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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쏙] 도시혁신, 우리동네를 찾아서 ①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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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별명을 얻었다. 산비탈 4500여가구 집들과 산복도로 골목을 헐지 않고 재단장해 예술가들과 탐방객들이 몰리는 명소로 바뀌고 있다. 부산시 제공

[현장 쏙] 도시혁신, 우리동네를 찾아서 ①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도심 산동네 오래된 집과 골목을 헐지 않고, 이야기를 입혔다. 예술가 등과 얽힌 사연을 찾아 여행객이 몰린다. 막개발 대신 동네 특성을 살려 도시 활력을 되찾는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현장을 찾았다.

도시는 외형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빈부 격차와 환경 오염 등 부작용이 깊어지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 도시들은 주택·교통·문화·복지 등 각 분야에서 한계를 느끼고 대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도시 주민들과 시민사회가 문제점을 찾고 해결책을 구상하는 것을 주도하도록 하고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과 기업이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한겨레>는 지난해와 올해 세 차례에 걸쳐 아시아·유럽·아메리카 등 세계 각국의 도시혁신, 사회혁신 현장을 찾아간 데 이어, 국내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활발하게 번지는 혁신 실험 현장을 들여다본다.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길’ 초량초등학교 담장을 걸으면 주민들의 삶을 담은 사진과 시를 만날 수 있다.

부산역 앞 도로를 건너면 초량2동 골목길이 나온다. ‘이바구길’(이야기길)의 들머리다. 부산 최초 근대식 개인의원인 옛 백제병원을 지나 느릿느릿 걷다 보면 한강 이남 최초 교회인 초량교회가 있다. 바로 건너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의 사진과 시, 글을 읽고서 168개 계단을 오르면 김민부 전망대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인 부산 동구 출신 김민부 시인의 이름을 붙였다.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좀더 오르면 산복도로 정상이 나온다. ‘산복도로’는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도로다. 이바구길 2㎞ 곳곳엔 구한말~일제강점기~8·15 해방~한국전쟁~베트남 파병이라는 격동의 1세기를 살아온 부산 시민들의 삶이 짙게 묻어난다.

부산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깃들었던 당시 지형이 그대로 남았다. 계단식 주거와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이 독특하다.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는 계단식 집들이 감천항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을을 앵글에 담으려는 이들이 북적댄다. 누군가 남미 안데스산맥의 잉카문명 유적지 ‘마추픽추 한국판’이라고 빗댔다. 외국에서도 입소문이 나 국내외 관광객이 지난해 19만명에 이르렀다. 곧 입대한다는 대학생 변주용(21·경기도 수원시)씨는 지난달 29일 “도심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부산 최초의 병원, 교회, 창고
황순원·유치환 등 기념관
골목 곳곳엔 조형물과 벽화…
도시재개발 대신 도시재생으로

지자체와 주민들 의기투합
빈집에 쉼터·숙박시설 짓고
협동조합 등 꾸렸지만
어떻게 활성화시킬지는 숙제

■ 골칫덩이 ‘산복도로’ 마을의 재생 부산 산복도로 마을의 역사는 1920~30년대로 거슬러오른다. 부산항 부두와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이 집값이 싼 산동네로 몰렸다. 해방과 함께 귀국한 동포들과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대거 몰리면서 부산 최초 산복도로인 수정산복도로가 1964년 개통했다. 60~70년대 근대화 시기 농촌을 떠나온 이들이 몰려들면서 산 중턱부터 기슭까지 산복도로가 겹겹이 생겨났다.

80~90년대부터 젊은층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갈 데 없는 서민들과 어르신들이 동네를 지켰다. 보상받아도 갈 곳 없는 저소득층도 많아, 개발이익을 노리는 건설업체들도 개발 후순위로 미뤘다. 산복도로 주변에 빈집이 늘어났고 동네 분위기는 가라앉아갔다.

2000년대 접어들며 다른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빈곤지수가 높아가는 원도심에 시민단체들이 눈길을 돌렸다. 2009년 지역 예술가들이 감천문화마을 주민들과 협력해 마을 곳곳에 조형물을 세웠다.

이듬해 부산시가 원도심 재생에 뛰어들었다. 원주민을 내보내는 재개발보다는 원도심을 보존하면서 마을을 되살리기로 한 것이다. 2011년 2월 부산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정책을 발표했다. 동·중·서·사하·사상·부산진구 등 6개 구의 원도심 1044만㎡를 3개 권역 9개 사업구역으로 나눠 재생하겠다는 구상(<표> 참조)이었다. 2020년까지 1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핵심은 ‘빈집을 사들여 공동체 건물을 짓고 거리를 단장하는 것’이었다.

