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의 경제 -- 포콜라레 [천주교회]

2017. 3. 27. 11:49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공유의 경제 발상지 '파벨라스'

사랑이 가져온 결실

브라질의 화벨라스라 불리 우는 빈민촌에서는 포콜라레 운동의 회원들의 도움으로 이곳 주민들이 생활 환경을 개선해 가고 있다.
브라질의 산 파올로, 레씨피, 벨로 오리존테, 리오데 자네이로 및 다른 큰 도시 근방에는 "평화의 주님"이라든지 "말가렛의 정원"이라든지 하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름을 지닌 부락들이 있는데, 사실은 이곳에 악취가 나는 판자집들이 집결해 있으며, 악덕, 빈곤, 실망이 범람하여 사회의 암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와 같은 판자 집, 천막 혹은 불결한 작은 집들이 모인 빈민촌을 정의하여 모캄보스 또는 화벨라스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는 악이 성황 하여 상자 속에 악이 가득 차 있는 것과도 같다. 그러면 이 곳에 살고 있는 주민은 누구인가? 빈민, 극빈자, 가뭄이 심할 때 내륙에서 굶주림을 피해 온 사람들이다. 도시 가장자리에는 쓰레기 소각장이 있다 궁지에 빠진 주민들은 주로 이 쓰레기 소각장 가까이에 야영하면서 쓰레기 틈에서 아직 이용 가능성이 있는 것, 고쳐서 쓸 수 있는 것들을 골라 모은다. 그들은 주어 모은 것, 훔친 것, 구걸한 것,간혹 막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보잘 것 없는 수입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있으며 모든 이의 거부를 받고 있으므로 제대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도시의 주민들은 교외의 이러한 지역을 일종의 병폐와도 같이 여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듯 모른 체하려 한다. 18년 전 포콜라레 운동에 속해 있는 몇 몇 사람들이 이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들 중에는 남자. 여자, 젊은이, 가정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이곳 빈민들은 지극히 무관심하고 적대적이었으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포콜라레 운동의 회원들은 즉시 평범한 사회사업의 방식으로는 일을 계속해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초기에 이 주민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던 포콜라레 운동의 한 회원은 말한다.

"우리는 미개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이러한 환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지 막연한 박애주의와 인본주의 이상 혹은 막연한 종교적 이상만을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복음이 그들의 생황을 뿌리로부터 뒤엎을 수 있도록 호응한 새 사람들, 각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면서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는 새 사람들로써 이곳에 하나의 새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어야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이냐고요?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황열병, 장질부사, 상피병(象皮病), 나병 등 각종 질병에 대항하여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홍수가 날 때에는 독사와 각 가지 해충이 있음을 알면서도 사람들과 물건들을 구제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식과 미신, 악습과 타락, 장신이상 등을 직시하면서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 모든 것을 끝까지 함께 나눔으로써 모든 저항을 녹일 수 있어야 하니까요."

