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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중북 삼각관계와 러북관계--백준기(한신대 교수/코리아콘센서스 소장)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3. 10. 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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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중북 삼각관계와 러북관계

백준기(한신대 교수/코리아콘센서스 소장)  |  webmaster@selfg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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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24  23: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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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중북 삼각관계와 러북관계 

                                              백준기(한신대 교수/코리아콘센서스 소장)



1. 서론: ‘위협균형(balance against threats)’과 동맹

소련의 와해와 냉전의 종식, 그리고 이에 따른 양극체제의 해체는, 동맹의 대상인 공동의 적이 사라졌다는 기능적 측면에서나 동맹이 작동하는 국제체제의 근본적 변동이라는 구조적 측면에서 그리고 과거 동맹의 역사에 천착한 경험적 측면에서, ‘동맹의 쇠퇴’나 ‘동맹의 구조적 재편’을 초래할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ATO의 유지와 확장, 미국의 아시아 동맹네트워크의 강화, 그리고 본 연구의 주제인 러-북-중 삼각관계의 유지 복원 등에서 냉전체제의 동맹이 탈 냉전기에도 내구력을 지니고 있다는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동맹들을 지속시키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왜 이들은 동맹하였나?’ 라는 ‘동맹의 기원’에 대한 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맹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선행되는 질문은 ‘왜 국가들은 동맹을 형성하는가?’이다. 러시아와 중국,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북한과 중국 간의 양자‘동맹’이 삼자관계에서 작동하는 메카니즘과 성격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수립하는 작업 또한 ‘왜 삼국은 각각 동맹을 형성하였는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월트(Stephen Walt)가 주장하였듯이, ‘동맹의 기원(원인과 동기)을 이해하는데 실패하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불전쟁(1870-1871)’ 개전직전에 프랑스가 판단한 동맹형성에 대한 오산은 프랑스를 파멸로 이끌었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숙적인 프로이센에 대항하여 자국에 합세(동맹)할 것으로 단정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중립을 유지하였고 프랑스는 패전하였다. 독일 또한 ‘러불동맹(1895)’과 ‘영러 앙땅뜨(1907)’, 그리고 이의 결과인 영-불-러 간의 ‘삼국협상(Triple Entente)’체제의 형성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함으로써 재앙적 결과(1차 세계 대전의 패배)를 초래하였다.

더 나아가, 와이츠만(Patricia A. Weitsman)의 주장처럼, 동맹의 원인과 동기를 실현하기위한 동맹공약(alliance commitments)에 대해 오판하는 것 또한 재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갈등적 현안이 발생했을 경우 아측의 동맹국뿐 아니라 적대 동맹국의 약속이행 정도에 대해 오산—분쟁 시 개입여부에 대한 오산—하면 국가안보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맹의 기원’과 관련되어있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이들 동맹이 국제질서의 구조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형되고 지금까지 유지되었는지에 대한 문제해결의 입구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월트는 ‘위협균형(balance of threat’)적 측면을 강조하여 동맹형성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힘에 대한 균형’이라는 전통주의적 입장에 대해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동맹의 형성과 관련하여 세 가지 원인(causes)—‘균형/편승’, ‘이념’, ‘원조’—을 설정하고 동맹형성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우세한지에 대해 다음의 논점을 제시하였다:1)국가들은 ‘힘에 대한 균형(to balance against power alone)’ 보다는 ‘위협에 대한 균형(to balance against threats)’을 위해 동맹을 형성한다; 2)이념은 ‘균형하기balancing)’ 보다 동맹(제휴)의 동기로서 덜 위력적이다; 3)‘원조’나 ‘정치적 침투(political penetration)는 저절로 동맹(제휴)의 강력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왜 국가들은 동맹하는가?’하는 질문에 ‘힘의 균형을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것은 간명해 보이지만, 풍부한 설명력을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 ‘능력의 분포(distribution of power capabilities)’ 개념을 중심기반으로 하여 무정부적 국제체제에서 ‘안보극대화의 수단(security-maximizing tool)’ 또는 ‘힘의 극대화 수단(power-maximizing tool)’으로 만 동맹을 위치지우는 것은 동맹의 다양한 동기와 행위들—예를 들어, 위협과의 타협, 위험분산이나 회피, 갈등의 예방, 적대동맹의 약화 및 봉쇄 등—에 대한 적절한 해명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러시아, 중국, 북한 간의 동맹(또는 제휴alignment)의 이유는, 특히 현재적 조건에서 볼 때, ‘힘의 극대화’라기 보다는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공식적으로는 ‘다극체제의 형성’이라는 ‘능력의 분포’에 입각한 전통적 균형담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동맹정치의 지속 또는 복원의 본질적 동기는 다극체제의 형성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외부적 위협(external threat)에 대한 균형’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1990년대 중반이래로 중국과 러시아가 동맹관계를 복원 및 강화한 이유는 '힘의 극대화'을 추구하거나 '미국에 대한 대항'을 목적으로 한 세력균형을 위해서 라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외부적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만약 '힘의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러시아나 중국은 미국에 편승하는 편이 유리했을 것이고 이의 결과는 순수한 형태(ideal type)의 일극체제의 영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국제질서하에서 동맹체제가 형성된 이래로 이러한 현상은 발생한 적이 없다. 또한 ‘떠오르는 강국에 대항하는 세력균형’이라는 전통적 현실주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는 떠오르는 강국인 중국과 동맹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대항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중국과의 동맹을 선택하였다.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동맹행위(alliance behavior)는 ‘균형’과 ‘편승’으로 구분된다. 국가행위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경우 ‘균형’을 선택할 것인지 ‘편승’을 선택할 것인지는 위협의 ‘수준’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균형행위’의 경우 지배적인 위협에 대항하여 좀 더 약한 국가와 제휴하려 하고, ‘편승행위’의 경우 위협의 원천(통상적으로 가장 강한 국가 또는 라이벌)과의 동맹을 추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월트는 이러한 위협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 ‘총합국력(aggregate power)’, ‘지리적 인접성(geographic proximaty)’, ‘공격능력(offensive power)’, ‘공격의도(aggressive intention)’ 등을 선정하였는데 이러한 요인들에 대해 강대국과 약소국이 반응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고 평가하였다.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동맹은 일반적으로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한다. 로드스타인(Robert L. Rothstein)에 의하면, 약소국들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동맹과 관련하여 강대국과 비교할 때 대부분의 약소국들이 유사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은 위협이나 안보딜레머의 해결책이 주로 ‘외부적 원천’으로부터 도출된다는 것에 기인한다. 약소국이 위협에 직면하여 생존이라는 국가목표를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군사적)원조가 필수적인데, 이 외부원조는 속성상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약소국은 강대국에 비해 현저히 한정된 정책수단을 지니고 있고 그 선택범위 역시 제한됨으로 인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단지 ‘주변적인 통제력(peripheral control)’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위협에 대한 반응 또한 강대국과 약소국은 상이하다. 동일한 위협에 대해 약소국은 강대국보다 현저히 위협적인 것으로 반응하며, 강대국의 위협은 약소국에게 생존에 대한 전면적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

동맹에 대한 정치적 측면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은 상이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 강대국과 동맹을 체결하려는 약소국의 의도는 다른 (위협적인)강대국을 억지하거나 내부의 안정—정권 또는 체제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비해, 강대국은 외부의 위협(여타 강대국)에 대한 반응 뿐 아니라 약소국이 특정한 행위—예를 들어,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에서 약소국과 동맹을 추구하기도 한다. 와이츠만은 이러한 동기에 의한 ‘동맹행위유형’을 ‘결박(묶어두기tethering)’이라는 용어를 통해 분석한 바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위협균형이론을 토대로 월트의 ‘균형’과 ‘편승’에 대한 그의 가설과 위협요인들을 종합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균형행위’와 관련하여, ‘편승보다는 균형이 일반적인 현상’이고 ‘편승’은 ‘특정시기’와 ‘특정조건’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2)더 강한 국가일수록 ‘균형’하려는 경향이 있다. 약한 국가들은 다른 약한 국가들에 대항하여 ‘균형’할 것이지만 강대국들에 의해 위협받을 경우 이에 ‘편승’할 가능성이 있다. 3)동맹국들의 지원 개연성이 높을수록 ‘균형’의 경향 또한 커질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동맹의 지원이 확실할 때, ‘무임승차’나 ‘책임전가(buck-passing)’ 경향 또한 증가할 것이다. 4)(위협적인)강력한 국가가 인접해 있을수록 인접 국가들은 이에 대항하여 제휴하는 경향이 있다. 5)한 국가가 불변적인 공격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인식될 경우, 다른 국가들은 이에 대항하여 동맹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상에서 논의한 동맹형성의 원인과 동기에 따라 상이한 유형의 동맹행위가 발생한다. 본 연구에서는 위협에 대한 반응유형에 대해 ‘균형’과 ‘편승’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와이츠만의 ‘위험분산/회피(hedging)’과 ‘결박(묶어두기,tethering)’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분석할 것이다.

