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숫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동녘·1만7000원
예외가 없다. 나쁜 건 1등, 좋은 건 꼴등. 노인 자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80.3%), 출산율 꼴찌(1.2명). 임시노동자 비율 1위(23.76%), 노조 조직률 꼴찌(10.3%). 여기까지는 상식에 속한다고 쳐두자. <분노의 숫자>는 그동안 막연히 느낌만으로 짐작해온 한국 사회의 일관된 흐름이 생생한 숫자로 살아오는 불평등 백과사전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평등한, 디스토피아의 숫자다.책은 한국인들이 태어나서, 청소년기를 거쳐,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고, 늙어가는 생애주기를 따라 불평등의 통계를 퍼올린다. 최저 출산율의 배경에는 오이시디 최하위의 아동가족복지 지출(GDP 대비 0.8%)이 자리잡고 있고, 아이 낳아 대학까지 보내는 데 3억1000만원이 드는 최악의 사교육 의존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GDP 대비 교육비 민간 지출 1위) 입시교육의 악몽은 ‘청소년 사망자 10명 중 3명이 자살’이라는 통계에서 확인된다. 대학가 주변 평균 임차료가 타워팰리스 평당 임차료보다 3만4000원이나 비싸다는 역설은 대학생·청년의 빈곤 실태를 보여주는 작은 단면일 뿐이다. 최악의 고용률을 뚫고 취업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산업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정규직 비율은 79.5%로 300인 이상 사업장(15.3%)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높다. 임금은 3분의 1밖에 안 된다. 임금이 많든 적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살인적 노동시간은 마찬가지다. 2011년 한국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90시간으로 오이시디 평균(1765시간)보다 325시간이나 많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통계로 확인된다. 1985년 이후 기업과 가계의 소득 증가율 격차는 무려 4배로 벌어졌다. 10대 대기업은 123조7000억원(2012년)의 현금을 쌓아놓고 있다. 아파트 전세 가격 상승률은 소득 증가율의 2.5배나 되고, 저축만으로 집을 사려면 평균 27년이 걸린다.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률(소득 대비)은 고소득층의 6배나 된다.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도 고소득층의 10배 이상이다. 여성은 더 열악하다. 성별 임금격차는 37.4%로 단연 오이시디 1위이고, 여성 저임금 노동자 비율(41.3%)도 1위다. 맞벌이 가구의 여성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3배에 이른다. 보기 편한 그래픽으로 효과적으로 편집된 이 책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치가 거꾸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폭로한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필자들은 에필로그에서 “이 책은 분노만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며 “이 책이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