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복지국가로 가는 길인가?--신명호(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

2013. 10. 25. 15:33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복지국가로 가는 길인가?

신명호(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  |  webmaster@selfg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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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24  23: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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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복지국가로 가는 길인가?

신명호(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

“연대에 기반한 시민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경제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사회적경제는 어떤 정당성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샤니알과 라빌 ―

1. 머리말

2000년 서울에서 열렸던 ‘사회적기업 국제심포지움’에 참석한 국내 청중들은 채 50명이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럽에 사회적기업이란 용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었고 현재 전국의 사회적기업 수는 900여개에 이른다. 또 2012년 말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더욱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들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게다가 낯설고 어려운 ‘사회적경제’라는 단어가 정부기관의 행정용어로 정착될 조짐마저 있다.

서구에서 국가가 감당하기 힘든 실업과 빈곤, 복지서비스의 부족이라는 문제의 해법으로 등장한 사회적경제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비록 제도를 만드는 데 정부가 앞장서기는 했지만, 원래 사회적경제는 주민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참여와 민간단체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동력으로 성장하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다. 우호적인 여건에 힘입어 사회적경제가 발전하게 되면 고용 불안과 같은 사회문제들도 완화되고 복지체계의 확장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 섞인 관측이 있다. 그래서 사회적경제의 잠재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사회적경제가 그동안 폐쇄되어 있던, 복지국가로 가는 특수한 한국적 경로를 열어 가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한다.

이 글은 한국사회라는 맥락에서 원래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경제가 이러한 국가 차원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사회적경제 부문이 확장 . 발전된다면 그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연대의 정신 역시 확산됨으로써 궁극적으로 복지국가의 건설을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에 관해 판단을 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니까 이 글의 목적은 사회적경제의 성장이 국가 차원의 사회문제 해결과 복지국가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적경제가 발상지인 유럽에서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어떤 성과와 한계를 보였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경제의 특성이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적용될지를 유추해 보았다. 그래서 이 글의 제2장에서는 유럽에서 사회적경제 개념이 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제3장에서는 사회적경제의 특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그 개념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제4장에서는 사회적경제가 복지국가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 복지국가의 발전요인에 관한 기존 이론들을 정리했고, 제5장에서는 사회적경제 운동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에 관해서 서술하였다.


2. 사회적경제 개념의 등장과 발전 과정

1) 19세기 유럽의 상황과 ‘사회적경제’

18세기 영국에서는 면화를 가공해서 옷감을 만드는 직물산업이 발달했다. 대개는 가족 단위로 면화를 직접 재배해서 소규모의 가내공업 형태로 직조하는 자영업자들이었다. 그런데 채 60년이 지나지 않아서 이들 자영업자들이 거의 사라졌다. 대규모 상인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자신들의 독점력을 이용해 영세 직조공들의 몫을 빼앗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대량생산, 극단적인 분업, 탈숙련화된 노동력을 수반한 공장 시스템의 성장이 두 번째 이유였다(버챌, 2012: 79). 예전의 도제 시스템은 와해되었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기 위해 시중임금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노동력을 팔았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자본주의의 발달은 이렇게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몰아갔다.

실업과 소득의 상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급속한 도시화와 심각한 보건위생의 문제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1844년 세계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이라 일컬어지는 로치데일선구자조합이 설립되었던 지역의 상황도 이와 같았다. 이런 저런 정치적 시도들이 실패한 가운데 마침내 28명의 로치데일선구자들은 1파운드씩을 모아 밀가루와 버터 등을 파는 작은 점포를 개설했다. 그 당시 밀가루는 노동자들의 주식인 빵을 만드는 원료였음에도, 제분업자와 제빵업자들의 독점으로 가격이 워낙 비싼데다가 불순물이 섞여 있기 일쑤였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생활고를 이기기 위한 자구책으로 가장 손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공동구매 조직을 결성한 것이다.

인간 삶의 미래에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들―가장의 사망, 질병, 장애, 실직 등의 위기가 항상 도사리고 있고,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것을 만들어 이런 위험으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오늘날 보험이라 부르는 이 같은 제도를 유럽에서는 상호공제회, 또는 공제조합(mutuals)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공제조합은 처음 영국의 선술집에서 ‘머니박스’(money box)라는 통에 소액의 돈을 추렴해 예치해 두었다가 병에 걸린 조합원의 진료비를 내주거나 사망한 조합원의 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한 데서 유래한 제도이다. 이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세기 말에 이런 공제조합이 영국 전역에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자구적 반작용으로 싹텄던 협동조합과는 달리, 인간 삶에 내재돼 있는 본원적 불확실성이 그 동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801년, 총 노동인구가 900만 명이었던 영국에는 7,200개의 공제조합(조합원 64만 8,000 명)이 있었는데, 십 수 년이 지난 1815년에는 공제조합의 수가 9,672개(조합원 92만 5,000 명)로, 40% 이상 늘어났다(버챌, 2012: 111).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조합원 증가 현상이 빈곤 계층의 증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달리 의지할 곳이 없었던 그들이 공제조직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제조합의 역사가 그 출발에서는 자본주의의 탄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역시 자본주의의 발달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빈곤과 실업 등 불안정한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업자조합(compagnonnages)에서 출발한 프랑스의 공제조합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더군다나 1852년 공제조합운동이 법률로 인정을 받으면서 그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19세기 중반 2,000개(조합원 10만 명)에 달했던 공제조합은 19세기 말이 되자 1만 3,000개(조합원 210만 명)로 늘어났다(버챌, 2012:114). 이탈리아에서도 공제조합원의 수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100만 명에 육박하였다(보르자가, 2008: 75). 소비자협동조합이 로치데일조합의 성공사례를 모방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듯이, 공제조합의 아이디어 역시 널리 전파되어 대부분 의 유럽 국가에서 공제조합들이 생겨났다.

프랑스에서는 일찍이 노동자협동조합이 출현했는데, 프랑스의 공업화는 영국에 비해 사회적인 파괴력을 지니지 않고 보다 인간적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다소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는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에 비해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가 완만했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지만 그 기술이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저비용 생산보다는 품질이 강조되었고 기계 기술보다는 숙련된 기능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독립된 숙련노동자들은 공동의 일터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게다가 방임주의 성향의 영국 정부와는 달리, 프랑스 정부는 노동자들의 새로운 시도를 지원하는 데 적극적이었다(버챌, 2003: 41). 이런 예에서 어떤 공동체 조직이 싹트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은 반드시 자본주의적 폐해의 극심한 정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님
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이 혹독할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강한 법인데, 이러한 일반론에서 벗어난 예들이 현실에서는 존재한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공제조합과 협동조합은 보통 사람들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새롭게 조직되고 널리 확산돼 나갔다. 19세기 말에 이런 조합의 성장을 촉진하는 법률이 생겨난 것도 이 같은 움직임을 선도하고 이끈다기보다는 자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운동을 허겁지겁 따라가며 뒷북을 치는 격이었다. “공제회의 발전에 그 어떤 입법자, 철학자, 학자도 없었다”는 한 역사학자2)의 지적은 공제조합운동이 철저히 밑에서부터 조직되고 자생적으로 퍼져나간 노동자들의 운동이었음을 시사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은 개인의 자유 신장뿐 아니라 민간단체 결성의 자유화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언제나 권력으로부터 탄압과 감시를 받던 결사체를 민간에서 조직하는 일이 점차 가능해졌다. 프랑스에서는 “구식 길드가 민간단체의 원칙에 따라 보통선거와 노동자 주권을 받아들이는 소규모 직종별 조직으로 전환되었다(샤니알과 라빌, 2008: 131).” 그리고 수 십 년의 논쟁을 거쳐 1901년, 비영리 민간단체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생겼다.