2. 러북관계의 특성: ‘균형(balancing)’과 ‘묶어두기(tethering)’

러시아와 북한 간의 전략적 제휴(strategic alignment)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동맹의 기원과 동기에 관한 질문—북한과 러시아는 ‘왜 동맹(제휴)하는가’—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1장에서 동맹이론에 입각해 러시아, 중국, 북한 사이의 동맹—또는 전략적 ‘제휴’—관계에 대해 살펴본바와 같이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적 제휴의 이유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균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월트나 로드스타인의 평가를 수용하면, 소련과 같은 초강대국의 경우에는 지구적 차원의 극체제(양극체제)에서 ‘힘의 분포(distribution of power capability)’와 ‘힘에 대한 균형(balancing against power alone)’이라는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데 비해, 탈 냉전기 러시아의 동맹변환(alliance transformation)전략은 초강대국(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국제적 지위나 국가능력을 감안하여 ‘위협균형’적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탈냉전 초기 러시아 옐친정부는 친서구 대서양주의에 입각하여 미국이 제안한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PfP: Partmership for Peace, 1994)—미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수용하였으나, 1990년대 중반 NATO의 확장을 계기로 유라시아주의에 입각한 ‘동방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옐친정부가 미국과의 동반자관계를 수립한 동기는 ‘세력균형’이라기보다는 탈 냉전기 새롭게 형성되고 있던 ‘글로벌콘도미니엄의 공동운영’이라는 전략적 기대가 작용한 ‘편승’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옐친정부의 ‘평화적 동반자’에 대한 기대가 ‘장미 빛 환상’으로 드러나면서 러시아는 동맹변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옐친정부는 유럽에서 ‘균형’ 파트너—‘유럽주의’에 이해관계를 지닌 프랑스가 주요 대상—를 모색하였으나 결실을 거두지 못함에 따라 아시아로 전략적 관심을 전환하여 주요 파트너로서 중국과 인도, 그리고 하위 파트너로서 북한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맹변환전략의 주요한 배경에는 ‘NATO의 확장’, 체제 이행의 불안정성과 국제 지위의 하락 등에서 연유한 국가 안정성의 저하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NATO의 확장’은 정책결정자 및 정치엘리트들에게 러시아 국가안보의 핵심적 위협요인으로 판단되었다. 만약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솔선해체한 러시아가 희망한 대로 NATO의 후속적 해체 또는 러시아의 NATO 가입이 성사되었다면 러시아의 동맹전략은 일정기간 미국의 전략범위내에 제약되어 제한된 범위의 상대적 자율성(편승) 정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를 배제한 NATO의 확장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면서, 옐친정부가 시도한 외부의 ‘위협에 대한 균형’ 모색은 사회주의 구동맹국들과의 관계복원으로 귀결되었다.

북한 또한 탈 냉전기 국제질서의 전환과정에서 동맹변환을 경험하게 되었다. 국가능력의 제한성에 비추어 볼 때, 약소국의 경우처럼 북한 역시 ‘세력균형’에 있어서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냉전해체라는 세계질서의 전환과정에서 양극체제하의 세력균형과 동맹체제가 ‘파국적’으로—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와해됨으로 인해 북한의 대내외적 안보 불안정성이 현저해 졌다. 북한 스스로가 미국 주도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민주주의 확산에 참여할 의사와 정권변동(regime change)을 수행할 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에서 동맹체제의 와해는 그 자체로 북한의 안보적 불확실성을 높이는 위협요인으로 평가되었다. 더 나아가 동맹국이던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고 러시아와 북한과의 동맹관계가 실질적으로 해체됨에 따라 북한은 동북아에서 동맹 비대칭성이 고조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만약 당시에 북한 지도부가 미국의 전략을 수용하거나 중국, 러시아와 유사한 체제이행 경로—예를 들어, 미국에의 ‘편승’—를 선택하였다면 현재와는 다른 형태의 외부환경—탈냉전적 동북아 질서와 동맹재편(변환)—이 조성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북-중-소 동맹체제가 불확실하고 약화되는 상황에서 소련과 중국이 한국을 교차승인한 것에 비해, 한-미-일 동맹체제가 유지되는 환경에서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교차승인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러한 동북아 동맹구조의 비대칭적 재편과 더불어, 체제이행이 정권의 구조적 변동(정권붕괴)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고조됨에 따라 북한지도부는 ‘편승’이 아닌 ‘위협균형’을 추구하였고 이로 인해 동북아 국제관계는 매우 불확실성이 높은 경로로 진입하게 되었다.

1장에서 언급하였듯이, 약소국들이 유사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은 위협이나 안보딜레머의 해결책이 주로 ‘외부적 원천’으로부터 도출된다는 것에 기인하는데 탈냉전 초기 북한의 전략행위 패턴에서도 이와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약소국이 ‘위협’에 직면하여 생존이라는 국가목표를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군사적)원조가 필수적이다. 이 외부원조는 속성상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탈냉전 전환기에 북한에게는 이 외부원조의 불확실성이 현실에서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외부원조자체가 물리적으로 차단되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약소국은 ‘주변적인 통제력(peripheral control)’만 지닌 한계로 인해 동일한 위협에 대해 강대국보다 현저히 위협적인 것으로 반응하며, 강대국의 위협은 약소국에게 생존에 대한 전면적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재론하면, 북한의 행위패턴을 분석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이 핵무장을 하려는 시도는—결과적으로 북한의 선택이 정책결정에서 매우 위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확실성’과 ‘비대칭성’을 상쇄하기 위한 위협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강대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판단하는 약소국에게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특정정책은 상대강대국에게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동북아 동맹구조의 비대칭적 재편이라는 구조적 제약하에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개발이라는 비평화, 비제도적인 선택하였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동맹전환전략과의 연계 하에 북-러 관계가 복원되었다.

물론 이러한 정책결정과정에서 북한에게 미국과의 ‘편승’이라는 전략적 옵션이 여전히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편승’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편승비용은 때때로 정권변동이나 체제이행과 같은 지배 엘리트 블록의 붕괴나 교체를 수반할 수도 있지만, 중동을 비롯한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원조에서 보여 지듯이, 지배 엘리트에 대한 묵인과 승인이라는 편승에 대한 반대급부(편승이익)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러한 편승비용(편승이익)은 일반적으로 상호적일 때 효율적인 관계(동맹/제휴의 지속성)가 수립될 수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적 제휴관계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동맹(제휴)의 일반적인 속성을 반영하여,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한다. 먼저, 안보 딜레머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외부적 원천’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는 점이다. 냉전시기 북한의 경우, 안보 딜레머의 주요 해결책은 소련으로부터의 군사원조였다. 이러한 ‘외부적 원천’에 대한 의존성을 축소하기 위한 방책은 ‘자주국방’의 형태로 표출되곤 하는데, 1960년대부터 북한이 수행한 ‘4대군사노선(1962)’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동맹의 ‘자산특수성’—‘조소동맹’은 한미동맹에 비해 자산특수성이 현저히 떨어지긴 하지만—효과에 따라 북한식 ‘자주국방’은 동맹인 소련의 군사전략범위내로 제약될 수밖에 없었고 북한지도부가 판단하기에 외부적 의존성을 획기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핵무장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동맹에 대한 정치적 측면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은 상이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전략적 제휴관계를 회복한 북한의 의도는 ‘다른 강대국’의 위협에 대해 균형(미국에 대한 위협균형)하거나 영향력을 중화—중국에 대해—시키기 위해서 뿐 아니라 내부의 안정(정권 및 체제생존)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비해 러시아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반응—NATO의 확장, 미국의 ‘일방주의’ 등— 뿐 아니라, 북한의 위험한 행동—핵 무장이나 군사적 행동—을 예방하거나 억지하기 위해서 북한과의 전략적 제휴관계를 복원하였다.

