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 한국 사회는 ○○사회다]명랑사회·건전사회·정의사회… 현실은 ‘거꾸로’
2014. 10. 8. 21:14ㆍ시민, 그리고 마을/시민사회운동과 사회혁신
[창간기획 - 한국 사회는 ○○사회다]명랑사회·건전사회·정의사회… 현실은 ‘거꾸로’
ㆍ‘○○사회’ 변천사
‘○○사회’ 조어는 오늘날의 현상만은 아니다.
군사 정권은 ‘명랑사회’ ‘건전사회’ ‘신뢰사회’ 같은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조어를 만들었다. 전두환의 ‘정의사회’처럼 정권의 ‘○○사회’는
실제 사회 현상 및 방향과 거꾸로 갈 때가 많았다.학계와 언론계, 시민사회에선 ‘전투사회’ ‘고속사회’ ‘복합위험사회’ ‘탈선사회’ 같은 말을 만들었다.
사회가 겪는 문제점의 한 단면을 지적한 조어다. 낙관 속에 사회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한 ‘맑은 사회’ ‘정직이 지배하는 사회’ ‘성숙사회’도 있다.
1960년부터 1999년까지 정권과 시민사회, 학자, 언론이 규정한 ‘○○사회’ 조어의 변천사는 당시 한국 사회를 알려주는 지표와도 같다.
■ 1960년대 - 명랑사회
“치안확보로 명랑사회 이룩하자” “풍요한 민주사회로 승공통일(공산주의를 이기고 통일)”. ‘명랑사회’나 ‘풍요한 민주사회’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반영한 조어다. 1960년대 군사정권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일방적으로 정해 하향식으로 전한 조어가 많았다. ‘반공이념’도 빠지지 않았다. 명랑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았던 그 시대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조어들이다.
언론들은 ‘각하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보도한다. “치안확보를 철저히 해 ‘명랑사회’를 이룩하고 한국교육발전의 암이었던 학교재단의 분규와 파벌싸움을 해소하라.”(1962년 2월8일자 동아일보 1면) 대통령 취임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박정희의 지시사항이다. 5년 뒤 ‘명랑사회’는 사회 일반에도 퍼졌다. “어떤 두 학생의 대화를 들으면 아주 친한 사이면서 어두가 욕으로 시작된다.(…)우리의 말을 아름답게 만들어 명랑한 학교, 명랑한 사회를 이룩해야겠다.”(1967년 9월6일자 경향신문 8면) 한 시민이 신문에 기고한 글 내용이다.
‘민주사회’는 북한과의 체제경쟁 속에서 나온 말이다. 박정희의 ‘민주’는 ‘반공’과 동의어였다. 1966년 7월18일자 동아일보 1면 ‘풍요한 민주사회로 승공통일’이란 제목의 기사는 박정희의 담화문 내용에 관한 것이다. 그는 “민주역량의 배양과 풍요한 ‘민주사회’ 건설에 승공통일의 길이 있다”며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우리의 실력을 길러 승공통일의 태세를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 1970년대 - 건전사회
“ ‘대중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무력한 개인이 되고 권력과 일로부터 소외돼 호소력 있는 선동자의 말에 쉽게 빠져 온 사회가 광적인 전체주의적 체제를 환영하는 사회다.” 1971년 7월4일 서강대에 모인 학자들은 한국이 대중사회냐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대중사회라 본 학자들은 “달구지와 트럭이 공존하고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근대적 핵가족이 동시에 있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혼재’라는 한국사회의 특징 때문에 나타난 문제”라고 설명했다. 반대 학자들은 “한국사회과학자들이 역사의식과 문제의식 없이 사회문제를 보며 대중사회 운운하는 것이다. 현 단계에는 문제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학계의 ‘대중사회’ 논쟁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1970년대 ‘대중사회’를 빼곤 당대 사회를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사회학적인 시도를 찾기 힘들다. 하물며 사회나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은 말할 것도 없다. 1960년대 조어의 경향은 이어졌다. 군사정권은 ‘건강한 사회’ ‘정보지식중심의 사회’ ‘명랑복지사회’ ‘건전사회’ 등의 조어를 만들었다. 경제적으로 가난했고 정치적으로 억압됐던 당시 사회의 실상이나 실제 비전과는 거리가 먼 ‘말뿐인 말’들이었다.
