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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과 지역혁신

시민, 그리고 마을/지역자치분권운동

by 소나무맨 2017. 2. 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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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과 지역혁신 

 

윤순갑(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방분권이 지방정치의 민주화인가?

  지난 1991년 지방의회가 출범될 당시 많은 사람들은 30년만에 재개되는 지방자치가 필연적으로 수반할 긍정적 측면에 부푼 기대를 감추지 못하였다.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로부터 민주적 정치체제로, 지역간의 불균등한 발전에서 균형된 발전으로, 관료주의의 경직된 행정체제에서 주민의 참여가 보장된 민주적 행정체제로의 전환 등이 지방자치의 실시로 예상되었던 대차대조표의 긍정적 요소로 기재되었던 항목들이었다. 반면에 비판적 측면에서 지방자치의 실시가 가져올 부정적인 요소도 적지 않게 지적되었다. 취약한 지방재정 자립도에서 오는 중앙정부에 대한 종속현상, 지방자치의 타락이 빚게될 한국판「잭슨식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의 팽배, 무분별한 지역개발의 실시로인한 환경문제의 악화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한 한국의 지방자치는 제1기 지방의회의 출범 이후 올해로 1년에 이르렀고, 자치단체의 장을 직선해서 지방정부를 구성한 것도 벌써 제3기로 접어드는 경험을 축적하였다. 그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제도적 수준의 지방자치는 돌이키기 힘든 추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제도적 성숙이 곧바로 지방정치의 민주화로 이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못 회의적이다. 권위주의적 정치체가 민주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파생된 한국의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지방정치체제 자체의 민주와에 있어서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지금까지 주로 효율성의 측면에 집중되어 왔던 한국의 지방자치제에 대한 논의는 지방정치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도 부단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방정치의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지방자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은 “지방자치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학교이며, 민주주의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라는 브라이스(Bryce)의 고전적 주장을 되풀이하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앞으로 출범하게 될 ‘노무현 행정부’의 지방분권 의지는 매우 각별해 보여서 다행이다.

 

  이미 대선(大選) 과정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시민단체(지방분권 국민운동본부, 의장 김형기)와 이례적으로 특별협약을 체결한 바 있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직후 신정부가 추진할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제시한 바 있다. 중앙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야하고 국세의 일정 비율을 지방세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주권을 크게 확대하는 등 획기적인 지방분권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고 절반이 넘는 자치단체들이 지방세 수입만으로는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중앙정치 차원에서의 이러한 인식과 정책의 대전환도 그것의 초점이 주로 지방재정 확충이나 자율권 강화의 측면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지적한 지방정치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인식과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다시 말해서 중앙정치 차원에서 던져진 거대한 구조물의 골격을 지방정치차원에서 준비된 내장재로 마감 처리해야만, 지방분권의 궁극적인 목적인 지역 주민의 편익을 증대함으로써 국가균형발전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2003년 대구·경북지역 자치행정의 정책방향을 거시적으로 검토해보려는 것이 이글의 목적이다.

 

