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스쳐가지 않을 건축 유행…우리는 왜 ‘작은 집’을 주목하는가
시티라이프 입력 2013.05.29. 10:29
소유한 물질의 크기가 인간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의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지만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크지 않은 집에 살아보니 예상치 못한 큰 기쁨이 있음을 알려주는 '작은 집'의 미덕도 당신이 보려 하지 않는다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개의 거대한 단지 속에 같은 구조를 지닌 아파트에서 사는 삶을 국민 모두가 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집을 갖는 것 자체로 즐거웠고 아파트 소유가 곧 중산층의 증거였던 아름다운 시절 말이다. IMF 구제금융과 미국발 리먼&브라더스 사태라는 거센 물결을 지난 지금은 좀 달라졌다. 더불어 언제나 쫓기듯 세계 자본주의 변화 물결에 몸을 맡긴 채로 달리다 잠시 멈춰 바라본 우리들의 집의 모습도 달라졌다. 집에서 사는 가족의 숫자도 급격하게 줄어 이젠 1인 가구도 익숙한 단어로 다가오며, 국민소득이 상승하면서 우리가 집에서 누리고 싶은 삶의 모습 역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소형 주택을 지으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고, 경기가 침체되고, 지구 자원이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서 보금자리에 대한 개념도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집에 원하는 것'이 한층 다양하고 입체적인 조건을 띄게 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격하게 일기 시작했던 '땅콩 주택' 열풍이 새로운 건축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나아가 '작은 집'으로 모아진 시선은 일순 사라져버리는 트렌드에 머무르지 않으며 흥미로운 건축 문화를 만들고 있다.
작은 집이 나타났다
무엇이 작은 집인가 대한 정의는 각각 다를 테지만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비슷하다. 적지않은 비용의 주택 구입비용 혹은 전세 자금에 눌려, 사는 사람의 개성이라곤 끼어들 틈도 없는 척박한 주택 환경이 만들어낸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 점에서 말이다.
도시에서 아파트 전세를 구하는 비용이면 도심 외곽에 작은 집은 짓는 것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 서울 시내 아파트 전세금 3~4억원 정도의 비용으로 도심 외곽에 20평 정도의 집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전세값 상승, 아파트 가치 하락, 획일화된 집의 구조와 같은 척박한 환경에 지친 우리에겐 솔깃하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게다가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다니 재미없는 한국의 집 구조이 질리기 직전인 이들에겐 더욱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단독주택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난방과 급수의 문제도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을 만큼 건축 기술이 발달해 큰 고민을 덜어준 것 역시 작은 집을 고려하는 이들을 안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예전처럼 비싼 비용을 치르고 안방에서 추위에 떠는 풍경은 없을 거란 얘기다.
집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작은 집의 매력은 저렴한 비용에 머무르지 않는다. 작은 집을 짓기로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고민의 주제는 '자신 혹은 우리 가족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가'이다. 내가 원하는 집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을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이걸 생각하지 않으면 집의 구조는 물론 창문의 크기와 위치와 같은 사소한 것까지 선택해야 하는 작은 집 짓기는 너무 많은 선택사항을 탑재한 거대한 고민거리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런 과정은 무척 까다롭고 지난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집에서 함께 살긴 하지만 각자의 방에서 가족과 드물게 소통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풍경엔 교류를 방해하는 구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건축가 조혜연은 말한다. 방을 구분하고 TV와 소파가 놓여진 구조를 유난히 선호하는 아파트에선 함께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기민하게 영향 받는다. 과거에 사람들이 커피숍에서 차만 마셨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음을 상기해보면 더 쉽게 이해가 갈 것. 커피숍이라는 공간에 북카페, 회의, 전시, 공연과 같은 일들이 가능하도록 공간을 구성하고 배치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다른 일도 함께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족간의 소통을 방해하는 획일화된 구조 대신 열린 개념을 투영한 작은 집에선 공유와 교류가 활발해져 가족간의 친밀함도 높아지는 것이다.
