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Why?] AI 발생 2개월 '살처분' 사상 최대.. 문제점은 없나
파이낸셜뉴스 | 입력 2014.03.16 17:14
예방 위한 3㎞내 일괄 살처분에 축산농 고사
1월 17일 전북 고창 씨오리 농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처음 발병한 뒤 2개월이 지났다. 이 기간 AI 확산 방지를 위해 살처분한 가금류는 1000만마리를 넘어 사상 최대다.
이번 AI는 조만간 종식될 것으로 보인다. AI 확산의 주원인으로 추정되는 가창오리떼 등 철새가 대거 북상했고 최근 전국에 내린 봄비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철새 분변이 씻겨 내려갈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AI 발병과 방역 및 살처분, 보상금 체계 등을 보면 여러 가지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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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이번에 AI가 끝나면 방역체계와 보상금 등 종합적으로 다시 돌아봐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살처분 규모 최단기 역대 최다
농식품부는 16일 오전 6시 기준 닭·오리 등 가금류 1087만5000마리를 살처분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2008년의 1020만마리가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재산피해도 2008년의 3070억원을 넘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보다 살처분 규모가 커진 이유는 예방적 살처분 면적을 3㎞로 확대한 데다 닭.오리 사육 농가가 수직계열화되면서 사육 규모가 커졌고 철새가 대규모로 AI에 감염된 때문이다.
정부 지원액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살처분 보상금인데 농식품부는 살처분한 가금 마리당 평균 1만500∼1만1000원을 보상할 계획이다.
추가 발병이 없다고 가정해도 살처분 보상금으로만 1200억원가량을 지출해야 하고 생계안정자금, 소득안정자금, 경영안정자금 융자액, 긴급경영안정자금 등을 더하면 피해 규모는 2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부가 이동통제 조치로 출하 시기를 놓친 닭.오리의 수매에 나설 경우 피해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방적 살처분 규정 문제없나
예방적 살처분은 AI 발생 농가로부터 △반경 500m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반경 3㎞에 대해서는 전파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될 때 지방자치단체장이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농식품부는 초기부터 3㎞ 이내 모두 살처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2개월 만에 살처분 규모가 최대로 커진 이유다. 이전 네 차례의 AI 평균 발병일수는 97일이었다. 이번 AI의 경우 1087만여마리 가운데 예방적 살처분으로 인해 매몰된 가금류는 전체의 60%가 넘는 800만마리 수준으로 추정된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지만 학계 일각과 동물보호론자들은 이번 예방적 살처분 조치에 대해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심지어 지방의 공무원 노동조합까지 예방적 매몰처분 매뉴얼을 고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지역마다 지리적 특성이 다른 점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AI 역학조사위원장인 김재홍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지금 실시하고 있는 일률적인 살처분은 국민정서 측면이나 농가 입장을 생각했을 때 재고해야 할 여지가 있다"며 "일선 농가에서 자가방역에 대한 의지와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면 정부에서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살처분하기 보다는 상황에 맞게 선별적으로 실시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산농가, 보상금 대상서 소외?
정부의 AI지원금이 하림, 마니커 등 대기업으로 쏠리면서 축산농가가 소외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축산 시설 현대화 자금을 지원하면서 AI가 발생하면 지원을 이중, 삼중으로 하는 것이다. 정부는 닭과 오리농장에 대해 계열화사업을 진행하면서 지난해 92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데 이어 올해는 284억원으로 세 배 이상 늘렸다.
또 축산시설현대화사업을 통해서도 양계장과 오리농장에 시설개선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양계농장에 1050억원, 오리농장에 391억원이 지원됐고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닭 사육농가는 90%가량, 오리 사육농가는 95% 이상 수직계열화돼 있다. 즉 대부분의 닭·오리 주인은 하림, 마니커 등 대기업이고 농민은 이를 키워서 납품하면 수수료 20% 정도만 받는 것이다. 이러니 대부분의 보상금이 대기업으로 쏠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AI 책임 소재가 분명한 가축계열화 주체에 대해 경영안정화 지원에서 제외하거나 삭감하겠다고 밝혔지만 보다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필요할 경우 축산농가와 대기업 간의 계약서까지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0년 동안 백신 개발 못해
최근 10년 동안 다섯 차례 발병한 AI로 인해 정부는 살처분 보상금 등으로 수천억원의 혈세를 투입했지만 아직도 예방백신 개발은 지지부진하다. 산란에서 납품까지 2개월밖에 걸리지 않는 가금류 특성상 백신 사용 비용이 많이 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저비용으로 AI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과 사용법을 개발하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수의학 전문가 등에 따르면 H5N8형 AI는 2010년 중국 장쑤성 가금류 시장에서 확인된 후 3년여 만에 전북 고창 오리농장에서 발병했다.
안정성 등이 검증돼야 할 백신의 경우 통상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위해 개발에 1년 정도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2011년부터 H5N8형 백신 개발에 나섰더라면 벌써 보급이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이번 AI 참사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게 수의학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가금류에 일일이 주사를 놓는 방법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면 사료에 섞어 예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현재 시판 중인 H9N2형 백신의 평균 소비자 가격이 병당 42원인 점을 감안하면 백신투여로 AI로 인한 방역비와 살처분 보상비 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한수의사회 한 관계자는 "현재 AI 대책은 백신개발 등의 예방대책보다는 살처분 등 사후대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 같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데 H5N8형 등 해외에서 유행한 AI에 대한 백신의 개발과 보급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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