시민의 (지방)정치참여를 대폭적으로 확대해야 

  지난 6·13 지방선거 투표율은 48.8%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선거에서 투표율이 50%를 밑돌게 되면, 민주정치의 근본인 시민참여 정신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겼다고 진단한다. 자율은 항상 책임을 수반할 때만 그 본질적인 장점이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율과 책임이라는 지방분권의 기본원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방분권의 핵심은 어떤 지방공공「서비스」를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 등의 결정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면서, 동시에 그에 따르는 재정부담이 지역주민들의 부담으로 연계되도록 함으로써, 주민들이 그 타당성을 편익에 견주어 스스로 평가하도록 해서 결과적으로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달성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과 책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선거조차 외면하는 시민들에게는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를 운위하는 것은 구두선(口頭禪)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서 중앙정부가 작심하고(?) 배분했든 지방분권론자들이 치열하게 투쟁하여 쟁취했든, 지방정부가 앞으로 갖게 될 막강한 권력과 막대한 재원도 지방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할 지역 주민들에게는 무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저 그것이 중앙이 되었든 지방이 되었든 정치가들과 행정가들의 권한과 몫이 이동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러한 사실의 원천이 (지방)선거를 외면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류(類)의 항변은 그 근거가 조금은 박약하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 또한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우리 정치에서 지방정치는 엄연한 ‘생활정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치에 철저히 식민화(植民化)됨으로써 그 의미가 크게 희석되어 왔으며, 특히 지역주의에 매몰된 중앙정치의 폐해는 정치적 계몽(啓蒙)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지역의 지식인들 마저 정치 자체에 대해서 타성적으로 등을 돌리게 해왔다. 따라서 이들을 포함한 지역주민들에게 지역정치를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율과 책임의 소산이 지역정치가 산출하는 결과를 통해서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을 맛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차기 노무현 행정부와 지방저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방분권의 담론 속에는, 필자의 과문(寡聞)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지역 주민의 정치적 효능감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의 막강한 권한과 재원을 ‘지방정부로 이양’하거나 ‘지방정부가 쟁취’하겠다는 구호는 난무하고 있으나, 이렇게 이양하거나 쟁취된 권한과 재원을 지역 주민들에게 분산시킴으로써 어떻게 지역정치의 민주화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대구·경북지역이 한국정치의 주변적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차제에 중앙정부로부터 쟁취한 권한과 재원을 지역 주민에게 돌려줌으로써 그들을 정치적 효능감의 최종적 수혜자가 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자치행정의 큰 가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와 처방이 생략된 지방분권은 자칫하면 지역적 연고주의와 토호세력의 창궐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방분권이 곧 주민자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방분권은 주민자치가 병행되지 않는 가운데서도 지방분권은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게다가 지방정부가 지난 수 십 년간 중앙정부에서 전개해 온 성장위주의 개발정책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될 때, 아직도 사회적 동원의 측면에서 지역 시민사회에 비해서 월등한 영향력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 토호세력과 거대자본에 대해서 종속적인 지방정부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의 행정감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주민자치와 병행하는 지방분권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원칙은 그것이 지방정치가 되었든 지방행정이 되었든 지방정부의 모든 업무를 궁극적으로 시민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지방분권의 목적이 중앙정부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중앙정부의 기준으로 제공되는 일체의 행정「서비스」를 지방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지방의 기준으로 재구조(restructure)화함으로써 주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증대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러한 목적에 가장 충실하게 봉사하고자하는 당위적 차원에서 시민을 최종적인 행정감시자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방정부의 행정감시자 소임이 부과된 지방의회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시민의 대행자일 따름이다.

 

  지방정부가 왜 시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되는가에 대한 현실적 차원의 요구는 훨씬 더 절박하다. 지난 민선 2기 때만 하더라도, 출범 이후 16개 광역단체장과 232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50명을 상회하는 단체장이 유죄판결을 받아서, 단체장 5명 가운데 1명이 범죄자가 되었다는 행정자치부의 발표는 무엇을 말하는가. 본격적인 지방분권이 시행되기 이전의 상황이 이러할 진데, 신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중앙정부의 기능과 권한이 지방으로 대폭 이양되고 국세의 일정 비율을 지방세로 전환되는 것은 물론 지방정부의 재정자주권이 크게 확대되는 등 획기적인 지방분권이 이루어지게 될 향후의 지방정부가「리바이어던(Leviathan)」화하는 것을 저지할 보루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의식도 중요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도 각별한 노력이 요청된다. 예컨대, 시민「옴부즈맨(Ombudsman)」제라든가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의 도입이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참여민주주의 활성화 방안으로 이미 시민「옴부즈맨」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주민고충처리’와 ‘행정감시’라는 이 제도의 양대 기능 가운데 시민에 의한 행정감시기능을 대폭적으로 강화해서 주민들의 정치참여의 폭을 넓혀가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되지만, 본격적인 지방분권시대를 맞아서 막강해진 지방정부의「리바이어던」화를 저지하려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로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 과정에서 주요 정당의 공약으로 제시되었던 자치행정의 과제들 가운데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의 도입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지방정부의 단체장의 입장에서는 선뜻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단체장을 감시할 수 있는「시스템」의 부재는 그들을 부정부패와 선심성 전시행정, 난개발과 재정낭비 등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성과 양식이 지배하는 정치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대정신이 더 이상 이 문제를 단체장의 의식에만 맡겨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역중심의 혁신「시스템」을 구축해야 

