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 한형식

이런저런 이야기/다양한 세상이야기

by 소나무맨 2013. 11. 7. 23:20

본문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는 식민지배, 카스트 제도, 신자유주의적 착취 등 예속과 억압 속 민중의 모든 저항을 기록한 책이다. 카스트 제도 등의 오랜 악습과 식민 잔재에 급격한 자본주의 경제 이식에 따른 부작용으로 신음하는 인도를 배경으로 억압받던 기층 민중들, 하위주체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한 대안적 사회운동들을 그려 보인다.

저자소개

저자 : 한형식
저자 한형식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학원강사, 출판사 직원, 부동산 중개와 관리 등의 일을 했고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연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회원으로 맑스주의의 대중화를 위한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당인리 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으로 현실 경제 분석과 대안적 경제 정책을 개발하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을 보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맑스주의 역사강의』,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공부하는 혁명가 :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 등이 있다.

저자 : 이광수
저자 이광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를 졸업하고 인도 델리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반전 평화 단체인 ‘아시아평화인권연대’의 공동 대표로 있다. 주요 역서로는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 『고대 인도의 정치 이론』, 『성스러운 암소 신화』, 『인도 고대사』, 『마누법전』(공역), 『테러리즘, 폭력인가 저항인가?』,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슬픈 붓다』, 『인도는 무엇으로 사는가』, 『카스트 : 지속과 변화』(공저), 『인도사에서 종교와 역사 만들기』, 『암소와 갠지스』(공저)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_ 왜 아시아인가, 왜 인도인가

1장 _ 독립 이후 인도 현대사(1947~?2011)

독립과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성립│인디라 간디의 통치│정치적 혼란과 신자유주의의 도입│종교공동체주의│UPA 정권 1기│UPA 정권 2기│신자유주의 개혁의 내용│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의 영향(1991~2009)│2기 UPA 정권 이후 현재까지의 경제 상황

2장 _ 공산당 운동과 노동운동
인도 공산당의 역사│노동운동

더 생각해 볼 문제 #1 _ 인도에서 공산당과 노동운동은 과연 실패했는가?
께랄라에서 공산당의 집권│서벵갈, 공산당 34년간 통치하다│서벵갈 공산당의 변화와 패배│노동조합과 노동자 투쟁

3장 _ 반카스트 운동
카스트 개념 정리│불가촉천민, 지정 카스트, 하리잔 그리고 달리뜨│암베드까르의 달리뜨 해방운동│반카스트 운동의 재활성화│여타후진계급 운동

더 생각해 볼 문제 #2 _ 반카스트 운동은 계급운동인가?
불가촉천민 투쟁은 왜 좌파 진영에서 배제되었는가?│여타후진계급의 부상│달리뜨 팬더│대중사회당의 정치세력화

4장 _ 농민운동
농민운동의 두 흐름│농민운동의 전개: 페전트 무브먼트│떼바가 봉기와 뗄랑가나 봉기
│파머스 무브먼트│농민운동의 대안적 실천들│낙살 반군│신자유주의 이후의 인도 농촌과 농민

더 생각해 볼 문제 #3 _ 농민운동은 어디로 가는가?
농업 개혁과 농민저항운동│낙살 반군, 공산혁명으로 체제 전복을 꾀하다

5장 _ 여성운동, 환경운동, 부족민 운동
여성운동│국가 주도의 여성운동│환경운동│부족민 운동│신자유주의 이후의 부족민 운동

6장 _ 향후 대안 모델을 께랄라에서 찾아보다
전체적 개괄│께랄라 모델의 성립과 전개│께랄라 공산당의 역사│새로운 께랄라 모델│빤짜야뜨에 대한 평가│인민계획 캠페인│새로운 께랄라 모델 이후 께랄라의 현황│ADB 차관과 께랄라 모델의 쇠퇴│새로운 께랄라 모델에 대한 평가

참고문헌│찾아보기

 

