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소를 위해서 사회적 합의와 통합은 절체절명의 과정이다. 통합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진정한 분권과 자치가 있을 때 가능하다. 통합의 과정에서 협의가 되며 결과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 또 균형을 이루면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복원된다. 그 동안 통합리더십에 대한 칼럼의 핵심요지는 통합을 통한 생태계의 복원은 개인의 삶의 행복과 생명력을 갖게 되고 다시 사회와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3기 민주정부가 통합을 논의하는 이유는 민주1기정부와 2기정부의 완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대중 정부」의 국정지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생산적 복지였다. 「노무현 정부」 국정지표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였다. 민주정부 10년의 국정지표를 달리 해석하면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심지어 현재 논의하고 있는 통합과 공평의 가치도 다 녹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국민의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부였다면(for the people), 「참여정부」는 국민에 의한 정부(by the people)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3기 민주정부는 국민정부, 서민정부(of the people)로 방점을 찍어야 한다. 부연하면 「국민의 정부」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당시까지 공무원이 주체이며 국민은 객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그전까지는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았으므로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 역시 공무원이 주체이며 국민은 객체라는 점은 국민의 정부와 크게 다른 바 없는데 객체가 주체와 어울러지거나 감시체제를 구축하여 주체에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governance)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3기 민주정부」는 공무원과 국민을 동격이 되게 하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즉 서민을 위한 정부도 아니요, 서민에 의한 정부도 아닌 서민정부여야 한다. 쉽게 풀어쓰자면 서민정부는 모든 국민이 평생 국민일 때 이뤄진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는 한 경제적인 이유로 모멸감을 갖지 않고 국민의 도리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국민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가치중심적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당연히 특권도 부패도 없는 국가가 될 수 있다. 평생 대한민국 국민일 수 있다는 것은 평생 세금 낼 정도의 경제력을 보유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 복지와 패자부활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이다. 이정도의 복지가 완결될 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선환순을 이루면서 병행 발전할 수 있고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이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10여 년 전에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저서를 쓴 프리초프 카프라박사는 미래의 사회구조를 설계하는 원칙은 자연이 생명의 그물을 유지하기 위해서 진화시켜온 네트워크 원리와 일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네트워크 원리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직된 분할이 아니라 물질구조와 사회구조의 이해를 위한 통일된 개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요약하면 네크워크 원리는 생물학적 차원과 인지적 차원에 사회적 차원까지 통합이 가능하며 이러한 통합적 이해가 있을 때 지속가능한 세계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통합의 리더십은 네크워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리더십이다. 이러한 실례로 생물학적인 세포가 뇌로 분화하고 분화된 뇌가 인지하고 인지된 행동을 통해서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뇌는 통합의 리더십과 네크워크 생태계를 잘 설명해주는 사례이다. 뇌의 정책학을 꺼내든 것은 이러한 맥락이었다. 뇌는 좌뇌와 우뇌가 뇌량을 통해서 상호정보교류로 통합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 우리 뇌는 지각, 주의, 의식 과정을 거쳐 행동하고 정체성을 갖는 과정을 밟는다. 이는 순차적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주의와 행동이 역순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되거나 강화되면서 정체성이 굳어진다. 테레사라는 어떤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시력이 좌우 1.0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지 못했다. 그녀의 두뇌에서 시각시스템의 빠른 처리에 문제가 있었다. 이로 인해 지면의 글자들을 눈으로 바라볼 때, 글자나 단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즉 읽는 행위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뇌에서 처리가 힘들었다. 그녀는 움직이는 공을 잡지도 못해서 학교에서 왕따가 되었다. 아버지는 공을 잡기 위해 노력하라고 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소극적이 되었고 자신에 대한 꼬리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그녀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한 이후 그녀는 멍청하지도 않았고 그저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빠른 처리가 요구되는 상황에 대처할 새로운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프리초프 카프라 박사의 주장을 재해석하면, 테레사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개인의 행복이 사회의 행복으로 이어지고 사회의 행복이 다시 타인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체 사회의 행복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지각의 문제일 수 있다. 사회문제를 지각하는 지각체계가 그들의 주의와 인식을 바꾸고 정체성을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닌 양육강식의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정체성을 강화했을 것이다. 지각의 문제는 치료의 문제이지 싸움의 문제가 아니다. 통합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치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서민정부는 서민의 아픔을 치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서민의 아픔을 잘 지각하고 관찰해야 한다. 잘 치유하고 치료된 서민들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재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서민정부는 부분의 합을 전체보다 크다라는 명제를 통해서 재탄생할 수 있다. 서민정부의 서민치유정책은 양극화도 점점 마비되어가는 사회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고 인간존중의 보편적 인류애가 넘쳐나는 생명사회가 될 수 있다. 서민과 정부가 진정한 동격이 될 수 있다. < 저작권자 © 자치분권 Issue&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