한편, 영국의 자선단체들은 자선기금을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하였다. 이를 통해 국가 조직의 필수 부분인 동시에 국가와 시민 사이에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민간단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에베르스와 라빌, 2008: 40). 이에 비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민간단체―비정부조직은 19세기부터 일기 시작한 대중적 사회운동, 특히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스웨덴의 경우, 이러한 대중운동은 19세기 말, 지배층을 형성했던 관료, 사제, 귀족 및 자본가들에게 대항하는 저항운동의 성격을 띠었고, 노동자들은 정당과 노동조합뿐 아니라 주택협동조합, 스카우트, 연금수급자 조직, 절제운동 조직, 종교운동 조직, 성인교육 조직 등 수많은 문화단체들을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19세기 중반부터 이후 100년간의 시기는 스칸디나비아 역사에서 가히 ‘민간단체의 시대’라고 일컬어질 정도였고, 스웨덴의 민주주의는 ‘결사체 민주주의’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페스토프, 2008: 100-101; 신정완, 2004: 200).

이상과 같이 유럽에서는 각 나라마다 시기적 차이가 있고 조직 유형에 따라 출현 및 발전 과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18세기 초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공제조합, 협동조합, 그리고 민간 차원의 결사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꾸준히 확산되었다. 이것은 물론 서민 대중들이 자신들의 삶에 깃든 불확실성, 그리고 현실적 욕구와 필요에 대응해서 조직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사회적경제’라는 개념은 언제, 어떻게 등장했을까? 역사상 ‘사회적경제’(economie sociale)란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세기 프랑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샤를 뒤느와이에(Charles Dunoyer)라고 알려져 있다. 1830년에 발표한 한 논문3)에서라고 한다. 그러나 형식적 측면에서 그가 ‘사회적경제’란 표현의 최초 사용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늘날의 의미와 연관시켜볼 때 내용적으로도 그를 창시자로 인정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경제의 순환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경쟁이 일반화된 경제에서는 필연적으로 활황(activity)과 불황(relapse)이 교차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과잉생산으로 인한 불황의 국면에서 노동자는 실업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노동자들은 미래 경제에 대한 예지력을 키우고 미리 저축을 해서 이런 상황에 적응해나가야한다’고 주장하였다(Benkemoune, 2009: 273). 문제에 대한 진단은 정확했으나,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내린 그의 처방이 매우 개인주의적 관점에 서 있음을 보게 된다. 게다가 공동체적 규범에 의한 자본의 통제 가능성에 관해서도 언급이 없다.

그보다는 샤를 지드(Charles Gide)의 용례가 오히려 현대적 의미에 가깝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협동조합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협동이야말로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이며 사적 이윤을 폐지하고 이윤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믿었다(Westlund, 2003: 164). 그는 기독교 사회주의자로서 협동조합과 다양한 형태의 공제조직들과 같은 ‘사회적경제’를 성장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문제, 특히 분배의 불평등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1905년에 발간된 한 보고서에서 ‘사회적경제’의 세 가지 범주로서 협동조합 및 공제조합 등과 같은 결사체, 고용주의 사회적 공헌, 그리고 사회적 입법과 같은 공공규제를 언급하고 있다(엄형식, 2007: 6). 즉, ‘사회적경제’의 개념에, 연대의 원리에 기초한 경제조직들뿐 아니라 부(富)를 사회정의에 맞게 분배하기 위한 국가의 규제까지를 포함시킴으로써 매우 추상적인 수준의 개념화를 시도한 것이다.

2) 복지국가의 성립과 ‘사회적경제’의 소멸

그러나 샤를 지드와 같은 사회적경제 이론가들이 제시한 개념은 어디까지나 개념일 뿐이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경제조직들은 학자들이 정의 내린 추상적인 개념을 의식하면서 행동하지 않는다. 협동조합은 협동조합대로, 또 공제조합은 공제조합대로 각개 약진할 뿐, 그들이 같은 성격의 경제부문으로서 공동의 전략을 구사해야 할 필요가 적어도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는 무르익지 않았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에 의해 탄압 받고 파괴되었던 경우를 제외하면, 협동조합들은 대체로 국가와의 협상을 통해 우호적인 환경에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협동조합들은 시장에서 일반기업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고 그로 인해 점차 시장경제로 통합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사업의 지속성에 골몰하다보니 그 전에 가졌던 폭넓은 정치적 목적들은 축소되었고 마침내 시장과 유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에베르스와 라빌, 2008: 43).

공제조합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복지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보험 체계에 흡수되었다. 공동체 구성원들끼리의 의료보험 역할을 했던 공제조합은 조합이 제공해야 할 급여의 양이 증가하면서 국가에 의존하게 되었다(에베르스와 라빌, 2008: 43-44). 독일에서 공제조합은 관료 조직에 편입되지는 않으면서 일정하게 국가와 협력하는 시민사회 조직의 위상을 갖게 되는데, 정부로부터 공적 보조금을 받으면서 복지서비스의 공급권을 독점하는 한편, 신규 가입자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서게 된다. 프랑스의 공제조합들 역시 1945년 이후, 국가의 다양한 사회보장 시스템과 협력하게 되었고 가입이 의무화된 국가제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 영국의 우애조합(friendly society)도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어쨌든 법에 의해 건강보험을 수행하는 행정 주체로 인정받게 된다.

영국에서는 1942-48년 사이에 자선단체 및 자원봉사조직의 역할을 국가가 복지체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활용하기 위한 입법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박애적인 것이든 상호주의적인 것이든 제3섹터(민간단체)는 “복지국가의 하위파트너”로 강등되었고, 국가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분야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보완적인 역할을 해나갔다(테일러, 2008: 196)’.

이탈리아에서도 공공복지 시스템의 구축과 함께 민간단체의 축소 현상은 계속 일어났다. 권위주의적인 파시즘 정부 하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1948년 공화국 헌법에 의해 비영리 조직의 역할이 명시적인 인정을 받은 이후에도 민간단체는 경시 되기 일쑤였다. 사회서비스는 정당의 통제를 받는 공공기관에 의해 공급되었고 헌법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제3섹터 조직들은 더욱 위축되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사회복지에 대해 유일하게 책임지는 기관은 국가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보르자가, 2008: 79).

