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쿠바] ③ ‘닫힌’ 북한과 ‘열린’ 쿠바

2015. 6. 28. 16:26세계와 여행이야기/쿠바

  • [변화하는 쿠바] ③ ‘닫힌’ 북한과 ‘열린’ 쿠바
    • 입력2015.03.11 (06:01)
    • 수정2015.03.11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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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쿠바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을 때,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쿠바요? 거기 들어갈 수 있어요? 별 문제 없어요?” “네, 별 문제 없습니다. 관광객이라면 언제든 아무 때나 그냥 출발지 공항에서 30달러 미만의 비자만 사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쿠바의 문은 전세계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쿠바의 문은 이미 열려있었다

      한국인들이 쿠바에 대해 그렇게 우리와 먼 나라, 또는 뭔가 우리가 가기 어려운 나라라는 생각을 했던 이유는, 아마도 북한 때문이었으리라. 휴전선만 넘으면,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북한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유럽, 미국 사람들은, 어렵지만 관광비자라도 받아 들어가지만, 남한 사람들은 안된다. 북한에서도 안된다고 하고, 남한에서도 안된다고 한다.(국가보안법을 보라, 북한은 우리에게 이적단체다). 그러니, 북한의 형제 나라, 지구상의 몇 남지 않은 공산주의 국가 쿠바 역시 그렇게 우리를 거부하리라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쿠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관광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캐나다인은 1년이면 백만명이 쿠바에 들어간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 봉쇄 등으로 수출길이 막힌 뒤 외화 획득을 위해 관광업에 공을 들여왔다. 그 중 하나가 ‘임시 비자’ 제도다. 출발지 공항에서 쿠바인들이 파는 30불짜리 임시 비자를 사면, 쿠바 공항에서는 그 비자에 입국 도장을 찍는다. 그런데 출국할 때는 그 임시 비자를 제거한다. 즉, 임시 비자에만 입국 사증을 찍고 여권에는 쿠바 입국 사증을 찍지 않는 것이다. 혹시나 공산국가 쿠바에 입국했다는 증거가 남을까봐 쿠바 관광을 꺼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특히 쿠바 입국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미국인들까지 받아들이기 위해, 임시 비자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국교 정상화 선언 전에도, 많은 미국인들이, 심지어 단체관광까지 꾸려 쿠바에 드나들곤 했다.

      쿠바는 현지의 낮은 물가를 유지하고, 관광객들로부터는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기 위해, 관광객들이 쓰는 별도의 화폐를 도입했다. 쿠바의 화폐제도는-조만간 일원화한다는 계획이 발표되기는 했지만-아직까지 이원화돼있다. 쿠바에서 외국인이 쓰는 돈 CUC은 쿠바 현지인 화폐 MN의 24배다. 물론 CUC을 쓰더라도 유럽이나 캐나다인 등에게 쿠바의 물가는 싼 편이다.

      쿠바에 대한 또다른 질문, “쿠바는 안전한가요?” 전세계에서 관광객에게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가 쿠바다. 말레콘, 아바나 시내, 역사지구, 비냘레스, 산타바바라, 시엔푸에고스... 고속도로, 지방도로, 나는 그 어디서도 누군가에게서 일말의 신변의 위협을 당해본 적이 없다. 쿠바와 미국이 서로 몇 명의 인질들을 오랫동안 억류하고 있기는 했었지만, 쿠바에서, 우리가 보통 치안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지구상 몇몇 지역에서 들려오듯, 외국인을 납치했다거나, 총기를 들고 금품을 요구했다거나, 상해를 입혔다거나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가 평양이라는 얘기를 외국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북한 체제에 반하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완벽하게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에서 외국인에게 무슨 해꼬지를 할 수 있겠냐는 논리다. 쿠바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공안과 CCTV가 있다. 물론 북한처럼 현지인이 심각하게 체제 유지에 저해되는 행동을 하는지도 감시하겠지만, 외국인 관광객 보호의 역할도 있다. 외국인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 엄청난 중벌을 받기 때문에, 누구도 그런 일을 꿈꾸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아주 놀랍지 않다. 쿠바가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했구나, 그렇게 외국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도록 하는구나. 나를 늘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다음이다. 그렇게 들어온 외국사람들의 영향을 쿠바는 어떻게 극복하는 것일까? 외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는데, 바깥 세상에 대해 그렇게 많이 말할 텐데, 쿠바는 그걸 어떻게 극복하는 것일까? 쿠바 정부는 그게 두렵지 않단 말인가?



