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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진화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3. 12. 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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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진화

-주몽의 꿈

 정치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우리의 술자리에서는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지만 그들이 맡은 역할은 우리의 삶과 운명을 바꿀 만큼 크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래서 좋은 정치인을 찾아내기 위한 판별법도 그만큼 다양하다. 

 정치인을 판별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진보와 보수다. 그보다 좀 모호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잘 아는 기준은 유능한가, 무능한가이다. 겸손한가, 오만한가도 유권자들의 눈에 쉽게 잡힌다.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하는 것도 대충은 감이 온다. 개혁적인가 수구인가도 국민들이 가늠하기 어렵지 않은 판별법이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래서 놓치기 쉬운  판별법이 있다. 한 정치인을 진화와 퇴보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집요한 관찰자가 아니면 파악하기 어렵다.  더욱이 한국의 정치처럼 소용돌이치는 급물살 정치에선 한 정치인의 진화와 퇴보는 관심사 자체가 되기 힘들다. 관심을 가질만한 정치인의 경우, 성장과 몰락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화와 퇴보를 관찰할 겨를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진화와 퇴보는 꽤 긴 기간 동안 일어나는 일이고 그것은 진보와 보수, 유능과 무능, 합리와 불합리, 개혁과 수구, 겸손과 오만이 모두 합쳐져서 소리 없이 진행되고 결과로 나타나는 과정이어서 진화와 퇴보의 관점에서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관점으로 지켜볼만한 정치인은 그 성장의 정도가 일반 정치인과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지켜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대개 진화와 퇴보의 관찰법이 적용될만한 정치인은 대권을 넘볼만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한국정치를 보건대 진화와 퇴보라는 관점에서 관찰할만한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지금 자유베를린대학에서 원래 6개월이었던 공부기간을 1년으로 늘려서 치열하게 배우고 있는 김두관 전 경남지사, 마찬가지로 자유베를린대학 6개월 연수에서 돌아와 서울시장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김황식 전 총리,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성공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박원순 서울시장, 친노의 아이콘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 정도가 아닐까 한다. 이들은 원래의 이미지나 능력을 넘어서서 조금씩 정치의 다른 차원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진화하는 정치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정치인이 있다. 진화와 퇴보의 관찰법이 아니고는 결코 그 진면목을 알아보기 힘든 정치인이다. 이 정치인은 진보와 보수, 유능과 무능 같은 기존의 정치인 판별법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진화와 퇴보로 볼 때 가장 그 본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는 안철수 의원이다. 

 최근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그가 이 위원회를 띄우기 전 해낸 작업을 보면 매우 정교한 세력교체의 과정을 거친 흔적이 드러난다. 기존의 중심적 세력이었던 ‘연구소 내일’이 어느 날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됐다. 당시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했다. 지정기부금단체가 되면 이 단체의 이름이나 이사장 명의로는 정치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당시 ‘내일’은 안철수 신당을 추진하는 핵심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추친체에 족쇄를 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 의미를 읽기도 어려웠다.

 현재 새정치추진위원회에는 ‘연구소 내일’의 흔적이 없다. 완전히 새판을 짠 듯하다. 소리 없이 안철수 정치의 핵심주체가 바뀐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필자는 안철수 의원과 그 핵심지지자(또는 안철수 의원의 힘을 빌려 출마하려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짱돌 칼럼에서 지적한 바 있다. 안철수 신당을 즉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당 일정을 잡고 그것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정작 안철수 의원은 다른 일정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정당은 필수라는 논리, 광주전남에서 민주당과 맞서자면 정당이 꼭 있어야 한다는 논리, 국민이 원한다는 논리로 안철수 의원을 신당 창당 쪽으로 끌고 가려 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민심을 끌어당기고 안철수 의원에 대한 지지를 높이는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안 의원도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에 ‘업혀서’ 선거를 치르려는 사람들을 국민은 수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철수 의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창당의 ‘리듬’과 맞지 않았다. 얼마 전 창당세력들이 창당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자 안의원은 측근을 통해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안 의원의 생각과 창당추진세력의 생각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깨닫지 못했다. 이런 일은 일반적인 정치세력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자신의 창당 리듬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처음에는 희미했으나 점차 그것을 뚜렷이 하는 쪽으로 ‘진화’해갔다.  

 정치는 책임이다. 최근 우리 정치에서는 책임지는 모습이 없어졌다. 안철수 의원은 신당추진세력에게 책임을 물을 만큼 진화했다. 혹자는 책임은 안철수 의원이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안의원이 신당추진세력에게 책임을 물을 만큼 진화했다는 것만 우선은 주목하자. 안의원의 책임은 그가 자신의 구상과 리듬대로 모든 것을 시도한 다음에 거론 될 수 있지 지금은 아닐 것이다.

 새정치추진위원회 구성을 발표하기 전 안철수 의원은 ‘추진위원장급’인 인사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에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것도 매우 중대한 진화이다.

 기존의 창당추진세력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 새정치추진위원회를 구성한 것부터가 민심의 움직임, 지지세력의 확장이란 정치의 본질에 충실한 반응이었다. 정치의 본질가운데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쌍방향 소통을 이제 말로가 아니라 정치인들과 실제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의 한 양상이다.

 새정치추진위원회가 국민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을지는 별개로 나는 현재까지는 안철수 의원이 정치적 진화의 과정을 충실히 겪고 있다고 본다. 그것도 매우 ‘격렬한 진화’를 말이다. 
 자연계에서의 진화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는 성격이 좀 다르다. 인간은 환경을 만들면서 진화해간다. 정치인의 진화는 더욱 다르다. 정치인은 정치 환경을 바꾸는 것 자체가 진화일 수도 있다. 

 초보 정치인, 일방향 정치인에서 주도면밀한 정치인, 쌍방향 정치인으로 안철수는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가 국민과 같은 땅을 딛고 국민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보통 정치인’으로까지 진화하여 정치적 성공에 이를 수 있을까. 자신의 구상에 비교적 충실한 새정치추진위원회 이후의 행보가 그의 진화의 향방을 스스로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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