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교육’ 현장을 가다](1)프랑스-이민자 끌어안는 학교
-50개국 305명 학생 “교실엔 차별 없어요”-
# “서로 비웃거나 싸우지 말라”
마리퀴리 초등학교에서 수업중인 학생들.
파리 외곽 보비니 지역은 프랑스에서 첫 손으로 꼽히는 빈민가다. 2005년 11월 회교도를 중심으로 외국 이주민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프랑스 교육 당국은 이곳에 자리잡은 마리퀴리 초등학교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전교생 305명의 국적은 프랑스를 포함해 무려 50개국.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우간다 세네갈 콩고 폴란드 헝가리 체첸 불가리아 터키 방글라데시 베트남 캄보디아 버마 말레이시아 등 아프리카와 동부 유럽, 동남 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망라돼 있다.
지난 9월13일 오전 9시. 교실에서 아침 조회를 마친 어린이들이 운동장으로 일시에 뛰어 나왔다. ㄷ자 모양으로 이뤄진 건물 가운데 마련된 1000㎡ 남짓한 교정이 아이들로 금세 가득찼다. 베로니카 교장과 5명의 교사들도 나왔다. 5분도 안돼 베로니카 교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모로코 출신 페이칼(10)과 알제리 출신 사미(9)가 얼굴이 굳어진 채 교장 앞으로 달려왔다. 두 어린이는 평소 친하지만 장난이 심해 자주 다툰다. 베로니카 교장이 “친구끼리 싸우면 안 된다”고 타일러 아이들에게 악수를 시켰다. 두 아이를 훈계하면서도 베로니카 교장의 눈은 계속해서 터키 출신의 베르카이(10)에게 가 있었다. 부모가 불법 체류자인 베르카이는 보름 전 이 학교에 들어왔다. 아직 친구를 사귀지 못해 벤치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베로니카 교장은 터키 출신의 어린이 두 명을 불러 베르카이와 함께 놀라고 지도했다.
# 부모 불법체류 여력 안따져프랑스의 다른 여느 초등학교처럼 마리퀴리 초등학교도 관내 학군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에게 열려 있다. 프랑스는 18세 이전에 학교에 입학할 경우 정부의 허가를 받는 절차가 없다. 구청에서 발급하는 간단한 신원증명서만 있으면 된다. 부모의 국적이나 합법적 체류 여부는 문제가 안된다. 프랑스 혁명 이념인 자유·평등·박애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사람들은 국가를 민족, 혈통, 문화적 공동체가 아닌 법률적, 역사적 공동체로 인식하고 있다. 베로니카 교장은 “부모가 불법 체류자이거나 프랑스 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린이가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학교에서 보호자의 소득은 파악한다.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에게 급식비와 교재비 등을 더 지원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중·고교가 의무교육이다. 수업료는 당연히 무료고, 교과서와 노트 필기구까지 공짜로 준다. 하지만 이 학교는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올해의 경우 학생 1명당 연간 28유로(3만6000원)가 추가로 지원됐다. 외국인 근로자나 불법 체류자 자녀들이 다른 초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고, 이들 대부분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마리퀴리 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피에르 세마르 중학교 역시 외국 국적 학생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가난한 아프리카계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이 학교 학생들은 프랑스 전국을 무대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제나 무용제에서 큰 상을 많이 탔다. 피에르 세마르 중학교가 예체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5년 전 호세토 교장이 부임하면서부터. 호세토 교장은 프랑스어 습득이 어려운 외국인 학생들에게 읽기와 쓰기 등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평등’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 문화 제각각 획일교육 자제
“아프리카 학생들은 몸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학생들이 수학을 잘하듯 말입니다. 이런 아프리카 학생들에게는 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학생들은 프랑스 말이 서툴러도 춤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면서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교육도 한계는 있다. 근래 들어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자녀의 학력 수준이 결정되고,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최고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 입학생의 60%가량은 부모가 그랑제콜 출신인 고급관료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통계도 있다. 고등학교 평준화가 이뤄졌지만 대학 입학 시험인 바칼로레아 합격률이 높은 파리의 5구역 등은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아 집값이 뛰고 있다.
노르망디에 살던 파스칼 교수(에콜 상트랄 파리대학)도 10년 전 아들이 고교에 진학할 무렵 파리 5구역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아들을 그랑제콜에 합격시켰으나 아들과 실력이 비슷한 친구는 부모가 신경을 쓰지 않아 그랑제콜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랑제콜의 한 곳인 시앙스포(파리고등정치학교·Science politique)는 3년 전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고 면접과 서류전형만으로 학생을 뽑는 특별 전형을 도입했다. 필기 시험은 저소득층이 불리하기 때문에 전형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찬반 논란이 뜨거웠지만 특별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의 성적이 일반 학생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제도 확대 여부에 프랑스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김차진 프랑스 교육원장은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역사적·문화적 전통이 많이 다르고, 프랑스 교육제도가 반드시 우수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문화 가정 출신 학생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파리/오창민기자riski@kyunghyang.com 한국언론재단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