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1위' 이유는 직접민주주의
권력을 내놓기 싫어하는 이에게 민주주의를 강조하면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은 주민자치권이 높은 스위스를 보면 단박에 억지라는 걸 알 수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경제학자 라르 펠트 교수와 겝하르트 키르쉬게스터 교수가 연구한 '직접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스위스에서 강력한 주민 참여권이 부여된 주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5%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그런 주의 세금회피율이 30% 낮았고, 부패비율도 낮았다.
스위스가 '삶의 질 1위'인 이유가 바로 주민자치, 직접민주주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정부·의회·국민 3자 공동 정책 결정
스위스는 풀뿌리 공동체인 '코뮨'을 중심으로 직접민주주의가 활성화돼 있다. 행정뿐만 아니라 세금부과 등 재정 자치권을 가진 코뮨(2867개)은 절반 이상이 인구 840명 미만이며, 주민이 투표로 입법·예산 등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스위스는 정부·의회·국민 3자가 공동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틀이다. 국민발안·의회발안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 데 유효투표 수의 과반 찬성과 26개 칸톤의 과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헌법에 국민투표가 도입된 1848년부터 1992년까지 398건을 시행했다. 이는 같은 기간 세계 각국이 시행한 국민투표(799건) 절반 이상이다.
스위스 직접민주주의는 시민이 선호하는 정책결과를 만들어낸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1986~1997년 칸톤의 재정 수입과 지출 217건을 분석한 연구에서 의무적 주민투표를 거친 칸톤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수입과 지출 모두 각 7%, 11% 낮았고, 적자규모도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스위스 국민은 대의민주주의인 선거에는 참여율이 낮다. 이에 대해 <직접민주주의-풀뿌리로부터의 민주화>를 쓴 한양대 주성수 교수는 "정당이나 후보들이 아무리 격렬한 선거경쟁을 해도 후에는 서로 타협하고 조정하기 때문에 정부 구성이나 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대신 유권자들은 국민투표에 대한 통제력을 확고히 갖기를 바란다"며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민주주의 결핍'을 보완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시의회 지역사회주의 실험…시민 '재개발 계획'에 정책·재정적 지원
영국 노동당이 집권한 런던광역시의회(1981~1986년)의 지방자치 사회주의 전략은 보수당 정부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풀뿌리 자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노동당의 신좌파는 1981년 지방선거에서 런던광역의회를 집권하며 △요금 25% 인하 대중교통 정책 △런던기업위원회 설립, 1만 개 일자리 창출 △집권 첫해 공공주택 임대료 동결 등 주택정책 △도시 대안적 개발 △도로 건설 억제 등 정책을 내세웠다. 인종문제를 담당하는 '인종적 소수자위원회', 런던 경찰청을 감시하는 '경찰위원회', 대안적 경제정책과 민중계획 제시를 맡은 '경제정책팀'을 구성했다. 시청건물은 시민에게 공개되고 권력은 고위 공직자의 사무실에서 각 위원회 의원석과 방청석으로 옮겨졌다.
런던시의회는 공공요금정책에 걸고 넘어진 보수당의 소송에 지자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포괄한 '티켓 하나로'라는 교통카드 제도 도입으로 요금인하를 이뤄냈다. 그 결과 1984년까지 런던 중심부 승용차 이용 15% 감소, 대중교통 16% 증가라는 성과를 거뒀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 수립과 시행에서 시민이 스스로 표현하고 합의에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와 결합한 대목이다. 런던시의회는 재량권을 활용해 각종 정보네트워크, 지역 정보센터 등을 통해 지역주민 스스로 '도크랜즈 재개발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정책·재정적 지원을 했다. 이는 보수당 정부가 경제적 중심지였으나 쇠퇴한 선착장과 부두를 일자리 창출과 첨단기술기업 유치를 내세우며 단거리이륙공항 계획 추진에 맞선 것이다.
일명 '민중계획'의 내용은 선착장 주변 비어 있는 공간에 공공주택 건설, 공동체 연결을 위한 보육시설 대규모 확대, 보트시설과 보트생산을 위한 훈련시설을 건립해 주변 상업적 보트생산활동과 결합 등이다. 그러나 민중계획은 대처 보수당 정부에 의해 좌절됐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시민참여예산제…재정운영 투명성·공정성·효율성 높여
참여예산제는 행정부나 자치단체의 예산편성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목적은 주민참여로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하나로 참여예산제가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1989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시작됐다. 당시 브라질 노동자당이 시정부를 집권하면서 주민단체가 참여예산제를 요구했고 시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포르투 알레그레 참여예산제는 20여 년 동안 행정 시스템화됐고 성과도 많이 이뤄냈다. 주민 스스로 시의 예산을 결정한다는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에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거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2000년 기준 주민참여로 결정한 예산규모는 시 예산의 25%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도시 주택 하수도 연결비율이 10년 후 83%(1989년 48%)로 늘었고, 참여예산제 시행 이후 2004년 주민공동체(3000여 개)가 40% 증가할 정도로 시민사회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성과는 브라질 다른 지역(2006년 기준 6000개 시정부 중 100개)뿐만 아니라 인근 남미국가,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세계 각국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민주노동당이 2002년 지방선거에서 공약화하면서 전국으로 알려졌다. 이어 2004년 광주시 북구가 국내 최초 조례를 제정했고, 2006년 행정자치부가 표준조례안을 만들었다.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와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2010년 05월 07일 (금) 표세호 기자 po32dong@ido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