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부양, 가정에서 사회 전체 확대 살아가는 보람 깨닫는 '노년' -일본 고령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2013. 10. 26. 00:13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노인 부양, 가정에서 사회 전체 확대 살아가는 보람 깨닫는 '노년'
"퇴직 후 지금까지 할 일 있기 때문"…자신들 "행복한 사람"이라 말해
2013년 10월 22일 (화) 임병식 기자 montlim@sjbnews.com
   
 
  ▲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시가지 전경  
 

일본 고령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일본의 협동조합 역사는 상당하다. 그들은 오랫동안 협동조합을 통해 가치를 실현하고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스스로 해결해 왔다.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극심한 실업난에 처했던 일본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주도로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그러나 70~80년대 경기 호황을 맞으면서 협동조합은 구시대 산물로 밀려났다. 그런 협동조합이 다시 일본 경제의 핵심 축으로 부상한 것은 90년대 이후 경제가 다시 불경기로 돌아서면서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협동조합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일본의 노동자협동조합와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그 중심에 있다. 특히 고령화 추세에 발맞춘 고령자협동조합은 주목된다. 우리사회 또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기에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의미있는 접근을 할 수 있다. 일본 또한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이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어느정도 틀을 갖췄다. 일본의 고령자협동조합이 제공하는 노인복지서비스는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시설을 운영하는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교하게 다듬는다면 우리사회가 당면한 노인복지서비스 해결은 물론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기대된다. 본지는 1부 전북협동조합 어디까지 왔나, 2부 협동조합의 선진지 캐나다 퀘벡을 가다에 이어 3부 일본협동조합에서 배운다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인천 국제공항을 이륙해 일본 나리타(成田) 공항까지는 비행시간만 정확히 2시간 걸린다. 그만큼 일본은 가깝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심리적 거리는 현해탄만큼이나 깊고 넓다.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돼 한국과 일본의 왕래는 이웃집 드나들듯 수월하다. 하지만 2시간 거리에 있는 일본보다 훨씬 먼 동남아 국가를 다녀오는 게 일상적이다.

도쿄외국어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고화민(33)씨 안내로 이케부쿠로로 이동했다. 이케부쿠로는 도쿄에서 신주쿠와 함께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번화가다. 일본 최대 협동조합인 노동자협동조합과 고령자생활협동조합 연합회 사무실이 모두 이케부쿠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연합회는 광문사(光文社) 빌딩 6층에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사업단도 함께하고 있기에 6층은 오가는 사람들로 온종일 분주하다. 일본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국제부에 근무하는 타카코 츠시야(土屋貴子) 양이 기자를 맞았다. 그녀가 건넨 명함은 협동조합의 의미를 간결하게 담고 있다. 세 사람이 손을 마주잡은 심볼마크와 도모다찌(친구)라는 푸른색 글귀는 협동을 형상화하고 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협동조합을 꾸린다는 의미다.

타카코 양의 안내로 고령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에 들어섰다. 연합회를 이끄는 실질적인 인물 두 분이 들어섰다. 다카미 마사루(高見優 65) 일본 고령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상임이사와 오카야수 키사부로(岡安喜三郞 65) 일본 고령자생활협동조합 간사 겸 일본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부이사장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취재기자를 진심으로 반겼다.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다카미 마사루 씨와 오카야수 키사부로 씨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진 두 사람은 올해 65세 동갑나기다. 하지만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정정하다. 비결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지금까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들이 말하는 할일이란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을 말한다. 퇴직후에도 일을 하고 있으니 자신들은 “행복한 사람”이다고 말한다. 이들은 20여년째 고령자생활협동조합운동을 함께하고 있다.

든든한 동지이자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 맞는 친구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인터뷰에 응했다. 먼저 오카야수씨가 고령자생활협동조합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일반 주식회사의 경우 일본에서 정년은 65세다. 하지만 60세부터 명예퇴직을 통해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러나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정년이 없다. 일반적으로 70세까지 일을 할 수 있으며 건강이 허락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오카야수 간사는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역시 한국처럼 65세 이상이면 받아주는 곳이 없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판국에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 노인을 받아줄 곳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일본 고령자생활협동조합에서는 70세까지 일을 할 수 있다. 고령자협동조합은 연금도 없기에 연금 부담 때문에 채용을 기피하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참고로 일본의 연금제도는 3단계로 나뉜다.