      쿠바 텔레비전에는 뭐가 나올까?

      TV기자 치고는 나는 사실 텔레비전을 그리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미국에 와서는 기사 때문에 늘 뉴스채널들을 켜놓고 있지만, 한국에 있을 때 집 텔레비전의 기본 모드는 ‘꺼짐’이었다. 처음 쿠바 호텔방에서 TV를 켰을 때 스페인어 채널들이 몇 개 나오길래 바로 꺼버렸다. 취재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호텔방에서 한가하게 TV를 볼 시간도 없었다. 떠나기 전날 밤, 의무감으로 호텔 TV채널을 모두 점검했다. 취재의 일환이다. 대체 어떤 채널들이 나올까?

      뭐가 나올까? 쿠바 국영채널? 물론 나온다. 중국 CCTV 채널들, 물론 여러 개 나온다. 멕시코나 베네주엘라 같은 남미 채널? 물론 여러 개 나온다. 그리고 뭐가 나올까? 놀라지 마시라, 디즈니부터 ESPN까지 미국에서 내가 늘 보던 영화, 오락, 스포츠 채널이 다 나왔다. CNN부터 BBC까지 월드 뉴스채널들이 다 나왔다. 아니 내가 지금 공산국가 쿠바에 있는 게 맞나 싶었다. 미국 채널들은 위성으로 받아 바로 틀어주는 듯, 전혀 따로 편집을 하지 않기에, 미국인을 상대로 하는 광고까지 그대로 다 나왔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호텔방이라서? 물론 호텔은 주로 외국인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쿠바 내국인들도 돈만 내면 호텔에 머물 수 있다. 쿠바인들도 돈만 내면 이 위성 채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열린' 쿠바다!

      쿠바인의 모국어는 스페인어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여행 중에 말레꼰이나 지방도시들에서 영어가 통하는 현지인을 만나면, 나는 자주 물었다. 쿠바인의 생활이라든지 사회제도라든지, 체제에 대한 생각이라든지... 아바나 시내에서는 간혹, 여기는 공안이 많으니 길게 말하려면 다른 데 가야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화 자체를 꺼리거나, 또는 뭔가 연습한 듯한 말을 내뱉거나 하는, 우리가 북한에서 경험했다는 분위기는 없었다. 외국인들은 국가 통제구역만 아니면 어디든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사람들과 마음대로 만나고 얘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나는 촬영 팀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정식 비자를 받아서 갔지만, 보통 신문기자들은 그냥 임시 관광비자를 사서 들어간다. 들어가기도 얘기를 하기도 결코 어렵지 않다.



      “이게 결국 '민영화' 인데,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거 아닌가요?“

      국영 경제협회 부회장과의 인터뷰에서, 쿠바의 최근 개혁개방 정책에 대해 내가 물었던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취재 비자를 받고 들어간 취재진, 즉 쿠바 이곳 저곳을 찍고 인터뷰하고 다니는 취재진을, 쿠바 정부에서 아무도 따라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학자처럼 보이는 인자한 얼굴의 부회장은, 불쾌해하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쿠바 정부가 이제는 작은 일은 민간에 맡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래야 정부는 국민을 위한 좀 더 중요하고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민간 영역이 확대되다 보면, 자본주의적 경제 방식이 도입되고, 빈부 격차가 심화될 수도 있는데요?”
      “쿠바 정부가 자본주의 국가처럼, 국민 복지의 중요한 부분까지 민간에 맡기거나 빈부 격차의 심화를 내버려둘 것 같습니까? 이를테면 우리는 교육이나 의료 같은 것은 절대로 부분적으로라도 민영화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어느새 교수와 토론을 하고 있었다.

