원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방식으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에 동감한다가 54.5%로 동감하지 않는다(45.5%)보다 10%포인트 높았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1702.html

세계기업 200여곳 “100% 재생에너지로” ··· 탄소제로화 거센 물결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 에너지전환 적극적기후위기 대응은 기업에 중요한 미래 생존전략협력업체에도 동참 요구, 무역장벽 될 우려 커중· 일기업도 “100%에 동참”, 한국기업은 없어환경보호 뿐 아니라 성장과 생존문제로 인식해야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자리 잡은 페이스북 본사 옥상 모습. 태양광 패널을 통해 3.6 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하고, 공원을 조성해 강한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100% 재생에너지로 가동될 수 있게 했다. 페이스북 제공페이스북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 지역.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이 초창기부터 사옥으로 사용하던 ‘클래식’이란 구역을 찾았을 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좋아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설립된 지 15년 만에 25억명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로 커간 회사답게 사옥을 계속 짓고 있었다. 페이스북 웨이라 이름 붙여진 바닷가 도로를 따라 유리로 외관을 꾸민 빌딩들이 줄지어 있었고, 새로 짓고 있는 곳도 여럿이었다. 기자를 안내한 인프라 홍보담당자 멜라니 로 (Melanie Roe)는 “본사의 모든 시설이 친환경적으로 지어지고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재 이곳 60여개 건물의 모든 전기는 3.6 메가와트(MW) 규모의 옥상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에서 나온다. 물도 순환시스템을 통해 75% 이상 재사용된다. 이곳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에 퍼져있는 데이터센터와 사옥에서 적지 않은 전기를 사용하는 페이스북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적극적이다. 최고경영자 마크 주커버그는 올 4월 데이터센터를 지원하는 6개 태양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공개했다. 이 가운데는 서부 텍사스에 4억1600만 달러(4982억원)를 들여 미국 최대 규모로 짓고 있는 프로스페로 태양광 발전소 (379MW)의 파트너 투자가 포함돼 있다. 에너지·환경·입지선정 총괄이사인 보비 홀리스 (Bobby Hollis)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모두 4기가와트(GW)의 재생에너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며 “내년 말에는 전 세계 모든 사옥과 데이터센터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9월 말 유엔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는 “대규모 멸종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질타했다.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로 바꿔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지구생태의 위기는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지구가 파국에 이르는 기온 상승이 0.5도 남았다는 것이 권위 있는 유엔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보고서의 결론이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향후 세계 전력량의 70~85%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등 온실가스 배출을 10년 내에 45% 줄이고, 2050년에는 0%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각성이 더해감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 제로(0) 목표를 선언하는 국가도 늘고 있고,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업체와 정부의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 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나서 페이스북의 사례는 기업이 더는 기후변화의 방관자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페이스북만 아니라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화석연료와 빠르게 결별하고 있다. 공업 및 상업용 전기수요는 전체 전력사용의 3분의 2에 이른다. 이런 노력은 ‘알이 100’ (Renewable Energy 100) 이란 국제 캠페인을 통해 결실을 거두어가고 있다. ‘알이 100’은 기업이 자체발전이나 구매를 통해 사용전략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을 약속하는 민간 캠페인이다. 2014년 국제환경단체 ‘기후그룹’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의 제안에서 출발해 8월 현재 194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월마트, 베엠베 등 글로벌 거대기업 다수가 참여하고 있다. 참여 기업의 전력 수요를 모아놓으면 세계 22위인 타이와 맞먹는다. 기후그룹의 샘 키민스 대표는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100%를 달성하겠다고 한 연도가 2026년이라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시에서 북동쪽으로 80여 킬로미터 떨어진 알타몬트 패스의 풍력발전 단지. 5천여개의 풍력 발전기가 있는 이곳은 80년대 초 석유 위기 시기에 지어져 한 때 미국 내 최대의 풍력단지였다. 이곳은 근처 실리콘밸리의 구글 같은 업체가 전기 구매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20여 기업이 2017년 말 현재 100% 목표를 달성했다. 9월 말 구글은 확장하는 데이터센터 수요에 맞춰 20억 달러의 투자가 예상되는 18개의 태양광 및 풍력 전력 구매계약(1.6 GW)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도 그 주 2024년까지 10만대의 배송용 전기벤을 구매해 배치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 2040년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웨덴의 이케아는 2020년까지 28개국 336개 매장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로 약속했다. 완성차 업체인 베엠베는 2020년까지 사용하는 에너지의 3분의 2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알이 100’의 초기에는 미국과 유럽 기업이 주도했으나 지난해부터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기업의 가입도 늘고 있다. 특히 일본은 2017년 3개에서 1년 사이에 13개로 늘었다. 주요 글로벌 기업이 에너지 전환을 열심히 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CSR) 이행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자는 것일 수 있다. 수지 측면에서 불리한 것도 아니다. 기술발전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싸져 여러 나라에서 ‘그리드페리티’(전기생산에서 화석연료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균형점)를 달성해 재생에너지는 그 자체로 경쟁력이 생겼다. 시장조사기관인 블룸버그 NEF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단가는 85%, 풍력 발전단가는 50%가 떨어져, 세계 3분의 2 지역에서는 석탄이나 천연가스 발전단가보다 싸졌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보폭은 이런 정도의 목표를 뛰어넘고 있다. 인류 최대 ‘메가트랜드’라 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기업 문화와 전략을 바꿈으로써, 규제의 위험은 피하고, 시장의 변화를 선취해 기업의 경쟁력과 지속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알이 100’ 확산이 기후변화 대응에 청신호인 것은 에너지 전환을 정부와 발전사업자의 공급확대에서 기업과 수요자가 견인하는 쪽으로 뒤집은 것이다. 기업이 요구함에 따라 각국의 정부와 정치권도 서둘러 에너지 전환에 불편한 제도를 개선하게 돼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늘어나고 가격이 내려가는 현상이 벌어진다. 김승완 충남대 교수 (전기공학)은 “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선언하고 태양광이나 풍력이 직접 투자하거나, 전략회사에 재생에너지 공급을 요구함으로써 수요와 재생에너지 증가가 선순환되도록 설계된 캠페인”이라며 “에너지 전환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의 본사 구글 캠퍼스. 저녁에도 많은 직원이 불을 켜 놓고 근무를 하고 있다. 마운틴뷰 구글 캠퍼스에서 저녁 무렵 직원들이 불을 켜 놓고 배구를 하고 있다. 이곳 구글 본사의 모든 전기는 재생에너지로 조달된다. 무역장벽 우려에도 불구 한국기업 움직임 더뎌 주목할 것은 이 캠페인에 참여한 글로벌 기업들이 부품과 소재협력업체에도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한 제품을 납품할 것을 요구하는 추세이다. 자신들만의 전환으로 끝나지 않고 확산하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실재 2020년까지 공급사슬 전체를 재생에너지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가진 애플의 담당 임원이 올여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정부, 국회 등을 방문해 자신들의 ‘크린에너지’ 정책을 설명하고 부품 협력업체도 신재생에너지 사용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애플의 방침에 따라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약속한 부품 협력업체가 세계에서 40여개에 이른다. 베엠베, 폭스바겐 등 유럽의 자동차 업체와 북미의 아이티 업체도 2016년 부터 국내 베터리 생산업체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베터리 납품을 요구하고 있다. 엘지화학 관계자는 “일부는 전환이나 전환계획을 요구하고, 프로젝트 수주의 조건으로 신새쟁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장은 “아직 강제성을 띠지는 않지만, 이런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무역장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기업들도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아직 국제적인 흐름에 비춰 소극적인 게 사실이다. 아직 알이100에 참여한 국내기업은 한 곳도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미국, 중국, 유럽 등 해외사업장에서 2020년까지 전력사용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실재 1년 사이에 재생에너지 사용이 빠르게 늘어 미국 오스틴 반도체 사업장 등 미국 내 사업장은 지난해 말 전력사용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하이닉스도 해외사업장에서 2022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에너지 전환은 더디기만 하다. 삼성전자 전체 전력의 65%를 사용하는 국내사업장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0.4% (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의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태양광, 풍력발전 확산의 기폭제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산업의 트랜드는 한국에선 여전히 생소한 이야기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 ‘인피니티 루프’란 별칭을 가진 애플 사옥은 옥상에 태양 전지판을 달아 1년 중 9개월은 추가 냉난방 전력이 없이도 운영할 수 있다. 애플도 현재 모든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기업이 직접 장기구매계약 할 수 있는 제도 개선 시급 이런 데는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여전히 비싸고 △기업 내부에 에너지 전환에 대한 공감대가 약하며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릴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 말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7년 말 현재 8% 수준으로 선진국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논란이 있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설치 잠재력은 건축물 옥상, 염해 농지 등 우선 공급 가능한 면적만으로도 충분한 편이며 해상 풍력도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컨설팅업체 삼성 KPMG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킬로와트시(kWh) 당 정산단가는 태양광 97.9원, 풍력 105.8원으로 유류( 179.8원), 엘엔지 (121원), 무연탄 (104.6원) 보다 낮거나 비슷하고, 유연탄(81.8원), 원자력(62.1원) 보다 높은 수준이다. 재생에너지라고 무조건 비싸다는 인식은 벗어날 때가 됐지만 그런데도 재생에너지 전기가 경쟁력을 가지는 규모의 경제에 이르려면 몇 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전기요금이란 ‘인센티브’가 작동하지 않으면 탄소세 부과와 같은 ‘페널티’가 기업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나 그러지도 못한 실정이다. 수익을 생각하면 기업이 망설이는 게 이해가 되지만, 명확해지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생각할 때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이진선 기후에너지캠페이너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앉아 기다리기보다 전력회사나 정부에 서한을 보내 요구했다”며 “전력회사는 큰 고객이 요구를 들어주게 되고, 정부도 없는 정책을 만드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올 4월 6개의 태양광발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공개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태양광 발전소 사진. 저커버그 페이스북 ‘닭이냐 달걀이 먼저냐’의 딜레마를 돌파하려면 기업이 자체 태양광, 풍력을 설치하는 외에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방법이 없는 제도를 시급히 손봐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해외동향에 민감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나옴에 따라 산업부는 녹색 요금제를 고안해 올 연말 시범실시할 계획이다. 이는 기업이 인증서를 구매해 그 부분만큼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기준으로 요금을 설계하는 것으로 기업이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장기계약을 맺는 기업구매제도(PPA)에 비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기여하는 정도가 약하다. ‘알이 100’에 열심인 페이스북, 애플, 구글 같은 기업들은 태양광, 풍력발전에 직접 투자하거나 장기 직거래계약을 통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전 중심의 독점 구조를 깨야 하는 일이어서 쉽지 않은 과제이다. 기업의 직접 전기구매 필요성이 높아지자 국회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7월 이를 가능케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야당의 비협조로 이 법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이상준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선 제도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기업의 인식개선이나 그리드페리티 달성도 빨라진다”며 “기업 피피에이가 장기과제라면 녹색 요금제에서 출발해 한전 등이 중간역할을 하는 ‘그린테리프’ 등 다양한 선택을 기업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짓고 있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 중 한곳. 건설 전부터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을 세우고, 유휴 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 페이스북 제공기후변화에 대응한 에너지 전환은 이제 기업의 장기적 생존 전략이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로 봐서도 일자리나 산업경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수출품목이고 고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 역시 전기차의 충전 인프라를 구성할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의 확대와 맞물려 있다. 기업, 시민단체, 정치권, 학계를 망라한 시민단체 에너지 전환 포럼의 홍종호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장)는 “기후변화 대응은 환경문제를 넘어 성장과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들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며 “큰 그림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 정부도 기업 피피에이나 전기차 의무판매제처럼 분명한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기후변화를 경영의 디엔에이로 녹여내 대응해야 시대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다. 멘로파크(미국) / 글· 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1699.html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에너지 전환은 필수”

[인터뷰] 보비 홀리스 페이스북 총괄 이사“기후변화는 우리가 대응할 매우 중대한 이슈, 한국기업도 의지를 갖고 나서면 방법 찾을 것보비 홀리스 페이스북 글로벌 에너지·환경·입지선정 총괄이사페이스북은 2011년 기후변화에 대응해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약속했고, 현재는 1년여 뒤인 2020년 말까지 14개에 이르는 글로벌 데이터센터와 사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100% 이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혼자만의 에너지전환에 그치지 않고 다른 기업의 동참을 끌어낸 점이 주목된다. 연면적 2만7천여평에 이르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유타주의 이글 마운틴에서 로키 마운틴 전력과 ‘스케줄 34’라는 재생에너지 구매 제도를 만들어 냈고, 앨라배마·조지아 같은 주에서도 비슷한 구매 제도를 디자인해 다른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바비 홀리스 글로벌 에너지·환경·입지선정 총괄 이사(사진)는 “경쟁자일지라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꾀할 수 있다면 우리가 만든 제도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홀리스 이사는 전 세계 사옥 및 데이터센터의 입지, 에너지 전략을 이끌고 있다. ―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어려움은 없나? “회사가 빠르게 커가고 있어 이에 맞춰 에너지 조달계획을 세우는 게 쉽지는 않다. 데이터센터 입지를 선정할 때 다양한 요소를 보는데, 에너지 측면에서는 전력 수요, 기존의 지역 인프라, 날씨 등 다양한 점을 살핀다. 이 가운데 전력조달은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보통 새로운 데이터센터가 가동되기 18개월~2년 전에 재생에너지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 왜 에너지전환에 앞장서는가? “기후변화는 우리가 대응할 매우 중대한 이슈이다. 지속가능성이란 목표를 향해가는데 전력 에너지전환은 필수적이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우리가 좋은 기업 시민이 되길 원하며, 복잡한 이슈를 이해하고, 지역사회에서 할 일에 대해 잘 알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 사용이 회사와 최고경영자의 중심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가치이길 기대한다고 본다.” ― ‘계약가격제’ 같은 거래제도를 창출해 다른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데. “우리는 발전회사와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의 여러 주에서도 거대 발전회사가 한 가지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어, 크고 작은 전력 소비자와 지역사회가 재생에너지를 채택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주 정부, 전력회사와 지속적인 협상을 벌여 재생에너지 구매가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 낸다. (그간 에너지전환이 어려웠던) 다른 기업은 우리가 창출한 계약가격으로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데이터센터가 있는 지역의 전력망 안에 구매한 전기가 들어오게 함으로써 그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가 늘어나도록 하고 있다.” ― 협상이 쉽지 않을 텐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페이스북의 사명은 공동체를 만들고 세계가 가까워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에너지전환의 측면에서 우리 주변과 파트너십을 맺어 좀 더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의 상대이자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 한국은 재생에너지가 가격이 비싸서 기업들이 에너지전환에 소극적인데. “기술이 빠르게 발달해 태양광과 풍력은 세계 여러 곳에서 비용 효율적인 선택이 됐다. 5년 전 재생에너지가 얼마나 비쌌던 가를 생각해 보면 많은 인식이 과거의 것이 됐다. 이게 지금 많은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솔루션을 찾으러 나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전문성과 노하우를 가진 이들이 열린 마음과 의지를 갖고 대화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멘로파크(미국)/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1700.html

[2018 아시아미래포럼 관련] [주주통신원의 눈] 우리 삶의 화두가 된 ‘불평등’ 문제 / 김종선

올해로 아홉번째를 맞은 ‘2018 아시아미래포럼’이 지난달 30~31일 이틀간 열렸다. 한겨레신문이 주관한 이번 포럼의 주제는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였다. 한겨레가 ‘불평등’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 것이다. 특히 이번 포럼에는 불평등 문제의 세계적 권위자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와 국내외 전문가, 기업인, 학자,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첫날 주요 인사의 강연은 물론이고 둘째 날 각각의 세션도 자리가 가득 찼다. 몇년 전 은퇴 후 <한겨레:온> 주주통신원이 되어 2016년부터 3년 연속 참석한 나에게 이번 포럼은 남다른 감회를 안겨주었다. 대학 시절 당시 가발공장 노동자가 많이 살던 서울 뚝섬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그 시대 ‘생각 있는’ 대학생들이 그러했듯 친구들과 함께 야학을 만들어 공장 일 하며 하루하루 사는 청소년들을 가르쳤다. 가난을 벗어나는 일도 차별받지 않는 것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것도 모두 ‘교육’의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소신에서였다. 그러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친구들이 잡혀가 고문받고 죽는 슬픔을 겪은 뒤 유학을 떠났다. 공부를 마치고 1985년 귀국했지만 80년 광주의 흔적이 사라지기는커녕 연일 시위 집회와 최루탄 가스가 되어 학교와 거리를 덮고 있었다. <한겨레> 창간 해인 1988년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심정으로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은 부동산 재개발로 원주민이 밀려나고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며 신흥 고가 아파트 단지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당시 우리 학교 주변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나의 수업 방식도 어떻게 하면 그런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자각할 수 있겠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도 그때는 어렵게 살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꿀 수 있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정말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피케티 교수와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가 자산·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교사 재직 시절 학생들과의 많은 상담을 통해 아이들이 가난과 차별은 물론 부익부 빈익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사회 현상에 상처받고 좌절한 예를 많이 보아온 나로서는 불평등이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관계의 질을 악화시킨다는 강연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별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등불이자 희망으로 30년을 뛰어온 ‘한겨레’가 이번에 준비한 포럼은 그래서 더 반갑고 주주로서 자랑스럽다. 탐욕의 권력을 몰아낸 촛불 시민들의 소망을 담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정책목표를 실행해가는 시점에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불평등’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한겨레>는 신문이 직면한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30년간 인간과 사회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의지를 세워왔다. 그런 연장선에서 삶의 기본 조건으로서의 ‘불평등’을 주제로 세계적인 포럼을 열고 성황리에 마친 것을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는 마음이다. 김종선 전 마포고등학교 교사 haohutu@hanmail.net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9279.html#csidx019608dcd8d53eda38b158d24aeb52d

[2018 아시아미래포럼 관련] [유레카] 불평등의 심리학 / 이창곤

왜 적잖은 사람들이 끼니를 채우고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미국의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는 인간에게는 몸속 위장이 아닌 ‘유령위장’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는 비만 환자들을 접하면서, 식탐은 배고픔만이 아니라 무기력증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허기사회>의 저자 주상윤은 이를 ‘밥그릇의 허기’라고 이름 짓고, 이런 정서적 식욕은 경제적 결핍 및 배제나 관계적 결핍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를 느끼는 ‘정서적 허기’로 가득 차 있다고 진단했다.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는 지난주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의 기조강연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고소득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저소득자들은 자신을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며 불평등이 정신건강에 끼치는 여러 악영향을 경고했다. 예컨대 불평등한 나라나 지역일수록 우울증과 비만 등이 발병할 우려가 크고,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며, 학교 내 집단 괴롭힘도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이자 공동연구자인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는 영국 런던의 한 지하철 노선을 따라 중심부에서 외곽지역으로 갈수록 해당 지역 주민들의 기대수명이 점차 줄어드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거주지에 따라 건강과 수명에 격차가 나타남을 보여준 것이다. 같은 포럼에 참여한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칼럼니스트 사와다 야스유키도 토론에서 고소득자에 견줘 가난한 사람들한테서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높게 나타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이들 학자가 밝힌 연구 결과의 공통점은 무얼까? 불평등한 사회가 빚어내는 갖가지 경험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생물학적으로 몸은 물론 정신과 심리에도 뿌리내려 뚜렷한 흔적을 새긴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생물학적 뿌리내림’이라고 할 수 있다.기실 불평등 사회는 불가피한 필연의 산물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이 선택한 체제와 정책, 즉 정치의 결과다. 우리가 다른 상상,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한다면 바꿀 수 있으며 적어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몸과 마음에 불평등의 경험이 착근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상상과 다른 정치를 선택하게 할 수 있을까’다. 바로 이 점에서도 우리는 불평등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감수성을 비롯한 심리적 측면을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8742.html#csidx5ac4295b8e2f431a9c8dc0a219a6203

[2018 아시아미래포럼 관련] [왜냐면] “평등한 것이 이득이다” / 신영전

신영전한양의대 교수·사회의학 지난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세계 상위 1%가 1980~2016년 성장의 과실을 약 27% 챙겨간 데 반해, 하위 50%는 겨우 12%를 차지하는 데 그쳤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계 상위 1%의 부 집중도는 2050년에는 약 39%로 높아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제시했다. 이 불평등한 사회가 만들어낼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가 실증적인 수치로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평등의 정도가 낮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에 속한 이들의 기대수명, 영아사망률, 학력수준, 자살률, 살인율, 약물중독, 수감자율, 상호신뢰도 등 대부분의 사회 지표들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미국 50개 주에 적용해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였다. 왜 그럴까? 미국 하버드대학 이치로 가와치 교수는 소득불평등이 국민의 건강과 같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로를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소득 불평등이 인적 자본에 대한 저투자를 야기하고, 둘째는 사회조직을 분열시키고 셋째, 이로 인해 생겨난 좌절과 같은 직접적인 심리학적 통로를 통해 좋지 못한 건강상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암울한,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피케티 교수를 비롯하여 이 회의에 참석한 국내외 학자들의 대답은 서로 조금씩 다른 듯하지만 결국 한가지였다. 이른바 우리 공동체의 정치구조를 역동적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노동세력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참여와 연대를 통한 광범위한 정치세력화와 투명성과 신뢰에 기반을 둔 정치적 리더십의 구축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러한 정치적 역동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낼, 실증적이고 견고한 과학적 ‘사실’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추상적 논리가 아니라 실제로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낸 나라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여러 가지 도전을 맞이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민주주의 수준, 남녀평등 수준, 인간개발지수, 국가별 경쟁력, 국민들 스스로 행복하다고 답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엄마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무엇보다 잘살면서도 불평등이 가장 낮은 나라 바로 그런 나라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유럽의 북쪽이다. 그들의 행복 비결을 찾기 위해 만났던 그곳 학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우리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등이란 인간의 존엄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라도 달성해야 할 ‘당위’로만 여겼던 내게 그들의 대답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래, 맞다. “평등한 것이 이득이다.” 1000원 내고 페트병에 든 물을 각자 사 먹는 것보다 500원을 세금으로 내고 어디서나 안전한 식수를 마실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좋고, 혼자 내 노후를 준비하느니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 아이도 나 혼자 키우는 것보다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 나와 아이에게 모두 “좋을 뿐만 아니라 이득”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복지는 공구(공동구매)”라고. 결론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은 평등한 사회가 그들에게 이득이었기에 그것을 선택했고, 어느 나라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듦으로써 마침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국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늘 비결은 이렇게 간단한 진실 속에 있는 법이다. 어느새 오이시디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국가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에 “평등한 것이 이득이다”라는 말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장 절박하게 받아들여야 할 진실인 셈이다. 아니,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미국 인권운동가 오드리 로드의 말처럼 우리의 미래 생존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평등해질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8932.html#csidxdb1ce71cccbb576a99e3d3a51d6df75

[2018 아시아미래포럼 관련] 박용만, ‘기업활동 규제 완화-취약계층 직접 분배’ 빅딜 제안

대한상의 회장, 전국회장단회의서 제시 “생명·안전 등 빼곤 규제 없애고 세수 초과분 소득 낮은 곳 보전” 최저임금보다 출산 대폭 지원 찬성 부자증세 긍정적…법인세 인상 반대 기업의 복지국가 강화안으로 주목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5일 광주에서 열린 전국 상의 회장단 회의에 앞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의 제공경제단체 대표 격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규제개혁과 (정부의) 직접적 분배 확대를 핵심과제로 제시하고, 분배 재원 마련을 위한 부자 증세에도 전향적인 태도를 밝혔다. 개혁·진보 진영이 요구하는 분배 확대 및 부자 증세와 보수·경제계가 요구해온 규제개혁(완화)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른바 ‘빅딜’식 접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5일 광주에서 열린 ‘2018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우리가 할 일은 중장기 미래를 예견하고 올바른 선택에 나설 수 있게 국가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10~20년 중장기 시계의 경제 밑그림을 그리고, 어젠다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상의 회장단 회의는 1년에 한번씩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망라한 18만 상공인 대표가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박 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기반의 재구축”이라며 “누구나 자유롭게 혁신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생명·안전 등의 필수규제를 제외한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과 변화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아야 한다”며 “분배 방법은 민간의 비용부담을 높이기보다는 직접적인 분배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재원 조달에 대한 고민과 공론화를 거쳐 큰 그림을 갖고 분배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제시한 민간의 비용부담을 높이는 분배방식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반발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의미한다. 또 직접적인 분배는 이날 여야정 상설협의체가 합의한 저출산 해결을 위한 예산 확대와 같은 방식을 뜻한다. 박 회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예상보다 더 걷힌 세수를 이용해 소득이 낮은 곳을 보전하는 게 직접적 분배 정책”이라며 “조세를 통한 사회안전망의 취약점을 개선하는 분배정책을 하면 경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정부의 재정확대에 찬성했다. 상의 관계자는 “내부 논의에서는 출산장려를 위해 신생아를 낳으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달 50만~100만원을 지원하는 획기적 방안까지 검토 대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이해관계를 떠나 외면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모든 역량을 한데 모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는 분배를 위한 재원 조달 방안으로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 증세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상의의 입장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상의 관계자는 “법인세 증세는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 곤란하지만 최상위 계층 중심의 소득세 증세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타개할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겨레>가 최근 주최한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한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덴마크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성장을 견인하는 포용전략 차원에서 사용자를 대표하는 경제단체가 생산·분배 구조 쇄신을 위해 힘을 합쳤다”며 “덴마크 중도우파 정부의 긴축정책에 대해 사용자단체가 복지국가 강화를 요구하면서 사회적 타협에 기초한 불평등 극복 포용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898.html#csidxd3710dc5051b041a2a5f486c1218b3b

[토요판 커버스토리] 피케티 “불평등에 눈감은 정치, 그 블랙박스 열고 싶어”

