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해외직접투자가 정체되고 있다. 선진국으로 향하는 투자가 감소한 가운데 최근 중국과 원자재 수출국으로 향하는 투자도 부진하다. 과거 몰려드는 선진국 자본을 선별해서 받을 수 있었던 신흥국들은 이제 투자 유치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지역은 포스트 차이나다.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은 적극적인 규제 철폐로 중국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자국으로 돌리려는 정책을 시도 중이다. 또한 선진국은 해외로 향하던 투자를 자국으로 돌리려는 리쇼어링에 힘쓰고 있다. 2010년 미국이 과감한 정책에 나서면서 주목 받기 시작한 리쇼어링은 일부 성과가 가시화됨에 따라 최근 일본 등 여타 선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세금, 금리 등 각종 사업비 부담을 줄여주는 전방위적인 경쟁도 확산되고 있다. 세계 평균 법인세는 거의 역대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는 국가도 등장하고 있다.
해외 자금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는 각국의 노력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유입되는 투자보다 해외로 나가는 투자가 훨씬 크다. 해외생산 비중이 높아지는 가운데 해외 생산이 국내 고용이나 수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다. 더욱이 우리나라 규제 장벽은 전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어서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의 사례에서와 같이 고부가가치 부문에서의 해외직접투자 유치는 저성장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규제개혁, 생산여건 개선 등을 통해 해외직접투자 유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 목 차 >
1. 치열해지는 전세계 투자 유치 경쟁
2. 유입보다 유출 큰 우리나라 해외직접투자
3. 맺음말
1. 치열해지는 전세계 투자 유치 경쟁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침체로 각국의 투자 여력이 약해진 가운데 해외로 향하는 직접투자는 더욱 크게 위축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중국으로의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전세계 해외직접투자가 거의 2조 달러까지 확대되었으나 금융위기 이후에는 1조 3천억 달러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그림 1> 참조). 지난해 직접투자가 다소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지만 이는 미국기준금리 인상 이전에 M&A를 마무리하려는 기업들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었고 생산과 고용 파급력이 큰 그린필드 투자는 정체되었다(<그림 2> 참조). 해외직접투자는 크게 M&A 투자와 그린필드 투자로 나뉘는데 그린필드 투자는 대상국의 용지를 직접 매입해 공장이나 사업장을 짓는 방식으로 기존의 현지 회사를 인수 합병하는 M&A에 비해 현지 생산과 고용을 확대시키는 효과가 크다.
신흥국으로의 투자 유입 부진
특히 선진국으로 유입되는 투자가 감소했다. 2011~2015년 선진국으로 유입되는 투자금은 연평균 7천억 달러로 2007년 1조 3천억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그림 3> 참조). 2000년대 중반에는 전세계 해외직접투자의 60% 이상이 선진국으로 유입되었으나 그 비중은 점차 줄어 최근 50% 수준으로 하락했다. 선진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투자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낮아진다는 점이 직접투자 감소의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중반 연평균 3% 가까이 성장해오던 선진국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부채 확대를 통한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1%대의 저조한 성장에 머무르고 있다.
개도국으로의 투자도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었다. 2000년대 중반 연평균 26% 이상 증가했던 개도국으로의 투자는 위기 이후 3%대 증가에 그치고 있다. 특히 중국으로의 투자가 부진하다(<그림 4> 참조). 2000년대 중반 고도성장기에 연평균 10%씩 확대된 중국으로의 투자는 2%대 증가에 그치고 있다. 중국경제가 최근 감속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투자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이 과거에 비해 낮아지고 있는 데다 생산지로서의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중국의 최저 임금은 2000년대 중반 연평균 20% 이상 증가했으며 최근 5년간 두 배로 인상되었다. 저렴한 인건비를 위해 중국 진출을 결정하는 기업은 근래 들어 찾아보기 쉽지 않다.