소규모 주택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집의 내부는 물론 외부 환경까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심의 아파트를 헉 소리나는 비용을 치르고 구입해도 풍경을 선택하고 공유하는 데는 지극히 한계가 있지 않던가. 그러나 집을 짓는 위치부터 나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는 작은 집에선 안에 바라보는 풍경까지 삶의 일부가 되니 '작지만 큰 집'을 소유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다
작은 집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문화도 만들어 내고 있다. 도심 외곽의 작은 집은 홀로 자리하지 않는다. 이런 소규모 집들도 모이게 마련이었고 그 속에서 사람 냄새 나는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집이 일깨워준 소통하는 즐거움을 좀 더 확대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일 터. 조금 작더라도 나의 개성이 담긴 집에 살고자 하는 이들이 모였으니 공감의 폭은 더욱 커지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이웃과 소통하는 즐거움에 새삼 반하게 된다.
서울 외곽지역과 제주는 물론 서울 도심에서도 이런 문화가 생겨나고 있단다. 서촌과 북촌 한옥마을에 사는 프리랜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 공동체로 소식지를 만들고 공동시설을 짓는 등 활발하게 소통 중이다.
현대인이 작은 집으로 시선을 돌리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현상일지 모른다. 팍팍한 일과에 치여 내가 사는 집이 과연 나에게 맞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나날들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 역시 그처럼 건조해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에겐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새로운 형태의 집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오래 머무르는 '집'에 개성을 불어넣고 애정을 담는 과정은 메마른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작지만 큰 힘을 지닌 까닭이다.
Interview
건축가 조혜연과 나눈 작은 집에 관한 이야기
지금 우리는 왜 '작은 집'을 주목하는가.
작은 집을 새롭게 조명하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일고 있는 트렌드는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의 주요 도시 중심에선 주거공간의 비용은 높지만 선택의 폭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비교적 적은 비용이지만 만족도가 높은 도시 외곽의 작은 집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2인 가구, 1인 가구가 익숙해질 정도로 과거에 비해 가족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도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더불어 집에 관해 달라진 개념도 한 몫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집을 단순히 재산 가치로 바라보는 대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주거공간으로 여기면서 새로운 욕구가 생겨난 것이다.
크기를 줄인 집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작은 집의 장점은 곧 단점이 될 수 있다. 크기의 제한이 있으니 한 공간이 여러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작은 공간에서 '손만 뻗는' 작은 에너지로 일상 생활이 가능한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장점이 되겠지만 반대의 경우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작은 집은 1~2인 가구 일 때 만족도가 높고 가족 구성원이 4인을 넘으면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작은 집의 남다른 매력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집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정형화된 구조로 찍어내듯 만들어진 집을 구입하는 형식이었다면 작은 집은 온전히 사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틀 만들기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고 고심해 완성한 집이니 사는 사람의 애착은 더 커지게 마련이고 만족도 역시 높아진다. 또한 실제 평수를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으며 지붕 아래 공간이 덤으로 추가 되어 2층이라도 3층처럼 생활할 수 있는 것도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이런 집을 꿈꾸고 이들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내가 원하는 집'의 모습이다. 나는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지녔고 집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것이 첫 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큰 이미지를 만들고 세부적인 구조와 용도를 구상하면서 점차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을 알게 되면 그 집에 사는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작은 집을 주목하는 분위기는 지속 가능한가?
이런 건축 경향이 시작된 것은 4~5년 전의 일이다. 환경, 사회적 분위기와 사는 사람 모두 규모를 줄인 건축을 환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건축 문화가 자리 잡는 데 보통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5~6년 정도 흐르면 작은 집은 더욱 익숙한 문화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작은 집으로 돌아간다
요즘 트렌드는 주택 규모를 줄이고, 살림을 줄이고, 월세와 주택담보대출 이자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자유와 독립을 갈망하는 몽상가, 예술가들이 스스로 건축가가 되어 땅 위, 바퀴 위, 나무 위, 물 위 등에 직접 지은 집을 찾아 나선 <로이드 칸의 아주 작은 집>에서 독특한 영감을 발견해 본다.
