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미래(서유석) 토론자료실
<4.19혁명 재조명>(2010. 4. 15) 한국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미래 - 주민자치운동의 의의를 중심으로 - 서유석(호원대 교수, 철학) 4.19혁명 50돌을 맞았다. 돌이켜 보건대 4.19혁명은 정치권력이 그 정당성의 근거인 인민주권을 유린할 경우 바로 그 인민에 의해 전복되고 만다는 엄정한 교훈을 남긴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4.19혁명의 역사적 경험은 이후 한국 현대사의 저변을 흐르는 맥으로 자리 잡아,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다시 살아난다. 한편 4.19혁명은 정치변혁이 일정한 사회적 조건의 변화를 동반하지 못할 경우 쉽게 좌절된다는 교훈도 남겼다. 1948년 출범한 민주공화국의 정체(政體)와 민주주의 제도는 투쟁을 통해 획득된 것이 아니었다. 식민지 유산을 그대로 안은 채,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만 서구로부터, 또 미군정으로부터 ‘이식’해 온 상태였다. 획득 투쟁의 과정 없이 하루아침에 주어진 보편선거 제도가 왜곡 없이 제대로 작동 될 리 만무했다. 사회경제적 기초도 마련되지 못하였고, 민주주의의 요체인 시민의 참여와 자치능력(시민의식)도 미성숙한 상태였다. 4.19가 자유당과 이승만의 12년 독재를 무너트림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 삶 속에 민주주의를 착근시키지 못하고 뒤이은 5.16쿠데타로 좌절을 겪게 된 배경에는 이런 사회적 조건의 미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한국 사회의 발전과정, 특히 민주주의 발전 과정은 다름 아닌 이런 조건들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4.19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는 굴곡과 부침을 거듭하였다. 박정희,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30년 군사독재 기간 동안 인권과 국민 기본권, 노동자의 권리는 철저히 유린되었다. 이 기간 동안 경제규모는 외형적으로 크게 커졌지만 한편으로 재벌중심의 경제가 우리 사회의 깊은 고질병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독재 기간 저항운동의 주류였던 학생, 지식인 중심의 반독재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뒤이은 6,7,8월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거치면서 반독재 시민저항운동으로 발전하여 결국 군사독재의 종식, 직선제 쟁취의 성과를 낳았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하여 다양한 변혁운동이 등장하고,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이 자리 잡았으며, 동구의 몰락시점인 90년대를 전후해서는 새로운 시민운동(NGO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군사독재 종식 이후 노태우/김영삼 정부에 이어 등장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마치 4.19 이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결실처럼 간주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 요소는 큰 진전을 이루었고 남북관계도 화해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양 정부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중산층 붕괴와 사회적 양극화의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또 사회적 대안으로 내놓은 소위 ‘생산적’(‘능동적’) 복지 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좌초함으로써 나름의 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 획득에 실패하였다. 결국 “잃어버린 10년”을 경제 성장을 통해 회복하겠다고 선언한 보수 세력(한나라당과 이명박)이 대선과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4.19혁명 50돌을 맞는 지금 우리 사회는 또다시 민주주의의 정체와 위기의 국면을 맞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요체인 인권과 국민기본권이 수시로 무시되고 있으며 공안통치와 언론장악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시민활동과 소통마저 제약받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질곡이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비정규직 양산과 중산층 붕괴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 교육/의료/복지와 같은 공공영역의 축소 등 질적 민주주의(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크게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런 상황 타개의 역사적 담지자여야 할 진보개혁 진영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변혁의 청사진과 대안 정책을 내지 못하고 분열만을 일삼고 있다. 국민적 지지 획득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심각한 위기는 개혁의 좌초와 전망 부재의 장기화 속에서 국민의 의식마저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의식이 상식화되었고, 신분상승의 유일한 통로로 교육과 부동산에 대한 왜곡된 관심이 확산되었으며, 보편적 복지를 바라지만 세금인상은 반대하는 무임승차 심리, 계급이해와 반대되는 근시안적 투표행위, 심지어 “박정희 신드롬”과 같은 사회병리 현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현 단계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 운동의 최대 과제는 이런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에 다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와 민주개혁진영이 2010년 6.2 지방자치선거, 그리고 2012년 대선/총선을 계기로 삼아 민주대연합, 진보대연합을 통한 반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그 전망은 불투명하다. 