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와 일본의 우경화,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
민주주의자 김근태 2주기기념 학술세미나 인사말
인재근(민주당 국회의원)
안녕하십니까. 국회의원 인재근입니다. 오늘 세미나는 ‘한반도 정세와 일본의 우경화,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라는 주제로 일본 우경화를 재조명하고 김근태가 갈망했던 평화의 길을 찾는 자리입니다.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국제통상연구소, 코리아컨센서스, 김근태재단, 우석대학교 김근태 민주주의 연구소에서 세미나를 주최해 주셨고 로버트케네디재단인권센터,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프레시안, 시사IN에서 기꺼이 후원해주셨습니다. 기조발제를 해주시는 최상용 전 주일대사님, 발제를 해주시는 이삼성, 남기정, 전진호 교수님, 지정토론에 나서 주신 이해영, 김유은, 백준기, 최태욱, 조세영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축사를 해주시는 김근태의 오랜 친구 이래경 대표님과 서창훈 이사장님, 그리고 세미나의 사회를 나누어 해주시는 이대근 논설위원님과 최상명 소장님께도 뜨거운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학술세미나를 찾아주신 내외귀빈, 청중 여러분, 너무나 감사합니다.
최근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주장하며 우경화를 노골화하고 있고, 중국은 센카쿠와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갑자기 설정해 동북아의 긴장을 크게 높였습니다. 중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발생한 북한의 장성택 실각 등 동북아 정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외교적 선택도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격한 대립 속에서 한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한편, 중국의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응하여 62년 만에 새로운 방공식별구역(KADIZ)을 선포했습니다. 미국의 바이든 부통령이 한중일 3국을 순방하는 등 미국도 동북아에 정세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고 한미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그동안 동북아에 소원했던 러시아도 푸틴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방문으로 급속도로 그 존재감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한국외교의 중대 전환점입니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일본의 우경화, 러시아의 극동중시, 북한의 경제와 핵 병진이라는 큰 그림들이 한국의 상공과 바다에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2013년이 대한민국 외교의 미래를 묻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의 답변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입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있지만 과연 박근혜정부의 방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긴 안목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임기응변의 대응들이 쌓이고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우경화는 난제입니다.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인 미국은 군사적 측면을 고려해 일본의 우경화를 찬성하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일정부간 불통의 시간이 자꾸만 길어지자 미국은 일본은 물론 한국정부를 압박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의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한일관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이라는 뜨거운 감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과거사 망언과 독도 망언을 만들어 내고 있고, 이대로라면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자칫 한미동맹까지 뒤흔들 수 있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어려울수록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일본우경화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동아시아에 평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당장 평화의 길을 찾아내거나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10년 전 김근태가 동북아의 헬싱키체제를 강력히 주장했듯이 동북아 평화의 길을 밝히는 아이디어와 전략들이 쏟아져 나오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개성공단을 방문한 김근태는 ‘평화는 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가 번영입니다. 아무쪼록 귀한 시간을 내신 분들 모두 학술세미나를 통해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평화에 대한 열정과 숙고를 기억하며 평화에 대한 신념과 평화를 만들어낼 통찰을 키우는 시간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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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조강연 : 최상용 (전 주일대사) |
■최상용 전 주일대사 = 한·중·일 정상회담이 중요하다. 세계사의 두 중심축은 서양과 동아시아국이다. 2008년 이후 매년 정례화됐던 한·중·일 정상급 회담이 올해 처음으로 열리지 못했다. 올해가 우리 차례인데, 왜 열지 않는지 정부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묻는 전문가도, 언론도 없다. 한·일관계가 어려워서 그랬다면 역설적으로 더 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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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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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 : 이삼성 (한림대 교수) | 현 시기 동아시아 평화에 대하여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미국의 동아태 해양패권과 중국의 긴장, 그리고 한국
이삼성 (한림대 교수)
이 글의 주제와 문제의식:
유럽과 달리 오늘의 동아시아 질서에서 더욱 현저해지고 있는 갈등의 구조는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인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개념.
동아시아 대분단체제가 작동하고 재활성화되고 있는 구체적 표상으로서, 미일동맹의 동아태 해상패권과 팽창하는 중국의 자기정체성 의식 간의 점증하는 긴장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네 곳의 지정학적 요충에서의 갈등의 논리적 구조에 대한 이해.
표면화되고 있는 동아시아 해양 영토분쟁의 문제와 미국: 동맹의 논리와 그 한계. ‘이어도’ 문제의 동아시아적 맥락과 평화: 한국의 선택의 기본방향은 무엇인가.