이상에서 보듯이, 지드 등의 이론가가 사회적경제라는 범주로 통칭했던 협동조합, 공제조합 그리고 민간단체들은 때로는 시장 속으로 들어가고 때로는 국가제도로 편입되면서 각기 다른 경로를 밟으며 변화돼 나갔다. 뿐만 아니라, 같은 협동조합 혹은 공제조합일지라도 정치.경제적 환경이 나라마다 상이한 탓에 각 세부 유형의 흥망성쇠의 역사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1970년대에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기 전까지, 실천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통일적인 대오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적경제는 옛날 사상가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할 뿐, 현실 세계에서는 이 용어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3) ‘사회적경제’ 개념의 재등장

사회적경제 개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민간 차원의 경제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매우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필요 때문이었다. 각기 다른 경로를 걸어오던 프랑스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1970년, 자신들의 사회적 영향력과 대정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연대기구―‘상호공제조합, 협동조합, 민간단체 전국연락위원회’(CNLAMCA)―를 결성하고, 1977년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할 개념어를 물색하던 끝에 앙리 데로쉬(Henri Desroche)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회적경제’라는 용어를 채택한다(엄형식, 2007: 8). 이후 이 개념은 유럽연합을 통해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989년 유럽연합(EU)의 집행기구인 유럽위원회는 경제정책 부서(DG XXIII) 안에 사회적경제국(Social Economy Unit)을 신설했고 1990년부터는 유럽의회 회원국 간의 사회적경제에 관한 비공식 포럼인 ‘사회적경제인터그룹’(European Parliament Social Economy Intergroup)이 꾸준히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9년 유럽의회는 사회적경제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왜 유럽연합이 그토록 사회적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적극적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결의안은 “이윤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편익에 의해 추동되는 ‘다른 방식의 기업가 정신’에 입각한 경제”(제8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적극적인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며”(제18조), “노동시장 불균형의 3대 요소인 실업과 고용 불안 및 사회적 배제를 바로잡기 위해 상조회와 민간단체, 재단을 포함하는 제3섹터 전반에 대해 법 제도와 통계 장치를 적절히 갖출 것을 촉구”(제20조)하고 있다. 요컨대, 1980년대부터 전 세계에 걸쳐 횡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는 사회적 편익을 무시하고 오로지 이윤에만 매달려온 결과, 사회적 배제와 불평등을 양산했다는 반성어린 지적인 동시에, 따라서 비시장경제의 원리와 호혜의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협동경제로 실업과 빈곤을 극복해보자는 제안인 셈이다.

이처럼 유럽에서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다시 떠오르고 각 나라의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되는 배경에는 ‘시장의 실패’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제 시장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항상 조화로운 균형과 풍요를 생성하는 곳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비숙련 노동자 중심의 대량생산 체제는 어느덧 숙련 노동자 중심의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바뀌었다.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가 약한 나라일수록 비숙련(저숙련) 노동자의 수요 감소로 인한 상대적 임금 하락이 빠르게 일어났다. 비숙련(저숙련) 노동자의 수요가 감소하게 된 것은 첨단 기술의 발달과 자동화, 그리고 세계화의 영향으로 모든 경쟁이 ‘승자 독식’의 형태를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시장을 지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글로벌자본주의는 결과적으로 실업과 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왔다. 또한 저성장과 인구의 저출산 . 고령화 경향은 국가재정의 위기를 불러와 점차적으로 사회복지가 위축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유럽에서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재등장하게 된 배경의 또 다른 축은 ‘국가의 실패’이다. 국가가 관리하는 중앙집중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은 서비스의 표준화 내지 획일화를 가져왔다. 신사회운동의 등장에서 보듯이 유럽 사회는 1970년대를 지나면서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삶의 욕구가 늘어났고, 국가가 공급하는 복지 서비스는 이러한 욕구에 부응할 만큼 유연하거나 탄력적이지 못했다. 결국 시장이나 공적 전달체계가 해결하지 못했던 일자리와 사회적 편익에 대한 욕구를,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과 같은 사회적경제 부문이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전망이 생겨났다.

여기서 사회적경제에 관한 담론과 정책이 성행하고 있는 요즈음의 우리나라 상황과 관련해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사회적경제 개념이 유럽에서 다시 등장하게 된 원인으로 앞에서 ‘국가의 실패’란 표현을 썼지만, 이 용어는 우리나라의 경우에 대입하기에는 다소 낯설고 부적절한 개념일 수 있다. 획일화될 정도로 국가의 사회보장체계가 널리 제도화되었던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일반화된 사회복지의 혜택을 속속들이 경험한 바가 없다. 적어도 공공재로 서의 사회서비스에 관한 한, 우리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겨를이 없을 만큼 여전히 배가 고플 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 영역 가운데는 공동육아나 대안교육의 예에서 보듯이, 기존 체제에 의해 충족되지 않는 새로운 욕구의 발로에서 생겨난 운동이 일부 있지만, 이런 예를 우리 담론의 전형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시 말해서, 유럽 사회는 국가가 주도하는 광범위하고 관대한 복지제도를 경험한 탓에 국가와 시장 간의 변증법적 논리의 귀결로 사회적경제를 논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오직 시장의 실패만이 있었으며, 따라서 (유럽의 경우를 거론하며) 복지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실패를 불러올 것이라는 식의 섣부른 예단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복지국가 논쟁에서 사회복지의 확대를 경제성장의 포기나 국가재정의 파탄과 동일시하려는 보수 언론이나 관료들의 눈에, 혹여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은 국가의 복지 재정을 늘이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오해나 억측을 불식하기 위해서도 복지국가의 건설과 사회적경제의 확대는 서로 대체재(代替財)의 관계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이에 관해서는 결론 부분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3. 사회적경제의 개념과 의미

사회적경제의 개념에 관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 학자와 기관들이 더러 사회적경제의 개념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정의(定義)라기보다 의미의 윤곽을 두루뭉실하게 서술한 것에 가깝고 그나마도 서로 조금씩 다르다. 이처럼 개념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제1장에서 설명했듯이, 대중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실천 조직들을 이론가들이 하나로 범주화해서 부르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라는 용어는 나라와 권역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이미지로 이해되는데, 아민 등(Amin et al.)은 이 용어가 연상시키는 사회적경제와 시장, 국가 및 시민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서유럽에서는 국가의 재정 지출이 감소하는 경향 속에서 제3섹터로 하여금 그 역할을 전반적으로 확대해서 커뮤니티의 경제개발에 힘쓰도록 지원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사회적경제란 대체로 이런 영역의 운동을 지칭한다. 그러나 같은 서유럽 안에서도 사회적경제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 독일, 벨기에 간에는 정부의 인식과 제도적 규범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또 앵글로색슨 국가들에서는 주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빈곤지역 같은 특정지역 중심으로 사회적경제 모델을 활용하며, 특히 영국에서는 시장과 공공부문 사이의 ‘제3의 길’ 노선과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된다. 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공공부문의 규모가 크고 사회복지 시스템이 튼튼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경제가 재분배의 정치이념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Amin et al., 2002: 9-11).

사정이 이러하므로 우리가 흔히 사회적경제를 협동조합, 공제조합, 민간단체 및 재단을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일컫는 것도 사뭇 정확한 정의라고는 할 수 없다. 이상의 4가지 유형이 아닌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 명칭 또한 나라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각종 협동조합 외에도 자활공동체, 사회적기업, 지역화폐(LETS)나 로컬푸드 운동 네트워크,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 기관 등, 정형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조직들이 사회적경제에 포함될 수 있다.

