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개혁 세력이 대선에서 패배한 후, 지식 사회에서는 진보의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도 좌파 지식인이 모여 만든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도 그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한국 사회, 신진보를 찾아서' 연속 토론회를 개최한다.
'민주화 이후 신진보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첫 번째 토론회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24일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열린다. <프레시안>은 이런 움직임이 시민과 공명할 수 있도록 토론회 발표문을 전재한다. 첫 토론회에서는 김윤태 명지대 교수('제3의 길과 새로운 진보')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제3의 길은 과연 대안인가')가 발표한다. <편집자>
들어가면 : 제3의 길의 '2단계 논쟁'
'제3의 길'이라는 용어는 원래 1950년대 스웨덴에서 사용했다. 소련의 국가사회주의와 미국의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제시했다. 1990년대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조세감면, 균형재정, 복지개혁 등 공화당의 정책을 수용하면서 다시 '제3의 길'을 주장했다. 1997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가 등장하면서 거시경제의 안정, 균형재정, 규제완화, 시장개방 등 보수당의 정책을 적극 수용하였다. 1998년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 교수의 <제3의 길>은 신민주국가, 신혼합경제, 적극적 복지, 사회투자국가, 세계주의, 지구적 협치, 생태적 현대화 등을 강조했다.
제3의 길 정치의 실험으로 전통적 사회민주주의를 쇄신한 영국이 대표적 사례이다. 1994년 블레어는 노동당의 국유화 강령을 포함한 당헌 4조를 개정하고 1인1투표제를 도입하여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해 신노동당(New Labour)으로 전환했다.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한 블레어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케인스주의 관리국가의 경제정책을 포기하고,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라는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이탈했다. 신노동당의 개혁에 대한 비판자들은 블레어를 '사회주의의 배신자' 라고 비난했다. 블레어 정부는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제3의 길'를 주창했다.
제3의 길 정치는 시장의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했다. 블레어 정부는 지속적인 경제 호황, 고용 확대, 공공 투자의 증가, 아동과 노인 빈곤의 감소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영국 노동당은 이제 더 이상 세금을 올려 정부 지출만 늘리며 노동조합의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정당이 아니라, 경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정부의 공공서비스를 개혁하여 전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국민정당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사회의 전반적 불평등은 증가했으며, 시장과 기업의 힘이 사회와 정치에서 지나치게 커졌다. 이러한 권력과 재산의 불평등은 민주주의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블레어 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함께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어 인기가 폭락했고 그의 잘못된 판단으로 결국 총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제3의 길 정치는 죽었는가? 1998년 이후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제3의 길 정치는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실제로 제3의 길을 주창했던 클린턴 행정부가 물러나고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제3의 길의 영향력이 감소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외교정책에서 일방주의를 내세우는 동시에, 국내정책에서도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를 주장하면서 클린턴 행정부의 노선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 그 후 유럽에서도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에서 차례로 진보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여 진보세력이 퇴조한 듯이 보였다. 프랑스는 2007년 대선을 맞이하여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이 제3의 길을 수용하였으나 대선에서는 패배했다.
일부 진보정당의 약화에도 불구하고 제3의 길 정치가 몰락했다고 볼 수는 없다. 2008년 1월 기준으로 유럽에서 제3의 길을 주장한 영국 노동당이 아직도 집권하고 있다. 2005년 스페인에서 사회노동당이 승리하였으며, 포르투갈에서도 진보정당이 승리했다. 2006년 다시 이탈리아에서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중도진보 성향의 '올리브연합'이 승리했다. 핀란드에서는 중도파와 연정을 구성하고, 벨기에에서는 우파와 연정을 유지했다. 2005년 9월 독일 사민당은 기민당과 대연정을 구성하였고 사민당 국회의원이 재무장관으로 활동한다. 좌파와 우파 정부의 혼전 양상을 보이는 서유럽과는 달리, 동유럽에서는 중도진보 정부들이 약진했다. 최근 유럽연합에 가입한 체코와 헝가리에서도 중도진보 정당이 집권했다. 뉴질랜드에서 다시 노동당이 집권했으며, 호주에서도 2008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했다. 남미에서도 브라질에 이어 칠레에서 중도진보 정부가 잇달아 등장했다.