"나는 레시피 근처에 있는 산 아마로의 빈민촌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곳은 그 당시 "지옥의 섬"이라고 불렸으나 현재는 "소화 데레사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나는 이발사가 되어 도시로 나가서 돈벌이를 해보려 했지만 도시 주민들은 모캄보스에 머무는 사람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무도 내게 이발을 하려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나의 판자집 앞에 이발도구를 내 놓고 일을 시작해 보았지만 결국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나도 위대한 일을 해 보겠다는 포부를 지녔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처럼 비참하게 사회의 문제 거리인 쩨닌겜(사회의 배척을 받는 무가치한 사나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나의 판자집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옷을 잘 입고 있었고, 여기 저기를 호기심에 찬 눈으로 살피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동냥까지도 주었습니다. 내가 이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사진을 찍어 갔습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일을 계속하면서 모른 척 하려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강한 저항을 느꼈었습니다. 나는 아무도 나의 비천한 모습을 보지 말아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 이야기는 프란치스코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는 결혼을 하여 네 자녀를 두고 있으며 고통스러운 긴 사연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재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남자인데, 알콜중독, 도박, 질병으로 이성을 잃고 파산지경에 이르러 모든 희망을 잃게 된 마지막 순간, 온 가족과 함께 이 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두 처녀가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사진을 찍지 않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선물 꾸러미를 주지도 않았고 모두와 매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므로 마치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오던 사람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내게도 말을 건네었습니다. 나의 아내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고개를 숙인 채로 일을 계속하면서 아이가 막 병석에서 일어났으나 지금은 외출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나의 아내는 낯선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 우리의 비천한 상태를 보이지 않기 위해 문을 닫아버리곤 했으므로 이번에도 나는 그렇게 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처녀들은 또 다른 이들과 함께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단순하고 자유스럽게 행동했으며 평범하고 안정된 몸가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프란체스꼬의 아내는 그들과 친숙해졌고 그들에 관하여 계속 남편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의심을 품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 것일까? 그리던 어느 날 홍수가 났다. 이 때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프란치스코도 마음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내 눈으로 한 의사가 홍수로부터 나의 가족을 구해 내기 위해 진흙탕 물 속으로 달려오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프란치스코는 차츰 차츰 인간에 대한 신뢰심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안가서 그는 혼인신고를 하고 자녀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원기를 되찾았고 다시 도시로 나가서 일을 시작했으며 이번에는 성공을 하였다. 현재는 아담한 집을 한 채 가지고 있으며 가족들과 함께 새 생활을 시작하려는 큰 포부를 지니고 있다.

그는 "무가치한 사나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는데 이 때 그의 마음은 이미 안정되어 있었고 평화와 낙관에 차 있었다.

그 후 그는 모캄보스에 있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지독한 고독과 천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이 곳 주민들과 접촉하게 되는 동기는 매우 다양하다.

어느 날 저녁. 피라치카바 지역에 폭포수와도 같은 비가 내렸다.

한 부부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다리 밑을 지나다가 몇몇 사람들이 서로 꼭 부둥켜 안은 채 움직이지도 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며칠 전 동북부 지방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서 모두 6명의 식구였다. 오랜 여행을 하고 난 후였으므로 매우 지쳐있었다. 그들은 더 나은 생활을 기대하면서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으나 더 나은 생활은 커녕 보잘 것 없는 판자집 한 채도 구하지 못해 이 다리 밑으로 와서 다리를 지붕 삼아 비를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사정 이야기를 들은 이 부부는 다른 많은 부부들과도 친분을 맺고 있었으므로, 함께 돈을 모아 작은 집 한 채를 세로 얻어서 우선 석 달 간 그곳에서 머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떤 가정에서는 이들을 위해 이부자리를 가져오고, 어떤 집에서는 보름 전에 태어난 아기를 위해 요람을 가져 오고, 또 어떤 이는 의자, 책상 그리고 식기와 의복을 가져다 주었다.

처음 며칠동안은 부인들이 당번을 정하여 번갈아 가며 그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남편의 직장을 구해 주었다. 차츰 형편이 풀리어 갔다. 성탄 저녁에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하였고 온 가족이 함께 축하를 할 수 있었다.

모캄보스의 큰 문제 중 또 하나는 문맹이라 하겠다. 이곳 주민들 중에는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서명이 필요한 경우 십자표를 하는 수도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글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더 천대를 받고있다.

산 파올로 근처의 "말가렛의 정원"이란 곳에 살고 있는 한 젊은 청년은 트럭 운전사가 되고 싶어했다.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어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일은 그의 마음에 퍽 들었다. 그러나 그는 글을 몰랐기 때문에 면허를 받을 수 없었다. 이처럼 글을 모르는 탓으로 적당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맹퇴치를 위한 성인 야간학교를 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강의를 해 주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여러 명 되었다. 도청에 가서 대지사용허가와 작은 학교를 짓기 위한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도청에서는 건축은 허가해 주었으나 대지사용은 허가해 주지 않았고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대지를 구입할 수 있는 자본도 대출해 주지 않았다.

그럴 때 싼타 부인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는 세 자녀의 어머니인데 중병에 걸려 오래 동안 입원했던 일이 있었다. 그가 집을 비우고 있는 동안 이 도시에 있는 어머니들과 처녀들이 번갈아 가며 그의 집을 찾아가서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음식을 준비해 주었으며, 집안을 청소하고 정돈해 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아버지는 직장에 출근할 수 있었다. 학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된 싼타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남편과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부로크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토끼를 치고 있지만 집이 매우 커요. 토끼를 한 편으로 모으고 다른 쪽을 학교로 사용할 수 있겠어요?"