1. “통합과 상호의존의 시대”에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존재이유
- 전후 세계질서에 대한 세계 국제정치학계의 담론의 지배적 개념틀인 “냉전/탈냉전” 담론으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본질을 포착하는데 개념적 한계.
- 전후 유럽질서와 동아시아질서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차이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 1990년대 탈냉전기에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안보질서--미일동맹 주축--의 쇠퇴가 아니라 갱신과 재활성화,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가시화된 중국의 부상이 초래하는 동아시아질서의 지정학적 긴장.
- 1990년대 탈냉전과 더불어 오히려 활성화된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역사논쟁.
-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냉전/탈냉전의 ‘보편적인’ 시대구분을 넘어서는 다차원적인 갈등과 분열의 구조를 통합적으로 포착하고 담을 수 있는 개념의 필요성.
- 통합과 상호의존의 외관 뒤에 도사린 대분단 구조의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함정에 가장 취약한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직시의 필요성.
2.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이론적 전제
- 케네스 왈츠와 국제정치구조 - 갈등과 동맹의 구도 - 차상위 강대국(중대국)들의 문제 - 국제질서와 역사, 및 역사인식: “현재의 상황에 대한 행위자들의 인식의 틀을 과거(the past)가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주목.
3.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구성요소와 구성요소간 상호관계
(1) 중층성:
1) 대분단의 기축: 중국대륙-미일동맹 2) 국지적 분단체제들(or ‘소분단체제들’: national divisions)
(2) 다차원성:
1) 지정학적 전통과 구조
- 19세기 말 청일전쟁 이후 아시아대륙에 대한 공동경영을 위하여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하고 긴장하면서도 권력정치적 흥정을 통해 상호적응하면서 구축해온 미일연합의 전통이다. 진주만으로 시작해 원폭 사용으로 끝난 4년간의 치열한 패권전쟁이었던 태평양전쟁에 대한 기억이 압도하면서 20세기 초부터 미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한 내밀한 지정학적 연합의 역사는 흔히 간과된다. 그러나 미국은 애당초 중국 경영을 위해 일본을 개항시킨 장본인이며,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지정학적 전략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그 기축이었다. 태평양전쟁 시기를 제외한 지난 1세기가 그 지정학적 연대의 유서 깊음을 증거한다.
2) 역사심리적 간극
- 청일전쟁 이래 반세기에 걸쳐서 전개된 일본의 아시아대륙에 대한 침략과 난징학살에서 절정을 보여준 제국주의적 야만이 일본과 아시아대륙 사이에 심어놓은 역사심리적 간극(historico-psychological hiatus)이다.
3) 이데올로기적 간극
- 전후 중국에서 전개된 내부 투쟁에서 미국은 미래의 세력이 아닌 과거의 세력과 연대했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중국에서 승리하면서 미국 및 일본과 중국대륙 사이에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장벽이 구축된다. 더 결정적인 것은 1949년 중국 공산당의 승리를 전후해 미국과 신중국이 “우방은 아니라도 평화적 공존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들을 두 나라 모두 끝내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3) 대분단체제의 형성과 한국전쟁의 역사적 상호작용
- 위의 세 요소는 1940년대 말 동아시아에 ‘대분단’의 기본틀이 형성되었음을 말해준다. 한국전쟁은 그 결과의 하나였다. 한국전쟁은 대분단의 기본구조가 낳은 역사적 비극이었다. 스탈린, 김일성, 마오쩌둥 사이의 전쟁 모의에서 마오가 적극 반대했다면 한국전쟁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도 중국도 서로 정상적 외교관계에 바탕한 평화적 공존을 거부한 조건에서 한국전쟁의 기본환경이 마련되었다.
- 그렇게 해서 발발한 한국전쟁은 역으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를 공고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와 대만해협, 그리고 인도차이나의 국지적 분단체제들이 공고해졌고, 미일군사동맹도 공식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일동맹과 중국대륙 사이의 갈등 기축과 세 개의 분단구조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심화시키는 하나의 ‘체제’를 구성하게 되었다.
(4) 상승적 상호작용 패턴:
1) 대분단의 기축과 소분단체제들 사이의 상호 상승효과, 상호지탱 장치
- 미일동맹과 중국대륙 사이의 긴장 구조는 한반도, 대만해협, 인도차이나의 국지적 분단체제들에 지속성을 부과하는가 하면, 그 대분단 기축 관계에 해빙이 올 때는 국지적 소분단체제들에서의 긴장이 대분단 기축 관계의 긴장을 복원시키고 유지시키는 악순환 고리의 역할을 수행한다.