셋째, 비대칭 동맹은 ‘힘과 이해관계의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로 인해 강대국과 약소국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안보와 자율성의 교환거래(secury-autonomy trade-off)’가 발생한다. 특히, 초강대국과의 동맹은 약소국에게 내정간섭이나 위성국화의 위험성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약소국은 통상적으로 다른 강대국과의 중복 동맹을 통해 비대칭성의 위험성을 완화시키려 할 수 있다. 1961년 북한이 소련, 중국과 동시에 동맹을 체결한 것, 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2000) 것은 ‘이중동맹(dual alliance)’을 통해 ‘안보와 자율성의 교환(secury-autonomy trade-off)’을 최소화—북한의 자율성 양도(concession)를 최소화—하려는 재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냉전시기 중소분쟁이라는 동맹의 예외적 현상이 이러한 ‘교환거래’를 최소화하여 북한의 동맹 자율성을 높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냉전 해체이후 중러의 전략적 밀월(준동맹)이 최고조로 유지되는 조건에서도 북한의 ‘상대적 자율성’은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이들 간의 동맹 메카니즘내에서 여전히 ‘이중동맹’의 효과가 직간접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넷째, ‘지원공약(power commitment)’면에서의 비대칭성이다. 약소국은 동맹에 자신의 총력을 투여하면서 모든 위협을 커버하는데 충분한 동맹약속을 추구해야만 한다. 이에 비해, 강대국은 동맹공약으로부터 자유로운 ‘비공약 여력(noncommitted power)’을 보유하려는, 동맹에 관한 협소한 관점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복원된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전통적 의미의 (군사)동맹은 아니지만, ‘신조약(2000)’에 포함되어 있는 안보와 정치경제분야의 조항들을 고려하면 상호 간에 전략적 이익의 공유와 최소한의 안보공약—‘군사적 위기시 상호 긴밀히 상의(consultation)’—을 전제로 한 ‘전략적 특수관계’인 것은 분명하다. 약소국인 북한은 이슈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지만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최소의 힘만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소국인 북한은 동맹국으로서의 절대적(고유한) 권리를 주장하며 이슈에 대한 최대한의 협의를 요구하지만 강대국인 러시아는 이슈자체 보다는 문제해결에 공헌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에 대해 협의하기를 선호함으로써 상호간에 ‘관심과 능력’상의 충돌이 발생하였다. 1995-1999년 사이, 북한과 러시아 간에 진행된 기존의 동맹조약에 대한 수정 및 조정과정에는 이러한 ‘관심과 능력’ 간의 갭에 의한 갈등이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기존의 동맹공약유지를 고수하면서 비대칭적인 동북아 탈냉전 구조와 핵 프로그램 등으로부터 연유된 외부위협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동맹약속—예를 들어 군사개입조항의 유지—을 러시아에게 확인하려한데 비해, 러시아는 외부의 위협적인 이슈에 대응할 만한 북한의 능력과 북러동맹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동맹조약을 수정하기를 원하였고 ‘군사개입조항’을 폐기하기로 결정하였다. 제한된 능력을 지녔지만 동맹유지 또는 복원을 전제로 총력적인 책무(total commitment)를 떠맡을 의도가 있었던 북한은 ‘전략적 관심과 능력의 갭’을 최대한 축소하려 하였지만 러시아는 자신의 여타 이익(동맹외적 이익)에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갭을 줄이려 하였던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것을 토대로 하면, 러시아와 북한 간의 전략적 관계는 ‘위협균형’과 관계의 ‘비대칭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러-북 간의 전략적 제휴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위협균형’은 통상적으로 ‘군사적 수단’과 ‘정치적 수단’을 활용한 균형으로 이루어지는데 북러 전략제휴는 후자의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신조약 체결 전까지 북한은 기존의 동맹조약을 고수하면서 군사적 수단에 의한 균형을 추구했으나 러시아의 동맹수정으로 인해 군사적 수단에 의한 균형가능성은 매우 협소해졌다. 따라서 러시아는 해당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보(회복)하기 위한 이미지 제고에 주력하는 동시에 전략적 경쟁국가의 이미지를 약화 또는 악화시키는 방법으로 북한에 대한 외교적 지원에 치중하였다. 6자회담과정에서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하고 있는 ‘정직한 중개인(honest borker)’의 역할은 이러한 이미지 조성(image manipulation)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과정에서 제재수위를 조절하거나 방코델타(BDA)의 북한계좌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등이 외교적 지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음으로, ‘위협균형’의 형성에 있어서 주요 요인으로 거론되는 ‘공격능력과 공격의도’는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으나, (잠재적)위협국의 ‘공격능력과 공격의도’에 대한 인식수준은 북러 전략적 제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북한이 미국의 ‘공격능력과 공격의도’를 실재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미국이 동북아 역내에 실재한다는 전략배치조건은 북한으로 하여금 러시아에 대해 전략적 제휴를 추구하게 하는 유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도 NATO의 확장과 이에 연계된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MD)에 대해 미국의 공격능력 상승—또는, 러시아의 군사역량의 상대적 하락—으로 판단하여, 전략적 열세를 만회하는 ‘위협균형’의 수단으로 중국, 북한과의 전략적 제휴에 주목하였다. ‘신조약’체결을 시작으로, 북한의 동맹복원 시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2000년-2002년 세 차례의 북러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요청한 ‘군사지원공약(power commitment)’—군사력지원이라기보다 군사장비 및 기술공여라는 자산부문이긴 하지만—은 외부의 ‘공격능력과 의도’를 실재적인 것으로 판단한 결과이다. 그러나 푸틴정부는 북한 측의 군사분야 지원요청에 대해 유보적으로 반응함으로써 북러 전략적 제휴가 군사동맹으로 자동복원되는 것을 회피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북한과 러시아 간에 외부위협 및 ‘공격능력과 공격의도’에 대한 인식의 비대칭성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총합국력과 지리적 인접성의 효과라는 측면인데, 강대국인 러시아는 총합국력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강대국인 미국—경우에 따라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역내에서 북한과 전략적 제휴를 추구한다. 이 경우, 강대국은 대립하는 강대국의 동맹국을 반대하거나, 상대 강대국의 동맹국을 포섭하거나 유인함으로써 경쟁 강대국을 견제하는 방식을 구사하기도 하는데, 러시아의 남북한 등거리외교—애초의 목적은 그렇지 않았을 지라도—가 이러한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2001년 2월에 개최된 한러정상회담에서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제한조약의 보존’에 양국이 합의한 듯한 공동보도문을 발표함으로써 부시행정부의 반발을 초래한 것이 하나의 사례로 거론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지역국가인 북한은 다른 인접 지역국가들—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의 ‘위협’에 우선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강대국(러시아)과의 제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냉전기에 북한이 중국, 소련과 이중동맹을 체결(1961)한 것은 지역내 존재하는 한-미-일 간의 양자동맹을 배경으로 남한과의 군사적 대립에 대한 ‘위협균형’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탈냉전 이행기(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동북아 국제관계의 재편에 있어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고 저항한 것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위협이아니라, 한소, 한중 수교를 통한 인접국가(한국)의 전략적 상승이었다. 