[토요판] 커버스토리‘불평등 연구자’ 토마 피케티1971년생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는 스스로를 ‘포스트냉전세대’라 부른다. 포스트냉전세대인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자유롭게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게 그의 강한 믿음이다. 피케티 교수가 지난달 30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300년 자본주의 역사에 담긴 불평등의 동학을 담아낸 저서 <21세기 자본>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킨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4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가 새로 던진 화두는 ‘불평등의 정치’였다. 지난 30일 <한겨레>는 그를 만나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90% 팩트(사실)와 10% 정치’. 5년 전인 2013년 <21세기 자본>을 출간해 단숨에 ‘스타 경제학자’라는 별명을 얻은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는 이 책의 내용을 크게 둘로 나눠 설명하곤 했다. 전체 분량의 90%는 300년 동안 자본주의가 걸어온 실제 역사이고, 마지막 10% 분량에 소개된 정책 제안은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자신은 오로지 데이터에 충실하게 불평등 현실을 드러내는 쪽에만 힘을 실었다는 뜻이 담겼다. 그로부터 5년. 피케티의 발걸음은 ‘10%’ 쪽으로 성큼 옮겨가 있는 듯 보인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파리경제대의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지난해 연말 펴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긴 했으나, 개인적 관심사는 정치 영역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지 오래다. 그는 1948~2017년 프랑스·영국·미국의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라는 논문을 올해 초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불평등한 현실 자체보다는,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게끔 가로막는 정치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 독일과 일본 등 7개 나라의 선거 결과를 추가로 분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정치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보강·확대할지언정 불평등 연구의 방법론과 분석틀은 빈틈없이 완성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의 표현일까? 아니면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 정치(세력)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반영한 것일까? 머릿속을 맴도는 궁금증을 안은 채, 2014년 9월에 이어 4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피케티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피케티는 지난달 30~31일 이틀간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행사에서 기조강연을 하려고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그의 기조강연 시간엔 약 600석의 행사장이 빼곡하게 들어찼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해 서 있는 방청객도 많았다. 인터뷰는 행사장인 서울 용산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기조강연과 점심식사를 마친 뒤 진행됐다. 지난달 30일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실질적인 정책 변화 없지 않나” “미안한데, 그건 묻지 말아달라.”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 ‘당신 책이 엄청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냐’며 무심코 던진 첫 질문에 피케티의 반응은 단호했다. 한국 독자들의 열띤 반응(11만부 판매)에 대한 생각을 가볍게 물어도 “4년 전에 다 했던 얘기다. 되풀이해서 말하고 싶진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이해되는 구석이 없진 않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21세기 자본>은 43개국에서 번역 출판돼 약 250만부가 판매됐다. 이렇다 보니 온갖 가십성 기사도 끊이지 않는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마존 킨들버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문장 5개가 모두 앞부분 26쪽까지에 들어 있다며 정작 사람들은 전체 분량의 단 2.4%만을 읽었을 것이라고 조롱하듯 추정하기도 했다. ―불평등 확대가 현대 자본주의에 심각한 위험이 되리란 진단이 등장한 지 10년도 훌쩍 넘었다. 요즘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류 성향의 국제기구들조차 불평등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라는 정책 권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불평등 문제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확실히 변한 건가? “천만에! 국제노동기구(ILO)라면 모를까, 나머지 국제기구는 죄다 보수적이다. 입으로는 불평등에 관심 있다고 떠드는데, 진짜 관심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실질적인 정책 변화가 없지 않나.” 피케티는 대표작 <21세기 자본>이 분배 문제를 경제학의 중심 의제로 다시 돌려놓으려는 시도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현대 주류 경제학이 분배를 경제학의 연구 대상에서 사실상 깔끔히 지워버린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약 150년 전 출간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따온 듯한 제목을 붙인 이유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43개국 250만부 팔린 ‘21세기 자본’ 분배 문제 경제학 중심의제로 올려 300년간 역사 데이터 분석 토대로 자본주의 불평등 동학 존재 밝혀내 기술혁신 과소평가 등 한계도 뚜렷 ‘불평등과 젠더 관계 외면’ 비판도 “출산율 낮으면 상속 중요성 더 커져 여럿에 줄 것 한명에게 몰아주는 셈” 프랑스·영국·미국 선거 결과 다룬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 논문 화제 “나의 관심사는 불평등 심화되는데 재분배 요구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 <21세기 자본>의 핵심은 20여 나라의 300년간의 역사적 데이터를 분석해 자본주의 내부에 불평등을 확대하는 동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20세기의 일부 예외적인 기간을 빼면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언제나 웃돌았다는(r>g) 결론을 얻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돈다는 얘기는 자본 소유자들이 경제 전체 평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윤을 챙겨간다는 뜻이다. 한 나라의 부가 늘어나는 방법은 두가지다. 일을 해 벌어들인 소득을 저축하거나, 아니면 과거에 축적된 부를 불려나가거나. 분석 대상이 된 모든 나라에서 과거의 부, 물려받은 부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게 피케티의 결론이다. 불평등이 확대되는 근본 원인이자, 땀과 노력보다 핏줄과 태생이 더 중요한 세습사회의 귀환이다. <21세기 자본>이 세상에 나온 뒤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다. ‘피케티 신드롬’이란 말도 등장했다. “앞으로 10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학 책이 될 것”(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라는 예견과 ‘21세기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 식의 딱지 붙이기가 공존했다. 피케티의 작업에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전통적인 경제이론과는 달리 ‘자본’ 개념에 금융자산, 주식·채권 등을 모두 넣어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기술 발전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등 적잖은 문제점도 드러냈다. 자연스레 여러 각도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4년 ‘피케티의 오류’를 조목조목 짚는 기획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하지만 같은 해 파이낸셜 타임스는 <21세기 자본>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학문적 엄밀성을 결여한 비난이나 오해를 제쳐놓는다면, 진짜 뼈아프다고 느낀 비판이 있었나? 있었다면 어떤 비판이었나? “특별히 뼈아픈 대목은 없었다. 책에 대한 반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이제 와서 <21세기 자본>을 다시 쓴다고 해도 똑같이 쓸 거다. 물론 5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새로운 나라나 이슈는 조금 추가할 수 있을 테지만.”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회식에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얼치기 수학’이라는 비판 피케티는 1990년대 2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의 대학(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짧은 교수 생활을 했다. 2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간 이유를, 그는 훗날 “미국 경제학의 수학적 추상성에 환멸을 느껴서”라고 밝혔다. 그의 <21세기 자본>은 복잡한 수학모델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역사적 서술에 집중했다. 그는 책 출간 뒤 한 외신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두꺼운 학술책을 읽지 않는데 이 책을 다 읽고 이해했다”며 “복잡한 수학모델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소득과 부, 불평등과 자본이라는 주제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는 2015년 한 논문에서 우리말로는 ‘얼치기 수학 흉내 내기’쯤으로 번역될 ‘mathiness’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피케티를 포함한 일부 연구자들의 작업을 비판해 화제가 된 적 있다. 겉으로는 수학모델을 거부한다면서 실제로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방법론을 사용했다는 비아냥의 의미로 읽힌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한 당신 입장에선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을 법하다. “(짐짓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글쎄… 나를 겨냥한 비판은 아닌 것 같다.” 그를 향해 ‘젠더의 렌즈’가 빠져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평등과 젠더의 관계라는 문제의식을 처음부터 빠뜨렸다는 비판이다. “‘고루한(old-fashioned) 남성 경제학자’일 뿐”이란 혹평을 쏟아내는 일부 페미니즘 경제학자들도 있다. ―억울한가? 지나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드나? “불평등 연구의 방향이 젠더 문제를 포괄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 건 분명 맞다. 다만 내 책(<21세기 자본>)엔 제약이 많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 책 분량이 1만페이지라도 된다면 모를까. 겨우 1천페이지(프랑스어판) 정도인데….” ―어떤 제약을 말하는 건가? 자료상의 제약이라는 뜻인가? “역사적으로 여성이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게 된 건 얼마 안 된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여성은 재산을 소유한 적이 없다. 앞으로는 연구가 진척될 수 있겠으나, 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19세기에서 21세기까지 부와 재산의 집중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이다. 젠더와 관련된 불평등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양해해달라.” ―한국은 물론이고 성평등 정도가 높다는 미국이나 유럽에서조차 ‘유리천장’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여성의 잠재력을 적극 활용한다면 성장 능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신의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경제성장률(g)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자본수익률(r)과 경제성장률의 격차가 줄어들면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다는 결론도 가능할 텐데? “성별 불평등은 전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늘어난다 치자.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오를지는 모르나 영구적이지는 않다. 그보다는 출산율 저하가 더 심각한 이슈다. 출산율이 낮다는 얘기는 유산 상속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는 뜻이다. 여럿에게 나눠줘 분산할 걸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셈이니까.” 부모는 ‘68혁명’ 때 극좌 정치조직 활동 최근 그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불평등에 맞서는 정치적 대응이다. 왜 민주주의는 불평등 해소에 실패했는가, 불평등이 확대되는데도 왜 강력한 재분배와 복지국가 요구가 유권자들 사이에 불붙지 못하는가 등. 피케티는 인터뷰 당일 오전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한 ‘불평등: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에서도 이와 관련한 최근의 연구 결과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세계화의 진전과 교육의 확대로 유권자 구성이 점차 변화하면서 서구 주요 나라의 정치지형이 고학력 엘리트(브라만 좌파) 대 고소득·고자산(상인 우파)의 대립구도로 점차 변했다는 게 요지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치적 노력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배경이다. ―고학력 엘리트냐, 고소득·고자산 엘리트냐는 흥미로운 분석이다. 다만 경제적 지위에 따라 교육 기회마저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학력 집단과 고소득·고자산 집단을 대립시키는 게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도 든다. “결국은 실증의 문제다. 분석 대상을 넓혀가는 중이다. 좀더 지켜보자. 나의 주된 관심사는 불평등 심화가 재분배 요구로 이어지지 않는 분명한 현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의 최근 작업은 불평등 연구라기보다 ‘불평등 정치’의 연구라는 느낌이 든다. 경제학자로서 정치 영역에 이토록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는 이유가 궁금하다. “같은 얘기다. 정치를 블랙박스라 생각해봤다. 불평등이 이 정도로 심해졌는데도 왜 정치적 대응이 미온적인지 늘 궁금했다. 정치라는 블랙박스를 꼭 열어보고 싶었다.” 피케티는 현실 정치와 비교적 거리를 두지 않는 편이었다.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선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의 경제자문 일을 맡았고, 2012년엔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를 지지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영국 노동당, 스페인의 좌파정당 포데모스의 정책자문단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불평등 문제에 대한 원초적 관심, 나아가 현실 정치에 대한 ‘애정’을 그의 개인사와 묶어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피케티의 아버지는 기술자,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두 사람은 68혁명 당시 ‘노동자 투쟁’(Lutte Ouvri?re)이란 이름의 극좌 트로츠키주의 정치조직에서 함께 활동했다. 하지만 피케티는 “(불평등 연구는) 이념적 신념이 아니라 순수한 학문적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흥미로운 점은 피케티가 과거 영국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글로벌 자산세’와 관련한 질문에 “나는 시장의 힘을 믿는 시장주의자”라고 말하면서 “(글로벌 자산세 도입은) 자본주의 체제에 매우 실질적 변화, 곧 영구혁명”이라고 말한 점이다. ‘영구혁명’은 러시아혁명 당시 활동가 레온 트로츠키의 핵심 정치이론이자 그의 대표작 이름이다. 가로축은 전세계 인구를 소득 수준에 따라 100개의 집단으로 나눈 것을, 세로축은 각 집단의 평균적인 소득증가율을 뜻한다. 신흥국들의 부상으로 전세계 중하위 집단의 증가율은 높았으나, 주로 미국과 서유럽의 중하위 계층이 포함된 전세계 중상층의 증가율은 낮았다. 전체 윤곽이 코끼리 모양을 띤다 하여 ‘코끼리곡선’이라 이름 붙였다.“글로벌 금융등록제, 충분히 가능” ―문제는 ‘어떻게’다. 불평등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해법은 뭔가? “결국 세금이다. 소득세 누진율을 더 올려야 한다. 미국이 연방 소득세 최고세율을 91%까지 올렸을 때도 미국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았다. 누진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1950~70년대 시기에 생산성 증가율이 지금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에서 말한 ‘글로벌 금융등록제’(financial register)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 가능하다고 보나? “획득한 정보를 남용하지 않으리라는 신뢰만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준다면 충분히 잘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개별 국가의 행정체계랑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피케티는 전세계 소수의 최상위 계층이 보유한 자산에 물리는 ‘글로벌 자산세’의 기초를 닦기 위해 금융자산의 소유권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글로벌 금융등록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토지와 부동산처럼 금융자산에 대해서도 일종의 ‘등기’ 제도를 도입해 재산 도피와 세금 탈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얘기다. 전세계 조세회피처에 숨겨진 자산이 세계 총생산의 10%를 넘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글로벌 차원의 탈세가 각국 정부한테서 약 3500억유로(450조원) 규모의 조세수입을 부당하게 앗아간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피케티는 현재 대부분 나라에 존재하는 증권예탁기관의 역할을 강화한다면 글로벌 금융등록제가 원활하게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부분 나라에서 증권예탁기관은 민간기관이라 정보 제공을 강제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나?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은닉 자산이 서류상 회사에 등록돼 있다. 형식상의 주인과 실제 소유주가 다른 경우도 많다. 한계가 분명하다는 반론도 있는데? “기술적으로 전혀 복잡하지 않다. 반대 주장은 이데올로기의 문제일 뿐이다. 글로벌 등록제 도입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일 뿐이다.” “결국은 세금…누진세율 더 높여야” “소득세 91%까지 올렸을 때도 미국 자본주의 붕괴하지 않았다” 금융자산에도 ‘등기’제도 도입 주장 한국사회 불평등 대책 조언은 교육 접근성 확대와 과세 투명성 “최근 한반도 화해 분위기 놀라워 냉전 벗어나 불평등 논의할 적기” “드러난 문제만 제대로 고친다면 세상은 더 나은 방향 갈 수 있다” “어느 선까지 불평등 수용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정치의 몫” 피케티한테선 경제 논리가 사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말하자면 ‘경제 결정론’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으려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는 20세기 동안 일시적으로 불평등이 완화됐던 조건은 전쟁, 혁명, 공황 등 세가지였다고 말하면서 “독특한 환경”이란 표현을 썼다. 하지만 역시 그의 입에서 나온 얘기의 끝은 ‘정치’였다. “전쟁이 불평등을 완화한 게 결코 아니다. 전쟁이 정치구조를 변화시켰을 뿐이다.” ―불평등과 맞서는 일은 한국 사회의 최대 과제다. 불평등 해소 대책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조언을 한다면? “과세 등 정책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고 교육 접근성을 확대하라는 것, 두가지다. 교육 분야에서 더 많은 공공재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불평등, 특히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젊은 세대의 불만이 높다. 해법이 뭘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무엇보다 조세 체계가 젊은 세대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다. 사회의 소중한 자원들이 젊은 세대로 원활하게 흘러들도록 조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피케티는 인터뷰 전날인 지난달 29일 저녁 아시아미래포럼 준비위원회가 마련한 환영만찬에서 한국 사회에 인상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인사말을 통해 “4년 전 한국에 왔을 땐 정치적 긴장감 같은 게 느껴졌고 냉전적 사고에서 내 책에 대한 공격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14년 9월 <21세기 자본> 국내 번역본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바 있다. 이어 그는 “최근의 한반도 화해 분위기가 놀랍고 매우 감동적”이라며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냉전에서 벗어나 불평등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적기”라고 말했다. ‘포스트냉전세대’라는 자의식 어느덧 대화는 끝자락에 이르렀다. <21세기 자본>의 첫 구절은 1789년 프랑스혁명 인권선언 제1조에서 끌어온 문구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인권선언 제1조의 이 문구 앞에는 ‘모든 사람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문장이 있다. ―인권선언 제1조 문구 일부를 <21세기 자본>의 첫 구절에 담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런가? “사람들이 평등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인권선언 제1조는 사실 두 문장으로 나뉜다. 첫째 문구에서 평등한 권리를 말하면서, 둘째 문구는 특정 상황에선 불평등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0년도 훨씬 전에 나온 글이지만, 여러 의미에서 제1조는 매우 흥미롭다.” ―정확히 무엇이 흥미로운가? “현대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수용하는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단, 공동의 이해가 있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시대에 따라 불평등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이유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 과연 어느 선까지 수용 가능할까, 그 선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내 연구작업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지난달 30일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1971년생인 피케티는 스스로를 ‘포스트냉전세대’라 부른다. 1989년 18살의 청년 피케티가 파리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간 직후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청년 피케티는 지체없이 혼돈의 동유럽을 마음껏 여행하며 사회주의의 음울한 현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젊은 날의 이런 경험 때문일까. 피케티는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포스트냉전세대인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자유롭게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흑백 논리만을 강요하는 냉전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오로지 ‘자본주의의 문제’로 불평등을 진지하게 바라보자는 얘기다. 자신에게 덧씌워진 ‘색깔론’을 벗어던지고 싶은 바람도 분명 있었을 터다. ―내년이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다. 30년 사이 불평등은 훨씬 확대됐다.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20년 가까이 매달려온 학자로서, 만일 30년 전 동유럽의 사회주의 현실을 둘러보던 10대 후반의 청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나? “(한참을 생각하다가) 글쎄… 30년 전 내가 자본주의에 정확히 무엇을 기대했는지, 어떤 것을 예상했는지 모르겠다. 뭐라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결코 현재가 실망스럽거나 아쉽거나 하지는 않다. 그동안 세상에 대해 많이 배웠다. 축적한 지식이 이롭게 사용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연구자로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성을 계속 강조할 뿐이다.” “내가 비관주의자라고?” ―이제껏 당신이 비관주의자일 거라고 짐작해왔다. 오전 기조강연에서 자신을 ‘합리적 낙관주의자’라 말해 조금 놀랐다. “내가 비관주의자라고? 전혀 아니다. 완전한 오해다.” ―눈앞의 불평등에 분노하고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에 비판적이면서도 미래를 낙관하는 근거가 뭔가 궁금하다. “글쎄… 2세기 전과 현재를 비교해봐라. 세상은 더 좋아졌다. 식민주의도, 노예제도도, 공산주의도 없지 않나. 드러난 문제를 고친다면 세상은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난 이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무역이나 자본 이동도 그 자체로선 나쁜 게 아니다. 재분배라는 보다 큰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얘기다. 자유무역이나 자본 이동 하나에만 매달리는 건 문제다. 시각을 바꿔야 지속 가능하고 평등한 발전이 가능하다.” 피케티는 오전 기조강연을 마치면서 “다음에 만날 땐 지금과는 다른 정치지형이라면 좋겠다”고 스치듯 말했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 턱없이 부족한 오늘날의 전세계 정치지형 일반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표현으로 들렸다. 불평등이라는 어둡고 칙칙한 주제에 매달린 인터뷰를 끝내면서도 그가 내뱉는 이야기의 색조는 여전히 곱고 밝았다. 얼굴 가득한, 다소 시큰둥한 표정과 낙관적 메시지를 분주히 전하는 빠른 입놀림. 어울릴 듯 말 듯 묘한 대조였다. 절망스러운 현재를 끝낼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는 듯이.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649.html#csidx75191cdc9566813aeae984cb370db7a

[윌킨슨 교수 부부와 건보공단 이사장 대담] 불평등은 ‘대기오염’과 비슷...상·하위계층에 다 해로워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오른쪽부터),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불평등은 사회를 어떻게 병들게 할까.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기대수명이 낮아지고, 우울증과 정신질환 유병률이 높아진다. 감옥 수감률과 교도관 등 감시노동자의 비중이 높다.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부유층일수록 자기도취에 빠져 과시적인 소비행태를 보이고, 빈곤층은 좌절감과 절망감이 커져서 사회를 더욱 증오한다. 이는 사회통합과 사회의 계층 간 이동성을 저해한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의 이러한 주장은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그와 부인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가 함께 펴낸 <더 스피릿 레벨>, <더 이너 레벨> 등의 저서는 건강불평등 문제를 다룬 역작이다. 윌킨슨 교수 부부는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9회 아시아미래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윌킨슨 교수 부부를 만나 ‘불평등’을 주제로 대담했다. 영국에서 보건학을 공부하고 서울대 의과대 교수를 지낸 김용익 이사장은 유학 당시 경험했던 마거릿 대처 정부의 탄광노조 탄압, 대표적인 건강불평등 보고서로 꼽히는 ‘블랙리포트’,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학문적인 동지이자 “아내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먹는 걸 좋아하는” 부부인 윌킨슨과 피킷 교수는 사이좋게 나눠서 답변을 했다. 대담은 건보공단 주최로 열린 윌킨슨 교수의 강연회에 앞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김용익(이하 김)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불평등’이 금기어였다. 독재정권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 문제는 조금 낯선 주제다. 왜 우리가 불평등을 생각하고 토론해야 하는가? 케이트 피킷(이하 피킷) 영국에서도 굉장히 오랜 기간 불평등이 정치적 의제에 포함되지 못했다.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집권 체제에서도 ‘빈곤’은 이야기했지만 ‘불평등’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리처드 윌킨슨(이하 윌킨슨) 불평등은 오랫동안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토니 블레어는 불평등이 1930년대의 일이라고 치부했다. 1990년대에는 하위계층도 텔레비전을 소유하고, 중앙난방이 되는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불평등은 우리에게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지위’는 불평등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변수다. 지배·종속 관계가 심리적·사회적으로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 김 한국에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불평등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절반을 점유하는 등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당신은 불평등이 취약계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이나 상위계층에도 해롭다고 주장한다. 윌킨슨 하위 10%뿐만 아니라 상위 10%도 다 영향을 받는다. 하위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영향이 더 크지만, 그렇다고 상위계층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보다 평등한 사회라면 (중산층이거나 부유층인) 내 수명이 더 길어지고, 자녀의 성취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폭력의 피해도 줄어든다. 피킷 미국 하버드대의 한 동료는 “불평등은 마치 사회적인 오염 같다”고 말했다. 대기오염과 비슷하다. 부유층이 근사한 집과 차를 가졌다 하더라도, 바깥에 나가면 대기오염 물질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 불평등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철조망을 치고 격리된 좋은 공간에 살면서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낼 수는 있겠지만, 결국 (불평등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김 불평등한 사회가 일으키는 병적인 사회현상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피킷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 격차가 더 커진다. 그 결과 사회관계가 저하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시민 참여도가 낮아져 투표율이 떨어지고 조직 참여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노인이나 장애인 등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고, 아이들 사이에 왕따가 늘어난다. 상호존중이 없기 때문에 폭력 성향도 증가한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 신소영 기자 윌킨슨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멕시코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에서는 심지어 (국민들이) 서로를 두려워하게 된다. 집에 방범창과 방범문을 설치하고, 교도관·경찰 등 감시 노동자가 증가한다. 하위계층에서는 사망률이 높아지거나 암이나 호흡기질환 발병률이 높아지는 문제가 함께 일어난다. 김 <더 이너 레벨> 등 당신의 저서를 보면, 불평등이 건강을 나쁘게 하는 1차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통합과 사회 계층 이동성 등을 저해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현상이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는가? 피킷 불평등할수록 사회 이동성이 둔화되는 상관관계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증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미국에 가서 아메리칸드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덴마크나 노르웨이에 가야 통한다고 우리는 이야기한다(웃음). 김 한국에서도 1950~60년대에는 노력하면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다는 꿈이 있었는데, 경제가 발전해 국가 전체의 소득이 늘어난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속한 계층을 벗어날 수 없는 모순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윌킨슨 영국에서도 소득 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 이동성이 현저히 감소했다. 이제는 ‘내가 뭘 했느냐’보다는 ‘부모의 소득’이 결국 나를 결정짓는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불평등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으로 넘어갔다. 윌킨슨 교수는 “불평등이 결국 경제성장도 저해한다”며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특허 출원이 줄어들고 교육 수준이 저하하면서 사람들이 덜 창의적, 덜 혁신적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 내부의 신뢰도가 높고 폭력성이 낮은 국가일수록 기업이 경영을 하기도 더 수월하다”고 덧붙였다. 김용익 이사장은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라며 “한국에서도 최근 ‘포용적인 사회라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가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김 그렇다면 좀 더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피킷 한가지 답은 없다. 다차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크게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누진세 도입과 같은 재분배의 문제다. 보다 강력한 복지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 세전소득에 대한 부분인데 경제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결속력 있게 만들고, 임원한테 가는 보너스 비중을 낮춘다거나 하는 등의 방식이 가능하다. 윌킨슨 불평등을 조금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회운동의 힘이었다. 스웨덴을 예로 들자면, 사민당이 40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불평등이 상당히 해소되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경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기업 이사진에 노동자들이 대표성을 갖고 참여하게 한다.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어야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이 수치로도 확인된다. 최근 불평등 문제에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폭염, 홍수 등의 문제가 사회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 수십만명이 숨졌다. 보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행동에 더 나선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신소영 기자 김 이제 건강·보건의료 문제로 넘어가서, 건강 형평성을 위한 영국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고 싶다. 참고로, 한국은 영국과 달리 사회보험 방식으로 건강보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정된 고용상태를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 제도의 특성상, 국민연금만 해도 여전히 많은 국민이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 문제가 생기는 측면이 있다. 피킷 우리는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보편적이고 무상으로 제공되는 건강보험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보험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연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사람, 빈곤 아동, 실직자 등을 위해 더욱 포괄적인 다른 사회제도를 도입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윌킨슨 실제로 빈곤층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질병 예방이나 치료 등에서 부유층과 비교하면 건강에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층과 같은 병을 진단받았더라도 예후가 훨씬 안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 1980년 영국에서 발간된 ‘블랙리포트’는 건강불평등 구조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요인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 이후 영국에서는 어떤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었나? 피킷 1992년과 2010년에도 비슷한 보고서가 발간되었지만, 정부는 사회적인 요인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만 할 뿐 제대로 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윌킨슨 정부는 연구 결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40년 전에 했던 연구가 건강증진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란 정말 어렵다. ‘금연하세요’ 해서 중장년층이 금연하더라도, 청년층이 다시 흡연을 시작한다. 사회구조적인 요인을 함께 봐야 한다. 보통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의료서비스 덕분에 더 건강해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내 건강을 좌우하는 것은 나의 사회적·경제적 삶이다. 김 세계적인 차원에서 건강불평등이 개선되었다고 판단하는가? 피킷 많은 국가에서 수명이 연장되고 영아 사망률이 많이 떨어지고 극빈 수준도 낮아졌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경우에 많은 건강지표가 개선되었지만, 부유한 나라는 그렇지 않다. 건강진흥 정책이 단순히 건강 부문만이 아니라 교육, 경제 등 사회 모든 부문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학문이 머리를 맞대야 하고,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윌킨슨 불평등을 해소하면 건강이 증진될 것이라고 둘의 상관관계만 흔히 생각하기 쉽지만, 불평등이 해소되면 학업성취도가 올라가고 감옥 수감률이 낮아지며 폭력이 낮아지고 사회의 응집성은 더 높아진다. 단순히 둘만의 상관관계가 아니다.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보건학). 신소영 기자 윌킨슨과 피킷 교수의 한국 첫 방문 인상은 어땠을까. 윌킨슨 교수는 최근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157개국의 불평등 해소 노력을 평가한 보고서를 예로 들면서 “한국은 최근 가장 긍정적 진전이 있었던 국가로 꼽혔다”며 높이 평가했다. 피킷 교수는 “한국은 현재 중요한 순간에 있다. 진보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지금, 최대한 많은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868726.html#csidxa30c7f401e1e1bfa9e927f59d9d6cf0

[2018 아시아미래포럼] “자치분권에 근거한 균형발전 전략이 포용성장”

【2018 아시아미래포럼】 포용성장과 지역순환경제“협동조합 등 지역민 주도 사업 육성지역주민에게 혜택 돌아가게 해야”“지역, 대기업 투자유지 보다자체적 순환경제 조성 필요”평생학습-사회적금융 지역기금 등지자체 지역순환경제 모델 공개도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세션4 ‘포용성장과 지역순환경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회장 정원오 성동구청장)가 공동주최한 ‘포용성장과 지역순환경제’ 세션에서는 수도권 집중 및 거점산업 위축으로 ‘지역소멸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지역이 공존과 상생의 자립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김용기 아주대 교수(경영학)는 발제에서 “그동안 지역은 대기업의 투자 유치에 주력했으나 지역내 연관산업이 없어 한계가 있었고 수익을 내부화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며 “지역 내 중소기업의 진화와 혁신을 이뤄가는 ‘지역순환경제’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지역불균형 실태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지역의 혁신과 고용 거버넌스 구축 △지역 내 포용적 금융 모델 확충 노력을 지방정부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경수 전주시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은 “인구가 감소하고 자원이 한계를 노출하는 속에서 과거처럼 돈을 벌어와 필요한 것을 산다는 ‘화폐적 발전모델’은 수명을 다했다”며 “선택, 집중, 경쟁력의 ‘화페적 모델’에서 벗어나 순환, 자립, 분산으로 지역발전이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적경제는 지역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고 일자리도 만들어 자립을 가능케 한다”며 “지방정부가 지역에 드나든 자원을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역경제순환 지표를 활용하고, 정부 부처가 따로따로 진행하는 지역 지원사업을 융합해 내도록 중간지원조직을 혁신해야 하다”고 말했다. 홍사흠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역산업의 성장 과실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고, 불평등 심화에 따라 사는 공간의 분리도 일어나고 있다며 지역 간 격차뿐 아니라 지역 내 불균형도 세분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협동조합 등 지역민 주도의 사업을 육성하고 이를 지역의 공유자산화해 혜택이 지역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지역경제와 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민형배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은 특강에서 지금까지 경제정책을 중앙정부가 독점한 결과 지역 간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됐다고 진단하고 “앞으로 성장기획은 지역 구성원의 민주적 협치와 자기결정권, 즉 자치분권을 근거로 수립·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치분권에 근거한 균형발전 전략이 포용성장”이라며 “이는 중앙정부가 시혜적으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당연한 권리로 확보하는 공적자원 배분 시스템을 확립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례 발표에서는 4개 자치단체의 지역순환경제 모델이 공개됐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잦은 이사로 정주성이 낮은 도시에서 교육을 통해 선순환 경제모델을 만든 사례를 발표했다. 생활권 10분 거리에서 주민이 중심이 돼 복지관, 사설학원 등 유휴공간을 활용해 학습공간(징검다리교실) 248곳을 발굴함으로써 자발적 활동가 1300여명이 나오며 평생학습 생태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사회적 경제 기업을 위해 사회적 금융 지역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하반기에 조례를 제정하고 2020년부터 2억원에서 시작할 예정”이라며 “기존의 신협 등과 다른 모습으로 도움이 된다면 처음은 2억원이지만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의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을 문화의 힘으로 ‘가장 아픈 공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으로 바꾼 사례를 소개했다. 건물을 사들여 공원을 만들고 성매매 여성 지원정책을 펼친 결과 지난해 성매매여성 11명이 사회로 복귀했다. 이제 성매매 공간을 둔 다른 지자체가 도시혁신 사례로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됐다는 것이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소통, 협치, 혁신을 열쇳말로 숙의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적 자본을 확충한 사례를 소개했다. ‘영등포 1번가’라는 소통 시스템을 통해 3개월간 4900여건의 건의를 받아 청소, 주차, 미세먼지 등 주민 생활과 밀착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지금은 혁신적 단체장의 시대이지만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가 대안인데, 신뢰 및 협력으로 성공한 사례를 만들어 사회적 자본이라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치와 분권, 분산이 중요한 메커니즘이자 방향이란 점은 명확히 제시돼 있지만 그에 이르는 경로가 명확치 않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 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지역순환경제를 포용성장과 연결하는 것은 차이를 끌어안는 것이고 이는 이해관계의 갈등을 낳는다”며 “혁신과 포용이 그런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 가능한가, 기존의 행정이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주민 참여와 자치가 만들어지는 곳이 얼마나 되는 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선 희망제작소장은 “자치분권 관련한 법제화가 국회에서 진척이 잘 안되고 있다”며 “정부 역시 시행령을 바꿔서 할 수 있는 일 조차 하지 않고 있는 미흡한 상황”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간영역에 대해서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간의 절실함이 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한다”며 “전반적 방식과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 이라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294.html#csidxfce1aa3ac1471ed92e368e1b91212c9