여기서 사회적경제란 단어의 2가지 측면, 즉 외연(外延/denotation)과 내포(內包/connotation)4)를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단어를 참되게 적용할 수 있는 사물이나 개체들로 구성되는 집합을 보통 그 단어의 ‘외연’이라 하는데, 사회적경제란 단어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개체들의 집합으로 접근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점이 많다. 대신 사회적경제가 갖추어야 할 성질들의 집합인 ‘내포’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 의미가 다소 명확해진다. 유럽 사회적경제의 당사자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유럽사회적경제’5)(Social Economy Europe)는 사회적경제의 기본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 사람과 사회적 목적이 자본보다 우선한다.
- 구성원 자격은 자발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 (조직은) 구성원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 구성원 및 이용자의 이익, 기타 보편적 이익 등을 고루 안배하여야 한다.
- 연대와 책임의 원칙은 반드시 준수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 공공기관으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 잉여의 대부분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목표, 구성원의 이익과 보편적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이상의 원칙들은 어떤 조직이 사회적경제 부문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구분해주는 준거가 될 뿐 아니라 사회적경제 운동의 성격과 철학을 잘 보여준다. 결국 사회적경제 운동은 민주주의, 평등과 타인에 대한 배려, 연대와 사회적 책임, 자율과 자립, 투명성 등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경제운동이다. 그렇다면 복지국가와의 관련성이라는 이 글의 주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적경제 운동이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얼마만큼 실질적인 민주화에 기여했는가를 살펴봐야 할 차례이다.

4. 복지국가 이론에 대한 고찰

옛 사회주의권이 사라진 오늘날,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제로 한다. 복지국가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를 완화하기 위해 국가가 시장 및 분배 과정에 개입하는 시스템이다. 복지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 과연 사회적경제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하기에 앞서, 이장에서는 우선 복지국가에 관한 주요 이론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시민권과 민주주의

마샬(T. H. Marshall)에 의하면 공민권(civil right), 정치권(political right), 사회권(social right) 등 3가지 요소로 구성된 시민권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20세기까지 꾸준히 발달해왔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평등의 확대를 의미하는 시민권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적(경제적) 불평등과 긴장 관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모든 시민이 정치적으로는 평등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더욱 불평등해지는 모순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민권이 강화될수록 경제적 불평등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유지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사회권이 사회서비스의 확장을 통해서 구현된다고 믿었던 마샬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사회권의 지위가 강화되면서 사회서비스의 확장을 지향하는 사회정책이 점차 적극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60년 전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형성된 마샬의 이 같은 견해는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여전히 민주주의를 시대적 테제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믿는 대부분의 후기산업 국가들에게 경제의 민주화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미국 월가의 시위대가 1%를 향해 외치는 구호나 한국 대통령 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이면에는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의 모순이 빚어낸 폭발력이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2) 산업화론 혹은 수렴이론

산업화론(industrialism)은 경제발전이 복지국가 발달에 필요한 능력과 욕구를 증대시킨다고 본다. 경제발전이 초래하는 인구 및 사회구조의 변화는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높이는 한편, 경제발전에 의해 높아진 생산성과 조세부담 능력은 그러한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배가시킨다.

‘도시화와 그에 따른 도시환경의 문제가 발생하고 노동력의 성격이 변화하며 교육의 필요성이 증가하는 등 다양한 욕구들이 분출되면서 이제는 공식적으로 조직된 제도 유형들―우애조합에서의 급여, 자선부조, 기업이나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이 발달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그리고 산업화의 길을 걷는 나라들은 결국 중간적 성격의 복지제도를 갖추는 방향으로 수렴된다고 보는 수렴이론에서는 복지체제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산업화를 추진하는 지배집단의 성격”6)이다(미쉬라, 1996: 71-72).’

경제성장이 복지체제 발달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라고 제한해서 해석한다면, 산업화론을 우리의 역사에 적용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1970-80년대의 급속한 공업화와 경제규모의 성장, 그리고 국민소득의 신장이 없었다면 1990년대의 복지제도 확대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가정에는 쉽게 동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대한 억압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은 양날의 칼처럼 복지제도 발달의 촉진요인과 저해요인으로 모두 작용하였다. 촉진요인이 권위주의 정권의 국가주도적 산업화였다면, 저해요인은 그런 과정에서 고착화된 우리나라 정치의 보수성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정부라 할 수 있는 박정희 정부는 국가 행정관료 체제의 혁신을 통해서 근대화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경제기획원의 설립과 경제관료 체제의 재정비, 중앙정보부의 신설을 통해 안보정책과 경제정책을 기능적으로 통합했다. 이로 인해 국가는 경제를 주도하고 시장을 창출하며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고도성장 정책을 국가 목표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발전주의는 국가 이념이자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또한 군사주의가 산업화와 결합하면서 독특한 역동성이 발휘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후후발산업화(late-late industrializing)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의 산업화는 대중의 열정적 집합의지를 끌어낸 결과, 빈곤을 벗고 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시장을 무시한 채 철저히 국가가 개입하고 주도했던 경제성장은 오히려 상당한 효율성과 능률을 담보할 수 있었다. 성장제일주의의 발전 전략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산업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복지의 필요를 낳는 한편,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 내내, 남한 사회를 지배한 것은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였다. 해방공간에서 정치화되고 활성화된 좌파와 민중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서 군과 경찰, 검찰 등의 강권기구는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꾸준히 팽창돼왔다. 남과 북이 지리적으로 분단되고 여기에 이념적 양극화가 겹쳐지면서 남한에는 좌파 세력이 발붙일 수 없게 되었다. 강력한 관료국가 체제는 허약한 대의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허약한 대의제도의 특징은 이념적으로 협애(狹隘)한 정당체제를 골간으로 하는 것이었다. 보수 양당 체제가 형성되고 이런 환경에서 야당은 권위주의 정부의 ‘충성스런 야당’일 뿐이었다. 국내 정치는 정치적 대안을 둘러싼 정당 간 경쟁이 아니라 북한과의 생사투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만들기 위한 통합의 과정으로 축소되었다.

그리하여 권위주의 산업화가 한국의 민주주의에 미친 악영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재벌이 국가권력이 침투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거대조직으로 발전하면서 그 소유와 결정의 구조가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게 되었다. 둘째, 관료적 권위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 비대해진 관료조직은 때로는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변모해서 시대적 개혁 요구에 저항하기도 한다. 이념적으로 이들은 대체로 경제성장과 능률을 최우선시하는 주류경제학의 신봉자들이며 노동보다는 자본의 편에 기울어져 있고 미국의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선호하는 미국예찬론자들이다. 셋째, 경영자와 보수적인 정치 엘리트들로 하여금 기업과 노동 간의 파트너십을 도외시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당연시돼 오던 노동통제가 관성적으로 지속되고 있어 노사관계의 발전을 저해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3) 마르크스주의와 권력자원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체로 복지국가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복지국가의 발달을 자본주의 본연의 모순이 폭발하지 않도록 회피, 지연시키는 장치로, 그리고 자본주의의 합리화와 관료화의 한 형태(효율성, 질서, 예측가능성의 증가)로 보기 때문이다(오페, 1988; 미쉬라, 1996).