2) 지정학적, 이데올로기적 요소들과 역사심리적 간극 사이의 상호지원 관계.
- 미일동맹과 중국대륙 사이의 갈등이라는 이 대분단의 기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들인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대립구조와 역사심리적 간극이 서로를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심화시키는 관계에 놓였다.
- 전후 동아시아 질서의 이 내면적 성격이야말로 전후 유럽질서와 동아시아 질서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었다. 유럽의 냉전체제에서는 독일이 분단된 가운데, 서독은 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서 서방국가들과, 그리고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통해서 공산권 국가들과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동맹을 이루었다. 이로써 독일과 그 나머지 국가들 사이의 역사심리적 간극은 그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동맹의 질서들에 의해서 완화되고 해소되어갔다..
- 전후 유럽에서는 독일 나찌즘에 의해 피해를 당한 당사국들인 영국, 프랑스, 소련이 미국과 함께 독일의 전후처리에 직접 간여했다. 이 때문에 독일인들 자신의 철저한 자기반성은 독일 재건과 부흥의 절대적 전제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반면에 전후 동아시아에서는 제국주의와 반인류적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아시아 대분단의 기본구조에 의해 분리되었다. 역사심리적 분열은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대결의 구조와 정확하게 겹치면서, 동아시아는 그 세 가지 차원이 중첩한 삼중적 분열구조를 갖게 되었다.
- 이 구조 속에서 제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였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은 일본의 전후처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일본 재건의 조건으로 역사 반성은 불필요했다. 이것이 전후 동아시아에서 피해국들의 역사심리적 간극을 부단히 환기하고 재생산하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논쟁과 망언소동의 바탕이 되어왔다.
- 결국 유럽의 냉전질서는 양차대전 시기에 형성된 역사심리적 상처의 치유 메카니즘이었다. 전후 동아시아의 대분단체제는 제국주의 시대 역사심리적 상흔을 ‘응결’(凝結: freeze or congelation)시키는 장치였다.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침략의 유산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는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에 집착하는 것 역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내면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
4.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불연속과 연속
- 1980년대 이래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첫째 계기로 해서, 그리고 공산권의 붕괴로 인한 냉전체제 해체를 둘째 계기로 헤서, 동아시아의 대분단체제도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동아시아 대분단의 주요 구성요소들인 지정학적, 이데올로기적, 그리고 역사심리적 간극은 새로운 에너지로 재충전되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전지구적 냉전 종식’에도 불구하고 왜 지속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네 가지 요인을 주목해야 한다.
1) 지정학적 차원의 변화와 지속.
- 1960년대 중소분쟁과 1970년대의 중미관계 정상화로 인해서 중국과 미일동맹 사이의 지정학적 대립은 완화되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과거 소련을 대체한 지정학적 위협으로 부각되었다. 이 현상은 2000년대 들어 더욱 분명해졌다.
2)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변화와 교체에 의한 지속.
- 공산주의-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냉전형 이데올로기 갈등은 크게 완화되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정치이념적 간격이 부상했다. 냉전 해체는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민주화를 수반했다. 반면에 특히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 나머지 세계 사이의 정치적 이질성은 새롭게 재확인되었다. 탈냉전 동아시아에서 주된 이데올로기 대립구조가 공산주의-자본주의로부터 권위주의-민주주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그 차이는 정치문명적 이질성, 또 하나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으로 정의되면서 사실상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적 차별성을 재생산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3) 역사심리적 간극의 차원과 그 지속성.
- 전후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속에서 응결되었던 역사심리적 간극은 탈냉전과 함께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공론화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보호 속에서 냉전 시기 내내 역사문제를 망각하고자 했었다. 반면에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응결되었던 역사인식의 문제가 냉전 해체와 함께 오히려 해방기를 맞았다. 탈냉전에 들어 일본 정치사회의 주역이 된 전후세대의 일본인들은 거의 반세기를 망각하며 지냈던 역사문제를 갑자기 맞닥뜨려야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황당하고 생경한 문제였음에 틀림없었다. 이 같은 역사인식의 이질성은 과거 냉전시기 이념적 대립을 대체해 일본(미일동맹)과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 사이에 무시할 수 없는 마음의 장벽을 드리우게 되었다. 이 역사심리적 차원의 간극은 탈냉전 후의 세계에서 과거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대신하여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된 민족주의와 결합함으로써 그 힘을 충전 받고 있는 형국이다.
4) 대분단의 기축과 국지적 분단체제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한 지속 효과.