[2018 아시아미래포럼] “‘정치하는 엄마들’ 뭉쳐…참여하니 바뀌더라”

【2018 아시아미래포럼】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정치하는 엄마들’-스타트업 등,‘적극적 활동’ 사회변화 사례 소개“모든 개개인이 존중 받아야,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시대”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세션6 ‘전환시대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31일 오후 열린 2018 아시아미래포럼 ‘세션6: 전환시대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에서는 도시에서의 삶을 바꾸기 위한 여러 변화·도전 모델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특히 ‘당사자’와 ‘느슨한 연대’란 키워드를 두고 공감대가 형성됐다. 조경민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이라는 제목의 기조발제에서 최근 4개월 동안 서울연구원이 진행해온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서울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고민의 궤적을 소개했다. 그는 “시민들이 주도하는 작은 전환들이 중요하기에 (석학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도전과 변화의 당사자 91명을 만나 변화의 에너지, 변화의 장벽과 극복 방법, 미래사회 키워드 등을 알아봤다”며 “그 결과 변화의 에너지로 민주화나 통일 같은 거대담론 대신 사랑과 분노, 자각, 동료 등 감성적인 요소들을, 장벽 극복 방법으로는 ‘느슨한 연대’를 많이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출발부터 목표지향적인 활동이 아니라 ‘사회와 나에 대한 자각→느슨한 연대→사회적 전환’으로 이어지는 맥락이 파악되더란 설명이었다. 지난해 당사자로서의 엄마들이 꾸린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는 ‘사회적 모성과 당사자 정치’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지난 대선 때 한 후보가 유아교육자들 모임에 나가 ‘단설유치원 설립을 자제하겠다’고 발표한 뒤 (엄마들의 반발을 사) 지지율이 5~7% 빠졌다. 이를 보며, 정치인들이 왜 이익집단이나 직능집단만 찾아다니는지 고민하게 됐고, 결국 당사자 참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비영리사회단체들은 사무국을 두고 유급 활동가들이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데, 우리는 그런 인프라가 없기에 아이들 재우고 시간 되는 엄마가 성명서를 쓰다 아이가 깨면, 시간이 되는 엄마가 마저 성명서를 완성하고, 또 그다음 엄마가 성명서를 검토한 뒤 발송하는, 일종의 집단모성을 통한 이어달리기식 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외에 공간 공유 스타트업 스페이스클라우드 정수현 대표는 빈 공간 공유에 나선 건물주들 가운데 일부가 “권리금 장사가 아닌 자기 브랜드를 확장하는” 적극적인 공간기획자가 된 사례들을 소개했고, 도시형 플러그인(플러그를 꽂아 사용하는) 태양광시스템 보급 사업을 펼치는 이기관 마이크로발전소 대표는 “송전거리가 짧고 에너지 공정에 시민이 직접 개입하는 의미가 있는” ‘다아이와이(DIY: 스스로 만드는) 태양광’이 에너지 대전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여러 의미있는 실험들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재미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것 같다. 공간이건 온라인상 네트워크건 언론을 통해서건 이런 실험들을 도와주는 구조를 많이 만들어주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게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오늘 ‘느슨한 연대’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촘촘한 연대’의 반대말이 아니라 연대하자고 해놓고 그 안에서 위계가 잡히거나, 속박되거나 개인이 소진되는 문제들을 덮고 ‘연대가 미덕’이라고 강조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좌장으로서 이날 논의를 이끈 이강오 서울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도 “이제는 모든 개개인이 존중받아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사회와 정부가 시민들을 일반화하지 말고 모든 이들을 (특수성에 맞춰) 특별하게 대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디자인해야 하는 시대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에 안현찬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과 안연정 서울시 청년허브센터장도 “개인·동네의 변화가 국가·세계 차원의 변화와 함께 진행되는 ‘동시성’이란 흐름”과 “긴 호흡에서의 이런 전환들을 촉진할 방법에 대한 고민” 등을 강조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293.html#csidxee69093b96a2a0a9dc1a68a808c8baa

[2018 아시아미래포럼] “덴마크, 사용자집단이 긴축정책 맞서 복지확대 요구”

【2018 아시아미래포럼】 ‘불평등 해소’ 전략과 노사정의 역할“저임금-나쁜 일자리 함정 빠져,저소득층 정책으로 이동할 때”“덴마크 정부, 노동자 숙련에 투자,사회적타협에 기초해 개혁 성공”“노동시장 이중구조-불평등 심화,노조, 임금격차 해소 역할 못해”한겨레신문사가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 세션1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성장전략과 노사정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재인 정부가 포용적 사회정책의 중심축으로 ‘혁신성장’을 표방하며 여러 제도와 정책을 기획·집행하고 있지만, 혁신성장 과실의 배분을 둘러싼 ‘분배체제’ 구축방안이 동시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불평등을 오히려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디지털·지식기반경제일수록 혁신에 따른 성장의 몫에서 승자독식이 더욱 공고화될 수 있으며, 배분구조를 공평한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포용적’ 혁신성장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31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미래포럼 둘째날,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성장전략과 노사정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진행된 제1분과세션에서 정무권 연세대 교수(글로벌행정학과)는 불평등 해소 측면에서 볼 때 포용적 혁신성장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혁신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정책과 제도를 통해 국가 자원을 동원·투입해 혁신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그 성장의 성과를 개발자 등 소수가 독점하면 불평등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혁신은 정부와 시장보다는 사회적 경제 조직 활용 등 광범위한 시민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고, 소득세 같은 조세 개혁을 통해” 배분구조 교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한 단계 더 높은 역동적 경제사회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지체되거나 실패하고 있으며, ‘불평등 이중구조’로 대표되는 기존의 강고한 기득권적 사회관계 그리고 기업 간 및 노동자 간 권력관계에서 변동이 함께 일어나야 ‘진정한 포용적 성장체제’에 당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표·토론자들은 지난 50년간의 숨가쁜 개발연대를 마감하고 불평등·양극화 심화라는 사회구조 격변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불평등과 정면 대결하려면 어떤 사회경제적 정책이 필요하고, 노사정 주체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다수 참가자들은 “저임금과 나쁜 일자리 ‘함정’에 빠져 있고, 깊고 오래된 박탈감 속에 시장에서 상처입고 뒤처진 저임금·저소득계층을 보듬고 끌어올리는 쪽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재가동하고 또 이동시켜야 한다”고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노선으로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이 맞느냐 틀리냐는 논란을 이제 중단하고, 대-중소기업 간 불평등 관계, 청년실업, 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산업의 위기상황 등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용어로 경제·사회 지형의 전환 논쟁을 벌여야 한다”며 “우리의 과거 성장을 지탱한 원천이자 동시에 불평등을 함께 수반한 옛 지식과 지혜는 이제 의미를 상실했다. 미래를 향한 상상력을 키우고 도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포용 성장전략에서 기업과 사용자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탐색한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정치학)는 “덴마크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지속성장을 견인하는 포용전략의 경로에서 조직화된 사용자 집단이 생산 및 분배구조 쇄신에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사회개혁을 도모했다”며 “사용자는 대개 사회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건 잘못된 통념”이라고 말했다. 긴축을 지향하는 중도우파 정부의 공격에 맞서 사용자 단체가 복지국가 강화를 요구하고, 이후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가 고취되고 노동자 숙련 형성 투자가 지속되면서 ‘사회적 타협’에 기초한 불평등 극복 포용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불평등의 추세적 심화 속에 우리 노동조합은 임금·고용 균등화를 위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불평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기업 규모별 분절이 제1의 요인”이라며 “노조가 임금 불평등을 야기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임금을 평준화하는 효과는 크지 않고 기업 간 임금 격차 확대를 억제하는 역할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지금 경제사회노동위는 노동존중사회와 불평등 해소를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며 “노동과 자본의 균형 잡힌 공존을 지향하고, 끊임없는 미세한 타협과 조정의 경로를 통해 포용사회는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평등과의 싸움’이 긴급한 당면 과제로 떠오른 지금, 노동부문과 기업부문이 사회경제정책 재편에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체제 구축과 과감한 결단이 더욱 요청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292.html#csidx645061ca6b28e6e8b957f1bdfad1df0

[2018 아시아미래포럼] ‘가구내 돌봄’ 점점 불가능…“기본적 사회서비스 시급”

【2018 아시아미래포럼】 불평등, 삶의질 그리고 복지국가“생계비관-돌봄 부담으로 ‘최악 자살률’,현금급여 외 현물급여 확충해야”“소득성장-최저임금 인상 전부 아냐, 사회적임금 등 복지확대 함께가야”2018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열린 <불평등, 삶의 질 그리고 복지국가> 세션에서 이현주 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이 발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오전엔 불평등한 현실을 타개할 근본적인 길이 복지국가에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공동주관한 세션 2 ‘불평등, 삶의 질 그리고 복지국가’에서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이현주 보사연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은 ‘국가가 경제적으로 고속 성장을 해왔음에도 국민은 왜 불행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해법을 모색했다. 세계 최악인 자살률과 관련해 이 실장은 “생계의 어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많고, 장애인 가족이 있거나 부양할 노인이 있는 경우 등 높은 의료비와 돌봄에 부담을 느껴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며 공적 복지가 취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빈곤율은, 시장소득이나 가처분소득 기준으로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생계유지에 꼭 필요한 의료비·교육비·주거비를 제외한 조정가처분소득으로 보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 된다. 최근 불거진 사립유치원 비리 사건이 극명하게 보여주듯, 공공의 영역을 민간이 주도하다 보니 이용자는 ‘을’이 되고 서비스의 질에도 문제가 생긴다. 더 큰 문제는 유례없는 속도로 늘어나는 1인가구로, 앞으로 ‘가구 내 돌봄’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 실장은 이 문제를 풀려면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와 현물급여 확충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의료비·교육비·주거비 등의 지출은 가구별 편차가 크기 때문에 현금급여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에서 국민들이 힘을 모아 협상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 삶의 질을 높일 복지 기반을 확충하는 데 사회 전반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사회정책 비전, 즉 당면한 불평등 문제를 풀 방법으로 정부가 제시한 ‘혁신적 포용국가’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정과제지원단장으로, 이 비전을 만든 당사자다. 김 교수는 “미래국가의 경쟁력은 4차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에 대비해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고 혁신 능력을 키우는 게 관건”이라며, 그 두 축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선순환시키는 게 정부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적 임금, 현금급여, 현물 서비스 등 복지를 확대해 가처분소득을 올리고, 이를 통해 총수요를 늘리는 게 핵심”이며 “혁신성장 역시 규제완화뿐만 아니라, 인적·사회적 자본 확충을 통해 사회 전체의 혁신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 개편안을 두고 최근 벌어진 ‘사회보험(국민연금) 강화냐, 기초소득보장(기초연금) 강화냐’ 논란을 두고는 “기초연금을 두배로 인상해도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 이는 양자택일할 게 아니라, 둘 다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는 영국 사례를 소개하면서, 건강 불평등이 개인의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문제임을 강조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291.html#csidxaf835fb9b4977d99146dd25f76afcf1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일본, AI-자동화 대응해 겸업-사무실 밖 근무 장려”

【2018 아시아미래포럼】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일본, 고용시스템 변화시키려 노력,플랫폼 노동 갑질 막을 규제도 추진”“일자리 대체위험 높은 노동자에교육제공-임금손실 최소화 고민을”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세션5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산업 차원의 변화뿐 아니라 고용관계의 변화도 이끌어내고 있다. 기업과 ‘근로계약’을 맺고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만큼 일하고, 임금과 보험 연금으로 이뤄진 대가를 받는 노동자의 수는 줄어들고 있고,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인공지능·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물론, 노동력 역시도 ‘공유’의 개념으로 일컬어지며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플랫폼 노동’ 역시 출현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인 31일 오후 열린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세션에선 한국·중국·일본 사회가 디지털 전환에 따른 고용노동 체계의 변화 현황과 대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 대응에 대한 국외 사례는 미국이나 유럽 위주로 소개됐지만, 이번 포럼에서는 이웃나라인 동아시아의 사례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일본 노동법 전문가인 최석환 명지대 교수(법학)는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일본 정부의 ‘고용노동정책’ 사례를 소개했다. 최 교수의 발표를 보면, 일본은 ‘일하는 방식 개혁’을 목표로 고용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진행해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한곳 이상에서 일하는 것을 ‘겸업·부업’으로, 사무실 근무가 아닌 다른 근무를 ‘텔레워크’, 고용관계가 아닌 상태로 일하는 방식을 ‘고용관계에 의하지 않은 일하는 방식’으로 규정하고 대책을 세웠는데, 한 회사에만 종속된 고용 방식을 극복해 원칙적으로 겸업을 가능하도록 장려하고,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일할지라도 장시간 노동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또한 ‘고용과 유사한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규제를 만들기 위해 계약조건을 명시하고 보수액을 적정화하도록 해, 기업과 플랫폼에 의한 ‘갑질’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 교수는 “일본은 2007년부터 ‘일하는 방식 개혁’을 목표로 오랫동안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을 진행해왔으며, 경제·산업·노동 등 부처를 횡단하는 계획을 바탕으로 디테일한 규제를 만들어왔다”고 평가했다. 왕페이 중국 인민대 노동인사학원 교수는 중국의 음식 배달 플랫폼 사례를 소개하며 “음식 배달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보장제도를 적용받지 못해 문제가 크다”고 짚었다. 같은 대학 저우광쑤 교수는 ‘자동화가 중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발표에서 2000~2010년 중국에서 자동화율이 높을수록 고용증가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통계로 입증했다. 특히 여성·저학력·고령·농민공은 자동화 때문에 고용이 줄었는데, 일자리가 줄어들면서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늘고 임금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저우 교수는 “중국 정부에서 인공지능을 위시한 스마트산업 발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동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며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 대체 위험이 높은 노동인구에 대한 인적자본·기술 교육 대책과 임금 축소와 노동시간 증가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시장이라는 제도 안에서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기업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우리가 다루는 모든 기술은 다른 상상력을 담고 있고, 디지털 기술이 담고 있는 상상력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해야만 이에 대응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it/868274.html#csidxe9062043a6f58f898b3a08951f088b9

[2018 아시아미래포럼] “가짜-왜곡정보 기술적 해결 한계…시간걸려도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2018 아시아미래포럼】 ‘디지털 정보 식별성과 소비자 주권’플랫폼과 정부가 지속적으로 협력해이용자 미디어역량 키워낼 필요한겨레신문사가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 세션3 ‘디지털 환경의 정보 식별성과 소비자 주권’이 끝난 뒤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 수상자와 시상자 등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갈수록 늘어나는 허위·왜곡 정보 피해로부터 이용자 권리를 지키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세션3은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주관으로 ‘디지털 환경에서의 정보 식별성과 소비자 주권’을 주제로 서울드래곤시티호텔 백두홀에서 진행됐다. 김재영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디지털에서 정보 비대칭성이 증가하면서 기업·전문가 집단과 일반 이용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 현상이 새로운 소비자 권리 침해로 이어지는 문제를 지적했다. 정보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정보의 의도와 속성이 드러나지 않아 불법 정보, 가짜 정보가 늘어나고 있다. 김 연구원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보 접근성과 투명성이 요구되고 있지만, 투명성 증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2013년 미국 노스웨스턴대가 진행한 ‘투명성의 시대와 비밀’ 포럼에서는 정보 투명성 자체를 추구한 결과 발생한 다양한 역효과 사례를 다뤘다. 히로시마 원전 사태와 2009년 미국 항공기 폭파 방지 실패 사건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정보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사례로 거론된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가 역설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투명성 증가 자체는 해법이 아니며, 정보의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범수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는 ‘가짜 정보 이슈와 식별, 그리고 대응’ 주제발표에서 허위·왜곡 정보에 대한 다양한 기술적 접근의 특징과 한계를 소개했다. 그래픽과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이상 패턴과 비정상적 확산 추이를 탐지하고 분석하는 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지식그래프 등의 기술이 활용되고 있으나 가짜 정보 생성과 확산 기술 또한 그에 맞춰 대응하고 진화하며 물고 물리는 게 현실이다. 김 교수는 “가짜 정보 대응은 기술적 방법과 함께 비기술적 방법이 병행되어야 한다”며 “플랫폼과 정부의 책임있고 지속적인 협력과 장기적 관점에서 이용자의 미디어 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유럽연합의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노력만이 아니라 최종적 판별 능력을 행사하는 이용자 개개인의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 간의 협력과 지원을 확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김성욱 네이버 서비스정책실장은 ‘디지털 허위 정보와 지적 방어 능력’ 발제를 통해, 애초에 사실로 여겨지며 국내에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지만 나중에 왜곡된 허위 정보라는 게 밝혀진 사례를 여러 건 예시했다. ‘세모자 성폭행 사건’ ‘세월호 당시 7시간의 진실’ ‘사카린 유해성’ 등은 애초 유통된 정보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비로소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 사례다.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 차원에서도 가짜 정보의 문제를 식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정보가 진실 100%, 허위 100%의 형태로 유통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 부분적 허위를 포함한 회색지대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문제의 복잡성을 더한다. 김 실장은 무조건 정보를 수용하는 대신 항상 회의하고 의심하는 태도가 이용자 권리를 지키는 방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사회정책그룹장은 종합논평에서 “입법을 통해 허위 정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매력적이고 단기적 효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나 그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적 해결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그룹장은 언론사들이 팩트체크 기능을 강화하고, 비기술적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모으고, 이용자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강화하는 게 사회적 차원의 대응이라고 제시했다. 당장 디지털 환경에서 이용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묻는 청중들의 질문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약관 ‘전체 동의’를 절대 하지 말고 선택 동의는 제외할 것과 소셜 로그인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178.html#csidx73e78a9e49d7ba4b37bc786120a2a42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인문특강] “가짜뉴스 성행…비영리 언론이 민주주의 구현”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인문특강카제 교수 ‘미디어 구하기’“가짜뉴스가 성행하는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선 언론의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 쥘리아 카제 프랑스 파리정치대 교수는 30일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인문특강 ‘미디어 구하기-지속가능한 미디어 모델을 찾아’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제대로 구현해낼 ‘비영리 언론기관’ 모델을 제시했다. 카제 교수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권자의 1표와 갖고 있지 않은 유권자의 1표는 다르다”며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뉴스 구독자 수가 낮은 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표를 얻은 점을 예로 들며 “전통적 뉴스매체가 부재한 디지털 세계에서는 투표율이 하락하고 극단적 성향의 정당이 득세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뉴스 기사의 4분의 1이 4분 안에 재생산되고, 온라인 콘텐츠의 3분의 2가 오리지널 뉴스를 그대로 복사해 붙인 정보”라며 “언론은 자유롭고 중립적인 고품질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하고, 이를 위해 양질의 취재를 위한 충분한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그는 ‘비영리 언론기관’ 모델이 언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시민들이 주주로 참여하되 투자금은 회수할 수 없고, 수익은 반드시 조직에 재투자하는 모델이다. 그는 “<한겨레>가 비영리 언론기관의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언론이 독립적으로 뉴스를 생산하고 진실된 뉴스를 소비하게 할 수 있도록 언론의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061.html#csidxcf5cb770a5ce470a48a2eed8996cd94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별세션] “부유세 도입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불평등 해소 ‘새로운 상상’‘불평등 해소 없이는 지속가능 발전도, 혁신성장도 없다.’30일 열린 ‘2018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특별세션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상상력: 지속가능 의제’에서는 2015년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제정한 ‘세계의 변혁: 지속가능한

 

[2018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 “계층 이동 막힌 한국, 사회적 엘리베이터 고장나 있다”

2018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사와다 ADB 수석이코노미스트마틴 미 보스턴대 교수“포용적 성장으로 불평등 완화재벌 규제·소득세 증세 필요”“한국 신자유주의 전으로 회귀사회투자 늘려 평등·성장 함께”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특별 세션에서 참가자들이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상상력:지속가능의제’를 주제로 토론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학부 경제학 교수, 정원오 성동구청장,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 노미스트,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공공보건 역학교수,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학교 정치학 교수.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2018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30일 오후 강연에서 첫 기조연사로 나선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00년대 들어 아시아 전역에서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마다 ‘사회적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있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지위·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에선 ‘국가 내’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며 “각국마다 ‘국가 간’ 불평등은 점점 줄어들고, 국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중산층도 증가하고 있지만 최상위 소득층이 가져가는 몫이 날로 증가하면서 소득 집중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 전체 1인당 가계소득 지니계수가 1990년대 0.38에서 2010년대 0.45로 급증했다. ‘평등 성장’을 구가한 1960~70년대와 대조적인 양상으로, 최상위층의 지갑이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불평등 악화의 요인으로는 기술 진보, 세계화, 교육 및 지역별 격차, 고령화 등도 있지만 시장규제 완화도 한몫을 거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와다 야스유키그는 특히 “이제 불평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며 불평등이 거시·미시 경제적 측면에서 성장의 낙수효과를 제한하고, 효율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소득 불평등 심화는 인적 자원 배분의 왜곡과 세대 간 불평등을 초래하고, 사회 응집력을 약화해 사회적 긴장과 정치적 대립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다시 투자 의욕을 감소시켜 사회경제적 진보를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다.” 흥미롭게도 그는 불평등이 심화하면 포퓰리즘 정책을 입안하라는 대중의 압력이 점증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단기적으로는 빈곤층의 이해를 충족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효율과 성장을 저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강연 내내 ‘포용적 성장’을 여러 차례 언급한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포용적 성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로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노동규제 △사회적 보호장치 강화 △재벌기업 반독점 규제 및 경쟁적 공정거래 강화 △소득세 증세를 겨냥한 세제 개편 등을 꼽았다. 캐시 조 마틴이어 또 다른 기조강연자로 나선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북유럽 국가의 특징인 ‘사회투자 모델’을 중심으로 불평등 극복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불평등, 치유 가능하다’는 도발적 제목의 강연에서 그는 먼저 “왜 고용주들이 때때로 불평등에 관심을 갖는가”라고 물었다. 그가 말하는 사회투자 모델은 △개별 노동자들의 역량을 배양하는 민간기업의 투자·교육훈련 프로그램 △복지와 노동의 강력한 연계 △가정과 직장의 양립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진 △맞벌이 가구를 위한 정책 △실업 해소를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을 포함한다. 마틴 교수는 “지금 한국 정부의 ‘포용적 사회’ 지향이 곧 사회투자 모델에 해당한다”며, 유럽 복지국가의 이윤추구 영리기업이 왜 사회투자 모델을 ‘지지’하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고숙련과 품질경쟁에 기반한 고부가가치 분야를 갖춘 성장체제일수록 사회투자와 평등, 연대감이 높다. 사회투자는 평등과 성장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정책”이라며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이익’의 언어를 중시하고 조직력이 강한 기업일수록 사회투자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랜 공동체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은 신자유주의 이전의 사회경제로 돌아가 직접적 사회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새로운 성장전략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사정 사이의 공동체 협력과 사회투자 프로그램으로 불평등을 타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058.html#csidxed771764a5dfaa3aff7be872e615697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새로운 대화, 좌절 되풀이… ‘경사노위’가 새 역사 쓰려면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한국의 새로운 사회적 대화 틀은노사정에 한정되지 않고미조직노동자-취약계층도 참여양극화 해소 등 토론-타협해야개혁적인 정부일수록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데, 문재인 정부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여러 정책적 난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노동존중 사회과 같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은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의 혁신을 의미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이해관계자가 모여 다각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해 가는 것이다. 당장은 국민적 지지가 높은 정책이라도 실제 추진되기 시작하면 각 집단의 요구가 분출하고 이해가 충돌하면, 기대가 실망감으로 바뀌고 정책에 대한 저항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를 통해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정책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의 역사는 좌절의 기록을 써왔다. 당장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가 또다시 무기연기되면서 새로운 대화 기구로 관심을 모았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출범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90년대 말 외환 위기 이후 정부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들러리로 이용된 측면이 있고 이에 대한 노동계의 피해의식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울러 노동시장에서 노동과 자본의 조직적 이해 대변 수준이 낮고 대표성이 약하며, 노동계급의 집단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정치가 미성숙한 점, 사회 전반에 걸쳐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매우 취약한 점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새로운 대화 지구를 지향하는 경사노위는 여러 측면에서 과거의 노사정위와 구별된다. 일단 기구의 목적을 ‘산업 평화 도모’가 아니라 ‘양극화 해소’ 로 잡아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사회경제적 의제를 풀어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다수결에 의한 합의가 아니라 협의를 목표로 하는 점도 차이이다. 합의의 압박에서 벗어나 충실한 협의의 틀을 지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러 업종별 위원회를 설치해 다층적 논의의 틀을 만들고, 참여주체를 확대해 개방성을 높였다. 이는 ‘노사정’이라는 표현을 걷어내고 ‘경제사회주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서도 드러난다. 박명준 경사노위 수석전문위원은 “새로운 대화 기구로서 경사노위는 불평등 해소와 포용성장이라는 결과 측면의 포용성, 노사정의 틀에 한정되지 않고 미조직 노동자, 취약계층 등 다양한 계층이 대화체제에 참여하는 과정 측면의 포용성 등 양 측면에서 포용적인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867411.html#csidx8b81ccb6a82253b9d9c8e78a7a657fb

[2018 아시아미래포럼 정책대담] “한국 교육수준 높은데 왜 불평등 심화되나” “근로자 대표에 투표권 줘 경영참여 도와야”

2018 아시아미래포럼 정책대담불평등 원인, 묻고 답하다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왼쪽부터),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경제학 교수, 리처드 월킨슨 영국 노팅엄대 사회과학 명예교수,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공공보건 역학교수가 정책대담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9차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강연에 이어 진행된 정책대담에서는 불평등의 해소책에 초점을 맞춘 국내외 석학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북대 명예교수)을 좌장으로,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가 질문하고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술 진보나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다’는 이 교수의 지적에 피케티 교수는 “불평등은 기술 진보 등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고 복합적이다. 일본, 미국, 스웨덴 등 모든 나라가 세계화를 겪고 있지만 나라마다 불평등 심화 수준은 다른데, 이는 뭔가 다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난 그게 이념,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장기적으로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누진세제뿐만 아니라 교육과 기업의 책임 부분 등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평등이라고 하면) ‘기회의 평등’을 중시한다’는 지적에 윌킨슨 교수는 ‘성취도에서 별 차이가 없었던 아이들이 서로가 속한 카스트(계급)를 알게 된 뒤 상위계급과 하위계급의 성취도에 차이가 생겼다’는 인도에서의 한 실험 결과를 인용하며,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 열등하다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불평등은 야기된다.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도 하위계급 사람들은 여전히 불평등의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케이트 피킷 교수는 “교육제도를 통해 불평등이 개선되길 바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국도 교육 달성도는 높은데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는 만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피케티 교수는 “스웨덴, 독일 등 여러 유럽 국가가 근로자 대표에게 (이사회에서) 투표권을 주고 있는데, 영국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미래를 위해서라면 (근로자 경영 참여를)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윌킨슨 교수는 “최고경영자(CEO)들이 기업 이익을 대변(하기에 고액 급여를 받아야)한다고 하는데, 이를 그냥 수용하면 안 된다. 미국 최고경영자 300여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최고경영자들 보수가 중위값 이상일 때 주주들의 이익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난 연구 결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이사장은 “독일을 방문해 튀센크루프라는 세계적 대기업의 회장을 만날 기회가 있어 (근로자 대표와) 공동결정 제도에 애로가 없는지 물었더니 ‘시간은 더 걸리지만 기업 경영을 개선시킨다’고 답하더라”며 “경제민주주의의 도입은 근본적, 정치적 지형 변동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056.html#csidxcaeee840792fa08b9239ef456fed3bf

[2018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 피케티의 불평등 해법 “고소득층 세금 인상할 정당 필요하다”