상세이미지

현대 인도 사회에서 실천된, 또는 실천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변혁운동들을 소개하고 평가한다. 이 책에서 현대 인도는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병존하면서 서로 끊임없이 충돌하고 파열음을 울리는 생생한 역사 과정의 현장으로서 제시된다. 지은이들은 국내 진보/좌파 진영이 지나치게 서구 ‘이론’에 편향적이며, 그로부터 ‘민주주의의 심화’ 같은 허울 좋은 담론에만 몰입할 뿐 대중의 삶에 와닿는 현실과는 거리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경향이 생겨났다는 문제의식을 갖고서 이 책을 내놓았다. 근현대 인도의 약사(略史)와 함께 시작하는 이 책은, 카스트 제도 등의 오랜 악습과 식민 잔재에 급격한 자본주의 경제 이식에 따른 부작용으로 신음하는 인도를 배경으로, 억압받던 기층 민중들, 하위주체들(‘서발턴’subaltern)이 주축이 되어 전개한 대안적 사회운동들과 그 부침(浮沈)을 그려 보인다.

인도에서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자원을 찾다!
서구적 시각을 벗어나 새로 쓰는 아시아 민중의 저항운동사, 그 첫 번째 책!!


그린비출판사가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과 함께 펴내는 ‘새움 총서’의 4번째 책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 거의 모든 저항운동의 전시장』은, 박제된 이론이 아닌 ‘실천’적 사상으로서의 맑스주의의 역사를 조망했던 『맑스주의 역사 강의』의 저자 한형식이 ‘아시아 저항운동사 쓰기’의 첫걸음으로서 기획한 책이다. 한형식은 그간 국내 진보/좌파 담론의 전개가 지나치게 서구에서 생산된 ‘이론’을 추종하는 경향에 젖어 대중의 삶과 괴리를 만들고 있음을 지적해 왔다. 정작 우리 사회를 변혁해 가는 데 참조할 수 있을 실천의 사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비서구 국가들에서 더욱 다양하게 찾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가 많은 비서구 국가들 중에서 특히 인도로 관심을 먼저 향한 것은, 인도가 “세계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저항운동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실천의 사례들을 가지고 있”고 “이 다양한 운동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가 역시 전 세계적 상황의 압축판”이라고 할 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형식은 방대한 관련 문헌을 섭렵한 아시아 저항운동 세미나의 결과물을 토대로 초고를 집필했고, 편집 과정에서 인도 전문가인 이광수 교수가 합류해 보론 격인 ‘더 생각할 거리’(인터넷 신문 『레디앙』 연재 칼럼 ‘현대 인도 인민의 역사’를 재편집해 수록)를 덧붙임으로써 이 책이 완성되었다. 영국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이래 인도의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질곡의 역사와 저항적 실천의 사례들을 촘촘히 담아낸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과는 다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다른 세상의 구체적 모습과 실현 과정을 고민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으로서의 인도 저항운동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對 원칙 없는 합종연횡의 정치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는 식민주의의 종식과 독립, 급격한 자본주의 경제의 이식과 그 부작용으로서의 불균등한 발전, 카스트라는 구습적 신분제, 종교 갈등,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 수많은 정치 세력이 난립하며 합종연횡하는 혼란스러운 정치 문화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인도의 약사(略史)로 시작된다. 인도 현대사에서 관찰되는 사회?정치?경제의 첨예한 쟁점들을 바로 알아야 그 곤경에 대한 인도 민중의 저항을, 그리고 그 성취와 좌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현대사는 식민 지배가 종식되는 1947년부터 시작된다. 인도 역시 신생 독립국들이 대개 그렇듯 독립부터 많은 분열상을 안은 상태로 출발했는데, 특히 파키스탄과의 분리 독립은 인도 국내의 종교 갈등이라는 아물지 않는 상처의 싹이 되었다. 인도 독립운동의 두 거두 마하뜨마 간디와 자와하를 네루가 이끈 인도국민회의(회의당)는 독립 후 첫 보통선거를 무난히 치러내며 집권당이 되었고, 이로부터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회의당은 헌법상에 사회주의 원리를 반영하고 국가 주도 경제 모델을 채택했지만, 동시에 독립운동 시기 자금원 역할을 했던 토착 자본가들의 막강한 영향력 탓에 시장경제적 지향과 사회주의적 원리의 기형적 동거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결국 토지 개혁을 비롯한 분배 불평등 개선을 위한 시도는 지지부진했고 지주 계급의 기득권도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게다가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간디’라는 성은 마하뜨마 간디와는 무관하다)가 네루의 후임자였던 샤스뜨리 사후에 집권하면서 회의당은 유사 세습제의 길을 걷게 된다. 비상통치를 선포하는 등 독재적 통치로 치닫던 인디라 간디는 결국 종교 갈등의 결과로 암살당하고, 아들 라지브 간디가 회의당의 수장이 되어 재집권하지만 곧 정권을 인민당에 내주고 그 또한 1991년에 암살당한다. 아내 소냐 간디가 다시 회의당을 이끌어 공산당 세력까지 포함하는 연합전선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고, 2009년엔 아들인 라훌 간디가 세습 권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회의당은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세운 중도좌파 정당이었지만 그것은 명목이었을 뿐, 표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정치적 차이를 가진 세력과도 연합했다. 그리고 이런 행태는 비단 회의당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극좌파적 강령을 내세우는 공산당 세력조차 원칙 없는 정치적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종교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도 불사하고 일단 당선만 되면 어제 표를 준 민중들을 배반하는 조치를 거리낌 없이 취하는 모습이 빈번하다. 이런 면에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별명도 허울뿐이란 평가를 듣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의 해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오늘날에도 회의당 주도의 UPA 정권은 ‘인간의 얼굴을 한 발전’을 슬로건으로서만 내세울 뿐, 일단 선거가 끝난 이후로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틀을 유지하며 기득권 세력에 복무하는 한편, 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가속화하는 등 민중을 한층 더 가혹한 경쟁 시스템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세계 제2규모 공산당의 현실

