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여는 생각
도시의 로빈후드
박용남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울이 자랑하는 도심 중앙 버스전용차로 등 대중버스 체제를 세계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몇 등쯤 될까? 박용남 지속가능도시 연구센터 소장은 새 책 <도시의 로빈후드>에서 “동메달급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 판정을 내린다. 그래도 메달권에는 들어간다니 실로 다행이지만, 이 책이 인용한 세계 36개 도시 사례연구 결과를 보면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브라질의 꾸리찌바 등 남미 6개 도시와 중국 광저우 간선급행버스 시스템이 금메달급이다. 그 다음 미국 클리블랜드와 프랑스 후앙,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호주의 브리저번 등이 은메달, 그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유진, 피츠버그, 캐나다 오타와, 프랑스 낭트, 중국 베이징이 동메달급이다.실은 서울은 연구대상 36개 도시에 포함되지도 않았는데, 박 소장이 국제교통개발정책연구원(ITDP) 등 5개 기관이 공동으로 발표한 평가기준을 적용해 본 것이다. 박 소장에 따르면, 서울은 세계의 다른 도시들이 앞서가는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있던 자산마저 까먹으며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쟁점이 되고 있는 버스공영제나 무상버스도 생각과 인프라를 먼저 바꾸지 않는 한 생산적인 논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간선급행버스 시스템뿐만 아니라 이를 포함한 도시 교통체제 전체를 혁신하려는 노력은 뉴욕, 파리 등 주요국의 선진 대도시들도 다르지 않다. 서울이 중앙버스차로를 모방한 브라질의 꾸리찌바나 보고타는 세계가 상찬하는 혁명적 생태교통, 지속가능 교통을 추구하고 있다. 박 소장은 도시들의 이런 혁신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창의적인 천재들에 주목한다. 그들이 바로 ‘도시의 로빈후드’요 ‘21세기의 돈 키호테’들이다. 이 천재들의 구상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탈 자동차’다. 박 소장은 미국, 독일 등 주요국들의 1인당 자동차 주행거리가 줄어들고 있는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자동차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얘기한다. 아직도 도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하를 파헤치며 도로를 신설하고 확장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리하여 이 땅을 자동차와 자동차산업의 포로로 만들면서 국토를 생태적 불모지로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의 도로 및 교통정책을 이젠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도시의 로빈후드>의 제2부는 ‘위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생산 정점을 지난 석유 등 자원고갈과 기후변동·생태파괴로 인한 위기에 대처하려는 대안 노력들을 살핀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공원이 된 도심 고속도로와 분리된 중앙 버스전용차로. 프랑스 파리는 센 강 제방을 따라 건설한 연장 13㎞의 조르주 퐁피두 고속도로를 폐쇄해 시민들이 놀이와 산책, 일광욕을 즐기는 강변 공원으로 만들었다. 서해문집 제공 |
미국 유진 시의 중앙 버스전용차로. 서해문집 제공 |
차량정체가 심한 도로를 들어내고
보행 및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장했다
주변 도로들의 차량속도가 증가했고
타임스스퀘어 보행자 수가 크게 늘었다도시 혁신 노력에는 환경파괴로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이에 대처 못하면 자멸한다는 위기감
그에 따른 철학의 변화가 깔려 있다 사딕칸 뉴욕 교통국장이 서머 스트리트를 실시할 때 벤치마킹한 게 바로 보고타의 차없는 거리 사업인 ‘시클로비아’와 ‘파리 플라주’였다. 책이 인용한 금메달급 도시에는 보고타를 비롯해 쿠리치바, 리우데자네이루, 리마, 과달라하라, 메데인 등 중남미 지역 도시가 6곳이나 들어 있다. 중국의 광저우와 항저우, 베이징까지 포함한 이들 이른바 신흥국 주요도시들이 주목할 만한 혁신도시가 된 데에는 상대적으로 낙후한 인프라를 단기간에 만회하려는 의지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들 도시가 선진국 도시들을 모방하거나 그대로 뒤쫓아가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서방 주요 도시들의 한계까지 뛰어넘으려 했다. 이 점은 <도시의 로빈후드> 제2부에서 살펴보는 ‘외래형 개발’과 ‘내생적 발전’이란 개념에 비춰 봐도 중요하다. 이 책이 크게 평가하는 일본의 가나자와와 이탈리아 볼로냐, 스페인 몬드라곤의 놀라운 성취들은 외부 추수형이 아닌 내생적 발전 노선을 추구한 결과였다. 한국의 도시들에 그런 면을 주목하라고 박 소장은 촉구하고 있는 것 같다.그렇다고 뉴욕이나 파리가 단순히 신흥 도시들을 벤치마킹한 건 물론 아니다. 그들 도시의 혁신 노력에는 자원고갈과 기후변화, 환경파괴 등으로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자멸한다는 위기감, 그에 따른 사고와 철학의 변화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석유 생산은 이미 정점을 넘어섰다. 서방 주요 8개국을 대상으로 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연구(2012년)는 자동차 이용이 정점(Peak car)을 넘어섰다는 결과를 내놨다. 미국 등에서는 자동차 주행거리가 2005년에 이미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단다. 여기에는 기름값 폭등, 실직자 증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보는 문화변동 등도 작용했을 것이다. 외르크 프리드리히스 옥스퍼드대 교수는 2010년 <에너지 정책>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과 북한, 쿠바 세 나라를 비교했다. 프리드리히스 교수는 석유 생산이 이미 정점(피크 오일)을 지났거나 지나고 있고 머지않아 고갈될 것이며, 석탄이나 원자력으로는 현대 공업사회와 농업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세계는 머지않아 삶의 양식을 바꾸고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19세기 초부터 중엽까지 석유의 90%를 미국에서 수입했던 일본(일제)은 1930년대 말 중국 대륙 침략을 본격화한 뒤 미국이 대일 경제제재를 강화하자 결국 하와이 미국 태평양함대를 공격했다가 파멸했다. 소련에서 석유를 싼값에 들여오던 북한 역시 소련 붕괴로 석유 수입이 끊기면서 궤멸적 타격을 입는다. 쿠바는 북한과 동일한 상황에 직면했고, 미국으로부터 일본 이상의 제재를 당했으나 살아남았다. 그 비결은 “공동체에 토대를 두고 다양한 영역에서 회복력을 증진시키면서도 사회적인 연대와 전통적인 지식의 부활을 아주 성공적으로 잘 추진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불황 속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이탈리아 볼로냐도 닮은 점이 있다. 예컨대 볼로냐는 재개발된 건물 바닥면적의 30%는 재개발 이전의 집세와 같은 수준으로 그곳 주민에게 임대해준다는 내규를 만들어 부자들의 횡포를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사유지의 나무 한 그루도 벌채할 때 시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단다.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