독지가들과 뜻이 있는 이들이 모임을 열고 일을 진행시켰다.

어떤 사람은 "내 아들은 벽돌공이에요. 벽을 뚫고 창문을 낼 수 있을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피루노씨도 노동자인데 그는 문을 넓히겠다고 나섰다. "나는 벽돌이 좀 있는데 이것으로 담을 두를 수 있을 거에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나는 석회를 좀 낼 수 있어요." 라고 했다. 다 떨어진 의자가 선물로 들어오자 어린 아이들이 정성껏 손질을 하고 페인트칠을 하여 쓸만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강의가 시작되었다. 이들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볼 때 눈물겨울 정도였다.

처음 몇 시간 동안은 학생들이 감격할 나머지 손이 떨려 연필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으며 계속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놀라운 진보를 보이고 있다. 얼마나 큰 지능과 직감력과 관심이 그들 안에 잠재해 있는 것인지! 요한씨는 기쁨에 넘쳐 "드디어 나도 내 자녀들이 숙제를 할 때 거들어 줄 수 있게 되었답니다."라고 외쳤다

그런데 낮 시간을 이용해서는 부인네들과 처녀들이 여기서 양재를 배우게 된다. 제일 어린 9살 난 엘프리다가 가장 성적이 좋다.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이미 와이샤쓰, 치마, 바지 등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이 여인네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만들어 낸 상품을 높이 들고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음미하듯 응시하는 것을 볼 때 하나의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말가렛의 정원"에는 또 하나의 학교가 설치되었는데 여기서는 산아제한에 관한 강의가 이루어진다.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도 출산은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식구 하나가 더 는다는 것이 곧 재난이며 악운이다. 할 수만 있으면 피임약을 사다가 복용하지만 그렇지도 못하면 어린아이들을 수효도 헤아리지 않은 채 한 방안에 몰아 재우게 되며 아이들은 병이 들고 고통을 겪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적당한 방법을 써서 낙태를 시키려 하다가 산모는 죽고 아기들은 아무도 돌보아주는 사람 없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수도 있다.

그런데 몇 몇 어머니들이 이곳 부인들과 친하게 되었고 아주 단순한 태도로 산아제한을 위한 자연 주기법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것이 무슨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런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몇 달 전부터 자연 주기법 학교를 열었으며 점점 더 많은 수효의 부인들이 와서 설명을 듣고는 이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만족 할 만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그들에게 남편들도 데리고 오라고 슬며시 말한 결과 의외로 많은 남편들이 부인들의 초대에 응하여 오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그들 자신이 이 학교를 선전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들이 실시하고 있는 매우 인도적인 이 피임방법에 관한 좋은 경험담들을 들려 주고 있다. 이 외에도 수도시설을 갖추기로 하여 극빈자들에게 물질적 원조를 보내기 위해 바자회를 열기도 하는 등 아름다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마리엘레



공유의 경제의 출현

소유의 문화에 바탕을 둔 소비주의 경제와는 달리, 공유의 경제는 주는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려워 보이거나 야심적이고 모험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사랑 속에서, 남에게 내어주는 것에서 그들의 실현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욕구는 그들이 신앙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그들 존재의 가장 깊숙한 마음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경험을 통하여 공유의 경제가 보편적으로 널리 확산되리라는 희망이 세워 집니다.

1991년 5월 브라질에서 끼아라 루빅
 
공유의 경제 출현
1991년 끼아라는 브라질 포콜라레 운동의 소도시인 아라첼리를 방문했습니다. 상파울로 시가지를 가로질러 가면서, 끼아라는 거대한 빈민가로 둘러 쌓여있는 도심의 빽빽한 초 고층 건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근심에 싸였습니다. 그녀는 그때까지 포콜라레 운동에서 실행되어 왔던 것과 같은 재산의 공유가 거대한 빈곤 앞에서는 충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식량과 잠자리와 의료 제공의 긴급함과, 최소한 브라질의 포콜라레 운동 회원들에게 만이라도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끼아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사회정의 교서 '백 주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공유의 경제를 출범시켰습니다. 끼아라는 아라첼리 소도시 부근에 고용과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생산적인 기업체들을 세우자고 브라질의 포콜라레 회원 20만 명에게 제안하였습니다. 끼아라는 이 일을 이 지역의 유능한 회원들에게 맡겼습니다.