그래도 마르크스 자신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개혁의 가능성에 매우 회의적이기는 했지만,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통해 부분적으로 복지가 확립될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7). 오히려 1960-70년대의 수정자본주의 국가를 분석한 그의 후예들(밀리반드, 풀란차스, 오코너 등)은 복지국가의 정치경제적 메커니즘이 기존의 질서를 재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더 정교하고 치밀해지는가를 역설함으로써, 복지국가는 결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는 항상 개별 자본가들의 편만 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해서 때로는 자본가들의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이해관계는 과감히 무시해버리는 상대적 자율성과 유연성을 가진다고 본다(미쉬라, 1996: 124). 하지만 설사 이들의 이론이 사실이라 해도, 역시 마르크스주의자인 오페(Claus Offe)의 말처럼 ‘복지국가의 폐지는 불가능하며 자본주의는 복지국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Offe, 1984; 김경필, 2012: 175에서 재인용).’

마르크스주의가 인정하지 않았던 개량적(혹은 개혁적) 사회주의 노선을 통해서 노동의 탈상품화가 어느 정도 가능함을 보여준 예가 북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에서 노동자 계급은 혁명 대신 의회로 들어가서 좌파 정당의 장기 집권을 이루어냄으로써 사회연대의 정신이 가장 투철하게 구현된 복지체제를 수립했다. 이러한 북유럽의 성공적인 모델을 근거로 에스핑안데르센(Esping-Andersen) 등의 권력자원론자들은, 가장 강력한 복지국가는 노동자 계급이 조직화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할 때 수립된다고 주장한다8). 즉,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힘이 클수록 복지국가의 제도화는 확고해지고 시장을 통한 분배의 원리가 약화된다는 것이다.

한편, 다원주의(pluralism)는 행위자들의 사회적 위치가 계급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시간과 상황에 따라 서로 상이한 조직적 관계에 처하게 된다고 전제한다. 다원주의 이론가들에 따르면 사회정책이란 지배계급이나 몇몇 엘리트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집단 간의 민주적 타협의 결과이다. 사회정책은 집단들 간의 경쟁과 대립,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며 집단 간의 상대적 영향력의 차이는 사회정책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 두 이론―권력자원론과 다원주의론―의 차이는 노동계급의 주도성과 우월성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지배계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오로지 사회집단들 간의 횡적인 상호작용만을 동인으로 보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이론은 공통적으로 정당을 비롯한 여러 사회집단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협상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정치공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노동계급을 비롯해서 사회집단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적 로비를 벌이고 권력에 접근하려 한다는 것은, 이념적 좌표가 어떠하든 간에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공표하고 공개적으로 조직을 결성하며 대중을 향해서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정치 활동의 자유가 전제되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두 이론의 두 번째 공통점은 복지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이 밑으로부터 위를 향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욕구와 소망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 혹은 사회조직들의 강령 속에 반영되고 선거제도를 통해 그것이 다시 국가의 정책적 목표로 설정됨으로써 대중들의 의사가 상향식으로 수렴 될 수 있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의 봄이 올 때까지 노동자들이 정치활동은 고사하고 노동조합의 결성조차 탄압 받았던 우리나라의 경우에, 적어도 현재 시점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 는 위의 이론을 대입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1988년을 지나면서 전국의 노조 조직률은 겨우 10%대를 넘어서게 되었고 노동자 정당이 처음 의회에 진출하게 된 것도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2004년이었다.

4) 신제도주의의 국가중심론

국가중심론은 산업화론이 제시하는 경제발전 정도나 권력자원론에서의 좌파 정당의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복지국가 발전의 편차를 설명하는 가장 주된 원인은 국가의 구조와 능력, 담당 관료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과거의 정책적 유산임을 강조한 다.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기구를 팽창시키려 하고, 그렇게 하는 데 복지제도는 편리한 수단이 된다.

주로 신제도주의 유파들이 주장하는 이 같은 견해는 ‘국가의 공무원들은 사회정책의 입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한 나라의 관료화 및 중앙집권화의 정도는 사회정책을 공식화하고 시행함에 있어서 그 국가의 역량을 결정하며, 국가의 조직화된 구조는 정당 활동과 일반적인 정치생활 방식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등 의 기본가정 위에 서있다(메랭, 2000: 90).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뚜렷이 구분하는 입장이지만, 한편에서는 국가 내부에 정책 수립과 시행 과정에서 시민사회 집단들과 협력하는 영역과 하위 영역들이 존재한다고 봄으로써 국가의 개념을 분해해서 보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공공정책 네트워크와 같은, 국가와 비국가 사이를 연결하는 영역이 있어서 공공정책의 모든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메랭, 2000: 101).

잠시, 우리나라에서는 복지의 제도화에 국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특히 경제성장이 압축적으로 일어났던 개발독재시대에 국가는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모으고 배분하는 일에서부터 저렴한 노동력을 동원하고 임금을 결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철저히 시장에 개입했고 경제발전을 주도했다. 이 시기의 한국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오늘날의 시장지상주의(市場至上主義) 체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국가는 자본과 노동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표방하는 행동양식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변화시켰다. 따라서 그 무렵 싹을 틔우기 시작한 한국의 사회복지는 서구에서처럼 사회집단들의 정치적 세력화와 자유로운 협상 및 계약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 판단하는 국가의 역할에 근거해서 이루어졌다. 당시의 권위주의 정권은 산업화를 위해서 자본의 축적을 지원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서는 저임금 구조로 희생되는 빈곤층을 최소한으로나마 받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비민주적인 태생의 정권이 갖는 정당성의 한계를 전시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극복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일찍이 1960년대 초기에 공무원, 군인, 경찰과 사립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한 연금제도가 실시된 것은 초기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이들로부터 충성심을 확보하려는 국가주의적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독일과 같은 보수주의 복지국가 유형에서 공무원 집단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특권적 복지 혜택을 부여했던 사실을 연상시킨다. 1973년의 국민복지연금법은 유신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아울러, 연금 기금을 징수해서 중화학공업화를 위한 내자 동원에 활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석유 위기에 따른 경제의 불안정 때문에 실시가 연기되었고, 이 실패에 대한 대체품으로 4년 후에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게 된다. 의료보험제도는 기업 중심의 조합주의 원리에 의해서 재원은 피고용인과 고용인이 반씩 부담하고 국가는 행정비용만을 부담하면서 관리하는 형식으로 짜였는데, 이러한 조직 원리는 국가의 재정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제도를 즉각 시행할 수 있는, 기술관료적 행정편의주의가 반영된 것이었다(정무권, 2002: 41). 이렇듯 우리나라에 사회복지 제도가 도입되던 초기 과정은 국가가 판단하고 결정해서 내려 보내는 철저한 하향식의 경로를 밟았다.
 

  
 

5. 사회적경제 운동의 가능성과 한계

제4장에서 살펴본 복지국가 이론들은 각기 나름의 설득력과 타당성을 갖지만 당연히 그 어느 것도 완전하지는 않다. 구체적으로 현실세계에 적용할 때 이론들마다 정합성의 한계와 많은 비판의 여지를 안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이 이론들의 우수성을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체계의 확장 내지 복지국가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무엇이며 그런 변인들과 함께, 사회적경제의 발전이라는 또 다른 변인이 과연 독립변수로 유의미한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다. 그래서 기존의 복지국가 이론들이 제시하는 변인들을 모아서 하나의 수식을 상정해보기로 한다.

