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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철인 황제의 오래된 일기 그리고 셀프 리더십

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by 소나무맨 2015. 6. 8. 23:14

본문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아우렐리우스의 사색적 기록 「명상록」. 스토아적 철인으로서 격무에 시달리는 황제로서의 사상과 경험을 토대로 쓴 에세이로 인간 아우렐리우스의 고뇌가 나타난다.


 

 

그는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어떠한 외부의 자극이나 압력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으며 평정을 누릴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또한 선과 악을 함께 우주적 섭리의 의지로 받아들이게 하며, 인간과 신에 대한 불만을 털어버리고 격정과 허영으로부터 벗어나는 지혜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서 (총 9권)
161년부터 180년까지 로마 제국을 다스렸던 로마제국 16대 황제이자 로마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5현제 중 마지막인 다섯번째 황제이다. 또한 스토아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한자명으로 안돈이라 하며 121년 4월 26일, 로마의 카엘리우스 언덕에 있는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로 부모가 일찍 사망하여 시의 장관이자 집정관을 세 차례나 역임한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라게 된다.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의 양자가 된 후 140년 로마의 콘술(집정관)이 되었고, 145년 안토니누스의 딸(사촌누이)과 결혼, 161년 안토니누스의 뒤를 이어 루키우스 베루스와 공동황제로 즉위했다. 마르쿠스는 황제가 되어서도 스승과 가족과 친지들을 애정 어린 태도로 대했고, 학문에 대한 열정도 높아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싸우거나, 전염병 퇴치와 타락된 윤리 회복에 고심하며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가지 재난과 전쟁, 반란 속에서도 내정과 국방을 잘 다스리며 통치하여 현제의 반열에 올랐다. 180년 3월 17일, 마르쿠스는 북방에서 로마로 돌아오던 중에 전염병으로 돌연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지위는 아들 코모두스가 이어받았다. 그의 나이 59세, 황제에 오른 지 18년 만이었다.그의 대표작 『명상록』은 마르쿠스가 황제로서 정무에 종사하거나 전쟁에 참가했을 때 틈틈이 직접 쓴 글이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로 오랜 세월 동안 읽혀왔다.

 

 

수많은 인생 지침서의 고전!
시적으로 씌어진 철학의 걸작 <명상록>의 진가를 원전 번역으로 만나다

***철인 황제의 오래된 일기 그리고 셀프 리더십
잘 알려져 있듯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는 로마의 황제로 플라톤이 꿈꾸던 철인(哲人) 황제를 구현한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가 후세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은 황제로서의 정무에 종사할 때나 전선에 나가 전투를 지휘하는 동안에도 틈틈히 기록해두었던 철학적 성찰이 담긴 일기가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뛰어난 스승 아래 갈고 닦은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수사학적이고 시적으로 씌어진 이 일기가 우리에게는‘명상록’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기의 필사본에는‘자기 자신에게’(ta eis heauton)라는 그리스어 제목이 붙여져 있다. 그 당시 로마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리스어로 글을 쓰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국내에는 개화기 이후 25종에 이르는 중역본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의 명성에 걸맞은 그리스어 원전 번역 <명상록>(숲)이 출간되어 비로소 문학과 철학의 걸작 <명상록>의 진가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만을 향하여, 자신만을 위하여 써내려간 일기답게 <명상록>은 당대의 작가들은 물론 그의 측근들에게도 알려지지 않다가 4세기에 들어서야 발굴되었다. 그리하여 아우렐리우스는 명실공히 후기 스토아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평가받게 되었으며, <명상록> 역시 스토아 학파의 정신에 충실한 철학 원전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누락시키거나 뭉뚱그리는 무딘 번역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고전의 진가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발견과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그렇다면 <명상록>은 어떤 책인가
빌 클린턴 전미 대통령은 ‘TV, 책을 말하다’에 나와 자신의 자서전 이야기를 하며 청년기에 읽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자신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밝힌 바 있다. 권력보다 철학을 사랑한 철인(哲人) 통치자의 웅숭깊은 육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큰 울림과 모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이 황제였던 철학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그 어디에도 권력자나 1인자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삶에 대한 혜안과 인생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 씌어진 『명상록』에는 오히려 자신의 결함에 대한 경계, 스토아 학파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들려주는 충고와 반성, 자신에게 귀감이 될 만한 교훈적 성격의 짤막한 경구와 인용문, 그리고 신의 섭리, 인생의 무상함, 도덕적 정진, 같은 인류에 대한 관용 등, 우주에 홀로 선 고독한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생 지침서의 고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능력에 의해 ‘the Best man’을 양자로 들여 황제의 계승자로 삼았던 당시 풍습에 따라 아우렐리우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로마 제국은 이미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변방 이민족들의 크고 작은 침략에 끊이지 않았고, 그는 전쟁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철학하기에는 인생의 어떤 다른 상황도 네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만큼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명명백백하지 않은가!’(186쪽)라고. 아우렐리우스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이 책을 쓰며, 외부의 압력이 미치지 못하는 마음속에서 정신을 고양시키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원전에 따라 다소 투박하고 친절하지 않은 어투를 그대로 살린 번역은 아우렐리우스의 고뇌를 대변해주며 오히려 읽어갈수록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가 로마의 영토 전쟁과 그에 따른 전술과 전투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면, 그 후 20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역시 전장에서 집필된 『명상록』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과 그 정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로운 비교를 보인다.