교차승인이 무산된 역내 국제질서의 비대칭적 재편의 조건에서 북한은 인접국가(한국)의 전략지위의 상승을 ‘위협’요인으로 인식하여 러시아와의 관계회복을 통한 전략적 대응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탈 냉전기, 북한의 핵프로그램으로 인해 동북아 역내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기존의 남북 간의 대립갈등에 북미 간의 직접적인 갈등이 중첩되어 지리적 인접성의 효과가 변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넷째, 러시아와 북한(또는 북한과 소련)과의 전략적 제휴에 있어서 ‘이념적 요인’의 역할을 과장할 필요는 없으며 ‘이념’은 ‘위협균형’보다 부차적일 수 있다. 특정조건에서 이념이 통합보다는 분열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이념이 지나치게 작동할 때 협력보다는 갈등이 촉진될 가능성이 있다. 냉전기 동맹이던 중국과 소련 간의 이념분쟁이 양국의 무력분쟁으로 외화된 경우와 동맹인 중국과 북한 간에 사회주의 체제이행방식(중국식 개혁개방)에 대해 합의요인뿐 아니라 갈등요인이 중첩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물론 러-북 정상회담(2001)의 주요 결과물인 ‘모스크바 선언’에서 ‘강대국 러시아’론과 ‘강성대국’론 간의 공통성이 강조된 것은 사실이지만 ‘강대국 러시아’나 ‘강성대국’은 ‘이념’적 정체성의 표현태라기 보다는 전략노선(발전노선)이나 정치적 구호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섯째, ‘원조’는 자동적으로 ‘동맹’의 이유가 되지 못하며 ‘원조’를 통해 강대국이 동맹 상대국(약소국)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도 제한 적일 수 있다. 러시아와 북한관계 또한 그와 유사하다. 북중동맹의 경우에도, 중국의 적지 않은 대북원조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인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현재 이집트 사태에서 미국이 이집트 에 대한 막대한 군사원조—한해 14억 8000만 달러(2013년)중 군사원조비중은 약13억 달러—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군부정권이 미국의 민주주의 프로그램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사례가 될 수 있다. 북러관계의 경우, 북한채무 탕감(110억 달러 중 90%), 나진-핫산 간 철도와 나진항 개보수, 북한 정유시설(승리화학공장) 등 산업시설의 개보수, 일부의 식량지원 등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해결에 있어서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유에서 러시아는 원조를 통한 영향력 확보 및 전략적 제휴 강화보다는 북한의 비정상적인 ‘원조경제’를 시장경제에 연계하여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다. 현재 러시아와 북한 간에는 정치적 기대격차—예를 들어, 핵 프로그램과 체제이행방식—가 존재하는 데, 강대국의 원조의 수준은 제휴의 다른 동기들—공동의 위협이나 이념적 친화성 등—이 현존할 때 더 높아지지만 정치적 기대격차가 발생하면 통상적으로 효과적인 동맹을 형성하기 어렵다. 또한 원조의 정치적 영향력은 피원조국에게 대안(다른 국가의 원조 가능성)이 존재할 경우 감소한다는 점에서 중국이라는 제1의 원조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이지만, 반대의 경우에, 부연하면 러시아가 북한원조에 대안적인 역할을 할 경우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동맹의 역설(alliance paradox)’이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적 제휴관계에도 작용할 수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고조된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이 한미동맹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 반면에, 북중동맹의 결속강화를 외부적으로 강제한 측면 또한 존재한다. 러시아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심각한 비판을 제기하였으나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중립을 취하여 결과적으로 북한에 유리한 입장에 선 바 있다. 천안함을 둘러싼 러시아와 중국의 이러한 친북 경향적 태도는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하에서 한미동맹이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하여 ‘동맹정치’가 ‘한반도 정치’와 ‘동북아 정치’를 압도할 수 있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포괄적 동맹’이라는 한미동맹의 결속력과 효율성이 상승할수록, 동맹 밖의 국가들—또는 대항동맹국가들—에게는 더 위협적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박근혜정부가 시도하는 ‘중국 중시 외교’는 중국의 우려를 완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중동맹’의 이완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새로운 벡터외교는 북러관계 또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강대국과 지역국가들은 서로 다른 ‘위협반응’을 보인다. 지역국가인 북한은 강대국인 러시아가 추구하는 지구적 차원의 ‘균형’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자신에 더 도움이 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국가로서 북한은 강대국의 행위는 다른 강대국이 견제할 것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은 ‘강대국들은 상호 경쟁적인 이해관계에 있으므로 동맹 강대국은 상대 강대국으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 판단하는 전략적 모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결과가 UN 안보리 제재 결의안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명백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 MD계획, NATO확장문제, ‘아시아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Asia Shift)’ 등 지구적 차원의 균형 문제로 미국과 전략적 경쟁(또는 갈등)관계에 있음으로써 자신의 모험적인 행동을 묵인하거나 최소한 외교적 조정을 통한 타협을 제시할 것이라 북한이 기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스스로 주장하듯이 북한문제 있어서 ‘정직한 중개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북한의 기대—실제로 북한은 러시아에게 그 이상의 지원(동맹지원)을 기대하지만—에 부응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탈 냉전기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적 제휴 또는 동맹 재조정은 ‘위협균형’과 ‘묶어두기/결박(tethering)’이라는 행위유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위협인식의 수준과 해소방법에는 차이가 있으나, 러시아와 북한은 미국요인을 ‘외부위협’으로 인식하여 상호 전략적 제휴를 통한 ‘균형’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균형’ 더불어, 러시아는 북한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북한과의 전략적 제휴를 ‘묶어두기’ 효과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 또한 러시아가 자신의 적대국인 미국과 전략적 제휴를 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제휴(alignment)’를 통해 러시아를 자신의 편에 ‘결박’해 놓으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물론, ‘묶어두기’는 비대칭 동맹관계에서 통상적으로 동원가능한 정책자원이 우세한 강대국이 약소국에 행사하는 행위유형이지만 특정조건에서 약소국이 행사하기도 한다. 북한의 경우, 미-러간의 전략경쟁의 조건에서 핵문제와 극동개발문제 등을 러시아를 묶어두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 간에는 동맹 응집수준이 높은 ‘균형’과 매우 낮은 ‘결박’이 중첩되어 있는 관계로 양자관계의 응집력은 평범(modest)하거나 냉전기 수준의 상호응집력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동맹동기의 가능한 쌍(dyadic alliance motivation)’의 분류에서 ‘균형-결박’의 쌍은 일반적으로 ‘가변적이고 유연한 공약수준(variable commitment level)’과 ‘견딜만한 내부위협(moderate internal threat)’을 특징으로 하며 응집력은 보통이다.