‘80년대 복지사회 앞당겨 이룩’ 기사(1976년 12월10일 경향신문 1면)에는 “1976년도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전국 5500명의 새마을지도자와 7500명의 새마을유공자가 모여 ‘자립복지사회’를 다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명랑복지사회건설 박 대통령 검사장 회의서 유시’(1970년 12월16일자 매일경제 1면)를 보면 박정희는 “질서·정의·근면과 검소를 바탕으로 균형있는 경제발전을 이룩해 명랑하고 안정된 복지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교육연합회는 1976년 5월2일부터 8일까지 새학교운동, 우리말 바로 쓰기 등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교육을 벌였다.
■ 1980~1987 - 정의사회
정권의 언론 탄압과 표현의 자유 억압 속에서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말이 등장했다. 최근의 ‘피로사회’ ‘위기사회’처럼 사회의 한 단면을 부각시키는 ‘고속사회’ 같은 말이 한 예다.
동아일보는 1981년 1월1일자 ‘고속사회 마음의 여유를 갖자’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속도로가 생긴 뒤 스스로를 ‘고속인생을 살고 있다’고 푸념하는 서울의 한 전기회사 상무 박모씨(42)의 사연을 소개했다.
박씨는 일주일에 2~5번 서울-부산을 왕복하며 전국이 1일 생활권임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차를 타고 있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바람처럼 스쳐가는 차량들과 미처 음미할 사이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들판풍경뿐이다”라며 “고속이 편리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완속에 대한 향수가 짙어진다”고 했다. 이 기사는 박씨의 사연과 함께 급격하게 성장한 1970년대를 1960년대와 비교하며 ‘껑충껑충 뛰면서 초고속으로 살아온 시대였다’고 설명했다. 기술혁신과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로 부지런히 따라가기에도 바쁜 시대가 됐고, 공해·노인문제 등도 더불어 생겼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5공의 ‘정의사회’ ‘신뢰사회’ 같은 조어를 반복 소개했다. ‘정의사회 앞에 특권 없다’ 기사(1982년 5월18일자 경향신문)는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의 인척인 이규광 전 광업진흥공사 사장을 구속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이씨 구속이 전두환의 ‘깨끗한 정치 깨끗한 정부의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측면이라고 설명한다.
■ 1988~1999 - 복합위험사회
민주화운동 이듬해인 1988년 ‘민주사회’란 조어가 등장한다. 1960년대 박정희의 기만적인 ‘민주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이 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설립됐다.
1989년 1월 김성현씨는 한겨레신문에 ‘민주사회 이룩 기대’라는 제목의 기고를 보냈다. 김씨는 “애초에 태어나서는 안될 정권이 외세를 등에 업고 태어났으며 6공화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구속처벌과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통해 새로운 민주사회가 도래하길 바란다”고 썼다.
1990년대 학계, 시민사회단체에서 다양한 ‘○○사회’가 나왔다. “한국사회는 외국에 잠깐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격렬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전투사회’입니다. 전투사회에서는 기다림을 인내하는 사이에 곧 그 전투에서 지고 만다는 생각이 팽배, 여유나 기다림은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지요.” 연세대 송복 교수는 1990년 11월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회를 ‘전투사회’로 규정했다.
송 교수는 “우리 사회가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해 유례없는 극심한 갈등을 겪는 이유는 최근 30년 사이 사회적 이동이 ‘급격하면서도 과격하게’ 이뤄졌지만 갈등의 빈도를 줄이고 강도를 낮추기 위한 갈등관리철학이나 기술은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참여연대는 1996년 1월9일 ‘맑은사회 만들기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부패방지기본법 등 제도 개선’ ‘부정재산환수 및 부패감시단 구성을 위한 시민행동’ 등을 추진하며 당시 문제가 됐던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부패가 없는 ‘맑은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고 원인을 ‘○○사회’로 분석하는 시도도 이어졌다. 1998년 3월에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펴낸 책 <한국인의 삶의 질-신체적·심리적 안전>은 한국사회를 ‘복합위험사회’ ‘폭증사회’ ‘날림사회’로 규정했다. 이 책의 저자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를 예로 들며 “정책 당국자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위험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문제가 생기면 기술공학적으로 해결하려 할 뿐 위험의 원천적 제거를 위한 사회체계의 내조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한국사회는 선진국형, 후진국형, 한국 특유형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사고공화국”이라며 “후진국형이란 공휴일을 빼고 하루 평균 223명이 다치고 9명이 죽는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율(1997년 상반기 기준)에서, 한국 특유형이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상징되는 ‘폭증사회, 날림사회’형 안전사고에서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사회’ 조어는 오늘날의 현상만은 아니다.
