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 말 아닌 현장에서 정책 나와야”

2018. 5. 4. 15:09도시와 혁신/스마트시티의 조건들





“윗사람 말 아닌 현장에서 정책 나와야”

민관 소통 늘리고 작더라도 빠른 성과 내겠다

대담=장윤옥 편집장
2018.01.19


      본문

      장병규 위원장은 정부 정책이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실무진들의 아이디어가 의사결정에 적극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병규 위원장은 정부 정책이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실무진들의 아이디어가 의사결정에 적극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관 소통 늘리고 작더라도 빠른 성과 내겠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일자리 창출과 경제구조 혁신을 위한 민관 협력을 목표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했다.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원활한 정책 추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크지만 위원회가 과연 각종 규제 등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을 풀 리더십을 보여줄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인터넷과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연쇄창업자로 평가받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카운터 펀치’보다는 작더라도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은 성과가 쌓여 큰 한 방이 나오는 흐름이 만들어진다는 것. 장병규 위원장과 지난 몇 달간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이끌며 느낀 점과 앞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위원회의 방향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대담 = 장윤옥 테크M 편집장]

      Q.위원회가 출범한 지 이제 3개월이 지났다. 위원회에 얼마 정도의 시간을 쓰나. 그동안 기업을 이끌며 일하는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1주일에 3~4일 출근하지만 80% 정도가 위원회 일이다. 비상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웃음)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든 일이 위에서 방향을 정해 내려보내는 방식(Top-down)이고 이런 일은 지나치게 효율적이다. 조직이 한 가지 방식으로만 최적화 돼 있으면 일견 효율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조직이 너무 일사불란하고 유연성이나 확장성이 떨어지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일들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기존의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고 애매한 것들이 많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도 여러 가지여서, 크고 작은 논쟁과 충돌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향식으로 모든 일에 대해 지침을 주는 것보다 현장에서 적절한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Bottom-Up)으로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런데 막상 공공부문에서 일해 보니 이게 참 어렵다.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일해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바꾸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없다. 70~80년대 경제 성장기까지만 해도 하향식 방식이 성과를 냈겠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효율을 앞세우다 보면 인권 침해 논란이 생기고 기존 시스템과 새로운 방식이 충돌하는 상황도 곳곳에서 생긴다. 어렵더라도 컨센서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장병규 위원장은 “논란이 있다는 것은 그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라며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틀로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병규 위원장은 “논란이 있다는 것은 그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라며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틀로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Q.공공부문 전체의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위원장을 맡으면서 맨 처음 강조한 것이 민관 팀플레이다. 민간의 지혜와 공공부문의 효율이 결합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민관 팀플레이가 안되면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동안 큰 틀에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사 결정권자는 변화에 대한 의지가 있고 방향도 맞는 것처럼 보이는 데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향식 의사 결정 방식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부도 자칫하면 이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다. 그러면 일을 제대로 진행해 성과를 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Q.현장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시키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시행된 사례는 찾아보기 드물다. 상향식 의사결정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뭔가 조직 차원의 개선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업에서 일할 때는 원래 정부는 비효율적인 일을 하는 집단이라고만 생각했다. 왜 저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위원장을 맡아 고위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제도의 개선이나 불필요한 규제개혁을 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 공감을 하더라.

      엔젤투자만 해도 소득공제 등 세제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 공감한다. 그런데 막상 나온 정책을 보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이 많다. 소득 공제를 하는 대상을 벤처기업에 한정한다는 식으로 조건이 붙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은 엔젤 투자를 받을 단계를 넘어섰는 데도 말이다.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실무자들은 기존 법체계에 근거해서 상부의 지시를 반영하니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데 현장에서는 효과를 체감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위로 올라온 의견은 그렇지 않다. 실무진들이 현실에서 직접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이 위로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장관이나 차관한테까지 결재를 맡을 필요가 없는 사안들도 많다.

      이런 일은 각 부처의 실무를 맡은 과장들이 소신대로 일을 하게 해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공무원들은 주무부처 과장들이다. 장차관은 깊숙하게 알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모든 사항을 위에서 의사 결정을 하다 보니 방향과 실행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Q.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새로운 기술과 시대에 맞게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체감할 만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규제 개선과 관련한 조직이 많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민간에서 필요한 것은 큰 틀의 동의가 아니라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합의다.

      네거티브 규제 같은 큰 틀도 고쳐야 하지만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테이블이 많이 마련돼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 규제 샌드박스가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같은 정책이 실현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네거티브 규제나 규제 샌드박스 논의는 필요하지만 여러 이슈들이 맞물려 있어 제도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큰 틀의 제도가 개선되기를 기다리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미국과 독일이 한국보다 앞서 있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이제는 중국도 한국을 추월하는 상황이다.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정책의 실현 면에서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위원회가 규제혁신 해커톤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책이라는 것이 중장기적인 과제들도 있지만 단기적으로 치고 나가야 하는 것들도 많다. 작더라도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꿔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꺼번에 바꿀 수 없다면 점진적으로 바꿔가야 한다. 그러려면 함께 같은 테이블에 앉아 민관이 서로 대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 과정이 동작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민간에 있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이 대화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Q.카풀 서비스인 풀러스에 대한 서울시의 고발 조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나.