3. 삼각관계와 러북관계: ‘비대칭 부등변 삼각형’

러-중-북 삼각관계는 ‘비대칭 부등변 삼각형’으로 비유될 수 있는데 러-중관계가 삼각형의 견고한 토대를 이루는 밑변이라면 러북관계는 중북관계에 비해 짧고 약세(弱細)한 대변을 이루고 있다. 러북관계는 중러관계나 북중관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弱勢)이지만 양자관계의 합이 삼각관계로 구조화되는데 있어서 연결 축 역할을 하고 있다. 러중북 삼각관계는 러북관계의 복원을 통해 최종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러한 삼각관계와 러북관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대외전략 전환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가 중국 및 북한과의 관계복원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미국과의 전략적 갈등이 핵심요인으로 작용하였다. NATO의 확장, 코소보사태, 이라크전쟁, 동유럽MD 등 국제적인 이슈에서 미국과 갈등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북러관계는 호전되거나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러북관계는 미러관계의 전략적 경쟁에 밀접히 연계되어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러북관계에 대해 미국요인이 미친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러 간의 전략경쟁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과 대응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NATO의 확장정책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러시아의 전반적인 여론은 나토의 동진에 대한 우려와 비판입장으로 수렴되었다. 1995년 12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공산당과 우파 민족주의계열 정당 등 야당이 NATO의 동진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1996년 3월 대선을 앞둔 옐친 대통령 또한 NATO의 팽창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옐친은 NATO의 확장정책 뿐 아니라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재편에 대해 이미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는 냉소적인 표현으로 경계한 바 있다. NATO의 확장은 러시아 정치엘리트들에게 있어서 ‘서구주의의 배신’으로 해석되었다. 대선을 목전에 둔 1996년 2월, 연방의회 연두연설에서 옐친은 NATO의 팽창을 구 소비에트 공간(CIS)에서의 러시아의 ‘정당한 이익(legitimate interests)’을 침해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서방의 정치엘리트들은 NATO의 확대는 민주주의 체제의 확장(민주주의 확산전략)을 의미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이행중인 러시아가 우려할 사안이 아니라는 논리로 러시아의 전략적 우려를 평가 절하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정치엘리트들의 NATO 팽창에 대한 위협인식은 서구 정치엘리트들의 판단처럼 과잉반응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현실주의적 인식토대에 입각해 있다. 19세기 이래로 러시아는 두 차례에 걸쳐 유럽으로부터 전면적인 침입(나폴레옹 전쟁과 히틀러의 침공)을 경험―러시아 역사에 조국(방어)전쟁과 대조국전쟁을 기술됨―하였다. 또한 볼셰비키 혁명직후에도 3년여에 걸친 내전기간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강대국들의 군사개입을 경험하였고, 냉전기간 내내 미국주도의 군사적 봉쇄에 직면했던 러시아로서는 NATO가입이 불허된 상태에서 NATO의 확장이 강행되는 것이 미국/서유럽에 의한 제2의 러시아 봉쇄전략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서구주의자인 코지레프가 경질되고 프리마코프의 외교팀이 등장(1996년 1월)하면서 러시아 대외정책은 유라시아적 전환을 시작하였고, 유럽에서의 전략적 열세를 아시아에서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전략적 주요 파트너는 중국과 인도가 유력시되었다. 이로부터 옐친정부는 러시아-중국-인도를 잇는 전략적 삼각체제 구축에 매진하게 되었고 북한과의 관계복원이 이에 연계되었다. 1996년 4월과 1997년 4월 두 차례의 연이은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수립, ‘다국체제선언’ 등 미국을 전략적으로 견제하는데 인식을 공유함으로써 1960년대 중소분쟁 이래 소원해진 양자관계를 복원하였다. 러시아와 중국의 양자관계의 복원에 러시아와 북한과의 관계복원이 연계되면서 러시아, 중국, 북한 간의 삼각관계가 재가동되기 시작하였다. 1996년은 삼자관계의 복원이 시도된 해라고 할 수 있다. 이그나텐코(Vitali Ignatenko) 부통령과 셀레즈네프(Gennadii Seleznev) 하원의장 등을 포함한 러시아 정부 대표단의 평양방문과 북러 외교장관 회담 등에서 합의된 군사, 과학 기술, 외교 분야의 교류협정체결, 그리고 북러 신조약 체결에 대한 협상 시작 등은 기존의 북러 양자관계의 재개 뿐 아니라 기존의 북중 간의 우호조약과 더불어 삼각관계의 복원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방장관이 베이징회담(1998년 10월)을 통해 ‘나토의 동진과 코소보문제의 무력해결에 반대’입장을 공식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코소보 공습(1999년 5월)은 러시아로 하여금 NATO의 확장이 러시아를 작전대상으로 적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갖게 하였다. 러시아가 경악한 것은 19세기 이래로 자신의 세력권이던 발칸에 대한 미국및 서유럽의 대규모 군사개입이라는 점 뿐 만아니라 ‘체첸의 코소보화’의 가능성이었다. 러시아는 NATO 최초의 ‘역외작전(out-of-area operation)’을 목격함으로써 체첸문제에 대한 NATO의 군사개입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군사적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옐친정부가 ‘위협균형’으로 선택한 중국, 인도와의 전략적 협력,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 복원 등을 핵심으로 한 유라시아적 전환은 푸틴정부의 동방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탈냉전 초기 서구주의로의 노선 전환으로 아시아의 구 동맹국들과의 급격한 관계축소를 경험한 러시아에게 아시아에서 미국을 견제할 전략적 옵션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므로 푸틴정부는 동방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대외전략을 수정할 필요성에 직면하였다. 푸틴정부는 중국과 인도와의 관계회복을 동방정책의 핵심 축으로 설정하였고, 북한과의 관계는 거시적 측면에서 러-중-인 전략구조내로 수렴되었다.

2000년 1월 대통령 권한대행 블라지미르 푸틴이 대통령령으로 발령한 ‘국가안보개념(Указ N 24, 1/10)'과 대통령 당선직후인 4월 발표한‘군사 독트린(Указ N 706, 4/21)’, 그리고 취임 후 6월에 발표한 ‘대외정책개념’등은 제1기 푸틴정부의 대외정책과 안보전략의 원칙과 방향을 가름하는 중요한 문서들이다. 이 문서들에는 옐친정부의 대외 및 안보전략 개념에 비해 세계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반영되어있다. ‘국가안보개념’에는‘미국(주도하의 서구)의 국제사회지배’와 ‘국제법을 우회한 세계정치문제의 일방적 결정’이라는 세계정치의 불합리적 경향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국가안보개념’문서는 국제영역에서 NATO의 동진 등과 더불어‘다극세계에서 러시아가 영향력의 중심 중의 하나로 강화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시도들’을 러시아 국가안보의 주요 위협요인으로 지목하였다. 또한 문서에는, 러시아가 국가이익을 위해 ‘전통적인 파트너들(동맹국들)’과의 관계회복과 다극체제에서‘영향력의 중심 중의 하나’로서 강대국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국가안보개념’을 구체화한‘군사독트린’에서는‘군사블록의 확대(NATO의 확장)’를 국가안보의 주요 위협요인으로 상정하였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배제한 군사적 제재, 예를 들어‘인도주의적 개입(코소보 개입 등)’에 대해 국제 안보 메카니즘을 부정하는 행위로 규정하였다. ‘대외정책개념’에서 러-중-북 관계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점은 아시아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대외정책개념’에는 러시아와 중국 간에‘세계 및 지역정치의 핵심문제에 대한 원칙적인 일치’가 세계 및 지역안정의 전략적 기둥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의 세 문서에 표현된 푸틴정부의 현실주의 대외전략노선은 ‘NATO의 동진 저지’와 ‘다극체제의 구축’, 그리고 ‘강대국 러시아’의 부흥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전략수단으로서 ‘동방정책’, 다시 말하면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 강화―사실상의 동맹관계―와 북한과의 관계회복을 추구하였다. 푸틴정부는 이념과 체제적 친소관계를 근거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지양하여 ‘탈이념 실용외교’를 바탕으로 2000년 북한과 쿠바와의 관계복원을 일단락 지었다. 2000년 7월 개최된 러-중, 러-북 정상회담은 러-중-북 삼각관계의 복원을 상징하는 외교적 결과물로 평가되었다. 특히, 푸틴 대통령과 장쩌민 국가주석은 ‘북경선언’을 통해 ‘양국은 영원한 우방’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삼각관계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중추적 역할을 확인하였다. 2000년 러-북 간의 ‘신조약 체결’에 이어 2001년 러-중 간에 ‘친선우호협력조약’이 체결되어 기존의 북-중 조약과 더불어 삼각체제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러-중 조약과 러-북 조약은 동맹의 주요한 공약사항인 군사조항면에서 동일한 규정을 하고 있다. 조약 당사국은 침략위협에 직면할 경우 즉시 ‘협의(consultation)’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삼각관계가 군사 안보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러-중-북 비대칭 삼각관계와 러북관계의 상호기능 및 관계 메카니즘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먼저, 러시아, 중국, 북한이 인식하는 ‘전략적 고립감(strategic loneliness)’이다. 탈 냉전기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동맹관계에 비견되는 안정적인 동맹(constant allies)이 러시아, 중국, 북한에게 부재하다는 전략적 취약점으로 인해 삼자는 상호 협력관계를 유용한 전략적 옵션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러-중-북 삼각관계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대륙차원에서 러시아가 주도하는 러시아-중국-인도 간의 전략적 대삼각체제에 연계되어 있다.