끼아라는 이 기업체들의 주주로 선발된 사람들에게 이익의 3분의 1은 기업에 재투자하고 3분의 2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그리고 '주는 문화'를 위해 일할 사람들을 양성할 기관을 위하여 할당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공유의 경제 기업
공유경제 즉 '주는 문화'에 속한 기업가들은 시중의 기업들이 하고 있는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사업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유의 경제의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형태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기업을 이끌어 가는 방식을 통해서, 그들이 주식회사 이든 협동조합이나 다른 형태의 기업이든 간에 기존의 관습적 사업 방법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공유경제 기업들은 법률을 엄격히 준수하고 근로자들의 권리는 물론 소비자, 경쟁산업, 사회, 그리고 환경의 권리를 존중하는 생산활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공유의 경제 기업은 고용주와 피고용자들 사이에 태어난 일치로 인하여 성공적입니다. 이것이 기업 내부와 외부 양측에 매우 긍정적인 상호 인간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상호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기울여지는 모든 노력들은 창의력의 증진과 생산 기법 및 기술혁신 시스템의 개발역량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공유의 경제 기업의 존재와 발전은 그들의 근본 원칙이 사업비용 절감과 경제효율 증진방법이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공유경제는 요 몇 년 사이 경제학자와 여러 분야의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 왔습니다. 유럽, 남미, 호주 등지의 대학들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경험이 진전되는 것을 연구하기 위해 세미나와 학술회의를 개최했습니다. 몇 몇 학자들은 '공유'의 원리가 요즈음 주류를 이루고있는 경제이론의 근본인 개인주의적 패러다임을 뛰어 넘어 주도적 공헌을 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적 패러다임은 사회 정치적 생활에 있어서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공유의 경제는 또한 세계 각지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 졸업논문의 주제로 선택되어지고 있습니다. 1998년 말까지 41편의 공유경제에 대한 논문이 제출되었으며 많은 다른 학생들이 준비 단계에 있습니다.

공유의 경제 기업의 발전
초기에 공유경제의 원리에 따라 그들의 경영방식을 혁신했던 기존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남미와 유럽의 수많은 공유경제 기업들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우리 운동의 소도시에 소속된 공업단지에 위치해 있으나 소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기업들도 공유경제의 이상을 통해 그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998년 말까지 654개의 기업들과 91개의 소기업들이 이 이상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들은 30개국 이상의 나라에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데, 164개 기업은 제조 분야에서, 189개 기업은 산업 분야에서, 그리고 301개 기업은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남미에는 200개 이상의 기업이, 유럽에는 300개 이상의 기업이 있습니다. 이태리에 150개, 독일에 50개의 기업이 있고 동유럽에도 약간의 기업이 있습니다. 북아메리카에도 몇몇의 기업이 있고, 아시아(주로 필리핀), 아프리카, 호주에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연간매출 2천만 불 미만의 중소기업들입니다. 그러나 이태리에서는 3명의 기능공이 일하던 작은 기업이 불과 몇 년 사이에 260명을 고용하는 대규모 기업으로 발전한 예도 있습니다.
유럽의 어떤 지역과 남미에서는 공유경제 기업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판매촉진 출판물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솔링겐 출신의 23개 기업의 사람들이 "협력기금"을 세웠으며, 한 상업은행은 동유럽과, 개발투자가 필요한 세계의 다른 지역의 공유경제 기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시범도시 '아라첼리'
브라질 상파울로 교외에 있는 아라첼리 소도시 가까이에 '스파르타코' 공업단지가 개발되었습니다. 5만 평방미터의 이 단지는 합자회사인 ESPRI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2천명 이상의 주주들이 있는데 대부분 브라질 사람들입니다. 이 회사는 단지를 개발하여 1998년 말까지 12개의 사업체를 입주시켰습니다. 그 중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LA TUNICA ; 의류회사

