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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미의 도시&이슈] '방수 도시'는 대홍수를 막아낼 수 있을까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주택가가 지난 9월 허리케인 ‘하비’가 부른 폭우로 잠겨있다. 하비가 상륙하면서 휴스턴 동부 소도시 시더 베이유에선 닷새간 1318㎜의 비가 내리는 등 이 일대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다. 특히 이례적인 강우량을 배수시설이 감당해 내지 못하면서 주택 4만채가 침수되거나 파손됐고 3만2000명이 이재민이 됐다. 휴스턴|신화연합뉴스

미국 뉴욕과 뉴저지의 주민 250만명은 침수지역에 산다. 2m 넘게 물이 차오르는 대홍수는 1800년대엔 500년에 한번 생기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25년 주기로 짧아지면서 도심이 물에 잠기는 일이 잦아졌다. 2030년이면 5년마다 찾아오는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이 같은 경고는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 연구팀은 그 가능성이 뉴욕에서 1만2800㎞ 떨어진 남극 빙하의 상태에 달려있다고 봤다. 빙하의 연속적인 붕괴로 2300년까지 해수면이 계속 올라면 2280년 뉴욕 도심의 수위는 2.25m까지 올라간다. 사실상 거의 모든 지역이 영구적으로 잠기는 셈이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부른 물폭탄이 뉴욕을 강타했을 때 도심의 수위는 2.8m 높아져 182명이 홍수로 목숨을 잃었다.

뉴욕 비영리 도시정책단체 RPA와 록펠러재단이 앞으로 50년간 해수면이 1.8m 상승한다는 가정 하에 브루클린·퀸즈·롱아일랜드·뉴저지의 주택단지를 고지대로 옮긴 주거 밀집지를 제안한 것도 이런 고민에서 나온다. 주거지를 지대가 높은 도로축을 따라 이동시키고, 도로는 고지대 안쪽으로 집중시켜 홍수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지난달 미국 남부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어마’ 같은 강력 폭풍이 ‘뉴노멀’인 시대. 여기에 해수면 상승이 맞물리면서 대홍수는 전 세계 대도시가 느끼는 공포가 됐다. 특히 20세기 자동차와 함께 등장한 포장도로는 빗물이 흘러갈 수 있는 길을 모두 막았다. 내린 비는 모두 하수도로 수렴한다. 하지만 수십년 빈도의 폭우 수준에 맞춰 대심도 터널을 뚫는다고 해도 온난화에 따른 날씨의 변화 속도에 맞춰 처리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영국 환경단체 CDP는 103개 도시가 기후변화, 도시화에 따른 심각한 홍수 위험에 놓여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에 위치한 건물 1층의 출입문이 열려있다. 지대가 낮은 이 지역 건축물의 1층 문은 평시에는 출입구나 창문으로 사용하지만 홍수가 나면 물을 완전히 차단하는 강화문이다. 플리커(@doratagold)

뉴욕의 고지대 구상과 같이 ‘방수 도시’를 만들려는 실험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는 ‘수문’으로 물을 차단하고 있다. 해수면보다 불과 4.5~5m 위에 떠 있는 섬과 같은 이 지역은 매년 홍수가 났다. 땅을 버리는 대신 상업공간이 있는 건물은 1층은 창문과 출입구를 강화문으로 설치해 물이 불어나면 문을 닫아 차단하면서 주민 2000명의 거주하고 기업·국제기구의 본부들이 들어온 도심지가 됐다. 수변 산책로에 위치한 유통·전시시설 역시 홍수가 나도 문만 닫으면 안에선 생활이 가능하다. 제방을 쌓는 것보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영국 런던 템즈강에도 북해에서 들어오는 폭풍우, 해일을 막는 수문이 곳곳에 있는데 최근 기상변화에 따라 방비 시설을 계속 늘리다보니 지금은 강가에서 17㎞ 이상 떨어진 곳까지 설치됐다. 볼티모어에서 건물들의 지반을 인위적으로 높이고, 로스앤젤레스는 해수욕장과 모래사장을 넓혀 물이 들어올 수 있는 구간을 확대하는 한편 부둣가 산책로 둔턱을 15㎝ 이상 높인 것도 적응의 한 방식이다.

시카고에선 도로를 드러내 물길을 파고 있다. 지난 7월 나흘간 200㎜의 비가 내린 시카고는 21세기 말이면 강수량이 이보다 40%가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2006년부터 100개의 ‘녹색골목(Green Alleys)’을 만든 것은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도록 투과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로워웨스트사이드에 3㎞가 넘는 길가에 조성된 ‘지속가능한 가로’는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대기 오염물질을 분해는 광촉매 시멘트로 길을 냈다. 옆에는 생태 수로도 팠다. 1500만 달러를 투입한 이런 작업으로 강우량의 80%가 하수도를 거치지 않고 땅 속이나 미시간호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시카고시의 설명이다.

이 지역에서 조경업체를 운영하는 조경사 제이 워맥은 가디언에 “물을 순환시키는 투과성과 침투성을 만드는 방식은 간단하지만 어렵다”며 “한 세기동안 이런 설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키고 필젠거리의 녹색골목. 콘크리트를 드러낸 보도에 흙과 돌을 메워 빗물이 땅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 장치다. 2006년부터 100개의 녹색골목을 만든 후 빗물의 80%가 하수도를 거치지 않고 땅이나 미시간호로 흘러간 것으로 분석됐다. 시카고대 CSUN 홈페이지

물부족과 홍수를 동시에 겪고 있는 중국은 ‘스펀지 도시’를 실험 중이다. 비만 오면 바다가 된다는 의미인 ‘칸하이(看海) 현상’은 중국의 고질적 문제다. 후난(湖南)성 창더(常德)의 저지대 마을인 양밍에선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강물이 지역을 아예 물길로 바꾸는 도시설계를 준비 중이다. 물이 지나는 길을 피해 공간을 내다보니 주택지와 상업지구가 호수 위 섬처럼 배치되기도 한다. 물에 둘러싸인 8개 구역은 생태도로로 연결한다. 배수, 빗물의 저장과 처리. 도시의 구조 자체가 스펀지처럼 이런 기능을 수행하면 땅이 빗물의 60%를 빨아들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중국 후난성 창더의 저지대 도시 양밍에서 구상중인 스펀지 도시 상상도. 홍수에 잠기는 지역을 아예 물길로 만들어 빗물이 흘러가거나 저장될 수 있도록 했다. 어반랩(urbanlab) 홈페이지

물 위에 떠 있다면 잠길 위험은 없다. 네덜란드의 유명 수상가옥 건축가 쿤 올트후이스는 수 천개의 페트병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컨테이너를 얹었다. 공간확보가 쉽지 않은 수중·수변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위한 교실이나 화장실, 발전소로 쓸 수 있게 고안한 건축물이다. 방글라데시의 다카 수변마을 카레일에선 이 구조물 5개를 띄워 교실과 주방, 태양광 발전소, 화장실이 연결된 단지를 만들었다. 떠다니기 때문에 불법 정착촌 개발이 금지된 경우에도 일시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을 수 있고, 집이 떠내려가는 것을 우려해 투자하지 않는 이들도 설득해 공간을 지을 수 있다.

올트후이스는 “자연과 협력해 물이 원하는 곳으로 흘러가게 하면 홍수에 유연한 도시가 될 수 있다”며 “수륙양용 건축으로 도시의 밀집도를 완화하고 공연장이나 경기장, 보호소 등을 물에 띄워 도시를 보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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