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친구들이여! 잊지 않겠습니다!
-- 세월호 친구들이여! 잊지 않겠습니다! --
오소서 성령님,
우리는 오늘, 우리 사회의 죄로 희생당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함께 모였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먹먹합니다. 얼마의 세월이 흘러야 이 아픔이, 이 죄스러움이, 이 눈물이, 우리의 마음에서 잦아들까요.
“기다리라”는 선장의 선내 방송을 믿고, 두려움에 떨며 구명조끼를 입고 끝까지 기다리던 우리 아이들.... 물속에 가라앉는 그 순간까지 창문 밖을 내다보던 아이들의 절박한 눈빛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려 눈물이 흐릅니다. 세월호참사는 3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에도 여전히 가슴 저리는 슬픔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지 1091일째 되는 날로, 세월호가 드디어 뭍으로 옮겨졌습니다. 진작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늦게야 인양을 했느냐고 우리는 울부짖고 있습니다. 실종된 미수습자들의 유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세월호참사 원인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세월호 희생은 예견된 살인이었습니다.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우리 시대의 죄가 저지른 크나큰 죄악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눈앞의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고통과 희생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양심부재가 그 뿌리에 있었습니다. 선박에 이상이 감지되었을 때조차, 생명은 최우선의 가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구조를 위한 황금시간만 지켰더라도 충분히 지킬 수 있었던 귀한 생명이, 생명보다 돈과 권력의 마력에 중독된 무책임하고, 잔인한 자들의 손에 잔인하게 스러져 갔습니다.
또한 세월호 희생은 잘못된 선택이 맺은 죄의 결과였습니다. 세월호는 중요한 순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희생당한 우리 죄의 희생양입니다. 군중의 선택이 예수가 아닌, 바라빠를 선택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듯이, 우리의 선택이 그러했습니다. 생명과 정의보다 권력과 돈을 중시하며,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은 우리 사회의 선택이 귀중한 생명들을 수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죽음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 죽음으로 우리 사회의 가려지고 묵인된 죄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세월호는 우리 시대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 세월호 3주년 미사 뒤에 침묵 행진하고 있는 유흥식 주교. (사진 출처 = 대전교구 정평위뉴스) |
성주간 월요일인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마리아는 동생 라자로를 살려 주신 예수님의 발을 값비싼 향유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립니다. 세상의 악과 고통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친히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십자가 길을 걸으실 예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겠지요.
저는, 우리 사회와 교회가 보낸 지난 3년의 시간에서 마리아의 눈물을 봅니다. 팽목항에서 장이 끊어지는 슬픔으로 눈물마저 말라 버린 희생자 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정부의 태도는 사고 원인을 투명하게 밝히기보다, 거짓과 변명, 돈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끝까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여 국민들을 분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사죄와 반성이 촛불로 이어져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대한민국을 엄청난 불의와 위기로 몰아가는 악의 실체를 비추었습니다. 증오와 분노, 보복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갈망하는 염원이었고, 보다 나은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세월호는 그렇게 우리 국민의 참회를 이끌어, 국정농단을 심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자리는 세상의 고통과 아픔이 가득한 곳, 악과 죄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짓밟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진정한 구원과 기쁜 소식이 되는 자리, 예수님의 부활선포가 참으로 증거되는 자리는 바로 이곳입니다.
죄가 지배하는 어둠이 빛에 물러나고, 유혹에 흔들리던 세상이 용기를 내어 진실과 정의와 양심을 선택할 때, 더 이상 세월호와 같은 죽음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구조가 굳건해질 때, 거짓 평화와 헛된 정치구호가 더 이상 국민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 때, 그때 세월호의 죽음은 우리 앞에 죄를 이긴 부활사건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우리 죄로 죽어간 귀중한 생명은 우리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더 큰 죄로부터 구원한 분들로 모든 국민과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부활 체험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구원선포는 ‘행동하는 기도’로써 선포됩니다. ‘행동하는 기도’만이, 기도로 우리 영혼을 채우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참회, 변화, 그리고 구원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 죄인을 자녀로 불러 주신 하느님께 행동하는 기도로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아픔과 불의에 눈감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계셨듯이, 우리도 그 길을 걷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고,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을 봅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의 행동과 선택의 힘과 용기를 주기에, 우리의 시작은 타볼 산의 기도를 지향합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함께합니다. 그리고 의연하고 묵묵하게 십자가를 지고, 우리 시대의 험난한 골고타 언덕을 올라갑니다.
성주간을 보내며 특별히 오늘, 세월호 3주기를 기억합니다. 마음과 입에 떠올리기조차 너무나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이 아픔과 통회를 딛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 시대의 골고타 언덕을 걸어갑시다. 정의와 진리를 따르는 우리를 향한 세상의 조롱과 회유를 견디며, 끝까지 십자가를 내려놓지 말고 걸어갑시다.
그리스도인의 행동하는 기도는 분노에 찬 보복과 징벌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동은 가장 근원적 고통인 죽음을 이기신 부활신앙에 입각한 사랑과 용서이며, 보다 나은 세상 건설을 위한 투신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빛나시기를,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기를, 하느님의 뜻이 오늘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는 행동하는 기도입니다.
‘2017년 부활절’은 세월호참사 3주기를 맞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시대의 십자가 사건이 부활체험으로 온전히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사회와 역사에 참회하며 다시는 불법과 불의가 생명과 희망을 앗아가지 않는 나라, 생명이 존중되며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오기를 기도합시다.
최근의 정세 속에 점점 긴박해지는 한반도의 위기가 우리 민족의 지혜로운 결단과 선택으로,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로 변화되는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거짓과 죄를 우리의 기도로 밝히 비추고, 우리의 행동으로 정의와 사랑의 하느님 현존을 증거합시다. 일주일 남은 우리의 부활 준비는 행동하는 기도 가운데 마무리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월호로 희생된 모든 이들과 실종된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도 위로와 힘을 주소서!
우리가 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지니도록 해 주소서!
아멘.
고맙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