직접투자 유입이 가장 부진한 지역은 자원 수출국가이다. 중남미지역으로의 투자는 2014년 대비 2015년에 10% 이상 감소했으며 특히 브라질로의 투자가 20% 이상 줄어들었다. 원유수출국인 러시아로의 투자는 반토막으로 줄었다. 아프리카 역시 직접투자유입이 30% 이상 감소했다. 광물가격 하락으로 남아공으로의 투자가 70% 이상 급감했으며 나이지리아가 원유수출 부진으로 직접투자 유입이 27% 감소했다. 원자재 가격이 장기적으로도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면서 앞으로도 이들 지역으로의 투자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중반 고도성장기가 선진국의 부채 확대를 통한 수요 과잉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생산 능력이 과도해져 투자의 필요성이 줄어든 시기이다. 성장 방식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왔던 신흥국에 투자할 필요성이 낮아지고 있다. 최근 신흥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내수시장 확대를 기대하고 진출하는 외국인 투자도 둔화되는 추세다. 과거 몰려드는 선진국 자본을 선별해서 받을 수 있었던 신흥국들은 이제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포스트 차이나 국가들, 투자유치에 적극적
최근 신흥국 중 직접투자 유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가는 소위 포스트 차이나 유망주들이다. 생산기지로서 중국의 매력도가 저하됨에 따라 중국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자국으로 돌리려는 신흥국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포스트 차이나로 거론되는 국가들은 주로 거대인구, 젊은 인구구조, 낮은 임금 수준을 갖춘 지역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대규모 내수시장과 동시에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대표적인 포스트 차이나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인도는 12억의 인구대국이고 인구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이다. 베트남 역시 인구가 9000만을 넘어서고 총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70% 이상이다. 인도네시아는 2억 5천만이 넘는 인구대국이며 전체인구의 60%가 30대 이하일 정도로 인구가 젊다.
이들 국가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 해외자본 유치에 주력하기보다 오히려 해외자본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인도는 과거 영국 식민지 경험에서 시작된 반외국기업 정서가 남아있어 월마트, 까르푸 등 세계적인 유통업체 개방이 여러 차례 미루어지기도 했으며 해외 기업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보다 높은 40%대의 법인세를 적용하였다. 베트남 역시 2006년까지 외국인과 내국인투자법이 각각 따로 있어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투자자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인도네시아도 광물 개발 사업에 대한 소유는 인도네시아 기업에게만 제공하는 등 자국 자원을 보호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가 급감하고 세계 경제 부진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해지면서 해외투자의 중요성이 확대되었다. 해외자본 유입을 통한 중국의 성공 사례도 자극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감속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인건비 상승으로 중국을 대체할만한 투자지역을 찾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늘면서 포스트 차이나 국가는 해외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2012년 이후 이 지역으로의 투자 유입은 중국보다 빠르게 확대되어 갔다(<그림 5> 참조). 브라질, 러시아 등 대부분 신흥국으로 유입되었던 투자자금이 감소추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차이나로의 투자는 급증했다.
정치적 여건 변화 역시 해외투자 유입을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2014년 이후 개혁 성향의 지도자가 당선되면서 개혁에 탄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2014년 인도는 모디 총리 당선, 인도네시아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 당선으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베트남도 2014년부터 대대적인 규제 철폐에 나섰는데 이는 90년대 민간기업 활동이 허용된 이후 가장 폭넓은 규제완화로 평가되고 있다.
속도 붙은 규제 철폐
포스트 차이나 국가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규제 철폐다. 그동안 자국의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인에게는 허용하지 않던 분야의 외국인 투자를 최근 과감하게 허용하기 시작했다. 인도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철도 등 인프라 분야뿐만 아니라 보험, 유통 등 서비스업에 대해서도 외국인 투자지분 한도를 확대해 2015년 외국인 투자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베트남 역시 민간자본 투자가 금지된 업종이 51개에 이를 정도로 많았지만 최근 6개로 줄였다. 인도네시아는 유료 도로와 영화 제작 등 35개 사업 분야에 대해 100% 외국 자본 유입을 허용하고 헬스케어와 통신 등 12개 분야에 대해서도 외자 유입을 허가할 예정이다.
투자 절차 역시 간소화되고 있다. 인도는 창업과 폐업 신고에 수년이 걸리던 절차를 간소화했다. 올해 들어 ‘스타트업 인디아’ 정책을 시행하면서 스타트업 창업 등록 절차를 하루 만에 마칠 수 있도록 했다. 베트남도 사업자 등록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 5~10일에서 3일로 줄였다.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BKPM)은 투자 허가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단일창구 통합서비스를 도입했다.