인도에는 합법 정당인 공산당만 셋이나 된다. 인도공산당(CPI), 인도공산당 맑스주의당(CPI-M), 인도공산당 맑스-레닌주의당(CPI-ML)이 그들이며, 비합법적 공산주의 세력은 훨씬 더 많다고 한다(규모로만 따지면 중국공산당에 버금간다). 그러나 의회정치에 공산당이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민중을 온전히 대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저자들은 “인도 공산당 운동의 특징은 이론과 실천의 현격한 분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에서 배태된 공산주의 운동은 코민테른의 지원으로 가능했지만 또한 코민테른의 입장이 서구 공산주의 운동의 이해에 따라 좌우될 때가 많았으므로 그 영향 아래에 놓인 인도의 공산당(CPI) 또한 자주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 시기 인도공산당에게는 식민 지배국인 영국에 대한 반제 투쟁이 당면 과제였는데, 2차 대전 중 반파시즘 전선이 형성되면서 코민테른의 방침이 반영 투쟁에 반대한 일이 대표적이다(노동운동에 대해서는 파업 금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렇게 거듭되는 혼란 탓에 독립 이후에도 공산당 내에서 온건파와 급진파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고, 회의당이 내분을 부추겨 당 지도부와 급진적 당원들 간의 괴리는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지도부에 의해 좌파, 중도파가 출당당하는 데 이르렀고, 이들이 만든 새로운 정당이 CPI-M이었다(그러나 좌파 분파가 갈라져 나온 정당이라 해서 기존 공산당보다 특별히 더 ‘공산당다운’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아니다). 당의 분열로 지지 기반을 잃은 CPI는 회의당에 기생적으로 연합하는 선택을 하고, CPI-M는 당이 틀을 잡으면서 중도파가 주도하는 모양새가 되어 급진파와 재분열하게 된다. 여기서 갈라져 나온 급진파의 당이 세 번째 공산당인 CPI-ML으로서, 이들은 인도 동부에 세력을 떨치는 ‘낙살 반군’(Naxalite)과 연계되어 설립된 정당이다. 그러나 이런 끝없는 분열의 결과로 남은 것은, 세 공산당 모두 강령으로서는 급진 노선을 표방하지만, 실천에서는 합법의 테두리를 넘지 않으며 집권 지역에서의 투자 유치를 위해 소수 세력을 폭력적으로 탄압하기도 하는 명실상부한 ‘정당’이라는 현실이다.