2000달러짜리 태양광 오두막
라마 알렉산더는 유타주에서도 수십억 평방미터의 유트 인디언 보호구역과 연방토지에 둘러싸인 유인타 산맥 아래에 살고 있다. 그는 병으로 교직을 그만두고, 이혼으로 파산 지경에 이르러 집도 없이 오갈 데 없는 신세였다. 자급자족하는 생활은 아주 작은 캠핑용 차량에서 시작되었다. 45와트 태양광 패널과 오래된 트럭 배터리에 의지해 전등을 켰고, 양수기와 프로판가스를 이용해 요리하고 물을 데워 생활한다. 캠핑카에서 두 해를 보내고 2000달러를 모아 직접 설계한 작은 오두막을 지었다. 가로세로 4.2m 크기로 오두막을 지어 부엌, 욕실, 거실을 아래층에 넣고, 위층에 다락방을 넣어 침실 겸 사무실로 만들었다. 그에겐 갚아야 할 주택융자금도 없고 매월 들어가는 공공서비스 요금도 없다. 그는 여기서 자유롭게 글과 음악을 짓고 야외 활동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뒤뜰에 정박한 요트식 오두막
샌프란시스코 집 뒤뜰에 있는 2.8평짜리 건물이 루크 그리스월드 터기스의 집이다. 양계장을 개조해 만든 '요트 오두막'이다. 디자인은 알래스카의 작은 요트에서 지내는 동안 영감 받은 것이다. 이 집은 진짜 요트에 비해 유지비가 덜 들고, 침몰할 위험도 없으며, 창문이 많고, 정원에 둘러싸여 정박해 있으니 해안까지 노를 저어 나갈 필요도 없다. 목재와 창문들은 아버지와 삼촌이 60여 년 동안 할아버지 집 뒷마당에 쌓아놓은 목재더미에서 재활용했다. 지붕재, 단열재, 커다란 창문을 하나 구매하는 데 사용한 200달러 외에는 다른 비용이 들지 않았다. 북쪽 방향의 벽은 외부로 향해 기울어 지게 만들어 바닥 면적은 줄이면서도 공간을 넓게 쓰도록 했다. 남쪽 방향의 벽은 거의 전체가 창문이라 햇살을 받으며 정원에 앉아 있는 느낌을 준다. 식물을 기르기에 좋은 구조이다. 이 오두막은 때에 따라 주택, 영화제작 사무실, 온실, 정원 창고로 쓰이며, 내가 집을 비울 때면 삼촌이 명상을 하는 공간으로 이용한다.
아트의 침실
아서 에스페넷 카펜터는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드는 예술가이자 목수였다. 그는 30년 전부터 목공실 뒤에 소형 건물들을 손수 지으면서 자발적으로 단순한 삶을 살았다. 이 침실 역시 그가 지은 것으로 나무들을 향해 미닫이문이 나 있고, 총 실내 면적은 7평이다. 집이 보여주듯 그는 탁월한 예술 감각을 지닌 목수이다. 다시 말해, 물건을 만들 줄 아는 타고난 아티스트인 것이다.
주디스 산자락의 오두막
몬태나 주의 주디스 산맥에 자리한 이 집은 계곡 하상에서도 21m 정도 높은 곳에 위치한 석회암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공중에서 내려다보듯 계곡 전체를 굽어볼 수 있다. 원래부터 존재했었던 느낌을 주기위해 사용한 물결 모양의 금속 지붕재는 내려가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헛간에서 가져왔다. 들보와 바닥재, 데크용 자재는 80년 전에 만들어졌다가 최근에 해체된 버팀 다리 자재들을 재활용했고, 돌로 된 바닥재는 아이다호에서 가져왔다. 2층에는 사방으로 나 있는 창문 덕에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지붕 꼭대기에 1.8m 가량의 채광창을 설치해 햇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완공한 지 1년도 안되어 이 오두막은 협곡을 상징을 하는 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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