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봉명동 거리에 있는 족욕체험장에서 관광객들과 지역 주민들이 빼곡히 둘러앉아 온천 족욕을 즐기고 있다. |
대전 유성구 중심가인 유성호텔~계룡스파텔 길에는 가을이면 나란히 걷는 중년 부부들, 엄마 손을 잡고 산책 나온 아이들, 보행기로 걸음을 옮기는 나이 지긋한 요양객 등이 오간다. 강아무개(48·경기도 수원시)씨는 지난달 23일 “큰아이 대입 면접이 끝난 틈을 타 남편과 함께 온천하러 왔다”고 말했다.
계룡스파텔 담을 따라 조성된 유성온천 두드림공연장은 뛰노는 아이들의 차지다. “뽀로로가 노래해요. 랄랄랄랄~.” 세빈(8)이는 고개를 흔들며 만화영화 주제가를 불렀다. 지난해 유성구 도안동으로 이사왔다는 아빠 오영창(39)씨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갑천변 공원을 거쳐 유성으로 놀러 나오는데 아이들이 너무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유성호텔 쪽 족욕체험장은 발 담그고 담소를 나누는 이들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한익수(75·유성구 온천2동)씨는 “다리 저린 것도 풀리고 밤에 잠도 잘 온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들른다. 동구나 중구에서 지하철 타고 오는 이들도 꽤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성의 중심가인 이곳 온천1동 간선도로 1㎞ 주변이 4~5년 전부터 변신하기 시작했다고 토박이 주민들은 말한다. 호텔 주변 술집들이 문닫고 30~40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여기가 다 술집이었는데 저 아파트가 들어섰죠.”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던 박인순(68·유성구 봉명동)씨는 “하루가 다르게 거리 풍경이 바뀌네요. 그런데 저 건물은 언제 지었죠?”라고 말했다.
밤이 되면 아직도 네온사인 간판들이 꽤 보인다. 그런데 유성구 통계를 보면, 실상은 좀 다르다. 10년 전인 2003년 300곳이던 룸살롱·단란주점은 지난 6월 말 230곳으로 줄었다. 이 가운데 40여곳은 개점휴업 상태로 유성구는 추정한다. 유흥업소 밀집 영역도 그만큼 축소됐다. 이광진 대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불경기에다 대전 서남부권 개발로 도시환경이 바뀐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분석한다.
유흥업소들의 퇴조는 영업 방식에서도 엿보인다. 종업원을 수십명씩 고용한 적도 있는데, 요즘은 그때그때 부른다는 것이다. 한 유흥업소 매니저는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손님들이 거리에서 흥청망청하면 주민들이 신고하는 경우도 잦다. 찾는 손님이 줄어드니 문 닫는 업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룸살롱 업주 이아무개(47)씨는 “관광특구로 심야영업을 할 수 있던 2000년대 초까지는 좋은 시절이었다. 서울 강남에서도 왔다. 그런데 지금은 다 옛날 얘기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열린 대전 유성 온천문화 축제장에서 아빠의 품에 안긴 어린이가 온천물로 만든 터널을 지나며 즐거워하고 있다. |
유흥업소 10년새 70여곳 줄고
아파트와 실버요양병원 늘어
축제 등 열며 온천관광 육성
외지 관광객 해마다 증가세
체험관 등 인프라 구축 과제
유성구의 관문은 대전 서쪽 갑천을 가로지르는 만년교다. 다리 주변의 변모도 눈에 띈다. 몇 년 전까지 다리 한쪽은 여관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비닐집과 농경지가 있었다. 요즘은 병원들이, 또 아파트 단지가 펼쳐져 있다.
이러는 사이 유성엔 의료기관들이 부쩍 늘었다. 1990년 9곳에서 2000년 85곳으로, 2005년 170곳으로 늘더니, 올해 9월 종합병원 1곳과 정신병원 4곳 등 340곳이 개업했다. 만년교 주변엔 어르신들이 치료받는 요양 전문병원이 몰려 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정경애(76)씨는 “낮에는 족욕체험장 쪽으로 걷고, 저녁때는 갑천 변에 나간다. 온천 휴양지이고 공기도 맑아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이름난 유성온천을 두고 있고 축제도 열면서 관광객은 몇 년째 연간 1000만명을 넘는다. 유성구의 관광객 현황을 보면, 2008년 1009만명, 2010년 1026만명, 지난해 106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팝나무 꽃이 피는 5월 유성온천문화축제는 외지인들이 유성의 전통문화를 즐기는 기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성구 주민들도 반긴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정자(66)씨는 “몇 년 전까지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취객이나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많아 아들·딸에게 가게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요즘은 단체 손님들을 관광버스들이 많이 찾고 거리도 깨끗해져 좋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이런 추세를 적극 뒷받침하고 나섰다. 유성구는 ‘휴양·관광 명소 유성’으로 이미지를 바꾸려 하고 있다.
