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광장. 나는 교육운동을 하는 스웨덴 활동가와 담소 중이었다. 그가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청년을 불러 세웠다. "당신이 묻는 내용은 이 사람이 더 잘 알 겁니다." 통성명을 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손을 건넨 청년은 35세의 스웨덴 현직 국회의원이라고 했다. 7월 첫 주, 스웨덴에서 열린 8일간의 축제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알메달렌'은 스웨덴 해변 휴양지이다. 지금은 축제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축제의 주제는 '정치'다. '정치 축제' 알메달렌은 매년 스웨덴 의회 회기가 끝나는 마지막 주에 개최된다. 정당, 시민단체, 기업, 학생 등 온갖 부류의 단체와 시민들이 모인다. 올가을에는 스웨덴 총선이 예정돼 있어서 예년보다 많은 3500여 차례 세미나가 열렸고 3만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다양한 현안에 대해 정치인들과 직접 얘기를 주고받으며 정치를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정치 놀이공원'인 셈이다.
'정치인은 열심히 일한다'는 신뢰가 있는 스웨덴이번 알메달렌 기간이 8일인 이유는 현재 스웨덴 의회에 진출한 정당 수가 8개이기 때문이다. 각 정당의 대표들은 하루씩 돌아가면서 인터뷰와 연설을 통해 자기 정당을 '홍보'한다. 첫날에는 9월 총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사민당의 당대표 스테판 로벤이 나섰다. 저녁에 시작된 그의 연설에는 수천명이 모였다. 정당 대표 연설에 수천명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것도 신기했지만, 연설이 끝난 후 펼쳐진 광경은 더 놀라웠다. 사민당 정치인들이 군중에 섞여서 둥그렇게 모여 앉은 뒤, 자연스럽게 정책을 홍보하고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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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치훈 제공 6월29일 개막한 알메달렌 '정치 축제'. 스웨덴 의회의 여덟 개 정당 대표가 하루씩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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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축제가 가능할까. 한 시민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신뢰는 '정치인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보좌진이 없다. 그럼에도 의원 한 사람이 8~9명씩 보좌진을 거느리는 한국보다 많은 입법 결과물을 쏟아낸다. 한 해 평균 70개 이상의 입법안을 내다 보니, 총선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자발적으로 의원직을 그만두는 정치인이 많을 정도다. 또 다른 신뢰의 전제는 검소함이다.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한다. 업무추진비로 택시 한 번 타는 것도 어렵다. 23년간 스웨덴의 총리로 재임하면서 지금의 스웨덴 복지 모델을 만든 타게 에를란데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퇴임했을 때 노후를 보낼 집 한 채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대다수 국민을 감동시켰다.
이런 정치인들은 다 별에서 온 걸까. '열심히 일하고 검소한' 국회의원을 만든 것은 바로 스웨덴 국민이다. 스웨덴의 총선 투표율은 다소 하락했음에도 85% 선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인 처지에서 국민이 무섭지 않겠는가. 텔레비전 수신료를 미납했다는 이유로 장관직을 내놓고, 집 증축 수리를 허가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리가 벌금을 내고 법정에 서는 문화는 바로 이런 높은 투표율을 비롯해 '정치 축제'가 가능한 참여의식의 산물이다.
한국에선 '꿈같은 이야기'라며 외면받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이 북유럽의 한 나라에서는 현실이 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 사람으로서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이 '비현실적인' 정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치는 그렇게, 어느 나라에서는 전쟁이 되었고, 어느 나라에서는 축제가 되었다.
성치훈 (연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 webmaster@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