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 한국 사회는 ○○사회다]학자들이 본 ‘시대의 표어’… 독재자는 국민 정신 개조, 시민은 사회문제 해결 위해 사용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뻔한 겁니다.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그 정당성을 채우기 위해 포장하는 거죠. 정의롭지 못한 정권이 정의사회라는 말을 쓰고, 신뢰가 없는 정권이 신뢰사회라고 하고, 현실은 굉장히 불쾌하고 우울한데 명랑사회라고 부르는 거죠.” 사회학자 정수복 박사가 평가한 군사정권의 ‘○○사회’ 이름 짓기다.
정 박사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명랑사회라는 선전문구를 만들자 명랑이라는 이름의 잡지와 두통약도 등장했다”며 “언론이 통제된 사회에서 정권이 말을 만들고 신문·잡지 같은 매체로 널리 알려 이런 표어들이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취재에 응한 학자들이 내린 군사정권이 만든 표어에 대한 평가는 비슷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군사정권은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인 ‘국가주의’로 국민 정신을 개조하려고 많은 표어를 만들었다. 언론이 통제돼 정권 비판적 표어는 나오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체제와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뜻을 가진 용어들을 사용한 것”이라며 “부당한 방식으로 권력을 획득한 게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민주화항쟁 이듬해인 1988년 이후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사회’를 슬로건으로 사용했다. 정수복 박사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와 해결을 표어로 제시해 힘을 모으자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했다.
김형철 교수는 “군사정권 이후 시민사회단체에서 나온 ‘맑은사회’ 같은 표어는 권위주의 사회의 부패를 해소하려는 반대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라며 “이는 문화적 청산의 의미로 볼 수 있다. 권위주의 행태를 청산하려는 뜻에서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수식어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나영 교수는 최근 학계, 출판계에서 나온 ‘○○사회’ 표어들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1970~1990년대 학계도 ‘복합위험사회’ ‘범죄화사회’ ‘전투사회’ 같은 용어를 만들었고 최근 나오는 ‘피로사회’ ‘위험사회’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한국사회가 겉으로는 성장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단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