  그것이 지방분권이 되었든 지방자치가 되었든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것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향상과 국가발전을 위한 혁식에 있다. 다시 말해서, 지역 주민의 삶의 향상과 국가발전을 위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이 이루어져야 하고, 지방분권을 통해 각 지역의 지역혁신 시스템이 구축되고 지역간 협력과 경재체제가 형성되면 좀더 효율적인 지역중심의 새로운 국가발전「모델」이며 이 시대의 국가혁신「패러다임(paradigm)」이다. 산업화시대의 국가발전은 총량적 국가경제 성장에 의존해 왔다고 한다면, 지식정보화시대에는 다양한 잠재력과 경쟁력을 지닌 지역발전이 국가발전을 좌우한다. 이를 위해서 지방정부, 지역기업, 지역대학 등을 긴밀한「네트워크」로 연결해서 혁신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기술혁신이 내생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지역혁신「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자치행정의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대구·경북지역은 이러한 지식정보화시대에 지역혁신의 원천이 되는 지식과 정보의「인프라(infra)」를 비교적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지역이다. 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수 십 개의 대학과 연구소가 그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지식정보의「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 이유는 지방정부, 지역기업, 지역대학 등 이 지역의 혁신 주체들이 서로를 백안시하는 산업화시대의 타성에 젖어서 한결같이 중앙만을 쳐다보고 자신들의 결핍을 보완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처럼 왜곡된 지역의 역량을 결집시켜서「네트워크」로 연결시키는 역할은 지방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결론을 대신해서 

  지금까지 지방분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 주민의 편익의 증대를 통해서 국가균형발전을 제고 하는 데 있다는 인식에서, 2003년 대구·경북지역의 정책방향을 자치행정 영역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여기서는 이러한 논의 결과를 요약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로, 지방분권을 통해서 중앙정부로부터 얻게 될 권한들을 어떻게 지역 주민들에게 분산시켜서 지역정치의 민주화로 연결시킬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지방정치가 중앙정치로부터의 식민화를 차단할 수 있으며, 지방정부 또한 지역 토호세력과 거대자본으로부터의 종속성을 탈피하고, 지역 주민들을 명실상부하게 자치의 주역으로 등극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자치행정의 책임성 확보와 관련해서, 시민의 행정감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루어질 획기적인 지방분권에 즈음해서, 현재 수준의 행정감시 장치만으로는 지방정부의「리바이어던」화를 저지하는 것이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처럼 자신을 감시하는「시스템」을 스스로 마련하는 문제는 지방정부의 단체장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체장의 혜안(慧眼)은 적어도 “스스로를 억제하는「시스템」이 부재한 조직은 단명한다”는 조직상의 원리와 이성과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시대정신을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의 삶의 향상과 국가발전을 위해서 지역의 지역혁신 시스템이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분권은 지역혁신과 결합될 때만 대안적 지역발전의 핵심인 ‘내발적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대구·경북지역은 비교적 풍부한 혁신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를 위해서 지방정부, 지역기업, 지역대학 등을 긴밀한「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이러한 혁신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서 이 지역의 기술혁신이 내생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지역혁신「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자치행정의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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