정파 간의 목전 이해관계 갈등 때문에 보수에 맞서는 대연합에로의 실질적 합의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보수국면의 장기화 가능성을 예측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착종된 상황 속에서 오늘 우리는 4.19혁명 50돌을 맞고 있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주객관적 상황에 대해서, 또 당면 과제에 대해서 심각히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에게는 그 동안 수많은 노선의 운동과 정치프로그램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왜 현실화되지 못하였고 또 국민적 지지를 얻어내는 데 실패하였는지 심각히 재고해 보아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고 이명박 정부 3년차를 맞이하기까지 정치권과 운동권의 관심은 어떤 점에서 ‘권력’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서 정권의 향배와 추이가 늘 주요 관심사였던 것이다. 과거 30년 독재 기간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도 어떻게 중앙권력을 민주화 하느냐의 문제에 집중되었다. 여야는 물론이고 민주대연합, 진보대연합을 거론하는 진보정치진영도 결국은 중앙(수도권)의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석수를 확보하느냐 못하느냐, 몇 석이나 차지할 수 있느냐가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정치운동의 속성상 일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국민주권의 위임기구인 국가와 중앙정치, 유권자 대변기구인 정당, 유권자의 대리인(representative)인 국회가 정작 국민으로부터, 시민과 유권자로부터 멀어지는 괴리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인구와 경제의 비정상적 중앙 집중에 더해서 정치마저 중앙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중앙행정의 비판기능을 맡고 있는 시민사회운동도 중앙에 집중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민중/시민에 의한 통치 체제다. 중앙정치와 국가권력이 지역민의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상호소통을 이루지 못 할 경우, 또 대리인이 유권자로 멀어질 경우 민주주의는 발전이 지체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가 한국 민주주의를 지방자치와 연관하여 토론의 장을 마련한 것은 이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지방자치(local self-government, 지역자치)야 말로 앞서 언급한 문제들에 대한 제어장치요, 더 나아가 민주주의 구현의 실질적 장(場)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에서 ‘지방’이란 우리말 표현은 중앙(서울 혹은 수도권)에 대비되는 의미를 가지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오히려 내용적으로 보면 국가보다 작은 단위지역의 자치, 즉 ‘지역자치’를 의미할 것이다. 아무튼 지방자치는 국가 행정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장치로 개발되어 대부분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로도 불리는 지역 자치는 민주주의 개념에 내포된 ‘아래로부터의 정치’의 핵심을 이루므로 결국 지역자치의 성공 여부와 수준은 곧 그 사회 민주주의의 수준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지방자치제는 건국헌법에 규정된 지방자치조항(78장 96조)에 의거하여 일찍이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공포함 함께 시작은 되었으나,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지방의회(地方議會)가 해산되었고 그 후 제3공화국(헌법부칙 7조 3항), 제4공화국(헌법부칙 10조), 제5공화국(헌법 8장)을 거치면서는 명목상의 규정으로만 존재하였다. 제6공화국에 들어와서야 헌법규정(8장)에 따라 새로이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어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조직 및 운영에 관한 사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관계 등이 정해졌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지방의회의원 선거의 동시 실시는 1995년 6월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지방자치단체는 헌법규정(117조 1항)에 따라 ①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처리권, ② 자치입법권, ③ 재산관리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지방의 낮은 재정자립도 때문에 중앙행정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중앙의 국가행정과 지방행정 사이의 행정적 권한 배분 및 중앙의 통제 방식과 관련하여 많은 해결 과제를 안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지방자치는 역사가 짧고 또 중앙정치권에 의해 곳곳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정착되고 있다. ‘위로부터의’ 국가행정 내지 중앙정치와 달리 ‘아래로부터의 정치’에 해당하는 지방자치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단체자치’와 ‘주민자치’가 그것이다. ‘단체자치’란 지방자치단체가 국가로부터 일정 정도 독립하여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방정부의 자율성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분권’의 문제이다. 