  • ROTOGINE ; 플라스틱 제품

  • ECOAR ; 병원과 기업용 세제 생산

  • SHALOM ; 회계회사

  •  
  • GRANJA PIU PIU ; 돼지농장

  • ESCOLA AURORA ;유치원과 초등학교

  • BETIO MAQUINAS ; 엔지니어링 회사

  • POLICLINICA AGAPA ; 병원


  • 공유의 경제를 통해 도움 받은 이들의 이야기

    필리핀..........................
    "돼지고기 식품을 팔던 우리 식료품가게는 돼지 질병파동으로 부도가 났습니다. 우리는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 공유의 경제로부터 정기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필요한 식료품은 충당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나보다 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함을 느꼈습니다. 우리 이웃 한 사람이 암에 걸렸는데, 그녀는 매우 고통스러워 했고 또 매우 가난했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끝내 천국으로 떠났을 때 우리는 그의 다섯째 아들을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과거의 우리보다 더 가난해서 그 아이들을 다 키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나는 8살과 10살 된 두 손주가 있는 할머니입니다. 러시아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손주들이 항상 걱정이었습니다. 우리는 굶주렸으므로 작은 아이는 빈혈이었고 큰애는 매우 병약했습니다. 공유의 경제의 도움으로 지금 아이들은 건강은 많이 좋아졌으며 나도 새로운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 드립니다."


    브라질...........................
    "30년 전 나의 부모님은 빈민가에 한 오두막을 짓고 아홉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부모님의 소유가 아니었는데 이는 빈민마을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아주 최근에, 우리는 다른 많은 가족들과 같이 두려워했던 퇴거통지를 받았습니다. 해결책은 역시 다른 가난한 지역이지만 우리 가족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좀더 나은 환경의 한 작은 집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항상 마약과 알콜의 위험이 있는 빈민가의 환경은 나의 형제 자매들이 자라기에 좋은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주택 구입자금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자금을 모았고, 부족했던 1,000 달러를 공유의 경제가 보태줬습니다. 이로서 방과 문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던 어머니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 졌습니다. 공유의 경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족은 가능한 한 빨리 받았던 금액을 갚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도...............................
    "나는 네 아이를 가진 환경 미화원이었습니다. 내가 병이 나서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공유의 경제가 정기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나는 빈민가에 있는 우리 집 밑에 작은 가게를 낼 수 있었고 장사에 필요한 조각얼음을 만들 수 있는 냉장고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배려들이 나보다 더 가난한 이들에게도 나누어져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에게 겨우 알맞은 양식이지만 종종 나는 먹을 것이 없는 이웃에게 나의 양식을 나누어주곤 합니다. 언젠가는 병든 아이를 돈이 없어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이웃에게 그날 번 돈을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회복되었고 나는 다음날 그 돈의 두 배만큼 벌 수 있었습니다."





    공유의 경제 기본 이론

    끼아라 루빅 공유 경제의 이론 정립의 단계를 시작하다.
    공유경제는 공유경제가 권장하는 새로운 사업이면서 경제분야에 있어서 특별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가꾸어지고 논평 되는 새로운 사업의 몇몇 본보기에 제한되어서는 안됩니다. 공유경제는 핵심 기업과 현대 기업이론과 실제에 있어서의 전문지식을 갖춘 인물들이 참여하는, 공유경제의 이론적이며 실질적인 적용을 공들여 하는 필수적인 기술을 지닌 과학적 학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공유경제에 바탕을 둔 경제 사조를 가진 새로운 학파뿐만 아니라 학문적 논문들도 만들어낼 것인데, 그것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낼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들의 사업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 모두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진정한 과학으로 진보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것에 어떤 식으로든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소명으로 이 근본적인 사업계획에 더 많이 관여하도록 길러내야 합니다. (끼아라 루빅, 1998년 5월 7일)

    세미나와 학위 논문들
    지난 몇 년 동안, 공유경제는 경제학자들과 다른 경제원리를 믿는 학파들의 관심을 끌어왔는데, 그들이 그 계획과 기본 원리를 알리고자 하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유럽, 남미와 호주의 대학들에 회의와 세미나를 조직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공유경제'의 양상이, 그것의 부정적인 결과가 사회적 정치적 분야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오늘날 경제학의 개인주의적 제도를 뛰어 넘어 가는데 공헌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공유경제는 또한 그 주제에 관한 논문을 출판했던 세계 여러 지방의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1998년 말까지, 41개의 논문이 제출되었고 많은 논문들이 지금 준비되고 있습니다.

