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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 향 가득한 편백숲 속 작은 집

이런저런 이야기/작은 집이 아름답다

by 소나무맨 2014. 1. 2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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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 향 가득한 편백숲 속 작은 집

고속도로를 나와 도시를 가로지르는 국도로 접어들자 야트막한 언덕 하나 없이 확 트인 평지가 펼쳐졌다. 수확을 막 끝내 비어 있는 검은 빛의 밭과 그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지붕 낮은 집들. 높은 것이라곤 멀리 보이는 아파트밖에 없는 이 평평한 곳 어디에 편백숲이 있을까?
 
의아해하는 순간, 밭 한가운데 섬처럼 서 있는 짙푸른 숲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김해봉 씨(57)의 소박한 집이 들어 있는 편백숲이다.
 
 
여느 도시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도시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었다. 항상 자연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그는 사는 곳을 옮겨야 하는 사정이 생기자 이번에는 아파트 말고 자연 속에 있는 집에서 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었던 그는 도시이면서도 자연 속일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도시 인근을 돌아다니길 여러 해, 경기 안성시 공도읍 양기리에서 꼬불꼬불 비포장 길을 지나 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편백숲을 찾아내 그 안에 집을 지은 것이 10년 전이다. 
 사진설명 2 숲 속 나무 탁자에 앉아 있는 김씨 가족. 편백숲을  마당 삼아 산다. 
 
편백숲을 마당 삼다
 
“한눈에 여기다 싶었죠. 도시 한가운데서 이런 숲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어요? ” 
 
그의 말마따나 그의 집이 있는 편백숲은 여느 숲과는 사뭇 달랐다. 높은 산의 한쪽 끝자락이 마을에 맞닿아 만들어낸 숲도 아니고 물과 어우러져 냇가에 자리 잡은 숲도 아니었다. 논과 밭 사이, 마을 한쪽 끝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독특한 숲이었다.
 
도로에서 보면 작고 아담한 나무 무리였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깊고 깊은 숲, 그 자체였다.
 
“알고 보니 유명한 경제학자인 조동필 박사 제자들이 50여년 전 편백을 심어서 만든 숲이라고 하더라고요. 1만㎡에 달하는 숲에 편백이 어찌나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지 간벌을 해줘야 할 정도였어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너무 가깝게 붙어 있는 놈들은 베어냈는데도 남아 있는 편백이 500여 그루예요.” 
 
1 김씨가 몇 달 전에 만든 오두막.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보던 나무 위 집을 그대로 흉내 냈다. 2 밖에서 들여다본 황토방 내부.  
전통 문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멋지다. 
 
숲에 마음을 뺏긴 김씨는 숲 입구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살기로 했다. 숲과 가장 가까운 곳에 집을 지어 일 년 열두 달, 사계절 내내 숲을 즐기고 싶었다. 편백숲을 마당으로 삼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사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짓기 위해 준비한 돈을 탈탈 털어서 숲을 사들였다. 
 
“집만 좋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항상 생각했었거든요. 집 자체보다는 집이 들어서 있는 터, 그 주변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집보다는 집이 들어설 숲에 돈을 더 많이 들인 거죠.” 
 
숲 속에 있다면, 그것이 비록 작고 초라할지라도 가장 자연스러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집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3 황토방 내부. 김씨는 본채보다 이 황토방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작고 소박하게, 자연에 가깝게
 
집은 아내와 두 아이가 함께 사는데 불편하지 않은 정도로, 숲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짓기로 했다. 황토로 벽을 올린 한옥을 욕심내기도 했지만, 비싼 건축비가 부담이 됐다. 아쉽지만 마음을 접고 대신 작고 소박하게, 그리고 손쉽게 지을 수 있는 집을 짓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경량철골구조 집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축비로도 튼튼한 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쉬운 마음은 본채 옆에 한 칸짜리 황토방을 들이는 것으로 달래기로 했다.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집 짓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경량철골구조 집이 짓기 쉽기도 했고요. 혼자서 뚝딱뚝딱 지었더니 두 달 만에 집이 완성되더라고요.”

본채를 다 짓고 나서는 본채 바로 옆에 황토방을 들이기 시작했다. 겉모양새로 봐서는 황토방이 본채에 ‘딸린 방’이었지만, 김씨 마음속에서는 황토방이 오히려 주인공이었다.
 
숲 속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숲에 잘 어울리는 집은 황토집이라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씨는 황토방만은 제대로, 욕심껏 짓기로 했다. 수십 년 된 오동나무를 구해 와 원래 모양 그대로 살려서 집의 네 귀퉁이에 기둥으로 세우고 서까래와 보 등 나머지 구조재는 편백을 사용했다. 편백은 숲에서 얻은 것을 사용했지만, 모자라는 것은 전라도에서 사왔다.
 
 
 
난방은 당연히 구들을 놔서 해결했다. 예스러운 멋을 살리기 위해 오래된 철도 목을 구해 마루를 만들기도 했다.
 
숲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숲 속에 정자도 지었다. 한두 달 전에는 편백만을 사용해 작은 오두막을 짓기도 했다. 마치 나무 위의 집처럼 바닥에서 높이 올려 지은 이 오두막은 삼각형으로, 지붕 밑 다락방만을 뚝 떼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어릴 적 동화책이나 영화 속에서 종종 봐왔던 나무 위 집 모양을 그대로 흉내 내 만들었다는 김씨.
 
보기에도 운치 있고, 숲과도 어울리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어릴 적 갖고 싶었던 공간도 얻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집은 없단다.

건강과 여유를 얻다

편백숲으로 이사한 뒤 가장 좋았던 것은 건강한 삶을 얻게 됐다는 점이었다. 도시에 살 때는 항상 피곤에 절어 있거나 운동량이 부족했었는데 숲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는 항상 상쾌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숲길을 산책하고, 숲에서 불어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통해 좋은 공기를 마시고, 편백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숲 속 정자에서 30분쯤 낮잠을 즐기는데, 숲 속에서 불어오는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개운하고 정신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건강해질 수밖에요.” 
 
숲을 마당 삼은 덕분인지 마음도 여유롭고 너그러워졌다. 지나다가 우연히 편백숲을 발견한 이방인이 불쑥, 마당으로 들어서도 김씨 부부는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반가이 맞아준다.
 
하룻밤을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약간의 사례를 받고 황토방을 내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새들과 고라니 같은 동물과도 기꺼이 숲을 나눠 가진다. 
 
“겨울이면 눈 쌓인 마당에 꿩이 뛰어다녀요. 마당을 향해 난 창을 통해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다니는 꿩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평화로워지죠. 자연 속에 산다는 것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거 아니겠어요.
 
글 이상희 기자 사진 최수연 기자
 
※이글은 월간 전원생활 10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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