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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 클리닉] 작은 것과의 큰 이별

건강한 몸과 마음을

by 소나무맨 2014. 4. 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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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 클리닉] 작은 것과의 큰 이별

 삼성스포츠|입력2014.04.21 11:09

 

 

 

[강북삼성병원] 밤에 밖에서 사람들과 회식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여보…햄스터가 죽은 것 같아…자는 자세가 한참 똑같길래 집을 흔들어봐도 움직이지 않아… 당신이 와서 수습해 줘. 애들한테 얘기 못 할 것 같아서 빨리 자라고 하는 중…'.
문자를 본 순간 여러 느낌이 스친다. 뭔가 살짝 내려앉는 느낌, 멍한 느낌, 먹먹한 느낌, 무언가 울컥 하고 올라오는 느낌.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집에 가봐야겠다 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도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정말 죽었나, 아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그냥 깊이 잠이 든 건 아닐까. 집에 와서 보니 아이들은 잠 들어 있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정말 죽은 것 같다고 한다. 낮에 잠깐 봤을 때 집 밖으로 머리를 좀 내밀고 눈을 꼭 감은 것이 깊이 잠든 것 같았는데 밤이 되어도 그 자세라고 했다. 이상해서 집을 흔들어봐도 전혀 미동이 없었다고 했다. 내가 케이지의 철망을 열고 집도 들어낸 뒤 햄스터를 손에 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눈을 꼭 감고 있는데 팔다리가 굳어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니 그제서야 정말 실감이 나며 가슴이 아려온다.

사실 3주 전부터 햄스터가 아팠다. 오른쪽 볼 주변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했었고, 1주일 뒤 실밥을 뽑았는데 이번에는 볼주머니에 염증이 생겨서 볼주머니를 제거하는 수술을 다시 했었다. 2주 사이에 두 번의 수술을 받은 셈이다. 2주 동안 매일 항생제를 먹이고 상처를 소독하면서 돌봐왔었고 죽기 전날에 실밥을 제거하고 이제 회복만 기다리면 되는 상태였는데 하루 만에 죽은 것이다.
실밥을 뽑고 온 날 저녁이 생각난다. 아이들과 햄스터를 손에 놓고 보는데 유난히 큰 아이의 손을 핥았었다. 햄스터는 원래 익숙한 사람의 손을 핥는 모습이 있는데 너무도 열심히 아이의 손을 핥길래 이제 실밥 뽑고 시원해져서 신나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이렇게 죽으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랬을까, 뭐가 잘못된 걸까 싶고, 눈을 꼭 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나고 슬픔이 가시질 않는다.

그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아침에도 일찍 잠이 깨어서 그냥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큰 아이가 일어나 방에 오길래 얘기를 해주었다. 햄스터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아이의 얼굴에서 눈물과 함께 의혹에 찬 눈빛이 흘러나온다. 정말 죽었냐고, 이제 다 나은 거 아니었냐고, 거짓말 아니냐고, 안 믿겨진다고. 찬찬히 설명을 하는 동안 아이는 계속 울었던 것 같다. 나중에 둘째 아이가 일어났을 때 같은 설명을 하니 동생이라 그런지 '정말 죽었어?'하며 우와앙 울기만 한다.

여러 모습들이 기억에 난다. 아이들이 애완동물 키우고 싶다 해서 생각 끝에 햄스터를 키워보기로 했다. 강아지는 아이들이 돌볼 수 없어 결국 아내의 일이 될 테니 다음 기회에 생각해보기로 했었고 그나마 아이들이 돌보기엔 햄스터가 괜찮다고 해서 결정했었다. 우리 부부의 마음 한 켠에는 강아지는 사람과 정이 너무 깊게 들어 혹시 아프거나 죽거나 했을 때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 할까 봐 햄스터는 좀 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마트에서 아이들이 고른 햄스터를 한 마리 사와서 집을 꾸미고 기르기 시작한 게 재작년 여름이었으니 우리 집에서 20개월 정도 산 셈이다. 해바라기 씨를 주면 손으로 받아서 까먹는 모습, 쳇바퀴를 열심히 달리던 모습, 목욕모래에서 뒹굴던 모습, 사람 손에 올라와서 핥고 가끔은 깨물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난 작년 여름부터 조금씩 탈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좋아하던 해바라기 씨를 못 까먹고 음식을 잘 못 먹길래 살펴보니 윗니가 많이 길어 있었다. 햄스터 같은 설치류는 평생에 걸쳐 이가 자라는데 건강하고 음식을 잘 먹을 때는 이빨의 길이가 잘 조절되다가 늙기 시작하여 음식을 잘 못 먹고 이갈이를 잘 못 하게 되면 그렇게 이빨이 길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동물병원에 가서 이빨을 잘라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전보다 음식을 잘 못 먹으니 점차 살이 빠져서 최근에는 가장 살이 쪘을 때의 반 정도 크기가 되었고 이번에 수술을 하면서는 더 조그맣게 되었었다. 이미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 상태에서 두 번이나 수술을 하면서 그 한계가 와서 결국 이렇게 됐나 보다 싶다.