부산시는 산복도로가 없는 옛 도심으로도 확대했다. 복권기금을 활용해 2010~12년 해마다 50억원씩 들여 22개 마을을 행복마을로 꾸미겠다며 공동체 지원과 시설 개선 사업을 벌였다. 올해는 8개 마을에서 활동가들이 부산시 지원을 받으며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바구길 까꼬막 전망대에선 초량동 산복도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 민관 거버넌스(협치)가 핵심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부산 중구 영주동과 동구 초량동 113만㎡에서 가시화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홀몸노인·빈집 등을 기준으로 2년 전 시작했던 곳이다.

근·현대사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지역 특성을 되살려내는 쪽에 초점을 뒀다. 부산역 건너 비탈진 산복도로를 걸어가는 곳곳에, 이 지역에서 왕성한 문화·봉사활동을 했던 인물들의 작은 박물관, 여행자 쉼터 등을 꾸민 것이 ‘대박’을 터뜨렸다. ‘금수현의 음악살롱’, ‘황순원의 우체통’, ‘장기려 박사의 더 나눔’….

동네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주민들의 표정도 달라졌다. 초량동 주민 김아무개(58)씨는 “때로는 시끄럽고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범지역처럼 전락했던 동네가 깨끗해졌고 활력도 살아났다. 머잖아 집값도 덩달아 오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동네 단장과 함께 일자리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구 영주동, 동구 초량동, 사하구 감천동에 마을기업이 8곳 출범했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천연샴푸, 천일염 등 생활필수품들을 판다. 협동조합과 사단법인도 7곳이 탄생했다. 중구 영주동 산리협동조합은 주민과 활동가 44명이 5만~100만원씩 모두 1000여만원의 종잣돈을 모아 올해 1월 출범했다. 감천문화마을 노인일자리사업단의 김금자(67)씨는 “일주일에 세 차례 출근해 그릇 같은 기념품을 만든다. 이웃들과 함께 일해서 재밌고, 용돈도 벌어서 좋다”고 자랑했다.

마을이 활기를 찾으면서 주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조직을 꾸려 축제를 열거나 마을소식지를 펴낸다. 지금까지 6개 구에서 주민협의회가 25곳 결성됐다. 동구 초량6동 주민협의회 곽태남(58) 회장은 “마을 재생사업을 하면서 동네가 환해지고 노인과 주부들의 일자리도 생기니까 주민들도 반긴다”고 말했다.

부산시가 빈집 등을 사들여 만든 주민 공동작업장, 마을카페 등은 주민들이 모이고 어울리는 터전이다. 마을 활동가로 나서겠다는 주민들의 교육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열린다. 사단법인 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의 전순선(58) 부회장은 “부산시의 도시재생은 마을 활동가와 주민, 행정이 힘을 합쳐 침체한 마을을 되살리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부산 동구 구봉산에 있는 ‘유치환의 우체통’ 2층 시인의 방에선 다양한 전시회가 이어진다.

■ 산동네 살리기, 이제 시작 일자리를 창출해 동네 살림을 안정시키는 것이 동네 재생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관건이다.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이 만들어내는 제품의 판로 확보부터 시급하다. 부녀회 주부 20여명이 2011년 창업한 초량동 마을기업 ‘골목점방’의 윤순옥(55) 회장은 “천연샴푸 등을 만들어 팔려는데 아무래도 매장이 마을카페뿐이어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수익을 내면 홀로 사는 어르신을 돕고 또 일자리로도 키워갈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옛 동네에 적지 않은 빈방과 주민들이 운영하는 공동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도 과제다. 동구 초량동 까꼬막(산비탈의 경상도 사투리)이나 감천문화마을 어울터 같은 숙박시설에 머무는 탐방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부산형 공유경제 모임을 열고 있는 서종우(42) 휴먼경영연구원 이사는 “도시재생 지역의 쓰지 않는 빈방을 관광객한테 빌려줘 주민이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한다”고 제안했다.

탐방객들이 동네에 머물고 주민들과 호흡을 함께 나눌 문화·예술행사 등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주민 대표나 마을 활동가만이 아니라 주민들 다수가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한근 산리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지금까지는 활동가와 마을의 일부 지도자가 도시재생을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일반 주민들을 주체로 세우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올해 5월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부산시 마을만들기지원센터가 문을 열어 마을재생의 지휘부 구실을 맡고 있다. 중구 영주동 마을활동가 변강훈(55)씨는 “지원센터만으론 한계가 있다. 사업구역마다 상주하는 마을 활동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환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은 “도시재생은 최소한의 투자로 많은 유·무형의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기초 투자가 끝난 지역에선 주민들이 주체로 나서도록 뒷받침하려 한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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