    왜 "공유경제 이론"을 발전시켜야 하는가?
    공유경제 이론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경제학의 영역에 있어서 우리가 읽고, 설명하고 앞일을 예견하는데 필요한 지적 모델들을 변형시키지 않고는 우리의 공유경제 계획에 수반되는 이 사업들의 기본 운영을 이해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은 그 본질에 있어서 순수하게 기술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믿고있는 것처럼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고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추상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공유경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공들여 만든 기존의 모델을 채택해서 우리의 용도에 맞게 적용시키면 될 것입니다. 대신에 모든 경제 원리들은 세계나 인류에 대한 매우 정확한 미래상을 통합시킵니다. 특히 대부분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지배적인 오늘날의 경제이론, 정부의 정책을 이끄는 경제 이론들은 명확한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개인주의적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어떤 것이 선택된 "이유"가 아니라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즉, 그것은 가치와 동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 상호관계와 직원간의 동기유발의 질적 가치에 우선권을 두고 있는 공유경제와 같은 경험은 기존의 경제이론의 범주 밖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문화운동이 나타날 때마다 왜 그것이 역사적으로 새로운 경제원리의 형성을 위해 새로운 범주를 규정해야 할 필요성과 함께 나타나는 가를 설명해 줍니다. 이것은 예를 들면 자유주의 운동, 사회주의 운동, 공산주의 운동, 협동운동, 역사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학교 운동, 심지어는 파시즘의 출현에도 적용됩니다. 이것들은 세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전을 지니고 있던 운동들인데, 그것들로부터 경제적, 사회적 관계에 대한 유사한 비전이 유래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경제이론까지도 나타났어요.

    경제 원리들은 몇 십 년 전까지 대학에서만 연구되었습니다. 개인주의적 사조의 승리와 그 결과로 우세했던 개인주의적 흐름에 수반되어, 마치 그것이 마지막 연결고리가 그 전의 연결 고리들을 통합시켰던 다윈 학파의 이론인 것처럼, 경제학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비롯된 일이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제학자들은 두 가지의 사조만 있다고 단언할 거예요: 경제를 이해하는 학파와 그렇지 못한 부류들.

    반면에, 세상의 모든 비전들은 제 각각 잠재적인 경제이론을 만들어 냅니다. 공유경제 이론은 필연적으로 사업이나 생산의 분야에서 만이 아닌 경제생활의 모든 면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단지 사업가들이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어떤 상품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소비자, 주부, 학생들, 그들의 일생의 저축 등을 어디에 맡겨둘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연금 수혜자들 등 모든 사람이 공유경제를 살도록 초대됩니다.

    이것이, 왜 우리로 하여금 공유경제가, 주는 문화와 상관적인 세계에 대한 비전으로부터 시작하면서(정확히 말하면 삼위일체의 세계, 그것은 모든 사람들과 사람 상호간의 관계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으로 새겨졌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몇몇 근본적인 경제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하도록 우리를 불렀다고 믿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인데, 그곳에서 각 개인의 인격은 남들에게 개방적이며 동시에 남에게 선물이 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방향으로 첫 발을 내 딛고 있으며, 상응한 주제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예를 들면 경제에 있어서의 인간 상호관계의 역할이라든가 신용에 관해서, 또한 행복과 이익에 관한 것과 같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 프로젝트의 영역에 있어서, 우리는 가능한 많은 학자들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공유경제의 바탕에 깔려있는 이론은 그것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의 공개적인 대화를 통한 상관적인 환경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어요. 우리는 그것이 장기간에 이루어질 임무이며 우리의 연구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지를 미리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계획에 착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루이지노 브루니



