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6. 09:50ㆍ숲에 관하여/숲, 평화, 생명, 종교
촛불 앞에서
고은
우리는 오늘 뭔가를 놓쳐버리고 있지 않은가
꼭 찾아야 할 것을
엉겁결에 열차는 떠나버리고
꼭 이루어야 할 것을
저 하늘 높이 휘날릴 깃발
결코 헛될 수 없게
꼭 이루어
내일의 푸른 들녘 가득히 피어날 꽃을 앞두고
우리는 오늘 뭔가를 몽땅 놓쳐버리고있지 않은가
밤마다 여기저기 모여
자꾸 주사위만 던지면서
꼭 만나야 할 것을
그냥 보내고 말지 않았던가
차가운 밤거리 지나가던
지난날 통금시대 안마장이 소경의 피리소리
그것마저 보내고 난 숨막히는 정적
우리는 한때 거기에 활을 쏜 적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 오래 외치던 소리들도 사라지고
바람만 떼굴떼굴 구을러와
뼈라조각 비닐조각 신문지조각
이것이 자유였던가
우리는 오늘 뭔가를 놓쳐버리고 있지 않은가
역사라는 말 또는 역사의 마지막이라는 말
그렇게도 많이 썼건만
언제나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할 일을 다했던가
뼈아픈 먼 산맥들이여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황야 그것을 위해 싸웠던 세월
그것들을 위해 더이상 무엇이었던가
한 자루 촛불 앞에서
우리는 결코 희한에 잠기지도 않거니와
우리는 결코 기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는 오늘과 오늘 이전
그 누누한 시간 뭔가를 놓쳐버리고 있지 않은가
촛농이 흘러내리자
한층 더 밝아진 촛불 앞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고은(高銀, 1933 ~ )
생애 | 1933년 8월 1일 ~ |
출생 | 전라북도 군산 |
분야 | 문학 작가 |
시인.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시"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 의식을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피안감성(1960)", "해변의 운문집(1964)", "조국의 별(1984)", "만인보(1989)" 등이 있다.
작품
이 시는 고은의 연작 시집 “만인보(萬人譜)”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인이 실제로 만났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머슴 대길이는 화자가 어린 시절 만났던 인물로, 비록 신분은 머슴이었지만 화자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인물로 그려져 있다.
대길이는 머슴으로 소외받고 천대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부지런한 생활 태도를 지녔으며, 생각이 깊고 진지한 인물이었다. 또한 화자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었고 ‘함께 사는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몸소 가르쳐 준 인생의 큰 스승이자 선각자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시인은 가난하지만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했던 ‘대길이’를 통해 민중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대길이’라는 인물을 통해 민중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미래엔, 신사고
이 시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고단한 일상을 평이한 진술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드러내고, 그들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정서를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개들이 짖어 대는 깊은 밤에 먼 곳으로부터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고단함과 배고픔을 이기며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정겨운 대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화자는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고단한 일상의 구체적 모습을 회상하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한편 시의 후반부에서 화자는 그들의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고단한 삶을 함께 이겨 내는 공동체적 삶의 자세를 긍정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깊어 가는 밤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창비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의 힘겨운 시기를 살았던 ‘아버지’를 등장시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아버지는 일제 시대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소금을 팔았던 ‘소금 장수’였다. 화자는 아버지의 무덤에 성묘를 가서 통일되지 않은 조국의 현실을 전하며, 동서남북을 구분하지 않고 한 민족으로 서로의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살던 그 시절의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에서 아버지가 팔았던 ‘하얀 소금’은 단순히 아버지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라는 고통의 시대에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정신적 가치를 상징한다.