다음으로, 미국의 전략적 압박이라는 외부적 위협요인이다. 중앙아시아에 미군기지 설치에 동의하는 등, 테러와의 전쟁에 러시아와 중국이 적극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02년 6월 ABM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한데 이어, 2002년 12월 새로운 MD체제 구축을 발표하였으며, 2003년 3월에는 이라크전쟁을 개시하였다. 이어 2004년 3월에는 발틱3국을 비롯한 동유럽 7개국이 나토에 가입하는 NATO의 2차 확대가 강행되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응하면서 전략적 공조를 확인하였다. 이러한 외부의 위협은 북핵문제에 대한 상호우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전략적 포용을 유지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2001년 북-러 간의 무기판매 및 군사협력에 관한 협정 체결이 미국이 대만에 잠수함 건조 지원을 비롯한 이지스함 등의 판매 시사와 때를 맞추어 진행된 점, ‘조러공동선언’ 1주년과 관련하여 북한이 ‘부시행정부의 MD체제와 일극체제 수립에 대해 러시아와 공통된 반대입장’을 표명한 점, 2004년 중-러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이라크 전쟁과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 비판 한 점 등은 미국요인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의 이해관계가 공유되고 있음을 의미하였다. 특히, 2003년 삼자 간의 전략적 공조는 두드러졌는데, 이라크 전쟁 직후인 2003년 5월 후진타오와 푸틴 간의 정상회담에서 러중 양국은 ‘다극체제 수립,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견제, 영토적 통합성(territorial integrity)과 주권의 우선성이라는 대외관계에 있어서 3대 목표를 확인’하였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미국견제를 활용하여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회의체에 러시아를 포함시키는데 적극성을 보임으로써 2003년 8월 러시아를 포함한 ‘6자회담’이 성사되었다. ‘6자회담’은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로 공식 복귀한 것,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추구하는 다자간 지역안보와 동북아 전략의 주요한 정책기제 중의 하나임을 의미한다.

셋째, 지경학적 측면에서 러북관계는 삼각관계에서 촉진 및 매개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창-지-투(장춘-길림-두만) 개발계획’과 러시아의 ‘시베리아 극동개발계획’, 북한의 ‘나선개발계획’은 경제분야에서 삼각관계의 전형적인 협력모델로서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러북관계는 삼각경제협력모델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촉진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러북관계는 ‘3대 라인(가스관, 철도, 송전선)계획’이라는 메가 프로젝트를 정책수단으로 하여 남한과의 연계를 통해 극동의 삼각경제협력관계를 아태지역과 연결하는 매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러북관계와 삼각경제협관계의 구성과정에서 러시아의 경제전략적 동기는 중국과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고하다고 할 수 있다. 푸틴정부는 극동지역경제를 해당지역에 연계함으로써 유럽지역과 아시아지역간의 균형발전(러시아의 동서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통합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극동개발과 더불어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의 진출을 열망하고 있다. 이미 2000년에 발표된 푸틴정부의 외교안보문서들에서 미국이 아태지역으로부터 러시아를 밀어내려한다는 전략적 위기감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의 전략적 지원을 통해 아태지역으로 진출하려 했고 러시아에게 남북한은 극동개발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이다. 아태지역 진출과 러시아 극동개발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북한문제의 해결 등을 포함한 한반도의 안정과 남북한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안보와 지정학적 측면에서 러북관계는 삼각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중러관계와 북중관계에 비해 약세인 러북관계는 중러관계에 균형과 북중관계에 견제의 기능으로 작용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딜레마와 북한의 중국에 대한 비대칭 의존관계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러중간의 전략적 파트너쉽은 견고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동북아와 유라시아에서 지정학적 안정추구를 양자관계의 최우선적인 안보 목표로 공유하고 있다. 전자의 제도적 틀이 6자회담이고 후자의 경우가 ‘상하이협력기구(SCO)’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간에는 여전히 전략적 불확실성은 존재한다. 전략적 제휴의 초기단계부터 러시아와 중국은 양자간의 파트너쉽의 목표가 미국에 대한 견고한 ‘세력균형적 동맹’이 아니라 ‘비세력균형적 다극체제(nonbalancing multipolarity)’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비동맹적 제휴(nonalliancing alignment)’임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동북아 및 아태지역과 관련하여 중국과 러시아가 내세우는 ‘신형대국관계’와 ‘강대국협조체제(concert of powers)’라는 전략담론은 상호 유사한 배경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지만 현실주의에 입각한 강대국체제를 전제로 한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상호 갈등적 요소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쉽이 지속되는 한 지정학적 도전이 상대국으로 부터 비롯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 (동)아시아의 전략적 무게중심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행사해온 유라시아의 안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 중국은 러시아를 대신하여 이러한 전략적 공백을 채우려 할 수 있다. ‘누구와 제휴할 것인가’하는 전략 오리엔테이션과 관련하여 러시아의 현실주의자들 간에는 다음과 같은 대략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구 소비에트 공간에 대한 전략적 재구성(유라시아 연합EAU의 수립); 러-중 간의 유라시아 동맹; 서구와의 동맹. 이러한 입장들에 대한 푸틴정부의 대안은 ‘멀티벡터외교(multi vector diplomacy)’인데, 이념과 체제성격을 탈피하여 유리한 대외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전방위 외교를 의미한다. 멀티 벡터외교에서 중국은 아시아지역의 전략적 최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전략적 딜레마로 인해 러시아는 대륙아시아 차원에서는 러인관계를 통해 러중관계를 균형 및 중화하고 동북아에서는 러북관계를 통해 북중관계를 균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01년 푸틴 대통령은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항상 러시아의 국가이익의 영역내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어떠한 특정 강대국이 한반도에 대한 세력권을 독점하는 것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와 남북한 균형외교를 통해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였다. 북한 또한 북중관계의 비대칭성을 완화 및 견제하는 목적에서 러북관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미국과 중국 중심의 기존의 4자회담을 해소하고 러시아를 인입시켜 6자회담이라는 새로운 다자간 대화체를 구성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4. 결론: ‘한반도 시나리오’와 한국에의 시사점

1)푸틴 신정부의 대외정책개념과 북러관계의 관점들

향후 러북관계가 어떠한 경로로 진행될 것인가에 따라 삼각관계의 지속가능성이 결정될 것이며, 이러한 러북관계의 예상경로는 한반도문제(남북한 통합)의 해결경로와 밀접히 연동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3년 2월 12일에 발표한 ‘러시아 대외정책개념’은 향후 러북관계 및 러-북-중 삼각관계의 전략적 원칙과 방향을 규명하는데 핵심적인 기본문서이다. 푸틴정부는 주권, 실용주의, 멀티벡터적 접근을 기본토대로 하여 ‘네트워크 외교(network diplomacy)’를 통해 국제문제에 대한 ‘군사블록적 접근’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본 전략인식을 표명하고 있다. NATO의 확장을 비롯하여 냉전시기의 군사동맹체제가 유지 및 강화되고 있고 북아프리카 및 중동, 그리고 한반도 문제 등 국제분쟁 해결에 있어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추세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푸틴정부는 전략적 우선순위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NATO의 확장, 동유럽MD에 대해 부정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문제국가들에 대해 UN을 우회하는 미국의 국제제재와 내정개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대외정책개념’은 세계와 지역수준의 전략전환과 관련하여 현재 아시아, 특히 아태지역으로의 ‘힘의 전환(global power shifting)’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대외정책개념’에 따르면, 세계적 차원에서 서구의 능력이 쇠퇴하고 있고 정치, 경제적인 세력전이가 아태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제는 더 이상 전통적인 군사동맹으로는 현존하는 초국경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대안은 새로운 형태의 동맹외교인 ‘네트워크 외교’이다. 이 ‘네트워크 외교’는 공식적으로는 다자간 기구에 대한 유연한 참여를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네트워크를 통한 전략적 제휴관계의 강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지향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동맹국가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견고한 ‘동맹네트워크’개념—한-미-일-호주-필리핀 등을 하나의 동맹체계로 인입—이 아니라 러시아와 전략적 제휴관계에 있는 국가들 간의 신축적이고 유연한 ‘네트워크 제휴(동맹)’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와 더불어 ‘네트워크 외교’ 중요한 제휴대상으로 아태지역 국가 우선순위에서 제1순위에 배치되어 있다. ‘대외정책개념’에서 러시아는 중국과 ‘모든 영역에서 포괄적이고 평등한, 그리고 신뢰있는 파트너쉽과 전략적 공조합작’을 구축할 것이며, 양국은 ‘핵심적인 글로벌 이슈들에 대한 공통의 입장을 공유’할 것이라 명시되었다.