    공유의 경제 기본 이론

    로마노 프로디 경
    이태리 국무총리, 경제학교수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 공유의 경제는 실로 예언적인 메시지이다.
    그리고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이 운동이 절대적으로 근본적인 기본사항에 뿌리를 두고 위대한 일을 수행하는 영신적인 운동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끼아라 루빅이 말하는 모든 것은 한가지 기본원칙 즉 가장 심오한 자선 그리고 이 자선을 현생 활의 모든 면에 적용시키기 위한 시도에 기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인터뷰에서, 1998 4. 6)


    스테파니 자마니
    이태리 볼로냐 대학 정치경제학교수

    "공유경제의 경험은 순수하게 지적인 면에서 그리고 그 이론의 실용적인 근거에서 공히 도전적이다. 경제적인 경험의 다른 유형과 비교할 때 나는 두 가지 주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이 공유경제의 모델을 자유로이 수용한 사람들은, 부의 생산은 부의 분배와 분리할 수 없다는 개념을 절대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공유경제의 두 번째 특성은 도덕관념이 경제적인 요구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공유경제의 경험은 사업가가 인간의 존엄성, 자율 및 정의 등의 가치에서 창출되는 결과와 무관하게 이 가치를 믿거나, 또는 이와 반대되는 결과에서 나오는 위험성에 대하여 감수한다는 것을 증거 한다. 이 두 이유 때문에 공유경제의 모델은 자라나고 발전 할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나는 단언한다."
    (공유경제 학술회의, 볼로냐 대학, 1998 4. 29)


    마르코 마씨엘
    브라질 부통령

    "끼아라 루빅에 의하여 주창 된 공유의 경제는 세계화의 물결에 의하여 지배되는 세계에서 경제관계에 거대한 양의 인류애를 투여한 경험이다. 이것은 자유경제의 경쟁을 좇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친숙하게 사회적 평등과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계획이다." (회의: "공유의 경제 : 포콜라레 운동의 사회학적 경험', 브라질 국회, 1998 5. 7)


    오스마이오 페레이라
    브라질 연방국회의원

    나는 끼아라 루빅의 계획이 경제적 세계화 추세에 반하여 인간적 일치의 세계화 및 재산의 공유에 대한 절박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고 믿습니다.
    (브라질 국회의사당 회의 1998 5. 7)


    테오돌 폴 피터스 신부
    브라질 페르남부코 가톨릭대학 학장

    "모든 이를 정복하는 사랑에 기초를 두고, 일치를 향한 그녀의 지치지 않는 노력은 이곳 브라질에서 새로운 문화인 '주는 문화'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개념화 하도록 이끌었으며 공유의 경제를 떠오르게 하였다. 끼아라 루빅은 복음이 경제 사회면에 흘러 넘쳐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하였으며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이 공유의 인간적 교향악으로 변하게 하였다." (브라질 레시페, 명예 경제학박사 수여식. 1998 5. 11)


    아담 비에라 교수
    폴란드 루브린대학 사회과학부 학장

    "끼아라 루빅은 일치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가능성을 나타내면서, 코페루니쿠스의 지동설 혁명이 자연과학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영향과 같이, 모든 사회과학에 근거를 제공하면서, 중요한 영신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현상을 제시하고 있다. (Conferral of the honoris causa doctorate in Social Sciences, Lublin, Poland, 19.6.96)


    자코 마코비치
    브라질 산 파올로 주립대학 고문

    "(공유의 경제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줄 때 행복하다." (브라질 산 파올로 대학, 1990 4.30)


    한스 부카드 교수
    콜롬비아 메델린 안티오키아 대학 경영학 교수

    "주는 문화는 단순한 표어가 아니다. 이것은 전세계 수백만이 살고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공유의 경제가 이끄는 모든 계획들은 그 규모가 대소간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U.N.의 환경과 개발에 대한 국제 위원회(1997년 6월)가 제안하는 것에 대한 이행이다. 그들의 목적은 빈곤을 퇴치하고 새로운 생산방법을 이용하며, 사람을 새로운 정신과 문화로 형성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이것은 생활수준의 평등화에 관여한다." (뉴욕, 경제와 일에 대한 국제사무국 연설 1998년 3월)

    마누엘라 실바 교수
    폴투칼 리스본대학 경제 상급위원회 교수

    "한 여성인 끼아라 루빅은 경제결정론의 무거운 커텐을 밀어젖히고 최소화 시킨 사람이며 경제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이는 매우 인간적이며 21세기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제시하는 시의적절한 것이다. 이것은 현시대 경제주류에 의하여 과소평가 되고있는 도덕성, 인류복지, 소외감, 생태학적 균형 및 사회적 조화를 환기 시키는 것이다."