법인세 인하에도 경쟁적으로 나섰다. 인도는 현재 34.6% 인 법인세를 4년내 25%로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베트남은 22%인 법인세가 2016년부터는 20%로 인하된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25%인 법인세를 18%로 낮추는 방안이 논의중이다. 우리나라 법인세율이 24.2% 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외국인 투자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 3월 초 양회에서는 외자기업의 설립을 간소화하고 서비스업과 일반 제조업 개방 분야를 확대하는 정책을 선포한 바 있다.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업 육성을 위해 외국 자본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상해에 설립된 자유무역시험구 역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급격한 외자유출로 경고등이 켜지자 외국자본에 국유기업의 인수합병까지도 허용하기로 하였다.
선진국의 리쇼어링 확산
반면 선진국들은 해외로 향하는 자국 기업의 발걸음을 되돌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위기 이후 경제침체를 극복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해외 개도국으로 빠져나가던 제조업 생산을 다시 국내로 돌아오게 하려는 리쇼어링(re-shoring)을 강조한 바 있다. 독일에서 시작된 리쇼어링은 미국에서 일부 성과를 거두고 최근에는 여타 선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독일은 이미 2006년 제조업 회귀 정책에 무게를 두고 핵심 부품 생산이나 지적 재산권 등 중요한 공정들을 자국에 머물게 하려는 정책이 지속되었다. 기업 유턴을 통해 자국 내 투자와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에서 기술력을 축적하는 등 리쇼어링의 이점에 주목해온 것으로 보인다. 한때 중국으로의 대규모 기업 이탈로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되었던 대만도 일찍이 리쇼어링 정책을 시행하였다. 대만 정책 당국은 2006년부터 본국 회귀 기업에 임대료를 보조하고 생산기지 이전에 따른 행정 경비 전액을 정부에서 부담하며 세제혜택을 제공해왔다. 그 결과 본국으로 회귀하는 기업들이 늘어나 리쇼어링 기업들의 대만 내 투자는 6년간 4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세계적으로 기업들의 본국회귀 흐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미국이 리쇼어링 정책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미국은 독일보다 리쇼어링 정책을 늦게 시작했으나 2010년부터 ‘리메이킹 아메리카’라는 슬로건 하에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에 과감한 특혜를 제시했다. 공장 이전 비용의 20%를 보조하고, 설비 투자 비용에 대한 조세 감면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으며 유턴 기업에 대해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했다.
이와 같은 노력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간 본국으로 회귀한 기업은 GM, 보잉을 비롯해 약 7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리쇼어링으로 일자리 역시 증가했다. 2004년 본국으로 돌아오는 미국 기업과 미국에 유입된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새롭게 생긴 일자리는 만 2천개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6만개로 다섯 배 증가했다.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조사에 따르면 신흥국의 임금 상승 등의 이유로 본국 회귀를 고려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 17% 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2013년 13%보다 소폭 증가한 수치다.
리쇼어링 흐름은 이제 다른 선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제조업 부흥이라는 기치 아래 도쿄와 오사카 등 국가전략특구를 중심으로 법인세 감면과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강화했다. 적극적인 정책과 엔저 효과로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기업들은 증가 추세에 있다. 도요타, 닛산 등 자동차 업체의 리쇼어링이 먼저 시작되었다. 닛산은 2014년 일본내에서 88만대 가량의 자동차를 생산했으며 2017년까지 일본 내 생산을 100만대 늘리기로 했다. 최근에는 캐논이 2018년까지 일본에서의 생산비중을 43%에서 60%로 확대하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도 패션, 고급요트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리쇼어링을 단행하는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 신흥국 임금 상승이 가속화되고 선진국이 장기 침체로 자국 내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향후에도 기업들의 유턴 흐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 경쟁 치열
전세계적으로 투자 유치를 위해 세금, 토지 등 모든 측면에서 비용을 낮추기 위한 전방위적인 경쟁도 가속화되고 있다. 법인세의 경우 세계적인 인하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2006년 27.5% 수준이었던 세계 평균이 2015년 23.9%까지 하락하였다(<그림 6> 참조). 110개 국가 중 약 60개의 국가에서 지난 10년간 법인세를 인하하였으며 40개국은 동결한 것으로 집계된다. 멕시코를 비롯한 단 열 개 국가에서만 법인세를 인상하였다.