*수록교과서 : (문학) 상문
이 시는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이 타인과 관계 맺음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보편적 존재라는 깨달음을 보여 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이 생각했거나 생각하고 있거나 생각하려는 것이라는 인식은 내가 남과 상호 교섭하며 형성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나’가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 즉, ‘나’는 다른 사람과 교섭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시인은 같은 논리로 다른 사람의 내면에서도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보편적인 존재로서 상호 소통하고 이해하는 공동체적 문화 형성의 가능성을 노래하고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지학
이 시는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극도로 압축된 형식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1행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표현하였고, 2~3행에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삶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표현하였다. 즉 시상이 전개되면서 아름다움의 대상이 개인에서 공동체로 확대되어 시적 인식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4행에서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솜구름 널린 하늘’은 화자의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풍경으로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에 대응되는 자연물이다. 이 시는 이러한 소박한 비유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두산
이 시는 '눈 덮인 길'을 통해, 방황과 고통의 삶을 살아왔던 시적 화자의 내면 의식이 무념무상과 평화로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화자가 '눈길'을 바라보며 시작된다. 이때 '눈'은 화자가 걸어 온 길을 모두 덮어 버린다. 이러한 인식은 곧 화자가 살아온 번민과 고통, 방황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안정과 평화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화자는 처음 경험해 보는 새로운 정신적 경지에 대해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끼게된다.
한편 시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정신적 경지를 바탕으로 기존에 인식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대지의 고백'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고요와 평화의 경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 세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화자가 도달한 평화로움과 무념무상의 상태를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어둠'이란 절망의 세계가 아니라 지나온 삶 속에서 경험해 온 삶의 애증과 욕망, 슬픔, 고통 등이 모두 사라진 무념무상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다.
이 시는 1970년대 독재 정권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하고 비민주적인 현실에 대해 격렬하고 헌신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는 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 작품이다.
이와 같은 결연한 의지는 1연에서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와 같은 자기희생의 강력한 표현으로 시작하여 시의 전반을 지배한다.
특히 2연에서는 이렇게 부조리한 사회에서 개인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추구하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우리 현실에 당면한 궁극의 목표를 위해 과감한 자기희생을 강조한다. 아울러 2연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과 세속적 욕망 속에 안주하려는 소시민들을 각성시키는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그리고 3연에서는 '화살'이 되어 무너뜨려야 할 비민주적인 사회와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의미하는 '과녁'을 제시하면서 격렬하고 자기희생적인 투쟁을 지속적으로 촉구한다.
그리고 마지막 4연과 5연에서는 단순하고 간결한 영탄적 표현을 통해 결연한 의지와 투쟁의 당위를 언급하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 주고 있는 명상시이다.
이 시는 작자가 신동문 시인의 고향인 문의 마을에 가서 그의 모친상을 주관하면서 느낀 깨달음을 담고 있다.
시인의 개인 경험에 바탕으로 둔 이 작품에서 공간적 배경인 ‘문의 마을’은 죽음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시적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1연에서 죽음은 길이 적막하기를 바라고,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2연에가면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또한 죽음이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즉, 1연과 2연은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대응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1연의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 거기까지 닿은 길이 / 몇 갈래의 길과 /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이라는 시구는 2연의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 한 죽음을 받는 것을.’이라는 시구와 대응하는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는 시구에서는 기묘하게도 죽음과 삶의 거리감과 일치감을 함께 읽을 수 있다. 결국 죽음과 삶의 길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자가 아무리 돌을 던져 죽음을 쫓고자 하여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일반적인 고은의 시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는 독특한 작품이다. 주로 민주화 운동과 통일 문제, 인간의 근본적인 본질에 대해 질문해 온 시인이 매우 일상적이고 정서적인 시를 쓴 것은 의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의 본질은 서정성과 운율이며 그를 잘 알고 있는 시인은 이에 충실하여 쉽고도 공감적인 서정시를 썼다.
이 시는 총 3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연의 구성이 모두 같고 일부분의 시어들에만 변화를 주어 반복에 의한 운율을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했다. 또한 '외로운', '헤매인 마음' 등의 직접적인 정서 표현과 낙엽이 쌓이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일련의 변화를 통해서 가을날의 쓸쓸함과 애수를 잘 드러내고 있다. 가을날 여인이 느끼는 쓸쓸한 감정들에 공감하고 가을날의 정취를 한껏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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