제3의 길을 추진하는 중도진보 정당들은 국제적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2003년 국제 진보 거버넌스 회의(Progressive Governance Conference)가 런던에서 시작된 이후, 2004년 10월 헝가리에서 유럽, 미국 등 150여개 국가의 중도진보 정당이 모여 진보 거버넌스 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세계의 사회주의 정당이 결성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과 다르다.
1997년 런던에서 '제3의 길' 정치를 주창한 클린턴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의 대담 이후, 중도진보 정부의 지도자들이 뉴욕, 피렌체, 베를린, 스톡홀름에서 진보정상회담(Progressive Governance Summit)을 해마다 개최했다. 이를 통해 조세감면, 균형재정, 고용증대, 지속적인 성장을 추진하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2004년 헝가리 회의에서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스페인의 호세 사파테로, 헝가리의 페렌츠 주르차니, 뉴질랜드의 헬렌 클라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보 무베키 등 13명의 국가 지도자들이 참가하여 진보정상회담이 개최했다. 2006년 2월 진보정상회담은 개발도상국들 가운데 최초로 남아프리카에서 개최했다.
2000년 런던에서 정책 네트워크(Policy Network)를 결성하여 진보정치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싱크 탱크가 활동한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등 유럽의 다양한 싱크 탱크와 협력하여 다양한 회의와 토론을 주도한다. 2005~6년에는 '유럽사회모델(ESM)'의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 주요 인물은 피터 만델슨, 앤서니 기든스, 패트릭 다이어먼드 외 다수의 유럽과 전 세계의 중도진보 정치인들이 참여한다.
1998년에는 '제3의 길이 가능한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 데 비해, 최근에는 '어떤 제3의 길인가?'에 관한 논쟁으로 이동했다. 전 세계적으로 제3의 길 '2단계' 논쟁이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수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수백 편의 논문들과 책들이 발표되었다. 이 가운데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논쟁도 있었고, 구체적인 정책에 관한 논쟁도 제시되었다. 선진산업국가에서 제3의 길 정치는 대개 정부를 재구성하고 복지국가를 개혁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제3의 길은 전통적인 유럽의 좌파와 우파의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지구화(세계화)와 기술의 변화 등 급변하는 사회변동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제3의 길'은 너무나 영국적인가? 제3의 길을 단순히 영국의 경험이라고만 보아서도 안 된다. 사실 블레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입한 '근로소득세액공제(EITC)'와 '아동발달계좌'는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스웨덴에서 시작된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사회보호체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유연안정성'은 덴마크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노사정 타협의 제도화와 사회협약의 정치가 발전되지 않은 반면에,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는 사회협약이 노사관계의 안정과 사회보호장치의 확대에 큰 기여를 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제3의 길 정치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눈에 띨만한 경제발전과 고용확대를 이룩한 나라들로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를 지적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경제성장률은 증가했지만, 실업률은 높은 편이다. 성공적인 진보를 이룩한 국가들은 대개 공통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기업가의 정신을 강화하고, 기술개발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다. 이렇게 급속하게 변화하는 경제조건을 보완하기 위해서 인적자본의 개발에 투자하고 사회보호 장치를 확충했다. 결과적으로 더 높은 고용율과 더 많은 사회지출의 '선순환'을 이룩했다. 유럽 차원에서도 '유럽사회모델(ESM)'을 전환하여 성공적인 경제를 확산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유연성과 개방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효과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미국식 모델에 가깝게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효과적인 사회보호체제가 없고 경제적 불평등의 수준이 낮춰지지 않는다면 사회는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유럽의 '유연한 사회보호' 또는 '유연안정성'이 미국의 유연노동시장과 탈규제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사회보호체제가 잘 갖춰져 있다면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바꾸고, 위험부담이 있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일자리를 시작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회보호 없는 유연화'로 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과학자와 기업가가 되기보다 위험부담이 없는 공무원과 공기업을 선호하게 된다. 경제적 성과에 대한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워싱턴 합의'가 주장하는 자유시장경제와 유연노동시장을 그대로 따르는 남미,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경제는 과거보다 나빠졌고, 이를 를 따르지 않는 중국, 인도, 베트남은 더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세계경제를 단일한 모델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다.