- 중국과 미일동맹이라는 대분단의 기축과 함께 한반도와 대만해협에 잔류해 있는 국지적 분단 상황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체제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중엽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 핵문제가 그러했으며, 특히 1994-95년을 기점으로 명백하게 부각된 대만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또한 그러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 간의 외교적 지정학적 긴장과 불가분하게 얽혀왔다.
-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군비경쟁의 물결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그리고 이 군비경쟁의 물결 속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정책도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논리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역으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그 논리체계 안에서 연결시키는 고리가 되고 있다.
5. 2000년대 국면에서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 지정학적: 미국의 부활과 쇠퇴, 중국의 부상. 미일동맹의 대응. 영토분쟁의 본격화.
- 이데올로기적: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에 따라 이데올로기 분열이 문명론의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
- 역사심리적 차원: 중국이 직면한 대체 이데올로기 개발의 숙제, 일본의 불안의식과 유서 깊은 ‘동아시아질서에서의 경계인적 의식’이 대분단체제에 이미 내재한 역사심리적 간극의 정치화를 심화시킬 가능성.
- 대분단의 기축과 국지적 분단들 사이의 상호작용 양상 1) 한반도 2) 대만해협
6. 동아시아질서에서 미국의 기득권의 실체: 동맹네트워크에 기초한 해양패권
미국의 동아태 지역 해양패권의 요체: 중국 본토 이외의 동아태 지역 전반에 대한 중국의 권력투사능력을 제한하고 봉쇄할 수 있는 군사정치적 능력.
두 가지로 구성: 1) 중국 이외의 동아시아 국가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체제에 포섭하여 유지하고, 중국에 인접한 이들 국가들의 영토들을 군사기지화할 수 있는 능력(군사적, 정치외교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힘 포괄); 2) 중국의 전략적 무기체계의 효력을 제한하고 무력화할 수 있는 첨단 군사력 (전략핵, 미사일방어체제, 재래식 첨단무력에서 중국에 대한 월등한 상대적 우월성)
이 두 가지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확보하고 있는 동아태 해양패권의 표징 및 바로미터: 중국의 권력투사능력을 봉쇄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들에 대한 확고하고 지속적인 장악.
1) 대만 2) 남중국해 3) 오키나와 열도 해역 4) 한반도 서해상
7. 미국의 동아태 해양패권과 팽창하는 중국 국력의 충돌 지점
중국의 국력팽창에 따라 중국의 자기정체성과 국익 개념이 팽창하고 있다. 기존의 미국 패권에 의해 제한되고 절제되어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확장함에 따라, 기존 미국의 해양 패권은 근원적으로 상충한다. 이러한 갈등적인 지정학적 현실은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외교적 노력이 없이는” 내재적인 상충의 요인들로 인해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평화를 위협하는 긴장의 구조를 발전시킬 운명.
(1) 대만해협에서
1)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one China policy’를 인정하지만, 2000년대 미국의 대만 정책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에서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으로 이동한 추세.
- 1979년 미 의회를 통과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 “중화민국(ROC)이 충분한 자위능력을 갖도록 방어적 무기를 제공할 것”이며, “미국은 대만의 안보를 위협하는 무력이나 강제력의 사용을 저지하기 위한 능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명기.
2000년 2월 미 하원이 공화당의 주도하에 통과시킨 <대만안보향상법>(Taiwan Security Enhancement Act): 미국과 대만 군부 사이의 관계를 공식화, 대만이 요구하는 무기는 무엇이든 미국정부가 긍정 검토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
<대만안보향상법>은 당시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것을 우려한 클린턴행정부가 이 법안의 상원 상정을 만류. 그럼에도 이 법안이 하원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했던 사실은 2000년대 부상하는 중국을 의식한 미국의 대만 인식의 추이(전략적 명확성으로의 추이)를 상기시켜 준 것.
2001년 미국의 4개년 방위검토(QDR 2001): 미국의 중대이익이 걸린 4개 핵심지역의 하나로 “연해국 개념”을 제시: 여기엔 대만에서 벵갈만에 이르는 해역의 주요 도서국가들을 망라.
2)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토적 존엄성’ 관념의 강화:
2005년 3월 중국 제10 전인대 3차 회의는 <반국가분열법>(反分裂国家法; Taiwan Anti-secession Law)을 통과시킴: 타이완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무력(non-peaceful means)을 사용할 수 있다는 중국의 입장을 공식화한 의미.
