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 새로운 경제, 협동조합]받기만 했던 그들이 남을 돌보고, 지역사회에 수익 환원 보람도

2013. 7. 29. 11:37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신년 기획 - 새로운 경제, 협동조합]받기만 했던 그들이 남을 돌보고, 지역사회에 수익 환원 보람도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사회적 협동조합 - 성남만남돌봄센터

경기 성남시에 살고 있는 김인순씨(53)는 6년째 매일 아침 9시면 분당 한솔마을의 박수림 할아버지(103) 집을 찾는다. 100세 넘은 고령에 혼자 사는 박 할아버지가 불편하지 않도록 오전 동안 청소, 빨래 등 가사는 물론 목욕과 행정업무까지 처리한다. 그는 “어르신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데는 내 역할도 조금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오후와 저녁에는 1주일에 6회씩 장애인 활동보조를 지원한다.

김씨는 ‘사회적 협동조합’인 성남만남돌봄센터의 요양보호사다. 요양보호 7년 경력에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성남만남돌봄센터는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노인, 장애인, 산모 등 지역 저소득층 400여명을 위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원래는 지역 저소득층의 자활을 돕는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 소속 돌봄사업단이었다가 지난해 12월 독립하면서 사회적 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사회적협동조합 성남만남돌봄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인순씨가 지난달 27일 경기도 성남의 한 아파트에서 가사돌봄서비스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나홀로 노인 요양보호사 결식아동에 도시락 배달
조합원 대부분 취약계층… 자활과 공익사업 동시에


고용이 불안정한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지역 내 취약계층을 돌보는 돌봄센터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취지와 잘 들어맞는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협동조합이어서 이익 배당이 금지되고, 공익 사업을 40% 이상 운영해야 한다. 세금 외에 각종 부과금은 면제받고 수익의 일정 부분은 사회기여적립금으로 쌓아야 한다. 저소득층의 자활과 지역사회 돌봄이라는 성남만남돌봄센터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가치에 동의하는 사회적 조합원은 6개월 안에 50만원을 납입해야 하고, 직원조합원은 매달 1만원 이상 정기 출자금을 낸다.

돌봄센터의 조합원은 대부분 저소득 취약계층이다. 일반 노동시장에서는 처우가 나쁘거나 고용 자체가 어렵다. 돌봄 일이 자활 수단인 조합원들에게 돌봄센터는 조합 사무실이자 직장이다. 조합원 김씨는 4급 장애인이다. 외환위기 때 남편 사업이 실패한 뒤 식당 주방일이나 보험업 등 닥치는 대로 일해왔지만, 스트레스가 심했고 건강에도 무리가 생겼다. 일을 놓을 수도 없는 형편이던 김씨는 “나 같은 사람도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정보를 듣고 2005년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를 찾았고, 어엿한 전문 요양보호사가 된 것이다.

김씨는 “딸이 협동조합이 뭐냐고 묻길래 엄마가 직원이 아니라 주인 역할을 하는 거고, 다른 어려운 사람들도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거라고 얘기해 줬다”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김씨와 비슷한 처지의 저소득층 요양보호사, 산모신생아관리사 등 돌봄서비스 제공자와 센터 직원 등 160명이 조합 설립에 동의했고, 이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한국협동조합연구소로부터 10회에 걸쳐 사회적 협동조합 관련 교육과 자문을 받았다.

돌봄센터 조합원들도 여느 협동조합과 같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갖는다. 돌봄센터는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던 지난해 여름부터 조합원들이 손쉽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11개조로 나누고, 각 조장을 선출해 의견 수렴 구조를 만들었다. 김영애 성남만남돌봄센터 대표는 “어려운 처지에서 일하는 돌봄서비스 종사자들에게 사회적 협동조합은 자부심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근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조직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8시간 정도 일하는 김씨의 평균 월급은 140만원이다. 넉넉한 벌이는 아니지만 김씨는 “이제 내 회사가 됐으니 정년 없이 나만 괜찮으면 쭉 일할 수 있다는 게 굉장한 안정을 주고, 안정감에서 자부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돌봄센터에서 일하기 전, 집에 가면 가족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였던 것도 과거의 일이다.

김씨는 모두가 발언권을 갖는 협동조합을 통해 그동안 즐기기 어려웠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나 적정한 수준의 임금 인상 등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식당일을 할 때는 눈치볼 게 많았는데, 서비스 받는 분들이나 센터 실무자들과 제가 수직관계가 아니고 동등한 관계로서 제가 원하는 걸 당당하게 말할 수 있잖아요. 또 같은 조합원으로서 오래 더불어 갈 사람들이 있어 든든해요.”

■ 자활기업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성남만남돌봄센터처럼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를 뿌리로 성장해서 독립한 다른 자활공동체기업들도 사회적 협동조합이 됐거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2001년 설립된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을 받는 지역 내 저소득 취약계층의 자활·자립을 도와왔다. 지금까지 주민 80여명이 센터 내 자활사업단으로 시작해 7개 분야에서 자활기업을 창업했고, 센터에는 여전히 9개 자활사업단이 운영 중이다.

이 중 2011년 센터에서 독립해 지역 결식아동 도시락 배달을 담당하는 ‘행복도시락 성남점’은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 발효와 동시에 사회적 협동조합이 됐다. 현재 조합원 18명에 연매출 12억원을 넘나드는 행복도시락 성남점의 강승임 대표(50)는 기초수급을 받다가 2001년 센터 내 급식사업단에 들어가 자활에 성공한 경우다. 강 대표는 “장애인이나 한부모 가정 등을 우선 고용한다. 사회적 협동조합으로서 우리가 이제까지 받은 도움을 되돌려주는 게 제일의 목표”라고 말했다.

포장팀장 박진만씨(65)도 일하고 월급받는 평범한 삶을 처음 경험하고 있다. 50대 중반까지 술만 좇아 살던 박씨는 알코올중독을 치료한 뒤에야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지만 아무 경력도 없는 50대 남성을 고용하려는 곳은 없었다. 6년 전 성남만남자활센터 급식사업단을 소개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박씨는 월급 120만원이 모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허송세월하며 살아온 제가 조합원으로 회사 주인까지 됐잖아요.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부부 사이도 이제 단점이 안 보이고 신혼같으니,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청소대행 및 건물환경관리 전문업체 ‘푸른 우리’도 향후 2년 내에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이 업체는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 청소사업단으로 시작해 2008년 독립한 자활공동체기업으로, 취약계층 자활을 담당하는 사회적 경제로서 기능한다. 주식회사 법인이지만 이미 협동조합과 유사하게 민주적인 의결 과정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이던 청소사업단원 7명이 시작한 회사는 현재 식구가 39명으로 늘었다. 일단 회사에 들어온 직원과는 끝까지 함께하는 게 원칙이다.

■ ‘착한 은행’ 해밀자활공제협동조합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 사람들은 이미 2008년부터 시중 은행 대출이 어려운 지역 저소득층에게 소액을 빌려주는 해밀자활공제협동조합을 운영해왔다. 매달 1계좌 5000원씩 기본 출자금만 내면, 필요할 때 담보 없이 0.3%의 저리로 100만원 한도까지 빌릴 수 있다. 현재 조합원은 240여명. 출자금은 5년 동안 1억원이 됐고 3000만원을 조합원에게 빌려줬다.

돌봄센터 요양보호사이기도 한 나인월 해밀자활공제협동조합 이사장(57)은 “없는 사람에게는 몇십만원도 급박한 돈인데 조합을 통해 신뢰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며 “지역민에게도 조합을 개방했다”고 말했다.