2013년 ‘대외정책개념’문서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한반도 및 6자회담에 대한 강조이다. 한반도는 아태지역 우선순위 항목에서 개별국가로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일본보다 앞서 배치되었다. 러시아는 ‘남북한과 우호 친선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한반도 균형외교’를 분명히 하였다. 또한 ‘한반도 균형’와 ‘남북한 협력과 대화’가 극동지역의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고 동북아의 안정에 근본적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를 지지하며 이를 위해 ‘6자회담을 포함하여 적절한 UN 안보리 결정에 근거한 점진적인 해결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군사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제도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시리아 문제에 있어서 오바마 행정부가 화학무기사용에 대한 군사적 제재를 상정한 것에 대응하여 푸틴정부가 외교적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성사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한반도문제와 관련하여 푸틴정부의 ‘점진적이고 제도적인 외교적 해결’,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내정불개입’ 등의 원칙은 러-중-북 삼자 간에 공유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러북관계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러시아의 전문가와 정치엘리트들의 입장은 대략 세 유형으로 분류된다. 먼저 보수주의적 시각이다. 이 범주에는 소련시기 일부 북한전문가들이나 군사분야 전문가들이 포함된다. 이 시각에 따르면, 북한의 리더쉽과 내부체제의 성격, 국내정책 등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북한의 군사 핵프로그램을 미국이라는 ‘외부위협’에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만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보수주의적 시각은 2000년대 러시아 대외정책의 주류적 접근에 편입되거나 근접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접근을 선호한 메드베데프 정부시기에 보수주의적 시각이 일정정도 교정 및 약화되었으나 그루지아 전쟁(2008)이후 악화된 미러 간의 갈등으로 인해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을 ‘전략적 경쟁지역’으로 평가하는 보수주의의 입장이 다소 강화된 듯하다.

다음으로, ‘진보주의적 시각’이다. 이 범주에는 한국학이나 북한연구분야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학계나 언론계의 전문가들이 포함되며 북한체제에 대해 스탈린주의를 계승한 전체주의체제로 평가하여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이 그룹은 핵 비확산, 자유주의적 시각을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이 시각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압박에 참여해야하고 미국과의 공조를 통한 이익에 주목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그룹의 정향(political orientation)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북한의 비핵화’에 맞춰져 있으며, ‘평양의 정권붕괴(regime collapse)가 한반도 위기의 최종적 해결’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세 번째 유형은 외교 안보정책분야의 지역문제 전문가들을 아우르는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적 시각을 양극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유형은 북한체제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정권을 붕괴―대량살상무기제거 또는 지정학적 이유 등을 위해―시키는 것은 비용효과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대단히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평가한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북한 급변사태(정권붕괴 등)는 러시아의 국가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변사태시 북한이 미국의 세력권으로 편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경우에 러시아의 안보적 이익은 현저히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압박이나 전략갈등 등 비 우호적 접근을 지속하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 급변사태가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침해할 개연성이 현저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대결의 완화’을 통해 ‘비고립적이고 평화적인 북한’으로 전환되기를 선호한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의 대내외적 행위에 대해 불안한 것이 사실이지만, ‘비무력적 방식’에 의한 문제해결을 추구해야한다. 이를 위해, ‘외교를 통한 이익의 균형(balance of interests)’, ‘지역의 현상유지(regional status-quo)’, ‘북한의 국제사회로의 인입’ 등을 러시아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2)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전망과 시나리오

