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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에 안은황토벽돌 너와집

이런저런 이야기/작은 집이 아름답다

by 소나무맨 2014. 1. 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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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에 안은황토벽돌 너와집

부부는 고구마 농사꾼이다. 너른 황토밭 가득 고구마를 심고 자식 기르듯 아침저녁으로 돌보길 30여 년.  문득 고구마 곁에 더 가까이 다가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파란 바다를 눈에 가득 품을 수 있는 한적한 곳이면 더욱 좋겠다 싶었다.
 
부부도 행복하고 고구마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김용주·이정옥 씨 부부의 황토벽돌 너와집. 고구마밭에서나온 황토로 부부가 직접
벽돌을 찍어서 만든 집이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2차선 지방도를 달리다 다시 야트막한 담장 사이로 난 시멘트 길로 들어섰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듯한 좁은 시멘트 길이 끝나자 울퉁불퉁 비포장 길이 시작되고 길 양쪽으로는 초록색으로 빛나는 고구마밭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샛길 하나 없이 고구마밭 사이를 가로지르며 한쪽으로만 달리는 이 길은 어디에 닿아 있는 것일까? 슬그머니 걱정이 일 무렵 눈앞에 파란 바다가 펼쳐지더니 곧이어 너와를 얹은 소박한 황토집이 나타났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에 있는 김용주(59)·이정옥(58) 씨 부부의 황토벽돌 너와집이다.

바다를 품은 고즈넉한 터

김씨 부부가 이 터를 발견한 것은 10여 년 전.
 
유기농으로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던 부부는 자연환경이 좀 더 깨끗하고 주변으로부터 독립된 밭을 구하고 싶었다. 좋은 자리가 없나 찾아다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곳은 바닷가 끝쪽에 자리 잡은 한적한 곳이었다. 밭 자리를 알아본 것이었지만 막상 와서 보니 집을 지어도 좋겠다 싶었다. 
 
“사실 처음 봤을 때는 땅이 물도 잘 안 빠지고 황폐한 데다 모양도 별로 좋지 않아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 언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바닷물 색이 너무도 좋았죠. 주변 환경도 마음에 들었고요. 눈 오는 날도 와 보고, 달빛 좋은 날도 와 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이곳에 고구마밭을 만들고 내친김에 집도 짓자고 결정했죠.”
 
1 중앙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복도. 곡선으로 휘어져 있어 멋스러운데다 거실로부터 주방이 차단되는 효과도 있다.  
2 집 앞쪽 벽면. 집 어느 곳에서도 바다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방마다 통창을 내고 바깥쪽에는 데크를 설치했다.
 
밭을 일구려고 산 자리에 집까지 짓기로 한 것은 여러 속내 때문이었다. 김씨 부부는 수년 전부터 1년에 한 번씩자신들이 기른 고구마를 사 먹는 고객들을 초대해 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 날이 되면 부부의 집은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분주하고 떠들썩해지는데 혹여 이 축제가 이웃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항상 걱정이었던 것.
 
게다가 이웃에게 폐가 될까 저어하느라 멀리서 온 손님이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도 적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민이 깊던 차에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고즈넉한 터를 발견했으니 ‘옳다구나’ 하고는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집짓기가 시작된 것이 6년 전 일이다.
 
3 중앙 거실. 집 내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간으로 손님들에게 편안한 자리를 제공하기위해 만들었다. 거실 중앙에 우뚝 선먹감나무가 멋스럽다.
 
고구마밭에서 황토를 얻다
 
집의 종류는 오래전부터 황토벽돌집으로 정해놓았다. 황토밭에서 고구마를 키우며 살아가는 부부는 자신들이 사는 집도 황토로 만들어졌으면 했다. 남편 김씨가 10여 년 전 마당 한쪽에 황토구들방을 직접 지었던 것도 후일 황토벽돌집을 지을 것을 염두에 두고 시험 삼아 해본 것이었다.

“우리 고구마밭에서 얻은 황토를 가져다 벽돌을 직접 찍었어요. 수확을 마치고 밭을 갈아엎을 때마다 밭에서 나온 황토로 벽돌을 찍었는데 2년 정도 찍었더니 2만 장 정도가 되더라고요. 벽돌도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은 데다, 무엇보다 오래전부터 집짓기를 부탁하고 싶었던 전남 장성 한마음공동체의 남상도 목사님도 딱 그때 시간이 난다고 하셨죠. 두 번 생각할 이유 없이 집짓기를 시작했습니다.”