      쿠바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듣는 게 인터뷰의 목적이기에, 부회장과 논쟁까지 벌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궁금한 것을 다 물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게 가능하리라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 신기했다.

      취재는 더욱 대담해졌다. 국제 관계 전문 변호사를 만나서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쿠바 정부가 사회주의 체제를 조금씩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변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부는 분명 속도 조절을 하겠죠. 급격한 변화는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변하지 않는다면, 정권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이런 대답을, 쿠바 안에서, 변호사라는 국가에서 자격증을 주는 사람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정권’에 대한 언급이라니 말이다.

      거리 취재도 했다. 젊은이들에게 연달아 물었다. 쿠바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회주의 체제가 변하는 거 아니냐. 쿠바 스페인어 통역인이, 공안을 걱정해 내가 ‘사회주의’라고 물어도 ‘변화’라고만 번역해 질문하는데도, 정작 질문을 받은 젊은이가 “쿠바 사회주의는 이제 변해야죠. 중국을 보십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라고 체제에 대해 정면으로 언급하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였다.

      나는 그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쿠바의 변화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체제에 대한 생각을 묻고 또 물었다. 그들 스스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변화들을, 과연 그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나는 왜 그리 궁금했던 것일까? 공산국가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북한이라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산국가에 익숙해져, 모든 공산국가가 그러리라고, 나도 모르게 착각해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공산국가들 대부분이 북한과는 좀 다르거나 달랐을 것이다. 왜 소비에트연합이 무너지고,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무너졌겠는가?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공산국가들이 북한의 공식 영문 명칭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처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면, 그렇게까지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을 수는 없을 터였으니 말이다.

      쿠바에서 나는 사람들과 쿠바 사회와 정치와 체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충분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통제가 있다는 것도, 그들이 정부에 대해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비교하는 나름 공개적인 교육 속에, 스스로의 내성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쿠바가 완전히 개방적인 국가라는 게 아니다. 많은 사회주의국가들처럼 통제와 체제 교육은 일상화돼있다. 그러나, 적어도 쿠바 정부는 국민이 경제난에 신음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민의 민생보다 국민을 통제하는데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정부는 아닌 것 같다.

      ☞ 바로가기 <뉴스9> [쿠바에 부는 변혁의 바람] 빗장 열린 쿠바 “경제 좋아질 것”

      “저는 그래도 미국에서 살지 않을 겁니다.”



      쿠바 국민의 60%가 미국에 가족이나 친척을 두고 있다. 미국에 아버지가 있는 딸, 젊은 컴퓨터 엔지니어는 쿠바와 미국의 국교 정상화 발표에 감격해했다. 15년 가까이 아버지와 떨어져 살면서,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자신의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인생의 가장 슬픈 순간에도 가장 기쁜 순간에도 함께 하지 못했다. 아버지랑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동안 단 4번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런데, 그녀의 오빠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살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미국 시민권자여서, 자신도 어떻게든 미국에만 들어가면 미국에서 살 수 있을 터였다. 앞으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포부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미국에서 살지 않을 거라고 했다.

      “미국에서 몇 년 일하고, 아버지랑 시간도 보내고 싶지만, 저는 다시 돌아와 쿠바에서 살 겁니다. 저는 쿠바가 좋아요. 월급도 적고 미국에서 누리는 걸 누리지 못하겠지만, 쿠바는 내 나라고 저는 쿠바에서 살 겁니다.”

      그녀는 적어도 자본주의가 뭔지, 사회주의가 뭔지, 미국이 어떤지, 쿠바가 어떤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미국에서 살 것이다, 안 살 것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을 터였다. 그녀의 생각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 그리고 쿠바가, 사람들이 원한다고 그게 다 이루어지는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편견은, 일견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 [변화하는 쿠바] ① 쿠바 초등학교의 ‘특별한 선물’

      ▶ [변화하는 쿠바] ② 더 이상 구걸하지 않는 쿠바 사람들

      ▶ [변화하는 쿠바] ③ ‘닫힌’ 북한과 ‘열린’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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