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아우렐리우스의 사색적 기록 「명상록」. 스토아적 철인으로서 격무에 시달리는 황제로서의 사상과 경험을 토대로 쓴 에세이로 인간 아우렐리우스의 고뇌가 나타난다.
그는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어떠한 외부의 자극이나 압력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으며 평정을 누릴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또한 선과 악을 함께 우주적 섭리의 의지로 받아들이게 하며, 인간과 신에 대한 불만을 털어버리고 격정과 허영으로부터 벗어나는 지혜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교보문고 제공]
수많은 인생 지침서의 고전!
시적으로 씌어진 철학의 걸작 <명상록>의 진가를 원전 번역으로 만나다
***철인 황제의 오래된 일기 그리고 셀프 리더십
잘 알려져 있듯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는 로마의 황제로 플라톤이 꿈꾸던 철인(哲人) 황제를 구현한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가 후세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은 황제로서의 정무에 종사할 때나 전선에 나가 전투를 지휘하는 동안에도 틈틈히 기록해두었던 철학적 성찰이 담긴 일기가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뛰어난 스승 아래 갈고 닦은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수사학적이고 시적으로 씌어진 이 일기가 우리에게는‘명상록’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기의 필사본에는‘자기 자신에게’(ta eis heauton)라는 그리스어 제목이 붙여져 있다. 그 당시 로마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리스어로 글을 쓰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국내에는 개화기 이후 25종에 이르는 중역본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의 명성에 걸맞은 그리스어 원전 번역 <명상록>(숲)이 출간되어 비로소 문학과 철학의 걸작 <명상록>의 진가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만을 향하여, 자신만을 위하여 써내려간 일기답게 <명상록>은 당대의 작가들은 물론 그의 측근들에게도 알려지지 않다가 4세기에 들어서야 발굴되었다. 그리하여 아우렐리우스는 명실공히 후기 스토아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평가받게 되었으며, <명상록> 역시 스토아 학파의 정신에 충실한 철학 원전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누락시키거나 뭉뚱그리는 무딘 번역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고전의 진가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발견과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그렇다면 <명상록>은 어떤 책인가
빌 클린턴 전미 대통령은 ‘TV, 책을 말하다’에 나와 자신의 자서전 이야기를 하며 청년기에 읽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자신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밝힌 바 있다. 권력보다 철학을 사랑한 철인(哲人) 통치자의 웅숭깊은 육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큰 울림과 모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이 황제였던 철학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그 어디에도 권력자나 1인자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삶에 대한 혜안과 인생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 씌어진 『명상록』에는 오히려 자신의 결함에 대한 경계, 스토아 학파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들려주는 충고와 반성, 자신에게 귀감이 될 만한 교훈적 성격의 짤막한 경구와 인용문, 그리고 신의 섭리, 인생의 무상함, 도덕적 정진, 같은 인류에 대한 관용 등, 우주에 홀로 선 고독한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생 지침서의 고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능력에 의해 ‘the Best man’을 양자로 들여 황제의 계승자로 삼았던 당시 풍습에 따라 아우렐리우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로마 제국은 이미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변방 이민족들의 크고 작은 침략에 끊이지 않았고, 그는 전쟁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철학하기에는 인생의 어떤 다른 상황도 네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만큼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명명백백하지 않은가!’(186쪽)라고. 아우렐리우스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이 책을 쓰며, 외부의 압력이 미치지 못하는 마음속에서 정신을 고양시키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원전에 따라 다소 투박하고 친절하지 않은 어투를 그대로 살린 번역은 아우렐리우스의 고뇌를 대변해주며 오히려 읽어갈수록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가 로마의 영토 전쟁과 그에 따른 전술과 전투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면, 그 후 20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역시 전장에서 집필된 『명상록』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과 그 정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로운 비교를 보인다.
***철학과 자기정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책은 더 이상 가질 것 없는 로마 제국의 1인자가 양심적이며 실천적인 황제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 자기정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전쟁터에서도 철학을 사랑한 아우렐리우스의 사색의 결과물인 <명상록>은 오늘날‘삶’이라는 전쟁터에 서 있는 우리에게 삶의 올바른 태도와 의미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2권(‘권’ 개념이 오늘날 종이책과는 다르지만 원전의 느낌을 살려 ‘장’으로 읽지 않고 ‘권’으로 읽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권은 가족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빚지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1권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나는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그는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에 대한 평판과 추억 덕분에 나는 겸손과 남자다운 기백을 갖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 덕분에 나는 경건과 선심과, 나쁜 짓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도 삼가는 마음과, 나아가 부자들의 생활 태도를 멀리하는 검소한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다.’1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들은 철학적, 윤리적인 단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요컨대 체계적으로 권을 나눈 것이 아니라 날짜 구분 없이 써내려간 일기를 후대의 학자들이 하나의 생각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읽기 편하게 나누어놓은 것이다. 때문에 <명상록>을 반드시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다.