김정일 사후 북한정권의 진로 전망과 관련하여 러시아 전문가 들은 다양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쿠나제(Georgii Kunadze)는 ‘가까운 장래에 어떠한 심각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으며, 북한지도부내에는 경쟁그룹이 부재하므로 권력투쟁의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입장이다. 보론초프(Aleksandr Vorontsov) 또한 ‘가까운 장래에 북한의 대내외정책에서 심대한 전환이나 변동이 발생을 기대할 수 없고 김정은 정권은 당분간 유훈통치에 충실하면서 안정될 것이며 리비아 사태 등 국제사건들이 북한 정치엘리트들을 김정은을 중심으로 결속시킬 것’이라 전망하였다. 페트롭스키(Vladimir Petrovskii)는 ‘가까운 장래에 급격한 정권변동은 없을 것이고, 김정은이 국제사회를 향해 분명한 자기주장—연평도 포격 등과 같은 물리적 방식을 포함하여—을 할 가능성이 있으나 정권의 연성화나 자유주의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톨로라야(Georgii Toloraya)는 ‘김정은이 국가통치에서 일정한 권위와 경험을 획득했고 집권초기 강경하고 폐쇄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으나’, 6자회담 등 국제제도를 통한 해결을 위해 ‘주변국들은 ‘아랍의 봄’ 같은 시나리오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이다. 이에 비해, 루킨(Aleksandr Lukin)은 두 가지(안정과 불안정) 가능성이 공존한다는 입장이다. 김정일 사망과 관련하여, ‘현재 북한의 정치과정에서 급격한 변동의 전제조건들은 없으나, 정치 군사 엘리트들간의 권력투쟁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우므로 불안정 가능성’은 존재한다. ‘젊은 지도자의 경험부족으로 인해 엘리트들이 김정은의 권력을 제한하려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불안정은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두 가지 시나리오—‘파국적 붕괴’와 ‘점진적 변화’—로 대별할 수 있다. 먼저, ‘파국적 붕괴’ 시나리오(catastrophic scenario)로서 자유주의적(진보주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러시아의 <세계경제와 국제관계연구원(IMEMO)>는 과거 소련체제 이행과의 비교적 관점에서 북한체제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한 후 비관적인 전망을 내린 바 있다. 이념적 측면에서 북한체제는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를 여전히 고수하면서 세계변화추세에 조응하는 새로운 이념과 사고를 결핍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측면에서, 김정은의 ‘새로운 통치 스타일’—사회내 다양한 계층과의 접촉, 대중노출 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정치, 경제적 개혁조치들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 사회 정치적 분위기라는 측면에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되어 더 낳은 삶에 대한 기대와 미래에 대한 확신이 결핍되어 있으며, 김정은의 상황개선 능력과 지도력에 대한 회의가 존재한다. 또한 남한 및 중국과의 접촉이 증가하고 암시장이 강화되면서 탈북을 비롯한 도덕적 퇴락과 와해가 확대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지시경제체제를 개혁하려는 시도들이 부재하고 비합법시장(black-grey market)의 확대로 인해 불법자본과 부패가 만연하고 있으며, 지방 인민들과 평양의 소수 기득권층 간에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체제는 파국으로 가는 추세에 있고 소련체제의 와해와 러시아의 체제이행 경험이 북한의 체제이행에 해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북한의 체제이행(붕괴)을 가속하기 위해 ‘전면적인 관여(total engagement)’와 ‘신상호주의(new reciprocity)’를 제안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향후 20년 이내에 통일과정이 실질적인 단계에 이를 것이며, 이 과정에서 북한은 국가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파국적 붕괴 시나리오에 대해 러시아 전문가들 간에 비판적인 평가가 존재한다. 북한정권 붕괴과정에서 두 가지 경로가 예상되는데,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과 중국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전자의 경우,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견해이다. 예를 들어, 내전 또는 무력저항의 가능성이다. 북한지역에서 주체사상의 신봉자들이나 지배 엘리트 일부가 외부의 ‘침입자와 점령자’에 맞서 무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 유혈통치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북한의 특권엘리트들의 경우, 처형에 대한 두려움에서 흡수통일에 결사반대하거나 무장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이들과 북한지역에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이러한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경제에 편입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통일된 한국에서 2등 시민이 될 가능성이 큰 북한 주민들이 통일정부에 지속적으로 저항하거나 통일한국의 장기적인 불안정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북한 정권붕괴과정에서 다른 경로는 위기과정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친중 정권’을 수립—중국에 접경한 지역에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는 북한 지배 엘리트들에게는 남한에 투항하는 것보다 비교적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러시아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정권위기가 발생할 경우, 국경과 국가지위, 그리고 자신들의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한과 접경한 북한지역을 남한에 포기하더라도 중국에 정권을 의탁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친중 예속정권’은 정통성과 지역 헤게모니 문제 등으로 대내외적인 압박에 직면하게 되어 장기적으로 불안정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점진적 변화’ 시나리오(evolutionary scenario)로서 현실주의적(실용주의) 시각을 대표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북한 정권의 붕괴가능성이 ‘상당하게 증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지원을 고려할 때’ 그러하며, 김정은의 리더쉽이 ‘기능적 역할보다는 대표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평가하는 점에서, 이 시나리오는 김정은의 역할을 통치자가 아닌 ‘명목상의 보호막(umbrella)’ 역할로 규정하는 IMEMO의 ‘붕괴 시나리오’와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진화적 시나리오’에 따르면, 김정일 사후 북한은 ‘세대의 점진적인 교체’와 더불어 동일한 부류의 지배엘리트들에 의해 체제관리가 수행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김정일에 비해 통치능력과 경험이 미약한 김정은 정권하에서 ‘지배 엘리트 그룹의 응집성과 정책 조정력’ 등의 문제들은 상존하지만, 북한 지도부의 권력이 여전히 ‘친김 및 혈연그룹’에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지배계급의 고도로 계서화된 권력구조를 고려할 때, 김정은에 대해 권력경쟁을 추구하거나 그를 대체하려는 개인 혹은 그룹은 이들의 지원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이다. 국제정세의 조건에 따라 이 시나리오는 두 가지 경로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먼저, 핵 위기와 국제제재가 지속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대립과 고립정책을 유지할 것이다. 체제저항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북한정권에 대한 내부적 저항운동이 대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러한 ‘고립적 선택(stagnant option)’은 장기적으로 북한의 지배엘리트들에게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른 경로는, 만약 북한과 이해 당사국들 간에 ‘건설적인 협상으로의 복귀와 관여정책’이 이루어진다면, ‘북한의 점진적인 이행을 위한 경제개혁’의 가능성을 촉진하는 경로이며, 이 경우 중국모델이 유용할 것이다. ‘진화적 시나리오’에 따르면, ‘9.19 성명(2005)’의 정신에 입각한 ‘실질적인 정치적 타협’을 통해 북한이 국제분업에 기반한 시장경제로 이행—‘주권 독재(sovereign autocracy)에 대한 최소한의 제약’으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될 경우, 북한에서 형성되고 있는 ‘기업가 계급(entrepreneurial class)’들이 경제변환의 추동력이 될 수 있으며, 향후 10-15년 내에 현대화 및 개혁의 경로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술한 두 시나리오는 지역내에서 러시아가 지닌 전략적 레버리지가 제한적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공유하지만, 북한체제와 북러관계, 한반도 및 동북아 전략 등을 분석하고 전망하는데 있어서 상반된 경로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먼저, 북한 체제의 내구성과 체제이행이라는 측면에서, ‘붕괴 시나리오’는 북한이 정치, 경제 이념 등 전 분야에서 체제 유지 메카니즘과 동력을 상실했다고 분석하고 장기적 국면에서 볼 때, 이미 붕괴추세에 접어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직접적인 위기’에 직면—체제적 불확실성에 따른 노선상실—하여 지배 엘리트들 간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북한정권이 붕괴하는 단계를 거쳐 남한에 흡수통일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에 비해, ‘진화 시나리오’는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이 일정정도 확보되었고 외부적 요인에 의한 흡수통일은 내전과 동북아의 불안정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한반도 통합에 대한 견해이다. ‘붕괴 시나리오’는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여, 통합 초기에는 통합비용 등으로 경제성장이 현저하게 둔화되겠지만, 북한 내 생산 및 사회 인프라의 현대화,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로 이전되고 있는 노동 및 자본집약적 산업의 발전으로 북한 경제가 급성장할 것이고, 그 결과 통합된 한반도 경제가 역내에서 중국, 일본과 함께 삼각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통합된 한반도는 아태지역에서 러시아의 입지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러시아의 극동지방 경제발전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진화 시나리오’는 북한에서 근래에 ‘파국적인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은 미약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급작스런 통일’이 초래할 역내 불안정을 예방—‘붕괴 시나리오의 방지’—하는 조치를 러시아의 정책 결정자들이 취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남북한 간에 ‘점진적인 수렴적 통합’을 러시아에게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통제불능의 통합’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남북한의 평화공존과정을 통한 통합’을 선호하며 중단기적으로는, 북한이 역내에서 미국 등의 ‘지정학적 야망을 완충하는 역할(완충국가론)’을 담당하기를 원한다. 통합된 한반도가 특정 국가의 세력권에 일방적으로 편입되지 않는 한, 러시아와 우호 친선관계에 있는 통합된 한반도는 러시아의 국익에 부합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셋째, 비핵화문제이다. 두 시나리오 모두 통합된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의견을 공유하지만 비핵화 과정에 대한 접근방식은 서로 상이하다. 핵비확산론에 근거한 ‘붕괴 시나리오’는 핵문제를 ‘북핵문제’로 파악하고 미국 등과 협조하에 국제적 압박을 선호하며 핵문제가 북한정권의 붕괴와 더불어 최종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비해, ‘진화 시나리오’는 유엔 안보리의 결정이외의 물리적 제재나 압박에 비판적이며 북한정권의 안보적 우려에서 비롯된 ‘핵 억지력 요인’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외교적 해결방식을 선호한다. 이에 따르면, 북한의 핵국가로서의 지위는 인정될 수 없으며, 북한의 핵무기 포기는 북한 안보에 대한 비군사적 메카니즘의 보장과 병행되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 시나리오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로 규정하며, ‘한반도 비핵지대(nuclear weapon free zone)’의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또한 이 입장은 러시아에 있어서 ‘북한 핵능력의 제거가 한반도 및 지역문제에 있어서 유일한 최우선순위는 아니며 역내 집단안보체제의 구축 또한 핵심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넷째, 한반도 외교전략의 측면이다. ‘붕괴 시나리오’는 러시아의 남북한 균형외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이라는 중장기적 전망에서 남한과의 관계강화를 강조한다. 북한과의 관계는 외교 안보적 측면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러시아에게 비용과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며, 남한과의 정치 경제적 협력 강화가 러시아의 극동개발 및 아태지역으로의 진입에 현저히 유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진화 시나리오’는 남북한 균형외교를 선호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북한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역내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지위를 제고하는데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세대를 이어 ‘북한의 정치엘리트들과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긴밀한 관계는 역내에서 러시아에 특유한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6자회담에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 등이 러시아가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만큼만 러시아의 참여가치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북한과의 전략적 관계유지는 철도 및 가스관 등 ‘3대 라인’을 연결하는 러시아의 극동개발 메가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데 있어서 관건이며, 이를 통해 남-북-러 삼자협력관계의 수립이라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촉진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러시아는 남한과 건전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지역안보와 글로벌 경제의 측면에서 남한의 잠재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는 한편, ‘미국의 강한 영향력하에 있는 한국과의 관계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남한관계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은 극동의 장기적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경제협력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시나리오는 북한체제와 한반도의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상반되는 접근방식과 경로를 제시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극동개발을 통해 러시아의 지역 간 불균등을 해소하여 국가통합성을 유지하고 러시아의 극동을 아태지역시장에 통합시킨다는 장기 전략적 측면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반도와 지역에서 지정학 및 지경학적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 러시아의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전망하고 있다. 러북관계의 복원이후 양자관계의 진행과정을 볼 때, 러시아 푸틴정부의 정책 경향은 ‘진화 시나리오’에 친화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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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기(한시대 교수/코리아콘센서스 소장)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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