참여민주주의로 충분할까?: 께랄라 모델의 등장과 쇠퇴

그러나 공산당이 집권 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바도 없지 않았다.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는 특히 께랄라 주의 성과를 면밀히 검토하는데, 공산당이 주도한 께랄라 발전 모델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띠야 센 등 대안적 경제 발전 모델 연구자들이 각별히 주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께랄라는 인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기대수명이나 유아 사망률, 문맹률 등 주요 지표를 개선시켰고, 성별이나 카스트에 따른 차별도 상당히 저감시키는 성취를 거뒀다. 저자들은 이 성취의 비결이 단지 집권 께랄라 공산당의 지도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풀뿌리 민중 수준에서의 적극적 참여가 정치 세력이 개혁 시도를 게을리 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추동하고 또 감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성취였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토지 개혁을 내세워 하층 계급의 지지를 얻은 께랄라 CPI-M은 정권을 얻지 못했을 때에도 민중의 파업이나 토지 점거 활동을 지원하고 대중교육 사업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또 집권 후 실시한 토지 개혁은 농촌의 구체제적 질서를 약화시켜 풀뿌리 민중의 정치적 역량을 촉진시켰다. 즉 민중과 정당의 건강한 관계가 께랄라 모델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께랄라 모델은 인도가 1980년대에 경제위기를 맞으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비록 께랄라 모델이 분배적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고질적인 낮은 경제 성장률 때문에 그 지속 가능성이 의문에 부쳐졌다(‘성장 없는 분배’라는 비판). 이 위기 속에서 CPI-M은 국가(께랄라 주 정부) 주도 발전 노선에서 사회 주도적 발전 노선으로의 변화를 꾀했으나 대중적 수준에서는 부정적 반응을 유발했다. 정치적 민주화를 명분으로 복지 후퇴 등 경제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또한 민중에게 자치적 제도를 운용할 역량이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역할이 주어지자 많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며 인도에서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시대 하에서 CPI-M은 점점 더 우경화하고 께랄라 모델은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 민중의 절망의 깊은 골과 투쟁의 높은 산을 마주하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인도 저항운동사가 결코 명망 높은 지도자나 제도 정당에 기대어 전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오히려 민중의 요구는 바로 민중 스스로에 의해서 주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힘겹게 증명하며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저발전 상태와 분배 불평등이라는 경제적 현실은 카스트 차별, 여성 차별, 소수 부족민 차별의 문제와 맞물려 인도 민중을 더욱 혹독한 지경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저 ‘위대한 영혼’(‘마하뜨마’의 뜻) 간디를 필두로 한 민족 지도자들은 농촌 사회 내에 엄존하는 계급 대립을 부정하고 카스트 제도와 지주 기득권을 온존시키며 계급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 사회를 이상으로 제시하는 계급 화해 노선을 내세웠다. 또한 강성 노동운동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아 독자 노선의 노조를 설립하고 파업을 금지시켰다. 여성운동에 대해선 자기희생이 인도 전통의 여성적 미덕이라며 관념적 여성상을 내세웠고 명목뿐인 성평등 입법과 지원으로 하층민 여성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덩치만 큰 공산당 역시 민중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에 카스트 최하층에 속한 불가촉천민들은 ‘억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뜨’(간디가 사용한 ‘신의 아들’이라는 뜻의 ‘하리잔’과 대조를 이룬다)를 자칭하며 ‘불가촉천민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반카스트 운동의 기치를 올렸고, 노동자들은 제도 정당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노조 운동을 전개해 자생적 요구를 표출하려 했다. 언제나 2~3중의 압력 아래에 놓인 채 외면당하던 여성과 부족민, 하층 농민들은 자신들의 현실 안에서 서로 연대하며 대안적 농민운동과 환경운동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으로 까르나따까 농업연맹(KRRS)이 마을 자치와 성평등, 카스트 철폐를 원칙으로 무역 자유화의 물결과 함께 민중들을 수탈하는 카길·몬산토 등의 곡물 메이저와 맞선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낙살 반군 봉기 같은 급진주의적 저항 또한 인도 저항운동의 일면이다.
이 모든 운동들은 이제 신자유주의적 개혁 프로그램이 초래한 새로운 곤경들과도 대결해야 한다. 기득권 세력은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 투자 환경의 조성을 명분으로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수입을 자유화하며 자국의 수출?농업 보조금을 삭감해 사회적 약자들을 무방비한 상태로 경쟁 시스템에 노출시켰다. 인도는 2011년 기준 글로벌기아지수(GHI) 65위로 심각한 기아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 간 불균형 발전 문제도 악화일로이다.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생태적 위기 폭증과 전통적 삶의 방식의 파괴 역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으며, 대도시 인구 집중에 따른 슬럼가 확산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파괴적 진행에 대해 반카스트 운동은, 농민운동?노동운동은, 여성과 부족민 등 소수자 운동은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는 윗 문단에서 언급한 KRRS 등의 새로운 사례 외에도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침체기를 벗어나고 있는 노동운동을 언급하고 있다. 역사가 보여 주듯 어떤 운동은 다시 현실의 파고 속에서 무너질지 모르지만 그 좌절을 유산으로 새롭게 일어서는 저항 역시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저자들의 말처럼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인도 민중의 절망의 깊은 골과 투쟁의 높은 산을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세계의 민중이 처한 곤경이 점점 더 많은 연결점을 노출하고 있는 현재이기에, 우리가 스스로의 눈으로 인도 민중의 실천에서 우리의 난관을 돌파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또한 다른 민중에게 그들의 난관을 돌파할 실마리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내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저항운동들에 관심을 다시 가지게 된 것은 그 지역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가 아니었다. 한국 진보 진영의 지나친 유럽 ‘이론’ 지향성이 우리 사회에 도대체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 비서구에서의 저항적 ‘실천’에 대한 관심으로 나를 이끌었다. 우리 사회가 지금과는 다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른 세상의 구체적 모습과 실현 과정을 고민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들이 좀더 다양해져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10쪽)