***철학과 자기정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책은 더 이상 가질 것 없는 로마 제국의 1인자가 양심적이며 실천적인 황제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 자기정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전쟁터에서도 철학을 사랑한 아우렐리우스의 사색의 결과물인 <명상록>은 오늘날‘삶’이라는 전쟁터에 서 있는 우리에게 삶의 올바른 태도와 의미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2권(‘권’ 개념이 오늘날 종이책과는 다르지만 원전의 느낌을 살려 ‘장’으로 읽지 않고 ‘권’으로 읽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권은 가족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빚지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1권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나는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그는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에 대한 평판과 추억 덕분에 나는 겸손과 남자다운 기백을 갖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 덕분에 나는 경건과 선심과, 나쁜 짓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도 삼가는 마음과, 나아가 부자들의 생활 태도를 멀리하는 검소한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다.’1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들은 철학적, 윤리적인 단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요컨대 체계적으로 권을 나눈 것이 아니라 날짜 구분 없이 써내려간 일기를 후대의 학자들이 하나의 생각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읽기 편하게 나누어놓은 것이다. 때문에 <명상록>을 반드시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다.
우주의 질서와 장대함에 대한 찬미, 인류는 모두 세계라는 하나의 국가의 시민이라는 사해동포주의와 박애주의, 개인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책임, 우리 앞에 있었던 무한한 시간과 우리 뒤에 올 무한한 시간에 비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인생의 무상함, 어떤 노력으로도 어리석은 인간들의 신념은 바꿀 수 없다는 체념, 우주는 신의 섭리에 의해 지배되거나 아니면 원자들의 우발적인 운동일 거라는 확신 등을 주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이 책의 곳곳에서 변주된 형태로 발견되는데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곱씁었던 듯하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순응을 강조하는데, 스토아 학파에서 자연이란 산, 강, 바다 등과 같은 자연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주적 질서를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각 사물의 본성을 뜻하기도 하는데, 따라서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각각의 본성에 따르고 그것을 최대한도로 발현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 것들과 인간을 구별 지어주는 것, 바로 ‘이성’을 따르고 발휘하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주 자연과 소우주인 인간, 전체성과 개별성에 대한 그의 깊은 인식은 부동심의 경지를 희구하며 내면 바깥의 사물이나 일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 즉 부동심(不動心) 또는 평정의 상태에 이르는 길을 깨우쳐준다.

[교보문고 제공]

책속으로

너는 날카로운 기지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수 없다. 그렇다고 하자. 그래도 너에게는 “나는 타고나지 못했다니까요.”라고 말할 수 없는 다른 자질들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네 손안에 있는 그 자질들을 보여주도록 하라. 정직성, 위엄, 끈기, 향락에 대한 혐오, 운명에 대한 만족, 자비심, 마음의 자유, 검소함, 과묵함, 고매함 말이다. 너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든가 능력이 모자란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도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겠느냐? 그런데도 너는 자진하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너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핑계로 억지를 쓰며 네 운명에 대하여 불평하고, 쩨쩨하게 굴고, 아부하고, 네 가련한 몸을 탓하고, 잘난체하고, 큰소리치고, 마음을 들까불 참인가? 신들에 맹세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는 오래 전에 이런 결함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기껏해야 이해가 느리고 아둔한 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런 결점을 너는 훈련을 통하여 극복해야지, 너 자신의 태만을 무시하거나 즐겨서는 안 된다. (본문 73쪽)

