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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적이 아니다--신기철

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by 소나무맨 2014. 5. 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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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적으로 아는’ 나라 [2014.05.05 제1009호]
[출판]한국전쟁 통해 국가권력의 남용과 이기심을 폭로한,
신기철의 <국민은 적이 아니다>
     싸이월드 공감  
2014년 4월16일, 승객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선장은 승객의 안전은 뒤로한 채 제일 먼저 탈출하고 승무원들은 승객에게 대피하라는 안내방송도 하지 않았다. 정부도 대형 참사 앞에서 부실한 재난 시스템을 드러냈다.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피란을 떠났으면서도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서울시민은 안심하라”는 거짓 방송을 하며 서울 피란민의 발길을 막았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우리 군은 ‘인민군의 남하 저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고, 민간인 8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의 간극만 있을 뿐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는 닮아 있다.

“대한민국 제1호 피란민 이승만”

» 한국전쟁 당시 홀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소장 자료
한국전쟁이라는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국민은 적이 아니다>는 당시 민간인 학살을 통해 국가권력의 남용과 이기심을 폭로한다. 저자는 2006~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팀장으로 활동하며 “국가는 왜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댔을까”라는 물음을 안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갔다. 그 물음의 답을 이승만과 이승만 정부에서 찾는다. 한국전쟁을 “이승만의 친위 쿠데타”로 규정한 저자는 전쟁을 통한 정권 연장의 묘수가 숨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승만은 전쟁 와중에 인민군 협조자들의 처벌을 위한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비상조치령)을 공포한다. 이승만 정부가 침략하는 적보다 적에 협력할 것으로 보이는 국민을 더 두려워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지만 전쟁 전후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감옥에 가두었던 ‘비상조치령’은 1952년 헌법위원회(헌법재판소의 전신)의 위헌 판결을 받았다. “비상조치령은 국방경비법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을 재판이라는 형식으로 학살한 사이비 법률이었다. 1999년까지 무려 40여 년간 감옥에 있었던 장기수 상당수가 한국전쟁 당시 바로 이 국방경비법을 위반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후 60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법살 당한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후속 조치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자는 진실화해위에서 과거사 진상 조사를 하며 마주한 국민보도연맹 사건, 부역 혐의자 학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영동 노근리 사건 등 전쟁 중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전모도 밝힌다. 노근리 양민 학살을 벌인 미국 군부대 전투일지와 활동보고서에 담긴 “전투 지역 내로 들어오는 모든 피란민들은 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는 기록을 꺼내고 민간인 희생자 수가 군경의 전투 성과로 보고된 사실을 폭로한다.


반성 없는 역사의 되풀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는 민간인 학살로 희생된 이들이 약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6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의 명예 회복, 진실 규명,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자는 아직도 ‘국민을 적으로 아는’ 국가권력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을 종북으로 매도하며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에는 반목과 증오감이 커지고 있다고. 그렇게 국가는 아직도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며 반성 없는 역사에 미래는 없다는 경고를 외면하고 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국민은 적이 아니다』는 두 방향에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하나는 그동안 절대적 권위를 누려오던 국방부에서 편찬한 [한국전쟁사]와 이른바 ‘전쟁영웅’들의 기록들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그 속에 내재된 오류를 자체 논리로 하나하나 비판해 나간다. 그러면서 그는 민간인집단학살에 이르게 되는 배경으로 당시 국가권력의 무능과 이기심을 폭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기밀로 관리되어오던 국가기록을 조사하면서 확인한 민간인집단학살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있다. 전쟁에 패해 후퇴를 하면서도 치밀하게 자기 국민을 집단 학살한 사실을 사단별 후퇴경로를 추적하며 밝혀내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신기철

저서 (총 1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인천 & 구로 & 영등포에서 10여 년간 금속노동자로 일했다.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에서 일하면서 기본법 제정 운동에 참여했다. 위원회 활동을 마칠 즈음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이 이어지고, 과거사 정리가 우리사회의 화두로 등장했다. 여의도에서 유족들이 한 겨울동안 철야농성을 진행하자 활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참여하여 2005년 기본법이 제정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이후 5년 동안 부역혐의 사건을 담당하면서,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조사해 오던 고양 금정굴 사건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해체되었지만, 국가범죄로 인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목차

추천사 진실과 인권을 찾아서

머리말 한국전쟁사를 되돌아보다

1장 피난민 제1호가 대통령?
이승만의 일주일과 전쟁 시나리오
정상성 | 이승만의 일주일 | 이승만에게 전쟁 시나리오가 있었을까? | 이승만의 부산행은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