60세부터 받는 후생연금, 65세부터 받는 기초연금, 그리고 기업에서 지급하는 기업연금이다. 통상 일본의 근로자들은 60세부터 명예퇴직을 하며 65세부터는 연금 생활을 한다. 오카야수 간사는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의 설립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나이가 들었다고 그대로 누워 있지 않게 하며, 둘째 건강한 노년을 더욱 건강하게, 그리고 노인 혼자 외롭게 방치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일하면서 돈을 벌고,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는 복지, 그리고 음악과 취미활동을 통해 살아가는 보람을 깨닫는 노년을 위한 것이다.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2000년 시행된 간호보험법에 힘입어 노인 복지서비스 분야로 영역을 넓혀갔다. 정부 재정을 바탕으로 노인요양시설 등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며 정부와 지자체를 대신해 노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두고 전통적인 협동조합은 시류에 영합한 처사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하지만 긍정적 기능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일본 전체적으로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22개소가 운영 중이다. 조합원의 연령 제한은 없다. 고령자를 위한 사회를 지향하는 협동조합이기에 나이는 관계치 않는다. 그래서 40~50대도 조합원으로 활동한다. 먼저 조합원이 되려면 1인당 5,000엔의 출자금을 내야 하며 300명 이상이 되면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전국 22개 고령자생활협동조합 가운데 후쿠오카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이 5,123명으로 가장 많다.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개별적인 사업보다는 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공동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간호보험법이 시행됐다. 법 시행에 따라 부모를 부양하는 책임이 가정에서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확대됐다. 인식의 전환이다.

이전까지 지방자치회가 간호보험을 담당했으나 법 시행 이후 민간 생활협동조합이 위탁을 받아 간호보험 사업을 맡았다.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바로 고령자에 대한 복지서비스 제공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간병서비스, 재가복지서비스, 방문서비스 등 복지서비스 제공은 물론 노인요양시설을 직접 운영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들을 보살피고 있다.

노인복지서비스 제공과 함께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 젊은이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청소년 상담을 댓가로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기능을 맡는 셈이다. 이밖에 장애인복지 서비스, 병원 통근 서비스, 시장보기 서비스 등 노인층에서 필요로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노인들이 노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복지서비스 제공하는 셈이다. 결국 필요한 서비스(복지)를 제공하는 한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다카미 상임이사는 “21세기에는 행정이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를 민간이 주인공이 되어 지역문제를 해결한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인 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며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의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오늘날 자본주의는 자본주와 출자자, 경영자, 노동자가 각각 별개로 있다. 또 경영자의 힘이 강해지거나 투자가 안 되면 도산하는 일도 빈번하다. 이 경우 지역경제는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지역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 출자하고 일하는 협동조합은 한계에 직면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경제활동 방식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복지서비스가 아니라 함께 일하면서 자신도 이용자 입장에서 수요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통해 개선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각종 복지서비스를 위탁 받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고 피폐한 지역을 건강하게 바꾼다.

또 지역사회에서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존재에서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효과도 있다. 일방통행식 보살핌에서 벗어나 함께 지역사회를 만들고 지탱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일본의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법적으로 전체 고령 인구의 1% 조합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는 3,000만명으로 30만명이 목표다.

현재 고령자생활협동조합원은 4만명으로 목표를 훨씬 밑돈다. 다카미 상임이사는 “노인복지는 물론 장애인복지, 청소년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 증가에 힘입어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확산 추세에 있다. 이에 힘입어 조합원 증가도 꾸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의 확산은 경쟁 관계에 있는 민간기업에게는 눈엣가시다.

이들은 복지분야 사업에서 고령자생활협동조합과 종종 충돌하고 있다.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여기에 공동 대응하고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협동조합과 연대하고 있다. 공동사업 영역을 발굴하기 위해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이 가장 먼저 설립된 것은 1994년 미에켄(三重)이다.

고령자생활협동조합은 앞서 언급했듯이 돈보다는 보람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 비용과 서비스 사이의 균형은 어느 정도인지 시행착오를 통해 정부 보조금을 산정하고 종사자 급여 수준을 책정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통해 사회복지서비스를 해결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사회단체 도움으로 해결하는 데 그치고 있다. 사회복지업무를 민간에 언제까지 떠넘길 수는 없다. 협동조합 방식을 통한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일본의 사례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병식기자 montlim@hanmail.net 도쿄(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