 

 

아테네를 중심에 놓고 보면 변방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의 젊은 군주 알렉산드로스는 유럽, 지중해, 북아프리카 및 소아시아 지방을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긴 정복전쟁에 심신이 지친 그는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급사하고, 다음 해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망하였으나, 그리스 문화는 넓은 영역에 걸쳐 확산되었다. 제국의 영화는 짧았지만 문화는 지속적이었다. 이때부터 기원전 146년 로마가 코린트에서 그리스를 멸망시키고 정치적으로 지배하기 까지를 우리는 ‘헬레니즘’이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그리스 문화의 절정기에서 쇠퇴기로 이어지는 시대였다.

 

 

 

 

 

 

 

 

 

 

 

 

 

 

 

 

헬레니즘기의 그리스에는 여러 문화적 중심지가 생겼고, 여러 철학 유파들이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을 연상시키듯 등장하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한 학파, 쾌락으로부터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키레네학파, 죽음의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상태인 아타락시아(ataraxia/not disturbed)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에피쿠로스 학파, 욕망의 절제를 통해 정신적 평온을 추구하는 씨닉 학파와 스토아 학파가 등장하였으며 후자는 이런 경지의 마음의 상태를 ‘아파타이아(apatheia/without passion)’라고 불렀다. 다른 한편 감각기관을 통해 얻어진 인상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진리임을 보장 할 수 없으며, 일종의 판단 중지를 통해 아타락시아를 획득할 수 있다는 회의주의 학파가 출현하였다. 헬레니즘의 말기에는 플로티누스에 의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의 철학을 융합하여 현상계의 근원으로서 하나의 통일체를 상정하는 신플라톤주의가 등장하였다.

 

 

 

 

 

 

 

 

 

 

 

비록 헬레니즘기의 상이한 철학의 유파들이 모두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철학함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행복한 삶의 방식’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행복을 획득한 마음의 상태에 대한 기술이 강조되었다. 이런 점에서 헬레니즘기의 대표적 학파로 스토아를 지목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스토아학파가 서구사회에서 남긴 지속적인 영향력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이란 뜻의 ‘stoical’ 혹은 이에 상응하는 유럽어의 쓰임 에서도 알 수 있다.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300년경 씨티움(사이프러스)의 제논이 아테네 아고라 북쪽의 ‘기둥이 늘어선 회랑’에서 강의를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때 이 늘어선 기둥(柱廊)을 ‘Stoa’라고 불렀고 여기에서 스토아학파의 명칭이 유래하였다. 제논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안티스테네스가 제창한 씨닉학파의 윤리학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였고, 제논의 제자 크리시푸스가 스토아 철학의 주요 골간을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들이 쓴 문헌은 대부분 상실되어 후대의 철학자들의 인용으로서 남아있는 반면, 스토아 철학이 로마 시대로 넘어가면서 세네카,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저작이나 기록들은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스스로에게 보내는 글, 생각’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Meditations]은 서양에서 가장 많이 읽힌 고전으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제국 16대 황제(재위 161~180)로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이다.

 

 

 

 

 

 

 

 

 

 

 

 

 

 

행복한 삶이란 절제를 통한 명석한 판단을 통해 가능하다.


앞의 인용문에는 스토아 학파가 제창한 행복한 삶의 방식의 중요 내용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우선 열정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즉 아파타이아를 통해서 우리는 객관적으로 명석한 판단을 할 수 있고, 이것은 잘못된 행동이 야기할 수 있는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스토아 학파는 회의주의와는 달리 사물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명석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상록의 곳곳에 자주 등장하는 ‘지배기관(commanding faculty)’은 바로 이런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는 정신을 의미한다.