제3의 길 정치는 한국에서 가능한가? 한국에서 제3의 길 논쟁은 매우 제한적이다. 좌파는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비난한다. 우파는 제3의 길이 좌파의 변신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일부는 제3의 길은 유럽에서나 가능한 노선이지 한국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물론 제3의 길 정치는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제3의 길 정치는 자유와 평등, 책임과 권리, 개발과 보존 등 좌우파의 대립적 가치를 둘러싼 오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의 이념 지형과 정치담론의 구조는 이와 다르다.
유럽의 사회민주당이 장악한 정부의 정책에서도 각 나라의 오랜 전통과 문화, 그리고 제도의 유산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경험이 없는 동아시아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제3의 길의 내용은 무척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제3의 길 정치가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화될 수 있는 일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제3의 길 정치는 산업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을 모색한다. 제3의 길 정치의 핵심 요소로 정부의 재구성, 경제의 재구성, 시민사회의 강화, 복지국가의 개혁, 지구적 체계의 구성, 생태적 현대화를 지적할 수 있다.
한국의 경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건국 후 50년 만에 자유와 권리를 되찾은 10년으로 볼 수 있다. 민주정부 10년은 외환위기 극복, 남북 화해 협력 체제 정착, 복지제도 도입을 추진하여 일정한 성과를 얻었으나, 지역주의 정치체제, 북핵 문제, 사회경제적 격차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특히 복지제도의 도입과 복지예산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사회형평성이 악화된 것은 가장 뼈저린 실패이다.
민주정부와 제3의 길은 선택적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제3의 길 노선에 관심을 갖고 민주당의 노선을 '중도개혁주의'로 설정했다. 2000년에 국정 지표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와 함께 '생산적 복지'를 제시했다. 2003년 등장한 노무현 정부도 제3의 길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도 '중도개혁주의'를 계승했으나 시장경제 대신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를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모두 중도진보 정부로 보고, 이 가운데 노무현 정부가 더 진보적이라고 평가한다. 이 글은 두 정부가 모두 제3의 길 정치와 선택적 친화성을 가지고 있으나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고 보고, 그 원인에 주목한다. 김대중 정부의 제3의 길 정치는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구조적 제한 때문에 불완전한 단계에 그쳤다고 평가한다. 노무현 정부는 제3의 길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 정책의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하여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정책은 개방경제와 사유화(민영화)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경향이 강했지만, 복지정책은 국가복지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은 자본시장 개방과 노동시장 유연화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급진적으로 추진되었다. 재벌개혁으로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증가했지만, 금융기관의 매각으로 해외자본이 진출하면서 금융기관의 소극적 대출과 기업의 투자 위축이 결합되어 한국경제는 저성장 경제구조로 이행하였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하기 위해 부동산 규제와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했지만, 오히려 부동산 가격 인상과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민생경제가 악화되었다. 또한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근로자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복지국가의 제도적 토대를 구축한 김대중 정부의 사회정책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1998년 이후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제도가 확대되고, 공적부조의 성격을 가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되었다. 이는 미국식 '잔여적' 복지제도라기 보다 보편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회민주적 경향으로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복지예산은 이전보다 2배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지제도가 형식적으로 도입되었고 정부의 재정 부담을 제외했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복지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수혜자 부담이 증가하고 재정구조의 악화를 해결할 수 없었다. 복지정책의 구체적 프로그램은 제3의 길 정치가 제안한 '일자리를 향한 복지'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자활 지원과 조건부 수급제의 요소를 도입하였다.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대북송검 특검,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측근 인사는 거론하지 않겠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이 기대하는 부동산 가격의 안정에 실패하고 교육개혁의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경제성장, 고용창출, 사회복지 확대도 신통치 못하다. 그래도 내가 만난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거라고 항변했다. 행정수도 건설, 공공기관과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 전시작전지휘권 이양은 '역사적 업적'이라고 자평한다. 이는 지나친 자화자찬이다. 이전 정부가 이룩한 군부의 정치개입 근절, 금융실명제, 복지제도, 남북정상회담, 정보화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굳이 좋게 보자면, 정경유착을 없애고 돈 안 드는 선거를 실시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필요한 개혁이었지만, 과거의 나쁜 유산을 청산하는 부정적 개혁에 그쳤다.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긍정적 개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구시대의 마지막 인물'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첫 인물'은 아니었다.
