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 새로운 경제, 협동조합]창립 앞둔 ‘바리스타 협동조합’

2013. 7. 29. 11:40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신년 기획 - 새로운 경제, 협동조합]창립 앞둔 ‘바리스타 협동조합’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ㆍ커피업계의 불평등 수익배분구조 깨려 다섯 젊은이들이 뭉쳤다

지난달 20일 부산의 한 카페에 바리스타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는 이들이 모였다. 발기인은 5명으로, 지난해 11월부터 만나 공식적으로 이번이 세 번째 모임이었다.

바리스타는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업계에서는 국내 커피전문점의 시장 규모를 4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이들이 받는 시급은 법정 최저임금인 4580원에 불과하다.

신분은 비정규직. 장시간 노동을 해도 기본적인 삶을 꾸리기 힘들다. 커피시장의 이익은 어디로 가는 걸까. 바리스타의 현실은 시장경제의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바리스타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이유다. 이제 막 싹을 틔운 바리스타 협동조합이 ‘사회적 경제’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다.

설립신고를 앞둔 바리스타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출자금과 정관 작성 등 운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지분율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일반 기업과 달리 조합원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다. | 바리스타 협동조합 제공


▲ 바리스타 자활교육에도
내 점포 차리기엔 역부족
고용돼도 장애인 차별


▲ “안되면 우리가 하겠다”
전국 돌며 조합원 모집


바리스타 협동조합(http://cafe.naver.com/coffeecoop)의 발기인 대표를 맡은 이진우씨(33)는 부산에서 20평 남짓한 개인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서울의 유명한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커피업계의 불평등한 수익구조를 알게 됐다. 이씨는 “커피시장의 이익은 소수의 자본가와 기업이 독점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젊은 바리스타들에게 돌아갔다”며 “우리가 힘을 모으면 썩은 물줄기를 돌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 협동조합이었다”고 말했다.

바리스타 협동조합은 오는 7일 창립총회를 열고 이달 중 설립신고를 할 계획이다. 법령상 일반 협동조합은 5명 이상이 모여 정관을 만들고 총회를 열어 시·도지사에게 신고하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다.

발기인 5인의 면면은 다양하다. 이씨 외에도 경남 창원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천성효씨(30), 지난해 초 대학을 졸업한 ‘88만원 세대’ 곽진섭씨(26),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따뜻한 자본주의’를 꿈꾼다는 임현영씨(29), 협동조합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새로운 직업 재활의 측면을 발견했다는 사회복지사 안은선씨(37) 등이 바리스타 협동조합 설립에 품을 들이고 있다.

이들이 준비 중인 바리스타 협동조합은 노동자가 자본을 출자해 사업체를 운영하는 노동자 협동조합이다. 곽씨는 “바리스타가 주인이 되는 커피기업을 만들어 안정된 일자리와 보다 나은 근로조건,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사업체는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만든 직영점과 소규모 개인 커피전문점을 대상으로 한 가맹점으로 구분할 계획이다. 그러다보니 노동자 조합원 외에도 가맹점 운영자들도 사업자 회원으로 받고 이들 커피전문점을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소비자 회원으로 받을 예정이다. 또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인턴 제도를 도입, 학생들이 학업과 병행하며 원하는 시간만큼 근무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도 바리스타 협동조합 설립은 희소식이다. 직업자활센터에 바리스타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실무를 쌓거나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안씨는 “스타벅스가 지난해 장애인 바리스타 채용 계획을 밝혔지만 정신지체 장애인은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성장만 생각한다면 서비스업계에서 정신지체 장애인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상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취약계층에도 ‘동등한’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들은 바리스타 협동조합이 대형 프랜차이즈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이씨는 “영세한 커피전문점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한목소리를 내면 유통업체와의 거래에서 우위를 차지해 원가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고루 나눠 갖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판매가격을 과하게 올리지 않아 원가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해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이날 모임은 정관 초안과 홍보 브로슈어를 검토·수정하기 위해 마련됐다. 협동조합 설립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정관 사본과 창립총회 의사록 사본, 사업계획서, 설립취지서, 임원명부 등의 서류가 필요하다.

바리스타 협동조합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토론을 한다. 상명하달 식의 업무지시가 아니다. 함께 이야기하며 생각을 좁혀간다. 업무분장도 자유로워 정관 초안 작업은 천씨와 임씨가 자발적으로 맡았다. 다른 발기인들은 기획재정부의 표준 정관을 바탕으로 두 사람이 작성한 초안을 꼼꼼히 살피며 수정해야 할 사항들을 논의했다.

가장 많은 의견이 오간 주제는 정관 제2장 9조의 조합원의 자격. 노동자 조합원의 자격을 20~30대 청년으로 한정지은 것에 대해 “나이 때문에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 배제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임씨는 “20~30대 청년들보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40~50대가 재테크나 투잡 목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토론은 30분 동안 계속됐다. 결국 바리스타의 주요 직무가 서비스 판매라는 점을 감안해 최초 가입 연령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대신 참여를 원하지만 제한 연령을 초과하는 사람에게는 행정이나 홍보 등의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출자금도 결정됐다. 사업체 구성이 본격화될 때 재논의할 것을 전제로 일단 최저선으로 1좌 금액을 5만원으로 정했다. 또 대의원의 정수나 임기도 우선 각각 50명 이상, 3년으로 정한 뒤 이후 상황에 따라 변경하기로 했다. 사업 초반에는 배당금보다 잉여금을 쌓는 데 주력하자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토론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격론은 없었다. 상대방의 말을 자르는 이도 없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귀기울여 듣고 자신의 생각을 전할 때는 조근조근 말했다. 그렇게 서로 기분 상하는 일 없이 합의점을 찾았다. 하나의 결론을 내는 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 조합원 하나하나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씨는 “개인의 이익 때문에 자기 주장을 한다면 이런 분위기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며 “내가 아니라 뭔가를 돕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에 서로를 받아들이고 배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홍보 브로슈어도 만들었다. 조합원 모으기에 가장 애를 먹고 있어 한 달째 브로슈어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00부가량 제작해 부산, 창원, 대구를 중심으로 커피전문점을 돌아다니며 바리스타들에게 직접 건넬 예정이다.

바리스타 협동조합은 기존 프랜차이즈 등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로 기부를 도입하기로 했다. ‘당신의 커피 한잔이 아이들의 밥 한끼를 제공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익금의 일부로 지역의 불우아동들에게 도시락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들에게 소비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협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쌓아 특별한 브랜드로 다가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기 위해 조합원 교육도 꾸준히 할 계획이다. 천씨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의견 교류를 하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며 “자조, 자기책임, 민주주의, 평등, 공정, 연대가 협동조합이 가져야 할 가치”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향후 주택, 의료, 교육, 육아 분야의 협동조합 설립을 추가로 계획하고 있다. 바리스타 협동조합은 하나의 구심점이고 출발점으로 바리스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씨는 “경제적인 면 이외의 이익을 조합원들에게 돌려줘야 협동조합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연대정신이 협동조합을 가장 이상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견제장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