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경영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행의 전제조건은 기업의 생존이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담보하는 경영변수를 일컬어 중대한 성공요소(CSF, Critical Success Factors)라고 말한다. 즉 시장변화에의 기민한 대응,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제품(서비스)의 지속적 개발 및 생산/유통, 경쟁사 대비 끊임없는 비교우위 전략 유지, 그리고 지속적인 순현금흐름 창출 등은 대표적인 CSF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반칙과 편법을 쓰지 않아야 함은 불문가지다. 이러한 CSF는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담보하는데 있어서 매우 직접적이며 중단기적이고 측정 가능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이다.
이에 비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변수들은 CSF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접적이며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고속성장기에서 지속적인 재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회사, 시장수요의 둔화, 경쟁격화, 산업의 격변상태에서 생존의 문제를 놓고 전전긍긍하는 회사에게 ESG경영을 주문하는 것은 뭔가 생뚱맞다. 적어도 현실경영의 기본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에 비해 기업이 안정적인 경영상태나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국면에는 ESG요소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 관계관리에 비교적 풍부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연구결과들을 놓고 보면 이러한 자원배분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사슬상 가치창출(Value Creation)에 긍정적이며 우호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업황의 주기적 순환에서의 일탈, 특정 섹터의 전산업적 구조조정 등의 문제에 봉착하여 사활을 건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정책의 우선순위를 논하는 상황에서 기업 생존에 비교적 간접적이며 장기적 상관관계를 갖는 ESG이슈에 ‘극히 한정된 자원’의 일부를 배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의 생존을 위해 내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돌아갈 몫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경영의 경험이 부재하고 또한 현장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는 이른바 시민단체 관계자, 학자들은 기업들에게 고답적이며 이상적인 기대치를 갖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KT의 경우를 보자. KT 이석채 회장은 2009년 1월 회장 취임 이후 부패와 슈퍼 갑의 대명사인 KT의 고질적인 조직문화를 일신해왔고(이 점은 과거 KT에 경영컨설팅을 제공하고 관련 부품 등을 납품해봤던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윤리적 이슈에 연루됐고 협력사 등에게 슈퍼 갑으로 군림해왔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수십명의 임원, 그리고 약 6,000여명의 직원들을 명예 퇴직시켰다. 과거 KT의 그 어떤 리더들도 시도하지 못했던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또한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KT 노조는 민주노총에서 탈퇴했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ICT섹터의 구조적 하강(집 전화 매출의 급감, 이동통신 부문의 과당경쟁 등으로 인한)을 고려할 때 회사의 존속을 위한 불가피한 경영적 선택으로 판단된다. 노조 또한 절체절명의 경영상 위기상황을 공감하고 투쟁적 노사문화에서 대화와 타협의 노사문화로 전환하기 위해 민주노총을 탈퇴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석채 회장은 진보적 노동단체를 위시한 투쟁적 노동세력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그들과 연계된 진보 언론들의 공적이자 타겟이 되어 왔다. 의당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내세운 시민단체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 가운데 참여연대는 이석채 회장을 업무상 배임죄로 고발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이 회장이 39곳 KT사옥을 감정가의 75%에 매각한 배임,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스마트몰 사업 관련 60억 원의 업무상 배임, ㈜오아이씨랭귀지비주얼 관련 59억원 이상의 업무상 배임, ㈜사이버MBA 관련 77억7500만원의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진보진영의 공세는 정권 교체기마다 늘상 거론되는 민영화된 공기업 수장교체,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사에 대한 논공행상과 맞물려 힘을 얻고 있다. 또한 KT 토착세력의 재 결집, 새 정권에 대한 현 임원진들의 줄서기 등도 상황을 더욱 복마전으로 몰아 넣고 있다.
이렇듯 정권교체기마다,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공기업을 둘러싼 문제들에는 꽤나 복잡한 역학과 속사정들이 있다. 따라서 사회책임투자 애널리스트들은 표피만 보고 문제를 판단하면 자칫 균형성의 중대한 원칙을 훼손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참여연대 등의 고발 내용에 의문부호를 단다. 즉 사업을 하다 보면 버는 것도 있고 잃는 사업도 있다. 제품을 팔다 보면 남는 것도 있고 손해 보는 것도 있다. 포트폴리오를 짜면 오르는 주식도 있고 떨어지기만 해서 애물단지가 되는 주식도 있다. 다만 전체 이익의 총합을 높이면 되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밑진 장사만 침소봉대해서 자기들의 입맛에만 맞췄다. 반면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재무적으로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KTF의 합병, 스카이라이프 인수, BC카드 자회사 편입, 금호렌터카의 성공적인 인수 등은 싹 빼놨다. 즉 모두에서 언급했던 ICT섹터의 CSF 맥락에서 균형 있게 문제를 조망하지 못한 느낌이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인가는 외팔이 경제학자를 데려오라고 했다 한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대개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이렇고,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저렇다”라고 말하니 헷갈린다는 푸념이었을 터다. 그냥 화끈하게 한 쪽 입장에서 복잡한 경제사안을 설명해달라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반면 한국의 미디어들은 대개 ‘외팔이’들이다. 오른손 외팔이거나 왼손 외팔이뿐이다. 진보 대 보수의 양극단으로 패가 갈려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취향대로 보고 선택적으로 정보를 모아 쓴다. 기업의 ESG 이슈들을 바라볼 때도 복잡한 경영현장의 CSF 문제들은 그냥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 소비자들 또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미디어만 본다. 그러나 사회책임투자 애널리스트들은 균형잡인 양손잡이가 되어야 한다. CSF와 ESG 요소 사이를 넘나 들면서 양쪽을 균형 있게 보고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