Y = β1X1 +β2X2 +β3X3 +․ ․ ․ βseXse ․ ․ ․ +α

여기서는 복지국가의 발전 정도를 가리킨다. 메랭(Merrien)의 말을 응용해서 표현하자면, 국가가 사회적 연대의 기능을 관철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메랭, 2000: 17). 그리고 각각의 독립변수 X는 제4장의 복지국가 이론들이 복지체계 확장의 결정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요소들이다. 따라서 X1은 사회권의 권리의식 수준, X2는 산업화의 수준, X3와 X4는 노동자의 조직률과 좌파 정당의 영향력의 크기, X5는 관료화 및 중앙집권화의 정도라고 하자. 그리고 Xse는 우리의 관심사인 사회적경제의 크기 내지 발전 정도이다.

물론 이 글에서는 위 수식의 변수들을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척도화해서 계량분석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글의 논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수식으로 표현했을 뿐, 논의의 초점은 과연 사회적경제의 발전 정도(Xse)가 국가의 제도화된 사회적 연대의 수준(Y)을 높이는 데 독립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조건(다른 변인들)이 동일하다고 할 때, 사회적경제가 복지국가의 발전 정도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즉, βse가 유의한지), 혹은 사회적경제는 다른 변수들의 영향을 받는 종속적 지위를 가지는지 등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을 위한 근거 자료는 앞에서 서술한 유럽 및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그에 관련된 문헌자료들이다.

1) 사회적경제와 사회변혁

사회적경제의 대표적 유형인 협동조합은 그 운동의 태동기에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지향했다. 비록 초기의 협동조합 실험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자구책과 같은 양상을 띠었지만, 그 운동을 이끌었던 선구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단순히 값싸고 좋은 물건을 공급하는 점포를 개설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았다.

로버트 오웬이 직접 공동체 마을(New Lanak)을 만들고, 영국 하원의 구빈법 조사위원회에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협동마을(villages of cooperation)의 건설을 제안했던 것도 이러한 공동체가 확산되면 정의로운 이상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샤를 푸리에 역시 생산자협동조합이 확산되면 계급투쟁을 통하지 않고도 사회의 평화로운 개조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협동조합공화국’의 기치를 내걸었던 샤를 지드는 소비자협동조합을 시작으로 경제 영역 전체를 협동조합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협동조합을 사회변혁과 사회통합의 핵심수단으로 여겼다(엄형식, 2007: 3). 베르냐니니 등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은 협동조합이 혁명적이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길이라고 보았다.

“협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은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의 독점에 맞서 사적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다. 그래서 임금노동자들의 급여조건을 다소 개선하는 일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을 실질적으로 벌여나간다.”(Vergnanini, 1907; 자마니. 자마니, 2012: 57에서 재인용)

물론 협동조합 운동이 어떤 과정과 경로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변혁하고 개조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 막 자본주의에 대응하는 조직의 원리를 겨우 생각해냈던 당시의 그들에게 구체적인 방법론까지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리라!

어쨌든 이들의 전망과 기대가 실현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전제가 충족되었어야 할 것이다. 먼저, 협동조합의 가장 큰 무기인 평등과 연대, 민주주의의 정신 및 운영원리가 변질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철저히 이행될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협동조합들이 자본주의 기업의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어 경제 영역 전체의 지배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역사는 이 두 가지의 조건이 모두 어긋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언제부터인가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경쟁이 불가피해지면서 본연의 원리가 약화되는 반면, 영리기업과 유사해지는 동형화(同形化)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단과 목표의 상관관계가 불확실할수록 어떤 조직이, 소위 성공적이라고 인식하는 다른 조직(=여기서는 영리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기업)을 모방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DiMaggio & Powell, 1983: 154). 지속적으로 생존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협동조합들은 전투적이고 정치적인 비전을 상실해왔다(샤니알과 라빌, 2008: 136). 예컨대, 독일 협동조합의 역사는 일부 협동조합들이 본래의 색깔을 잃고 시장의 일부로 통합되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사회적, 도덕적 자원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생존한 대부분의 협동조합, 특히 주택부문의 협동조합들은 거대하고 관료적인 조직이 되었고 부패와 스캔들을 남겼다. [중략] 오늘날 협동조합은 사회적인 성격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회적 개혁의 담지자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문화의 개척자로서도 그 기능을 상실했다. [중략] 분명히 이러한 경향은 경제란 시장경제를 의미한다는 경제에 대한 독일의 현재적 개념을 강화시켜왔다.”(보데. 에베르스, 2008:158-9)

협동조합의 확산이 사회 전체의 개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충족되었어야 할 첫 번째 조건, 즉, 협동조합이 사회적경제로서의 정신과 원칙을 철저히 견지한다는 조건은 이렇게 해서 무너졌다.

협동조합이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와 규제 완화, 정보통신기술의 현저한 발달 등 기술혁명에 따라 주식회사와의 경쟁이 격화되고, 시장 제도가 크게 발전하면서 협동조합의 장점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자 기존의 협동조합들은 생존을 위하여 대규모 합병을 추진하고 주식회사 방식의 자본조달 구조 및 지배구조 등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장종익, 2012: 32-33).”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협동조합들이 모두 위에서 말한 1970년대 독일의 일부 협동조합들처럼 사회적경제의 기본원칙을 저버리고 타락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시장에서의 경쟁은 협동조합의 역사에서 고금을 막론하고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임이 분명하고, 자칫 경제의 정치적 성격과 사회적 목적을 망각하는 순간, 사회의 개혁이라는 거시적 목표와도 영영 멀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항상 있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협동조합이 사회적경제로서의 본성과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관해 협동조합운동의 선각자들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전통적인 협동조합의 원리를 교조적으로 지키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시장에서의 생존이라는 문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돌파한 사례로 인구에 회자되는 몬드라곤협동조합복합체의 경우, 산파 역할을 했던 돈호세마리아 신부는 유럽의 많은 협동조합들이 특히 자본활용의 측면에서 교조주의(dogmatism)의 희생양이 되어 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협동조합 모형은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취약한 점이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기술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요청된다’고 주장했다(맥레오드, 2012; 134). 이 분야의 권위자인 파넬(Parnell) 역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변화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협동조합적 사업체들이 경제의 주변부가 아닌 데서 성공하려면 시장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필요한 규모의 경제를 이용하고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사회적경제의 책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인 골롭 등은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소위 상업경제 내지 영리경제를 사회적경제와 도저히 결합될 수 없는 반대편의 극단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전략적 목표는 협동과 경쟁을 통합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동시에 보다 나은 고용의 기회와 사회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이다(Golob et al., 2009: 637).’ 이에 관해서는 사회적경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거나 전혀 비현실적인 몽상가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가능할 테지만, 사회적경제의 역할과 목표를 논하는 담론들 가운데는 이와 유사한 주장들이 많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피력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주장들의 타당성 여부가 아니라,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는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 시장에서 경쟁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힘들고 지난한 과제라는 것이다. 사회적경제의 기본정신과 시장에서의 생존은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고,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른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것일 게다.