이달부터 유성온천 건강특화거리 조성 공사를 시작했다. 31억5000만원을 들여 온천1동 ‘온천 문화의 거리’에 온천체험마당, 휴식의 숲, 치유의 거리를 만들고 족욕체험장을 확대하는 것이 뼈대다. 가족, 휴양객들에게 쉼터와 온천 체험의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20~30대들 취향도 반영할 참이다. 낡은 온천관로 2.8㎞도 교체 공사를 하고 있다. 양질의 온천을 공급하려는 것이다. 옛 유성파출소에는 관광안내센터를 열어 국내외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허태정 대전 유성구청장은 “유성이 유흥·향락도시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최근엔 휴양과 온천관광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도시 기능이 변화하고 있다. 유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휴양·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탐방객들의 바람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유성 중심가에 유성온천, 전통을 알리는 박물관이나 체험관 같은 게 있었으면 한다는 시민도 있었다. 조은미(27·서울)씨는 “처음 유성에 왔는데 온천박물관 같은 관광자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대전 유성구 주민 참여예산 구민위원회 위원들이 지난달 26일 유성구청 대회의실에서 마을별로 우선후보 사업의 설명을 듣고 있다. |
도서관 만들고 보육시간 늘리고
유성구 주민들 ‘행정 참여’ 활발
유성온천 활성화를 위해 온천수 수영장을 만들면 어떨까? 대전 유성구 주민들에게서 나온 제안 가운데 하나다. 유성구 정책은 주민들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타운미팅(주민 회의), 구민 제안제, 주민참여예산제에 주민들이 참여해 의견을 내고 토론한다.
타운미팅은 마을에 필요한 사업 순서를 정하는 주민 회의다. 9개 동별로 열린다. 지난 7월5일 관평동 타운미팅에서는 주민 80명이 참가해, 동네의 문화·교육·동아리·행정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마을 앱 만들기 사업’을 1순위로 선정했다. 같은 달 24일 신성동 주민 65명은 토론과 투표를 거쳐 ‘금성초등학교 벽화 조성 사업’을 우선순위 사업으로 정했다. 올해 타운미팅엔 주민 730여명이 참여했다.
구민 제안은 2010년 84건, 2011년 114건, 지난해 162건으로 해마다 증가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28건이 접수됐다. 2년여 전 유성구가 동별로 ‘제안의 날’을 정하고 “우수 제안자에게 포상하고 정책으로 삼겠다”고 약속하면서 활성화됐다. 구민 80%가 아파트에 사는 유성에서는 주민들이 폐기물 배출 스티커 판매점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폐기물 배출 스티커를 대행 발부하자’는 제안이 정책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들과 전문가가 함께 꾸린 주민참여예산 구민위원회가 토론과 전자투표를 통해 동별로 3000만원 한도 안에서 내년 현안 사업을 정하는 방식이다. 지난달 29일 주민참여예산 구민위원회는 위원 30명이 참석해 47개 후보 사업을 심의한 끝에 성북동 산림욕장과 노은1동 지족산에 주민 쉼터를 만드는 사업 등 25개 사업을 확정했다.
9개 동별로 구민들이 농업·관광·산업·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므로 마을마다 요구가 다른 점을 고려한 것이다. 아이들이 많은 마을은 놀이터나 작은 도서관을 세우고, 맞벌이 부부가 많은 마을은 보육시설 운영 시간을 늘리고, 연구단지에는 꿈나무 과학멘토제를, 5일장이 서는 마을에는 장날마다 공연을 하는 식이다.
신동천 유성구 자치행정과장은 “주민 참여가 늘면서 행정 신뢰도가 두터워졌다. 주민들의 공감을 얻는 정책은 구정에 반영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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