2장 한강철교는 파괴되지 않았다?
한강철교 폭파, 그 수수께끼를 묻다
한강다리 폭파의 재구성 | 그러나 한강철교는 끊어지지 않았다 | 폭파가 일렀던 걸까 | 아군의 보호인가 공격의 저지인가 | 희생된 사람들이 민간 피난민이 아니라고? | 한강다리 폭파는 전쟁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 폭파 책임도, 폭파 실패의 책임도 규명되지 않았다

3장 적을 앞두고 사라진 김포지구전투사령관
전쟁 확대를 야기한 어이없는 김포 방어선 포기
6월 25일 김포 | 김포지구사령부의 급편과 인민군의 진입 | 27일 김포에 인민군 진입하다 | 사령관의 실종 | 계인주 대령은 누구인가? | 계인주와 민간인집단학살사건

4장 스미스 부대를 기억하다
이미 사라진 ‘특수임무’와 그들만의 패배
미군의 참전 결정과 스미스 부대의 파병 | 스미스 부대 착륙지 변경 의혹 | 스미스 부대와 국군 17연대의 전선 배치 | 교전 | 스미스 부대는 맥아더의 실험용 소모품이었을까?

5장 후퇴 국군은 왜 국민을 공격했나?
경기 강원 충북 경북 지역 형무소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
낙동강 전선으로 후퇴 | 후퇴하는 국군과 민간인 학살 | 미군 작전 지역에서의 민간인 학살 | 자기 국민을 죽여야 승리하는 이런 전쟁은 전쟁이 아니다

6장 전선이 없었던 호남도 피해가지 못했다
충남 호남 지역의 형무소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쟁 직후의 호남 지역 상황 | 호남 지역을 일부러 내준 것이라고? | 전선의 호남 진입 전 서해안 지역 피해 현황 | 호남 지역의 전투와 민간인 학살 | 학살이 임무였던 나주경찰부대의 활동 | 민중을 적으로 여긴 전쟁
7장 국방부에 간첩이 있다?
음모설을 부르는 한국전쟁의 수수께끼들
전쟁유도설 | 음모설의 등장 | 3월 차량과 전투 장비의 대규모 정비 | 4월 22일과 6월 10일의 사단장급 인사이동 | 6월 13~15일 전방부대의 후방 이동 | 운명의 6월 24일 | 6월 28일 국군의 중무장을 해제한 한강 철교 폭파 사건 | 6월 30일 미 정찰기의 인민군 수원 공격 보고 | 7월 3일 평택역 폭격 | 국군 8사단에 내려진 유령 명령 ‘대구로 이동하라’ | 미군 관련성 | 음모설이 가지는 의의

8장 국군 17연대는 과연 어디에 있었나?
인천상륙작전 참전의 허구
인천상륙작전 | 국군 17연대 | 작전명령서 | 살아남은 자의 역사 왜곡인가

9장 정말 인민군이었나?
‘적대세력사건’의 모순 고찰
사건의 비극적 성격 | 전개 과정 | 미군과 경찰의 조사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의문점 | 억울한 죽음의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10장 피난민은 적이었나?
국민은 없고 국군만 남은 국가
피난민에 대한 미군의 공격은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 영동 노근리 사건, 피난민 통제회의 후 최초 사건 | 이어지는 소개작전과 미 전투기의 피난민 공격 | 해군 공군이 총동원되어 포항의 피난민을 공격하다 | 1951년 1월 다시 피난민 공격이 시작되다 | 단양 미군 폭격 사건과 임실 군경 토벌 사건의 비교 | 국군과 경찰의 피난민 공격이 시작되다 | 토벌작전이 빨치산을 만들어 내다 | 토벌작전 희생자들에 대한 토벌 군경의 증언 | 민간인 학살이 전투성과로 보고되다 | 피난민 공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11장 살아있는 것이 죄?
부역 처리의 불법성과 위헌성
’빨갱이죄‘에 ‘부역죄’가 더해지다 | 전쟁 발발과 학살의 제도적 준비 | 수복하던 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 합법을 가장한 처형, 지역별 현황 | 14후퇴 시기의 피해

12장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고?
「비상조치령」은 위헌이었다
국방경비법, 비상조치령은 위헌이었다 | 「비상조치령」의 공포 | 죄인은 죄인이 아니었고 재판은 재판이 아니었다 | 피해의 규모 | 이제라도 구제해야 한다 | 희생자와 가해자 | 부역혐의학살사건의 역사적, 사회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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