한편 ‘주민자치’는 지방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측면을 일컫는다. 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고 지역의 의제를 주민들이 직접 제안하고 자치단체장을 소환하는 등의 행위가 그것이다. 관치행정(官治行政)에 대응하는 개념이며,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방자치의 한 축으로서의 ‘주민자치’는 그 틀과 범위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앞서 지적했듯이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틀(대의제)은 끊임없이 민의로부터 멀어지는 관성이 있다. 그런 점은 분권화된 지방행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지방자치 행정 역시 지역주민과의 관계에서 보면 또 다시 지역 주민의 참여와 요구로 멀어지는 ‘위로부터의 정치’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이 ‘기초 자치단체’지 도시의 경우 인구가 5만이 넘으면 “주민에 의한 주민의 직접통치”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실상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요체인 주민자치는 다양한 형태의 운동으로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확대생산 되어야 하고 궁극적 이념인 ‘자치’를 향한 운동(자치운동)으로서 자리매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역 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시민자치운동)이 현 단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는 생각이다. 주민자치운동은 생활 민주주의 운동으로서, 무한히 지연되고 있는 변혁과 변혁 이후의 이상적 삶(연대 사회)을 현 단계에서 예비적으로 구현하는 운동이요, 그 집적을 통해 변혁을 앞당길 수 있는 운동이다. 또한 가장 소중한 시민교육의 장소로서 현 단계 사회발전의 걸림돌인 무임승차 심리와 박정희신드롬 같은 사회병리가 참여와 실천을 통해 극복되는 장(場)으로도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자치를 지향하는 지역사회운동의 활동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역 주민을 대변하는 활동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들을 직접 조직하여 그들이 활동의 주체로 나서도록 하는 주민 주체형 전략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활동은 지역사회에서 행정이나 의회의 각종 비리와 주민들의 이해에 반하는 잘못된 정책 등을 들추어내어 이를 지역사회에 여론화시키고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후보를 선거에 출마시켜 이들을 통해 지역사회의 각종 의사결정을 주민들의 입장에서 수행하려는 방식도 이에 해당한다, 반면 후자의 활동 방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이기우, 「주민자치․주민자치운동의 현황과 과제」, 시민자치정책센터 지음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갈무리, 2002). ① 주민들의 생활권에 피해를 입히는 사안에 대해 주민들이 조직을 구성하여 압력을 행사하고 이를 관철시키는 활동방식(쓰레기 소각장 반대투쟁, 철거반대투쟁 등) ② 주민들에게 일상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주민들을 조직하여 이들이 지역사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토록 하는 방식(시민학교, 녹색가게, 주민도서실, 공부방 등) ③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의 제반 생활환경 등을 개선하는 방식(다양한 마을만들기 등)(이기우, 앞의 글) 이 유형들은 각각 나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①의 경우 주민들을 결집하는 사안이 즉자적이고 한시적이어서 그 사안이 해소되고 나면 주민들의 지속적 참여나 영향력은 사라지기 쉽다. ②의 경우 혜택을 제공하는 쪽과 혜택을 받는 쪽이 명확히 갈라지곤 한다. 따라서 혜택을 만들어 내는 주도적 입장이 주민 스스로에게서 생기지 않으면 주민자치로서 한계를 갖는다. ③은 주민들의 자발성과 자치의 원형에 해당하는 운동이고 주민자치의 실질적 훈련장도 된다. 하지만 이 유형의 운동은 ‘우리’만을 위한 폐쇄적 공동체 운동이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다양한 형태의 주민자치운동이 확산되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긍정적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선 ① 유형의 경우 즉자적이고 한시적인 활동을 넘어서는 사례들이 있다. 예를 들면, 산본 쓰레기소각장 건설반대운동이 <군포환경자치시민회>, <수리산 자연학교>의 건설로 이어져 지속적인 주민자치운동으로 발전한 경우가 그것이다. ② 유형의 경우도 혜택 제공자와 수혜자의 이분법적 구도가 조금씩 없어지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성인 한글학교 졸업생이 교사로 다시 자원봉사 하는 사례, 녹색가게에 처음부터 주민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사례 등이 그것이다. ③의 경우도 소규모 주민공동체가 폐쇄성을 극복하고 지역사회로 개방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이상 사례와 새로운 운동 사례는 이기우의 앞의 글 참조). 마포 성미산으로 대표되는 도시와 농촌의 다양한 공동체 운동, 생협운동, 공동육아운동, 대안학교운동, 친환경급식운동, 지역차원의 대안경제운동 등이 그것이다. 주민들이 실질적인 활동의 주체가 되고 그럼으로써 조직된 주민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물론, ‘우리’만을 위한 공동체 운동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서 ‘나’와 ‘우리’의 이해관계를 공공의 이해와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운동 사례들이다. 