왜 노무현 정부는 실패했는가? 소통의 실패와 정책의 실패와 모두 문제가 되었다. 결국 '통합과 개혁'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고 '오만과 무능'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기겠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반면교사의 담론을 제시했다. 청와대는 홍보수석실을 만들고 국정홍보처에 힘을 실었지만, 결국 여당, 국회, 언론, 국민과 소통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소통의 철학을 무시한 채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선으로 변질되었다. 특히 당정분리는 여당의 지위를 약화시켰고 당내 반노세력이 커지면서 열린우리당의 붕괴를 가져왔다. 소통의 실패는 결정적으로 정치적 리더십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정책 실패의 원인을 주로 평가할 것이다.
첫째, 국민이 원하는 정책(삶의 질, 복지)보다 정권이 원하는 정책(탈지역주의, 정치개혁)에 집중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다수 국민들은 지역갈등보다 빈부갈등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대연정, 선거제도 개편, 4년중임제 개헌보다 좋은 학교, 내 집 마련, 양질의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잘못 정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도 의미는 있지만, 당장 국민이 원하는 것을 먼저 챙기는 노력이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사회복지보다 탈지역주의에 집중했다. 노무현 정부는 탈지역주의를 위해 행정수도 건설,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했다. 종부세의 재원은 사회적 양극화 해소와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서 쓰이기보다 지방 지자체의 교부금으로 이전되었다. 정치적 차원에서도 민주당 분당,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 영남 출신 인사 중용 등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러한 탈지역주의 정책은 지나치게 중앙집중적, 정치적 방법으로 실행되어 불필요한 갈등이 야기했으며, 장기적 지속성도 우려된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예산은 김대중 정부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고, 탈지역주의, 자주국방을 위해 많은 예산을 지출했다. 특히 사회보험의 재정 악화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유시민 장관 시절 병원 식비 등 일부 복지정책은 선심행정으로 실패했다. 유시민 장관은 뒤늦게 '사회투자국가'와 '아동발달계좌'는 유럽의 제3의 길 정책의 영향을 수용했으나, 시기가 너무 늦었고 예산 규모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자본시장의 개방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복지국가의 물적 토대를 강화하는 정책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한 노사정 사회협약을 만들고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만들었어야 했다. 말로만 네덜란드, 아일랜드를 내세웠지 아무런 실천이 없었다.
둘째,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 약자의 삶이 어려워졌다.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비정규직이 급증하며 자영업자의 생활조건이 악화된 데 비해, 사교육비, 주택비용, 사회보험 기여금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결정적으로 재산세 공시지가 인상은 모든 국민에게 세금을 인상하는 정부라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 정부가 자랑하는 거시경제의 지표와 별도로 민생경제와 체감경기의 악화로 인해 급격한 민심이반이 발생했다.
셋째,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부재로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했다. 정치적 담론에서 빅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정치적 어휘로 지속적으로 제시되지 못해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이 불가능해졌다. 대미외교와 대북정책도 갈지 자 걸음처럼 "반미면 좀 어떠냐"고 했다가,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에 할 말 하는 자주외교를 한다고 했다가 미국의 요청대로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파병하기로 했다. 부동산 정책도 이리저리 흔들려 아파트의 "원가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가, 나중에 분양원가를 공개하기로 했다. 많은 정책의 혼란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은 아무런 효력을 보지 못했다. 결국 여당의 '실용주의'가 청와대의 '좌파신자유주의'로 변질되어 좌우를 오락가락 하면서 정책의 신뢰를 상실했다.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 원인 :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대선에서 '회고 투표'를 이끌었다. 노무현-이명박 프레임이 압도하여 정동영은 사라졌다. 진보 유권자도 보수 유권자도 정동영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처럼 무참하게 큰 표차로 낙선한 대통령선거는 없었다.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큰 데, 신당은 부패-반부패 구도에 매몰돼 국민이 원하는 담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의 '변화와 개혁론'이 이회창의 '부패정권 심판론'을 누르고 성공한 경험을 살리지 못했다.