영국, 아일랜드 등 지역에서 최근 해외투자 유입이 빠르게 늘어난 원인으로 낮은 법인세가 지적된다. 금융 산업 비중이 높았던 영국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지면서 정책 당국은 당시 30% 였던 법인세를 매년 2%p 가량 단계적으로 인하해 현재 20%에 도달했다. 그 결과 몬산토, 코카콜라 엔터프라이즈 등 미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본사를 영국으로 이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아일랜드는 현재 12.5%로 OECD 최저 수준의 법인세를 유지하고 있다. 구글이 유럽 본사를 아일랜드에 둔 것을 필두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기업들이 잇달아 아일랜드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낮은 법인세로 글로벌 기업들의 조세 피난처 역할을 한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으나 다국적 기업들의 유럽 본부를 유치함으로써 아일랜드의 투자와 고용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경쟁은 추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까지 법인세 인하 계획을 밝힌 국가는 일본, 영국 등 10개 국에 이른다(<표 1> 참조). 더욱이 법인세 인하가 특정산업 육성을 위해 일종의 산업 정책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아일랜드는 자국에서 연구·개발 결과로 특허와 소프트웨어 등 지적재산권 수입이 발생하면 세율을 6.25%로 낮춰주는 정책을 올해 도입할 예정이다. 싱가포르는 바이오 산업 경쟁력을 유치를 위해 첨단 의학 산업에 대해서는 15년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경쟁적인 통화 완화 정책도 투자 유치를 위한 경쟁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금리를 낮춤으로서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고 자국 투자 확대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금리 인하는 세계적인 추세다. 지난해 대비 올해 1분기 기준금리가 낮아진 국가는 전체 집계 가능한 61개 국 중 1/3에 해당한다. 일본, 유럽 등 일부 지역에서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기도 했다.
2. 유입보다 유출 큰 우리나라 해외직접투자
자국으로 투자금을 끌어들이려는 경쟁이 전세계적으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반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해외에서 직접투자를 위해 유입되는 자금보다 유출이 훨씬 크다. 우리 주력산업들의 해외 생산 비중이 높아지고 해외 자원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해외로 향하는 직접투자 금액은 지난 10년간 네 배로 확대되었다. 반면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직접투자는 1.6배 증가에 그쳐 우리나라는 해외투자 순유입국에서 순유출국이 되었다(<그림 7> 참조).
선진국이 개도국의 저렴한 노동력이나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인 직접투자의 패턴이기 때문에 개도국은 해외투자에 대해 순유입국, 선진국은 순유출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경제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해외투자 순유입국에서 순유출국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다. 해외직접투자로 우리나라에서 유출되는 자금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18% 이상 증가했으며 이는 선진국 평균 10%에 비해서 빠른 속도다. 직접투자가 늘면서 우리업체들의 해외생산 비중은 빠르게 증가했다. 일본은 해외생산 비중이 10%p 정도 높아지는데 10년 이상 소요되었으나 우리나라는 2006년 이후 6년만에 10%p가 증가했다. 우리나라 업체들의 휴대폰, TV 등 전자제품의 해외생산 비중은 80%에 육박하고 자동차는 절반 이상이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수출 단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글로벌 분업구조가 확산되면서 우리업체들의 해외 생산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더욱이 우리의 주력 산업은 전기전자, LCD 패널, 반도체 등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품목에 집중되어 있어 생산단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철강과 같이 시장 접근성이 중요한 업종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미국, 브라질 등 대규모 시장에서 생산 비중이 확대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최근 해외생산이 확대되면서 국내 일자리와 투자, 수출 부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이 해외생산 비중을 확대하면서 제조업 경쟁력이 악화되었던 전철을 우리가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90년대 엔화 강세로 수출 가격 경쟁력이 위협을 받자 해외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해외 진출 초기에는 가격경쟁력 확보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전자 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하락한 바 있다. 우리 경제도 과거에는 해외생산을 통해 국내 고용이나 수출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었으나 이러한 긍정적 효과가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32페이지 BOX> 참조).
