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발제를 맡은 교육아사리 원영스님.

“산 채로 자루 안에 담긴 닭들은 몇 시간 째 방치돼 있었고, 자루 속 닭들의 소리가 귀를 찔렀다. 2010년 발병한 구제역으로

산채로 땅에 묻히는 돼지 표정은 절박했고, 비명은 인간의 외침과 다르지 않았다. 농장주에 따르면 땅에 묻힌 돼지의 울음이

하루 넘게 들려왔다고 한다.”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스님)이 2월2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조류독감(AI)과 살처분’을 주제로

개최한 교육아사리포럼에서는 지난 1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한 뒤 살처분 현장 동영상이 공개됐다. 지옥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혹한 모습에 참가자들은 절로 숙연해졌다.

기조발제를 맡은 원영스님은 동물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가정책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많은 스님과 재가자들이 포럼에 참석했다.

스님은 “열악한 사육환경, 그로 인해 면역력 떨어진 동물들은 쉽게 병 걸리고 병들면 살처분 된다”며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3km 반경 내 가금류나 소, 돼지 등을 살처분하는 정부시책 때문에 병들건 병들지 않건 무차별 살처분된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올해 발병한 AI의 원인으로 많은 이들이 열악한 사육환경을 꼽는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동물의 행복할 권리>에 따르면 닭 한 마리당 날개를 퍼덕이기 위해서는 1880㎠, 돌기 위해서는 1270㎠, 자유롭게 서 있기 위해서는 475㎠가 필요하다.

현실의 닭들은 A4용지 한 장에 2마리가 사는 처지다. 원영스님은 “예민한 닭들은 좁은 공간에 처하면 서로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며 “닭들이 서로 싸우지 못하게 부리와 발톱을 자르는데, 부리는 신경이 모여 있어, 부리를 자르는 것은 손톱 밑 속살을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육환경 개선 없이는 AI 발생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만 봐도 2003년 이후 2~3년을 주기로 가축전염병이 발생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구제역으로 돼지와 소 약 350만 마리가, AI로 약 647만 마리 가금류가 죽었고, 올해 발병한 AI로 지난

1월16일부터 2월28일 현재까지 606만8000마리가 살처분됐다.

 

 

 
 

원영스님은 “현재 한국의 가축전염병에 대한 관련 제도는 국민의식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웃나라 일본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일본은 전염병 걸려 살처분하거나, 동물 실험이나 일반 가정에서 동물이 죽었을 경우 처분절차를 법으로 정했는데 제1원칙으로서 생명존중을 얘기한다. 살처분 현장만 봐도 밀폐된 통 안에 닭이나 오리를 넣어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살처분한 뒤, 폐사체는 담아서 매몰하는 등 우리 현장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스님은 “예방, 방역, 보상 등에 필요한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정책자문기구인 ‘가축방역협의회’를 살처분 시행여부 및 지역의 범위 등에 대해 심의, 결정하는 기구로 개편해 살처분 결정절차를 엄정하게 시행해야 한다”며 “위원회에 가축질병과 방역 전문가뿐만 아니라 생명윤리학자, 종교인도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또 동물보호법에 규정하는 바에 따라 살처분 방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을 신설하고, 공장식 밀집사육 개선을 위한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등의 법개정이 동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교계 역할도 제안했다. 스님은 종단이 총무원 소속 ‘불교생명위원회’를 구성해 생명윤리와 관련된 제반문제를 연구 분석하는 한편, 사회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생명위원회는 안락사, 자살, 낙태 등의 문제 외에 농장이나 반려동물, 실험동물에 대한 연구 및 대처방안도 모색하는 기구가 될 것이다. 또 생명윤리에 대한 승가와 신도교육을 확대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포럼 사회는 김성철 동국대 교수가 맡았으며 토론자로 교육아사리 벽공스님,

                     우희종 서울대 교수, 허남결 동국대 교수가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교육아사리 벽공스님은 종단 차원에서 육식자제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동물애호가협회 등과 연계해 살처분에 대한 문제해결을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전염된 가축을 매장하기 전과 후에 간단하게라도 예경의식을 행하자”며 “매장된 생명뿐만 아니라 살처분에 동참한 이들의 정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방역과 이를 검증하는 것이 모두 농수산식품부 한 부처에서 이뤄지는 것을 문제로 꼽으며, “해당 부처의 과실은 전혀 없이 잘했다는 정부 결론은 되풀이 되지만 대량매몰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값싸고 좋은 고기를 주자고 외치기 때문에 공장식 사육이 성립될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가 인식을 전환하는 게 필요한데 보다 건강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축산문화가 생길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허남결 동국대 교수는 살처분이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했다. 허 교수는 “AI의 위험성을 앞세워 수백만 마리의 생명체를 마구잡이로 살처분하면서도 별다른 죄의식을 못 느낀다”며 “우리 인간들의 건강에 대한 어리석은 집착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