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이인숙 기자 입력 2016.04.13. 17:59 수정 2016.04.13. 20:39
[경향신문]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스타트업 기업에 다니는 미코 머서(30)는 퇴근하거나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브루클린의 차체 제작공장과 목공소가 늘어선 거리의 한 창고로 달려간다. 그는 지난해부터 이 창고를 한 달에 600달러(약 70만원)에 빌려 14.8㎡짜리 작은 집을 짓고 있다. 디자인부터 집짓기까지 모든 것은 스스로 한다. 집이 완성되면 이 집은 2650달러를 주고 산 트레일러에 올려진다.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취직을 한 후에도 밤에 식당에서 일하는 ‘투잡’으로 20대를 보냈다. 서른 살을 눈앞에 뒀을 때, 그는 문득 이 도시에서는 그 무엇도 할 형편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 직장으로 옮겨 월급도 오르고 빚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는 그만의 작은 집을 짓기로 마음 먹었다. 예산은 3만달러(약 3400만원)로 잡았다. 집을 짓기 위한 창고를 빌리기 위해 한달에 1400달러(약 160만원)를 내던 원룸에서 룸메이트 3명과 함께 사는 월세 600달러 짜리 아파트로 옮겼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머서의 사연처럼, 미국에서 적은 돈으로 자기만의 작은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작은 집’의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넓이가 400평방피트(37㎡) 이하인 집을 통상 ‘작은 집(Tiny house)’이라 부른다. 널찍한 마당과 큰 집을 선호하는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집 넓이는 240㎡정도다. 가구 구성원은 점점 줄어드는데 주택 면적은 1978년 165㎡에서 2007년 230.3㎡, 2013년 247.3㎡로 점점 넓어지는 추세다.
미국에서 ‘작은 집’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사라 수잔카라는 건축가가 1997년 펴낸 책 <낫 소 빅 하우스(The Not So Big House)>가 인기를 끌면서 ‘작은 집 짓기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듬해 1998년 제이 샤퍼라는 남성이 트레일러 집을 지었다. 바퀴를 달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게 한 작은 집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작은 집 짓기 운동의 선구자가 된 샤퍼는 2002년 뜻 맞는 사람들과 작은 집 전문 건축회사를 차리고 <작은 행성 위 작은 집>이라는 안내서를 펴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도 작은 집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계기였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이재민에게 제공한 임시 컨테이너 대신에 살 만한 작은 집을 만들어주자는 움직임으로 28.6㎡짜리 ‘카트리나 코티지’가 지어졌다. 작은 집이 미국 사람들의 피부에 직접 와닿게 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다. 너도나도 은행이 빌려주는 담보대출을 얻었다가 집값이 폭락하고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거리로 나앉았다.
빚 없이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금융위기를 겪고 난 미국인들에게는 큰 유혹이었다. 작은 집 짓기 운동을 하고 있는 라이언 미첼이 운영하는 블로그 ‘타이니 라이프’에 따르면 일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70.7%가 주택담보대출이 있지만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의 68%는 대출이 없고, 65%가 카드 빚이 없다. 집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도 평균 2만3000달러로 일반 주택을 짓는 데 드는 비용(27만2000달러)의 10분의 1수준이다.
샤퍼는 회사 홈페이지에 “경기불황, 은행의 구제금융 사태 등이 일어난 후로 디자인이 좋으면서도 형편에 맞게 가질 수 있는 집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 적었다. 작은 집 열풍이 불면서 2014년에는 타이니 하우스 헌터, 타이니 하우스 네이션 같이 작은 집을 주제로 다루는 TV프로그램도 등장했다. ‘타이니 라이프’는 뉴욕타임스, BBC, 가디언, NBC방송 등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국도 작은 집에 대한 행정규제를 완화하며 동참하는 분위기다. 뉴욕시는 최근 거주공간이 최소 400평방피트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제를 없앴다. 또 건설회사들이 작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적정주택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바퀴 달린 집은 레저용 차량 거주가 금지된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자리잡기 힘들다. 아직 바퀴 달린 집이 자동차인지, 주택인지 명확한 기준은 없다.
작은 집은 기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뉴욕주 알프레드대 대학원생 앤 홀리가 고안한 바퀴 달린 ‘프로토하우스’는 환경친화적인 작은 집이다. 전기플러그 없이 풍력·태양에너지를 쓰고 건축에도 재활용한 소재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11㎡의 매우 작은 공간이지만 침대, 싱크대, 욕실, 책장과 책상 등 필요한 세간이 모두 갖춰져 있다. 2009~2010년 알프레드대학이 지역사회와 시도한 프로젝트가 상용화되면서 현재 콜로라도주에서 프로토하우스들이 건설되고 있다. 작은 집 짓기는 건축가들의 창작욕을 자극하기도 해 건축에서 작고 아름다운 집을 만드는 ‘나노텍처’라는 영역이 생겨났다.
작은 집은 다른 나라들로도 퍼져가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밴쿠버 등 인구 밀도가 높은 서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뒷마당이나 집 뒷편 골목길을 활용해 짓는 ‘레인웨이 하우스’가 유행이다. 1.5층 구조에 50~60㎡정도 면적으로 침실 2개, 욕실 1개, 주방, 식당, 거실을 둘 수 있다. 레인웨이하우스 프로젝트는 밴쿠버 시장을 지낸 샘 설리번의 제안으로 2009년 시작됐다. 2012년에는 태양에너지를 쓰는 레인웨이하우스가 등장했다.
호주에서도 작은 집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호주는 주택 평균면적이 243㎡로 세계에서 집이 가장 큰 국가로 꼽혔다. 2103년 4월 페이스북에 ‘타이니하우스 호주’페이지를 만든 대런 휴는 멜번 교외에 바퀴 달린 작은 집을 지었다. 3만여명이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작은 집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만 아직 많이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집을 줄이는 일은 삶을 줄이는 일이다. 작은 집으로 옮기려면 살림도 대폭 치워야 한다. 살림이 줄면 삶의 방식도 단촐해진다. 머서는 작은 집에 들어가기 위해 퀸 사이즈 침대, 작은 책상과 책장, 화상품, 신발만 남기기로 했다. 옷은 목공을 배워 청소함과 플라스틱 서랍장을 재활용해 수납할 생각이다. 미첼은 트럭이 끌고 다니는 트레일러 위에 작은 집을 지은 뒤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면서 오래 동안 계획하기만 했던 여행을 다니고 있다.
미첼은 2014년 11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작은 집에 산 뒤로 주거비용이 확 줄어 1년 안에 빚을 다 청산할 것 같다. 빚이 없으니 스트레스도 줄었다”며 “오랜 직장을 관두고 일하는 양과 시간을 내 스스로 조절하게 되면서 삶의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했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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