NDA 정권 당시에도 회의당은 의회에서 결정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 입법의 통과에 찬성했습니다. 결국 힌두 민족주의를 둘러싼 두 집단 간의 정치적 대결은 정치적 명분에 불과했고 신자유주의의 관철이 두 당의 본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수사는 대중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들이 집행하는 정책이 진짜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지식인들이 말에만 집착하는 것은 대중을 기만하기 위해 지배 계급이 지식인들에게 부여한 역할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41쪽)

카스트 차별은 경제적 의미에서의 계급 차별과도 겹쳐지고 인권 문제와도 겹쳐지기 때문에 어떤 측면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다른 부문의 운동보다 운동의 규모나 역사도 크고 긴데 비해서 현실적 성과는 두드러지지 않는 운동이기도 하죠. 카스트 제도가 인도 사회에서 워낙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모순들과 겹쳐서 존재하기 때문에 해결이 힘든 것입니다. (150쪽)

대안적 공공분배체계는 환경 고용, 토지 대여 프로그램, 공동체 유전자 펀드 프로그램으로 구성됩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이 공동체 유전자 펀드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몬산토 같은 곡물 메이저들이 종자를 독점하면서 인도 농업을 착취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이런 기업들이 판매하는 종자들은 다량의 화학 비료와 농약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대기업에 이윤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는 토착 종자를 보존하고 개량해서, 전통적이고 생태적인 농법으로 재배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214쪽)

께랄라 모델에서 가장 훌륭한 점은 이 모든 성취가 도덕적이고 현명한 지배 집단이 제공한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싸워서 얻은 결과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대중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이들이라면 께랄라의 사례에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91쪽)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