집은 황토벽돌로 벽을 치고 나무로 기둥을 세운 다음 너와로 지붕을 입혀서 완성하기로 했다.
견고한 벽을 얻기 위해 황토벽돌을 이중으로 쌓는 바람에 벽 두께만 45㎝에 달해 미리 찍어 둔 벽돌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나무는 소나무와 편백을 섞어서 사용했다.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기둥은 먹감나무로 만든 것이다. 꼭 필요한 기둥은 아니었지만, 거실의 자연스러운 멋을 살리기 위해 한 중앙에 떡 하니 먹감나무를 박아둔 것이다.

황토벽돌을 썼으니 마감은 당연히 황토였다. 외벽은 바닷가에서 몰려드는 습기 때문에 약해질 위험이 있어서 모르타르 섞인 황토로 마감했다. 내벽은 황토에 해초를 섞어서 발라주고, 황토를 입힌 천을 덧발랐다.
 
 
 
단열을 위해 지붕과 천장 사이에는 일정 정도 공간을 두기도 했다. 내부는 커다란 거실이 중심이 되는 단순한 구조로 만들었다. 애당초 편안한 손님맞이가 집을 짓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으니 가장 중요한 공간은 손님들이 편안하게 쉬어갈 거실이기 때문이었다. 집의 한 중앙을 통으로 터서 마치 광장 같은, 연주 홀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1 집 뒤편에 있는 장독대. 돌담과 항아리의 어우러짐이 소박하다. 2 작은 방 천장. 서까래와기둥 사이사이에 나무 판을 붙여 장식했다.  
3거실 중앙의 먹감나무를 받치고 있는 통나무 판. 의자로도 사용하고 있다. 4 현관문을 통해 바라본 마당과 바다. 이 집 어디서도 문만 열면 바다가 보인다. 5 나무로 만든 현관문. 소금기 많은 바닷바람에 시달린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6 너와 지붕 너머로 보이는 바다. 너와의 검은빛과 바다의 푸른빛이 조화롭다.
 
중앙 거실과 주방이 연결되는 부분은 곡선을 이루는 좁은 복도 형식으로 만들어 주방이 개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실에서는 주방이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했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분주한 소리가 중앙 거실에 있는 손님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던 부인 이씨의 배려였다.
 
바다가 보이는 풍광을 어느 한순간도 놓치기 싫어서 집 안의 모든 방에 통창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붕은 주변 풍광을 거스르지 않고 소박한 멋이 나도록 너와를 올렸다.

일터이고 쉼터이며 삶터인 집
 
 

집을 완성하고 보니 참 마음에 들었다. 황토로 만든 탓에 집 안에 냄새가 밸 틈이 없다. 황토의 정화작용 덕분이다. 집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앙 거실은 손님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되었고, 작은 음악회 같은 이벤트를 하기에도 딱 좋았다.
 
터 모양에 맞춰서 짓느라 타원형이 된 집은 위에서 보면 마치 살짝 휘어진 고구마처럼 보이기도 해 부부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불편함도 적지 않았다. 집이 원체 곡선이다 보니 집 안에 살림살이를 들여놓기가 만만치 않았다. 해풍이 센 바닷가 집이다 보니 너와가 태풍에 날아가기도 했다. 낮은 다락방을 얻기를 원했지만, 흙집 구조상 쉽지 않아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7 집 뒤편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 검은빛 너와, 붉은빛 황토가 넓게 펼쳐진 푸른빛 바다와 어우러진 모습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이 집이 정말 좋단다. 집을 나서면 지척에 고구마밭이 펼쳐지고, 집 안이면 안, 밖이면 밖 어디서건 보이는 바다는 매번 그 모습을 달리해 항상 새롭다. 코끝으로 올라오는 황토 냄새도 정겹다.
 
특히 겨울이면 바다 멀리 저쪽까지 펑펑 눈이 쏟아지고 갯벌이 설원으로 바뀌는 장관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이곳이야말로 일터이고 쉼터이며 동시에 삶터인, 부부가 꿈꾸던 집이다.
 
글 이상희 기자 사진 최수연 기자
 
※이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실렸던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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