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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다시 읽기](2)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u)--곽준혁 |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3. 11. 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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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다시 읽기](2)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u)
곽준혁 |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 공동소장

ㆍ미래 지도자에겐 시민이 ‘운명의 여신’… 귀족·군인보다 시민에 더 의지해야

‘운칠기삼(運七技三)’과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단어가 있다. 전자는 중국 청나라 포송령(蒲松齡)이라는 사람의 글에 나오는 말로, 인간사 성공과 실패에는 운이 7할을 좌우하고 노력이 3할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후자는 헤겔이 <역사철학강의>에서 언급했듯이, 특정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늘 보편적으로 갈망하는 어떤 정신적인 지향이 있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두 말은 다른 것 같지만, 마키아벨리의 시각에서 보면 똑같은 정치적 태도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바로 운명론 또는 결정론적 시각이 두 단어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운이 7할’이라는 말을 미래는 불확실하니 열심을 다해야 한다는 충고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늘의 뜻에 달렸다’는 운명론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또한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시대적 요구를 담아 새로운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웅변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노을이 질 무렵에야 날갯짓을 시작하듯, 인간의 지혜는 시대적 요청을 먼저 깨달을 수 없다는 결정론적 시각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오노 나나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필연성’(necessita)을 ‘시대정신’으로 이해한다. 초인간적 ‘운명’과 인간의 ‘능력’이 맞닥뜨리는 지점, 상황과 인물이 맞아떨어진 순간, 그리고 기회의 포착으로 해석한 것이다. 참으로 매력적인 시도지만,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과연 그토록 절박했던 마키아벨리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만드는 사람보다 소극적으로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을 요구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공포’와 ‘힘’에 의존하는 정치철학을 주창했다고 단언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통해서는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라는 전제도, ‘불확실성 속에서 가능한 한 최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조언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만약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필연성이 그런 의미의 ‘시대정신’이었다면, 그는 흔해빠진 르네상스 지식인들 중 한 사람에 불과했을 것이다. 진정 그러했다면, 그는 당시 지식인들의 운명론적 넋두리를 결코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롤루스 보빌루스의 <지혜에 대하여>(Liber de sapiente, 1510)에 삽입된 ‘포르투나와 비르투’라는 제목의 목판화다. 눈을 가린 채 회전하는 운명의 바퀴를 들고 공처럼 둥근 의자에 불안하게 앉아 있는 것이 운명의 여신이고, 성찰의 거울을 들고 사각의 안전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지혜의 여신이다. 오른쪽 맨 위에 있는 ‘지혜자(sapiens)’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비르투를 믿어라. 포르투나는 파도보다 더 순식간에 사라진다.”


■ 마키아벨리와 아이러니…‘군주론’ 자체도 운명의 장난

마키아벨리의 삶은 역설 그 자체다. 그와 메디치 가문의 관계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그가 태어난 1469년은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가져온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가 권력을 잡은 해고, 그가 죽은 1527년은 1512년에 복귀했던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정치공간으로부터 다시 축출된 해다. 그가 정치일선에 나서게 된 계기도 메디치 가문과 가까운 사람의 추천 덕분이었고, 그의 실직과 추방도 메디치 가문 때문이었다. 그의 삶과 메디치 가문은 운명적으로 얽혀 있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De Principatibus)도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가 붙인 최초의 라틴어 제목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이 제목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군주정에 대하여’(Sui Principati)라고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초대 로마황제가 로마 공화정의 후계자임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원로원 수장’(princeps senatus)이라는 함의를 함께 갖고 있다. 공화정의 부활을 가장 두려워할 메디치 가문의 군주에게, 자기가 꿈꾸는 세상은 로마 공화정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밝힌 셈이다. 수사학에 정통했던 그가 어떻게 이런 무모할 정도의 솔직함으로 권력자의 신임을 받으려 했는지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마키아벨리의 의도가 우리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것도 운명의 장난이다. 1532년 안토니오 블라도가 교황 클레멘스 7세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제목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수정을 가한 후, 최초의 라틴어 제목이 지금의 ‘군주’(Il Principe)로 바뀌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식 번역을 따라 ‘론(論)’이라는 글자를 붙였다. 귀치아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의 <회상록>(Ricordi)이 <신군주>라는 이름으로 출판되는 기이한 현상에서 보듯, 우리는 <군주>로부터 ‘권력’ 또는 ‘처세’ 외에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만 같은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이다. 운명이었다면 마키아벨리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 운명은 여신이다… 무모하리만큼 맹렬하게 맞서라

마키아벨리는 아마도 이런 운명의 역설을 즐겼을 것이다. 그의 희곡 작품들이 보여주듯, 그는 운명의 장난이나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피할 수 없을 것같이 보이는 운명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씩 보여준다. 하잘것없는 농부에 불과한 사람부터, 유부녀를 짝사랑한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기발한 재치로 난관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기지를 교묘하게 그려낸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사를 모두 신의 뜻으로 돌리거나, 모든 것을 아는 듯이 말하는 손쉬운 선택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절대적 존재나 자명한 진리를 가지고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생각부터 버리라는 조언, 그러기에 결코 포기하지 말고 운명에 맞서라는 충고를 마주하게 된다.

