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 한국 사회는 ○○사회다]당신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2014. 10. 8. 21:01시민, 그리고 마을/시민사회운동과 사회혁신

[창간기획 - 한국 사회는 ○○사회다]당신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김종목·박순봉·이혜리 기자 jomo@kyunghyang.com
한때 한국 사회를 가리키는 말은 단순하고 뚜렷했습니다. 산업발전 측면에서 한국은 오랫동안 ‘농업사회’였습니다. 현대 정치사를 떠올리면 엄혹한 ‘독재사회’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2014년 현재 한국 사회를 한두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책 제목을 빌리면 ‘사회를 말하는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위험사회’ ‘감정사회’ ‘중독사회’ ‘단속사회’ 등등. 최근 3년간 출간된 ‘○○사회’란 제목의 책은 20종이 넘습니다. 학계에서도 사회문제, 병리 현상을 ‘○○사회’라는 조어로 분석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납니다. ‘○○사회’ 담론 현상을 진단하는 학술대회도 열렸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동우씨(52) 가족은 매일 밤 10시30분이 돼야 집에 모인다. 이들은 식당에서 또 학교에서 고된 일상을 마치고 돌아와 같이 식사를 한 뒤 제각각의 자리로 가 취침 전 시간을 보낸다. 경향신문이 살펴본 김씨 가족 5명의 하루는 감정사회, 피로사회, 격차사회, 절벽사회 등 여러 ‘○○사회’의 증상과 단면을 보여준다. 유별난 가족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평범하되 저마다 불안과 고통을 감당하며 살아가는많은 한국 가정의 초상이 들어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지식사회에서 유행한 작명은 시민들에게도 익숙합니다. 경향신문이 취재한 페이스북 독자들과 시민들은 ‘알바사회’ ‘상실사회’ ‘껍질사회’ ‘CCTV사회’ ‘무력(無力과 武力)사회’ ‘배신사회’란 말로 한국 사회를 진단합니다.

‘○○’을 이루는 명사들은 어둡고 슬프며 화가 난 한국 현실을 보여줍니다. 정치와 소통의 부재, 제도의 빈곤, 자본주의의 욕망, 기득권의 욕심, 소외와 배제의 고통, 갑을관계의 아픔, 안전사고의 공포 같은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출판평론가 장동석은 “여러 분야에서 임계점에 달한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말들”이라고 분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 모멸, 수치, 분노, 좌절, 단절의 감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회 핵심을 연대와 공동체라고 한다면 지금 여기의 ‘○○사회’는 ‘사회 같지 않은 사회’일 겁니다.

‘○○사회’ 조어와 담론은 현상이라 부를 만합니다. 사회학자 정수복은 “잘 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와 그런 삶이 가능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를 질문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경향신문 창간기획은 이 조어의 유행과 담론을 분석합니다. 자영업자 김동우씨(52) 가족의 일상에 녹아든 여러 ‘○○사회’의 징후와 단면도 살폈습니다. 김씨는 경제적 이유로 아들의 꿈을 들어주지 못해 ‘절벽사회’를 느끼고, 아들은 ‘You know’라는 추임새를 쓰는 강남 아이들에게서 ‘영어계급사회’를 떠올립니다. 이 평범한 가족의 ‘○○사회’는 대부분이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사회’ 작명의 원조 격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군사독재 정권입니다. 박정희는 ‘명랑사회’ ‘건전사회’란 말을 퍼뜨렸습니다. 전두환의 ‘정의사회’는 유명합니다. 이명박의 ‘공정사회’도 있습니다. 은폐와 호도의 목적으로 정권이 만든 ‘○○사회의 프로파간다’와 변천사도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듯합니다.

창간기획에서 던진 질문은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 있습니까’입니다. 이 질문은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습니까’라는, 즉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모색하는 시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