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군산에서 열린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10주년 심포지엄에 참석한 시민생태조사단원들이 2003년 봄 삼보일배가 시작됐던 해창개펄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새만금을 지키려는 염원을 담아 세운 장승들은 이들 뒤에 아직 버티고 서 있지만, 개펄은 이미 매립돼 황무지로 바뀐 모습이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제공 |
[지구와 환경]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의 10년
2003년 12월7일 일요일 아침. 시민, 학생, 환경단체 활동가 등 40여명이 만경강 하구 야미도와 비응도 사이 바다가 방조제로 막힌 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새만금 개펄을 찾았다.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학위가 없어도 새만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조사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민생태조사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전국에서 모인 이들이었다. 시민조사단원들은 제각기 관심 분야에 따라 물새팀, 저서생물팀, 식물팀, 동물팀, 문화팀, 영상팀 등으로 나뉘어 간척사업의 영향으로 변화해가는 생태계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꼼꼼히 기록했다. 조사 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시민조사단원들이 내는 참가비로 충당됐다. 이렇게 출발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활동이 지난달로 만 10년, 120회의 조사를 채웠다. 조사단 활동 참가자 수는 초기에는 조사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는 핵심 참가자 20여명을 포함해 30~40여명에 이르렀으나, 점차 줄어들어 10명이 채 안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가 아무리 적어도, 태풍이 올라오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매달 첫째 토·일요일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조사 자체를 거른 적은 없었다. 시민생태조사는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을 해오던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무력감과 허탈감을 딛고 출발했다. 2003년 봄에서 초여름 사이 종교인과 환경운동가들은 새만금 해창개펄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고행을 이어가며 새만금을 살리자고 호소했다.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사업 취소소송을 제기해 법정 투쟁을 벌이는 한편, 공사 현장에 들어가 중장비를 가로막고 삽으로 방조제를 파내기까지 하며 온몸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고, 법원은 정부 손을 들어줬다. 새만금 사업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삼보일배가 끝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2003년 6월 새만금의 숨통을 죄는 4호 방조제가 막히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환경단체 떠나고 관심 멀어져도
비바람 속 고집스런 새만금행
죽어가는 생명들 고통스런 기록
국내 첫 시민생태조사 성공 사례“새만금 싸움은 끝난 게 아니냐는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충격과 패배감이 컸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새만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꾸준히 지켜보고 기록하고 알리는 일은 해야 하고, 그것을 시민들의 힘으로 해내자는 생각들이 모였습니다.” 당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시민생태조사단 기획에 참여했던 박선영(38) 환경생태연구재단 국제협력팀장의 말이다. 방조제를 다시 여는 싸움이 남았다는 인식과, 변화하는 새만금에 대한 기록이 언젠가 새만금을 되살려내는 무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허탈감에 빠져 있던 이들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군산대 환경공학과에 재학중 생태조사단 첫 조사에 참여해 최근까지 조사단 물새팀 실행위원으로 활동해온 오동필(39)씨는 “새만금 같은 광범위한 지역의 생태를 전문가들이라고 1년만 조사해서 결론을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개발에 맞서 새만금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꾸준히 조사자료를 축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들을 했다”고 말했다.시민생태조사단이 새만금을 오가는 동안 간척 공사도 빠르게 진행됐다. 2006년 3월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대법원에서 패소했고, 다음달 총연장 33.9㎞에 이르는 방조제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내 마무리됐다. 다시 허탈감과 패배감이 밀려왔다. 주요 환경단체들은 새로운 현장을 찾아 새만금에서 떠나가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면서부터는 새만금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사라진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민생태조사단 사람들의 새만금행은 고집스레 이어졌다. 새만금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한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0년은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최종 물막이가 완료된 뒤 새만금에서 상처받은 주민들과 급속히 피폐해지는 환경을 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10년은 채우자고 새만금에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서로 격려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민생태조사단 문화팀 실행위원인 김경완(44) 신안문화원 사무국장의 말이다.
지난해 9월 금강 하구 유부도를 찾아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줄어든 철새들의 이동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시민생태조사단 물새팀 참가자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제공 |
전북 군산 새만금전시관 앞 개펄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도요물떼새들. 지난해 이곳에 방수제가 지어지면서 개펄이 사라져 더이상 볼 수 없는 모습이 됐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제공 |
농지 비중 확 줄이고 개발사업은 지지부진>>> 지금 새만금은새만금 사업은 전라북도의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33.9㎞의 방조제를 쌓아 그 안쪽의 갯벌과 바다를 땅과 호수로 만드는 사업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땅은 서울시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283㎢, 호수는 118㎢에 이른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1991년 11월 시작돼 시민환경단체들과 갯벌을 삶터로 하는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2006년 4월 만경·동진강 하구와 바다를 완전히 차단하는 마지막 물막이가 이뤄졌다. 세계에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이 방조제는 이후 보강 공사와 성토 작업 등을 거쳐 2010년 4월 준공됐다.정부는 애초 미래의 농지 부족에 대비해야 한다며 새만금 간척사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사업이 본격 진행되면서 부족한 농지 확보는 대규모 지역개발 사업을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1989년 기본계획에서는 간척지 100%를 농지로 사용하겠다고 했으나, 2007년 방조제 물막이가 모두 끝나자 간척지의 농지 비중을 72%로 줄었다. 1년 뒤인 2008년 내부토지개발 기본 구상을 변경해 이를 다시 30%로 줄였다. 나머지 70%의 용지에는 첨단산업단지, 신재생에너지단지, 관광레저단지, 국제업무단지, 과학연구단지, 배후도시 등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현재 새만금에서는 호수와 간척지를 나누는 방수제 건설, 연결도로 건설, 농업용지 조성 등의 내부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인 내부 개발사업은 정부와 전북도의 기대와는 달리 민간업체의 참여가 저조해 지지부진한 상태다. 김정수 선임기자, 사진 새만금개발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