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동과 공유의 시대 - ‘협동조합 천국’ 홍성군 홍동면

2013. 9. 8. 17:47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 협동과 공유의 시대 - ‘협동조합 천국’ 홍성군 홍동면

사진은 해가 기울어갈 무렵의 ‘동네마실방 뜰’ 모습. 협동조합의 기운이 홍동면에 단 하나 남은 술집을 살려냈다.


 


 

마을사람들, 조합원·출자금 모으고
벽돌 쌓기·미장 등 공사 ‘재능기부’
공동체 공간 ‘동네마실방 뜰’ 탄생
수십개 ‘협동조합’ 지역경제 밑받침
뿌리는 ‘풀무’지만 이젠 주민도 익숙

2010년 12월 영국의 에너데일브리지라는 시골마을. 우체국과 슈퍼, 버스업체 폐업에 이어, 마을 술집(퍼브)까지 문을 닫았다. 술꾼들이 술렁거렸다. 시골마을에서 술집은 그저 술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지방정부와 머리를 맞댄 끝에 협동조합으로 술집을 되살리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182명의 주민 조합원이 삽시간에 8만3000파운드(약 1억5000만원)를 출자했다. 2011년 4월 ‘폭스 앤드 하운즈’라는 협동조합 술집이 탄생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무렵이었다. 2010년 11월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하나 남아 있던 호프집이 문을 닫았다. 8명의 술꾼들이 의기투합했다. “우리 손으로 협동조합 술집을 열자!” 주민들을 설득해 100여명의 조합원, 1800만원의 출자금을 모았다. 보증금 없는 월 30만원짜리 가게 자리를 얻었다. 마을 목공소(갓골목공실)에서 인테리어를 디자인하고, 마을 주민들이 미장, 벽돌쌓기, 전기와 타일 시공을 나눠 맡았다. 모두 재능기부였다. 냉장고와 부엌도구, 인테리어 자재 정도만 구입했다. 2011년 3월 ‘동네마실방 뜰’이라는 협동조합 술집을 열었다.

6일 저녁 7시, ‘뜰’의 운영일꾼 이동근(45)씨가 청소를 마치고 손님 맞을 채비를 갖췄다. “안녕하세요!” 7시30분에 들어선 첫 손님은 홍동면의 ‘풀무학교 전공부’ 학생들이었다. 서너명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더니, 도서관인 양 일본어 책을 꺼내들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여기 모여서 일본어 공부를 해요. 그러다가, 출출해지면 맥주를 시키죠. 도시의 술집과는 달라요. 마을 사람들이 저녁시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의 공간이에요.”

밤이 깊어지면서 손님들 발길이 잦아졌다. 지적장애 아이들과 농사놀이를 하는 ‘꿈이 자라는 뜰’의 부모 회원 10여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아빠들은 맥주를 시키고 엄마들은 차를 마시며 뒷얘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다른 테이블의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야근을 마치고 느지막이 술집을 찾은 떡공장 홍성풀무의 직원 4명은 푸짐하게 통닭을 시키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술집 운영자와 손님의 구분이 없었다. 모두 마을 친구이고, 한 식구였다.

‘뜰’의 이날 수입은 평소보다 좀 많은 30만원에 육박했다. 매출이 꾸준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월평균 500만~600만원쯤 된다. 빚 한푼 없고 500만원의 적립금도 쌓였다. 원예조합 ‘가꿈’에서 일하는 최정선(46)씨는 “7명의 우리 운영일꾼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당번을 하고, 매일 저녁 6시부터 1시간 동안은 함께 나와서 청소한다. 아직은 그런 식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정도”라고 말했다. ‘뜰’에서는 마을의 젊은협업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고, ‘꿈이 자라는 뜰’에서 기른 유기농 허브로 차를 달인다. 요구르트와 달걀도 ‘뜰’의 조합원이 직접 기른 홍성산 로컬푸드를 쓴다.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면 단위 맥줏집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 거예요. 우리 ‘뜰’이 예외라고 해야죠. 홍동면에는 공동체와 협동의 가치가 살아 있어요. 서로 어울려 협동조합을 꾸려본 경험이 마을에 녹아 있거든요. 그 저력이 있으니, 술집을 지탱할 수 있는 거예요. 협동을 해본 사람들이 우리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또 열성 고객이 되지요.”(이동근씨)

홍동면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촌형 협동조합의 천국이다. 농업과 농촌을 매개로 한 다종다기한 협동조합들이 마을의 심장과 실핏줄을 형성하고 있다. 오리농법의 유기농 쌀을 대표하는 홍성풀무생협과 홍성유기농, 빵공장을 겸한 풀무학교생협, 쌀가공공장 다살림, 떡공장 홍성풀무 등 수억~수십억원 규모의 협동조합형 사업체들도 즐비하다. 마을경제를 지탱하는 풀무신협의 자산은 250억원대에 이른다. 그물코출판사, 갓골목공실, 느티나무헌책방, 반짇고리 공방, 할머니협동조합, 원예조합 가꿈, 논배미 등 이름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수십개의 협동조합형 사업체들은 서로 기대고 끌어가며 거대한 협동의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청년 농사꾼들의 젊은협업농장과 얼렁뚝딱(집짓기협동조합)은 올해 새로 생겨난 막내 협동조합이다. 대규모 경영난에 빠진 홍성한우 홍동점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회생시키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젊은협업농장을 끌어가는 정민철(47)씨는 “홍동면 협동 문화의 뿌리는 풀무학교이다. 풀무학교에서 협동을 배우고 익힌 졸업생들이 마을에 남아 협동조합을 세우고 이끌었다. 그게 지금까지의 홍동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풀무학교의 방식이 풀무 출신을 넘어 마을 전반으로 스며든 것 같아요. 마을 술집 뜰을 살린 사람들도 풀무 출신은 아니거든요. 마을 사람들이 ‘풀무 방식’으로 협동조합 술집을 창조해낸 거예요.”

정씨는 2001년 풀무학교의 2년제 대학과정인 전공부를 세워 지난해까지 교사로 일했던 ‘풀무 사람’이다. 정씨 이외에도 홍동면의 크고작은 협동조합을 끌어가는 이들의 다수는 여전히 풀무학교 출신들이다. 여러 협동조합의 이름에 ‘풀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 또한 풀무학교에서 시작됐거나 풀무학교 졸업생들이 세웠다는 역사를 웅변한다.

홍동면은 영아와 어린이집부터 초중고교와 전문대학 과정까지 돌봄과 학교 시설이 갖춰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면 지역이기도 하다. 면의 어디를 가나 아이 울음소리가 이어지고, 젊은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홍동면 사람들은 “풀무학교에서 지역 일꾼을 길러냈고, 그들이 협동의 가치로 지역을 살리는 선순환이 이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동네마실방 뜰’의 간판.


 

여러 협동조합 가게들이 모여 있는 갓골 입구의 이정표.


 

밝맑도서관에서 홍순명 전 교장과 풀무학교 전공부 학생들이 종교학 수업을 하는 모습.


 

홍성/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