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최근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성별, 연령, 직업 유무 등에 관계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소득을 말한다. 이에 반대하는 논의 가운데 ‘기본소득은 공동체 윤리에 반하는 개인주의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어 옳지 않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이는 북유럽 국가들이 가진 보편복지의 힘이 ‘개인주의’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점은 간과한 것이다. 개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알아서 각자 경쟁하고 국가는 이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가치(‘신자유주의’)에 호되게 당해온 우리로서는, 북유럽의 보편복지와 개인주의의 공존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북유럽식 개인주의’는 신자유주의나 이기주의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북유럽식 개인주의는 불평등한 권력관계 안에 있는 개인들이 저마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개인 편에 서서 최대한의 지원을 해준다는 것을 국가의 존재 이유로 생각한다. 모든 개인은 자율성을 보장받고 가족을 통하지 않고 국가와 직접 관계한다. 다시 말해, 국가는 시민 개인을 모든 형태의 종속과 의존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의무를 갖는다. 빈민을 자선단체로부터, 노동자를 고용주로부터,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어린이를 부모로부터, 노인을 자식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의무를 갖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유럽식 개인주의’이고 이는 ‘철저한 개인주의’ 혹은 ‘급진적 개인주의’라 불린다. 급진적 개인주의란 다름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개인이고 개개인이 안녕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회도 안녕할 수 있다고 본다. 가족이 아니라 개개인의 복지에 초점을 두는 가치관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세제와 가족법 개정을 통해 개인이 가족에 가장 덜 의존하는 사회, 즉 가장 개인화된 사회를 만들어왔다. 북유럽 사람들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의존하지 않는 관계, 서로 평등한 권력관계에 있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상적인 가족도 누가 누구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 일하고 각자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어느 학회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다 한 청중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기본소득이 ‘개인’과 ‘자유’를 강조한다면 ‘신자유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결국 ‘공동체 가치’를 해치는 것은 아닌가? 그때도 답하였지만 한 번 더 답하고자 한다. 개인이 국가한테 요구할 권리를 가족에게 떠넘기는 것이 ‘가족가치주의’라면 그런 형식적 공동체주의를 계속 떠받들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가치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이나 한국보다 북유럽 나라들에서 오히려 사람들은 훨씬 더 질 높은 삶을 살고 훨씬 더 많은 아이를 낳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그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주기 때문이고, 국가의 의무가 바로 그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매일 생계 전쟁에 시달리며 모든 관계가 생계형으로 엮일 수밖에 없는 한국 사람들은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보편복지제도를 가진 북유럽 국가들의 여유로운 일상을 부러워한다. 그런 북유럽 복지국가들조차 이제 기본소득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 기술발달, 인구학적 변화 등으로 인해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노동복지 기조가 숱한 사각지대와 불만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소득 양극화와 실업, 저출산과 고령화, 노인빈곤 등의 문제를 껴안고 있는 한국은 이제부터라도 기본소득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박이은실 여성학자·기본소득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