군사 정권은 ‘명랑사회’ ‘건전사회’ ‘신뢰사회’ 같은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조어를 만들었다. 전두환의 ‘정의사회’처럼 정권의 ‘○○사회’는
실제 사회 현상 및 방향과 거꾸로 갈 때가 많았다.학계와 언론계, 시민사회에선 ‘전투사회’ ‘고속사회’ ‘복합위험사회’ ‘탈선사회’ 같은 말을 만들었다.
사회가 겪는 문제점의 한 단면을 지적한 조어다. 낙관 속에 사회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한 ‘맑은 사회’ ‘정직이 지배하는 사회’ ‘성숙사회’도 있다.
1960년부터 1999년까지 정권과 시민사회, 학자, 언론이 규정한 ‘○○사회’ 조어의 변천사는 당시 한국 사회를 알려주는 지표와도 같다.
■ 1960년대 - 명랑사회
“치안확보로 명랑사회 이룩하자” “풍요한 민주사회로 승공통일(공산주의를 이기고 통일)”. ‘명랑사회’나 ‘풍요한 민주사회’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반영한 조어다. 1960년대 군사정권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일방적으로 정해 하향식으로 전한 조어가 많았다. ‘반공이념’도 빠지지 않았다. 명랑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았던 그 시대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조어들이다.
언론들은 ‘각하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보도한다. “치안확보를 철저히 해 ‘명랑사회’를 이룩하고 한국교육발전의 암이었던 학교재단의 분규와 파벌싸움을 해소하라.”(1962년 2월8일자 동아일보 1면) 대통령 취임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박정희의 지시사항이다. 5년 뒤 ‘명랑사회’는 사회 일반에도 퍼졌다. “어떤 두 학생의 대화를 들으면 아주 친한 사이면서 어두가 욕으로 시작된다.(…)우리의 말을 아름답게 만들어 명랑한 학교, 명랑한 사회를 이룩해야겠다.”(1967년 9월6일자 경향신문 8면) 한 시민이 신문에 기고한 글 내용이다.
‘민주사회’는 북한과의 체제경쟁 속에서 나온 말이다. 박정희의 ‘민주’는 ‘반공’과 동의어였다. 1966년 7월18일자 동아일보 1면 ‘풍요한 민주사회로 승공통일’이란 제목의 기사는 박정희의 담화문 내용에 관한 것이다. 그는 “민주역량의 배양과 풍요한 ‘민주사회’ 건설에 승공통일의 길이 있다”며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우리의 실력을 길러 승공통일의 태세를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1972년 2월10일자 경향신문
■ 1970년대 - 건전사회
“ ‘대중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무력한 개인이 되고 권력과 일로부터 소외돼 호소력 있는 선동자의 말에 쉽게 빠져 온 사회가 광적인 전체주의적 체제를 환영하는 사회다.” 1971년 7월4일 서강대에 모인 학자들은 한국이 대중사회냐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대중사회라 본 학자들은 “달구지와 트럭이 공존하고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근대적 핵가족이 동시에 있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혼재’라는 한국사회의 특징 때문에 나타난 문제”라고 설명했다. 반대 학자들은 “한국사회과학자들이 역사의식과 문제의식 없이 사회문제를 보며 대중사회 운운하는 것이다. 현 단계에는 문제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학계의 ‘대중사회’ 논쟁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1970년대 ‘대중사회’를 빼곤 당대 사회를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사회학적인 시도를 찾기 힘들다. 하물며 사회나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은 말할 것도 없다. 1960년대 조어의 경향은 이어졌다. 군사정권은 ‘건강한 사회’ ‘정보지식중심의 사회’ ‘명랑복지사회’ ‘건전사회’ 등의 조어를 만들었다. 경제적으로 가난했고 정치적으로 억압됐던 당시 사회의 실상이나 실제 비전과는 거리가 먼 ‘말뿐인 말’들이었다.
