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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화로 경제페달 밟다 1. 서울 문래예술촌값비싼 월세에 떠밀린 예술인들 새둥지

정치, 정책/복지정책, 문화 기획

by 소나무맨 2013. 10. 2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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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화로 경제페달 밟다 1. 서울 문래예술촌값비싼 월세에 떠밀린 예술인들 새둥지 / 공연·전시·퍼포먼스 등 지역재생 견인

이화정  |  hereandnow81@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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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03  17: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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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예술공장의 모습. 이곳은 시민들과 관객들이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전국 자치단체가 예술촌 건립에 팔소매를 걷어 붙이고 있다. 전국의 도시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공공디자인 열풍이 주춤하면서 예술촌이 도시재생(구도심 활성화)의 새로운 '카드'로 제시되는 분위기다. 자치단체가 너도나도 도시에 예술을 입히는 이유는 시민들이 그 지역의 활기를 되찾도록 하는 촉매제라는 인식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지자체 경제 활성화'를 주제로 한 공동기획취재 일환으로 본보는 앞으로 5차례에 걸쳐 국내·외 사례를 통해 도시 재생의 돌파구로 지목되는 시민예술촌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낮엔 철공소, 밤엔 작업실

서울 문래동은 '두 얼굴'을 지녔다. 이제는 쇠락한 철공소 등이 밀집한 이곳은 낮엔 용접공의 불꽃이 튀고 쇠 두드리는 소음으로 뜨겁지만, 저녁엔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야행성 예술가들이 창작 열기로 채워진다. 기껏해야 3층 정도인 상가 건물 곳곳엔 철강, 스테인리스강, 용접, 파이프 등의 간판을 단 소규모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낯선 관광객들이 이곳에 들어와 예술을 만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예술촌이 시작되는 광명수산 삼거리 입구부터 철재상가 거리를 거닐다 보면 곳곳에 2~3층에 수줍게 얼굴을 내민 간판이 만날 수 있다.

  
▲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1가30 문래예술공장. 지난 8월21일 열린 '문래 아트 페스티벌' 일환으로 미디어아트, 설치, 퍼포먼스 등이 어우러지는 기획전 '간객'(間客)의 모습이다.

문래동은 과거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였다. 1960년대 산업화 영향으로 영등포 일대에 공장들이 몰리면서 철강단지 등이 형성됐다가 1990년대부터 공장들이 빠져나가 사양길을 걷고 있다. 녹물로 벌겋게 물든 골목에 듬성듬성 공간이 생기자 예술가들이 이곳에 눈독을 들였다. 저렴한 임대료와 편리한 교통은 소음을 참는 이유가 됐다. 서울시는 자연스레 몰려든 예술가 집단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 '문래예술공장'을 열었다. 철재공장 부지를 매입해 지하 1층~지상 4층, 연면적 2820㎡ 에 대형작업실, 다목적 발표장, 카페형 갤러리, 세미나실, 레지던스 공간 등을 마련한 것. 다른 서울시창작공간들이 시각예술에 집중하는 반면, 문래예술공장은 소리나 미디어, 퍼포먼스 등 낯선 장르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시멘트 블록으로 된 낡은 골목의 벽에 그려진 벽화, 공장을 실험적 예술공간으로 변신시키려는 움직임, 문래동의 공장과 예술가의 작업실을 탐방하는 '문래동 투어' 등은 문래동의 변신이 안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시민과 소통하는 축제로

젊은 예술가들로 인해 침체 일로를 걷던 이 지역 분위기가 활기를 되찾았다. 처음 눈인사만 나눴던 철공소 직원들이 이곳에서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고, 행사 후에는 예술가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열기도 했다. 대문이나 옥상에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 달라는 민원도 생기고, 덕분에 예술가들은 철재 등 재료를 공짜로 제공받곤 한다.

예술가들은 정기적인 반상회도 갖고, 공동 블로그도 운영하고, 예술 프로젝트도 함께 준비한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작가들은 2007년 6월에 거리축제인 '경계 없는 예술프로젝트 : 문래동'을 열었고, 10월 연합축제인 '물레아트페스티벌'로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로 판을 키웠다. 매년 10월에 열던 페스티벌은 올해 8월로 옮겨 간객(間客)을 주제로 한 기획전, 물레페스티벌의 판을 처음 연 '춤추는 공장'의 융합 공연, 국내·외 예술가들을 초청한 워크숍 등으로 속을 꽉 채웠다. 해를 거듭할수록 페스티벌에 관한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높다.

그래서 문래동은 여전히 젊은 작가들이 선호하는 동네다. 지난 3월 입주한 30대 커플이 운영 중인 '재미공작소'는 음료를 주문하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빌려주는 대안 문화공간이다. 예술가들의 입소문으로 출판기념회, 개인전, 공연, 창작워크숍까지 자유롭게 진행되는 것. 인디 공연과 유화 강좌, 시 창작 강좌 등으로 달력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

후발주자에 가까운 갤러리 카페 '솜씨'(Cotton Seed)도 문래동 작가들의 사랑방이다. 비영리 갤러리인 이곳은 판매금액을 100% 회원들 뜻에 따라 기부한다.

  
▲ 문래예술공장 인근 철공소가 줄지어 들어선 골목의 낡은 가게를 캔버스 삼아 묘한 조화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재개발로 예술촌 사라질까 걱정

하지만 문래동 예술촌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난해 시내 준공업지역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가 개정됐고, 인근 주민들과 개발업자들은 고층 주상복합 건물을 희망하고 있다. 철거가 시작되면 영세 공장은 물론 예술가들 역시 문래동을 떠나게 된다. 문래동 예술촌을 터전으로 하는 공연과 전시가 일시적 퍼포먼스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시는 재개발을 앞둔 문래동에 대해 현 모습을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면서 옛 모습 일부를 의무적으로 보존하는 '흔적 남기기' 프로젝트 일환이다. 예술가들은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곳을 창조지구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문래동은 군수공장에서 예술촌으로 변신한 중국 베이징의 다산쯔처럼 서울의 새로운 문화명소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문래동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 신동호 커뮤니타스 대표 "지역 이야기 담는 마을 만들기 돼야"

전국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성적표는 몇 점이나 될까.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지자체 경제 활성화'를 주제로 한 공동기획취재에 초청된 신동호 커뮤니타스 대표는 "개발을 우선하는 행정이 개성을 잃은 마을만 찍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걸림돌은 행정 편의주의다.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해 실행주체로 성장시키기 위한 기회비용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고 제가 얻은 깨달음은 딱 하나였습니다. 지역적 서사를 구축하는 힘이 바로 정의라는 겁니다. 하지만 현재의 도시 계획은 개발 이익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을 무마시키고 지역의 서사를 배제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구 수성구 만촌1·2동 마을 특성화 사업이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마을의 정체성, 지역성, 특수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본래 만촌동은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네이밍 공모전을 했죠. 그 결과 '해피타운 만촌'으로 결정됐습니다. 만촌의 지향과 의미를 토대로 여유와 전통에 기반한 행복한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요."

이후 이미지텔링을 통한 마을의 특성화 사업이 시작됐다. 공공디자인 전문가와 주민들이 합심해 마을 팻말·가구·조형물 등을 만들고 마을을 디자인하게 된 것.

그는 "결국 주민들의 참여가 없는 화려한 이벤트와 프로그램 대신 삐걱거리더라도 주민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돌려주고 충분히 논의해야 마을 만들기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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