    주는 문화

    우리 모두는 극심한 불평등이 세상을 짓누르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몇몇 국가들은 소비주의를 부추기고 있으며 본질적인 "존재"보다는 오히려 "소유"에 초점을 맞추고 분명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인구가 과밀한 다른 나라들은 극심한 빈곤과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주는 문화"를 전파 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는 문화는 복음에 기초한 문화입니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도 받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 주실 것이다."(루가, 6, 38)라는 복음의 문화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지구의 균형을 회복시킬 수 있는 처방인 것입니다. 만일 모든 이가 복음을 산다면 이 세상에 큰 문제점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주어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현실이 매일의 일상적인 경험입니다.

    끼아라 루빅
    무엇이 '주는 문화'를 일으켰나요"
    1943년, 트렌트에서 포콜라레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하신 복음의 새 계명을 재발견했으므로 즉시 영신적, 물질적 공유가 자유롭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을 바탕으로 하여 재산의 공유는 포콜라레 회원들의 생활방식이 되었습니다.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거대한 중요성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재산의 공유' 그리고 '한 마음 한 영혼',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보물이었던 이 이상은 교회 역사 전반에 걸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울려 퍼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수도원과 수녀원, 그리고 몇몇 평신도 공동체에 관습처럼 남아 있기는 하지만 추진력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트렌트에서 새로 태어난 작은 공동체에서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이 이상이 다시 한번 새롭게 폭발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재발견하기 시작했으며, 성숙되어가고 있는 여러 결실들과 함께 온 인류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끼아라와 그의 첫 동료들은 처음부터 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트렌트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물질의 공유를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었어요."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트렌트 변두리에는 아주 가난한 두 세 군데 지역이 있다, 우리 그곳에 가서 우리가 가진 것을 가져가 모든 것을 그들과 나누자… 그것은 매우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보다는 더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는 그들의 생활수준을 우리 모두와 같은 수준까지 올려놓기를 원했어요"라고 끼아라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주어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라는 복음말씀에 대한 놀라운 경험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쟁기간 중인데도 식량, 의복, 그리고 약품들이 예상치 못할 만큼 풍부하게 도착하곤 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복음을 사는 것'에 모든 개인과 사회문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는 확신이 생겨났습니다.

    주는 문화와 공유의 경제
    공유경제에 참여한 사람들, 즉 공유의 경제 사업체의 경영자와 근로자들은 일반적인 경제학의 이론이나 관행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의 근본원리에 심취한 사람들입니다. 이 '문화'는 '소유의 문화'와 상반되는 '주는 문화'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재화를 기부하는 것은 '존재'의 수준 위에서 '자신을 내어 주는' 한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이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인류학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내어 주는 문화'는 단지, 개인주의에서 유래한 자선사업의 형태나 복지를 분배하는 방식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존재의 본질은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는 모든 형태나 주는 모든 행위가 '주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할 욕심으로 오염된 '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이나 사람들에 대해 지배나 압제까지도 추구합니다.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기에만 '주는 것'입니다.

    주는 행위를 통해서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형태의 주는 행위도 있습니다. 사실상 그것은 이기적 표현이며, 수혜자에게는 모욕이며 멸시입니다. 또한 편의주의에 바탕을 둔 주는 형태도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이고 기회주의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의 이익을 위해서 주는 행위를 이용하는 신진보주의 철학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적'이라 부르는 형태의 '주는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업을 하는 투쟁의 장에서조차도 "주어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라는 복음적인 경험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집니다. 이 상호적인 주는 것과 받는 것은 그들 사이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존경심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되는데, 종종 그 보답이 예기치 않은 이익의 형태로, 새로운 기술의 발견이란 형태로, 혹은 성공적 판매 아이디어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베라 아라우조 (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