‘80년대 복지사회 앞당겨 이룩’ 기사(1976년 12월10일 경향신문 1면)에는 “1976년도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전국 5500명의 새마을지도자와 7500명의 새마을유공자가 모여 ‘자립복지사회’를 다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명랑복지사회건설 박 대통령 검사장 회의서 유시’(1970년 12월16일자 매일경제 1면)를 보면 박정희는 “질서·정의·근면과 검소를 바탕으로 균형있는 경제발전을 이룩해 명랑하고 안정된 복지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교육연합회는 1976년 5월2일부터 8일까지 새학교운동, 우리말 바로 쓰기 등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교육을 벌였다.
■ 1980~1987 - 정의사회
정권의 언론 탄압과 표현의 자유 억압 속에서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말이 등장했다. 최근의 ‘피로사회’ ‘위기사회’처럼 사회의 한 단면을 부각시키는 ‘고속사회’ 같은 말이 한 예다.
동아일보는 1981년 1월1일자 ‘고속사회 마음의 여유를 갖자’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속도로가 생긴 뒤 스스로를 ‘고속인생을 살고 있다’고 푸념하는 서울의 한 전기회사 상무 박모씨(42)의 사연을 소개했다.
박씨는 일주일에 2~5번 서울-부산을 왕복하며 전국이 1일 생활권임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차를 타고 있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바람처럼 스쳐가는 차량들과 미처 음미할 사이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들판풍경뿐이다”라며 “고속이 편리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완속에 대한 향수가 짙어진다”고 했다. 이 기사는 박씨의 사연과 함께 급격하게 성장한 1970년대를 1960년대와 비교하며 ‘껑충껑충 뛰면서 초고속으로 살아온 시대였다’고 설명했다. 기술혁신과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로 부지런히 따라가기에도 바쁜 시대가 됐고, 공해·노인문제 등도 더불어 생겼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 5공의 ‘정의사회’ ‘신뢰사회’ 같은 조어를 반복 소개했다. ‘정의사회 앞에 특권 없다’ 기사(1982년 5월18일자 경향신문)는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의 인척인 이규광 전 광업진흥공사 사장을 구속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이씨 구속이 전두환의 ‘깨끗한 정치 깨끗한 정부의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측면이라고 설명한다.
■ 1988~1999 - 복합위험사회
민주화운동 이듬해인 1988년 ‘민주사회’란 조어가 등장한다. 1960년대 박정희의 기만적인 ‘민주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이 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설립됐다.
1989년 1월 김성현씨는 한겨레신문에 ‘민주사회 이룩 기대’라는 제목의 기고를 보냈다. 김씨는 “애초에 태어나서는 안될 정권이 외세를 등에 업고 태어났으며 6공화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구속처벌과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통해 새로운 민주사회가 도래하길 바란다”고 썼다.
1990년대 학계, 시민사회단체에서 다양한 ‘○○사회’가 나왔다. “한국사회는 외국에 잠깐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격렬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전투사회’입니다. 전투사회에서는 기다림을 인내하는 사이에 곧 그 전투에서 지고 만다는 생각이 팽배, 여유나 기다림은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지요.” 연세대 송복 교수는 1990년 11월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회를 ‘전투사회’로 규정했다.
송 교수는 “우리 사회가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해 유례없는 극심한 갈등을 겪는 이유는 최근 30년 사이 사회적 이동이 ‘급격하면서도 과격하게’ 이뤄졌지만 갈등의 빈도를 줄이고 강도를 낮추기 위한 갈등관리철학이나 기술은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참여연대는 1996년 1월9일 ‘맑은사회 만들기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부패방지기본법 등 제도 개선’ ‘부정재산환수 및 부패감시단 구성을 위한 시민행동’ 등을 추진하며 당시 문제가 됐던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부패가 없는 ‘맑은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고 원인을 ‘○○사회’로 분석하는 시도도 이어졌다. 1998년 3월에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펴낸 책 <한국인의 삶의 질-신체적·심리적 안전>은 한국사회를 ‘복합위험사회’ ‘폭증사회’ ‘날림사회’로 규정했다. 이 책의 저자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를 예로 들며 “정책 당국자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위험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문제가 생기면 기술공학적으로 해결하려 할 뿐 위험의 원천적 제거를 위한 사회체계의 내조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한국사회는 선진국형, 후진국형, 한국 특유형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사고공화국”이라며 “후진국형이란 공휴일을 빼고 하루 평균 223명이 다치고 9명이 죽는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율(1997년 상반기 기준)에서, 한국 특유형이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상징되는 ‘폭증사회, 날림사회’형 안전사고에서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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