(2)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항해자유 및 ‘연해국’ 개념과 중국의 영토주권의식 사이의 대립과 긴장
1992년 중국은 <영해와 인근지역에 관한 법>(Law on the Territorial Sea and the Contiguous Zone)을 발표. 이후 영토주권 문제에 관해 원칙적으로 비타협적 태도: 이 법은 중국의 영토를 정의: 본토와 그 해안 도서, 대만 및 그 부속 도서. 뿐만 아니라 다이오유 군도, 팽호열도, 동사군도, 지샤군도, 난사군도(Spratly Islands)도 포함시켜 열거함.
이에 대응해 미국은 1995년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국제법에 어긋나는 해양 관련 주장이나 해양활동에 대한 제한은 그 어떤 것도 심각한 우려를 갖고 바라볼 것”이라고 밝힘.
1995년 8월 미 국무장관 워런 크리스토퍼는 필리핀에서 선언: “항해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근본이익(fundamental interest of the US).”
남중국해의 여러 섬들은 중국에게는 영토주권의 대상이지만, 미국에게는 이 지역에서 항해의 자유 확보에 필수적인 요충지들.
이후 미국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안보협력 강화. 이 국가들과 공동군사훈련을 시작. 특히 인도네시아와 호주와는 새 안보조약을 체결:
미국은 동남아 지역 해상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 지역에서 중국이 난샤군도에 영토적 기반을 확립할 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협정들을 체결.
2001년 9월에 발표된 부시행정부의 <QDR 2001>이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핵심으로서 “세계의 핵심 지역들을 적대적인 세력이 지배하는 것을 막는다”는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과거부터 이미 핵심지역으로 정의된 <유럽>, <동북아시아>, <중동 및 서남아시아>에 덧붙여 <동아시아 연해국 지역>(East Asian Littoral)을 새로이 추가한 것은 그 같은 추세의 귀결.
3) 오키나와 열도
오키나와 열도(沖縄諸島; Okinawa Islands)는 일찍이 1948년 당시 미 국무부 기획국장 조지 케난에 의해서 “서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공격적 타격력의 중심”으로 정의되었다.
그 때 케난은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대륙의 동부 중앙이나 동북아시아의 어떤 항구로부터든 상륙해오는 군대의 집결과 출격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오키나와에 기지를 둔 공군력과 전진배치된 해군력을 이용할 수 있다.” 같은 시기 맥아더도 같은 취지의 견해를 분명히 했다.
냉전 초기에 케난과 맥아더가 밝힌, 미국에 있어서 오키나와 열도의 군사전략적 의의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유사시 동아태지역에 대한 중국의 권력투사능력을 봉쇄하는데 있어서 미일 해양패권의 핵심 라인이다.
센카쿠(다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실효적 지배에 중국이 도전하는 것은 미일동맹에 의한 동아태 해양패권의 요충지로서 대만과 오키나와열도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92년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와 인접구역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그 안에 다오위다오 등의 도서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센카쿠 문제를 공식 분쟁화한 중국의 움직임의 역사적 배경으로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享) 교수는 1989년 텐안먼 사건과 함께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붕괴로 더 이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국민통치가 불가능해진 조건에서 당시 실각한 자오지양(趙紫陽)을 대신해 집권한 장쩌민(江澤民) 서기가 애국주의를 내세운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분석한다.
1990년대 초의 중국의 움직임이 중국 안의 내부 사정과 중국 밖에서의 세계질서 변동이라는 자극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했다면, 2010년 9월 중국 어선이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충돌한 사건을 계기로 한 센카쿠/다오위다오 분쟁 본격화는 중국의 실질적 국력 팽창에 따른 중국의 자기정체성 확장과 영토적 개념의 확장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즉, 미일의 해양패권에 대해 중국이 실력으로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주목할 점은, 2010년 9월의 사태는 2000년대 들어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을 명분으로 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포함하여 오키나와와 대만 해역에서 중국을 가상적으로 한 미일동맹의 군사적 활동이 본격화한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구체적인 원인의 기점은 대만 이등휘 정권의 독립선언 소동으로 중국이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 군함이 출동한 1994-95년의 미사일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 2000년 5월 30일부터 한달 간 하와이 근해에서 미국은 환태평양 국가들과 영국까지 참여시킨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주도했다. 림팩(RimPac)훈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 그리고 호주, 캐나다, 칠레, 영국의 군대들이 참가했다.