2018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윌킨슨 영 노팅엄대 명예교수“한국 최상위 1% 소득 큰 폭 증가소득·상속세율 올릴 정치세력 필요”“자산·교육 불평등, 사회관계 붕괴불로소득 막을 경제민주주의 도입”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막식에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불평등, 그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2018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30일 ‘불평등의 현재와 해법’을 주제로 열린 기조강연 첫 연사로 나선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는 먼저 “왜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으며,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는데도 정치적 대응은 미온적인가? 왜 불평등 심화가 저소득 집단의 강력한 재분배 요구로 접속·점화되지 못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불평등, 그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피케티는 “(소득·자산·교육) 불평등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은 매우 다차원적이고 다층적이며 또한 복잡하다”며 “불평등 극복을 위해서는 소득세 누진세율을 올리고, 교육에서 더 많은 공공재를 제공하는 평등주의 지향의 강력한 정당 강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1세기 자본>을 들고 처음 한국에 왔던 4년 전 불평등 해법을 글로벌 누진세 강화에 맞췄다면, 이번엔 ‘정치적 대응’을 그 해법으로 명쾌하게 제시한 셈이다. 1시간여 강연 내내 그는 “20세기 중반기에 세계적으로 소득불평등이 줄어든 데는 소득·상속세 변화 등 정치구조적 변화가 그 한복판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최고소득층에 대한 미국 연방소득세율은 1980년대에 82%까지 누진적으로 인상됐다. 그는 이런 정치적 대응에도 미국 자본주의는 붕괴하기는커녕 2차 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매우 높은 생산성 증가율을 기록한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런 경험은 생산성 하락 없이도 불평등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누진적 소득세 인상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적극적인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소득·상속세율이 불평등과 맞서 싸울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과, ‘불평등과 대결하는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정당 투표 구조도 불평등 구조와 그 종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짚었다. 피케티는 ‘교육 불평등’에도 주목했다. 그는 “부모 소득 수준이 자녀의 대학 진학률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교육 공공재에 접근할 교육 기회가 중요하다”며 “앞으로 한국의 교육불평등 데이터를 모아 한국적 불평등의 특징을 살펴보고 불평등 대응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국제적으로는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국내적으로는 중산층과 하위계층 사이에서 소득격차가 줄어들고 있지만, 동시에 최상위 1% 소득이 전체 소득의 27%(미국)에 이르는 반면 인구의 절대다수(하위 90%)는 1인당 실질소득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다”며, ‘약화’와 ‘악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글로벌 불평등의 두 얼굴을 제시했다. 강연을 마치면서 그는 최상위 1%의 소득 증가폭이 놀라울 정도로 가팔라지는 이른바 ‘코끼리 곡선’을 언급하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의 불평등 추세를 손 놓고 내버려둘 것인가”라며 정치적·사회적 대응을 요청했다. 리처드 월킨슨 영국 노팅엄대 사회과학 명예교수가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정책대담을 이어가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더 균등한 사회가 생산성도 성장한다는 역동적 경로를 피케티가 주창했다면, 두번째 기조연사로 나선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는 소득·자산·교육 등에서의 다층적 불평등이 각종 ‘사회적 관계’를 붕괴시키고 사회적 활력과 개인적 재능을 억누르는 과정을 다양한 국제 비교로 드러냈다. 특히 가로축에 소득불평등 지수를 놓고 세로축에 질병 유병률, 사회적 이동성, 학교 내 집단괴롭힘, 교도소 수감률, 기대수명, 비만 등 사회적 지표들을 배치한 여러 그래프를 통해, 소득불평등과 사회적 병리현상 간의 일관된 상관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윌킨슨 교수는 “불평등에 대한 기존 통념과 이해는 잘못돼 있다”고 말을 꺼낸 뒤, 소득·자산·교육 불평등은 단순한 물질적 격차를 넘어 우울감·열등감, 지배·복종, 열위와 우위 등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사회적 상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불평등이 심화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호 신뢰가 하락하고 사회적 응집력과 소속감을 떨어뜨리며, 이로 인한 좌절과 박탈감, 증오와 수치심 등 민감한 ‘느낌’이 사회 전체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높은 소득과 좋은 일자리를 가진 계층의 삶의 질도 ‘더 평등한 사회’일수록 높아진다”며, 소득을 나누고 공유하는 사회를 위한 기업 내 임금 격차 축소, 자산 불로소득 격차 축소 등 ‘경제 민주주의’를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해법으로 제시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후원하기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054.html#csidxfa4734dda234cb1855dfbbbde44cf39

[2018 아시아미래포럼 개막식 축사] 문 대통령 축전 “낡은 패러다임과 결별…포용적 성장의 길로”

2018 아시아미래포럼 개막식 축사“한겨레신문 주주, 문희상입니다”자기 소개로 웃음 준 국회의장“4차산업혁명 물결 밀려드는 시기정보격차 막을 정책적 배려 중요”이낙연 총리 “민주주의 성숙 위해불평등 완화는 포기할 수 없는 과제”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 영상을 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여전한 불평등과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과 과감히 결별하고, 지속가능한 포용적 성장의 길로 가야 합니다.” “한겨레신문 주주, 문희상입니다”란 말로 자신을 소개해 좌중에 웃음을 선사한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밀려드는 시기,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격차가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책적 배려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사추세츠공대(MIT)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역사적으로 포용적인 나라에서는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고 구성원들의 안정된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창의적인 경제활동과 번영을 가능하게 했으나, 그렇지 못한 나라는 쇠락했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현재 우리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성장과 분배의 조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2018 아시아미래포럼 개막] 피케티 “정치여, 이 불평등을 내버려두지 말라”

2018 아시아미래포럼 개막불평등 맞선 대응책 강연과 토론각계 200여명·청중 1천여명 참석‘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라는 주제로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회식에서 참석자들이 양상우 한겨레신문사 사장의 개회사를 듣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올해 9회째를 맞은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이 30일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를 주제로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이틀 일정으로 개막했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와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 등 기조강연자와 토론자들은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적 소득 불평등의 새롭고 다층적인 양상과 구조를 풍부하게 해부·진단한 뒤, 불평등과 싸우는 현실적 상상력으로서 ‘정치적·사회적 대응’을 주창했다. 피케티는 강연에서 “왜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심화되는가”라고 물은 뒤 “더 균등하고 역동적인 사회경제로 이행하려면 정치적 역할이 중요하다”며 ‘불평등에 맞서는 정치’를 요청했다. 또 다른 기조강연자로 나선 윌킨슨 교수는 “단순히 소득격차 문제를 넘어 그로 인해 사회 전체에 열등감과 우울감이 증가하고, 응집력 및 사회공동체 신뢰가 약화하는 등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정책 대담에서는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과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피케티 및 윌킨슨 교수가 ‘불평등 치유를 위한 해법’을 모색했다. 오후 세션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와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불평등 심화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사회적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있는 현실을 적시하며 포용성장과 북유럽 ‘사회투자모델’을 불평등 극복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어진 특별세션에서는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와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 등이 누진적 소득세 강화, 교육 기회 균등, 노·사·정 사이의 사회투자 협약 등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첫날 포럼에는 청중 1천여명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막식에 축전을 보내 “모든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포용국가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개막식에선 양상우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의 개회사, 박용만 아시아미래포럼 공동조직위원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환영사에 이어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축사를 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아시아미래포럼 조직위원) 등 각계 주요 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 이틀째인 31일에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성장전략’과 ‘포용성장과 지역순환경제’ 등을 주제로 총 6개의 분과세션이 하루 내내 이어진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8053.html#csidxa7777f8ae088387a90d590001c03502

[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막] 피케티 “한반도 화해 놀라운 변화…불평등 극복 논의할 때"

9회 아시아미래포럼 개막오전 세션 피케티·윌킨슨 교수 불평등 현상과 원인·해법 논의 오후엔 포용성장·사회투자 주제 전세계 불평등 극복 사례 소개 국외 석학 한국 도착 어제 만찬 문희상 국회의장·이낙연 총리 오늘 개막식 참석해 기념 축사 정치인·정부·재계 인사 함께‘불평등 극복’을 화두로 한 ‘2018 아시아미래포럼’이 30일 오전 9시 막을 올린다. 한겨레신문사가 해마다 가을에 여는 아시아미래포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람 중심 경제’ ‘포용성장’ 등 시대의 과제들을 한발 앞서 제시하고 담론화했다. 9번째인 올해의 주제는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이다. 올 한해 한국 사회는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심화하며 구성원 간의 갈등도 첨예화됐다. 문재인 정부가 분배 개선을 위해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상황 악화와 맞물리며 ‘을과 을의 다툼’ 양상으로 흘렀고, 소득주도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거센 논란으로 이어졌다. 올 초부터 가파르게 이어진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은 집 가진 이와 없는 이, 수도권과 지방 거주자의 격차를 넘기 힘들 정도로 벌려놨다. 최근 <한겨레>가 보도한 대로,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을 합한 통합소득의 지니계수가 0.5를 넘은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국제기준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임을 보여줬다. 이번 포럼이 ‘불평등’을 열쇳말로 택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라는 주제의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환영만찬이 열린 29일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김종구 한겨레신문 편집인,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쥘리아 카제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경제학 교수,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경제학 교수, 양상우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리처드 월킨슨 영국 노팅엄대학교 사회역학 명예교수,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학교 공공보건 역학 교수,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학교 정치학 교수,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김연명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국정과제지원단장, 송경용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 고문,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이제민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첫날 오전에는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와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로부터 불평등의 현상과 원인을 살펴보고 대책을 듣는다. 오후의 기조 연사인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와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각각 ‘포용성장’과 ‘사회투자’를 키워드로 불평등 극복의 사례와 해법을 펼쳐 보인다.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라는 주제의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환영만찬이 열린 29일 저녁 서울드래곤시티호텔 고구려룸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김영배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 닉메타 주한영국대사관 부대사, 신광영 한겨레신문사 시민편집인 중앙대학교 사회학 교수, 쥘리아 카제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경제학 교수,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경제학 교수,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학교 공공보건 역학 교수, 케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학교 정치학 교수, 정혜주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과 교수,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신영전 한양대학교 의대 교수,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서왕진 서울연구원장, 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박찬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 진민정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홍민영 주한영국대사관 공보관, 이한주 경기연구원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포럼에 앞서 29일 오후까지 한국에 도착한 토마 피케티 교수, 리처드 윌킨슨 명예교수, 캐시 조 마틴 교수 등 연사들은 행사장인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피케티 교수는 “한반도가 냉전에서 벗어나 화해로 가고 있는 정세 변화가 놀랍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제 불평등 극복에 대해서도 논의할 때이며 경제성장, 혁신, 자유를 얘기해야 한다”며 “이는 냉전이 종식된 나라 한국에 적격인 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로 명함을 건네며 상대의 발표 주제에 관해 묻는 등 관심을 표시했으며,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 다른 참석자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양상우 한겨레 대표이사는 환영사에서 “2박3일 동안의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많은 지식을 전달해, 동아시아와 세계가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데 기여하려는 한겨레의 노력에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했다. 30일 개막식에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해 축사한다. 또 청와대에서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참석한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박영선·남인순·서형수·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다수의 정·관계 인사가 참석한다. 경제계에서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이동걸 케이디비(KDB)산업은행 회장, 윤종규 케이비(KB)금융그룹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함께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915.html#csidx72f43eaac3280c99e2456b1844428f0

[한겨레 사설] 불평등 해소할 ‘새로운 상상력’ 발휘를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전야 환영만찬이 열린 29일 저녁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 고구려룸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네번째부터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경제학 교수, 양상우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리처드 월킨슨 영국 노팅엄대학교 사회역학 명예교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상위 계층의 몫은 급증하는 반면, 중산층 이하 계층의 소득과 자산은 줄거나 멈춰 있다. 나라 안의 문제만이 아니다. 불평등이 시대적 의제임은 전세계 공통 사항이다.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30~31일 열리는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의 주제를 ‘불평등’(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으로 삼은 배경이다. 이번 포럼 행사에 연사로 참석하는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는 <한겨레>와 미리 만난 자리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통합도 저해된다”고 말했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서로 돕지만, 불평등하면 불안에 시달리고 경비노동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는 불평등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연사로 나온다. <21세기 자본>을 지은 피케티 교수는 지난해 12월 각국 학자들과 공동으로 펴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을 통해 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줘 다시 한번 화제를 뿌렸다. 피케티 교수는 이번 포럼 행사에서 ‘불평등, 그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곧이어 정책대담에도 참여한다. 한국 사회에선 특히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소유 격차가 불평등을 늘리고 고착시킨다. 땅이나 아파트에서 얻는 소득이 노동소득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린아이들이 장래 꿈을 스스럼없이 ‘건물주’라고 꼽고 있는 데서 이를 새삼 확인한다. 이런 터에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삼은 현 정부의 불평등 해법은 겉돌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달로 노동과 분배의 성격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불평등 해소를 어렵게 만드는 새로운 도전이다. 일자리 불안과 그에 따른 불평등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불평등이야말로 우리 삶을 바닥부터 흔드는 ‘세계 최대 위험’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불평등을 극복하고 균형 잡힌 사회로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숙제다. 조세·재정을 통한 전통적인 재분배 노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협동과 공유의 경제를 키워가는 것을 포함한 새로운 발상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지혜와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포럼 행사가 미래로 나아가는 상상력 발휘의 물길에 보태는 의미 있는 물방울이길 바란다.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867863.html#csidx7741d9ba726bb218aeec3386ee58a65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깊고, 넓고, 오래가는 변화’ 혁신의 얼굴을 바꿔가는 이들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10월31일 세션6전환시대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서울시-서울연구원 ‘위체인지’ 포럼청년-도시농업-공유경제 등다양한 영역 도전자 100여명 참가성공 사례 넘어 고민-난관도 공유“활력 붇돋워 장기적 동력 갖추게”공공성 뒷받침할 방안 찾기 나서지난 12일 명동 커뮤니티 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위체인지(We Change)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 포럼에서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박은경 연구원 ‘혁신’‘, ‘변화’ 오래된 것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낸다는 뜻의 단어다. 그 자체로 신선함이 담겨있는 말인데도, 새롭지 않다. 조직, 지역, 도시, 행정, 마을… 다양한 단어를 앞에 붙여 봐도, 어쩐지 들어본 느낌이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늘었다는 뜻이지만, 넘치는 말만큼 체감하는 변화가 일어났는가 하는 질문도 나온다. 그래서일까, 사회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고 있다. 한계나 어려움, 과제는 지워지고 좋은 부분만 부각한 성공사례를 수집하거나, 화려한 행사와 새로운 건물과 조직을 만드는 표면적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공감대이다. “넓고 깊고 오래가는 변화.” 지난 12일 명동 커뮤니티 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위체인지(We Change)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에 기조 연사로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이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시와 서울연구원은 지난 7월부터 ‘위체인지’ 포럼을 진행하며 청년, 도시농업, 공유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100여명을 만났다.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소유하는 삶의 방식을 거부한 이들이 모여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들며 살아가는 ‘비전화공방’,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모여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다 “어떤 아이라도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며 활동 범위를 넓힌 ‘정치하는 엄마들’, 공유경제 기업 ‘스페이스 클라우드’, ‘그린카’, ‘에어비엔비’와 농업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셜 벤처인 ‘농사펀드’ ? ‘동구밭’ 등이 그런 곳이다. 이들의 활동 모습은 다양하다. 에어비엔비처럼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도 있지만, 조직규모나 매출이 크지 않은 경우도 많다. 본질을 지키기 위해 규모가 커지는 것을 스스로 자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내놓는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삶을 선택한 결단,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내 본 경험이 결국은 사회를 바꿔 나가는 단단한 씨앗이라는 믿음이다. 한 사람이, 한 공동체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뒤에 오는 사람의 다른 선택은 조금 쉬워진다. 어떤 시도가 장벽에 부딪히더라도 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혁신을 막는 걸림돌을 물 위로 드러내는 표식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험으로 증명한다. “청년허브에서 5년 전 오가던 청년들의 지금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송지현 서울시 청년허브 공공플랫폼 팀장의 말이다. “설탕 안 들어간 빵 만들겠다”는 다소 막연한 계획을 갖고 있던 청년들이 몇 년간 고군분투하더니, 현대백화점에 점포를 내게 됐다. 성교육 캠페인을 하겠다던 청년 그룹은 퀴어 페스티벌의 가장 큰 스폰서가 될 정도로 성공한 콘돔회사가 됐다. 당장 창업을 하고 일자리를 만들도록 유도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판단했다.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뭔가 해 볼 수 있는 활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모여 고민을 나누고, 해결 방법을 찾는 판을 벌이면, 당장 눈앞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몸에 경험으로 축적돼 결국은 장기적 변화의 동력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건물주의 법적?사회적 권리와 지위가 지나치게 높다.” 공간공유 플랫폼 스페이스 클라우드를 운영하는 정수현 대표의 말이다. 카페, 식당 등 대부분 공간에 대한 권한은 건물주에게 있다. 카페?식당 등의 공간을 필요한 시민들에게 잠시 빌려주는 공간공유 서비스를 해 보려 해도, 현행법상 이는 ‘전대’에 해당해 건물주의 허락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장사가 잘 되 보이면 임대료를 올리는 일도 있다. 그래서 구청 등 공공시설로 눈을 돌렸더니, 이번엔 과도한 행정절차가 발목을 잡았다. 2시간 회의할 공간을 빌리는데도 심사서를 써야 하는 식이다. 시장에서 해결하려니 자본이 벽이었고, 공공의 문을 두드리니 경직성이 벽이 됐다.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다른 활동하는 이들의 고민은 자연스레 ‘공공성이 무엇이고, 사회가 이를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가’ 하는 큰 질문으로 모였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자발적인 시민들의 움직임에 사회는 어떻게 발맞춰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남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2018 아시아미래포럼 2일 차인 31일 오후 1시 30분부터 열리는 세션 6 ‘전환시대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위체인지’ 포럼을 기획하고 진행한 이강오, 조경민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이 좌장과 기조발제를 맡고,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 도심형 태양광발전을 제공하는 ‘마이크로발전소’ 의 이기관 대표, 공간공유 플랫폼 ‘스페이스 클라우드’ 정수현 대표 등이 변화를 만들어온 경험을 나눈다. 안현찬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안연정 서울시청년허브 센터장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 등이 토론자로 나서 논의를 더 풍부하게 할 예정이다.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385.html#csidx258c4ebbf43f781a3d702b342c84194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변화된 노동 기준에 맞춘 노동자 인격 연계 권리보장제도 구상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10월31일 세션 5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4차 산업혁명 시대 왔는데노동법은 옛날 방식 그대로디지털 시대 앞 효력 잃어가일본-중국에선 정부 주도 역할 강조초국적-특수 고용 고려하고기계화 물결 대비책 있어야디지털 시대, 곳곳에 깔린 인터넷 망과 스마트폰이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물을 촘촘히 연결한다. 기술의 발전은 산업의 구조와 노동 방식을 뒤흔든다. 인터넷만 있으면 지구 어디에서나, 언제든 일을 할 수 있다. 증기 기관이 촉발한 제1차 산업혁명이 논밭의 노동자를 공장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불러올 제4차 산업혁명은 노동자를 거리로 나오게 할 것이다. 일하는 장소와 내용은 일하는 시간에도 영향을 끼친다. 농사를 짓던 농민은 자연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만 공장의 노동자는 전등 빛으로 밝혀진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한다. 지금의 법과 제도는 공장 노동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회사와 계약을 맺은 노동자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고 월급, 보험, 연금 등으로 이루어진 대가를 받는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노동의 중심이 이동했지만 법과 제도는 산업사회의 유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의 고용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노동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택배 기사, 학습지 교사, 방송작가처럼 노동 조건을 통제받는 사장님, 노동의 대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흔해졌다. 노동자와 회사의 관계를 규정하고 각 주체의 권리와 의무를 명기했던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은 개별 국가 내에서만 작동한다. 기업의 활동이 국경을 넘지 않았을 때, 노동자들은 각 국가의 법과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운이 좋아 ‘복지국가’에서 태어난다면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같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초국적 기업의 등장은 노동자 간의 격차를 줄였다. 값싼 노동력과 낮은 세금을 좇아 언제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초국적 기업 앞에서 각 국가의 노동자 보호 정책은 점점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기업의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을 초국적 기업으로 만든다. 서비스 사회로의 전환에 제때 대비하지 못한 채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앞두고 있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디지털 시대는 서양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했던 18~19세기의 모습을 재현할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불평등을 해결할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아시아미래포럼 둘쨋 날인 31일 오후, 한국노동연구원 주관으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노동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좀 더 정의로운 노동, 좀 더 인간적인 노동을 추구하기 위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경험을 공유한다. 장소와 시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대에 한국만의 대책은 유효하지 않기에, 우선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나라와 공동의 노동법과 제도를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첫 번째 발제자인 최석환 명지대 교수(법학)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 주도로 법과 제도를 개정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한다. 일본은 올 6월 사회보장제도 및 세금제도 개편, 근로시간 상한제 도입 등을 뼈대로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법’을 제정했다. 최 교수는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과거에는 건강한 성인 남성이 노동자의 기준이었다면, 저출산?고령화를 계기로 여성과 노인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는 사회 흐름에 맞추어 편의점 점주, 서비스 엔지니어 등 전통적 고용 관계에 속하지 않는 특수형태 고용종사자(특고)의 계약 조건을 규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저우 광쑤 중국 인민대학교 교수(노동인사학원)는 디지털 전환이 불러올 중국의 노동시장 변화를 지역과 산업, 노동자의 특성별로 나누어 보여줄 예정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나이가 많고, 교육수준이 낮고, 소득이 낮은 노동자일수록 기계에 대체될 확률이 높다. 예견된 변화를 앞두고 있는 지금, 다음 행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저우 광쑤 교수는 “정부가 기술의 발전이 지닌 긍정적인 면만 홍보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자동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방안으로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여 기계에 대체될 가능성을 줄이고, 소득 감소나 노동시간 증가 등 노동 조건의 악화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 사례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소개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자로는 왕 페이 중국 인민대학교 노동인사학원 교수, 강성태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나선다. 해당 세션을 기획하고 좌장을 맡은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자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고 그 대가로 물질적 복지를 보장받는 시대는 지났다”며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자의 인격에 연계한 권리 보장 제도를 구상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jysong@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67409.html#csidxe164f52c4d02d86b4f74935fd313de5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넘쳐나는 허위정보, 개인과 사회의 대응법은

정보 분석과 활용능력이 중요해진 정보화 시대는 새로운 불평등과 격차라는 부작용이 함께 따라온다. 디지털 ‘문해(文解)능력’ 격차라고 불리는 새로운 격차 현상은 디지털 신호처럼 개인별?사회별 격차가 전에 없이 크다는 게 특징이다.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고 평균 학력과 지식수준이 상승했는데, 오히려 허위 왜곡 정보로 인한 이용자 피해는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허위정보를 식별해내고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지 우리 사회가 토론해야 하는 것이다.포럼 둘째 날인 31일 오전에 열리는 분과 세션3은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주관해, ‘디지털 환경의 정보 식별성과 소비자 주권’을 주제로 논의한다. 가짜뉴스로 대표되는 허위정보가 왜 디지털 공간에서 문제가 되는 지를 우선 알아본다. 이후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을지를 놓고 기존의 논의와 실행시도를 소개한다. starry9@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노사정 대화로 새로운 성장의 문 열어야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10월31일 세션1새로운 성장전략과 노사정의 역할한국 지식기반경제 전환중노동자 역량 높이는 정책이기업 생산성-국가성장 보탬서구에서 사용자들도사회정책 적극 참여할 결과기업신뢰 높아져 이익 커져노도도 기업 규모별 기존 틀 넘어내 일자리 지키기식 운동이 아닌 모두에게 이득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난해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 폐회식에서 노사정이 모여 ‘좋은 일자리 창출과 저출산·고령화 대응,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 을 발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저성장 시대, 우리는 어디에서 성장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사회정책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포럼 둘째 날인 31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주관해 열리는 ‘새로운 성장전략과 노사정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대화’는 국내외 사례들을 통해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성장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성장의 촉진제로서 지식과 혁신에 주목했다. 한국 경제도 이미 지식 의존도가 높은 지식기반경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일수록 유연하고 숙련도가 높은 노동력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변화하는 수요에 쉽게 적응할 때 기업의 생산성도 높아지고 국가 전체의 성장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 사회정책, 즉 직업훈련과 평생학습 등이 중요하게 부각된다.복지국가 스웨덴이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과감한 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변화에 노동자들이 신속히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실직이 되더라도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는 사회안전망과 인적투자를 중시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역할이 컸다. ‘새로운 성장전략과 사용자의 역할’을 발제할 예정인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서구 국가들을 비교?분석해,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정책이 생산성 증대로 이어져 사용자들에게도 유리한 결과가 됐음을 입증한다. “노사 간 연대와 협약을 통해 복지국가를 이룬 북유럽 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 성장과 복지를 이루었던 비결도 지속적 사회정책의 추진에 있다”고 마틴 교수는 말한다. 복지국가를 약화하려는 중도우파정부에 노사가 함께 맞서서 사회정책을 지켰고 그 결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도 높아져 경제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이뤄냈다. 이처럼 사용자들이 사회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기업의 비용 증가로 전가되지 않고 오히려 이익과 성장에 도움이 된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복지국가가 발전해 온 경로를 보면 산업화가 진행될 수록 노동자를 위한 복지가가 함께 커가지만 한국은 예외에 속한다. 한국의 경제는 선진국이지만 복지는 ‘후진국’에 가깝다. 박정희 정부 이후 ‘수출 지향 산업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복지 지출을 낮추는 전략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장전략과 정부의 역할’을 발제하는 정무권 연세대 교수(글로벌행정학)는 “한국의 산업화는 급속히 이루어졌지만 복지 수준이 낮게 형성되면서 지금의 성장 위기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다 보니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으로 실업을 하면 재기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산업구조 개편 작업을 신속히 추진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경제는 점점 저성장 늪에 빠지게 되고 위기가 심화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해법은 결국 적극적인 인적투자에 있다고 정 교수는 강조한다. “지식기반경제에서는 기업, 노동자, 시민 등 각 주체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결국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에서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한국은 사용자가 노동자보다 독점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노동복지, 인적투자 등과 같은 노동의 요구를 외면하고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매몰되어 있다”며 “노동 역시 계급 전체의 이익보다 개별 기업의 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배제적 노동체제, 복지체제가 성장을 위협하므로 지금이라도 인적자본 투자 등 과감한 사회지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서는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새로운 성장전략에서 노조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이 연구위원은 “새로운 성장전략인 ‘포용과 연대’로 가기 위해서는 노조도 기존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가 최우선 과제인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기업규모별로 분절된 현재의 노동조합 체제로는 노동의 불평등이 더 심화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지금의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시장 안팎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목소리를 직접 대표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는 현재의 기업 단위의 단체교섭 구조를 기업을 초월하는 단위로 확장해야 한다. 초기업 수준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과 직업훈련, 고용서비스의 질 향상, 산업 발전방안 마련 등 노동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위원은 노조에는 정책역량 강화를 주문했다. “정책역량은 지금의 내 일자리 지키기 식의 ‘기득권 추구 운동’이 아니라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는 ‘설득력 확보 운동’을 펼치기 위한 토대”라고 의미 부여했다. 네 번째 발제는 경사노위 박명준 수석전문위원인이 맡는다. 그는 새로운 성장전략에서 경사노위의 역할로 ‘일자리를 위한 연대’를 제시한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한 노동존중 사회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노동 버전’이고 그 핵심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박 위원은 요약한다. 악화하는 고용부진은 저소득 계층의 삶의 위기와 양극화 심화를 부르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 창출은 우리 사회가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노사 간 참여와 대화보다는 예산 중심,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로 협소화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새로운 사회적 대화체제로서 ‘일자리를 위한 연대’는 노사의 참여 등 사회적 연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사회적 대화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867408.html#csidx638a46e963d55a2a68dcbd136bd6da3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초고속 성장 속 위태로운 삶…어떤 복지가 필요한가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10월31일 분과 세션 2불평등, 삶의 질 그리고 복지국가짓누르는 보건의료-교육비 짐위기 대처, 온전히 각자 어깨에불평등이 결속력 해치는 주범평등과 성장, 양자택일 문제 아냐복지 사각지대에 ‘재기’ 기회 줘야포용적 복지 작동할 체계 구축을고려아연 임직원과 적십자 봉사자들이 10월 24일 서울 노원구 상계 3동과 4동에 거주하는 취약계층 66세대의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줄을 서서 연탄을 나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국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모한 유일한 국가. 늘어나는 기대수명, 매년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높은 학업 성취도. 전례 없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한국은 국제개발협력을 비롯해 교육, 보건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국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삶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2005년 부터 2017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은 한국의 것이었다. 이 국제기구의 ‘삶의 질’ 평가에서도 한국은 여러 해 동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소득수준은 어떤가? 국민총소득 3만 달러 진입(2017년, 2만9745달러)이 눈앞에 있지만, 가계의 실질소득은 2016년 3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마이너스 성장했다.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가계 몫으로 돌아가는 크기는 줄었다는 뜻이다. 낙수효과가 사라진 성장 패턴과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간의 굳어진 빈부 격차가 원인이다. 경제성장이 국민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깨어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는 어떤 복지 정책을 필요로 하는가. 2018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인 31일 오전에 열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주관의 분과 세션 2는 삶의 질을 높이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복지 정책, 그리고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토론하는 자리이다. 첫 발제자인 이현주 보사연 소득보장정책 연구실장은 국가의 성장과 국민 삶의 질에서 명암이 드러나는 이유를 국민에게 지워진 보건의료 및 교육비 부담에서 찾았다. 오이시디 통계를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중 보건의료를 위한 가구 지출 비중은 2015년 기준 2.7%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제도를 운용 중이지만, 국내 가구의 이런 의료비 부담은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것이다. 2014년 현재 가구당 의료비 비중은 덴마크 1.5%, 스웨덴 1.7%, 영국 1.5%, 일본은 1.4%였다. 이 실장은 이러한 가계비용지출 구조가 사회적 위기에 개인이 대처하게 하고,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이 실장은 근로 빈곤층의 기초생활 보장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임금 격차를 줄여 가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한 저소득층의 소득을 잠식하는 주거비와 의료비, 교육비 부담이 줄어들도록 사회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는 소득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아울러 해외의 사례를 통해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피킷 교수는 불평등은 사회의 결속력을 약화하고 범죄율을 높이는 등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이라 정의한다. 그는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즉 ‘사회적 관계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 마을을 예로 들어, 높은 유대관계가 사망률을 낮추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평등과 경제성장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고 가는 일각의 흐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 왔다. 경제는 삶의 질과 사회의 응집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교육, 고용, 산업구조, 조세 정책을 비롯해 경기순환 관리 등 많은 것을 사회정의, 그리고 사회분열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지여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이번 포럼에서 강조할 내용이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는 ‘포용적 복지국가’가 불평등 해소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김 교수는 근본적 혁신이 없이는 우리 사회의 낮은 삶의 질과 높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복지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경제발전에 걸맞게 복지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이 포용적 복지국가라 정의했다. 저성장과 양극화는 많은 사람을 시장경제에 참여할 기회마저 빼앗았다. 이들은 성장의 혜택을 누릴 기회도 함께 잃게 되며 점차 빈곤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렇게 시장경제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기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봤다. 높은 사회적 비용을 들이고도 삶의 질과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남유럽국가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처한 사회?문화적 특수성과 4차 산업혁명, 초저출산과 급격한 고령화 등의 새로운 사회적 도전을 고려해 포용적 복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경제 정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자로는 포럼 첫날의 기조 연사를 맡았던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학교 사회역학 명예교수를 비롯해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 권순만 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가 나서며, 조흥식 보사연 원장이 좌장을 맡는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ekpark@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412.html#csidx690fffbff5dd02a91b96d328b686c3d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평등해야 지속가능한 발전도 가능하다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10월 30일 오후 특별세션불평등 해소와 지속가능발전국제사회, 양적 성장에만 몰두 댄자원고갈-환경파괴 등 ‘파국’불평등 해소-지속가능성 결합EU의 다양한 실험 소개하고분배효과 평가-기술이익 공유 등빈곤 줄일 7가지 정책대안 제시“불평등한 나라가 특허도 적어”혁신-생산성과 연관성 분석도포럼 첫날인 30일 오후에 진행되는 특별 세션에선 불평등 해소와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다양한 제안과 논의가 펼쳐질 예정이다. 지속가능성은 21세기 들어 국제사회가 가장 중시하는 의제이다. 양적 성장에만 몰두한 나머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자원고갈과 환경파괴가 심각해져 인류의 미래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193개국이 가입한 유엔은 2015년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세계의 변혁: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 어젠다’를 채택했다. 이 합의에 따라 회원국들은 2030년까지 빈곤, 기아, 건강, 교육, 성 평등, 일자리 등 17개의 공동목표 (지속가능발전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이에 따른 169개 세부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에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은 절실한 과제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단기 처방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뿐더러,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환경부 장관이 이런 문제의식 아래 특별 세션의 문을 여는 기조발제를 한다. 이어지는 발제에서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는 유럽연합이 불평등 해소와 지속가능 의제를 어떻게 결합해 정책으로 시행하고 있는 지 소개한다. 유럽 28개국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유럽연합은 일찍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심을 기울여,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금융, 저탄소 순환자원경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이 무관하지 않음을 설명하는 한편, 지속가능 의제가 장기 과제인 만큼 정부가 끈기를 갖고 장기적인 계획을 추진해나가야 함을 역설할 것으로 보인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제에 나선다. 신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높은 자살률 같은 사회적 재난의 원인이 불평등”이라고 진단한다.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의 급증,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자산 불평등 심화 등은 불평등을 ‘구조’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불평등에 대응하는 정책을 마련하려면 △불평등 완화에 효과적이고 바람직한가 △정치적 지지와 리더십,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해 실현 가능한가 △사회경제적 조건과 조화를 이뤄 지속 가능한가의 세 가지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신 교수의 견해다. 이 기준에 맞춰 신 교수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7가지 정책대안을 내놓는다. 정책의 분배 효과를 정부와 공공기관이 평가해야 한다는 게 그 첫 번째다. 인공지능의 민주적 소유 등을 통해 기술 변화가 가져오는 이익을 모든 시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제안도 할 예정이다. 비노동 인구와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 자산 불평등과 그로 인한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한 부유세 도입,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도입으로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는 노동시장 개혁, 빈곤층 대상 공적 지원 강화, 주거 불안에 대응할 주택보조금 인상과 사회주택 확대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신 교수는 발제문에서 “불평등과 빈곤을 줄이는 정책은 종합적이고 일관된 노력이 필요하다. 경영계 역시 자산의 집중과 빈곤 증가가 가져올 파괴적인 효과를 인식하고, 경제 성장이 지속 가능하냐를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 발제자인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의 주제는 ‘불평등은 혁신과 생산성에 해로운가?: 한국에 주는 교훈’이다. 장기적인 경제 성장의 핵심요인인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불평등이 어떻게 가로막는 지, 특허와 총요소생산성 (노동·자본·원자재 등 ‘눈에 보이는’ 생산요소 말고, 기술개발이나 경영혁신 같은 ‘눈에 안 보이는’ 부문이 얼마나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가를 나타내는 생산 효율성 지표)에 근거를 둔 국제적인 실증 분석을 통해 보여줄 예정이다. 이 교수는 발제문에서 197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총요소생산성이 지속해서 감소했고, 총수요의 감소가 신기술 개발에 드는 투자 축소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신기술 관련 투자가 줄어 총요소생산성도 침체했다는 것이다. 여기엔 불평등이라는 원인이 숨어 있다. 미국에서 특허와 부모 소득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중위소득 이하 가구의 자녀가 특허를 받은 건 1천명당 0.84명이지만 상위 1% 소득 가구에선 8.3명으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이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불평등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특허가 적은 경향을 보인다는 국제 비교 결과를 제시한다. 이는 곧 불평등이 혁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줘, 불평등할수록 혁신이 이뤄지지 않으며 장기적인 총요소생산성의 침체를 불러온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주도성장의 방향은 바람직하다는 게 이 교수의 평가다. 정부는 분배와 수요확대를 통한 성장 전략인 소득주도성장에 드라이브를 걸며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크다. 이 교수는 발제문에서 “사실상의 축소 재정, 거센 비판과 논쟁 탓에 소득주도성장의 결과는 실망스럽다. 강력한 재정 확장, 더 많은 재분배와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실천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인터넷 은행 활성화 등 정부가 혁신주도성장을 강조하며 ‘탈규제’에 시동을 거는 것을 두고도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이 교수는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규제 개혁’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전면적인 ‘탈규제’는 안된다. 연구개발 지출 확대, 혁신적이지만 모험적인 공공지원, 적극적인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불평등 확대와 생산성 향상의 정체는 포용과 혁신의 정책을 요구한다. 포용적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노력이 혁신과 생산성 증대에 필수적”이라며 “소득주도성장이냐, 혁신주도성장이냐는 구분을 넘어, 적극적 재정정책과 산업정책, 구조 개혁을 통한 평등한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내용의 발제가 진행될 특별 세션은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환경대학원)가 좌장을 맡아 진행하며, 정원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회장,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케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정치학)가 토론자로 참여한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391.html#csidxcb91f7ab0adad17a56fb107366f722c

