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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N 전주교통방송 70회차 무주구천동 33경이야기 - 4. 14일자-- 전북강살리기추진단 김택천 이사장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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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방송 70회차 질문지 - 4. 14일자

질문1

- 우리의 삶에 지니며 흐르는 전북의 강에 대해서

전라북도 강 살리기 추진단 김택천 이사장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

답변1

『오늘은 금강 그 일곱 번째 이야기로 무주 구천동 33경과 백련사 금강계단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 오늘은 금강따라 흐르는 무주 구천동 33경과 백련사 금강계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 위치한 무주 구천동 계곡은 덕유산 국립공원 북쪽 70여리에 걸쳐 흐르는 계곡으로 입구인 제1경 라제통문, 제2경 은구암에서부터

(청금대, 와룡담, 학소대, 일사대, 함벽소, 가의암, 추월담, 만조탄, 파회,

수심대, 세심대, 수경대, 월하탄, 인월담, 사자담, 청류동,

비파담, 다연대, 구월담, 금포탄, 호탄암, 청류계, 안심대,

신양담, 명경담, 구천폭포, 백련담, 연화폭),

제31경 이속대, 백련사, 향적봉입니다.

○ 33경을 모두 소개해 드리려면 오늘도 무주 구천동 33경을 다 이야기 할 수 없어서

오늘은 일사대, 가의암, 만조탄, 파회, 호탄암, 백련사 금강계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질문2

- 무주 구천동 33경 중 유명한 곳이 있나요?

답변2

○ 모두 멋진 곳이고 가볼만한 곳이지만, 제6경 일사대는 구천동 3대 경승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수성대라고 불리기도 하며, 조선 말기 학자 “송병선”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서벽정”이라는 정각을 짓고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고 은둔생활을 하던 거처로서, 영·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며 후진을 양성하던 곳입니다.

○ 이곳을 일사대라 한 것은 선비들이 “송병선”을 두고 “동방에 하나밖에 없는 선비”라는 뜻의 “동방일사”라 부른데서 이름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천 길 낭떠러지의 창암이 마치 배의 돛처럼 우뚝 솟아 있고, 천년송을 머리에 인채 일사대를 굽어보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 제8경 “가의암”은 마치 인공적으로 다듬어 놓은 듯한 흰 반석이 층층을 이루고 그 위를 맑은 물이 차례로 굴러 넘어 내리는 가관은 무어라 형용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옛날 이곳은 큰 암석들이 울퉁불퉁하여 “함벽소”를 거쳐 온 노인들이 앉아 쉴만한 곳이 마땅찮다고 아쉬워했는데, 마침 지나던 고승이 이 노인들의 뜻을 받아, 지금과 같이 평평한 곳을 만들어 주었다고 하여 “가의암”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 제10경 “만조탄”은 울창한 수림과 기암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개울가 곱게 깔린 자갈밭을 적시면서 여울을 이룬다고 합니다. 예부터 낚시터로 이름난 이곳은 석양빛 여울에 낚시를 드리우는 기분이 일품으로 연제 “송병선” 선생께서도 여기서 자주 낚시를 즐겼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 구천동에 구천 승려가 살 때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던 뜨물이 이곳까지 흘러내렸다 하여 “뜨물재”라고도 합니다.

○ 제11경 “파회”는 구천동 3대 명소 중의 하나로 고요한 소에 잠겼던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쏟아지며 부서져 물보라를 일으키다가 기암에 부딪치며 제자리를 맴돌다 기암사이로 흘러들어가는 곳으로 문화적 의미와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곳입니다.

○ 파회는 옥같이 맑은물이 돌아 나가는 곳이라고 하여 “수회(水回)”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주변이 딴 명소보다 넓기도 하고 경치가 매우 다양합니다.

길가의 거암 위에는 늙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크지는 않으나

천년 묵었다고 한다. 나무 이름이 천년송이요, 바위 이름이 천송암입니다.

○ 이 소나무는 신라 시대의 일지대사가 이곳을 탐승한 기념으로 소나무 한가지를 꽂은 것이 흙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 바위에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제23경 호탄암은 구천 계곡에서 유일하게 향적봉을 볼 수 있는 고개 아래 우거진 밀림 사이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시원스럽고 주위에는 산대나무가 뒤덮여져 지금이라도 호랑이가 뛰어나올 것 같은 곳에 큰 바위가 겹쳐 높이 솟아 있습니다.

○ 지금부터 약350년 전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산신을 모시고 덕유산을 지키며 지리산을 왕래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산신의 명으로 특약을 구하러 가던 중 이 바위에 이르자 안개가 자욱하여 앞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다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바위 밑 소에 빠져 100일간을 꼼짝 못하고 울부짖기만 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이 바위를 호탄암이라고 한답니다.

질문3

- 곳곳마다 재미있는 전설도 있고 그 이름 하나도 그냥 불리워진게 아니라 역사와 의미가 있네요.

다음으로 백련사 금강계단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답변3

○ 제32경 백련사에는 “금강계단”이 있습니다. “금강계단”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찰에서 “금강보계(金剛寶戒)”로 일컫는 “불사리(佛舍利)”를 설해 놓고 “수계의식(授戒儀式)”을 행하는 곳으로 백련사 “금강계단”은 대웅전에서 덕유산 정상으로 오르는 뒷산에 위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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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戒壇)의 중앙에 안치된 계탑은 보편적인 “석종형탑(石鐘形塔)”으로 볼 수 있으나, 둘레가 4m나 되는 대형으로 자연석 기단을 대석(臺石)으로 삼고 그 위에 탑신(塔身)을 올려놓았는데, 탑신부(塔身部)와 상륜부(相輪部)를 따로 조형한 것이 아니고 일석(一石)으로 조각되었습니다.

○ 금강계단의 유래를 보면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왕명을 받아 당나라에 들어가 “청량산(淸凉山)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서 법(法)을 받고, 인도에서 전해온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비라금점가사(毘羅金點袈裟)” 등을 가지고 귀국하였다고 합니다.

○ 그 후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는 왕과 함께 양산의 영취산(靈鷲山, 일명 鷲棲山) 아래에 있는 “구룡연(九龍淵)”에서 용을 위한 설법을 마친 다음 연못을 메우고, 그자리에 “통도사(通度寺)”를 세웠는데, 그 때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사리(舍利)를 봉안하기 위한 탑을 세우고 사래(四來)를 계도(啓導)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탑을 일컬어 “금강계단”이라 부릅니다. 이를 계기로 훗날 전국의 “명산 대찰(大刹)”에 이와 같은 계단(戒壇)을 만들어 놓고, 불자들의 “계율의식”을 거행하는 예가 생겼다고 합니다.

○ 오늘로 무주 구천동 33경을 마치고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이야기로 만나뵙겠습니다.

- 방송 인터뷰 : 전라북도 강살리기 추진단 이사장 김택천

- 자료제공 및 질문지 작성 : 전라북도 강살리기 추진단 상임이사 오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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