- 2004년 대만은 2006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을 가상한 컴퓨터 전쟁게임을 실시한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대만해협 침공을 대비하는 공동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중국을 상대로 한 군사훈련들이 대만과 미일동맹 간에 동시에 실시된 것인데,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알려졌다. 이 무렵 대만 군 관계자는 향후 미일 합동 군사훈련에 대만을 참가시키기 위한 포석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센카쿠/다오위다오에 대한 중국의 주권 주장 강화는 오키나와 해역 및 대만해협에서 미일동맹의 군사활동이 강화되어온 것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동중국해에서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꾸준히 증가해온 2000년대에 한국의 제주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구체화되고 추진되고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필요성 여부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이러한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볼 때 제주해군기지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주요 충돌지점의 하나인 동중국해에 한국이 미일동맹의 일부로서의 기능을 가진 해양 전초기지를 추가하는 의미를 갖는다. 제주도 남방의 이어도 문제에 중국이 민감해져 온 것은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무관하지 않다.
4) 한반도 서해상에서
한반도 서해상은 역사적으로 중국에게 있어 한반도에 대한 군사정치적 패권의 관문이었고, 역으로 일본이나 미국이 중국과 한반도를 포함한 여타 동아시아 지역 사이의 정치적, 전략적 관계를 통제하는 핵심적 요충이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한반도 침략에서, 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 일본의 대륙침략에서 한반도 서해상에 대한 해상패권은 결정적. 반면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야망이 좌절된 것은 조선과 명의 연합세력이 한반도 서해상에 대한 해상패권을 견지했기 때문.
전후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중국 남부에 집중되어 있던 장개석 군대를 요동반도로 옮겨 그들의 만주장악을 도운 미국의 해군작전에서도 한반도 서해상이 그 요충이었으며, 뒤이어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이 한반도의 북한군을 두 동강 내어 전쟁의 분수령을 이룬 것 역시 한반도 서해상이었다.
- 오키나와해협이나 대만해협, 그리고 남중국해에서와 같이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에 해상패권을 둘러싼 긴장이 발전할 경우 한반도 서해상에 대한 미국의 해상패권은 중국에게 더욱 심각하고 치명적인 위협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 평택은 한반도 서해상의 군사기지이며, 베이징이라는 중국의 정치적 심장부를 근접하게 겨누고 있는 비수와 같은 위치에 있다. 이 곳에 미국의 한반도 서해상 군사기지가 정비되면서 미군이 구사하게 될 ‘전략적 유연성’은 그런 점에서도 중국의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되어 있다.
8. 동아시아 영토분쟁과 미국의 위치
- 2000년대의 동아시아, 아시아대륙판과 태평양판의 길항 형세
-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문제는 중일관계, 한중관계, (냉전시대엔 ‘북방영토’를 둘러싼 일소관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동아태 해상패권이라는 미국의 기득권과 깊은 관계.
-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영토분쟁에 대해여 미국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배후에서 분쟁과 갈등의 양상에 영향을 미쳐왔다.
- 일러관계, 중일관계, 한중관계, 한일관계를 조절하는 키를 장악. 이로써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관리하고 통제.
1) 냉전시대 ‘북방영토’ 문제와 일러관계에 대한 미국의 통제
- 마고사키 우케루: “북방영토 문제는 포츠담선언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대부분 결정되었다. 미국은 냉전 기간에 일본이 미국을 벗어나 소련과 독자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일소관계의 장애물로 북방영토를 충분히 활용했다. 소련이 결코 양보할 리 없는 구나시리와 에토로프섬을 일본이 요구하도록 조장했다.”
2) 2000년대 센카쿠/다오위다오 문제: 중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통제
- 마고사키 우케루: "지금도 미국은 똑같은 수법을 써서, 센카쿠열도 문제를 중국 견제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안전보장에서 최대 과제는 중국이 되었다. 미국 국내 여론은 중국을 껴안으려는 비둘기파와 대결하기를 바라는 매파로 나뉜다. 전자는 금융과 산업계이다. 후자는 군산복합체이다. 둘 다 미국 내에서 기반이 단단하다. 어느 일방이 완전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정책은 앞으로도 협조와 대결노선 사이를 끊임없이 오갈 것이다.“
- 여기서 마고사키 우케루가 말하는 미국의 ‘중국 견제 카드’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의 ‘중일관계 통제 카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9. 동아시아 영토분쟁이 폭발할 경우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책임: 센카쿠와 미일안보조약
- 1960년 미일안보조약 제5조에 따르면, 미일안보조약은 "일본이 관할하는 영토"(territories under Japanese administration)에 대해 적용된다.
- 2004년 3월 미 국무부가 밝힌 미국의 공식 입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래 센카쿠열도는 일본관할이다. 2) 센카쿠에 대한 주권은 분쟁 중이다. (분쟁 중인 영토에 대한) 최종적인 주권 문제에 미국은 개입하지 않는다.