우주의 질서와 장대함에 대한 찬미, 인류는 모두 세계라는 하나의 국가의 시민이라는 사해동포주의와 박애주의, 개인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책임, 우리 앞에 있었던 무한한 시간과 우리 뒤에 올 무한한 시간에 비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인생의 무상함, 어떤 노력으로도 어리석은 인간들의 신념은 바꿀 수 없다는 체념, 우주는 신의 섭리에 의해 지배되거나 아니면 원자들의 우발적인 운동일 거라는 확신 등을 주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이 책의 곳곳에서 변주된 형태로 발견되는데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곱씁었던 듯하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순응을 강조하는데, 스토아 학파에서 자연이란 산, 강, 바다 등과 같은 자연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주적 질서를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각 사물의 본성을 뜻하기도 하는데, 따라서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각각의 본성에 따르고 그것을 최대한도로 발현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 것들과 인간을 구별 지어주는 것, 바로 ‘이성’을 따르고 발휘하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주 자연과 소우주인 인간, 전체성과 개별성에 대한 그의 깊은 인식은 부동심의 경지를 희구하며 내면 바깥의 사물이나 일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 즉 부동심(不動心) 또는 평정의 상태에 이르는 길을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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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날카로운 기지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수 없다. 그렇다고 하자. 그래도 너에게는 “나는 타고나지 못했다니까요.”라고 말할 수 없는 다른 자질들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네 손안에 있는 그 자질들을 보여주도록 하라. 정직성, 위엄, 끈기, 향락에 대한 혐오, 운명에 대한 만족, 자비심, 마음의 자유, 검소함, 과묵함, 고매함 말이다. 너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든가 능력이 모자란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도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겠느냐? 그런데도 너는 자진하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너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핑계로 억지를 쓰며 네 운명에 대하여 불평하고, 쩨쩨하게 굴고, 아부하고, 네 가련한 몸을 탓하고, 잘난체하고, 큰소리치고, 마음을 들까불 참인가? 신들에 맹세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는 오래 전에 이런 결함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기껏해야 이해가 느리고 아둔한 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런 결점을 너는 훈련을 통하여 극복해야지, 너 자신의 태만을 무시하거나 즐겨서는 안 된다. (본문 73쪽)
아테네를 중심에 놓고 보면 변방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의 젊은 군주 알렉산드로스는 유럽, 지중해, 북아프리카 및 소아시아 지방을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긴 정복전쟁에 심신이 지친 그는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급사하고, 다음 해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망하였으나, 그리스 문화는 넓은 영역에 걸쳐 확산되었다. 제국의 영화는 짧았지만 문화는 지속적이었다. 이때부터 기원전 146년 로마가 코린트에서 그리스를 멸망시키고 정치적으로 지배하기 까지를 우리는 ‘헬레니즘’이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그리스 문화의 절정기에서 쇠퇴기로 이어지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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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헬레니즘기의 상이한 철학의 유파들이 모두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철학함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행복한 삶의 방식’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행복을 획득한 마음의 상태에 대한 기술이 강조되었다. 이런 점에서 헬레니즘기의 대표적 학파로 스토아를 지목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스토아학파가 서구사회에서 남긴 지속적인 영향력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이란 뜻의 ‘stoical’ 혹은 이에 상응하는 유럽어의 쓰임 에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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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는 로마제국 16대 황제(재위 161~180)로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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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불행의 원인은 불행하다는 생각 그 자체일 뿐이며 불행이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의 한 주제를 만난다. 즉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불행이란 마음먹기 나름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유의지란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자유의지의 존재를 노예 출신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이자 그의 스승이었던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확인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에픽테투스 역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그가 ‘어떤 행위에’ 동의를 표할 때 필요한 기술 혹은 규칙을 발견해야 한다. 그는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때에 한하여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며, 사물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며, 감각적 욕망을 멀리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권능 안에 있지 않는 어떤 일도 회피하거나 반감을 보여서는 안 된다." |
스토아 학파는 신적 질서에 의해 자연이 운행된다고 보았고 그것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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