이처럼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주민자치운동은 시민자치운동의 성격을 갖게 된다. “자족적이거나 폐쇄적인 모임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구와 지역사회의 욕구를, 지역의 욕구만이 아니라 전체의 욕구를 고려하려고 노력할 때 ‘사회운동’으로서의 주민자치운동 또는 ‘시민운동’이 될 수 있다.”(하승우, 「시민자치운동과 민주주의의 미래」, 앞의 책) 이에 대해서 김기성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주민자치는 지방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주민이 참여하는 것이다. 다만 시민자치라는 개념은 지역문제에 대한 지역주민의 학습과 참가가 결국 국가와 시장의 규율로부터 상대적으로 자립한 시민사회적인 정치를 형성하는 운동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주민의 참가가 그러한 시민으로서의 격을 지향해야 한다는 규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가에 드는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자치를 지향하는 주민은 이미 시민의 격을 획득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본질이 자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적인 문제에 대해 숙고하고 합의를 창출해내고 그러한 합의를 공동의 규범으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다스려갈 때 그러한 주민은 이미 시민의 격을 획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김기성, 「시민자치와 ‘장치적인 것’의 변화: 일본사회의 실험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33집2호 / 앞의 책에서 재인용). 지방자치의 사회적 의미와 관련하여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역공동체 운동, 즉 ‘시민자치운동’이다. 시민자치운동은 그 동안 진행되어 온 주민(자치)운동과 시민운동의 성과가 결합되어 민주주의 발전을 도모하는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하승우). 여기서 시민운동 일반과 시민자치운동이 일정하게 구별되는 이유는 시민자치운동이 말 그대로 ‘자치’를 궁극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의 시민운동(한국의 NGO는 2000년 기준으로 4천여 개다. 지부까지 포함하면 약 2만개가 넘는다)은 ‘중앙권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중앙화되고(centralized) 말았다. 서울중심, 본부중심이 되었고 의제선정과 의사결정 역시 중앙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운동의 방식도 시민의 이름을 내걸고 대신 싸우는 대리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민운동은 일반적으로 시민자치의 상대개념인 대의제적 형식을 띠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양자가 대립된 개념은 아니다. 시민운동도 결국은 시민자치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 내지 시민자치운동이 현 단계 한국사회에서 갖는 구체적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은 민주주의를 일상의 삶 속에서 그리고 나와 이웃의 삶 속에서 스스로 구현하는 운동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대리인에 의한 간접민주주의로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할 수 없다. 간접민주주의가 일정한 역할을 하더라도 온전한 민주주의는 나머지 빈 공백을 메울 때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주민자치운동이다. 큰 틀의 민주적 제도와 형식을 구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주민의 삶의 현장인 주거공동체, 일터, 학교, 그리고 기초단체의 행정집행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어야 하고 삶의 제 분야인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이주노동자, 교육, 먹거리, 교통, 환경 등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주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져야 민주주의는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은 지방자치, 특히 주민자치(시민자치운동)의 수준에 의해 평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로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은 ‘작지만 의미 있는’ 연대적 삶의 구현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대적 삶은 모든 변혁운동이 지향하는 이상적 삶이다. 하지만 변혁의 대기획은 무한히 지연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그람시가 말하는 ‘기동전’(war of maneuver)의 적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일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 사이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필요가 아닌 이윤을 위한 생산, 환경파괴, ‘성장 아니면 죽음’(Grow or Die)의 시장만능주의, 대기업과 초국적 금융자본의 횡포는 무한 질주하고 있고 읍면동의 작은 지역 까지를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고 있다.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은 이런 흐름을 거역하는 반(反)자본의 연대공동체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이윤과 경쟁이 아닌 이웃배려와 협동의 친환경적 연대의 삶을, “작지만 의미 있는” 형태로 구현하는 운동인 것이다. 