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 대학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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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들른 친구 사무실에서 벌써 2014년 달력이 펼쳐진 것을 발견했다. 순간적인 짜증(올 한해 계획했던 많은 일들이 여전히 계획으로 남아 있어서)과 아쉬움(좀 더 열심히 일하지 못했다는)이 동시에 밀려왔다.
2013년 한국의 대학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대학의 상업화는 이미 멈출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렸다.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대학 당국의 최고 목표가 된지 이미 오래다. 대학 교수들의 성적 고과를 매기는 데 학생들의 취업률 반영은 당연시 되었다.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자금 중 많은 부분이 취업 박람회, 연수 등등의 목적에 사용되고 있다. 교과부가 취업률 제고를 독촉하고 대학 평가에 반영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돌아가던 조교 자리마저 행정조교라는 이름을 붙여 취업준비중인 졸업생들에게 배정하기 시작했다.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서 돈이 안 되는 불필요한 교과목 줄이기도 줄기차게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의 부족한 의사표현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야심차게 개설했던 ‘글쓰기’나 ‘사고와 표현’ 같은 과목들이 학교 당국에 의해 과감하게 축소되었다. 강의 수는 줄고 대신 한 강좌 당 수강 제한 학생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교수들과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따로 각자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은 아주 익숙한 현상이 되었다.
학생들에게도 취업이 최고의 목표인 것은 마찬가지다. 학과별로 취업과 진로지도 등에 관한 과목이 생겨나 교수들이 진로지도를 하고 있다. 자연계나 이공계 학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학, 사회학, 철학과 등에서는 어떤 취업지도가 진행 중일까 자못 궁금하다. 의, 약대 등 몇몇 특수한 전공을 제외한 학과의 학생들은 외국어를 제외하고도 갖가지 자격증, 해외연수, 인턴 등의 경력을 쌓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공은 이미 관심이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민족해방파와 민중민주주의를 외치며 반독재 운동에 앞장서던 대학생들의 모습은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대결을 지나 이 테제 자체가 학생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난지 오래다. 학생들의 참여 없는 학생회들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많은 단과 대학들에서는 학생회 구성조차 어렵다. 함께 학생회를 구성해 학우들을 위해 일 해 보자고 호소하는 한 학생의 호소문이 쓸쓸하게 붙어있다.
취업, 창업, 영어 동아리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신 많은 학과 활동들이 학생들의 참여 부족으로 무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같은 학년의 학생들끼리도 친한 친구 외에는 별다른 교류가 없고 서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교수와 학생들의 관계는 수업시간에만 유지될 뿐이다.
정문 후문에 한 두 개씩 있던 서점들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 서적은 고사하고 수업 교재도 구입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 구내 서점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 9월에만 반짝 문전성시를 이룰 뿐이다. 대신 수많은 술집들이 학생들을 반기고 있다. 대학 주변을 서점이 아니라 술집이 둘러싸고 있는 이 암울한 상황이 한국 대학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원해야 할 교/직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많은 학과에서 새로운 교수를 채용할 때 학과에 필요한 전공자보다는 교수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선정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학 교육의 거의 절반을 담당하는 강사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정규직원의 채용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비정규직과 기간제 고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교수와 강사들은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주종관계 또는 서로 반목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이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묵묵히 행정업무만 보고 있다.
대학의 세 주체인 학생, 교수, 직원들이 현실적인 상황을 핑계로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각자의 생존만을 모색하고 있다. 서글픈 한국 대학의 현실이다. 2014년에도 이런 상황에 순종하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대학의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해 행동할 것인가? 우리 모두의 결심과 행동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