[아시아미래 포럼 특집] 커지는 ‘부의 쏠림’-위협받는 ‘공공건강’ …해법은 평등에 있다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토마 피케티5년 전 저서 ‘21세기 자본’서 경고음70여 나라 자산-소득 DB 구축‘세계불평등보고서 2018’ 내는 데 공헌더 심해진 상위 1% 자산 집중 밝혀한국 진보진영 해법 찾기에 도움리처드 윌킨슨사회구조-공공건강 관계 30년 연구부유한 23개 나라 비교분석 결과소득수준이 같아도 불평등 사회 땐더 아프고 더 빨리 죽는다는 결론쌍용차 해고 등 우리 사회에 큰 교훈2011년 9월 미국 뉴욕의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해 벌어진 ‘오큐파이(점령하라) 운동’에 참가한 한 시민이 ‘우리가 99%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 수출 세계 6위. 한국 경제가 지난해 받아든 성적표는 화려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도 코 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딴판이다. 최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국세청 과세자료를 근거로 분석해보니, 일을 해 벌어들인 소득과 자산 보유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합친 ‘통합소득’을 기준으로 삼으면 지니계수가 0.5를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반적 기준에 따르더라도 ‘불평등이 매우 심한’ 상태에 해당한다. 자산 상위 10%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0%대에 근접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뿐 아니다. 소득과 자산의 극심한 불평등은 건강과 시간, 주거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자살률 1위와 출산율 꼴찌라는 불명예는 요지부동이다. 불평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모든 영역이 곪아 터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주소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 특히 자산 불평등 연구에 매진해온 대표적 학자다. 피케티 교수는 2014년에 출간돼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21세기 자본>을 통해 여러 나라에서 관찰되는 극심한 자산 불평등과 극소수의 부 독점이 세상을 중세 세습사회로 되돌릴 지도 모른다고 엄중하게 경고한 바 있다. 불평등 연구를 경제학의 핵심과제로 자리매김한 <21세기 자본>은 주류 경제학계의 뒤늦은 ‘반성’과 맞물려 커다란 파장을 낳기도 했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포용성장’을 강조하고 나선 건, 부자의 주머니부터 채워야 불평등이 사라지고 빈곤층의 주머니가 채워진다는 ‘낙수효과’ 주장이 거짓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피케티 교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 70여개 나라의 소득과 자산 불평등 시계열 자료를 한데 모은 세계 자산·소득 데이터베이스(WID.월드)를 구축해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그의 주된 공로라 할 만하다. 그가 중심이 돼 파리경제대학의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지난해 연말 펴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은 그 결과물이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신흥경제국까지를 포괄하는 이 책은 각국은 물론 전세계 차원의 불평등도 차츰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6년 기준으로 세계 자산 집중도 상위 1%는 전체 자산의 33%를 소유해, 30년 전인 1988년(28%)에 견줘 집중도가 한층 높아졌다. 토마 피케티 교수가 자산 불평등을 근거로 세습사회의 문턱에 선 세상에 경고음을 날렸다면, 불평등과 건강의 상관관계라는 독특한 주제에 오랜 기간 주목해온 대표적 학자로는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를 꼽을 수 있다. 영국 정경대학(LSE)에서 경제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윌킨슨 교수가 사회역학 분야를 개척하며 남긴 발자취는 오래도록 빛을 내고 있다. 건강을 불평등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윌킨슨 교수는 영국 정부로 하여금 건강 불평등을 국가적인 연구과제로 삼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아프다? 부자일수록 더 오래 산다? 얼핏 생각하면 건강과 불평등이란 열쇳말은 쉽게 하나의 연결고리로 맺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윌킨슨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지 가난이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수명을 단축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설령 소득 수준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불평등 정도가 더 높은 사회에 사는 구성원일수록 더 많이 아프고 더 빨리 죽는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예컨대 인구당 의사 수, 병원 수용가능률, 개인의 의료비 지출이 기대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면, 답은 결국 ‘불평등’에서 찾아야 한다. 리처드 윌킨슨 노팅엄대 사회역학과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윌킨슨 교수는 부유한 23개 나라를 대상으로 비교분석을 한 결과, 불평등 정도가 심한 나라일수록 정신질환과 질병, 자살, 범죄 빈도가 높고, 사회적 신뢰도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불평등이 사회 구성원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윌킨슨 교수의 주장은 건강과 불평등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문제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왜 더 많이 질병에 걸리느냐에서 찾아야 한다고. 30년 넘게 사회구조와 공공의 건강이 맺는 관계에 매달려온 윌킨슨 교수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외려 명쾌하다. 평등해야 건강하다! 평등이 답이다! 토마 피케티와 리처드 윌킨슨. 불평등을 화두로 삼아 외길을 고집해온 두 세계적 석학은 10월 30~31일 이틀간 열리는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오전 나란히 기조 강연자로 나선다. 두 사람의 기조강연이 끝난 뒤엔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의 진행으로 두 사람과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가 함께 참여하는 정책대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사회의 최대과제인 불평등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와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 재계와 학계, 시민사회에 두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 지 사뭇 관심거리다. <21세기 자본>이 나온 지 4년. 그 사이 세상은 요동쳤다.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내건 포퓰리즘이 세계 곳곳에서 득세했고,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제조업이 몰락한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표를 몰아줬다. 피케티 교수는 올해 초 발표한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라는 화제의 논문에서 1948~2017년간 미국·영국·프랑스의 선거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좌파는 교육 받은 엘리트(브라만 좌파)를, 우파는 수입과 재산이 많은 엘리트(상인 우파)를 대변하는 추세가 더욱 뚜렷해졌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비록 맥락은 크게 다르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 해법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전통적인 의미의 진보진영이 내건 해법이 ‘지금, 여기’ 불평등 구조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로부터 외려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어서다.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 피케티를 주목하는 이유다. ‘불평등한 사회는 어떻게 퇴보하는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설 윌킨슨 교수는 지난 봄 게이트 피킷 영국 요크대 공공보건역학 교수와 함께 쓴 <이너 레벨>(The Inner Level) 에서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메시지를 한층 구체적인 언어로 담아냈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평등이 답인 이유를 이런 에피소드로 들려준 바 있다. 1980년대 이후 해고가 일상화된 영국에서 해고 광부들 가운데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고. 우리에겐 너무도 낯익은 풍경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운데 목숨을 버린 숫자가 이미 30명을 헤아리고, 79%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40%가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우리는 윌킨슨 교수의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아야 할까. ▶토마 피케티 1971년 생 영국 런던정경대학(LSE)과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EHESS)을 거쳐 거쳐 1993년 22살에 박사학위 받음. 프랑스 경제학회가 주는 ‘올해의 최고논문상’ 수상 1993~1995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과 조교수 1995~2007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 2007~현재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 2015년 제레미 코빈이 이끄는 영국 노동당 경제자문 2017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 브누아 아몽 캠프 활동 ▶리처드 윌킨슨 약력 1943년 생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경제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뒤 노팅엄대 사회역학 교수로 재직 2008~현재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 런던대학교 공공건강과 역학 명예교수, 요크대학 초빙교수 2011년 세계정치학회가 주는 ‘올해의 책’ 수상(<평등이 답이다>) * 주요 저서 <건강 불평등: 사회를 어떻게 죽이는가>, <평등해야 건강하다>, <평등이 답이다 :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390.html#csidx69c17d8a9ae31cba1b903402468e57e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불평등 ‘치료’… 사회적 상상력을 펼치다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한국, 상위 10% 자산 집중도 66.5%미국-영국에 근접하며 양극화 커져‘부의 대물림’ 주거-일-삶에까지 확장피케티가 말한 ‘중세로의 회귀’ 방불다양한 상상력 통한 불평등 극복 방안세계적 대가들과 함께 현실적 탐색9번째 아시아미래포럼이 열리는 올 가을은 리먼 브러더스 붕괴로 본격화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지 꼭 10년이 되는 때이다. 그 어느 때보다 파장이 컸던 경제위기로 지난 10년간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다. 직장을 잃었고, 살던 집에서 쫓겨났으며, 일부는 비극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양적 완화로 겨우 위기의 표면을 덮어놓는 데는 성공했으나, 상처를 치유하고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는 일은 제대로 손을 못대고 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위기 근절이 쉽지 않은 것은 그 뿌리를 심화한 불평등, 그리고 이를 재생산하는 경제, 사회구조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79년부터 2012년까지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두 배 넘게 커지는 등 80년대 이후 전 세계에 ‘불평등의 회귀’ 현상이 빚어졌다. 여러 정부가 불평등 완화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같은 포용적 정책을 채택하고 누진적 세제를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 한편 포퓰리즘을 자극하는 극단 세력이 정치적 세를 얻고, 미국-중국의 분쟁에서 처럼 보호무역의 성벽을 쌓는 등 국제사회에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불평등이 발밑으로 파고들어 위기로 향해가는 사회가 보인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기획해 10월 중 연속 보도한 ‘한국형 불평등 말한다’ 에는 이런 실상이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불평등의 대표 지표인 지니계수가 0.5가 넘었다는 통계는 한국의 불평등이 결코 가볍게 넘길 수준이 아님을 말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0.5가 넘으면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 지니계수 (0.47) 보다 통합소득 지니계수가 높아진 것은 자산이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실재 한국의 자산은 상위 10%가 66.5%를 소유해 집중도가 미국이나 영국의 70% 선에 다가가고 있다. 올해 그랬듯이 주기적인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서울 및 강남에 집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자산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런 자산불평등은 ‘부의 대물림’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지난해 상속 및 증여 재산총액은 67조9천여억원으로 별다른 노력 없이 부모나 조부모에게 물려받는 재산이 하루 1800억원꼴로 나타났다. 이번 포럼의 기조 연사인 토마 피케티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중세사회로의 회귀”라 비유한 상황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주거처럼 필수 재화에서도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1995년 이후 20년 간 30~34살 월세가구가 2배로 늘어 나는 등 모든 연령대에서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났다. 월세는 주거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전세가 그간 집 마련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거의 질이 낮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전, 월세가구가 집 있는 가구보다 아이를 덜 낳는다는 통계도 나와 주거 불평등이 자녀 출생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게 확인됐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측면에서도 불평등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소득이 낮을수록 보육, 여가, 대인관계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시간빈곤’ 상태에 더 많이 빠졌다. 소득 보전을 위한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한 속에서 여성의 30%, 남성의 20%가 시간빈곤을 경험하고 있었다. 시간당 임금이 낮은 계층이 초장시간 노동을 하고 임금이 높은 층은 40시간 안팎의 표준노동을 해 시간이 소득에 따라 불평등하게 주어졌다. 부모가 가진 시간의 불평등은 가정에 돌아가서 하는 자녀 돌봄 시간 불평등으로 이어졌는데, 이런 격차는 또 다른 불평등의 원인이자 결과가 됐다. ‘포용적 성장’ ‘일의 미래’ 등 한국 사회에 긴요한 의제와 담론을 한발 앞서 제시해 온 아시아미래포럼은 올 해 좀 더 균등하고 역동적인 사회로 나가는 길을 찾아간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리처드 윌킨슨 노팅엄대 명예교수 등 이 분야 세계적 대가에게서 불평등의 현상과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불평등은 구조적 ‘고질병’이란 점에서 이번 포럼은 일반적인 분배와 재분배 외에도 상상력에 기반을 둔 다양한 해법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삶의 질과 복지국가, 노동의 미래, 전환시대 도시정책, 지역순환경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 등의 세션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만나게 된다. 첫날 오후 기조 연사인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의 포용성장에 대해, 캐시 조 마틴 보스턴대 교수는 북구의 경험을 들어 사회적 합의를 통한 불평등 극복 방안을 들려준다. 저우 광쑤 중국 인민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집중투자하는 중국이 ‘노동과 직업의 변화’를 어떻게 다루는지 소개한다. 무엇보다 불평등 극복은 구성원 모두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이때 필요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을 유능하게 발휘하는 것이다. 피케티와 윌킨슨 모두 정치의 역할을 불평등 극복의 요체로 강조하는 점도 이번 포럼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387.html#csidxda5f2f717f12df8b723905ca6966107