며칠 동안 큰 아이와 많은 얘기를 나눈 것 같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금방이라도 다시 살아올 거 같다고, 이제 건강해져서 예전처럼 다시 살이 토실토실하게 찔 줄 알았다고, 쳇바퀴 열심히 돌릴 수 있을 거라고, 마지막 날 밤에 자기 손을 핥은 게 작별 인사였냐고, 나는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고, 더 잘 해주지 못 했다고, 못 되게 대한 적도 있었다고 얘기하는 아이의 눈을 가만히 보며 나도 울고 아이도 운다.
열한 살 짜리 딸과 이제 어느덧 마흔이 된 아빠가 삼십 여 년의 차이를 두고 생각하는 내용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내가 그렇게 일러준 적이 없음에도, 아이가 그 전에 이런 비슷한 일을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아이가 내게 말하는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이건 어쩌면 신이 사람에게 준 본능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죽은 무언가가 안 죽었으면 하고 바라고, 다시 살아나서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누구나의 소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햄스터는 하늘 나라에 갔을 거라고, 거기서 하나도 안 아프고 병도 다 나아서 건강하게 살 거라고, 토실토실 살도 쪄서 열심히 달릴 거라고, 나중에 우리도 하늘 나라에 가면 거기서 볼 수 있을 거라고, 니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서 햄스터도 고마워 할 거라고, 엄마, 아빠는 니가 그렇게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가져서 기쁘다고. 이제 며칠이 지났고 그 사이에 아이는 놀 때는 놀고, 웃을 때는 웃지만 가끔 햄스터 생각이 날 때면 다시 눈이 붉어진다. 큰 아이는 슬픈 마음이 큰 지 더 이상 햄스터를 키우고 싶지 않다 하고, 둘째 녀석은 다른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 하니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사람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둘 사이에 관계라는 것이 생기면서부터 뇌 안에서 많은 작용이 일어난다. 내가 우리 집에 햄스터를 키우겠다고 결정한 순간, 우리 집에 햄스터를 데려온 순간, 내가 햄스터를 바라보고, 내 손에 올려놓고, 먹이를 주고, 집을 청소해주고, 놀아주고, 아팠을 때 돌봐주고, 결국엔 이별을 경험한 순간까지 이 모든 게 내 뇌에서는 하나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고 그것이 관계라는 것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돌봐 줌이라는 행동을 시작하면 그 행동으로 인해 아끼는 마음이 생기고, 아끼는 마음이 생기니 다시 돌봐주게 되는 하나의 순환 양식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마음이 먼저고 그 다음이 행동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행동하지 않는 것은 마음이 안 생겨서라고 굳게 믿고, 마음이 먼저 생길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 경우가 참 흔하다. 그러나 그 역순이 가능한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다. 남을 위한 삶을 살고, 도와주는 사람들의 얘기 중에, 우연한 기회에 행동을 먼저 하게 되고 나서 그 행동을 통해 무언가 기쁨 같은 것을 느껴서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예를 많이 듣곤 한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끼고 돌보는 행동을 먼저 시작하면 마음도 따라올 수 있다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랑의 영역에 속하는 행동을 먼저 실천하면 사랑하는 마음도 따라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처럼,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나의 꽃'이 되었고,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고,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고,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 이며 그것이 신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준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 남천우(기업정신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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