< 군주> 2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자기의 생각을 ‘양비론’(utramque partem)이라는 틀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전달한다. 첫 번째로 그는 운명을 ‘신의 섭리’로 보는 입장을 거론한다. 먼저 그는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신을 헬레니즘의 운명의 여신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그러고는 운명의 여신을 뜻하는 포르투나(fortuna)가 ‘행운을 가져오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듯이, 운명을 ‘숙명’(sorte)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동시에 그는 운명론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지식인들을 이렇게 비난한다. 당신들은 단지 “많은 땀을 흘릴 필요가 없고 운명(sorte)이 좌우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결정론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이다.

■ 탁월함·능력 뜻하는 ‘비르투’… 용맹을 넘어서는 리더십

다음으로 마키아벨리는 비판의 초점을 ‘자유의지’를 이야기하면서도 상황논리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입장에 맞춘다. 그는 “신은 우리로부터 자유의지와 우리 몫의 영광을 빼앗아가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말로 포문을 연다. 그리고 제방과 도랑으로 물길을 막거나 돌리듯,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 잘 대비하면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절반의 성공’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슬며시 꺼낸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제를 다시 극단적인 결정론으로 되돌린다. 상황에 맞춰 ‘본성’과 ‘자질’을 바꾸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묻는다. 상황에 따른 기회만을 강조한다면, 절반의 가능성에 만족한다면, 시대를 한탄하는 것 외에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결국 마키아벨리의 답은 운명에 맞서라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무모하리만큼 맹렬하게 운명의 소용돌이를 돌파하라고 권한다. 운명의 여신을 “때려서 눕혀야” 한다는 표현까지 쓴다. 신도 간절한 기도에 화답한다는 중세적 사고도, 운명의 여신은 노력하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당시의 상식도 훨씬 넘어선다. 키케로가 말한 ‘운명은 강한 자를 돕는다(fortes fortuna adiuvat)’는 절반의 가능성에 머물러 있기보다, 마키아벨리는 신의 섭리를 인간의 의지로 대체할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기의 운명도 이렇게 극복하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 구성적 리더십… 시민과 함께 상황 이끄는 지도자의 능력

운명에 대해 그토록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종종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담성’을 ‘공포’ 또는 ‘힘’의 정치로 단순화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그가 여우의 영민함보다 사자의 용맹스러움을 더 부각시킨 것은 맞다. 그리고 부패한 공화정의 개혁이나 새로운 정치체제의 설립에 절대적 권력의 행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꿈꾸던 정치가 ‘힘’과 ‘공포’에만 의존한 것이었다는 해석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예외적 방식이 일상적 정치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힘’과 ‘공포’로 정의하려 했다면,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라는 전제를 내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리더십의 핵심을 자유로운 시민과 정치 지도자의 관계에서 찾을 때, 그가 ‘탁월함’ 또는 ‘능력’의 다른 표현으로 사용하는 ‘비르투’(virtu)라는 단어는 ‘남성다움’이나 ‘사자의 용맹’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기만과 술수까지 용납되는 여우의 교활함을 더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는 ‘시민’ 또는 ‘신민’과 함께 시대적 상황을 구성해가는 지도자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어떤 품성을 가진 지도자가 이상적인 지도자인지 말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어떤 지도자가 적합한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미래의 지도자에게는 시민 또는 신민이 바로 운명의 여신이라고 말한다. 시민들이 완전히 부패했다면, 절대적인 권력을 사용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시민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면, 아니 ‘시민적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건설하려 한다면, 시민들에게 힘과 권력에 복종하는 습관보다 힘과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보장해 주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를 알고, 이러한 필요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비르투’라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의 <군주> 19장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있다. 신민에게 자유를 주고, 신민을 무장시키고, 귀족이나 군인보다 신민에게 더 의지해야 할 시대가 왔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과 공포에 대한 화려한 수사 뒤에, ‘시민’과 함께 상황을 만들어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자기의 생각을 공허한 ‘진리’가 아니라 ‘실질적 진리’(verita effetuale)라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당시 지식인들을 ‘우리 시대의 현인들(savi de’ nostri tempi)’이라고 비난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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