[아시아미래포럼 특집] 포용성장-사회투자…‘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 모색

【2018 아시아미래포럼 특집】사와다 야스유키‘낙수효과’ 기댄 기존 성장론 탈피부-교육 세습 등 사회 불평등 없애삶의 질 향상 꾀하는 발전 전략가난 극복 등 7가지 과제 집중 논의캐시 조 마틴사회적 합의로 복지-세금 체계 구축아동-여성, 기술교육 등에 투자 초점공정한 임금으로 평등 실현북유럽 사례서 뽑은 ‘성공 전략’ 소개포럼 첫날 오후 프로그램은 불평등을 극복하는 다양한 해법을 논의한다.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캐시 조 마틴 보스턴대 교수(정치학)가 기조 연사로 말문을 연다. 두 연사는 ‘포용성장’(inclusive growth)과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라는, 서로 접근법은 다르나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 방안으로 더 균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을 제시한다. 포용성장은 규모의 확장을 중시하고 분배는 ‘낙수효과’에 기대는 주류 성장론에서 탈피해 소득, 건강, 일자리, 교육, 부의 세습 등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을 꾀하는 발전 전략을 말한다, 저개발국,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성장이론으로 부각되면서 인도 등 주요국의 핵심적 정책 비전으로 채택됐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해 온 한국의 문재인 정부도 올 가을 그 개념을 확장해 ‘혁신적 포용국가’란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했다. 세계은행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들은 포용적 성장의 중요성을 진작부터 강조해 왔다. 아시아개발은행도 2008년에 아시아의 발전을 위한 목표를 담은 ‘전략 2020’ 보고서를 통해 포용성장을 △역내 경제통합 △지속가능한 환경과 함께 3대 중점 과제로 정했다. 이를 위해 교육훈련, 보육지원, 사회간접자본투자, 반부패, 포용금융, 공공거버넌스 개선 등의 처방을 제시했다. 한국은 역내 경제 선진국이어서 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나 발전도상 국가와는 포용성장의 과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한국은 국제협력 등을 통해 다른 역내 국가의 성장과 불평등 해소를 도와야 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사와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개발은행 이사회가 종전의 ‘전략 2020’을 개편해 올 7월에 새롭게 승인한 ‘전략 2030’을 중심으로 아시아적 맥락의 포용성장 전략을 제시하고, 한국의 과제를 짚어 볼 예정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전략 2030’ 발표문을 통해 “금융, 지식, 그리고 파트너십을 엮어서 극심한 가난을 뿌리 뽑고 번영되고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아시아를 만들어가자”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가난 극복과 불평등 해소 △양성 평등 강화 △ 기후변화 등에 대응하는 환경 지속성 △도시의 주거 여건 개선 등 7가지 중점 과제를 제시한다. 사회투자 모델은 고전적 복지국가나 신자유주의와 달리 사회정책의 투자적 기능에 주목한다. 이 모델은 지식 중심의 현대 경제 흐름에 맞춰 교육, 직업훈련, 주거, 의료 등 능력배양을 위한 프로그램에 집중하며, 역량이 강화된 시민들이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토록 하는데 목표를 둔다. 특히 아동에 대한 공적 투자를 중시하는데 아동이나 여성에 대한 공공지출은 미래의 빈곤을 줄이고, 인적자본 확충, 여성 노동력 확보 등 현재와 미래의 경제에 다양한 성과를 낼 것이라는데 주목한다. 물론 사회투자 모델이 현실에 적용될 때 성과와 효율의 논리로 복지의 본래 취지를 왜곡한다는 비판도 있다. 캐시 조 마틴 교수는 덴마크 등 북구 국가의 성공 경험에서 추출한 사회투자 전략의 요체를 설명한다. 북유럽은 높은 한 사람당 생산성, 낮은 불평등, 낮은 실업률, 재정 건전성, 강력한 사회결속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높은 공공지출은 기술교육 같은 사회적 투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경제구조의 변환기에 노동자들을 고숙련- 고임금의 상층 조합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또 이들 국가에서 평등은 재분배 보다는 주로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참여와 임금의 평등을 통해 실현된다는 게 마틴 교수의 분석이다. 마틴 교수는 이런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결속의 ‘마법 같은 조합’이 협력의 정치를 발판삼아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즉 계층과 정당을 초월한 광범위한 사회적 지지를 통해 복지와 세금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런 협력 능력은 노와 사의 대표성이 모두 강한 속에서 교섭을 통해 투명성과 신뢰를 쌓은 결과라는 것이다. 마틴 교수는 한국도 이런 모델을 벤치마킹 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 노사가 자신의 집단적인 이해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강한 체제(institution)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이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노사정 협의체를 가동해 왔지만 낮은 노조 조직률이나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반노동정책,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 재벌 중심체제 등으로 실질적인 합의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마틴 교수는 지적한다. 마틴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불평등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고, 취약층이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잃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정치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내느냐가 중요하다”며 “사회에 투자한다는 말은 불평등을 극복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덧붙였다. ▶ 사와다 야스유키 -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수석 대변인 - 도쿄대 교수 (경제학) - 세계은행 등 연구원 -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 캐시 조 마틴 - 미국 보스턴대 교수 (정치학) - 보스턴대 유럽연구센터 소장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박사 - 주요 저서 <기업 이해관계의 정치적 구성 The Political Construction of Business Interest> (공저) <모두를 상상하다 Imagine All the People>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386.html#csidxf7b5e25d247bc2382cbe114f9d7a32c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2부 무엇을 할 것인가 "불평등 줄었다면... 아시아에서 1억명 빈곤탈출 했을 것"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 ④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고장난 계층상승의 엘리베이터’ 고치려면소득주도성장이 혁신성장 강화양적성장 대신 삶의 질에 초점빈곤 넘어 환경,도시문제 등 포괄“나라별 특성 맞게 불평등 맞서야”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사회적) 보험이라 할 수 있는 소득주도 성장과 기업가 정신에 바탕을 둔 성장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사와다 야스유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5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소득주도 성장과 기업 혁신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에서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일부 언론과 학계의 비판은 마치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이 양자택일의 문제인 것처럼 전개됐다. 그는 “혁신을 촉발하는 기업가의 위험감수 행동은 발생 가능한 위험에 광범위한 안전망이 있을 때 고무된다. (다른 한편) 우리의 여러 연구는 기업의 혁신이 포용적 성장을 촉진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사와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30일 오후에 ‘가난, 불평등 그리고 아시아의 고장 난 엘리베이터 고치기’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그는 지난 7월 아시아개발은행 이사회가 승인한 새로운 개발 비전인 ‘전략 2030’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한국에서 포용성장이 필요한 이유와 전략을 소개할 참이다. 그는 2016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기관의 연구와 역내 협력을 책임지고 대변인 역할을 하는 수석이코노미스트에 임명됐다. 양적 성장을 중시하고 ‘낙수효과’에 기대는 종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포용성장은 소득, 건강, 일자리, 교육 등의 불평등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을 꾀하는 발전 전략을 말한다, 저개발국,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과 빈곤 해결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부각되면서 인도 등 주요국의 핵심 정책 비전으로 채택됐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 성장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문재인 정부도 올가을 그 개념을 확장해 ‘혁신적 포용국가’란 새로운 사회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발전이 지속되기 위해 포용성장은 필수불가결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먼저, 불평등하면 경제성장이 가난을 몰아내는 효과가 반감한다. 1990~2013년 아시아 국가들의 불평등이 심화하지 않았다면 9500만명이 추가로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불평등은 성장 자체도 저해한다. 1985년 이후 심화한 불평등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19개국의 1990~2010년 누적성장률이 4.7%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아울러 극심한 불평등은 인적 자원의 활용도를 낮추고, 중산층을 쪼그라들게 해 내수를 위축시키며, 정부와 정치권이 장기적으로 효율과 성장에 해로운 포퓰리즘 정책을 선호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세계화, 기술 발전,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 등으로 1990년대 이후 불평등이 세계 곳곳에서 심각해지자 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은 포용적 성장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해왔다. 지난해 역내에서 322억달러 규모의 사업을 펼친 아시아개발은행은 지난 5월 ‘포용적 발전을 위한 사람과 경제의 연결’을 주제로 열린 필리핀 마닐라 연차총회에서 ‘번영되고, 포용적이며, 강인하고 지속가능한’ 아시아를 목표로 한 ‘전략 2030’을 논의한 뒤 이어진 이사회에서 채택했다. ―‘전략 2030’을 통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절대빈곤의 극복을 넘어 불평등, 환경, 도시화 등 지역이 현재 요구하는 더 포괄적인 목표를 제시하려고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전략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집중해야 할 10개의 우선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가난과 불평등에 맞선다 △양성 평등을 촉진한다 △기후변화 대응 수위를 높인다 △살 만한 도시를 만든다 △농촌 지역 발전을 촉진하고 먹거리 안전을 높인다 등이다. 이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고 우리 기관이 동원할 수 있는 광범위한 전문성과 지식을 통합적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사와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세계화를 멈추게 하고 기술 발전의 속도를 늦추는 게 불평등의 해법은 아니며,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단일한 불평등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교육과 기술 훈련에 대한 투자, 좀 더 포용적인 금융, 독점 지대 해소 등 나라별 특성에 맞춰 불평등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사와다 야스유키 약력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수석대변인 -일본 도쿄대 교수(경제학) -세계은행 등 연구원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484.html#csidx42b3186611fb91eb26f3909f7f01d43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2부 무엇을 할 것인가 "불평등은 치유할 수 있어요...사회투자가 강력한 도구죠"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 ③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불평등 치유 가능하다덴마크 등 북유럽 성공경험 주목기술교육에 공공지출 대폭 늘려고숙련 노동자들을 최첨단 분야로한국산업 구조조정에도 참고할 만협력의 정치가 발판광범위한 지지로 복지시스템 구축노사가 ‘대표성 강한 체제’ 다진 덕한국도 낮은 노조 조직률 등 딛고정치적 협상력 키워 전환 대처해야야캐시 조 마틴 보스턴대 교수 “사회에 투자한다는 말은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30일 오후에 ‘불평등, 치유 가능하다’를 주제로 연단에 오르는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정치학 교수는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의 성공 경험을 예로 들어 ‘사회투자’를 방안으로 제시한다. 사회투자 모델은 고전적 복지국가나 신자유주의와 달리 사회정책의 투자적 기능에 주목한다. 이 모델은 지식 중심의 현대 경제 흐름에 맞춰 교육, 직업훈련, 주거, 의료 등 능력배양을 위한 프로그램에 집중하며, 역량이 강화된 시민들이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토록 하는 데 목표를 둔다. 특히 아동에 대한 공적 투자를 중시하는데 아동이나 여성에 대한 공공지출은 미래의 빈곤을 줄이고 인적자본 확충, 여성 노동력 확보 등 현재와 미래의 경제에 다양한 성과를 낼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북유럽은 높은 생산성, 약한 불평등, 낮은 실업률, 재정 건전성, 강력한 사회결속력을 모두 갖췄다. 높은 수준의 공공지출은 기술교육 같은 사회적 투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경제구조가 전환되는 시기에 노동자들을 고숙련-고임금의 ‘상층조합’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사회투자는 고숙련 노동자를 이용해 최첨단 분야로 진출함으로써 대량생산과 가격경쟁에 기대지 않고 품질경쟁과 유연한 전문화를 꾀하는 성장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으로 자동차, 조선 같은 전통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는 한국 산업의 구조조정에도 참고가 될 만하다. 물론 복지 및 사회정책의 투자적 기능에 주목하는 사회투자가 현실에 적용될 때는 성과와 효율의 논리가 스며들어 기본권으로서 복지라는 본래의 취지를 왜곡한다는 비판도 있다. 마틴 교수는 이런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결속의 ‘마법 같은 조합’이 협력의 정치를 발판 삼아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즉, 계층과 정당을 초월한 광범위한 사회적 지지를 통해 사회투자 중심의 복지와 세금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런 협력 능력은 노와 사의 대표성이 모두 강한 가운데 교섭을 거쳐 투명성과 신뢰를 쌓은 결과라는 것이다. 마틴 교수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정치적 협상력이 강한 나라가 경제적 전환에 대처하는 능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도 이런 모델을 벤치마킹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 노사가 자신의 집단적인 이해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대표성 강한 체제(institution)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노사정 협의체를 가동해왔지만 낮은 노조 조직률,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반노동정책,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 재벌 중심 체제 등 때문에 실질적인 합의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는 게 마틴 교수의 진단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용 증대나 국민연금 개편 등 민감한 경제사회 쟁점을 사회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해 범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출범을 논의하고 있으나, 최저임금법 개정 등에 반발하는 민주노총의 합류가 결정되지 않아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마틴 교수는 현 정부가 추구하는 포용성장 전략을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평가하면서, 저숙련 노동자를 강도 높은 훈련 프로그램에 보내고 그 일자리를 장기 실업자에게 제공한 덴마크의 ‘함께 가는 노동시장’(encompassing labor market) 모델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화난 노동자의 포퓰리즘이 불평등에서 연료를 취한다는 점에서 엘리트와 기업인은 우리가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마틴 교수는 “불평등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고, 취약한 구성원이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문제로 볼 수도 있는데, 정치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캐시 조 마틴 교수 약력 -미국 보스턴대 교수(정치학) -보스턴대 유럽연구센터 소장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박사 ※ 주요 저서 <기업 이해관계의 정치적 구성>(The Political Construction of Business Interest. 공저) <모두를 상상하다>(Imagine All the People)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7095.html#csidxcade67a07a5d41dbc76a6b5bace4483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2부 무엇을 할 것인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개인은 더 아픈 이유"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6927.html#csidxd561ee0109c201bb311432a3fca6b97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2부 무엇을 할 것인가 "피케티가 들고 올 ‘불평등의 정치’, 한국은 예외인가"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2부 무엇을 할 것인가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 ①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불평등 연구의 대표주자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프랑스·영국·미국의 정치지형 변화를 불평등 확대와 연결지어 분석한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커다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진은 2014년 방한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모습.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오는 30~31일 이틀간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이 열린다.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를 주제로 내건 올해 행사의 기조강연자 4명을 미리 만나본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열기가 기억에 생생하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21세기 자본>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서도 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피케티를 둘러싼 논란도 뜨거웠다. 그로부터 4년. 누구나 한국의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이라 말한다. 하지만 정작 불평등에 관한 논의는 그때보다 줄어든 것 같다. 나라 밖 움직임은 다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계에서는 불평등 연구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피케티 논쟁과도 관련 있는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에 관한 연구에서 큰 진전이 있었고, 세계화가 불평등에 미치는 악영향과 불평등이 정치지형에 끼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연구들이 잇따른다. 또한 불평등을 고려한 거시경제모형도 제시됐고, 라지 체티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등은 방대한 미시 데이터를 활용해 기회의 불평등에 관한 실증연구를 진행 중이다. ■ ‘세계 금융명부’ 만들어야 피케티 자신도 열정적으로 연구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대표적 성과물 중 하나가 그가 몸담은 파리경제대학의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지난해 12월 펴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이다.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 수십년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악화해왔으나, 나라마다 차이도 발견된다. 불평등의 동학은 제도적, 정치적 요인들에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미국과 유럽 모두 1980년엔 상위 1%의 소득 집중도가 약 10%로 비슷했지만, 2016년에 이르러선 20%와 12%로 차이가 생겼다. 세계 전체의 불평등도 확대됐다. 세계 상위 1%가 1980~2016년 성장의 과실을 약 27% 챙겨간 데 반해, 하위 50%는 겨우 12%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중국과 인도의 고도성장으로 하위층의 소득은 다소 늘어났지만, 선진국의 중하위층을 포함하는 세계 상위 2~50% 집단에선 소득이 거의 늘지 않았다. 미국 뉴욕시립대학의 브랑코 밀라노비치 교수가 강조하듯이, 이들의 분노가 바로 포퓰리즘이 등장한 배경이다. 부의 불평등도 심화했다. 미국에서 상위 1%의 부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22%에서 2014년 39%로 높아졌고,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상위 1%의 부 집중도가 1995년 이후 약 2배로 확대됐다. 그렇다면 세계의 불평등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계 상위 1%의 부 집중도는 2016년 33%에서 2050년 약 39%로 높아지고, 같은 기간 소득 집중도 역시 20%에서 24%로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은 모든 나라가 유럽처럼 소득 재분배 정책을 강화한다면 2050년 세계 상위 1%의 소득 집중도가 18%로 외려 낮아질 것이라 강조하면서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수단도 함께 제시했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몰고 온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국내 한 대형서점 매장에 전시돼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맨 먼저 꼽히는 게 세금. 불평등이 확대된 건 세금의 누진성이 급속하게 줄어든 영향이 크다. 선진국의 최고한계소득세율은 1970년 70%에서 2000년대 중반 42%로 낮아졌다. 따라서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세금의 누진성을 다시 높여야 한다. 최상위 부자들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금융자산의 소유자를 명확히 밝히는 ‘세계 금융명부’(global financial register)도 만들어야 한다. 공교육을 강화하고, 입시제도 개선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교육 기회를 넓히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세계 상위 1%에 쏠린 ‘부의 집중’2016년 33%→2050년 39% 예상미국은 물론 중국·러시아 등 ‘심각’ 최상위 조세회피 막을 방법 없나세금 불평등, 누진성 향상이 해법‘세계 금융명부’로 투명성 높여야 ■ 정치지형의 변화가 불평등 심화시켜 피케티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결국 모든 건 정치에 달려 있다. 피케티는 올해 초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커다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프랑스·영국·미국의 정치지형이 어떻게 장기적으로 변화해왔는지를 추적하면서 이를 불평등 확대와 연결지었다. 1950~60년대에 사회당, 노동당 그리고 민주당 등 각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들은 주로 저학력과 저소득층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고학력의 엘리트 계층이 진보정당에 더 많이 투표하는 반면, 부자 엘리트는 여전히 보수정당에 표를 준다. 프랑스의 경우 1950~60년대엔 고졸자 중 진보정당 지지자 비율이 대졸자와 비교할 때 20% 많았지만, 2000년대에는 역전돼 외려 10% 적어졌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특히 심했다. 따라서 이제 진보정당은 지적인 엘리트인 ‘브라만 좌파’의 당이고 우파는 비즈니스 엘리트(상인 우파)의 당으로 변했다는 게 피케티의 진단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피케티는 세계화와 이민의 확대, 그리고 전반적인 교육수준의 상승을 원인으로 꼽았다. 유권자들은 이제 소득 재분배보다 세계화와 관련한 쟁점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고학력자들은 대체로 세계화를 찬성하는 진보정당을 더 많이 지지했다. 또한 대학교육이 확대되고 유권자 분화가 나타나면서 재분배를 지지하는 저교육·저소득층의 영향력은 줄어든 반면, 높은 소득을 누릴 가능성이 큰 고학력자들은 재분배를 강력히 지지하지 않았다. 피케티는 이런 정치지형의 변화가 최근 불평등 심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정치의 미래? 피케티에 따르면 몇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첫째는 현재와 같은 다층적 엘리트 시스템이 안정화되는 것이고, 둘째는 정당 구조가 현재와는 정반대로 고학력·고소득 ‘세계화주의자’ 대 저학력·저소득 ‘토착주의자’로 재정렬되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프랑스의 선거 결과를 보면 이러한 가능성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과거처럼 계급에 기반을 둔 재분배 갈등이 다시 나타나 정치가 재편되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 경우 부자들의 세계화를 통제하는 강력한 평등주의와 국제주의 정책 없이는 진보정당 내에 다양한 저학력·저소득 유권자들을 통합시키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상인 우파’ 키운 건 ‘브라만 좌파’미온적 기득권 개혁·규제 밀어붙여분노 틈탄 우파 포퓰리즘 세 늘려 불평등 해소, 한국에서도 ‘결국 정치’중상류층, 현 정부의 주요 지지세력‘피케티의 경고’ 한국사회에 화두 제시 ■ 중도좌파 정부가 재분배에 소극적인 이유 이와 관련해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 등 1990년대 중도좌파 정부들의 실패한 역사는 진지하게 돌아볼 만하다.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의 공동편집인인 로버트 커트너는 지난 4월 펴낸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늘까>라는 책에서 세계화를 밀어붙인 이들 중도좌파의 실패가 불평등을 심화시켰으며, 그에 대한 분노가 브렉시트나 트럼프로 상징되는 우파 포퓰리즘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피케티의 연구는 중도좌파 정부가 적극적인 소득재분배나 자본에 대한 규제에 미온적이었던 이유도 지지층 변화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와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2014년 9월 불평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한국의 정치지형은 서구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브라만 좌파’는 한국의 ‘강남 좌파’를 떠올리게 한다. 여론을 주도하는 고학력층과 상위 10% 등 중상류층이 바로 현 정부와 집권당의 주요한 지지세력이다. 혹시 이런 이유로 정부가 증세나 기득권 개혁에 조심스러운 것은 아닐까.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지만 불평등은 더욱 확대됐고,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불평등의 역사와 미래라는 화두를 들고 한국을 찾는 피케티가 한국 사회에 불평등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토마 피케티 약력 1971년생영국 런던정경대학(LSE),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1993년 프랑스 경제학회가 주는 ‘올해의 최고논문상’ 수상1993~1995 미국 엠아이티(MIT) 경제학과 조교수1995~2007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2007~현재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2015년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영국 노동당 경제자문2017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 브누아 아몽 캠프 활동 * 주요 저서<21세기 자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6750.html#csidxb400328d69478ceaa3af109eed296d8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불평등 고통’ 겪는 계층이 되레 “불평등 심하지 않다”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⑤ 복지국가의 열쇠여론조사서 드러난 복지의식의 균열저학력·보수일수록 불평등 인식 낮지만생활에선 힘든 일 더 많이 겪는 ‘역설’좋은 사회에 대한 학습 적은 탓인 듯“가난·해고 등을 빨갱이 때문이라 여길 수도”학력·소득·계급 따른 차이 일관성 없어조직화 방법 등에 따라 복지정치 변화 가능성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국가는, 인류가 빈곤이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려고 이용하는 해법 가운데 최상으로 꼽힌다. 이런 복지국가로 나아갈 것이냐 말 것이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정치적 결정에 달려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일반적으로 복지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학력, 소득, 계급 등에 따른 차이가 일관되지 않은 것으로 오랫동안 분석돼왔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에 맡겨 전국 성인 800명을 상대로 6~7일 실시한 복지 의식 관련 전화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무선전화 80%, 유선전화 20%. 신뢰 수준 95%에서 표본오차 ±3.46%포인트). 그렇다면 “객관적 삶의 상태와 사회정치적 의식이 ‘계급정치’로 선명히 연결되지 않고, 복잡한 관계”(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에 놓여 있는 한국엔 복지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이번 조사 결과를 신진욱 교수와 함께 분석했다. ■ ‘불평등도가 높다’와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의 차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의 불평등도가 높다’고 여기는 사람과 ‘불평등한 구조 때문에 힘들다’고 여기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불평등 정도는 0점(전혀 불평등하지 않다)에서 10점(매우 불평등하다)으로 볼 때 6.34점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중간 수준보다 더 불평등하다(6점 이상)고 답한 사람이 10명 가운데 6명 가까운 58.9%나 돼, 불평등도가 높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았다. 불평등도가 높다는 인식은 학력이 높을수록 더 높아져, 고졸 이하는 48.1%였지만 2년제 대학 졸업 이하는 62.4%, 4년제 대학 졸업 이하는 63%였고, 대학원 재학 이상은 72%에 이르렀다. 정치의식으로 보면, 자신이 보수(54%)나 중도(57%)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진보(64.7%)라는 사람 중에 불평등이 심하다는 답이 많았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그런데 ‘불평등한 구조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냐’는 질문에선 이런 경향이 뒤집혔다. 고졸 이하(82.6%)에서 ‘힘들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2년제 대학 졸업 이하(72.9%), 4년제 대학 졸업 이하(64.1%), 대학원 재학 이상(61.3%)으로 갈수록 힘들다는 이가 적었다. 또 진보(65.5%)보다는 보수(73.3%)와 중도(73.5)에서 ‘힘들다’는 이가 많았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어떻다고 보느냐’는 질문에서도 ‘낮다’는 의견이 고졸 이하는 45.8%, 대학원 재학 이상은 34.7%였다. 상대적으로 불평등이 심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그로 인한 고통을 오히려 더 많이 느끼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는 객관적으로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삶에서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불평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력이 낮고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좋은 사회는 이래야 한다’는 학습을 적게 했을 가능성이 커,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인식이 낮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집단은 학력이 높고 진보적인 사람보다 저소득·저자산층이 많아 실제 생활은 힘들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진욱 교수는 “하층계급이 직접 경험하는 현실은 가난, 해고, 질병, 불안, 모욕감 같은 것이지 ‘불평등’이 아니다. 그런 현실은 ‘빨갱이’ 때문이라거나 대통령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며 이들이 개인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이 곧 불평등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비일관성과 균열…열린 가능성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과 ‘힘들지 않다’는 사람 중엔 ‘한국의 복지 수준이 높다’는 응답이 각각 51.7%와 56.2%로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높다’는 사람과 ‘낮다’는 사람 사이에도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는 답변 비율(각각 69.1%, 72.9%)에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는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이 불필요하다’는 사람의 72.9%,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없다’는 사람의 77.6%도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고 답했다. ‘복지 확대로 삶이 좋아질 것이냐’에서도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66.8%)과 ‘힘들지 않다’는 사람(67.4%)의 답변이 비슷했다. 이 질문엔 ‘불평등에 국가 책임이 있다’는 이(67.5%)와 ‘없다’는 이(62%), ‘한국의 복지 수준이 높다’는 이(65.6%)와 ‘낮다’는 이(68.6%)의 응답도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 충돌하고 일관성 없어 보이는 답변과 관련해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여유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흥미로운 진단을 내린 바 있다. 이들은 ‘한국인의 복지 태도: 비계급성과 비일관성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한국에서 복지는 “선택 가능한 대안, 구체적 정치세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구도가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인 재분배 문제로 원자화된 개개인한테 던져지는 구도”라고 분석했다. 불평등과 복지의 문제를 정치·사회구조의 문제로 연결하지도, 정치를 통해 풀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다시 확인된 이런 비일관성은 복지정치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균열’, 즉 사회 전체의 변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대립구도가 매우 복잡함을 보여준다. 뒤집어 말하면 정당이나 시민정치세력이 이 대립구도를 어떻게 조직화하느냐에 따라 정치가 변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실제 사례도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야당은 시민사회의 무상급식 의제를 적극적으로 받아안아 당시 여당과 대립구도를 형성했고, 그 결과 당 지지율에서 크게 앞서던 여당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신진욱 교수는 “한국에서 진보적 복지정치의 균열 구조는 고등교육을 받은 중간계급, 계급의식이 싹트고 있는 하층계급 일부, 계급배반적 고령층, 그리고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초고소득·초고자산층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현실 위에서 어떻게 ‘최대다수의 복지동맹’을 만들어 확장할 것이며, 지속가능한 복지동맹으로 공고화할 것인가를 깊이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66446.html#csidx58994f816b98eed88131b87990d1d60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소득 늘수록 복지 지지하지만…자산 상위 20%부터 뒷걸음질"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⑤ 복지국가, 넘어야 할 산다주택자는 증세 공감 적지만, 보편증세 더 지지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부담은 최상위층이 져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엠브레인에 맡겨 전국 성인 800명을 상대로 6~7일 실시한 복지 의식 관련 전화여론조사(무선전화 80%, 유선전화 20%. 신뢰 수준 95%에서 표본오차 ±3.46%포인트)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9.4%가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세금 인상 필요성에 공감한 이들(475명)의 89.7%는 ‘세금을 납부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세금을 누가 더 낼 것이냐를 두고는 ‘소득과 자산이 많은 최상위층이 더 내야 한다’는 부자증세 의견이 62.1%로, ‘담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내야 한다’는 보편증세 의견(37.9%)보다 두배 가까이 많았다. 부자증세의 당사자일 가능성이 큰 다주택자는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반영된 응답을 내놨다.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 필요성엔 집이 많을수록 공감하는 이가 줄어, 무주택자는 61.5%, 1주택자는 58.8%, 2주택자는 56.9%가 공감했고 3주택 이상 보유자는 50%에 그쳤다. 반면 보편증세 의견은 집이 많을수록 높아져 무주택자 35.1%, 1주택자 36.2%지만 2주택자 51.4%, 3주택 이상 보유자 65%로 조사됐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66449.html#csidx2df04a864d3880aa78777e48054e63d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10명 중 6명 '복지 증세를…최상위층 더 내야'"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⑤ 복지국가, 넘어야 할 산다주택자는 증세 공감 적지만, 보편증세 더 지지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부담은 최상위층이 져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엠브레인에 맡겨 전국 성인 800명을 상대로 6~7일 실시한 복지 의식 관련 전화여론조사(무선전화 80%, 유선전화 20%. 신뢰 수준 95%에서 표본오차 ±3.46%포인트)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9.4%가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세금 인상 필요성에 공감한 이들(475명)의 89.7%는 ‘세금을 납부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세금을 누가 더 낼 것이냐를 두고는 ‘소득과 자산이 많은 최상위층이 더 내야 한다’는 부자증세 의견이 62.1%로, ‘담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내야 한다’는 보편증세 의견(37.9%)보다 두배 가까이 많았다. 