- 2005년 10월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 럼스펠드 국방장관, 그리고 일본의 마치무라 외무대신 오노 방위대신 등 4자가 서명한 <미일동맹-미래를 위한 변혁과 재편>이라는 문건이 있다. 이 문건은 일본의 도서지역이 침략을 당했을 때 일미 양국 각자의 역할과 의무를 규정했다. 도서지역이 침공을 받았을 때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따라서 만일 중국이 센카쿠/다오위다오를 무력으로 확보하여 자신의 실효지배를 구축하면 이 섬은 중국의 관할지(territory under Chinese administration)가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미일안보조약상 미국의 개입의무가 소멸된다.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이 센카쿠/다오위다오를 공격하면 방위를 책임지는 것은 미군이 아니고 일본 자위대의 전적인 책임이 된다는 것이다.
- 마고사키 우케루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 “일본은 북방영토, 독도, 센카쿠열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강고한 미일동맹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는 이러한 인식과 크게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10. ‘이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해역을 둘러싼 긴장의 의미와 배경
- 일본인들이 북방영토와 센카쿠열도에 대하여 미일동맹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듯이, 한국인들도 독도와 이어도 문제에 대해 한미동맹이 긴요하다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갖고 있다.
- 미국은 동아태 해상패권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로서 중국과 일본, 한국의 해양영토 분쟁을 일면 필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영토적” 환상으로 인한 분쟁이 실제 폭력화할 경우 미국이 군사개입할 것이라는 한국인의 기대는 북방영토, 센카쿠/다오위다오에 대한 마고사키 우케루의 분석에서 시사되듯이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 이어도 해역은 중국 동해함대가 ‘대양해군’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이다.
- 김찬규 한국 국제해양법학회 명예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수중 돌기물’인 이어도 해역은 국제법상 ‘해양경계획정’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이 저마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다. 실제 한중 양국이 EEZ를 선포한 상태이다.
- 중국은 2013년 11월 23일 동중국해의 대부분 상공을 포함하는 '동해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일본은 이미 1969년 그 일부인 이어도 해역을 포함하는 상공을 일본의 ADIZ에 포함시킨 상태였다. 2013년 12월 8일 한국정부 역시 이어도 해역을 KADIZ에 포함시킴에 따라, 이어도 해역은 한중일 삼국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곳으로 되었다.
- 공해와 달리 타국의 EEZ로 된 수역의 상공에는 ADIZ를 설정하는 것은 위법이다. 그러나 일본이 이 지역을 1969년 자국의 ADIZ에 포함시켰는데, 당시는 이어도 해역이 공해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어도 해역이 한중 양국의 EEZ로 선포된 이후는 일본이 이 지역 상공을 계속 자국의 ADIZ에 포함시키는 것은 위법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의 ADIZ에 중국이 협의 없이 중복적으로 ADIZ를 설치한 것을 위법이라 주장한다.
- 중국이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 전체에 대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은,
1) 이 해역이 현재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되어 있어 적어도 상징적 수준에서 미일동맹의 해양패권 영역으로 간주되는 현상을 해체하고자 하는 첫 시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2) 센카쿠/다오위다오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오키나와 해역에서의 미일동맹 해양패권과 팽창하는 중국의 필연적 긴장이라면,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의 해역 및 상공에 대한 관할권 경쟁은 오키나와 열도에서의 긴장의 필연적 북상(北上)이라는 측면을 띠고 있다.
미국이 2010년을 전후하여 공개적으로 본격화한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Rebalancing East Asia, 또는 Pivot to Asia)에 따라, 특히 2013년 하반기에 들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collective self-defense)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또 센카쿠/다오위다오를 미일안보조약의 대상으로 확인하는 등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동해방공식별구역’ 전격 선포가 이루어진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한국의 해양과학기지의 구축에 이은 제주도해군기지 건설 본격화에 대한 대처로서 촉진된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11. 이어도와 한중관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어도는 영토가 아니라 수중 암초이다. 한국이 이어도 해역을 배타적 경제수역에 포함시킨 상태지만, 중국도 그러하며, 중국이 이를 철회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는 한에서 한중 두 나라 모두 이어도 해역을 저마다 자국의 ADIZ에 포함시킨 상황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이어도 해역이 한중 양국 모두의 EEZ에 포함된 상태에서 이 해역에서의 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 해역의 한중 이해관계 충돌의 군사화를 막는 일이다.
