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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붓글씨 ‘敬天(경천)’ 서울대교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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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4. 8. 7.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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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붓글씨 ‘敬天(경천)’ 서울대교구로

 

“천주교 정신 담긴 유일한 유묵은 아냐”

배선영 기자  |  daria20120527@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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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6  11: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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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유묵 ‘경천’을 서울 잠원동성당이 5억9000만 원에 사들여 지난 4일 서울대교구에 기증했다. (사진 출처 / 뉴스Y 동영상 갈무리)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남긴 유묵(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 ‘경천’이 지난 4일 서울대교구 소유가 됐다.

박삼중 스님(서울 보덕사 주지)이 일본에서 들여온 ‘경천’은 지난 3월 서울 옥션 경매장에 7억 원에 나왔으나 유찰되었다. 그 뒤 서울 잠원동성당에서 5억9000만 원에 경천을 사들여 서울대교구에 기증했다.

조광 교수는 경천이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준말”이라며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성경적 근거를 가진 용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경천’을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받기 전에

 종교적으로 가장 깊이 몰입했을 때 썼다고 보고 있다.

한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연구원 윤원일 부원장은 경천이 서울대교구에 기증된 것에 대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경천’이 안중근 의사의 천주교 신앙을 보여주는 유일한 유묵이라고 소개한 것을 두고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 부원장은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서 쓴 유묵들 전체에 그의 신앙심이 배어있으며, 특정 단어에만 천주교 정신이 담겨있다고 보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신앙심을 협소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중근 의사는 1897년 만 17살에 세례를 받았고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윤 부원장에 따르면 그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에도 매일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러나 당시 한국 교회를 주도한 선교사들은 “살인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 의사에게 잘못을 시인하라고 요구했고, 그의 마지막 고해성사와 미사 요청을 거부했으며. 그럼에도 뤼순 감옥에 찾아가 안중근 의사에게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준 빌렘 신부를 징계했다.

조광 교수에 따르면 해방 뒤 1946년 3월 26일 노기남 주교가 명동성당에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면서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 신자로 복권됐다.

윤원일 부원장은 이에 대해 “안중근 의사는 주교나 추기경이 드린 미사와 상관없이 신자로 남아있으며, 신앙인 안중근으로 전승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삶 자체가 신앙인의 삶이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는 ‘경천’을 8일부터 10월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천주교 유물 전시회 ‘서소문 · 동소문 별곡’전에서 선보인다. 이후 서울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했다가, 2017년에 완공될 서소문 순교성지 교회사박물관에 전시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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