부자증세의 당사자일 가능성이 큰 다주택자는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반영된 응답을 내놨다.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 필요성엔 집이 많을수록 공감하는 이가 줄어, 무주택자는 61.5%, 1주택자는 58.8%, 2주택자는 56.9%가 공감했고 3주택 이상 보유자는 50%에 그쳤다. 반면 보편증세 의견은 집이 많을수록 높아져 무주택자 35.1%, 1주택자 36.2%지만 2주택자 51.4%, 3주택 이상 보유자 65%로 조사됐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66449.html#csidx2df04a864d3880aa78777e48054e63d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보유주택 많을수록 '복지가 내 삶 개선' 답변 낮았다"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⑤ 복지국가, 넘어야 할 산“복지 확대되면 내 삶 좋아질 것”무주택자 72%, 3주택 이상 55%자산이 복지태도의 핵심 변수로 한국 19살 이상 성인의 67%는 ‘복지가 확대되면 내 삶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집을 많이 가질수록 이런 기대는 점차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 즉 자산이 복지에 관한 태도를 가르는 핵심적인 변수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는 결과다.18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에 맡겨 전국 성인 800명을 상대로 6~7일 실시한 복지 의식 관련 전화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주택자는 72.2%가 복지 확대로 내 삶이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응답은 1주택자에선 65.5%, 2주택자에선 58.3%로 떨어졌다. 3주택 이상의 다주택자에선 그 수치가 55%로 더 낮아졌다. 주택이 많을수록 복지 선호도가 낮아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집값이 오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복지가 확대되면 내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집값이 낮아지는 게 좋다’는 사람의 70%였지만, ‘유지하는 게 좋다’는 사람에게선 63.1%, ‘오르는 게 좋다’는 사람에게선 43.3%로 떨어졌다. ‘경제적 불평등에 국가 책임이 있느냐’를 두고는 주택이 많을수록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이 줄었다. 무주택자는 93.8%, 1주택자는 90%가 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봤고, 2주택자는 79.2%, 3주택 이상 보유자는 80%가 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유사하게, ‘집값이 낮아지는 게 좋다’는 이는 94.2%가 국가의 책임을 물었지만, ‘유지하는 게 좋다’는 이는 83.1%, ‘오르는 게 좋다’는 이는 73.3%로 줄었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대책을 두고도 주택 보유량과 바라는 집값에 따라 의견이 뚜렷이 갈렸다. 무주택자는 83%, 1주택자는 80%가 ‘국민 모두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정책’(보편복지)을 선호한다고 답했지만, 2주택자(76.4%)와 3주택 이상(55%)에게선 이 응답은 뚝 떨어졌다. ‘집값이 오르는 게 좋겠다’는 사람의 보편복지 선호(63.3%)도 ‘집값이 낮아지는 게 좋겠다’(80.7%)는 사람과 ‘유지하는 게 좋겠다’(80.9%)보다 크게 낮았다. 이번 결과는 공적 복지제도가 허약하고 수준도 낮아 각 개인이 자산 축적을 통해 노후 등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적 자산기반 복지’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작동해온 탓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갈수록 커지는 자산 불평등 문제를 하루빨리 풀지 않으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한국은 계급정치의 역사적 배경이 없고 공공복지의 지지기반이 약한 탓에, 중·저소득층이라 해도 자기 집 하나만 있으면 복지 저항 집단이 되기 쉽다”며 “사적 자산기반 복지로 노후, 건강, 자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택 보유자, 특히 다주택 보유자로선 공공복지에 적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무선전화 80%, 유선전화 20%의 비율로 실시됐으며, 신뢰 수준 95%에서 표본오차 ±3.46%포인트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66447.html#csidx1f20857b250a17180fb0468e6eb5bc3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저소득 생존법, 시간을 헐다…여 30%·남 20% ‘시간 빈곤자’"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④ 시간, 불평등의 새 얼굴소득 따라 노동시간 계층화 한국 노동시간 OECD 2위가사·여가 희생해 저임금 보전소득서 가사노동 구매비 빼니빈곤율 3배 높아지는 분석도저소득 여성이 시간빈곤 최고고학력일수록 정규직-표준노동여가-자녀 교육에 시간 많이 써불평등 강화하고 대물림 심화상시 5인 미만 사업장, 육상 운송 등 5개 특례업종은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서울의 한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에서 택시기사가 세차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서 13년 남짓 회사택시를 몰아온 김경진(가명·52) 기사는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한다. 새벽 4시에 나와 오후 4시에 차를 넘기고 집에 들어간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때는 저녁 7시. 그래야 다음날 새벽 3시 무렵에 일어날 수 있다. 김씨가 하루 중 집안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며 여가를 보내는 시간은 채 3시간이 되지 않는다. 한주에 70여시간, 한달 26일을 일하고 손에 쥐는 수입은 200만원 남짓.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지만, 기본급이 68만원에 불과한 형편에 수입이 줄어들까 쉽지 않다. 김씨처럼 수입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회사택시 기사는 전국에 10만8천명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당 노동시간이 휴일 포함 최대 52시간으로 제한되지만 5개 특례업종 중 하나인 택시업은 예외다. 소득과 시간은 균형 잡힌 삶을 위한 두 축이다. 돈이 없으면 생활이 고단하고, 시간이 없으면 아이와 놀아주기, 집안 가꾸기, 독서나 드라마 시청같이 행복감을 주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일하느라 바쁜 사람들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노동시간 국제비교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적지 않은 이들이 가사나 여가에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는 ‘시간 빈곤자’들이다. 18살 미만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 6700곳을 조사한 서지원 방송통신대 교수(생활과학)의 2015년 연구를 보면 평일을 기준으로 남성의 20.7%, 여성의 29%가 시간 빈곤자였다. * 누르면 확대됩니다. 삶의 중요한 자원인 소득과 시간은 어느 정도 대체관계에 있다. 택시기사 김씨처럼 장시간 노동으로 수입을 늘리면, 소득 빈곤은 벗어날 수는 있지만 시간 빈곤에 빠진다. 이때 시간 빈곤은 소득 빈곤의 심각성을 은폐하는 구실을 한다. 시간에 주목하는 복지 연구자들이 빈곤을 소득과 시간의 함수로 보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레비경제학연구소는 노동시간이 길어서 식사 준비, 돌봄, 보육 등 필수적인 가사 재생산 시간이 부족할 경우, 이를 시장에서 구매할 때 드는 비용을 소득에서 차감해 빈곤선을 새로 책정하는 분석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로 한국고용정보원과 함께 2008년 한국의 빈곤율을 측정한 결과, 가장이나 배우자가 고용상태인 가구의 빈곤율은 7.5%로 정부의 공식 빈곤율 2.6%보다 3배나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장시간 노동이 은폐했던 소득 빈곤이 확인된 것이다. 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소득 기준으로 불평등과 빈곤을 측정하고 대응하면, 소득은 높지만 시간이 빈곤한 집단의 삶의 질 문제에 대응하지 못한다”며 소득 때문에 시간을 희생하는 이들의 규모를 공식 통계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저소득층은 장시간 노동으로 소득을 올리면서 시간을 희생해왔지만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고용 여건 때문에 소득과 시간 빈곤 사이를 오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노동패널조사 자료(2014년)를 분석한 오혜은(성균관대)씨의 2017년 연구를 보면 여성의 44.6%, 남성의 23.6%가 시간(자유시간 기준)이나 소득 중 한가지 빈곤을 겪고 있었다. 시간과 소득 모두 빈곤인 경우도 여성의 9.1%, 남성의 2.5%였다. * 누르면 확대됩니다. 시간 빈곤은 소득 규모와 성별에 따라 차등적으로 나타나고 이런 구조가 지속된다는 점에서 시간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1998년 이후 소득과 노동시간의 관계를 분석해보면 시간당 임금이 높을수록 표준 노동을 하고, 중위임금은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자는 초장시간 노동을 통해 소득을 보전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황규성 한국노동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소득에 따라 노동시간이 계층화하는 양상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시간 빈곤은 저소득 여성에게 두드러지는데, 앞서 오혜은씨의 연구에서 자녀와 배우자가 있는 여성 가구주의 경우 유급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이 중첩되어 시간 빈곤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삶은 ‘시간 사용’과 ‘돈 사용’ 사이의 선택인 경우가 많다. 똑같이 바쁘더라도 소득이 높으면 고속철도(KTX)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자녀도 좋은 보육시설에 맡길 수 있다. 반면 장시간 노동을 해야 겨우 생활이 가능한 계층은 보육이나 여가에 쓸 시간이 적고, 돈으로 대체재를 구매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시간의 불평등은 돌봄, 여가, 사회적 관계 등에서 격차를 만들어 다른 불평등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연쇄 고리가 된다. 대표적인 것은 부모가 가진 시간에 따라 자녀 양육과 돌봄 시간의 질이 달라지는 점이다. 노혜진 케이시(KC)대 교수(사회복지학)의 2014년 연구를 보면, 고학력 부모가 저학력 부모보다 자녀를 돌보는 시간이 길고, 이런 돌봄 시간의 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학력 부모는 정규직에 표준 노동을 할 가능성이 큰 집단이다. 또 시간이 부족할 때 인간관계를 줄이게 돼 삶의 중요한 자원인 ‘관계재’의 양과 질에서 격차를 불러온다. 시간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집단은 삶의 질을 개선할 기회가 제한되고 발전 잠재력이 위축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사회정책 수립자들이 시간의 분배를 고려할 때라고 지적한다. 소득의 분배와 재분배를 중심으로 복지정책이 개발됐지만, 여기에 시간을 고려함으로써 한층 효과적인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혜진 교수는 “부모의 노동시간이 너무 길거나 시간이 빈곤한 것도 가구가 겪는 큰 위기 중 하나”라며 “자녀 보육이나 늙고 병든 가족을 보살피는 돌봄을 공공이 제공하는 등 빈곤가구가 잃어버린 시간을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6116.html#csidx73a28cf53df4eab92921e038e0b843e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주 52시간 전면적용 땐… 비정규직 초과노동자 임금 17% 줄어"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④시간, 불평등의 새얼굴파견· 용역 큰 타격…정규직은 11%사업장 규모 작을수록 임금 감소 커노동시간 단축은 줄어드는 소득을 어떻게 보전할지가 숙제다. 한주의 노동시간 상한을 52시간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이 산업 현장에 전면적으로 적용될 때 임금은 얼마나 줄어들까? 16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의뢰로 고용노동부의 2017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이 분석한 결과, 고용 인원이 적은 업체에 근무하거나 고용형태가 용역·파견·기간제 등 비정규직일수록 임금 감소 폭이 컸다. 이 법은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출발해,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 적용된다. * 누르면 확대됩니다. 분석 대상 노동자 가운데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는 10.5%인 95만1천명이었다. 이들이 52시간까지만 일을 하게 되면 한달 급여가 평균 41만4천원(1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형태별로는 정규직이 40만8천원(11.7%), 비정규직은 44만7천원(17.3%) 줄어들어 월 급여가 적은 비정규직이 감소 폭도 컸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특히 파견노동자는 주 52시간 이상을 일해 월평균 251만5천원을 벌었으나, 법 시행 후에는 그보다 45만3천원이 적은 206만2천원만 집에 가져가는 등 파견(18%), 용역(17.9%), 기간제(17.7%) 노동자의 임금 감소 폭이 컸다. 사업체 규모별로는 300인 이상 대기업의 월평균 급여가 10% 줄었고 30~299인 기업이 12.2%, 5~29인 기업이 14.1% 줄어들었다. 비정규직 등 저임금 노동자가 17~18%에 이르는 월 임금 감소를 감내하기는 어려운 만큼,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임금 감소액 일부 또는 전부를 사업주가 보전할 경우, 1년간 한시적으로 노동자 한 사람당 월 10만~40만원까지 지원한다. 한편, 노동시간 단축으로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는데, 지금의 법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적게는 12만7천명에서 최대 16만5천명까지 고용이 늘 것이란 전망이 있다. 김유선 이사장은 “노동시간 단축은 예정대로 하되,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등으로 임금 감소의 부담을 사업주와 정부, 노동자가 분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6122.html#csidxf40f11c46ba82c2a5514c7cd3a89705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시간 주권’ 찾으려면…특례업종 축소·포괄임금 금지 급선무"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④시간, 불평등의 새 얼굴장시간 노동체제 개선책특례업종·특수고용·1차산업 등주 52시간 미적용 여전히 많아시간외 수당 포함 포괄임금제‘공짜 야근’ 주범인데 제한 미뤄‘저녁 있는 삶’ 공감 오래됐지만‘시간 칼자루’ 회사가 쥐고 있어“과도한 야간·주말노동 규제하고직무가치 중심 임금체계 고려를”주 52시간 근무제는 법정 노동시간(40시간)보다 불가피하게 일을 더 해야 할 경우(연장 노동시간 12시간)에도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지 말라는 제도다. 적게 고용해 대량 생산하려는 기업의 전략, 초과노동을 해야 생계비가 확보되는 임금체계, 낡은 교대제, 남성 외벌이 모델을 전제로 한 성별 분업 등이 구조적으로 얽혀 빚어낸 한국 특유의 ‘장시간 노동 체제’를 개선하고,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로 가보려는 시도다. 사실 주 52시간 근무를 하더라도 직장인의 삶은 그리 여유롭지 않다. 한 주 168시간 중에 52시간을 일하면 116시간이 남는다. 이 가운데 잠자고 식사하고 일터로 오가고 학습하는 데 98시간을 쓴다. 모두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시간이다.(2014년 통계청 생활시간조사) 나머지 18시간을 쪼개고 쪼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쉬어야 한다. 오롯이 자신만의 휴식을 취할 시간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이유로든 이보다 더 일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시간은 더 사라진다. ■ 주 52시간제의 그늘 가장 큰 문제는 주 52시간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장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상시 5인 미만 사업장, 육상운송 등 5개 특례업종, 농업 등 1차 산업 종사자와 감시·단속적 근로자(주로 경비), 학습지 교사와 택배기사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 등은 노동시간 제한의 예외다. 이런 노동자가 2017년 현재 718만1천여명, 주 52시간 적용 대상 노동자의 83%에 육박한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나 1차 산업 및 감시·단속적 근로자들에게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제외할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테두리에 포함해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특수고용 노동자는 일반적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특정 사업체의 지시·감독을 받으며 일하지만 자영업자로 분류돼, 시간을 무한 소모하며 생계비를 벌고 있다. 특례업종은 올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26개에서 5개로 줄었으나 이들 업종을 남겨두어야 할 합리적 근거를 두고는 논란이 여전하다.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운송 분야와 보건업에 특례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정작 차종별 사망사고 1위인 택시기사나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 등의 무제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은 5개 업종도 재검토해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할 필요가 제기된다. ■ 소득과 시간의 딜레마를 풀 열쇠, 임금체계 주 52시간제로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시도에서 또 다른 걸림돌은 포괄임금제다. 포괄임금제는 야간근로·연장근로 등 시간외 근로 수당을 실제 노동시간과 상관없이 기본급에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야근을 당연시하게 만들고, 실제 일한 것보다 임금이 더 적은 경우도 흔해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꼽힌다. 하지만 계산상 편리하다는 등의 이유로 광범위하게 활용돼, 지난해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노동자 10인 이상 기업체에서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는 곳은 52.8%나 됐다. 정보통신업종의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되면서 노동부는 포괄임금제를 제한하는 내용의 지침을 만들었지만, 1년 가까이 발표를 미루고 있다. 그동안 경영계는 경제상황이 어렵다며 틈날 때마다 포괄임금제 제한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 법률원 신인수 변호사는 16일 “포괄임금제 제한은 획기적인 게 아니라 기존 대법원 판례를 반영하는 것인데 그것마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조건의 최저기준, 근로시간 규제가 규범력을 가지려면 포괄임금제는 전면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소득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이들은 별도의 소득보장 정책으로 보호하고, 그 밖에 일반적으로 노동시간과 소득이 동시에 줄어드는 이들을 위해선 직무 가치 평가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호봉, 성별, 고용 형태, 학력 등과 무관하게 오로지 직무의 가치에 따라 기본급을 결정하는 게 직무급제다. 서울시가 2013년 청소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직무급제를 도입했는데, 평균 16%가량 임금이 올랐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직무급에서 직무의 가치는 반드시 노동시간과 연계해야 되는 게 아니다. 비생산직 등을 중심으로 직무급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시간빈곤의 최전선, 여성 여성, 특히 아이가 있는 맞벌이 여성은 소득과 시간 모두 남성보다 빈곤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게 여러 연구 결과로 입증돼 있다. 그 원인은 주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된 탓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낸 <저소득 취약계층의 생활시간 사용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가사노동시간이 가장 크게 늘어나는 집단은 주중 맞벌이 여성으로, 고소득층은 주 128분, 중간소득층은 148분, 저소득층은 160분을 가사노동에 썼다. 그런데 소득 수준별 집단의 여러 특성을 통제해 분석해보면,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소득이 아니라 주휴무제의 차이였다. 주5일 근무를 하는 맞벌이 여성보다 주6일 근무 또는 격주 5일 근무를 하는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이 더 긴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근무형태는 판매 서비스직 등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판매 서비스직이나 단순노무직 영역에서 노동시간 특례제도로 인해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빈번하고 과도하게 발생하는 야간·주말 노동을 규제해야 한다. 또 저소득층 맞벌이 가구엔 가사서비스 바우처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결국 핵심은 시간 주권 한 정치인이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 폭넓은 공감을 얻은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시간에 쫓긴다. 적절한 소득과 여유 있는 시간이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 체제가 강요하는 시간빈곤의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근본적으로 시간 사용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개인이 갖는 ‘시간 주권’을 확립해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체적 인간’의 시간이 임금을 볼모로 회사에 종속돼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의 지은이인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시간 주권은 내 삶의 시간을 어떻게 설계하고 사용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리키며, 노동시간의 길이, 강도나 방식 등에 대한 결정권이나 조절권이 없이 주어진 명령과 지시에 복종하기만 하는 삶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서구에서 보편화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한 근무형태를 도입하는 데 한국 노동자들이 피해의식을 갖는 것도 ‘시간의 칼자루’를 줄곧 사용자가 쥐고 있었던 까닭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노동시간을 뺀 잔여시간으로 생활시간을 보는 것은 뒤집힌 인식”이라며 “노동을 전제로 여가를 볼 게 아니라 삶을 전제로 해서 노동이나 여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6119.html#csidx5f0e195084ba114913c72bf7f1bc8f4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찬성' 82%"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③ 주거, 과녁을 벗어난 대책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전국 성인조사집 많이 가질수록 찬성률 떨어져10명 가운데 7명은 “집값 낮아져야”19살 이상 성인 10명 가운데 7명은 지금보다 집값이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8명은 국회에 계류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주택 보유 여부와 양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매우 컸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맡겨 전국 성인 800명을 상대로 지난 6~7일 한 전화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주택 가격이 어떻게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6.8%가 ‘낮아지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9.5%, ‘오르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3.8%였다. 인상적인 대목은 집을 가졌는지,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견해가 크게 갈린 점이다. 집값이 낮아지는 게 좋다는 의견은 주택 보유량이 많을수록 뚝 떨어져, 무주택자는 80.2%였지만 1주택자는 62.6%, 2주택자는 48.6%, 3주택 이상은 25%로 조사됐다. 반대로 집값이 지금처럼 유지되면 좋겠다는 의견은 무주택자가 18.8%로 가장 낮았고, 3채 이상이 60%로 가장 높았다. 집을 3채 이상 가진 쪽에선 집값이 오르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15%나 됐다. 주택 임대차계약 기간을 늘리고,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며, 보증금 또는 월세 인상률을 5% 정도로 제한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엔 응답자의 81.9%가 찬성했고, 18.1%가 반대했다. 이 역시 주택 보유량에 따라 의견이 극적으로 달랐다. 무주택자는 86.8%가 찬성했지만, 1주택자는 80.7%, 2주택자는 75%, 3주택 이상 보유자는 60%가 찬성했다. 반대 의견은 무주택자가 13.2%인 반면, 3주택 이상 가진 사람은 40%였다. 이번 조사는 무선전화 80%, 유선전화 20%를 포함했고, 신뢰 수준 95%에서 표본오차는 ±3.46%포인트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5799.html#csidx981acb1124396409bcf5c2a79f98e46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자가 1.1명-전월세 0.9명…주거불평등이 출산율도 낮춘다"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③ 주거, 과녁을 벗어난 대책자기 집을 가진 사람보다 전·월세에 사는 사람이 아이를 덜 낳는다는 사실이 국가통계로 확인됐다. 주거비 부담은 물론 짧은 거주 기간과 잦은 이사 등 세입자의 주거 불안이 자녀 출생에도 영향을 끼친 결과로 풀이된다. 통계개발원이 1985~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분석해 곧 발간할 <인구·가구 구조와 주거 특성 변화> 연구보고서를 보면, 결혼 유지 기간이 길수록 전체 자녀의 수는 늘지만 자기 집에 사는 사람보다 전·월세에 사는 사람이 아이를 덜 낳는 경향은 결혼 기간에 관계없이 같았다. 2011~15년 결혼한 가구는 자가 거주일 때 1.1명, 전세와 월세 거주일 때 각각 0.9명의 아이를 낳았다. 2006~10년 결혼한 가구의 자녀 수는 자가가 1.8명, 전세가 1.7명이었고, 월세가 가장 적은 1.6명이었다. 2001~05년 결혼한 가구는 자가 거주의 경우 1.9명, 전·월세가 각각 1.8명이었고, 1996~2000년 결혼한 가구는 자가가 2.0명, 전세와 월세가 각각 1.9명이었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이런 결과는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주거 안정성의 격차도 아이를 낳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 세입자의 평균 주거기간(3.6년)은 자가 소유자(10.6년)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세입자 보호정책이 미약한 탓에,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이사를 다녀야 하는 세입자의 현실이 자녀 수의 차이로 이어진 것이다. 이 연구를 맡은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세입자 대책의 미비와 과도한 주거비 부담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간임대주택에 사는 현실에서 공공임대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간임대 시장을 규제하고 세입자를 보호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월세 세입자가 자기 집을 갖기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거의 불평등이 자녀 출생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현상, 나아가 저출생 문제는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1995년과 2015년의 자가 거주 가구는 30~34살 가구주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전세 거주 가구는 모든 연령대에서 줄었다. 반면 월세 거주 가구는 모든 연령대에서 크게 늘었다. 30~34살 가구주 집단은 자가 거주 비율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31.9%로 같지만, 전세 가구는 크게 줄고(48.2%→30.5%) 월세 가구는 갑절 가까이 늘었다(16.6%→31.6%). 최 소장은 “전통적으로 월세는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힘든 거주자가 많고, 전세는 자기 집을 마련하는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월세가 늘고 전세가 줄었다는 건 앞으로 자기 집을 마련하기 힘든 가구가 더 많아질 수 있고 저출생 문제도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인구주택총조사 통해 격차 확인2011~15년 주거·출생 관계 분석자가 땐 1.1명, 세입자 땐 0.9명주거비 부담이 자녀 출생에 영향임대료 상한제 등 보호대책 시급 모든 연령대서 월세가구 급증했는데주거대책 초점 매매에만 맞춰져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등임대차보호법 13개 국회서 낮잠지방정부 ‘주거조례’ 없는 곳도 문제는 세입자 보호 정책을 만들고 시행할 국회와 정부가 모두 뒷짐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입자 보호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월세 임대료 상한제와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 9차례나 발표된 주택 관련 대책에 이런 내용을 포함한 세입자 보호책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전체 가구의 40%가량이 세입자인데도, 주거대책의 초점을 ‘매매’에만 맞춘 결과다. 지난해 8월, 4년(단기) 또는 8년(장기)의 임차기간을 보장하고 임대료는 연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임대주택 등록제 카드를 꺼내들긴 했지만, 이는 집주인에게 대출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과도하게 줘 최근 집값 폭등의 진원으로 지목된다. 그나마도 현재까지 등록한 임대주택에서 임차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분야 관행혁신위원장이자 참여연대 정책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는 “지금까지 등록된 임대주택의 임차인이 120만명인데, 이 사람들만이라도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고, 임대료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면 파급효과가 매우 클 수 있다. 하지만 국토부, 지방정부 모두 권한이 없다거나 예산·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임차인에게 이를 알려주는 행정을 안 하고 있다”며 “국토부가 조금만 더 노력해 동별로 등록 임대주택 명단을 만들고, 지방정부가 이 사람들한테 안내문을 보내고 상담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국회의 세입자 보호 입법 속도도 더디다. 현재 국회엔 전·월세 임대료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이 주요 내용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13개 발의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가 열린 직후인 지난달 14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경제민주화 실현, 민생개혁을 위한 10대 우선 입법과제’에 포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뒤인 11월께 본격적으로 법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사유재산권 침해 등의 이유로 제도 도입에 미온적이어서 법안 처리 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임차인 보호도 중요하지만 사유재산권 보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처리할 때, 장기 임대인에게 세제혜택을 주도록 조세특례제한법까지 개정하는 조건을 우리 당이 내걸었던 건 사유재산 침해라는 위헌 소지 때문”이라며 “개정안이 시장경제를 보호할 수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주거안정 문제에 대처해야 할 지방정부마저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주거·시민사회단체 125곳으로 구성된 모임인 ‘주거권네트워크’와 함께 수도권과 특별시, 광역시 9곳에 정책질의를 한 결과, 주거기본법에 따라 제정해야 하는 주거기본조례조차 없는 곳이 3곳(인천, 울산, 세종)으로 조사됐다. 주거기본조례는 지방정부가 주거종합계획을 세워 지역 주민의 주거권 보장 방안을 구체화하고 이를 시행하게 만드는 기틀인데, 일부 지방정부엔 그조차도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주거안정과 주거환경 개선 등에 쓸 주거복지기금을 운영하는 곳은 두곳(서울, 경기)에 불과했고, 앞으로 운영할 계획이 있다는 곳도 두곳(광주, 울산)에 그쳤다. 땅값과 건축비용, 주거환경, 물가 등을 고려해 지방정부가 고시할 수 있는 표준임대료 제도는 9곳 전체에서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도입을 검토하는 곳도 두곳(서울, 울산)뿐이었다. 도입할 계획이 없다는 곳들은 중앙정부가 시행하지 않고 있다거나(대전, 광주),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한다(세종)는 이유를 들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5798.html#csidx643ee05beca6af4b0435cabb9fb57ee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1인·청년가구, 월세 45만원도 못 내는데 주거정책선 ‘뒷전’"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③ 주거, 과녁을 벗어난 대책‘월세 수레바퀴’에 깔린 1인·청년가구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집 없는 사람들의 달팽이 행진’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1인 가구와 청년 가구는 월세 거주 비율이 가장 높은 등 주거 실태에서 가장 열악한 계층이지만 주거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20㎡(6평) 남짓한 반지하 원룸의 보증금 500만원은 이미 몇달 전 모두 까였다. 그러고도 아직 한달 45만원인 월세 160만원이 밀려 있다. “걱정 말고, 월세는 돈이 생기면 내라. 여기 살다가 나중에 집 사서 나가라”고 말해준 집주인이 동수(가명·32)씨는 그저 고맙다. 광주의 한 사립 종합대를 졸업한 동수씨는 3년 전 일거리를 찾아 서울에 왔다. 초반엔 사촌 형 집에서 지냈는데 아무래도 얹혀 지내는 게 불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원룸을 얻었다. 본업인 싱크대 설치나 부업인 건설 현장 일용직은 하루 벌이(12만~18만원)로는 괜찮은 편이다. 문제는 일이 있는 날이 고작해야 한달에 보름밖에 안 되고 그나마도 들쭉날쭉하다는 점이다. 급기야 동수씨는 지난해 말 두달 동안 월세를 못 냈다. 다급한 마음에 일수로 사채를 썼다. 빌린 돈은 200만원, 갚을 돈은 52일 동안 하루 5만원씩 260만원이었다. 돈 갚으라는 독촉 전화는 계속 오는데, 갚을 길도 다음 월세를 낼 길도 막막했다. 수면제와 번개탄을 샀다. 고향인 전남 장흥에 사시는 부모님께 ‘마지막 편지’도 썼다. 그렇게 모든 걸 끝내려고 작정한 순간, 친구가 노름빚으로 고민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 주민센터의 소개를 받아 관악주거복지센터(서울시 위탁 민간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센터의 지원으로 빚을 갚았다. 다시는 사채를 쓰지도,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도 않겠다는 결심도 했다. 하지만 ‘월세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있는 건 여전하다. 마음이 가는 여성이 생길 때, 한때 동호회 활동까지 하며 열심이었던 당구를 치고 싶을 때,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을 때, 동수씨는 이런 생각을 한다. 월세도 못 내는 처지에 무슨. 그리고 자책한다. 이 모든 건 돈을 못 버는 내 잘못이야. 동수씨 같은 1인 가구, 청년 가구는 한국의 주거 실태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통계개발원이 1985~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분석해 곧 발간할 <인구·가구 구조와 주거 특성 변화> 연구보고서를 보면, 2015년 현재 1인 가구의 44%가 월세, 34%가 자가, 16%가 전세에 살고 있다. 전체 가구(자가 56.8%, 전세 15.5%, 월세 23.7%)보다 월세는 20.3%포인트 높지만 자가는 22.8%포인트 낮은 수치다. 49살 이하 1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월세에 살고 있으며, 특히 20~24살은 81.5%, 25~29살은 65%가 월세 거주자다. 대체로 보증금을 마련하기 힘든 이들이 월세를 선택한다는 점, 너무 많은 1인 가구가 월세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1인 가구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주거빈곤율 12%의 갑절에 가까운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율(22.6%. 서울 1인 청년가구는 37.2%)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동수씨의 자책처럼, 이 모든 게 ‘동수씨들’의 잘못일까? 그 책임의 적어도 일부는 1인 가구의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 주거정책에 있다고 보는 게 온당할 것 같다. 정부는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주거복지망’을 강조하며 주거정책의 청사진인 주거복지 로드맵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지난 7월엔 이를 보강·구체화한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 방안’도 내놨다. 이 방안의 핵심은 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 23만5천호 △신혼희망타운 10만호를, 청년에겐 △공공임대주택 14만호 △공공지원주택 13만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공급량 자체에서 이미 차이가 클뿐더러, 질적으로도 청년에게 불리한 내용이다. 청년에게 집중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공공지원주택은 민간 건설사의 배만 불렸다고 비판받은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을 개선한 것이다. 입주자격과 초기 임대료 제한 등에서 ‘공공성’을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시세의 70~85%인 임대료는 30~80% 수준인 공공임대보다 많게는 세 배 가까이 비싸다. 아주 단순히 보자면, 월세 50만원이나 그 80%인 40만원이나 저소득 청년이 감당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신혼부부가 주거복지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라야 하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신혼희망타운 10만호를 새로 지어 시세보다 낮은 값에 신혼부부한테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내 집 마련과 저출생 문제를 연결지은 결과다. 그런데 김기태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이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 제공한 결과를 보면, 신혼희망타운 입주 대상인 혼인 기간 7년 이하의 신혼부부는 맞벌이는 말할 것도 없고 외벌이 가구조차 소득, 자산, 순자산 모두 1인 가구, 미혼(비혼) 가구보다 많았다. 월평균 소득이 신혼부부는 496만원(외벌이 406만원)이었지만 1인 가구는 160만원, 미혼 가구는 276만원이었다. 평균자산과 평균순자산의 경우 신혼부부는 3억2188만원과 2억4050만원(외벌이는 각각 2억8766만원, 2억1307만원)인 반면, 1인 가구(각각 1억4245만원, 1억2362만원)와 미혼 가구(1억7601만원, 1억4897만원)는 그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를 5분위로 나눠보면 1인·미혼 가구는 하위 1~2분위에, 신혼부부는 중상위인 3~5분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었다.(표 참조) 이는 돈이 있어야 결혼도 한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더구나 신혼희망타운은 낮은 공급가 탓에 시세차익 수억원이 보장돼 ‘로또’로 불린다. 주택 구매·전세자금 대출의 규모와 금리, 조건 역시 1인 가구보다 신혼부부에게 훨씬 유리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1인·청년 가구가 압도적인 비율로 월세에 거주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대체로 국가의 지원이 없어도 집을 마련할 여력이 있는 신혼부부에게 주거정책의 초점을 맞추면서 청년의 요구에는 사실상 대답을 하지 않는 게 주거 불평등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또 “정부가 공급목표로 잡은 주택의 단위가 신혼부부는 집(호), 청년은 방(실)이라는 건, 청년은 집이 아니라 방에 살아도 된다는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라고 덧붙였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5776.html#csidx6ca52dd9ba9f58fba0c3381b14f139e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고령층내 큰 자산 격차, 자손들에게 이전돼 더 심해져"