진보운동도 지역의 정치, 특히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중앙정치판에서의 좌절에 굴하지 않고 지역자치운동으로 파고들어 위상을 굳힌 일본 공산당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은 변혁의 동력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현재와 간은 전 세계적 장기 보수화의 국면에서는 ‘진지전’(war of position)의 전략, 그것도 다각화된 진지전이 필요한 때다. 작은 자치공동체들이 무수히 등장하고 이들의 영향력과 네트워크가 형성될 즈음이면 사회변혁은 보다 쉽게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와 개혁의 큰 청사진이 없고 국민적 동의를 얻어낼 만한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큰 전망을 만들고 권력 쟁취를 위해 기동전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지금은 진지전에 주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현재 우리사회 민주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걸림돌의 하나는 만연된 정치적 무관심, 그리고 무임승차, 계급배반투표, 박정희 신드롬 같은 사회병리 현상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대다수가 보편적 복지구현이라는 진보정당의 강령에 동의하면서도 이를 위한 세금 인상에는 반대하고 세금 감면을 표방한 한나라당에 지지투표를 하고 있다.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이 조작해 낸 강력한 경제지도자라는 박정희 이미지에 청년학생을 포함한 절대다수의 국민이 혹하고 있는 현실이다. 강남교육과 강남부동산의 피해자이면서도 투표 시에는 특권경쟁교육, 부동산투기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보수당에 표를 몰아주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의 심리는 정치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특히 진보와 민주개혁 세력이 희망을 주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또 우리의 교육이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오래 전부터 방기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지역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은 시민 스스로 무임승차심리를 극복하게 하고 박정희 신드롬을 극복하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요 교육의 장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주민자치운동은 중앙의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주민스스로 해결하는 운동이다. 또 주민자치운동은 처음에 주민의 이익 구현 운동으로 시작하더라도 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내부의 소통과 숙고, 실천과 참여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획득하고 나아가 ‘시민’운동으로 발전한다. 한 마디로 시민자치운동이야말로 시민의식 성숙의 장(場)인 것이다. 주민자치, 시민자치운동만으로 사회가 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과 시장의 횡포를 이겨내기 어렵고 ‘one-person revolution'에 그칠 위험도 있다. 주민자치가 곧 민주주의의 모든 것인 양 고집할 경우 사회변혁의 청사진과 전략 마련에도 소홀해질 수 있다. 중요한 자치운동의 흐름에는 늘 국가권력 거부, 정치거부, 탈중앙화라는 아나키즘적 요소가 잠재되어 있고 아나키즘의 한계도 바로 그 점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중앙과 지역의 괴리가 비정상적으로 크다. 또 모든 정치운동이 중앙에 집중되어 온 가운데 지역과 주민자치는 오랜 기간 공백상태로 방치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오히려 아나키즘으로부터 한 수 배워야 할 때인 것 같다. 지방자치, 특히 지역공동체의 자치운동이 시민자치운동으로 그리고 공동체들의 연대운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 프로그램은 지금도 유효할 뿐 아니라 더욱 절실해진 당면 과제다. 당시 그 운동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위로부터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중앙정치의 여야 세력구도가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되는 순간 실질적 진척이 어려워졌다. 지방자치의 한 축인 지방 ‘분권’은 주민 ‘자치’ 역량이 강화될 때에만 실질적으로 가능해 진다. 자치단체장이 선거 때만 제외하면 중앙정치의 눈치를 보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방자치의 목표인 진정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도 지방자치에서 ‘주민자치’의 역량이 강화가 절실하다. 그 동안 중앙정치권의 관심 밖이었던 지역의 교육감 선거가 새롭게 운동의 동력을 얻어가고 있다. 선거 때만 주민에게 절하는 지역 교육행정의 수장은 교육 자치를 이룰 수 없다.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 사례에서도 보듯이 시민주권이 작동되고 시민자치운동체들이 교육운동의 주체로 나설 때에만 비로소 교육자치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4 ·19혁명에서 촉구되고 추구된 민주이념과 사회정의의 실현은 한국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다. 그리고 현 단계 한국사회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통로는 지방자치의 활성화, 특히 주민자치운동에 기초한 지방자치의 활성화에 있을 것이다. 한 시민단체의 타이틀이 오늘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잘 대변하고 있다. 참여자치시민연대 운동의 확산만이 대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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