이 해역에서의 한중일 삼국 간에, 그리고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제도적 장치로 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분쟁의 군사화를 막을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어도 해역에서 한중간 분쟁에 대한 한국의 군사적 대응은 이를 빌미로 한 중국의 이어도 무력 장악 사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 미국이 한미동맹에 근거해 군사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미국은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무력 장악 가능성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미일동맹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행동을 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미국 및 일본의 조치들이야말로 중국에게는 “어느 시점엔가는 반드시” 이어도에 대한 과격한 군사행동을 결행해야 할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불행한 사태의 경우에 우리에게 남겨진 결과는 무엇일까. 이어도가 중국 관할권(under Chinese administration)에 들어간 다음의 중국 대 미일동맹 사이의 군사적 대치의 고도화이다. 한국은 이어도와 함께 이른바 ‘제주도 남방 해역’의 평화 두 가지를 모두 잃는 일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에서뿐만 아니라 한반도 서해상 전체에서 EEZ 에 대한 상호존중과 한중어업 분쟁의 평화적 문제해결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적 통일에 결정적 키의 하나를 쥐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는 그렇게 관리되고 운영되어서는 물론 안 될 일이다.
“이어도는 필요하다면 군사적으로 지켜야 하고, 또 미일동맹의 지원을 받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군사적 사유와 군사적 접근이야말로, 이어도 문제의 군사화를 촉진하고, 끝내 이어도를 무력으로 잃게 되는 가장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이어도에서 한국의 위상과 이익을 지키는 문제는 한미동맹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의 함수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숙제의 하나로 되었다.
12. 동아시아 질서의 미래와 한국의 선택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미래는 몇 가지의 모델을 가상해 볼 수 있다.
1) 평화적 양극질서 peaceful bipolarity (between China & the US-Japan alliance)
2) 대립적 양극질서 confrontational bipolarity (between China & the US-Japan alliance)
3) 중국 패권체제 (Pax Sinica): 설사 이 가능성이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평화적이든, 대립적이든 미일동맹과 중국을 두 축으로 하는 양극체제(bipolarity)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될 것이다.
- 중국에 의한 일원적 패권체제(Chinese unipolar moment)는 결코 가까이 있는 현실이 아니다. ‘중국 천하체계’의 복원을 운운하는 것은 지극히 성급한 논의이다. - 그런가 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 패권체제를 제한하는 중국의 힘은 1950년 11월에,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1994년 6월에 입증되었듯이, 한반도에 언제나 실재해왔다는 것 또한 인식해야 한다.
4) 혼돈의 다극질서 relatively chaotic multipolarity
5) 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체제 relatively peaceful multipolarity (peaceful coexistence of great powers and smaller states under a set of multilateral institutions)
13. 한반도의 역할과 선택
최근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 상공을 둘러싼 긴장을 두고 미국의 군산학복합체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에서 이탈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동맹에서 소외되고, 그 결과 중국에 끌려 다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극복에 한반도가 기여할 바의 일차적인 근본 전제는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창조하고 경영하는 일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한국이 대립적 양극질서(confrontational bipolarity)의 발전을 방조하고 그 안에서 일방적인 ‘가치동맹’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기대 난망이다.
“미국과의 가치동맹”에 대한 대안이 “중국과의 가치동맹”은 아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기존의 동맹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원교근친”(遠交近親), 즉 “가치의 균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 동아시아에서 한반도는 역사의식을 포함한 가치의 영역과 지정학적 견지에서 모두 “중간자”적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반도가 항상 동아시아의 긴장과 위기의 중심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선택과 역할이 동아시아의 미래에 갖는 중요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 “동맹의 논리”와 “자주적 근린외교”가 근본적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순간이 오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동맹외교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에서의 평화구축에 기여하는 한도에서라는 ‘전략적 절제’가 그 전제로서 한국과 미국 모두에 의해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국이 이 원칙을 넘어서 중국에 대한 비수가 되기를 요구하는 동맹은 근본적으로 위험하다.
- 한국의 외교전략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만이 위험하다면, 대분단체제의 구조 안에서 어느 일방의 하수인이 되어 다른 일방의 코앞에서 그 눈동자를 찌를 수 있는 흉기로 보이는 것은 더욱 위험한 선택이다.
- 미국의 군산학복합체는 동맹에 대한 한국의 로얄티(Loyalty)를 압박한다. 그러나 한국의 동맹외교가 추구할 일차적인 임무의 하나는 그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평화적 통일에 대한 기여라는 “동맹의 근본적이고 제한적인 취지”를 동맹국에게 인식시키고, 동맹을 그 목적에 부합하게 경영하는 노력이다. 그것이 한국인과 그 동맹국이 함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의 지정학적 숙명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한국의 기여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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