 

고령층내 큰 자산 격차, 자손들에게 이전돼 더 심해져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② 자산, 세습사회의 문65살 이상 가처분소득·순자산다른 연령대보다 높은데평균순자산 격차도 커 10억원 넘어공적복지 대신 자산기반 사적복지 의존 탓상속·증여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세대내 불평등 악순환 해결하려면기초연금 보편화뒤 자산과세 강화를한국의 자산과 소득 불평등을 나이별로 분석해보면, 65살 이상 고령층 내부의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며, 그 원인은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자산에 기반을 둔 사적 복지’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런 ‘세대 내 불평등’은 상속과 증여를 통해 다음 세대에서 더욱 심화할 가능성도 이 연구에서 포착됐다. 자산에 기반을 둔 복지란 정부 재정으로 유지되는 공적 복지제도가 아니라, 개인들이 스스로 축적하고 불린 자산에 노후와 삶의 안정성을 의지하려는 현실을 일컫는다. ■ 고령층, 순자산도 많고 격차도 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와 함께 계간지 <동향과 전망> 최근호에 발표한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증대: 1990~2016’을 보면, 75~79살의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526으로, 20~89살을 5살 단위로 나눈 연령집단 14개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 연령대는 순자산 기준 지니계수도 20~24살(0.691) 다음으로 높은 0.679로 나타났다. 65살 이상 5개 연령집단 가운데 나머지 4개 집단의 가처분소득과 순자산 지니계수는 75~79살의 뒤를 이어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더 불평등하다는 뜻이다. 고령층의 ‘세대 내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가처분소득 상위 10%와 (상위 10%를 뺀) 하위 90%의 연령대별 평균 순자산 차이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처분소득 상위 10%에서 평균 순자산은 65~69살이 16억9124만원, 75~79살이 16억3877만원 등 65살 이상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상위 10%와 하위 90% 평균 순자산의 격차도 고령층에서 가장 커, 75~79살에서 14억3257만원, 65~69살에서 14억1216만원 등 10억원 이상 차이가 났다. ■ “기초연금 보편화, 자산 과세 강화해야” 이런 현상이 벌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1970~80년대 ‘산업화 역군’인 고령층이 경제개발기, 부동산 투자 붐을 거치며 부를 쌓았지만 공적인 노후복지 제도가 갖춰지지 않아 사적 복지에 의존한 탓에 빚어진 결과라는 게 이철승 교수의 분석이다.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1988년)되기 전이나 직후 은퇴한 세대인 이들은 경제활동 기간 동안 축적한 자산을 노후생활에 투입해야 했다. 그런데 개인별로 축적한 자산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레 분화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일부는 사적 복지에 쓰고도 다음 세대한테 증여·상속을 할 수 있는 ‘자산이전 계급’으로, 다른 일부는 스스로 다 소진하는 ‘자산소비 계급’으로, 나머지는 적정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기도 힘든 ‘자산빈곤 계급’으로 분화한 것이다. 고령층의 소득 불평등이 큰 것도 결국은 자산의 격차에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소득이 대부분 근로소득이 아니라 금융소득, 임대소득 등 자산에 기반을 둔 소득이기 때문이다. 고령층의 세대 내 자산 불평등은 증여와 상속을 통해 다음 세대에서 확대 재생산된다. 스스로 자산을 축적할 기회가 없는 20~24살의 순자산 지니계수가 0.691로 모든 연령집단 가운데 가장 높다는 점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연구에서 연령집단별 평균 순자산은 50~60대가 최소 3억4천만원 이상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들이 상속·증여를 시작하면 앞으로 청년들의 세대 내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는 “세대 내 불평등의 악순환을 해결하려면 기초연금부터 보편화한 뒤 자산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며 “공적 노후복지 제도인 기초연금을 소득·자산과 분리해 누구나 받게 하면, 소득 없이 집 한 채만 가진 고령층의 생활을 보장하는 동시에 조세저항도 막을 수 있다. 그런 다음 자산 과세를 강화해, 더 걷은 세금의 일부를 청년들의 부담이 가장 큰 주거 지원에 쓰는 방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믿을 건 집밖에 없다’는 디엔에이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이 개인의 노후수단으로 점차 부각되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흐름이다. 공적 복지제도 유지에 따른 재정 부담을 덜고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들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경기 동향은 가계의 구매력은 물론 한 나라의 거시경제 전반에 커다란 파급력을 지닌다. 한국의 경우, 독특한 산업화 경험으로 인해 이런 ‘자산 기반 복지’의 규범이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형성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가 산업화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로 하여금 강제저축을 유도하는 대신, 세금 부담을 크게 지우진 않았다는 뜻이다. 김도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는 복지 부담에서 벗어나고 국민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책임(저축)으로 노후와 내 집 마련에 대비하는 ‘저부담-저복지’의 경로가 이때부터 자리잡았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강남 개발로 상징되는 부동산 시장의 급팽창은 내 집 마련이라는 중산층 신화와 맞물리면서 자산 기반 복지에 날개를 달아줬다.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과 성공적인 자산 축적의 경험은 마치 보편적인 ‘사회윤리’인 양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산 축적의 열망을 키워나갈수록 국가는 증세와 재정 문제를 피해 가는 데 유리했다고 김 연구위원은 진단한다. 문제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한국에서도 공적 복지영역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음에도, 자산에 대한 믿음과 의존도는 결코 약해졌다고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믿을 건 집밖에 없다’, ‘가진 건 집밖에 없다’는 의식이 강해질수록 자산 기반 복지 규범은 외려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김 연구위원은 “강남과 신도시를 이어 거듭된 부동산 성공 신화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강력한 디엔에이(DNA)를 형성했다”며 “단순히 욕망이나 투기의 문제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계층 하락과 노후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실존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5525.html#csidxe0878ad5c000b1a87d497a595e71e35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만 10살 이하 집주인' 8139명... 세습사회 문턱에 선 한국"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② 자산, 세습사회의 문지난해 상속·증여 67조8890억종부세 내는 미성년자 167명미성년자 증여 2016년 비해 50%↑국민소득 대비 상속·증여 비중 증가2010년대 4~5%…실제론 8~9% 추정자산 이전이 불평등 확대 핵심열쇠부동산가격 상승이 주요 요인 작용“생산활동 대신 자산수익 유인 커지면경제활력 떨어뜨리는 악순환 우려”소수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자산의 상속·증여가 늘어나면서 날 때부터 이미 미래의 운명이 결정된 ‘세습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사진은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8139명. 2016년 말 현재 우리나라 ‘만 10살 이하 집주인’ 수다. 해당 연령대 인구수에 견주면 어림잡아 600명당 한명꼴이다. 이 중 350명이 서울 강남3구에 살고, 5채 이상을 가진 사람만 25명이다. 심기준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에 담긴 숫자들은 재능이나 노력 대신 핏줄과 태생이 운명을 결정하는 ‘세습사회’의 문턱에 선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경고한 ‘중세로의 회귀’라 할 만하다. ■ 하루에 1860억원꼴로 상속·증여 국세청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증여재산가액은 67조8890억원. 상속 32조1874억원과 증여 35조7016억원을 합친 금액이다. ‘가만히 앉아서’ 부모나 조부모 등의 재산을 넘겨받은 규모가 하루 1860억원꼴이라는 얘기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심기준 의원실을 통해 받은 국세청의 ‘2013~2017년간 미성년자 상속 및 증여’와 ‘미성년자 종합부동산세 결정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19살 미만 미성년자의 증여재산가액은 1조279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부동산이 337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금융자산(3281억원)과 유가증권(2370억원)이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만 0~10살’이 4811억원으로 46.8%를 차지했다. 지난해 미성년자 증여 규모는 2016년(6849억원)에 견줘 50%나 증가했다. 2016년 기준으로 미성년자 167명이 종합부동산세를 냈다. 종부세를 낸 미성년자는 2013년 136명, 2014년 154명, 2015년 159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상속·증여 규모도 덩달아 늘어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201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국민소득 대비 상속·증여 비중이 4~5% 수준으로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 숫자는 공시지가를 토대로 작성돼 있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연령별 사망률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국민소득 대비 상속·증여 규모가 이미 8~9%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역사상 상속·증여 비중이 가장 높았던 20세기 초 서유럽 나라들(20% 선)엔 미치지 못하지만 증가 속도는 빠른 편이다. ■ 자산이라는 이름의 ‘절대반지’ 이런 현실은 자산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 확대에 핵심 열쇠를 쥐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로 벌어들인 몫(소득)보다 이미 축적된 몫(자산)의 비중이 커지는 건 이른바 ‘피케티 비율’이라 불리는 민간자산(부)/소득 비율 추이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상의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산을 국민순소득(NNI)으로 나눠보면, 2010년 5.48에서 지난해엔 5.76까지 높아졌다. 주된 원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최근 자료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은 11.2로, 단순 비교만으로도 우리나라 민간자산/소득 비율을 크게 앞질렀다. 가구의 연간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평균 11.2년을 꼬박 모아야 서울에 있는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런던(8.5), 도쿄(4.8)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정확한 자산 규모와 분포를 알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자산 불평등이 확대되는 추세라는 데 전문가들은 대부분 동의한다. 국세청 상속세 자료를 분석한 김낙년 교수는 2013년 현재 우리나라 자산 상위 0.1%, 1%, 10%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각각 9.2%, 26%, 66.4%로 추정했다. 상위 10%만 놓고 봤을 때, 미국(77%)과 영국(70%)보다 낮고 프랑스(62%)보다 높은 수준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상위 10%에서 영국과 미국에 근접하는 속도로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자산 소유의 불평등은 자산 보유에서 벌어들이는 소득 격차를 낳는 직접적 원인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국세청 자료를 이용해 계산해보니, 2016년 기준으로 부동산임대소득과 이자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0.7%, 90.8%였다. 특히 배당소득(14조863억원)의 94.4%는 상위 10%에 집중됐다. 상위 1%가 같은 해 벌어들인 임대소득은 1인당 평균 3억5712만원이나 됐다. 올해 8월 현재 전국에 집 20채 이상을 소유한 임대사업자는 전체 임대사업자의 2.5%인 8691명이다. ■ 악순환의 고리…불평등 구조의 확대 재생산 앞으로도 자산은 더욱 빠르게 몸집을 불려갈 게 분명하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16년 소득 5분위(상위 20%)의 가구당 처분가능소득은 평균 9264만원으로 1분위(하위 20%) 809만원의 11.4배다. 고소득 계층의 여윳돈은 언제든지 자산으로 탈바꿈해 더 많은 소득을 낳는 황금거위가 된다. 자산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국 현재보다는 과거가 미래를 좌우하는 세상이다. 김낙년 교수는 연간 상속(증여) 규모와 저축액을 장기에 걸쳐 누적해봤을 때, 우리나라 전체 부의 축적에서 상속 등의 이전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대 이후 과거보다 크게 높아져 42%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일을 해 번 돈을 저축하며 부를 늘려가던 사회가 더 이상 아니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는 “고령화·저출산과 맞물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에 생산적인 활동 대신 자산을 굴려 수익을 올리려는 ‘지대추구’ 유인이 커지면 경제의 활력을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자산의 대물림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결정짓는 냉혹한 심판정에 가깝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층 자산계급이 자산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상속·증여를 통해 불평등 구조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흐름이 한국에도 이미 출현했다”고 평가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5523.html#csidx7e2bae2398ff0a2b1987e7212b9918c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지난해 증여재산액 상위 1%가 1인당 39억씩 받았다"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② 자산, 세습사회의 문상·하위 10% 격차 373배 달해0살 아기에 재산증여 55건 62억게티이미지뱅크 금융자산 45억원, 부동산 13억원, 유가증권 4억원.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지 만 한돌도 안 돼 부모나 조부모 등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 목록’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심기준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받은 국세청의 ‘2013~2017년간 미성년자 상속 및 증여 자료’를 보면, 지난해 0살 아기의 증여재산가액은 총 55건에 62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증여 건수와 증여재산가액은 2015년 25건 18억원, 2016년 23건 23억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증여세 가운데 0살 아기가 ‘부담하는’ 몫은 8억원이었다. 미취학 연령(만 0~6살)을 따로 추려보면, 지난해 증여재산가액이 2579억원이었다. 2016년(1764억원)보다 46%나 늘어난 수치다. 자산 종류별로는 금융자산(931억원)이 가장 많았고, 부동산과 유가증권도 각각 707억원, 611억원을 기록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5년간 19살 미만 미성년자의 증여재산가액 합계는 모두 3조5252억원으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증여재산가액 183조3448억원의 약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지난 5년간 부동산 형태로 미성년자에게 증여된 재산은 1조1328억원이다. 한편, 계층별 편중 현상은 증여에서도 예외 없이 두드러졌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김성태 의원실(자유한국당)을 통해 받은 국세청의 ‘2017년(잠정) 증여세 분위별 결정현황 자료’를 분석해보니, 지난해 과세가 결정된 14만6337명 가운데 증여재산가액 상위 1%가 전체 증여재산가액(과세 대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3%로 나타났다. 상위 10%의 비중은 39.6%였다. 상위 1%(1464명)가 받은 증여재산가액 합계는 5조8059억원으로, 1인당 평균 39억7천만원씩을 증여받았음을 뜻한다. 하위 10%의 1인당 평균 증여재산가액은 260만원이다. 상·하위 10%의 증여재산가액 배율은 373배였다. 상속세의 경우, 지난해 상속인수(22만9828명) 중 과세자는 6973명으로 과세 비율은 3.0%에 그쳤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5529.html#csidxc066cad02ceaa3ca8bd07ebeb8cd0eb

한국에 오는 토마 피케티 / 주상영

주상영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이달 말에 한국에 온다. 피케티는 탄탄한 역사적 통계와 직관적이고 단순한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 동시의 조세혁명이라는 급진적이고 담대한 제안을 한 바 있다. 폴 크루그먼은 그의 책을 읽고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라고 칭찬하고 <뉴욕 타임스>에 수식과 그래프까지 동원하면서 그의 이론을 소개하기도 했다.2014년 9월 피케티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그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책 내용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로벌 부유세라든지 사회국가 같은 개념이 부담스러우면 그건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대신 책의 제3부까지 내용, 즉 기본 이론과 역사 자료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적어도 이 부분은 보수든 진보든, 주류든 비주류든 모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피케티의 학문적 업적은 역사적 사실과 통계 수치를 이용해 경제적 불평등의 동학을 밝혀낸 데 있다. 주요 선진국에 대해 300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를 제시했는데, 경제적 불평등은 18~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심했고 20세기 중반에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이후 다시 악화되었다. 이 추세대로 가면 아마 21세기 중반쯤에는 다시 19세기 말의 모습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예측이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불평등에 관한 모든 지표가 악화되었는데, 선진국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현상이 한국에서는 십여년 만에 압축적으로 발생했다.<21세기 자본>은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살며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 오직 공공의 선에 기초할 때에만 사회적 차별이 가능하다.” 오늘날 심화된 불평등이 과연 공공의 선이라는 차원에서 허용될 만한 수준일까? 피케티는 불평등의 역사를 분석했고, 분배 문제를 경제학의 중심으로 복귀시키려고 했다. 불평등이 여기서 더 악화되면 능력주의 원칙이 훼손되고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마저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보수진영은 피케티의 방한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2014년 9월에 열렸던 세미나도 구성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멀리서 저명 학자를 불렀으면 얘기를 잘 듣고 점잖게 토론하면 그만인데, 무례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반대 토론과 맞대응에 할애했다. 어느 경제 단체는 그가 오기도 전에 그의 이론을 반박하는 책을 급조해서 펴내기도 했다. 언론의 왜곡 보도도 심했다. 어느 언론은 그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인터뷰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다. 단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그렇게 두꺼운 책을 쓴 게 아닌데 말이다.2015년 1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는 그 유명한 ‘맨큐-피케티 논쟁’이 벌어졌다. 피케티는 자신을 심하게 몰아치는 하버드대학의 그레고리 맨큐를 향해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응수했다. “부자들은 옷이나 음식만 사는 게 아니라 정치권력이나 경제학자마저 산다.”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공황 당시에 자본주의를 구하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총수요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21세기의 피케티는 자본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적절히 조절하고 분배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자본주의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을 다시 찾는 그에 대해 각계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벌써 궁금해진다.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통합소득’ 지니계수 0.5 넘었다…자산 불평등 ‘매우 심각’"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① 격차에서 장벽으로근로·자산소득 더한 ‘통합소득’2016년 지니계수 구해보니 0.520근로소득만 떼낸 0.471보다 높아“불평등 더 심각하다는 증거” 복지제도가 미약한 한국에서 불평등은 곧 ‘부자 천국, 빈자 지옥’과 같은 말이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소득을 얻을 기회조차 제한적이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그 길을 모색해보고자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라는 주제로 오는 30~31일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을 연다. 서울 용산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리는 포럼에선 불평등 연구자인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 건강 불평등 연구의 대가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을 한다. 그에 앞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한국형 불평등’의 실체와 구조를 파악할 기획을 5차례에 걸쳐 싣는다. 일을 해 벌어들인 소득과 자산 보유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합친 ‘통합소득’으로 따져보니, 한국의 지니계수가 0.5를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처음 나왔다. 자산이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는 주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분배 지표인 지니계수(0~1 사이의 값)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반적인 기준은 지니계수가 0.5를 넘으면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은 상태’로 본다. 7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심기준(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국세청의 ‘통합소득 분위별 세부자료’를 전병유(한신대)·정준호(강원대) 교수와 함께 분석해보니, 2016년 귀속분 통합소득 지니계수는 0.520으로 나타났다. 근로소득만을 따로 추린 지니계수는 0.471이었다. 여기서 통합소득이란 국세청이 근로소득 연말정산 신고자의 소득(근로소득)과 이자·배당·부동산임대 등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소득(종합소득)을 더한 뒤 일부 겹치는 부분을 빼고 정리한 소득을 말한다. 이는 같은 해 통계청 지니계수(0.402, 시장소득 기준)를 크게 웃돌고,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계산한 근로소득 지니계수(0.459)보다도 높다.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통합소득’ 지니계수가 통계청 등의 수치보다 상당히 높게 나온 건 분석 대상의 소득 포괄 범위가 근로소득만으로 잡았을 때보다 넓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과세 미달자의 소득을 비롯해 금융자산 및 부동산에서 나오는 소득을 모두 포함한 과세행정 자료인 까닭이다. 이 방식은 표본조사를 통한 가구소득 자료(추정)와 달리 현실 설명력이 높은 편이다. 2016년도 귀속분 통합소득자는 모두 2176만4051명이다. 다만, 자산에서 나오는 실제 소득자료를 토대로 구한 다른 나라의 지니계수가 없어 이 수치만으로 곧장 국제 비교를 하기는 어렵다. 또 이번 통합소득 통계엔 종합과세로 합산되지 않는 ‘분류과세’ 항목인 양도소득(2016년 23조6043억원)이 빠져 있다. 만일 일부 자산 보유 계층에 집중된 양도소득까지 포함한다면 지니계수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전병유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에 파악하지 못한 개인 소득 자료가 상당히 포함돼 현실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며 “자산까지 고려했을 때 우리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한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단독 입수한 국세청의 ‘2013~2016년간 근로소득 분위별 경계값 현황’ 자료를 보면, 2016년도 귀속분 근로소득 연말정산 신고자 1774만98명 중 상위 1%의 경계값은 1억4422만4천원으로 확인됐다. 소득 경계값이란 특정 구간(분위)에 속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최소 소득(커트라인)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2016년에 한달 평균 1202만원을 급여로 받은 사람이 ‘급여 순위 17만7401등’이라는 뜻이다. 소득 분위별 경계값이 국세청 자료로 공개된 건 처음이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4846.html#csidx9be157ac405508fa5cee3903886ffe1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자산격차 지수, 소득격차의 3배 육박"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①격차에서 장벽으로자산·소득·소비 결합해불평등 정도 측정하는’다중격차지수’ 지난해 0.54자산 격차가 가장 큰 영향자산 불평등이 ‘불평등의 구조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자산 불평등이 심각해짐에 따라 전반적인 불평등도 더 심화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경제지리학)가 가계금융복지조사의 복지 분야 결과를 분석해 7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 공개한 지난해 ‘다중격차지수’가 0.54로 나타났다. 다중격차지수는 정 교수가 전병유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경제학)와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불평등 측정 지수인 ‘다변량 앳킨슨 지수’(Nested Atkinson Measures)를 원용한 것이다. 개인의 생활 수준을 결정하는 소득(가처분소득)·자산(순자산)·소비(소비지출) 세 변수를 동일한 가중치로 결합해 산출한다. 0~1의 값을 가질 수 있으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는 뜻이다. 세가지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 불평등 정도를 가늠하기에 하나의 변수를 사용하는 것보다 복잡한 현실을 더 잘 반영하며, 불평등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 정 교수의 분석에서 다중격차지수는 2015년 0.49, 2016년 0.51, 2017년 0.54로 꾸준히 커졌다. 이 3년 동안 가처분소득 격차지수는 0.22에서 0.21로 줄었다. 하지만 순자산 격차지수가 0.56에서 0.57로, 소비지출 격차지수가 0.12에서 0.13으로 늘어나 다중격차지수가 뛰어올랐다. 특히 순자산의 불평등이 심해 다중격차지수 증가를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정 교수는 “2014년부터 건설 부문을 중심으로 고용이 늘어나 소득 불평등은 조금 줄었지만,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 정책 탓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해져 전반적인 불평등도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각각의 격차지수를 소득분위별로 산출해보면, 자산 불평등이 전반적인 불평등의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만 봐도, 가처분소득과 소비지출 격차지수는 소득하위 1분위만 전체 평균을 넘는 수치인 반면 나머지 9분위는 0.0×대에 그쳐 극빈층을 제외하면 불평등 정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순자산 격차지수는 소득하위 3분위까지 전체 평균을 웃돌았고, 나머지 7분위의 불평등 정도도 비교적 높았다. 이에 따라 소득분위별 다중격차지수도 ‘평균 이상의 3’과 ‘비교적 높은 7’의 양상을 보였다. 정 교수는 “자산 불평등은 세습을 통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또 과거보다 자산과 소득의 상관관계도 크게 높아져 불평등이 더 악화되고 있다”며 “최소한 부동산 보유세라도 높이고, 엄격한 자산 조사를 통해 자산 과세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4848.html#csidxb5d75caad46bd4bb67a82309e21df8f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소득 최상위 500명 실효세율이 낮은 ‘과세 역전의 비밀’"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① 격차에서 장벽으로최상위 500명 실효세율 31.09%501~1만명 구간 31.77%보다 낮아“배당소득 세액공제가 영향 준 듯”상위 0.1% 1인당 배당소득 연 8억법정세율?실효세율 격차 이유는복지 대신 각종 ‘공제’ 늘려 온 탓소득 상위 10%에서 가장 벌어져“역진 성격 큰 공제, 이제 손봐야”부동산 등 자산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을 앞지르며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 있다. 사진은 서울 관악구의 한 고시원.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서울 강남의 한 복합금융센터 센터장 ㄱ씨. 금융자산 50억원 이상을 굴리는 극소수 고액 자산가(VVIP)들만 주로 상대하는 그는 올해 들어 고민이 부쩍 늘었다. 해외투자를 활성화한다며 이전 정부가 해외펀드 투자상품에 몰아줬던 각종 비과세 혜택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꼭 해외펀드만이 아니다. 그는 “고액자산가들일수록 당장의 수익률보다는 비과세 혜택에 외려 관심이 많은 편”이라 말했다. ■ 최상위 500명의 실효세율 ‘미스터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국세청의 통합소득 자료를 이용해 ‘실효세율’을 구해보니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띄었다. 최상위 소득자 500명의 실효세율이 그 아래 소득집단보다 오히려 낮게 나타난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순서로 500명을 추렸을 때 이들의 소득 대비 실질 세금 부담이 가장 높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실효세율이란 법정 세율과 관계없이 실질적인 세금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잣대로, 여기선 구간(분위)별 결정세액을 통합소득으로 나눠 구했다. 미국의 경우, 국세청(IRS)이 직접 납부세금 최상위 400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최상위 0.001%의 소득 분석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분석 결과, 2016년 최상위 소득자 500명의 실효세율은 31.09%로, 501~1만명 구간의 실효세율 31.77%보다 0.68%포인트 낮았다. 2016년 최상위 500명의 통합소득 총액은 5조1334억원, 500등과 501등을 가르는 소득 경계값은 48억5492만원이었다. 실효세율은 501~1만명 구간에서 정점을 찍은 뒤, 그 아래 소득구간으로 내려갈수록 차례로 낮아졌다. 2014년과 2015년 자료에서도 이런 ‘이상현상’은 똑같이 확인됐다. 최상위 500명의 세금 부담은 2014년(30.99%)과 2015년(30.33%)에도 501~1만명 구간보다 적었다. 501~1만명 구간을 501~1000명, 1001~2000명 식으로 더욱 세분화하더라도 최상위 500명의 실효세율은 바로 아래 구간(501~1000명)보다 낮았다. 유독 최상위 소득구간에서 실효세율 ‘역전’이 벌어진 주된 이유는 뭘까. 시민단체에서 조세분석 분야 일을 맡고 있는 홍순탁 회계사는 조심스레 배당소득을 지목했다. 홍 회계사는 “최상위 소득집단은 근로소득보다는 특히 배당소득의 비중이 높다고 봐야 한다”며 “배당소득 이중과세 논란을 피하기 위해 배당소득 세액공제를 실시한 게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6년 배당소득 상위 0.1%(8915명)의 배당소득 총액은 7조2896억원, 1인당 평균 8억1768만원에 이른다. 최상위 초고소득층의 실효세율 문제는 나라 밖에서도 논란이 돼왔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미국 최상위 소득자 400명의 실효세율이 오히려 다른 집단보다 낮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최저세율’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게 대표적이다.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복지 대신 공제’의 역설 정부는 올해 귀속분부터 과세표준 3억원 초과 38%, 5억원 초과 40%였던 기존 최고소득세율을 3억원 초과 40%, 5억원 초과 42%로 올렸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액을 현행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내려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 중요한 건 고소득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소득구간에서 실효세율이 법정 세율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소득 분위별 실효세율을 구해보니, 2016년 통합소득 상위 0.1%, 1%, 10%의 실효세율은 각각 31.2%, 18.7%, 6.1%에 그쳤다. 2015년 30.8%, 18.2%, 5.8%에 견줘 약간 오른 수치다. 상위 20%와 30%의 2016년 실효세율은 각각 3.5%, 2.1%였다. 실효세율이 눈에 띄게 낮은 원인은 다양한 ‘공제’ 제도가 남아 있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제란 소득을 줄이거나 세액을 낮추는 방식으로 정부가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말한다. 김도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줄곧 미비한 공적 복지를 다양한 공제 제도로 보충해온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이라 말했다. 정부가 세금을 늘려 공적 복지의 부담을 확실하게 떠안으려 하지 않고 국민의 세금을 줄여주는 공제 제도를 확대해 복지 부담을 피해왔다는 뜻이다. ‘공제의 왕국’에선 공제를 없애거나 줄이려는 정책이 나올 때마다 으레 강한 반발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림잡아 상위 10% 근방의 소득 집단에서 법정 세율과 실효세율의 상대적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2016년 통합소득 기준 상위 10%의 경계값은 7086만4000원으로, 인적 공제 등 다양한 소득공제 항목을 제한 과세표준 소득금액은 대략 4000만원대 중후반 수준이다. 세율 24%가 적용되는 과세표준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의 경우, 582만원(4600만원에 해당하는 세금)에다 4600만원을 넘는 금액의 24%를 더한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2015년 1월 ‘연말정산 파동’ 당시 공제 규모가 가장 큰 이 소득 집단을 중심으로 커다란 저항이 일기도 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공제 제도는 역진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중상위 계층에서 하위 계층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므로 (축소 또는 폐지에) 저항이 특히 심하다”며 “복지를 늘리면서 해당 공제를 축소하는 패키지 전략을 동시에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4850.html#csidxc4a6a52baeec8b19d1321514eac08f3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2016년 통합소득 분석"

 

[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① 격차에서 장벽으로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2016년 통합소득 분석 상·하위 10% 격차 보니근로소득만 따지면 46배금융·부동산소득 합치면 68배일부층에 편중된 자산소득 기회상위 20%, 종합소득 70% 독식“미국은 최상층이 지나치게 벌고한국은 하위층 소득 너무 적어”일해서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돈’으로 불려나가는 자산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한국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7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뒤쪽으로 고가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88만명과 800만명’.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입수·분석한 국세청의 세부 자료들을 보면, 2016년 한 해 동안 근로소득과 이자·배당·부동산임대소득 등을 합쳐 최소 1억원 이상을 번 사람은 88만명에 이른다. 같은 해 하위 37% 아래 집단에 포함되는 800만명은 최저임금 연 환산액(1512만3240원)만큼도 벌지 못했다. 격차가 장벽으로 굳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다. ■ 통합소득 지니계수 왜 높을까 불평등 정도를 숫자로 표현한 지니계수는 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 게 일반적이다. 통계청이 공식 발표하는 지니계수도 이런 방식으로 계산된다. 문제는 가구 소득을 설문 방식의 표본조사로 구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소득자에 견줘 표본의 수가 매우 적을뿐더러, 특히 고소득 계층의 소득은 실제보다 상당히 축소 반영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에 반해 국세청의 통합소득 자료는 개인별 실제 과세행정 기초자료인데다 근로소득 이외에 다양한 재산 소득을 포함하고 있어 현실의 불평등 정도를 파악하는 데 훨씬 유용하다. 분위별 소득 집중도에서 차이는 잘 드러난다. 2016년 상위 1%의 통합소득은 78조7796억원으로 같은 해 통합소득 총액(721조3616억원)의 10.9%였다. 상위 10%는 36.9%의 몫을 챙겼다. 이에 반해 근로소득 상위 1%와 10%의 총액 대비 비중은 각각 7.3%, 32.1%로 이보다 적었다. 상·하위 10% 몫의 상대 비중을 뜻하는 10분위 배율 역시 통합소득(68.6배)이 근로소득(46.6배)을 크게 웃돌았다. 상·하위 10% 집단의 소득 격차가 통합소득에서 더 컸다는 얘기다. 이런 추세는 분석 대상 기간인 2013~2016년간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배율보다 분포에 주목하라 통합소득의 불평등이 더 심한 이유는 자산 보유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일부 계층에 편중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자·배당·부동산임대 등 종합소득 항목만을 따로 추렸을 때, 상위 1%와 10%의 소득 집중도는 각각 22.6%와 55.6%가 됐다. 범위를 상위 20%까지 넓히면 집중도는 70.7%로 높아진다. 전체 종합소득의 3분의 2 이상을 상위 20%가 독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 집중도에만 지나치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예컨대 상위 10%의 집중도가 높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훨씬 많아서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2016년 귀속분 통합소득 2400만원은 상위 46%의 경계값에 해당하는 수치다. 뒤집어 말하면, 근로소득과 재산소득을 합쳐 한 해 소득이 24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 사람이 54%(1175만2600명)에 이른다는 뜻도 된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는 “단순하게 말하면, 상·하위 배율이 공통적으로 높다 하더라도 미국은 최상위 집단이 지나치게 많이 벌어서, 한국은 하위 집단이 너무 못 벌어서 문제”라며 “단순 배율에만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소득 분포를 들여다봐야 상황에 걸맞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소득 경계값 살펴보니 중앙에서 양극단으로 옮겨갈수록 구간(분위)별 평균값과 경계값의 차이는 크게 벌어지기 마련이다. 2016년 통합소득을 기준으로 상위 0.1%(2만1764명)를 가르는 경계값은 5억6672만원. 하지만 0.1%에 속한 개인들의 1인당 평균소득은 이보다 높은 12억9119만원이다. 근로소득도 마찬가지다. 상위 0.1%(1만7740명)의 경계값은 3억6637만원인 반면, 평균소득은 6억8451만원이다. 김공회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이른바 평균의 오류를 줄이고 불평등 해소 정책의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경계값 정보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준을 ‘통합소득 상위 1만명’으로 고정시켰을 때, 경계값은 2013년 7억4142만원에서 2014년 7억8182만원, 2015년 8억3077만원, 2016년 8억7760만원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우리나라 ‘월급쟁이’들의 구체적인 급여 분포는 어떨까? 국세청 자료를 보면, 2016년 상위 10%와 20%의 근로소득 경계값은 각각 7182만원과 5119만원이다. 같은 해 근로소득 연말정산 신고자 1774만98명 중 이보다 많은 소득을 올린 사람이 어림잡아 177만명과 354만명이라는 뜻이다. 급여소득 1억원은 상위 3.68%(‘65만2832등’)에 해당한다. 참고로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한국기업데이터(KED)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2017년 국내 1000대 기업의 직급별 평균 연봉을 보면, 부장급 7070만원, 차장급 5990만원, 과장급 5010만원이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64841.html#csidxde1c0410f7b8a019321fa535883c9f0

피케티, 윌킨슨이 말하는 한국의 불평등 아시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아시아미래포럼 10월30~31일 개최

피케티, 윌킨슨이 말하는 한국의 불평등 ‘불평등 극복’ 주제로 10월30~31일아시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이 10월30~31일 열립니다. 9회째인 올해 주제는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아파트값 상승에 따른 우리 사회의 갈등에서 보듯, 갈수록 심화하는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에 맞서 더 균등하고 역동적인 한국을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불평등한 사회는 왜 진보를 멈추나30일 포럼 첫날 오전,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리처드 윌킨슨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가 연단에 섭니다. <21세기 자본>으로 불평등 연구의 새 지평을 연 피케티 교수가 국내 청중 앞에 서는 것은 4년 만인데, 그동안 여러 나라 학자와 공동연구로 확인한 불평등의 새로운 양상과 그 극복의 해법을 펼쳐 보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미치는 차별적인 영향을 탐구해온 윌킨슨 교수는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는 발전이 멈추고 어떻게 퇴보하는지를 제시합니다. 불평등한 사회는 개인의 재능을 체계적으로 낭비하게 된다고 밝혀 시선을 끈 책 <이너 레벨>(The Inner Level)을 올해 윌킨슨 교수와 함께 펴낸 케이트 피킷 요크대 공공보건역학 교수도 이번 포럼에 참석합니다. 피케티, 윌킨슨 두 대가가 불평등 극복책으로 ‘정치의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균등하고 역동적인 사회를 위한 상상력오후 기조연설과 이튿날 31일에는 불평등 극복의 해법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삶의 질과 복지국가, 노동의 미래, 전환시대 도시정책, 지역순환경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 등의 세션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캐시 조 마틴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북구의 경험을 들어서 불평등 극복은 가능하고 이를 위해 어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저우광쑤 중국 인민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집중투자하는 중국이 ‘노동과 직업의 변화’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소개합니다. 점심 인문강연에서는 <미디어 구하기>의 저자인 쥘리아 카제 파리정치대 교수가 미디어 격변의 시대에 지속 가능한 언론의 길은 무엇일지 고민을 나눕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소속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주관하는 ‘휴먼 테크놀로지 어워드’ 시상식도 열립니다.?날짜?장소: 10월30~31일 서울드래곤시티호텔(용산)?주최: 한겨레신문사?주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등록신청: 누리집(www.asiafutureforum.org)?문의: 아시아미래포럼 사무국(전화: 02-2152-5025, 전자우편: 2018aff@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