△전통적 진보 성향 유권자가 '도덕성'보다 '능력'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변화했다. 사회 양극화의 피해자인 서민 계층도 이명박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지지했다. 이에 비해 신당은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최근 통합신당 손학규 대표가 "국민이 이념을 버렸다"고 말하며, "국민의 삶의 질 높이고, 사람중심 국가를 만들고 소외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노선으로 "새로운 진보"를 주장했다. 그러나 '실사구시'와 '실용주의'를 강조한 말은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아직 신당과 민주개혁세력의 새로운 대안은 분명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도 어정쩡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총선에서 50여 석에도 모자라는 무참하게 패배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실용주의를 표방한다. 정통 보수주의와 다른 '신보수주의' 정부가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이회창도 '신보수주의'라고 자평하지만). 냉전형 보수주의와 달리 시장친화적 보수주의를 지향한다. 보수주의 정책의 기조인 감세, 탈규제, 사유화, 노동유연화,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이념과 가치는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에, 사회복지를 유지하고 (기초노령연금도 찬성했다) 남북대화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 과거의 보수정부와 차별되는 온건하고 유연한 보수정부를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감세와 복지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이론적,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 해법도 제시하지 못한 채 북한 지원 계획을 내세우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재벌개혁은 후퇴하고, 노동조합과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대운하 사업을 둘러싸고 환경에 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진보세력은 시장, 경쟁, 효율성만 강조하는 신보수세력의 가치와 정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진보의 개념은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사회정의, 연대, 공공선을 추구하고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19세기의 자유민주주의와 20세기의 사회민주주의는 일정한 진보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제 지구화, 정보화, 개인화가 이끄는 새로운 21세기 사회의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첫째, 이제 일국 차원의 국가정책이 더 이상 경제와 사회를 통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과거의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이다. 둘째, 정보화의 진전으로 급속하게 서비스 산업 노동자의 수는 증가하는 반면 시간제와 임시직 등 '비정규직'의 숫자도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하 구조적 실업, 불완전 실업이 증가하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지고 있다. 셋째, 개인화의 확대로 과거의 가족, 계급, 지역의 틀이 무너지고 있으며 사회적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이 참여하고, 이혼이 증가하고, 노조 가입률이 떨어지고, 정치적 무당파가 증가하고 있다. 생활세계의 다양한 문제가 사회체계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진보정치는 변화하는 세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진보는 과거의 좌파와 우파의 구분을 넘어 새로운 가치,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는 다음의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 △정부를 개혁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재창조해야 한다. 민주화, 탈관료주의, 분권화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민주화가 선진화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시장과 시민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되지만, 적절하게 개입하고 규제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사회적 책임성을 가진 자본주의'의 효율적 운영이 필요하다. △역동적이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유연성과 사회보호체계가 결합된 유연안정성을 추구한다.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식의 사회안전망 복지체제가 아니라 복지국가를 강화해야 한다. △지구온난화와 환경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진보세력의 과제 : △정치적 기반으로 중도파의 포지셔닝을 유지하면서 진보성향의 유권자로 확대한다.
△강한 경제를 만드는 정책을 강조한다. 경제 이슈를 보수파에 뺏겨서는 안 된다. 부자를 위한 감세와 재벌 편향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중소기업, 중산층, 서민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교육, 의료 등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분야의 정책에 초점을 맞춘다. 주택, 연금도 중요한 이슈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정책을 제시한다.
△빈곤 퇴치를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아동빈곤을 해결하는 정책에 집중한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공공투자와 교육과 훈련을 위한 사회투자정책을 강화한다.
나가며 : 진보세력과 지식인의 역할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에 대한 진지한 평가가 필요하다. 민주정부 10년의 공과 과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고위 정책 참여자들의 경험을 기록을 활용하는 연구와 출판은 새로운 정책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유용할 것이다.
새로운 진보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정책의 생산을 위한 싱크 탱크를 강화해야 한다. 독일의 에버트 재단과 같은 국가가 지원하는 연구소가 정치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야 한다. 현재의 정당 부설 연구소보다 더 큰 규모와 인력이 필요하며, 독립성과 책임성을 부여해야 한다. 동시에 시민사회 분야에서도 미국의 부르킹스 연구소와 같은 싱크 탱크가 필요하다. 현재 흩어져 있는 연구단체를 하나로 통합하여 조속히 정책 연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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