이러한 사실은 앞에서 협동조합운동이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 전제했던 두 번째 조건 ― ‘협동조합들이 자본주의 기업의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어 강한 지배력을 갖게 된다’는 조건의 달성을 어렵게 만든다. 자본주의와는 다른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제조직이 자본주의 기업과의 경쟁에서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더 큰 지배력을 갖게 된다는 상상은 좀처럼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질량의 증가가 운동력의 증가를 가져온다고 보는) 뉴턴 물리학에 근거하고 있는 우리의 과학적 인식체계에서는 그러하다.

2) 사회적경제와 국가권력의 관계

유럽의 역사에서 사회적경제의 부침(浮沈)은 국가 내지 지역별로 큰 편차와 다양한 경로를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치권력으로부터 매우 직접적이고 상당한 영향을 받아왔다. 국가권력이 협동조합이나 민간단체에 대해서 우호적인 정책과 제도를 실시한 경우 그런 조직들이 빠르게 확산 . 성장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운동 자체가 위축되거나 소멸해버린 예는 역사 속에 무수히 널려있다.

그리하여 사회적경제 부문과 국가 사이에는 때로는 긴장과 갈등이, 때로는 지나칠 정도의 보호와 지원이 교차했다. 그리고 양자 간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가는 국가권력이 사회적경제의 어떤 특성과 역할을 눈여겨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1848년 프랑스의 2월 혁명 후에 들어선 임시정부는 노동자협동조합(노협)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의결했다. 노협의 설립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를 만드는가 하면, 요새로 치면, 정부 관급공사의 우선계약권을 노협들에게 부여했다. 파격적인 지원책에 힘입어 순식간에 2백여 개로 늘어난 노동자협동조합은, 그러나 채10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문을 닫고 10여 개만이 남게 되었다(버챌, 2003: 43; 2012: 277)10).

한편,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국가 정책은 협동조합에 대한 온정적 보호주의였다. 이런 정책의 기조는 혁명 이전의 차르 정부부터 1920년대 소비에트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덕분에 협동조합의 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거래량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권위주의 권력이었던 차르 정부는 협동조합의 ‘순수한 경제활동’을 장려하는 대신 이념적 색채가 있는 ‘사회활동’을 봉쇄하고 억압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협동조합운동가들은 협동조합의 독자성을 선언하면서도 국고의 지원을 요청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러시아 혁명 이후 협동조합의 허약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김창진, 2008: 256-258). 프랑스 노협의 경우처럼 폭발적인 양적 증가가 질적 발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오늘날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노동자협동조합이 강세를 보이는 나라들에서 노협의 생존율이 높게 나타나는 데는 제도화된 법규의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기업육성법에 의한 정부의 지원이 있고부터 사회적기업의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물론 그 중에 자생력을 갖춘 튼실한 기업이 얼마나 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렇듯 사회적경제의 확산 및 발전이라는 문제는 국가권력의 우호적인 관심과 지원 없이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경제가 20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협동조합 연구가 페이(C.R. Fay)의 분석에 의하면 가장 결정적인 실패의 원인은 국가의 과도한 지원이었다.

국가권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 및 이념의 성격을 강하게 띠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러시아 차르 정부의 예에서 보듯이, 국가권력은 사회적경제를 순수한 경제조직 이상의 것으로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관련법들의 제정에 앞장섰던 정부 관료들의 생각 역시 한치도 다르지 않다. 사회적경제가 정치와 이념의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하는 순간, 국가권력과의 관계는 경직되고 갈등은 고조되게 되어 있다.

사회적경제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개혁에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비단 19세기 (개량적) 사회주의자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유럽의 좌파 정당과 사회운동 세력들은 협동조합이나 공제조합 같은 대중조직을 결성하는 데 특히 적극적이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최초의 협동조합연합체인 ‘레가코프’(Lega Nazionale delle Cooperative: Legacoop)는 좌파 및 노조운동 세력이 중심이 된 연합체였다. 하지만 이처럼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경제조직에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정파들의 이탈이 나타나게 된다. ‘레가코프’ 역시 공산당과의 파트너십에 불만을 가진 공화당 및 사민당 계열과, 가톨릭 계열의 협동조합들이 떨어져나가 각각 별도의 연합체를 결성하게 됨으로써 조직의 분리를 겪어야 했다11)(사회투자지원재단, 2012: 19). 사회운동가들은 사회적경제 조직이라는 대중적 기반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면서 그것을 타고 큰 변혁을 지향하는 가치관과 이념 또한 재생산되고 확산 되기를 기대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확산이 이데올로기의 장벽 앞에서 일정한 한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경제 운동은 종종 한 나라 안에서도 이념적 전통에 따라 진영을 달리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결국 가장 높은 차원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념적 가치를 스스로 벗어버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유럽연합이 사회적경제의 활성화와 지원을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회적경제가 만에 하나,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 만큼의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국가(혹은 정권)는 없는 듯하다.

이제 사회적경제 운동은 정치 또는 이념의 차원에서 중립적이거나 무색무취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캐머런이 이끄는 영국 보수-자민당 연립정부의 ‘빅소사이어티(Big Society)’ 프로젝트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동체의 조직화(community organizing)를 지원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5천여 명의 공동체 지도자를 양성하고 훈련시켜서 지역사회의 공동체가 확산되도록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노동자소유기업 등 제3섹터 시장을 육성하고 공공영역의 서비스를 제3섹터 시장으로 넘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여기에 소요되는 재정은 휴면예금을 기반으로 빅소사이어티 은행을 설립해서 충당하겠다고 한다(김홍수영, 2012). 한 마디로,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적경제 운동인 셈이다. 야당 등은 재원과 자원봉사 인력의 확보 방안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결국 정부예산을 축소하고 정부사업을 민영화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과연 이것이 보수당 정권이 취할 정책인가?’라며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할 정도로, 우파 정부가 사회적경제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것이다. 캐머런으로서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사회문제)만 잘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사회적경제가 좌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5장에서 설정했던 복지국가의 발전 요인에 관한 수식으로 돌아가보자. [복지국가의 발전 정도] = [사회권의 의식수준]+[산업화 수준]+[노동자의 조직률]+[좌파정당의 영향력]+[관료화 및 중앙집권화의 정도]+.. [사회적경제의 크기]…… 종속변수인 ‘복지국가의 발전 정도’를 국가에 의해 제도화된 사회연대의 수준이자 탈시장화의 정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사회적경제의 크기’ 즉, 사회적경제의 확산이 복지국가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까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사회적경제는 국가권력의 성격을 바꾸거나 변화를 선도하기보다는 역으로, 국가권력에 의해서 성장이 촉진되거나 위축되었던 예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위의 수식에서 ‘사회적경제의 크기’를 제외한 나머지 변인들을 보건대, 즉, ‘산업화 수준’ 이외의 변인들은 정치영역과 관련된 요인들이다. ‘사회권의 의식 수준’이란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 간의 모순을 인식하는 정도를 말하므로 결국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정치의식이라 할 수 있고, ‘관료화 및 중앙집권화의 정도’가 복지국가의 발전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 역시, 전문관료 집단과 정치권력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므로 정치권력의 헤게모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라는 경제요인은 오늘날 경제성장이 더 이상 어떤 정책적 의도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때, 현 시점의 우리나라 복지 발전을 논하는 데 유의미한 고려사항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하여 마침내 복지국가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한결같이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의 범주에 속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정치를 통과하지 않고 에둘러 가는 방식으로는 사회적 연대의 제도화 수준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3) 사회적경제와 민주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경제 조직은 그 구성원들이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생활의 장(場)으로서의 구실을 한다. 이제껏 아주 작은 단위에서조차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거나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사회적경제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자주적인 태도와 자치의 중요성을 서서히 체득해나갈 수 있다. 사실 오래 전부터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경제 조직은 구성원들의 삶의 질 향상, 소유권 변화의 수단 제공, 공동선을 위한 이윤 창출 등과 함께, ‘민주주의 실천의 확대’를 협동경제의 목적이자 조직의 존재 이유로 삼아 왔다(장원석.이지은, 2009:193; 파넬, 2012: 37). 특히 개발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권력의 중앙집권화와 경제의 중앙집중화에 익숙해져온 이 땅의 시민들로서는 자신들의 삶의 공간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주성을 실천하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회적경제의 담론에서는 사회적경제 조직이 민주적 운영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구성원들이 평등과 연대의 가치관을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밑으로부터의 민주복지 사회 건설운동의 역할을 한다”고 상정한다(곽창렬, 1994; 정은미, 2012에서 재인용).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에 맞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창출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확장된다”고 주장한다(정은미, 2012: 330).