규제장벽 여전히 높아 투자 유입 제약
해외로 향하는 직접투자가 빠르게 확대되는 반면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투자는 매우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전세계 외국인직접투자는 연평균 11%씩 증가했으나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외국인직접투자는 연평균 5% 증가에 그쳤다. 명목GDP대비 외국인직접투자 비중도 세계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다(<그림 10> 참조).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외국인직접투자 유치의 중요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노동과 자본 투입 확대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 기술과 생산성 향상이 성장에 필수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 바이오, 항공 등 세계적으로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고부가가치 업종의 외국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할 경우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기술 파급이 저성장에 빠진 국내 경제에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내수 확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직접투자유입 확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유통, 교육, 법률, 관광 등의 분야에서 생산성이 낮은 편인데 외국 서비스 업체들이 국내 투자를 확대할 경우 경쟁을 통해 국내 업체들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일랜드와 싱가포르는 직접투자 유치를 통해 경제 성장을 가속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아일랜드는 내수 시장 규모가 작고 임금 수준도 높아 해외투자에 매력적인 시장은 아니었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 인건비가 낮은 동유럽권 국가들의 EU 가입으로 아일랜드에 진출했던 다수의 외국기업이 동유럽으로 이탈하면서 아일랜드 경제는 침체 국면을 맞이했다. 이에 정책 당국은 고부가 첨단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집중적인 지원책을 펼쳤다. IT, 생명공학 등의 산업에서 직접투자 확대 정책이 금융위기 이후 성과를 보이면서 아일랜드는 2000년대 초반 일인당 소득 2만 5천달러에서 금융위기 이후 5만 달러 수준의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도 작은 시장 규모, 높은 인건비 등 악조건 가운데서도 전세계 10위 규모의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성장의 돌파구로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책 당국 역시 외국인 투자를 방해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첨단의학 등 주력육성산업에 대해서는 15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는 파격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높은 규제 장벽,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금융시장 등이 투자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WEF (World Economic Forum) 세계경쟁도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도적 요인의 효율성은 전세계 69위를 기록해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인도, 인도네시아가 각각 55위와 60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우리의 규제 장벽은 상당히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 중 정부 규제에서 발생하는 사업상의 부담은 100위권을 넘어선다. OECD가 집계하고 있는 FDI 규제지수 역시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다섯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그림 11> 참조). 특히 농업이나 전기, 방송 운수 등 서비스업의 규제 장벽이 상당하다.
그밖에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금융시장 역시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를 꺼리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WEF (World Economic Forum) 세계경쟁도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 생산성은 144개 국 중 24위로 높은 수준이지만 노동시장 효율성은 83위에 불과하다. 금융시장 성숙도 역시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금융서비스 접근성, 대출 용이성이 세계적으로 100위권을 넘어서는 수준이며 벤처캐피탈 등 은행이 아닌 다른 자금 조달 역시 용이하지 않은 편이다.
3. 맺음말
우리 정부도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규제 철폐를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실효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98년 외국인투자지역을 시작으로 경제특구개발에 주력해왔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2003년~2014년 약 10년간 경제자유구역에 42조원이 집행되었으나 회수된 투자 금액은 7조원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2012년부터는 외국인 투자 유치뿐만 아니라 해외로 향하는 국내 기업들의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 기업 유턴 유도 정책을 시행했으나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은 해마다 줄고 있다(<그림 12> 참조).
투자유치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규제개혁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특정 지역, 특정 업종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중요시하는 경제특구의 경우 현재 경제적,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주변에 입주한 국내 기업이 소수이거나 지역경제 규모가 크지 않을 경우 해당 지역에 대한 외국 기업의 투자 유인이 그만큼 감소할 수 있다. 또한 외국 인력이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병원, 학교 등에 대한 설립 규제가 풀리지 않고 있어 세제혜택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한국으로의 진출을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규제 총량제 등 전면적 개혁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걸림돌이 많아 실제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유턴 정책도 다른 국가에 비해 제약이 많은 편이다. 현재 정부는 리쇼어링 기업에 대해 법인세와 소득세, 용지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나 해외에서 운영하던 공장을 국내 수도권으로 이전하게 되면 수도권 규제로 인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세금, 금리, 지가 등 사업에 수반되는 비용을 인하해 주는 경쟁이 전세계적으로 치열해지고 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미진한 수준이다.
세계경제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 경제도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의 이중고에 직면한 상황이다. 미래 경제 성장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국내 투자가 위축될 우려가 크다.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의 사례에서와 같이 고부가가치 부문에서의 직접투자 유치는 저성장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규제개혁, 생산여건 개선 등을 통해 해외직접투자 유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