아우렐리우스가 어머니로부터 배웠다는 경건함은 인격신이자 유일신 숭배의 기독교와는 무관하다. 아직 기독교는 로마의 지배적 전통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건함이란 자연의 순리에 대한 믿음이며, 스토아의 신은 자연 자체, 혹은 자연의 순행 원리, 즉 이성(logos)과 동격으로서 ‘자연=신=이성’이 성립한다. 신은 우주 밖의 창조자가 아니라 우주에 내재한 범신론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자연에 속하는 모든 것은 내재적 신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등하며, 바로 이점은 스토아 학파의 정치 철학적 업적으로 부를 수 있는 사해 동포주의(코스모폴리타니즘)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따라서 스토아 학파가 최고의 삶의 방식으로 간주하는 ‘덕의 실현’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임을 자각하고 ‘자연의 섭리(하나의 영혼)와 일치하는 생활’을 의미하며, 이런 생활이 바로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운행은 우연이 아니라 로고스적, 즉 신적 질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정된 것을 무모하게 바꾸려는 것, 그것은 고통을 가져올 뿐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불만을 품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세상엔 신의 섭리가 있는가, 아니면 원자만 있어서 모든 사물이 우연히 결합되는 것인가라는 명제를 상기해 보라. 만약 현명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단지 원자들의 무질서한 결합에 불과할 뿐이다. 만약 현명한 신의 지배하에 이 세상이 움직인다면 불만을 품어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 세계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수많은 이론을 생각하라. 그러면 마침내 평안한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자연의 운행을 결정론적으로 해석했다. 자연의 결정론적 질서와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성찰은 인간 삶의 덧없음, 즉 명예나 부귀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에 대한 성찰과 함께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우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불행하다’는 판단은 본질적으로 사고의 오류라고 보고 있다. "불행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행은 영혼의 외투 혹은 오막살이에 불과한 육체의 조절되지 않은 기질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불행이 존재할 수 있다는 당신의 확신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그러한 확신을 거부하라. 그러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될 것이다. 설사 가장 가까운 이웃, 즉 보잘것없는 육체가 절단되고 불에 타고 고름이 흐르고 썩더라도 그것을 불행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만은 냉정해야 한다."

 

 

 

 

 

 

 

 

 

 

 

한 마디로 불행의 원인은 불행하다는 생각 그 자체일 뿐이며 불행이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의 한 주제를 만난다. 즉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불행이란 마음먹기 나름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유의지란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자유의지의 존재를 노예 출신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이자 그의 스승이었던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확인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에픽테투스 역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그가 ‘어떤 행위에’ 동의를 표할 때 필요한 기술 혹은 규칙을 발견해야 한다. 그는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때에 한하여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며, 사물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며, 감각적 욕망을 멀리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권능 안에 있지 않는 어떤 일도 회피하거나 반감을 보여서는 안 된다."

스토아 학파는 신적 질서에 의해 자연이 운행된다고 보았고 그것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유의지가 어떤 행위에 대한 동의와 반대로 드러난다고 보고 있으며, 여기에 발견되어야 할 규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의지의 한계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하여 자유의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동의도 반대도 무의미하다. 연구가들은 이처럼 스토아 학파가 제안하고 있는 우주적 결정론과 자유의지간의 관계설정을 ‘인간을 통한 결정론’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권능 내에서는 자유의지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동어반복으로서 자유의지의 존재여부는 인간의 권능이 가능한지와 일치한다. 위의 아우렐리우스와 에픽테투스의 주장은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선언이지 증명은 아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어떤 독자를 의식해서 쓰지는 않았다. 그것은 원제목이 말하듯이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글로서 그만큼 진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스토아 학파만이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위에서 인용한 명상록의 앞부분에 스토아 학파의 주장이 압축되어 있지만, 아우렐리우스는 그것을 그의 조부와 부모로부터 배웠다고 밝힌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욕망을 절제하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동서양과 고대, 현대를 막론하고 세계 종교와 철학자들이, 아니 일반인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항상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보편적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아우렐리우스의 개인적인 의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의 시대에 탄압을 받았던 기독교가 스토아 학파를 자신과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는 사람은 이 책의 저변에 깔린 아우렐리우스의 불안과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쟁터에서 막사에 돌아와 마음에서 자신의 휴식처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글을 쓰고 있는 황제 철학자를 상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 혹자는 이런 불안을 장기적 원정으로 지친 당시 로마사회의 분위기와 일치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조금 더 근본적이라고 보인다. 열정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하여 얻으려는 상태가 ‘아파타이아’ 임은 앞에서 말했다. 한 마디로 정신의 자유로움을 획득 내지는 회복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로움이란 마음의 ‘특정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어떤 특정한 마음의 상태가 편하고 좋다면 인간은 반복적으로 그 상태를 추구할 것이고, 우리는 이런 마음의 움직임을 욕망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욕망으로부터 해방을 통해 행복에 이른다는 원래의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는 다시 욕망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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