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반 사회적 기업 육성을 어렵게 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 요인으로 1년 단위로 정산되는 지원예산을 들 수 있다.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조직의 경우 3년 정도의 기간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필자가 있는 대안학교의 경우를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 카페의 단골손님이 학교 행사나 민회 행사에 관심을 보이며 참여하기까지 최소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참여 인원도 한 두 명일 때가 대부분이다.) 관심을 보이는 주민들이 한 명, 두 명 모일 때 비로소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의 강력한 지지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대안학교의 후원자 수는 40명을 넘지 않지만, 얼마 전 카페에 커피 기계가 고장 났을 때, 중고 커피 기계를 구입할 돈을 모금한다는 광고를 낸 지 1주일 만에 기계 값인 420만 원이 모였다.
후원자의 수와 조직도 상에 등록된 이사, 혹은 위원들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강력하게 지원을 해 줄 지역조직을 만드는 데 걸리는 긴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지역 조직화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단기간에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정부 지원의 인큐베이팅 제도는 성공적인 지역기반의 사회적기업을 잉태하기 어렵다.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의 육성을 어렵게 하는 두 번째 요인은 경영을 중시하는 사회적 기업 교육과 멘토링이다. 경영의 기본은 효율성이기 때문에 전략적 선택과 집중을 중요시한다. 그러다 보니 멘토링 및 교육의 주요 내용이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에 집중해서 열심히 하라”로 귀결되곤 한다.
그러나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은 그 목표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업 모델을 지역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업 모델이 동시에 운영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이슈 변화에 따라 사업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영 중심의 사회적 기업 교육은 재무, 마케팅 등의 경영기법이 주가 될 터이나(1),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려는 예비 창업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보다 실천적인 주민조직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들도 생겨나고 있어 다행이지만 이러한 역량은 단기간의 교육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며, 다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의 이슈를 발굴하고, 이를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나가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과 멘토링이 필요하다.
지역기반 사회적기업의 인큐베이팅 센터는 그 자체로 지역기반 조직이어야 한다.
세 번째 원인은 지역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인큐베이팅 센터이다.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인큐베이팅 센터의 새로운 역할을 정리해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blog.makehope.org/attach/102/1323352640.jpg)
[그림1]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센터의 역할
현재의 인큐베이팅 센터는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과 일반 사회적 기업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거나,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 육성의 목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일반 인큐베이팅 센터와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인큐베이팅 센터에 소속된 사회적 기업들이 지역기반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센터 스스로가 먼저 지역 조직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센터에 지역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 공간은 지역주민들과 예비 사회적 기업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이 경우 인큐베이팅 센터를 선정할 때, 지역주민의 조직화 정도, 혹은 지역주민들의 후원 정도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인큐베이팅 센터의 단기적인 목표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 최소한의 지지기반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일반 인큐베이팅 센터가 단기적인 목표를 예비 사회적 기업 모델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에 두는 것과 차이가 있다. 물론 최소한의 지지기반을 형성하는 것 역시 타당성 검증의 한 부분이지만,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비 사회적 기업은 파일럿 테스트의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 단일 모델의 규모를 확장하는 전략을 택한다. 그리고 규모가 충분히 확장되었거나 혹은 목표만큼 규모가 커지지 않을 때 새로운 사업 모델이 첨가된다. 반면 지역 기반 사회적 기업은 최소 지지기반의 규모에 맞춰 (혹은 최소 지지기반이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어) 본 궤도가 시작된다. 그리고 지지기반이나 지역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모델이 첨가된다. 가령 핵가족화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라면 육아와 관련한 사업 모델이 시작된 다음에 바쁜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공동 구매 사업이 추가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적인 모델이 자리를 잡게 되면 자연히 소비자 규모가 확장된다.
살펴본 바와 같이, 다른 성장 방식으로 인해 일반 사회적 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센터의 단기적 목표는 단일 모델에 대한 타당성의 검증에 초점을 맞춘 것에 반해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센터의 단기적 목표는 최소 지지기반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행 시스템의 현실적인 대안으로써 이미 해당 지역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는 선배 사회적 기업이 같은 지역의 다른 기반을 갖고 있는 사회적 기업을 키워내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 멘토가 필요해
인큐베이팅 센터에서 전담 멘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인큐베이팅 센터의 전담 멘토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지식 혹은 특정 경영 분야에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 멘토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원 센터가 예산이 풍부하여 여러 분야 전문가를 사회적기업의 멘토로 배정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전담 멘토를 구성할 때 사업 아이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분야의 멘토를 매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문화 사회적기업의 경우 문화 분야 전문가에게, 교육 관련 사회적기업에는 교육 전문가 멘토를 매칭하는 방식인데, 이는 멘토링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이다. 각 분야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멘토와 멘티 사이에 으레 통용되는 이야기들이 실제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전혀 소통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화 영역에서 흔히 사용하는 ‘꼴라보’, ‘아트페어’와 같은 단어들은 문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이지만, 일반 마을 주민들은 잘 알지 못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언어들이 멘토링을 거친 이후의 사업계획서에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 영역의 경우는 교육 전문가들이 멘토링을 할 경우 사업의 내용이 교육 시혜자의 입장에서 구성되는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한다.(2)
지역기반 사회적 기업에 대한 멘토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멘토링을 통한 사업 계획의 검증이 철저히 마을 주민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 전문가가 전담 멘토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 때 멘토는 본인의 주민 조직화 경험을 예비 사회적 기업에 한 번에 이식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물론 주민 조직화의 소요시간을 앞당기는 다양한 수단이 있을 것이고, 이를 먼저 경험해 본 멘토는 그 수단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 조직이 강해지는 가장 큰 원동력은 지루한 논의의 과정을 주민들이 함께 거쳐왔다는 역사성이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함께 합의해 왔다는 정당성이다. 멘토의 역할은 ‘어떻게 협의체를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며, 어떤 방식으로 지역에서 대표성을 만들어 갈 것인지’와 같은 방법을 알려주는 가이드의 역할이다. 구체적인 결과물까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종합해봤을 때, 일반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큐베이팅 센터가 지향하는 장기적인 목표가 사회적 기업의 경제적인 독립이라면 지역기반 인큐베이팅 센터가 지향하는 장기적인 목표는 지역 주민들의 협의체와 대표체를 통해 정당성 있는 조직이 만들어지는 정치적인 독립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언급한 몇 가지 제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공적인 지역기반 사회적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1. 지역에 특화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2. 지역에서 강력한 후원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3. 준비기간으로 최소 3년을 간주해야 한다. 이는 지원예산의 편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4. 지역조직화 된 인큐베이팅 센터의 지원이 필요하다.
5. 사업계획서와 사업 모델은 지역 주민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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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필자가 "SK 세상 사회적기업 스쿨"의 과정장을 맡으면서 시도했던 것은 경영실무 교육, 창업경험 공유, 창업 분야별 이슈 토론 등으로 교육 과정을 구분해 본 것이다. 그 뒤로 다양한 교육과정들이 다양한 기관에서 개발되고 있는데, 더욱 발전된 교육과정도 있고, 오히려 퇴보한 교육과정도 있다. "사회적기업의 교육과정 변화"에 대해서도 기회가 되어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2) 위의 문화영역, 교육영역의 예는 필자가 사회적기업 멘토링을 하면서 자주 접하는 예이다.
글_박성훈 박사(seonghoon@socialventu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