역시 여기에서도 우리는 초기 협동조합운동의 선구자들이 품었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거대한 개혁의 꿈을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와 평등, 생명과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필부필녀들의 조직이 꾸준히 확산되어 마침내 이기적 소유와 경쟁의 가치체계가 약화되는 커다란 변화의 꿈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미시적 차원의 민주주의(즉, 생활영역에서의 인간관계에서 실현되는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거시적 민주주의 이를테면, 전체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연대의 정신에 입각한 공동체적 복지체제에 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룬 상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적경제의 원리적 신념들이 망각되거나 박제화 되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면서 확산되어 나간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6. 맺으면서

이제 우리는 사회적경제 운동의 가능성과 한계에 관해서 좀 더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적경제 운동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어떻게, 얼마만큼 해결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운동이 탈시장화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복지체계의 확장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서 정확히 따져보아야 한다.

유럽의회는 사회적경제 결의안을 통해서 사회적경제가 실업과 고용 불안, 사회적 배제를 시정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고, 우리나라 정부 역시 사회적기업육성법과 협동조합기본법 등의 제정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 서비스산업의 활성화 및 사회서비스 확충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는 간혹 사회적경제야말로 시장과 국가의 실패를 넘어서 양극화와 고용의 불안정을 치유하고 사회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라는 식의 담론을 낳기도 한다. 과연 사회적경제의 확대는 실업과 빈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자의 88%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생산성과 수익성의 측면에서 대기업 그룹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는 날로 심해지고 있으며, 산업간의 연쇄효과 역시 하락하는 추세에 있어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과 거래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불공정 거래와 착취에 시달리고, 노동자들의 몫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비정규직화가 관행처럼 퍼져 있다. 이 같은 산업구조와 편파적인 정책의 문제가 소득과 일자리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어떤 계급 내지 계층의 편을 드느냐에 관한 문제이고 (앞에서의 표현을 쓰자면) 거시적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최근 대선 국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같은 불평등의 시정을 위한 민주화의 의제는 언제나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전진하기 마련이다. 복지체계를 확장하고 복지국가를 수립하는 일 역시, 사회연대의 정신에 공감하는 국민 대중들이 어떠한 새로운 합의점을 만들어내느냐의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어떤 사회도 도달하지 못한 미래의 유토피아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체제가 실패한 곳, 그 무능을 드러낸 곳에서 새롭게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병권, 2011: 95).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은 정치의 문제’라고 정치환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정치가 중요하다한들 정치의 진보, 정치의 발전이 우리 운동의 의도적인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닐진대, 그렇다면 모든 문제의 해법을 정치로 귀결시키는 논리는 무의미하고 무책임할 뿐이다. 오히려 정치환원론이 허무한 것처럼, 사회적경제 환원론 역시 유익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사회적경제의 가치와 유의미성, 긍정적 효과를 논하는 많은 글들 속에서 간혹 한 귀퉁이에 작게 언급되고 있는 대목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사회적경제 조직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간접적인 것이며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편적 정책수단은 아니라’거나(Westlund, 2003: 180), ‘사회적경제가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의 임무가 실업이나 그 밖의 시장경제의 실패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Laville, 2003: 389)라는 등의 주장이다. 파넬(Parnell)은 가난의 원인들을 다양하게 제시하면서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협동조합과 상조조합들이 직접 가난의 이러한 원인들을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드물지만, 일단 조직을 만들면 조합원들에게 가난을 완화시켜주고 때가 되면 가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줄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파넬, 2012: 40-41)

애초에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또 철저히 지역에 뿌리내려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성과가 마침내 국가를 단위로 한 사회 전체의 탈시장화, 민주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는 거대담론에는 분명 논리의 비약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과학적 예측이 아니라 우리 운동의 철학적 신념과 목표의 표현인 한, 그것에 기꺼이 찬동한다. 사회운동에서 이론적 담론은 때로 우리의 나아 갈 방향을 일러주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경제 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맞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창출하는 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은 나름 소중하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사회적경제 운동이 그런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지에 관한 성찰이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합원들이 확산됨으로써 마침내 민주주의와 경제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조합원들을 그렇게 만드는 교육과 생활모임은 그런 목표를 향한 출발이자 요체이다. 만약 교육과 모임을 소홀히 하고 점포 거래의 비중을 높여가며 오로지 매출 규모와 조합원의 증가에만 골몰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가치를 거론한다면, 그것은 자기 조직을 치장하기 위한 화장술이거나 허장성세일 뿐이다. 협동조합이 성장함으로써 조합원의 의식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민 소비자(citizen-consumer)들이 주권자가 되고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의식하게 될수록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자마니.자마니, 2012: 181)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비록 멀지만 간절히 닿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다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합당한 실천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은 몇 가지 한계를 갖고 있다. 우선,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삼았지만 주로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또 사회적경제의 가능성과 한계가 균형을 이루기보다는 후자를 더 강조하는 듯이 기술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변명을 덧붙이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는 평등과 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밑으로부터의 정치적 논의 과정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한 논의의 장이 되었어야 할 정치 스펙트럼의 반쪽이 아예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복지국가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 한 채, 서구 복지국가들의 퇴조기에 발생하는 사회문제와 그 해법으로서의 사회적경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렇게 수입된 사회적경제는 처음부터 법과 제도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마치 생략된 역사적 과정을 일거에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나 프로그램처럼 선전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는 매뉴얼에 의해서 똑같은 성과가 복제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을 하는 사람에 의해서 저마다 다른 결과가 창조되는 과정이며 열정과 신념으로 추동되어야 하는 운동이다. 또한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새로운 경로의 정치 과정을 걸을지언정, 민초들의 참여 자체가 생략된 채 국가가 만든 제도에 의해서 열리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 있어서 과장된 사회적경제 환원론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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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호(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