      “그렇다. 논란이 있다는 것은 그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틀로 통제하려고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글로벌 경제에 편입돼 있다. 여러나라와 FTA를 맺고 있기도 하다. 차량 공유서비스의 경우 이미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기업들이 많이 등장해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장이 아직 작으니까 이들 기업이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등 큰 시장에서의 경쟁이 끝나면, 결국 한국에도 들어올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됐을 때 과연 우리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해당 서비스의 도입에 국민들도 동참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량공유 서비스 시장의 주도권이 그냥 해외 기업에 넘어가는 것이다.“

       

      Q.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에 스마트시티와 헬스케어 두 개의 특위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히 두 분야에 주목한 배경은 무엇인가.

      “스마트시티 특위는 이미 구성돼 공식 활동에 들어갔고 헬스케어 특위도 곧 출범할 예정이다. 특위 분야를 선정하는데는 몇 가지 고려사항이 있다. 먼저 주무 부처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위원회는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민간의 지혜를 정부에 제공하는 조직이지 실행을 담당하는 조직은 아니다. 이 때문에 주무부처가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 일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의지가 있지만 주무 부처의 힘 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것들, 부처 간 조정이 필요한 분야가 대상이다.

      위원회도 지원할 수 있는 자원에 한계가 있다. 미래지향적인 산업이지만 민간의 힘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산업도 지원 대상이다.

      예를 들어 게임산업의 경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돈도 돌고 있지만 헬스케어 분야는 아직 그 정도 수준에 못미치는 실정이다. 처음에는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Q.스마트시티와 헬스케어 분야 외에 주목하는 다른 분야가 있다면.

      “몇 가지 논의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어떤 분야는 어느정도 제도가 만들어져야 활성화가 되는데 자율주행차는 아예 제도 자체가 없다. 효율적인 기술개발을 위해 법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산업용 드론도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개인용 드론은 이미 DJI 등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산업용 드론은 좀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 이제 막 시작되는 시장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육성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Q.게임분야에서 오래 일해 왔는데 우리 게임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게임 산업은 글로벌 시장 자체가 성장하고 여러 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꾸준히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중소 벤처 기업이 더 많아야 하는데, 지금은 큰 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하다. 선도 기업들이 허리와 뿌리를 키우기 위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직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Q.대기업으로의 쏠림현상은 게임 분야뿐만 아니라 ICT 시장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현상이다. 특히 플랫폼 경제에서는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글로벌 기업과의 역차별 이슈까지 나오고 있는 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믿는 편이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시장을 독점 또는 과점하고 있는 기업들이 독과점에 집착하면 결국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과점 업체들은 어떻게 사회와 소통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표적인 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운영체제 시장에서 독과점의 위치에 있는 회사지만 사람들은 예전처럼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난하지 않는다. 빌 게이츠 등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끄는 리더들이 독과점이 심해지면 마이크로소프트조차 해체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회와 소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구글세나 조세 회피처 논란 역시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규제의 장벽이 해체되면서 단기적으로는 겪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등 많은 국가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인 만큼 합리적인 대안과 모범 사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글로벌 기업들은 각국의 현지 사회와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속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은 매출이 발생한 현지 국가에 세금을 내겠다고 밝혔는데, 영리한 접근이라고 본다.“

       

      Q.최근 스타트업들에게 중국보다 인도와 동남아에 주목하라고 조언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 경제는 이미 크게 발전했다. 현지 스타트업 생태계도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 만큼 국내 스타트업들에게 중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다. 이제 동남아와 인도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은 이미 국내 스타트업들이 적극 진출하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는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고, 베트남도 현지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다. 중국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가 넘는 스타트업) 기업이 나올 것이다.

      최근 상황만 고려하면 특히 인도시장에 주목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함께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일하는 시간이 겹쳐야 효율적이다. 인도는 한국과 시차가 2~3시간 정도 밖에 안되는 데다 최근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했다. 10억 이상의 인구가 이제 인터넷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새로운 기업들이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다.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인도 사람들은 외국 기업들의 투자에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배척하기 보다는 서로 윈윈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부분 영어를 쓴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국내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보다 장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Q.마지막으로 위원회의 운영과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해달라.

      “위원회가 발족한지 이제 3개월 밖에 안됐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많지 않더라도 당분간은 긍정적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려면 많은 분들이 변화해야 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국민들이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병규 위원장은]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초대 위원장은 국내 벤처 1세대로 평가받는다.

      KAIST 전산학과 학사·석사, 박사과정을 거쳤고 1996년 인터넷기업 네오위즈를 공동 창업하고 인터넷 자동 접속 프로그램 ‘원클릭’을 개발했다.

      1999년에는 국내 1세대 SNS 채팅 서비스 ‘세이클럽’을 출시했다.

      세이클럽은 이용자 1600만 명을 기록하는 등 히트를 쳤다.

      이후 2005년 네오위즈에서 나와 검색엔진 전문기업 ‘첫눈’을 창업하고, 이듬해 네이버에 350억원에 매각했다.

      2007년에는 게임 개발 업체 블루홀과 벤처캐피털 ‘본엔젤스파트너스’를 각각 창업했다. 블루홀은 2011년 PC온라인게임 ‘테라’를 출시하고그 해 대한민국게임대상을 수상했고 최근에는 ‘배틀그라운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본엔젤스는 120개 이상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해왔다.

      <본 기사는 테크M 제57호(2018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